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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인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다. 머리카락부터 발뒷꿈치까지 들뜨게 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방문이 무신론자인 나까지 설레고 들뜨게 만들 줄이야. 연이은 교황 특별보도를 미소는 기본이고 눈물은 감초로 하여 감동에 젖은 채 보고 있는 스스로를 돌아보면 이런 회의가 든다. 어쩌면 나는 '자기만의 신'을 가진 영성 무신론자가 아닐까? 그렇다, 영성과 무신론의 결합! 아마도 나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아니 지금 시대가 그런 것 같다. 오늘날은 무신론과 다신론이 공존하는 시대다. 한 개인의 내부에서도 이것이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지적인 무신론자도 계몽시대에 비하면 엄청 늘었다. 가자 지구 공격으로 죽어나간 귀중한 생명들을 보면 니체의 '신은 죽었다'라는 외침은 그때보다 오히려 지금이 더 가슴속 깊은 데까지 절절하게 파고든다. 천주교,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등의 세계종교를 믿고 있는 독실한 신자들에게 호통 칠 수 있는 경험 사례가 하나 더 늘었다고 좋아할 무신론자는 이 지구상 어디에도 없다. 어쩌면 무신론자야말로 신의 죽음을 가장 슬퍼하는 족속이 아닐까? 아무튼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공습은 '팔레스타인 대학살'이다. 과거 나치즘에 의해 홀로코스트를 겪었던 피해자가 이젠 더 파렴치한 가해자가 되어 일방적인 학살을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 나치가 받았던 그 모든 지탄을 지금은 영혼을 상실해 좀비가 되어버린 이스라엘 정부가 모조리 받고 있다. 그 모든 지탄과 비난을 한마디로 줄이면 바로 '악마!'이다. 종교적 믿음은 오히려 광적으로 강화되고 있는 추세다. 을씨년스러운 우리 마을의 밤풍경을 보면 감이 온다. 밤하늘에 삐죽하게 튀어나온, 마치 공동묘지를 연상케 하는 빨간 십자가들의 장기판! 정통 교회에서 갈라져 나온 일명 '구원파'라는 이단 교회가 한국의 봄을 공포와 경악의 도가니로 만들어 버렸다. 구원파 교세 확산의 배후에는 종교와는 무관한 관산학의 고질적인 부패와 비리가 있었다. 누가 오늘날을 '세속화 사회'라고 말하는가? '신은 살아있다'라는 외침이 이곳저곳에서 들려온다. 그리고 유일신론의 맥락에서는 기독교 근본주의와 이슬람 근본주의가 서로 피비린내 나는 충돌을 빚고 있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글로벌 위험사회에서 '종교의 귀환' 현상에 주목한다. 21세기 종교의 귀환은 근대성의 특징이 종교의 쇠퇴에 있다는 세속적 근대성에 대한 반증에 해당한다. 오늘날 종교의 귀환은 '종교의 세계화'와 '종교의 개인화'라는 이중적인 현상으로 요약된다. 종교의 세계화는 종교의 상품화 혹은 종교의 시장화와 연계된다. 반면, 종교의 개인화는 '자기만의 신'을 발명하는 작업이다. 자기만의 신은 자기만의 삶과 자기만의 공간을 얻고자 분투하는 노력의 결과다.
벡에 따르면 종교사회학에서 나온 '세속화 이론'은 이제 한물 갔다. 계몽과 세속화는 더이상 종교와 신앙의 몰락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속화는 종교를 무력화하는 동시에 또한 종교성과 영성을 활성화한다고 강조한다. 이것이 바로 벡이 강조한 '세속화의 역설'이다. 과거 사회학적 계몽은 종교적인 것의 탈주술화를 강조했지만, 오늘날은 종교에 의한 재주술화 현상이 만연하고 있다. 탈주술화를 주장한 세속화 혹은 세속적 합리성이 종교의 세력 상실이나 의미상실이 아니라 오히려 영적인 재주술화를 불러왔다는 것이 세속화의 역설이다.
벡은 21세기 종교의 귀환은 종교의 다양화와 탈교회화를 특징으로 한다고 지적한다. 유럽에서 일어난 종교성 부활의 핵심은 제도적 종교와 주관적 신앙 간의 분리이다. 신앙 부활의 원리에 권위를 부여하는 것은 주권을 가진 자아이다. 물론 종교의 개인화와 열렬한 교회신자가 되는 일이 반드시 상호배타적인 것은 아니다. 기성 종교제도가 쇠퇴하면서 개인적인 종교성향은 오히려 증가한다. 이것이 종교적 개인화 테제다. "성직자가 주도하는 종교의 세계를 지배하는 차별화 경쟁과 독점 주장은 개인화된 신앙운동의 세계에서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 제도종교는 오히려 양면적이면서 국경과 종족 경계선을 넘어 인간애를 보장한다는 바로 그런 주장(신앙)을 통해 사람들을 또 동시에 종교적으로 분열시킨다. 신자와 불신자 사이에 틈새를 벌려서 오히려 종교의 평화 수행능력을 의심하게 만든다."
다시 교황 얘기를 하게 된다. 프란치스코 교황 방문을 계기로 한국 사회가 제도화된 종교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덜어내고 종교의 긍정적인 통합작용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보탤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이번 교황의 방문이야말로 우리 사회에 있어서는 '진정한 종교의 귀환'이 아닐까. 천주교를 주축으로 하는 바람직한 종교운동의 새바람이 느껴진다. 착각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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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69)이 출세작 <위험사회>(1986) 이후 줄곧 매달려온 작업은 크게 보아, 서구 중심으로 추구되고 형성돼 온 근대성의 한계를 탈피하고 새로운 근대, 곧 ‘제2의 근대’로 나아가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었다 할 수 있다. 그뒤 줄기차게 펴낸 <정치의 재발견>, <지구화의 길>, <적이 사라진 민주주의> 같은 책은 그런 모색의 소산이다. 2002년 <세계화 시대의 권력과 대항권력>에서 벡은 <위험사회>의 기본 테제(개념)인 ‘개인화’가 방법론에서 일국적 시각에 갇혀 있었다고 자기 비판하면서 세계 시민주의 시각, 곧 세계 시민주의 사회학을 본격 표방한다. 벡이 2008년에 내놓은 <자기만의 신>은 자신의 기본 개념인 ‘개인화’와 ‘위험의 지구화’에 대한 생각을 발판 삼되 세계 시민주의 시각을 곧추 세우면서 종교의 세계화, 세계화된 종교가 낳는 정치적인 문제들에 대한 생각을 개진하고 있다. <자기만의 신>은 근대라는 것이 ‘탈주술화’(막스 베버), ‘세속화’(카를 마르크스, 에밀 뒤르켐)에서 시작되었고 이 세속화가 민주주의와 근대성을 이루는 핵심 요소라면, 근대화가 세계 차원으로 진전된 지금 21세기에, ‘종교의 귀환’ 현상이 두드러지는 것을 어떻게 볼 것이냐는 물음에서 출발한다. 아우슈비츠에 끌려가 죽은 한 유대인 여성의 일기를 인용하면서 시작되는 이 책은 그 여성이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끊임없이 독백처럼 대화했던 ‘신’이 유대교의 신도, 기독교의 신도 아닌 그 무엇, “속수무책의 신이 침묵하는 상태에서 독백하듯 대화하듯 읊는 기도”, 곧 종교적 영성이었음을 보여준다. 이를 벡은 ‘자기만의 신’이라 명명한다. 자기만의 신은 종교의 ‘개인화’의 다른 이름이다. 근대화로 말미암아 제반 사회생활 영역에서 개인의 불안이 커짐에 따라 기존의 제도화된 종교로부터 벗어나 영성을 추구하는 이들이 외려 늘고 있다. 벡은 ‘자기만의 신’ 현상이 서유럽에서 기독교 신자는 급감했지만 무슬림 신자는 늘고 있다는 점, 아시아·아프리카에서 기독교도와 힌두교·불교도가 늘고 있다는 점과 함께 ‘종교의 귀환’ 현상의 한 양상을 이룬다고 파악한다. 벡은 종교의 귀환은 20세기 후반까지 근대 200여년을 지배했던 ‘세속화 이론’, 곧 “계몽을 통해서 인간은 신으로부터 벗어나 모든 영역에서 자율성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을 무너뜨리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가 보기에 세속화 이론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다만 ‘근대화가 진행될수록 종교는 소멸한다’는 세속화 테제는 ‘근대화가 진행될수록 종교의 면모가 변모한다’로 바뀌어야 한다. 기존 테제는 갈수록 느는 종교의 개인화 현상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벡은 종교의 개인화를 ‘새로운 근대성’이 생겨날 수 있는 토양으로 지목한다. 근대화가 진전되면 종교전쟁, 종교갈등이 사그라지리라 기대했던 세속주의의 희망은 오류로 판명됐지만, 종교간 문명적 공존마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세계 종교의 공존 조건으로 벡이 제기하는 관용의 원칙은 “진리가 아닌 평화”이다. “(각 종교가 추구하는) 진리가 위협하는 것이 평화뿐 아니라 인류의 지속적 실존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