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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의 시의이자 세브란스 병원을 만들고, 전염병 콜레라를 잡는 데 노력하고, 또한 광역병 예방 백신을 조선에 보급하고, 조선인이 자립할 수 있게 한국 최초의 면허의사를 탄생시킨 의사, 올리버 R. 에비슨. 책을 읽으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밌게 읽었고, 그도 대단하지만 낯선 나라에서 남편과 아이들을 잘 키운 그의 아내도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가족과 친구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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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래희망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예전이나 지금이나 손꼽히는 직업 중에 하나가 의사가 아닐까 싶어요. 제가 어렸을적... 거의 30년 전에 해당하지만 그때는 의사라고 하면 단연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가 최고였답니다. 그리고 여전히 슈바이처 박사로 인해 의사의 꿈을 키우는 사람도 참 많은 것 같아요. '알버트 슈바이처'는 프랑스 출신으로 아프리카에서 의료 활동을 하며 봉사정신과 인류애를 실천하였고, 노벨 평화상까지 수상하며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친 분입니다. 그런데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와 거의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더군다나 아프리카가 아니라 우리나라에 아주 많은 영향을 주고 간 의사가 있더라구요. 바로, '올리버 R. 에비슨' 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치과 의사가 꿈인 딸 아이와 함께 그에 대한 책을 살펴보았어요.
샘터에서 출간된 '샘터 솔방울 인물'의 <한국 최초의 의사를 만든 의사 올리버 R. 에비슨> 입니다. 올리버 R. 에비슨의 생애나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지필한 책은 몇권 있기는 하지만 어린이 눈높이에 맞추어 만든 책은 아마 이번에 샘터에서 처음으로 출간되지 않았나 생각되네요.
영어 이름 : Oliver R. Avison (1860년 ~ 1956년) 한국 이름 : 어비신(魚丕信) 국적 : 캐나다 (출생 : 영국 요크셔)
책을 펼치니 올리버 R. 에비슨의 병원 운영 방침이 제일 먼저 소개되어 있었어요. 짧은 글이지만 의사로서의 그의 신념을 볼 수 있는 대목이라 저는 한참 보면서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이 책의 차례입니다. 모두 5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장에는 또래와 남달랐던 에비슨의 어린시절이 간단하게 소개되어 있구요. 2장부터 5장까지는 조선에서 45년 가까이 살면서 조선을 변화시킨 이야기들을 담고 있어요.
본문은 이렇게~ 인물과 역사를 다룬 이야기라 딱딱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부드러운 그림과 함께 재미난 에피소드로 이끌어 나가고 있어서 지루함이 없었구요. 무엇보다 당시의 사진이나 문헌도 함께 구성되어 있어서 참 좋더라구요. 그리고, 한 장이 끝날때마다 <더 알고 싶어요!> 코너를 통해 본문과 연관된 제중원, 제중원의 의학당, 콜레라, 한국 최초의 의사 등도 더 들여다 볼 수 있었답니다.
올리버 R. 에비슨의 모습은 드라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답니다. 3년쯤 전에 SBS에서 방영된 <제중원> 기억하시나요? 구한말의 병원 모습을 다룬 사극으로 신분의 벽을 넘을 수 없었던 조선시대에서 백정의 아들이 의사가 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었던걸로 기억하는데 저도 드문드문 보아서...^^ 하여간 그때 알렌, 헤론, 빈튼에 이어 제중원(광혜원)의 4대 원장으로 책임을 맡고, 한국에 최초의 의사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인물이 바로 올리버 R. 에비슨이랍니다. 그리고 그가 일군 세브란스 의과대학과 연희전문학교는 지금의 연세대학교로 성장하였어요.
제법 글밥이 많아서 2학년인 제 딸아이가 읽기엔 조금 힘겨운 감이 있었지만 초등 4~5학년이 보기에는 좋은 위인전인 것 같아요. 특히, 기존의 잘 알려진 인물이 아니라 우리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지만 우리가 많이 기억하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 저는 더 관심이 가서 재미있게 볼 수 있었구요. 아직 어리지만 치과 의사가 꿈인 제 딸아이에게는 좋은 신념을 알려줄 수 있었던 책이 아니었나 싶어요.
가끔은 TV를 통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훌륭한 의사들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우리에게 실망을 주는 의사도 많이 만나게 됩니다. 이번에 <한국 최초의 의사를 만든 의사 올리버 R. 에비슨>의 이야기를 보면서 아무쪼록 대한민국의 모든 의사들이 의사로서의 신념을 잃지 않았으면 하고 바래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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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아이와 읽으며 한국 최초의 의사가 왜 외국사람일까? 라는 궁금증을 안고 책을 읽는 내내 아이도 나도 감동받았다. 나 하나 살기 급급했던 조선시대 말에 황무지나 다름없는 조선땅에 타국 멀리까지와서 평생을 의학발전에 몸담으며 아픈 사람들의 육신뿐만 아니라 고기를 잡을 수 있는 방법까지 가르쳐 준 그의 이야기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귀감이 된다. 영국의 개구쟁이 에비슨이 가족의 살림이 어려워지자 캐나다로 이민가 안착하기 까지 그의 어린시절도 순탄치 않았다. 미국출신의 선교사 덕분에 한국에 정착하게 된 그는 제중원을 현대식 병원 시설로 바꾸고 환자의 치료뿐 아니라 전염병의 방역에도 힘썼다. 이렇듯 굶주리고 배고픈 우리들에게 기꺼이 두손을 내밀어 잡아주었고 병원을 근대식 시설로 발전할 수 있게 해준 그를 아이들이 책으로나마 만날 수게 해 준 것을 감사히 생각한다. 공부하나 잘해 의사나 박사가 될 수 있는 시대의 아이들에게 마음 따뜻이 다가가 손 내밀어 줄 수 있는 사람으로 크게 할 수는 없는 건지 이 책을 읽으며 나 자신부터 반성하게 된 시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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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솔방울 인물] 시리즈를 읽은 것은 이번이 세 번째이다. 간송 전형필, 고고학자 손보기에 이어 만나게 된 인물은 [한국 최초의 의사를 만든 의사 올리버 R.에비슨]이었다.
솔방울 시리즈의 책들이 워낙 알려지지 않은 우리 사회의 숨은 보배같은 분들을 찾아서 소개하기 때문에 누군지 모르는 것이 이상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올리버,,,,누구? 정말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한국 최초의 의사를 만든 의사'라는 부제를 봤을 때는 분명 우리나라와 연관이 깊은 인물인데 너무 생소한 이름에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구한말에 우리나라에 선교사가 많이 들어와서 교육과 의료에 도움을 주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지금의 연세대학교 전신인 연희전문학교를 세운 '언더우드' 정도나 학교 다닐 때 국사 시간에 배워서 겨우 알까,,,'에비슨'은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한국 최초의 의사를 만든 의사'라는 부제가 말해주는 그의 주된 활동에 '글쎄,,, 의사를 길러낸 교수가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이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최초'라는 것이 의미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의학을 배워 의사가 되고, 제자를 길러내 의사로 만들어내는 일은 어쩌면 당연하고, 평범해 보였던 것이다.
이런 의심을 가지고, 그럼에도 솔방울인물시리즈에서는 처음 나오는 외국인이니 만큼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책장을 넘기며 읽어 내려갔다.
첫 장을 막 넘기는데,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다. '올리버 R. 에비슨의 운영 방침'이 그것인데, 범상치 않은 운영방침이 약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지만 그가 어떤 신념과 철학으로 병원을 운영하고, 환자를 대하는 지 그의 인물 됨됨이를 알 수 있게 해주었다.
![]() 이런 궁금함을 잔뜩 안고 페이지를 넘기니 박형우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동은의학박물관장의 추천사가 보인다. 그리고 간략하게 나마 올리버 R. 에비슨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소개를 해준다.
"의사이자 교육자였던 올리버 R. 에비슨은 캐나다 토론토에서의 부와 명예가 보장된 자리를 과감하게 버리고, 가난하고 병들어 있던 조선에서 42년을 지내며 한국의 서양 의학과 고등 교육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의 96년 일생 가운데 가장 오래 살았던 곳이 바로 한국이었지요.
그리고 1935년 12월, 올리버 R. 에비슨이 고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한국을 떠나던 날, 기차역 플랫폼에는 약 8백여 명의 사람들이 나와 그를 배웅했습니다. 도대체 올리버 R. 에비슨은 어떤 인물이기에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일까요?
제중원의 책임자이자 고종의 시의이며, 한국 최초의 콜레라 방역 사업의 책임자이자, 한국 최초의 현대식 병원인 세브란스병원을 설립한 사람. 연희전문학교와 세브란스 병원 의학교 교장을 겸직하며 오늘날 연세대학교의 기틀을 마련하고, 한국 최초의 면허 의사 7명을 길러 해 낸 사람. 올리버 R. 에버슨은 이처럼 훌륭한 업적을 남긴 인물이지요." --- 9p 추천사 中
이 부분을 읽을 때 만해도 우리 나라에 와서 앞선 기술을 가진 서양 의학과 학문을 전해주었던 인물이구나. 그리고 고국에서의 편안한 생활을 뒤로 하고, 가난한 나라에 와서 헌신을 했었구나 정도의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책을 읽어 내려가면 갈수록 그가 한국이라는 불모지에서 하나의 밀알을 싹트게 했던 과정이 얼마나 어렵고 힘들었으며 긴 여정이었는지 마음을 졸이고 몰입하면서 읽게 된다. 뭉쳐진 눈덩이가 굴러가면서 커지기는 쉬워도 처음에 단단히 뭉치는 과정은 힘든 것처럼, 아무 것도 없는 제로 상태에서, 심지어 자금도, 인식도 없는 상태에서 오로지 신념 하나로 일궈 낸 결과는 그야말로 놀랍기 그지 없었다.
어려서부터 무엇이든 열심히 배우고, 최선을 다했던 그는 열악한 약방 수습생에서 최고의 부와 명예를 누리는 의사, 그리고 의과대학 교수의 자리까지 올랐다. 물론 재능과 능력도 중요하지만 배우고자 하는 열망과 주변의 조건에 개의치 않고, 열과 성의를 다했기에 가능했었을 것이다.
그러나 화려하고 편안한 미래가 보장된 캐나다의 생활을 접고, 에비슨은 돌연 동양의 작고 가난한 나라 '조선'으로 떠나기로 결심한다. 조선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언더우드'와 만남이 그의 나머지 인생의 방향을 바꿔버린 것이다.
"지금 조선에는 의술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이들을 위해 세워진 왕립 병원도 담당 의사이던 헤론이 최근에 세상을 떠나면서 빈 병원이나 다름없게 되었습니다."
...중략 ...
"우리가 도움을 준다면, 조선의 어린아이들을 죽음의 위험에서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p43
의과대학 후배였던 언더우드에게 들은 조선의 의료 현실과 그의 간곡한 부탁은 결국 에비슨을 조선으로 떠나게 한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것은 그의 남다른 철학이었다. 한 끼의 식사를 주는 것은 당장의 배고픔을 면하게 해주고, 생명을 연장 시킬 수는 있지만 때가 되면 또다시 도움이 필요하게 된다. 그러나 스스로 먹을 것을 찾고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면 시간이 지나도 도움은 필요 없을 것이다. 에비슨은 이러한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에비슨은 왕립 병원을 채울 한 명의 의사가 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토록 의사가 필요하다면, 낯선 땅에서 말도 통하지 않는 의사가 가는 것보다 의학교를 만들어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편이 현명하지 않은가?' ---p44
캐나다에서 학생들을 가르쳐 온 경험이 있는 에비슨이 이러한 생각을 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조선에 서양 의학이라는 인식이 생기기도 전이니 사상, 언어, 문화가 판이한 곳에서 서양 의학교를 세워 조선인 의사를 키워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마 그때는 몰랐을 것이다.
![]() 조선인 '의사'를 키우겠다는 결심을 하며 조선의 한성에 발을 내디딘 에비슨은 말이 좋아 왕립 병원이지 낙후된 의료 시설에 약품도 거의 갖춰져 있지 않은 단층짜리 건물 달랑 한 채가 고작인 '제중원'의 책임자를 맡게 된다. 처음 그가 품었던 꿈에 비해 현실은 너무나도 열악했다. '하지만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나는 왜 조선에 들어왔는가?'
에비슨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곳은 앞으로 그가 일할 곳이었습니다. ---p51
스스로에게 던지는 이 질문이 바로, 에비슨이 아무리 힘든 역경이 생겨도, 아무리 시간이 지연되어도 포기하지 않고, 한발 한발 나아가 끝내 원하는 목표를 이루어낼 수 있었던 힘이었을 것이다.
실망감도 잠시 에비슨은 썩은 관리들 때문에 더 열악해지던 제중원을 사업수완을 발휘하여 백성들이 더 많이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가 하면, 수십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던 콜레라의 방역을 확대해 피해를 최소화하는데에 기여하게 된다.
당시만 해도 콜레라는 쥐가 발을 통해 환자 몸속으로 들어간 뒤 배 쪽으로 올라가면서 갉아 먹는다고 여겨 집집마다 고양이 그림을 붙여 놓을 정도로 세균과 질병에 대해서는 무지하던 때였다. 사람 목숨을 앗아갈 정도의 위력을 가진 콜레라를 끓인 음식을 먹고 청결하게만 하는 것으로도 예방가능하다는 것을 사람들이 쉽게 믿을 수 있었을까?
그럼에도 에비슨은 포기하지 않았다. 에비슨은 굉장한 전략가였다. 어쩌면 결코 이뤄낼 수 없을 것 같았던 모든 일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열정 못지않은 그의 뛰어난 전략이 있었기에 가능했었을 것이다.
콜레라 방역에 있어 그가 주목한 것은 바로 '한글'이었다. 세종대왕이 자신의 정책을 백성들에게 보다 쉽게 전파하기 위해 글자를 만들어 보급했던 그 '한글'의 위력을 400년 후 외국에서 날라 온 외국인이 알아보았던 것이다. 전략은 대성공하여 한 번 발병하면 40만 명의 사망자를 내던 콜레라의 피해를 만 명 정도로 최소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노력한 결과 국가에 '백정'에 대한 신분 철폐를 요구하고 답을 얻어낼 만큼 그의 영향력은 커져 갔다. 이렇게 한발 한발 전진하던 에비슨은 드디어 처음에 조선에 오면서 생각했던 일을 실천에 옮기기로 결심한다.
"조선인을 의사로 키운다고요? 그건 절대 불가능합니다."
반발은 예상했던 대로였다. 그렇다고 포기할 그도 아니다.
"우리도 처음부터 의사였던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조선 사람들도 기회만 주어진다면 훌륭한 의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중략--
에비슨은 몇 년이 걸리든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르든 철저하게 교육받고 훈련받은 의사를 만들고 싶었습니다.---p97
그리고 마침내 5명의 학생을 모아 의학교 수업을 시작한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벽에 부딪치게 된다. 바로 '언어' 문제였다. 에비슨과 겨우 말이 통할 만큼의 영어 실력을 가진 이들이 영어로 된 원서를 공부하는 것은 거의 공포에 가까웠다. 점점 하얗게 질려가는 학생들을 보면서 에비슨은 다시 고민에 빠진다.
그리고 다시 주목한 것이 바로 '한글'이었다.
"이 교과서는 한글로 만들 것이네. 그리고 그것으로 조선 사람들이 공부할 것이네. 한글 교과서는 조선이 스스로의 힘으로 의학 발전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일세."
에비슨은 훗날 제자가 된 한자와 영어 실력을 두루 갖춘 김필순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결국 길고 긴 노력 끝에 1906년, 마침내 국내 최초 우리말 해부학 교과서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것은 우리나라 의학생들에게 한줄기 빛과 같았습니다.
'수십 년이 걸릴 거라던 의학 수업을 앞당겨 놓은 힘.'
그것이 한글 교과서의 위력이었습니다. 모든 문명을 받아들이는 가장 훌륭한 도구가 언어라는 것을 이해한 에비슨의 뛰어난 혜안이 낳은 또 하나의 기적이었습니다." ---p107~108
![]() 그 이후 돈 한 푼 없이 시작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식 병원인 '세브란스 병원'을 건립해내는가 하면 남녀의 내외가 뿌리깊던 당시에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간호사 2명을 배출해내기도 했다. 그게 무슨 대단한 일인가 싶겠지만 남자 환자들을 돌볼 수 있는 일을 하기로 결정한다는 것은 당시만 해도 쉽지 않은 일이었기에 그 첫걸음에 대단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그가 설립한 의학교는 7년 간의 긴 여정을 마치고 7명의 졸업생 배출을 앞두게 되었다. 에비슨은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든 과정을 보내온 제자들에게 국가에서 공인한 의사 면허를 주고 싶었다. 그러나 당시는 일제 강점기였다. 에비슨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던 통감부가 이를 수락할 지는 미지수였다. 그러나 에비슨은 잠시 고개를 숙이기로 결심한다.
"나 한 사람이 머리를 숙인다면, 조선 사람들은 서양식 의사 7명을 얻게 될 것이오." ---p147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를 알았던 에비슨은 통감부를 찾아가 정중히 부탁을 했고, 1908년 6월 3일 마침내 우리나라 최초의 의사 7명에게 개업을 할 수 있는 의사 면허가 발급되게 되었다.
![]() 졸업식 전날, 에비슨은 제자들에게 앞으로 어떻게 할 지를 물었다. 이 질문에 제자들은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고 한다.
"예전에 저희들은 생활에 쪼들리다 보니 언제 의사가 되어 돈을 벌 수 있을까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저희가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것은 교장 선생님 덕분이며, 그에 보답하는 길은 여기 병원에 남아 후배들을 가르치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에비슨은 가슴속에서 뜨거운 기운이 용솟음쳐 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오! 내가 그동안 키운 사람들이 7명의 의사인 줄 알았더니 그것이 아니었구나. 참다운 인격자들이 만들어졌구나!'
그것은 에비슨이 낯선 땅 조선에 들어와 심은 한 알의 밀알이 남긴 결과였습니다.
--중략--
그 후 7명의 졸업생들은 조선 사람들의 건강을 돌보고 조선인 의사를 키워 내는 일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았고, 모두 독립운동에 몸을 던졌습니다." ---p153
이 부분을 읽을 때면 이제 그는 더이상 외국인이 아니었다. 다른 학문과는 달리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일이기에 더 많은 시간이 걸리고, 언어와 교육이 다르기에 장벽은 더 높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그 힘든 과정을 이끌어오면서 '의사란 무엇인가?' '의사는 어떤 마음으로 환자를 대해야 하는가?'라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긴 시간 생활고에 시달렸으면서도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 보았던 제자들에게 '의사'가 결코 생업의 수단이 될 수 없었음은 당연한 것일 것이다. 제자들 모두 후배를 양성하거나 나라를 위해 독립 운동을 하게 된 것도 모두 이러한 스승의 보이지 않는 가르침의 때문이었을 것이다.
![]() 이 책을 읽은 둘째가
"엄마, 무슨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 일을 했어?"
라며 놀라워한다.
그렇다. 42년 동안 정말 한 사람이 해냈다고 하기에 믿기지 않을 정도의 굵직한 일들을 많이도 해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큰 일을 꼽으라고 하면 단연코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진정한 의사'를 키워낸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부제가 왜 '한국 최초의 의사를 만든 의사'였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고, 공감을 하면서 고개가 저절로 끄떡여졌다.
그가 없었다면 우리나라 의술은 한참 뒤쳐졌을 지도 모른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사명감 하나로 힘든 과정을 묵묵히 이겨내 준 에비슨에게 진심으로 감사와 존경을 표하고 싶다.
책을 읽은 아이가 다시 묻는다.
"그런데 왜 이 사람은 역사책에 안 나와?"
"..."
이제라도 세상에 소개되어 이렇게 한 사람, 두 사람의 가슴에 울림을 주고, 감사의 마음을 전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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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올리버 에비슨이라? 하고 의아했는데, 세브란스 병원을 처음 만든 한국 최초의 의사였더군요. 근데, 더 놀란 것은 조선시대의 아니 그 이전부터 꿈을 키웠던 사람이라는 데서 더욱 놀랐습니다. 읽기도 쉽고, 삽화까지, 자료사진까지 있어서 역사책 한권을 읽은 느낌이 날 정도입니다. 역사라면 잼뱅이인 저도 술술 읽히는 걸로 보니 정말 잘 짜여져 있네요. 꿈이 있는 사람, 꿈을 키우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읽어보세요. 힘을 얻어가실 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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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맘에 들었던 문구였네요. 병원장의 방침이라고 생각되더군요. 저도 병원에서 근무하는지라 바로 느껴졌어요. 애민정신~~!!
자신의 이익보다는 더나은 꿈을 향해갔고, 그리고, 의사가 된 이후의 행적이 놀라웠습니다. 배울게 많았습니다. 그리고 고기를 주는 것보다 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 주려던 그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조선사람들의 의지와 힘 그리고 미래를 믿고 조선에 살았던 한 사람... 이름도 생소했었는데, 96년 일생중에 42년을 조선에서 살았던 한 사람의 힘이 아직도 그 정신이 그대로 물려져 오는 것을 보면 정녕, 당신은 꿈꾸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저도 오늘부터는 꿈꾸며 사람답게 살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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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서양 의술이 어떻게 들어오게 되었을까? 가끔 궁금하기는 했지만 딱히 찾아보지 않아서 잘 알지 못 했었는데 이번에 올리버 알 에비슨에 대해서 읽어보면서 정말 많은 걸 알 게 되었다. 1890년대에 우리나라인 조선에 와서 고종의 시의가 된 올리버는 이 책을 읽는 내낸 끊임없이 놀라운 일들을 해내고 있었다. 캐나다에서 부와 명예를 양손에 쥐고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선교활동의 일환인 의료 선교사로 선뜻 한국까지 와준 올리버는 정말 우리에게는 바이처에 버금가는 은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시대의 설명을 따로 하지 않아도 그때의 사진을 보면 얼마나 열악한 상황이었는지 짐작해 볼 수 있는데 일반 서민이 받을 수 있는 의술은 어땧을지 감히 상상도 되지 않는다. 나는 종교인도 아니지만 올리버 알 에비슨같은 인물이 해낸 일들을 보면 존경을 넘어 성인처럼 위대해 보인다. 이 책을 보는 내내 우리나라의 이태석 신부님도 아프리카의 톤즈에서 의료봉사를 한 것도 올리버 에비슨과 비슷한 마음이었을까 짐작해본다. 단순이 선교활동을 넘어서서 의술을 펼치고 거기다 조선인 의사를 길러 내야 겠다고 마음을 먹고 또 의지를 가지고 조선인 의사를 키우기 위해 한발짝 한발짝 노력하고 변화시키며 가르키는 그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는 말을 반복하게 만들었답니다. 얼마전 제중원이라는 드라마에서의 내용이 역사적 사실을 고증해서 만들어졌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서 좀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이 세상에는 정말 훌륭한 분들이 많았구나 하는 감사한 마음에 이 봄날이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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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의사를 만든 의사 올리버 R. 에비슨>이라는 조금은 낯선 책에 끌리더군요. 오래전에 <제중원>이라는 TV드라마를 본적이 있었는데 그 제중원의 책임자였다고 하네요.
책의 제목처럼 한국 최초의 의사를 만든 사람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훌륭한 업적을
이뤘음에도 왜 그리 알려지지 않았는지 정말 궁금할 따름입니다.
집에 위인전이 있긴한데 처음 들어보는 인물인지라 아이도 궁금해 하며 책장을 펼쳤습니다.
책장을 펼치니 <올리버 R. 에비슨>이 정한 <제중원>의 운영 방침이 나옵니다.
그의 운영 방침에서도 진정 환자를 생각하는 그의 마음을 짐작할수 있었습니다.
올리버 R. 에비슨도 어릴때는 평범한 개구쟁이 소년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또래의 아이들에게는 볼수 없었전 침착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스스로 초등학교를 그만두고
스스로 모직 공장에서 일하기를 원했던 소년과 어떠한 경험도 해보고 무언가를 얻고
직접 느끼기를 원했던 부모님 덕분에 다시 학교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렇게 학교로 돌아가 고등학교를 마치고 사범학교까지 다니고 초등학교 교사를 하다가 또다른 무언가에 도전한 올리버 R. 에비슨는 약방에서 약품을 다루다가 약사가 되고
다시 식물학 교수에서 드디어 의사가 된답니다. 이렇게 의사가 된 올리버 R. 에비슨은
병원을 경영하다 두가지의 고민중 선택을 하게 됩니다. '국이나 캐나다에서 병원을
개원할 것인가? 현대 의술에 대한 아무런 지식도 없는 나라에 가서 새로운 길을
개철할 것인가?' 올리버 R. 에비슨은 두번째 기를 택하게 됩니다. 그 나라가 조선
이랍니다.
조선에 와서 많은 새로운 일들을 이뤄 놓게 됩니다. 고종의 시의가 되고 어떤 조선인보다도 더 조선인을 생각하는 진정한 의사가 되었고 <제중원>이라는 드라마나 책을 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백정이라는 신분을 무시한채 한 사람을 의사로 만든 사람이기도 하답니다.
책의 맨 뒷부분에 올리버 R. 에비슨의 발자취가 나오는데 진정 마음으로 한국인을
위했던 그의 마음이 나타나 있네요.
이 책을 읽고나니 문득 지금의 의사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환자를 돈으로만 보는 TV뉴스에 수없이 등장하는 의사라는 사명감을 잃어버린
의사들에 대해서 말입니다.
<리버 R. 에비슨>과 같은 의사들도 분명 있을거라는 생각과 함께 아이가 이 책을
읽고 <올리버 R. 에비슨>처럼 사람을 생각하는 사람으로 자라나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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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캐나다 토론토에서 의사이자 교육자였던 올리버 R. 에비슨의 42년이라는 조선에서의 삶과 정신을 이야기하고 있는 책입니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올리버 R. 에비슨이란 인물은 책을 읽고 있는 아이에게 아직은 낯설기만 할 것입니다. 구한말 한국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호러스 G. 언더우드가 조선이 처한 의료 상황을 설명하고 한국에서의 선교 활동을 제안하자 올리버 R. 에비슨은 조선에서 의학교를 만들어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질병에 시달리는 조선 사람들에게 병이 생기지 않도록 예방하는 길을 알려주고자하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조선으로 향합니다. 에비슨은 고종의 옻 중독을 치료하고 신임을 얻게되면서 조선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시의에 임명되고 제중원의 책임자로 활동하면서 운영권을 넘겨받고 미국 선교부에서 보내 온 경비로 병실을 늘리고 수술실을 만들어 병든 백성을 구하는데 힘쓰고, 한국 최초의 콜레라 방역 사업의 책임자로서 성공적인 콜레라 방역 사업을 펼치면서 전염병으로부터 많은 조선인들을 살리고, 조선 사람들에게 의사가 될 수 있는 교육의 기회를 주고자 의학생을 모으고 의학생들의 도움을 받아 한글 교과서를 만들어 의학 교육을 시작해 공인된 의사면허를 가진 의사를 키우고, 한국 최초의 현대식 병원인 세브란스 병원을 세우는 등 조선 사람들 스스로 건강을 책임질 수 있는 전문 학교와 병원을 만들고자 했던 그는 꿈을 이루고 그의 나라 캐나다로 돌아갑니다. 조선 사람 스스로 제 꿈을 이뤄 나갈 수 있는 꿈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에 가난하고 병들어 있던 조선에서 42년을 한결같이 서양 의학교육에 큰 도움을 주었던 그의 삶이 가슴 뭉클합니다. 이런 올리버 R. 에비슨의 삶과 정신을 담은 이야기와 함께 사진과 함께 볼 수 있는 역사 속 인물, 사건 등을 부족하지 않은 내용으로 담고 있는 『한국 최초의 의사를 만든 의사 올리버 R. 에비슨』을 많은 아이들이 읽어보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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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의사를 만든 의사 올리버 R. 에비슨 샘터 솔방울 인물 12 고진숙 지음 / 안재선 그림 샘터
A. 영국인으로, 조선에서 많은 일을 하셨던 분이세요. 캐나다의 선교사이자 의사라고 할 수 있지요. 1892년 6월부터 1935년 11월까지 한국에서 체류하며 활동하였답니다. 제중원의 제4대 원장을 지냈고,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와 연희전문학교 교장을 역임하면서 오늘날 연세대학교의 기틀을 마련하였다고 합니다. 이 책에 완벽하고 간결한 설명이 있네요, 마침. '고종 황제의 시의이자, 백정의 아들을 의사로 만들고 한국 최초의 현대식 병원을 세운 사람. 낯설고 먼 조선에 들어와서 일생의 반을 헌신했던 사람.' '한국 최초의 현대식 병원'은 무엇을 뜻할까요? 바로 세브란스 병원이랍니다. 에비슨 씨는 참 대단한 분이신 것 같지 않나요? 위의 설명처럼 고종 황제의 시의이셨고, 백정의 아들인 박서양도 의사가 되게끔 도와주셨지요. 세브란스에서 한국 의사 면허를 처음으로 얻은 사람이 일곱 사람이라고 하네요. 한국 최초의 현대식 병원인 세브란스 병원도 세우셨고, 무엇보다도 조선에서 일생의 반을 헌신하셨다고 합니다. 적응하기도, 살기도 힘들고 낯설었을 조선에서 환자들, 조선의 모든 백성들을 위해 헌신하기는 힘들겠죠.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먼 아프리카나 인도 같은 곳에서 살아야 한다고 칩시다. 게다가 그 나라 사람들을 위해서 내 한 몸을 바쳐야 합니다...... 쉽지 않겠죠? 훌륭한 인물임에도 잘 알지 못하는 올리버 R. 에비슨. 지금이라도 잘 기억해두면 어떨까요? 2013.4.18.(목) 이은우(초등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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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황제의 시의이자, 백정의 아들을 의사로 만들고, 한국 최초의 현대식 병원을 세운 사람. 낯설고 먼 조선에 들어와 일생의 반을 헌신했던 사람, 올리버 R. 에비슨을 소개합니다!
올리버 R. 에비슨의 운영 방침 1. 약값을 낼 수 없는 환자라도 진찰을 거부하지 않는다. 2. 통역을 거치지 않고, 한국어를 배워서 직접 환자를 진찰한다. 3. 빈방은 모두 청결한 입원실로 만들어 되도록 많은 환자를 수용한다. 4. 수술실을 넉넉히 준비해 모든 종류의 수술이 가능하게 한다.
의사이자 교육자였던 올리버 R. 에비슨은 캐나다 토론토에서의 부와 명예가 보장된 자리를 과감하게 버리고, 가난하고 병들어 있던 조선에서 42년을 보내며 한국의 서양 의학과 고등 교육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의 96년 일생 가운데 가장 오래 살았던 곳이 바로 한국이었지요. 그리고 1935년 12월, 올리버 R. 에비슨이 고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한국을 떠나던 날, 기차역 플랫폼에는 약 8백여 명의 사람들이 나와 그를 배웅했습니다. 도대체 올리버 R. 에비슨은 어떤 인물이기에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일까요? 제중원의 책임자이자 고종의 시의이며, 한국 최초의 콜레라 방역 사업의 책임자이자, 한국 최초의 현대식 병원인 세브란스병원을 설립한 사람. 연희 전문학교와 세브란스병원 의학교 교장을 겸직하며 오늘날 연세대학교의 기틀을 마련하고, 한국 최초의 면허 의사 7명을 길러 해 낸 사람. 올리버 R. 에비슨은 이처럼 훌륭한 업적을 남긴 인물이지요.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진정한 글로벌 리더의 본보기, 올리버 R. 에비슨을 아이에게 소개해줄 수 있는 좋은 책이었어요. 한국 최초의 현대식 병원을 세우고, 한국 최초의 의사를 만든 의사 올리버 R. 에비슨. 그에 대한 책들도 많이 읽었지만, 올리버 R. 에비슨이란 인물에 대해서는 아이도 잘 모르고 있고 저 또한 그러했습니다. 이번 기회에 아이와 함께 그의 대한 이야기를 읽어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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