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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의 미, 칠월의 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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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작가님의 사월의 미, 칠월의 솔. 작가님의 소설은 처음 읽을 때는 차분하고 담담한 문체로 쭉 읽어 내린 후, 다시 읽고 싶어지는 매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이야기들을 단편집으로 묶어, 서로가 가지고 있는 아픔을 극복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책을 읽고 나면 괜스레 마음이 따뜻해지고 울적하던 기분도 다소 개운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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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작가님의 사월의 미, 칠월의 솔. 작가님의 소설은 처음 읽을 때는 차분하고 담담한 문체로 쭉 읽어 내린 후, 다시 읽고 싶어지는 매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이야기들을 단편집으로 묶어, 서로가 가지고 있는 아픔을 극복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책을 읽고 나면 괜스레 마음이 따뜻해지고 울적하던 기분도 다소 개운해 집니다.

j*****5 2019.07.0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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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작가님의 팬이 되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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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집의 감상을 쓰기는 쉽지 않다. 이 책에만해도 아홉개의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있는데, 개별적인 이야기에 대한 감상을 쓰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아홉가지 이야기에 대한 느낌을 통으로 쓰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김연수 작가의 다른 책을 읽어보고 싶어졌다는 것. 마음에 와 닿는 문장들이 많고, 이야기마다 의외의 전개를 풀어나가는 과정이 무척 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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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집의 감상을 쓰기는 쉽지 않다. 이 책에만해도 아홉개의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있는데, 개별적인 이야기에 대한 감상을 쓰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아홉가지 이야기에 대한 느낌을 통으로 쓰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김연수 작가의 다른 책을 읽어보고 싶어졌다는 것. 마음에 와 닿는 문장들이 많고, 이야기마다 의외의 전개를 풀어나가는 과정이 무척 흥미롭다.

보통 단편은 긴 이야기를 집중하여 읽을 상황이 못될 때에 짧은 호흡으로 읽기에 좋기 때문에 긴 책을 읽을 때에도 짬짬이 단편집을 읽곤 하는데, 아마도 김연수 작가의 다른 책들을 섭렵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대화의 깊이가 깊다. 과연 우리가 일상 생황을 하면서 누군가와, 심지어 가장 가까운 사람과도 이렇게 잘 정제되고 심도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때로는 배우자와, 이모와, 큰누나와, 우연히 만난 사람과, 오랜만에 만난 고향 선배와…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 정도이다. 그러니까 소설인가?


[책속으로]

벚꽃이 피기 시작했으니 말하자면 오늘은 벚꽃 새해. 이토록 아름다운 날 죽을 수는 없었다.

“그게 그렇더라구. 어릴 때만 해도 인생이란 나만의 것만 남을 때까지 시간을 체로 거르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서른이 되고 보니까 그게 아닌 것 같더라. 막상 서른이 되고 보니 남는 게 하나도 없어. 다 남의 것이야. 내 건 하나도 없어.”

아유타야를 침략한 버마군이 불상들의 목을 자를 때 떨어진 불상의 머리 중 하나를 보리수의 뿌리가 감싸안았고,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 머리는 마치 원래 거기에 있었던 것처럼 뿌리와 하나가 됐다. 둘은 나란히 서서 그 뿌리 속 부처님 얼굴을 바라봤다. 그 얼굴은 눈을 감고 있었다. 성진이 그 얼굴을 떠올리자, 정말 이 세상이 근사하게 느껴졌다.

단 하나의 희망은 돌맹이처럼 단단해진다.

여러 개 중 하나의 희망이라면 이뤄져도 그만, 안 이뤄져도 그만이겠지만, 거기 단 하나의 희망만 남는다면 그건 돌멩이처럼 구체적인 것이 되리라.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겠지만, 우리 머리 위에는 거대한 귀 같은 게 있을 거야. 그래서 아무리 하찮고 사소한 말이라도 우리가 하는 말들을 그 귀는 다 들어줄 거야. 그렇다고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맺어주거나 내 안에 가득한 슬픔을 없애준다는 뜻은 아니니 아무 짝에도 소용없는, 그저 크고 크기만 한 귀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런 귀가 있어 깊은 밤 우리가 저마다 혼자서 중얼거리는 말들은 외롭지도 슬프지도 않은 거야.

나오고 나면 좋든 싫든 네가 처음으로 보게 되는 얼굴이 있을 것이야. 그게 누구냐면 바로 네 엄마란다. 그 엄마는 죽을 때 아마 제일 마지막으로 네 얼굴을 보게 될 거야. 인생은 그런 식으로 공평한 거란다. 네 엄마의 삶에 너무 많은 고통과 너무 많은 눈물만 없다면 말이야. 그러니까 죽는 순간에 마지막으로 보게 될 얼굴이 평생 사랑한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면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더라도 그건 불행하다고 할 수밖에 없어. 그러니 무조건 결혼을 하고, 그다음엔 아이를 낳아.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전부야.

이모의 꿈은 소박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보면서 죽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모가 사랑했던 사람들은 다들 이모보다 먼저 죽었다. 너무 너무 너무 많은 고통과 너무 너무 너무 많은 눈물로 범벅이 된 이모의 얼굴을 보면서

이제 이모에게는 죽어가면서 봐야 할 얼굴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태어나자마자 거기에, 자기 삶에, 엄마의 얼굴이 없다는 걸 알게 된 아기처럼, 폴이 숨을 거뒀을 때, 이모는 처량하고 불쌍한, 말하자면 고아가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함석지붕집이었는데, 빗소리가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우리가 살림을 차린 사월에는 미 정도였는데, 점점 높아지더니 칠월이 되니까 솔 정도까지 올라가더라.

이제 나도 불혹이 됐다 하니, 작년을 기점으로 아빠가 살아보지 못한 나이를 살게 됐다 하니

장례를 치르고 난 뒤, 그간 갖가지 옷들을 입고 찍은 엄마의 사진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다가 큰누나는 그 사진을 찍는 동안 두 사람이 인생을 한번 더 산 셈이라는 걸 알게 됐다고 한다.

나보다 800년이나 앞서 살았던 단테의 그 탄식은 내가 겪는 이 고통이 어쩌면 모든 인류의 삶에서 영원히 반복되는 고통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거기 암센터 건물을 빠져나와 조금만 더 걸어가면 보행신호를 기다리는 연세대학교 학생들로 북적이는 횡단보도가 나왔고, 거기 서 있노라면, 건강하고 젊은 그들에게 고통이란 다른 세상의 일들처럼 느껴졌지만. 나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젊고 건강했으나 지난 몇 년의 어느 순간에 되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그러면서 나는 고통의 측면에서는 800년 전의 옛사람과 같아졌다. 말하자면 나는 단테가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겪은 개별적인 고통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밝히는 건 중언부언일 뿐이리라.

하지만 고통을 피한다고 해서 그게 평화로운 세계 안에서 머문다는 걸 뜻하지는 않는다는 걸 그는 곧 깨닫는다

“내가 서른다섯 살에 찍은 사진입니다. 그 시절에 나는 인생이란 이슬비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라고, 그는 사진을 들여다보는 내게 말했다. “인생을 똑바로 보기 위해서는 어둠을 배경으로 삼아야 하거든요. 내리는 듯 마는 듯 가는 빗줄기인데도 그렇게 많은 구름이 하늘을 뒤덮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세상을 어둡게 만들지 않으면 이슬비는 보이지 않으니까요.

“어쩌면 내게 인생의 진실이란 이슬비와 같으니 어둠에 비춰봐야만 비로소 보인다는 사실을 일러주기 위해서 그렇게 인화된 것인지도 모르죠.”

전치과全齒科에서 24번 어금니를 뽑으면서 내가 알게 된 것은 고통苦痛이란 단수單數라는 것이었다. 여러 개의 고통을 동시에 느끼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

그때 나는 알았지, 고통이란 가장 강한 놈이 독점한다는 것을. 두번째부터의 고통이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지.

“그날부터 나는 서쪽으로 난 창가에 놓인 간호사의 책상에 앉아서 종일토록 머릿속의 문장들을 받아적기 시작했다”라고

빨간색 볼펜을 손에 들고 괴로워하던 나는 그 고통이 인간의 근원적인 고통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기 경험의 주인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인간은 괴로운 것이다.

그제야 나는 볼펜을 쥐는 즉시 머릿속에서 줄줄 흘러나온 검은색 문장들이 아니라 쓰지 못하고 있는 빨간색 문장들을 써야만 한다는 걸 깨달았다.

문득 얼마 전에 책에서 읽은 문장이 떠올랐다. 카페로 가라. 되도록이면 자주 찾는 카페는 피하라. 그러고는 자리에 앉아서 고통스러울 만큼 정직한 말을 써라. 다 쓰고 나면 종이를 찢어 쓰레기통에 버려라. 그것으로 끝이다.* 책에는 그렇게 쓰여 있었다. (* 론 마라스크·브라이언 셔프, 『슬픔의 위안』, 김명숙 옮김, 현암사, 90쪽.")

그러나 남편의 말이 옳았다. 그것으로 끝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기도 하지, 이제 영범은 그 시절 아버지의 마음을, 그 마음의 환하고 흐린 굴곡을, 모나고 둥근 모서리를, 그리고 이제는 보이지 않는 이면까지도 어쩐지 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영범, 타인의 진심이라는 건 꽤 부담스러운 거야. 원치 않는 사람에게는 무거운 사슬이기도 해. 아무리 가족이라고 해도 진심이라는 이름으로 그런 사슬을 채우는 건 옳지 않아.”

함께 시간을 보낸 사람들에게는 서로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저절로 생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야기는 사람들 사이에 있었다. 이야기를 듣는다는 건 함께 경험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라는 목표를 세우자마자 인구는 급속하게 평범해졌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삶은 검은 입을 벌렸다. 그 이빨에 몇 번 물어뜯긴 뒤, 인구에게 남은 건 소심한 도피뿐이었다. 중학교 3학년 시절의 인구에게 이 세상이란 자신이 사는 연립주택 옥상에서 내려다보는 풍경 같은 것이었다. 인구는 마음이 괴로울 때면 옥상에 올라가 이런 생각을 했다. 4층밖에 안 되지만, 뛰어내린다면 바로 죽겠지. 물론 나는 매번 안 죽고 내려가지만. 그러니까 여기는 살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는 곳. 그런데 나는 살 수도, 죽을 수도 없는 처지다.

“그 아버지는 그런 것도 모르고 자기 아들이 천재라고 생각하면서 죽었는데, 그러면 행복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불행하다고 해야 하나, 잘 모르겠네요. 그런 거 모르고 사는 게 행복한 건 맞는데, 모르고 죽는 건 또 어떤 건지.”

두 사람의 관계에 본질적인 건 애당초 없었다. 두 사람은 연못 위의 소금쟁이들처럼 인생의 표면 위를 각기 미끄러졌을 뿐이다. 서로가 얼마나 깊은 생활의 수심 위에 떠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 채, 미끄러지다가 서로 만나기도 하고 또 헤어지기도 했던 것이다.

본질은 표면에 있었다. 그렇다면 표면을 미끄러지는 소금쟁이의 삶이라고 하더라도 깊이는 있지 않겠는가?

그는 생로병사가 고통이 되는 건 인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인연 따라 인생의 행로가 펼쳐지고, 그 행로를 관통하는 건 그의 몸뚱어리인데, 거기가 바로 생로병사의 홈그라운드라고 할 수 있었다. 하여 생로병사는 그의 몸으로 인연 따라 모였다가 인연 따라 흩어지는 괴로움의 궤적이었다.

행복은 자주 우리 바깥에 존재한다. 사랑과 마찬가지로. 하지만 고통은 우리 안에만 존재한다.

거기서 커츠 역을 맡았던 말론 브랜도의 마지막 대사는 “공포, 아아, 그 공포”였다. 커츠가 마지막으로 알게 되는 건 세상의 모든 악의 근원이자, 암흑의 핵심이 자기 안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고통이란 자기를 둘러싼 이해의 껍질이 깨지는 일이다. 칼릴 지브란이라는 사람의 말이라더군.

비 내리는 밤하늘의 미끈거리는 얼굴.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산책에, 그냥 걷는 일에 굶주려 있었다.

“부작용으로 고통받느니 차라리 내 몸의 병으로 고통받겠어요”

그런데 그보다 더 싫은 건 사람들이 이렇게 말할 때죠. 그건 일단 네 몸이 나은 뒤에 그때 얘기하자. 그럼 저는 그렇게 말했어요. 내 몸은 이제 영영 낫지 않아. 지금 얘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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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로얄 s******c 2019.03.0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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닿지 못한 시, 미완의 악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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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소리가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우리가 살림을 차린 사월에는 미 정도였는데, 점점 높아지더니 칠월이 되니 솔 정도까지 올라가더라. 그 사람 부인이 애 데리고 찾아오지만 않았어도 시 정도까진 올라가지 않았을까?”    사랑은 빗소리도 음악으로 만들어버린다. 빗소리마저 '솔'로 들리는 사람에게 그 순간 그 어떤 것이 아름답지 않겠는가? 사랑은 마법의 또다른 이름인지도 모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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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빗소리가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우리가 살림을 차린 사월에는 미 정도였는데, 점점 높아지더니 칠월이 되니 솔 정도까지 올라가더라. 그 사람 부인이 애 데리고 찾아오지만 않았어도 시 정도까진 올라가지 않았을까?”

 

 

  사랑은 빗소리도 음악으로 만들어버린다. 빗소리마저 '솔'로 들리는 사람에게 그 순간 그 어떤 것이 아름답지 않겠는가? 사랑은 마법의 또다른 이름인지도 모른다. 뉴욕에서 플로리다까지 차로 꼬박 거의 이틀이나 걸리는 먼 거리도 사랑하는 사람과 있으면 순간이동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녀(그)가 내 옆에 있는데 지루할 틈이 있는가? 1분 1초가 너무 빨리 가서 문제다. "황홀경에 빠져 이 세상 어떤 것도 다 받아들일 수 있는 약간 정상이 아닌 무한 긍정의 상태"인 것이다.

 

 

 “도 레 미 파 솔 라 시”


  처음 묵직한 '도'에서 시작한 사랑은 점점 높아져 어느덧 절정의 '시'에 도달한다. 절정을 향하는 순간까지 사랑은 영원히 아름답고 찬란할 것만 같다. 하지만 음이 날아다니는 단계인 '시'는 환상을 깨버리는 현실을 예고한다. 그다음은? 다시 '도' 제자리다. 사랑의 단잠에서 깨 제정신으로 돌아온다. 화자가 결혼 전 진경과 차로 달리던 경상도 크기의 미국 대륙이 결혼 후 '도'를 찍은 뒤에는 한반도의 44배 면적인 광활한 땅으로 다시 커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절정에 닿지도 못한 정 감독과의 사랑이 이모 '차정신'에게는 왜 그토록 아름답고 아련하게 기억될까? 그것은 '솔'에서 멈춘 '미완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되돌이표를 만난 것처럼 '도'에서 시작해 다시 '도"로 돌아오는 사랑. 그 속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물론 언제든 다시 절정의 '시'를 찍을 수도, 늘 '시'에 머물 수도 있다. 하지만 미완의 사랑과 다른 점은 이미 그 모든 음을 경험해봤다는 것이다. 들은 것과 듣지 않은 것의 차이는 희망과 절망의 간극만큼 크다.

  “너도 결혼했으니 잘 알겠지만, 우리 살 만큼 살았잖니? 그러니 인생을 한 번 더 살 수 있다면 당연히 다른 사람하고 살아야지.”

  
  폴과 그렇게 사랑했으면서도 또 다른 사랑을 꿈꾼다? 이모 차정신의 마음은 미처 완성하지 못한 악보를 마저 그리고 싶은 음악가의 심정이 아니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홍상수 감독과 김민희 배우가 떠올랐다. 불륜으로 주홍 글씨가 새겨진 그들의 사랑은 돌로 맞아죽을 짓인가? 물론 나는 그들의 개인사를 세세히 알지 못한다. 그들의 행위 모두를 옹호할 생각도 없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만큼은 존중돼야 한다고 본다. 한 평생을 살면서 사랑의 악보는 하나일 수도, 여러 개 일 수도 있다. 하지만 끝까지 완성할 사랑의 악보는 단 하나일 것 같다. 그 악보를 찾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일이다.

  인생은 짧으니까. "한 사람이 태어나 이 정도 와인을 다 못 마시고 죽을" 만큼 짧으니까. 진짜 사랑의 악보를 찾아 그것을 완성하기에는 너무 짧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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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2018.12.0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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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 빗맞음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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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 빗맞음에 대하여-김연수 「기상예보의 비법」   46%  최근 5년간 기상청이 비가 오는 것을 맞춘 확률이다. 절반도 못 맞춘 셈이다. 이렇게 예보가 빗나가다 보니 ‘구라청’, ‘오보청’이란 비아냥을 들은 지 오래다. 우리나라는 1년 중에 비가 오는 날이 많아야 백일, 아무런 계산 없이 무조건 비가 안 온다고 우기기만 해도 265/365, 즉 72.6%는 맞힐 수 있다. 그러니 더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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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 빗맞음에 대하여-김연수 기상예보의 비법

 

46%

 

 

최근 5년간 기상청이 비가 오는 것을 맞춘 확률이다. 절반도 못 맞춘 셈이다. 이렇게 예보가 빗나가다 보니 구라청’, ‘오보청이란 비아냥을 들은 지 오래다. 우리나라는 1년 중에 비가 오는 날이 많아야 백일, 아무런 계산 없이 무조건 비가 안 온다고 우기기만 해도 265/365, 72.6%는 맞힐 수 있다. 그러니 더 민망해 보인다. 게다가 500억 원대 슈퍼컴퓨터는 폼으로 갔다 놨나? 오죽했으면 소설가 이외수 씨는 트위터에 "요즘 기상청 예보는 자주 틀립니다. 기상청 예보보다는 제 '신경통'이 더 정확합니다."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뜬금없이 기상청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내려는 것은 아니다. 김연수의 단편 소설 일기예보의 기법을 얘기하고 싶어서다. 소설은 이런 빗맞음에 대한 얘기다.

 

기상청 최우수 예보관이란 타이틀과 달리 미경은 해마다 엄마 생일인 정월 대보름 날씨를 잘 못 맞춘다. 얼마나 못 맞추면 엄마는 그 애가 뭐라고 떠들어대건 간에 당일 아침에 일어나면 알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을까. 한 치 앞 날씨도 예측하기 어려운데 하물며 사랑은 어떨까? 사랑은 날씨 예보보다 더하다. 운도 지지리도 없지 이렇게 사랑이 빗맞을 수 있을까 싶다.

 

미경은 전 남자친구 형식의 결혼 소식을 듣고 뒤늦게 아직도 형식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정작 형식을 차버린 건 미경이었다. 버스 떠난 뒤에 손흔드는 꼴이라니. 이후 미경은 다른 남자와 결혼하지만 그게 사랑이 아니라 연민이었다는 걸 깨닫고 이혼까지 한다. 돌싱이 된 뒤에는 꽃미남 후배 세진을 짝사랑하며 미친 순애보적 사랑도 보여준다. 여자친구를 그리워하는 후배를 위해 엉터리 첫눈을 예보한 것이다. 세진이 첫눈 내리는 날 여자친구와 재회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객관적인 데이터는 분명 비를 가리키지만 나홀로 눈을 예보하는 용기라니. 온갖 욕과 비난을 다 들어도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하얀 거짓말. 정말 낭만적인 장면이었다. 하지만 감동과 별개로 이번에도 첫눈 예보처럼 미경 자신의 사랑은 빗맞았다.

 

무조건 첫눈 예상. 무슨 일이 있어도 첫눈 예상.”

 

선배의 희생에도 후배 세진 역시 기상청 직원(?)답게 사랑이 빗맞는다. 첫눈이 내리면 만나기로 한 전 여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너무 늦게 전화한 것"이라는 답을 듣는다. 세진은 오히려 예년보다 2주나 빨리 전화한 것이라고 말한다. 엉터리 예보 덕에 첫눈을 예년보다 2주나 당겼다는 말이지만 여자친구는 말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 두 사람은 사랑처럼 마지막 대화도 어긋난다.

연결될 듯 말 듯 하던 닥터 강과 미경 엄마의 사랑도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음에도 엄마는 그 사랑에 애써 눈을 감았다. 결국 닥터 강은 어둠 속 랜턴 같은 아빠의 빈자리를 대신하지 못한다. 닥터 강은 나는 너희 엄마를 사랑하는데, 너희 엄마는 너희를 사랑한단다.”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떠난다.

 

소설은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빗맞은 사랑을 하나하나 풀어내 보여준다. 그런데 그 빗맞음이 안타깝고 슬프기보다는 오히려 왠지 모르게 따뜻하게 느껴진다. 골목에 쌓인 눈을 치워야 할 쓰레기 더미가 아닌 그냥 풍경으로 두고 보는 작가의 인간적인 시선 덕분이다. 소설 내내 작가는 우주선에 앉아 밥을 먹으며 지구를 내려다 보는 라이카로 변신한다. 그 시선에 기대면 부유하는 상실의 덩어리같은 그 이야기들이 나를 감싸고 괜찮아 괜찮아라며 속삭인다.

 

만약 사랑도 날씨처럼 예보할 수 있다면 어땠을까? 기온과 바람, 기압 등 객관적 데이터를 토대로 분석하는 기상예보 기법처럼 저마다 감정의 데이터를 입력해 사랑을 예측한다면? 엄마는 답한다.

 

글쎄 될 일은 가만히 둬도 되고안 될 일은 아무리 해도 안 되었으니까

 

미경의 가족이 엄마 생일에 보름달을 바라보면서 빌었던 소원처럼 삶이란 사랑이란 대게 그런 것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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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2018.12.0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