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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안에 존재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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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릭 모디아노는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청춘시절, 까트린 이야기, 최근작인 도라 브루더까지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작가다. 옮긴이 김화영 덕분으로. 자연을 낯설게 하는 알레고리로써 독특하게도 "염소"를 등장시켜 극적인 효과를 거뒀던 전경린이 못내 흠모해마지않는 파트릭 모디아노의 매력은 무엇일까? "파트릭 모디아노의 모든 소설은 나직하고 끊어져 쉬는 데가 많은 옛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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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릭 모디아노는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청춘시절, 까트린 이야기, 최근작인 도라 브루더까지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작가다. 옮긴이 김화영 덕분으로. 자연을 낯설게 하는 알레고리로써 독특하게도 "염소"를 등장시켜 극적인 효과를 거뒀던 전경린이 못내 흠모해마지않는 파트릭 모디아노의 매력은 무엇일까? "파트릭 모디아노의 모든 소설은 나직하고 끊어져 쉬는 데가 많은 옛 노래, 지금은 다 잊은 줄 알았다가도 다시 들으면 가슴속 저 깊은 곳의 마음의 현이 오래오래 진동하는, 그런 노래와도 같다." 라고 김화영은 말한다. 이사벨 아자니 주연의 <중독된 사랑="">을 보고 났을 때와 그 여운이 비슷하노라고, 나는 좀더 구체적인 감상을 말하려 한다. 20년 전에 프랑스를 떠났던 스무 살의 청년 장 데커가 중년의 앰브로즈 가이즈라는 영국 국적의 탐정소설 작가가 되어 텅 빈 유령 같은 도시 한복판 즉, 7월의 햇빛이 쏟아지는 파리로 들어오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다시 돌아온 파리라는 공간은 20년이라는 시간의 간극만큼이나 낯설고 아련하다. -나는 망원경을 밀어놓고 유리창 너머로 파리 시가를 응시했다. 도시가 돌연 망원경으로 관찰한 어떤 별만큼이나 멀게 느껴졌다.(p18) -"인생이란 여러 가지 서로 다른 시기의 연속이랄까요...... 그래서 이따금 출발지점으로 되돌아와 보기도 하지요. 파리에 돌아오면서부터 이제 앰브로즈 가이즈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느낌이에요."(p20) 이 소설의 주인공은 바로 수없이 등장하는 거리들이다. 어느 거리를 가로지르면 어느 거리로 접어들고 어느 가의 언덕을 걸어 올라가면 인도 왼쪽 그늘진 다른 길이 나타나는 그 알 수 없는 길들은 남들이 들려주는 말은 따로 적어둘 필요도 없이 머릿속에 새겨져서 일생 동안 지워지지 않는 나이인 스무 살에 떠났던 한 남자의 기억 속에서 되살아나기도 사그라지기도, 돌연 정지되기도 한다. 또한 그 시절에 알았던 과거의 사람들, 누구누구를 거쳐 알게된 그들과의 허무한 밤거리 순회, 야간용 탁자 서랍에서 찾아낸 20년 전의 선글라스, 원하는 건 뭐든지 적혀있는 전화번호부, 옛 삶의 유일한 흔적인 낡은 수첩, 자살한 옛친구 로크루아가 남긴 당시 사건이 기록된 문서들,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포르투갈의 4월, 그리고 까페, 식당, 공원, 호텔, 다리, 광장, 향수냄새, 주스한잔까지도 낱낱이 되살려져 추억공간에 한 자취를 새겨 넣고서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다. 획일화된 단체여행을 다니는 외국 관광객처럼 20년 전에 떠났던 장 데커에게 있어 파리는 -이제부터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이제부터는 나도 이 도시에서 이방인이다. 그곳과 나를 이어주는 것은 이제 아무 것도 없었다. 나의 삶은 이제 이 거리에도, 건물의 벽에도 새겨져 있지 않았다.(p42) 그러나 기억은 묻어둔다고 해서 소멸되는 것이 아니다. 청춘일 때 떠난 도시에 다시 돌아와 거리 곳곳을 헤매고 있는 중년의 가이즈는 자살한 친구가 남긴 문서의 기록과 우연히 만난 텡텡을 통해 죽은 줄로만 알았던 조르주 마이요를 한밤에 추적하게 됨으로써 '카르멘 시절'로의 회귀를 위한 운명적인 도돌이표를 만나게된다. -인생의 어느 시점에 이르면 사람은 그 자리를 떠나 새 사람이 되어야 하는 법.(p173) 라고 장 데커가 자위하면서 떠났던 도시를 또 한사람 조르주 마이요는 같은 거리를 밤마다 반복해 달리는 흰색 란치아 자동차 속에서 흰색 우비를 입고 운전대 앞에 앉아있었다. 이렇듯 추억의 공간을 지키고 지워버리고 하는 일련의 행위는 주체에 따라 나름대로 이다. 그러므로 각각의 또 다른 모습으로, 각각의 넓이와 깊이를 부여하고서 부활한다. <잃어버린 거리="">는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 중에 가장 늦게 접한 것이다. 뒤에 번역된 작품들을 먼저 읽었고, 이 작품은 얼마 전, 일부러 찾아 읽은 것이다. 그래서 더 살갑다. 자주 접하는 출판사가 아니라서 하마터면 그냥 지나칠 뻔했으니까 말이다. 며칠 앓아 누워있을 때 꿈속에서 내내 거리를 헤매 다녔다. 언제나 낯선 길이었다가 모퉁이를 돌아가면 문득 눈에 익은 길이 나오곤 했다. 정처 없는 꿈은 누구나 한번은 꾸게된다. 다만 너무 오래 헤매 다녀 발바닥이 부르트지 않기를 바란다. 허나 추억의 공간은 아무리 밟고 다녀도 다리쉼이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모든 것이 어리석은 자의 지나친 기우(杞憂)인지도. -어찌 그것이 파리의 경우뿐이랴. 수십 년 전에 헤어졌던 어린 시절의 친구가 오랜만에 귀국하여 자기 집으로 오란다. 전화로 자기 집의 위치를 알려준다. 어린 시절에 자주 드나들어 익히 알고 있는 그 자그만 한옥에 그의 부모가 여전히 살고 계시다고 한다. '그렇지. 국민학교 뒷담을 끼고 돌다가 느티나무 큰 것이 하나 서 있잖아? 그 왼쪽에 항상 공터로 남아 있던 더러운 채마밭 생각나? 거기다 항상 연탄재를 내다버리곤 했지. 옳지, 그래. 지금은 흰색 타일을 바른 6층 빌딩이 들어섰어. 그 빌딩 지나 셋째 골목...... 그렇지. 맨날 누런 똥개가, 말만한 똥개가 지키고 서서 반갑다고 꼬리를 쳐대던 그 쌀집이 나오지, 그래, 그래, 물론 개는 죽었겠지. 그게 벌써 언젠데, 그 쌀집......? 지금은 쌀집은 아니지만 집은 그대로 있어......' 이렇게 전화를 주고받는 두 사람의 머릿속에 고스란히 떠 있는 30년 전의 공간 -전화를 끊고 나면 폭삭 주저앉는 그 공간의 마력을 아는 사람은 파트릭 모디아노가 어떤 힘에 의존하고 있는지를 깨닫는다. (옮긴이 김화영의 "맛깔스런" 해설 중에서)
p*****2 2000.08.1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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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이란 말 다음에 오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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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결코 출발점으로 되돌아오지 못하는 법이다   내 인생의 출발은 거짓 출발이었다. 아니 나는 하마터면 잘못된 출발이라고 쓸 뻔했다. 천만에. 그것은 거짓 출발이었다.   그녀는 그보다 훨씬 더 먼 곳에서 돌아오고 있다.(중략) 이마에 커다란 상처 자국이 보인다. 어쩌면 시간의 흔적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삶에 대한 기억을 모두 상실하게 만든 저 우발적 사고 중 하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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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결코 출발점으로 되돌아오지 못하는 법이다

 

내 인생의 출발은 거짓 출발이었다. 아니 나는 하마터면 잘못된 출발이라고 쓸 뻔했다. 천만에. 그것은 거짓 출발이었다.

 

그녀는 그보다 훨씬 더 먼 곳에서 돌아오고 있다.(중략) 이마에 커다란 상처 자국이 보인다. 어쩌면 시간의 흔적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삶에 대한 기억을 모두 상실하게 만든 저 우발적 사고 중 하나가 남겨놓은 흔적인지도 모른다. 나 역시 오늘부터는 아무 것도 기억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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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누군가에게 쓴 메일의 첫 문장이 이러했다. '요즘은 시간만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당시 내가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육체없는 시간의 허무함 같은 것이었을게다. 말하자면 그것은 시간도, 기억도 아닌 매일 달라지는 요일과 날짜, 12, 60, 24 같은 숫자의 반복일 뿐이었다. 그즈음 나의 시공간은 혼외정사의 관계처럼 다소 열정적이었으나 자주 서로를 외면해야했다. 그리고 실은 지금도 그렇다.

 

모디아노의 '잃어버린 거리'는 분명 열독한 적이 있음에도 그런 시공간의 관계 속에 편입되어 제목만 허공에 떠다니는 작품 중 하나였다. 제목만 낙인처럼 찍힌, 어떤 문자도 기록되어 있지 않은 책들이 내 안에는 무수히 많다. 짐짓, 나는 너무 오래 떠나있었던 건 아닌가, 자문하면서 무작위로 그것들을 선택해 약간의 기록을 남긴다.

 

"장 데커는 오래 전의 나이고, 엠브로즈 가이즈는 아직 내가 되지 못한 나이다. 그러므로 나는 아직 누구도 아니다. 공간이 사라진 곳에서의 시간, 시간이 정지된 때의 공간처럼. '잃어버린 거리'를 찾는 일이 소멸된 시간으로의 여행이자, 한 때 '나'였던 누군가와의 재회라면 어서 문을 열고 나서야 하겠지만 나는 책장을 덮고 잠시 창문을 열어둔 채 서 있었을 뿐이다. 도시의 미로들 속으로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a*******7 2008.04.0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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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거리]공간을 떠도는 기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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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작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에 이어 파트릭 모디아노의 1985년작 <잃어버린 거리>를 읽다.   <어두운~>처럼 이 작품도 주인공이 과거의 자신이 있던 거리를 찾아가 그 공간의 기억을 복원하는 구성이다. <어두운~>의 주인공은 기억을 상실한 사설 탐정(흥신소 직원)이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은 대중적 탐정소설의 저자이다. 과거의 기억을 추적하는 내용과 관계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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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작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에 이어 파트릭 모디아노의 1985년작 <잃어버린 거리>를 읽다.

 

<어두운~>처럼 이 작품도 주인공이 과거의 자신이 있던 거리를 찾아가 그 공간의 기억을 복원하는 구성이다. <어두운~>의 주인공은 기억을 상실한 사설 탐정(흥신소 직원)이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은 대중적 탐정소설의 저자이다. 과거의 기억을 추적하는 내용과 관계있는 설정이다.

 

하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은 사고로 인한 기억상실에 걸린 것이 아니다. 자신의 기억을 잃지 않았건만 그는 수없이 많은 거리를 걸으며 자신이 파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조금씩 재구성한다. 현재 앰브로즈 가이즈라는 영국 국적의 40대 작가이지만, 20년 만에 파리에 돌아오면서 다시 스무 살의 청년 장 데커가 되었기 때문이다. 파리는 그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고 아련하다. 그 사이 떠오르는 옛친구, 거리, 향수냄새, 음악들.

 

이제부터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이제부터는 나도 이 도시에서 이방인이다. 그 곳과 나를 이어주는 것은 이제 아무 것도 없었다. 나의 삶은 이제 이 거리에도, 건물의 벽에도 새겨져 있지 않았다.  - 본문 42쪽

 

그러나, 그 결정적 사건의 전모를 밝힐 사람을 만날 즈음, 소설은 불친절하게도 끝나버린다.

 

그녀는 그보다도 훨씬 더 먼 곳에서 돌아오고 있다. 카르멘, 로크루아, 라바렌느생틸레르, 파리. 그 모든 경사진 길,,,,, 나는 그녀를 슬쩍 훔쳐본다. 이마에 커다란 상처 자국이 보인다. 어쩌면 시간의 흔적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삶에 대한 기억을 모두 상실하게 만든 저 우발적 사고 중 하나가 남겨놓은 픈적인지도 모른다. 나 역시 오늘부터는 아무것도 기억하고 싶지 않다. - 본문 177쪽, 소설 끝 부분.

 

결국 주인공은 파리에 도착하던 기억을 잃은 이방인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가 버린다. 아무 결론도 없이. 왜 이럴까? <잃어버린~>역시 그런 결말이었는데.

 

결말에 드러난 작가의 의도를 생각하다보니, 소설 중, 죽은 줄 알았던 조르주 마이요가 같은 시간대에 같은 밤거리를 반복해서 흰색 우비를 입고 흰색 란치아를 몰고 달리는 모습이 떠오른다. 내가 보기에 그는 유령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를 뒤쫓는 텡텡도, 주인공도 유령같은 존재로 보인다. 우리의 몸은 "인생의 어느 시점에 이르면 사람은 그 자리를 떠나 새 사람이 되어야 하는 법(p173) "이라는 말처럼 시간이 흘러 새 사람이 되어 그 공간을 떠나더라도, 우리의 기억은 마치 유령처럼 그 공간을 못잊어 떠돌기 때문에.

 

***파트릭 모디아노, 르 클레지오 등 처음 책세상에서 소개했던 좋은 현대 프랑스 작가들이 지금은 거의 문학동네로 판권이 넘어갔다. 아쉽다.

m******n 2009.12.02. 신고 공감 0 댓글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