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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레이스키를 기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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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없는 나라이기때문에 부당하게 겪는 일이야 부지기수일 것. 세월이 흐르면 국가가 나서서 최소한의 보상과 위로는 당연히 이뤄져야 하지만 고려인이라 불리는 까레이스키는 관심을 끌기조차 어려웠다. 여전히 잊혀진 존재로 남았다. 몇번 방송을 통해 그들의 어려움에 대한 프로를 잠깐씩 본적이 있기는 하지만 곧 기억속에서 사라지기 일쑤. 그때마다 미안할 뿐이다. 자국에서도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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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없는 나라이기때문에 부당하게 겪는 일이야 부지기수일 것.

세월이 흐르면 국가가 나서서 최소한의 보상과 위로는 당연히 이뤄져야 하지만 고려인이라 불리는 까레이스키는 관심을 끌기조차 어려웠다. 여전히 잊혀진 존재로 남았다. 몇번 방송을 통해 그들의 어려움에 대한 프로를 잠깐씩 본적이 있기는 하지만 곧 기억속에서 사라지기 일쑤.

그때마다 미안할 뿐이다. 자국에서도 기억해주지 않는다면 얼마나 슬프고 허망할까.

 

1924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의 신한촌에서 카레이스키로 태어난 어린 소녀 동화가 화자가 되어 가슴아픈 우리의 역사이자 까레이스키의 비극적이고 한스런 삶을 성장소설적 기법으로 이야기한다.

 

내무인민위원에서 나온 사람은 까레이스키 전체에 이주 명령이 내려졌다고 사흘 후 블라디보스토크 역 광장으로 모이라 한다. 이에 앞서 동화 아버지를 비롯한 지식인들이 끌려갔지만 생사조차 알 길이 없다.

그렇게 급작스럽게 시베리아 횡당 열차를 탄 17만여 명의 까레이스키들은 추위와 배고픔은 물론 생리적 욕구도 해결되지 않는 가축 운반용 차량에 실려 가다 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다.

만삭이었던 동화의 엄마도 뱃속의 아이도 그렇게 목숨을 잃지만 변변히 시체를 갈무리하지도 못하고 눈밭에 덮는 정도로만 처리하고 다시 기차에 오를 수 밖에 없었다. 오빠는 이대로 가면 모두 얼어죽을 것을 염려해 반항을 하고 그 과정에서 친구를 비롯한 여러 사람이 죽자 죄책감에 정신마저 온전치 못하게 되었다가 결국은 죽음을 맞는다.

연해주를 떠난 40여 일만에 도착한 곳은 허허벌판의 눈 세상이자 황무지 우슈토베.

당장 짐을 부릴 곳조차 없는 얼음 구덩이와 다름 없는 이곳에 버려둔 것은 죽으라는 것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까레이스키인들의 성실함과 부지런함으로 농사를 짓고 살아간다. 연해주를 출발할 당시 공민증을 빼앗긴 이들은 허가장이 없으면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감시 당하는 적성이민족으로 분류되어있었다.

이는 곧 죄인들과 같다는 말과 다름없다.

그런 가운데 소비에트 공화국 연방은 공동으로 농사를 지어 공동으로 경작하는 꼴호즈(집단 농장)로 바뀌어 수확을 늘리고자 한다. 동화는 아버지의 소식을 알고자 노력영웅이 되려고 일벌레가 되기를 자처한다.

1953년 스탈린 사망 소식이 전해진다. 그후 3년이 흐른 어느 날 공민증을 돌려주지만 이는 유형 기간이 8년이나 지난 56년에서야 되돌려 받게 된 것. 이주당한지 20년이나 흘렀으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그렇다고해서 적성이민족으로 분류된 것이 풀린 것도 아니다. 그즈음 아버지가 강제 이주 전에 즉결 처형을 받

았다는 통지를 받게 된다.

동화는 자식들이 까레이스키의 아픔을 겪지 않게 하고자 한다. 그 한가지로 조선어 사용을 금지시키려고 책을 모두 회수 했을 때 몇권 남겨둔 조선어 교본을 꺼낸다. 모국어를 가르쳐 아버지의 뜻을 잇고자 함은 물론 레닌 훈장을 받으려 열심히 일한다.

 

조국이 해방되었는지조차 모르고 감옥과 같은 생활을 해 온 까레이스키.

소련이 무너지고 위성 국가들이 하나둘 독립을 하자 까레이스키들이 발붙일 곳이 없어져 방랑하는 유랑 민족으로 전락해버렸다. 그 안타까움을 어찌하리....

소련의 잘못된 정책으로 60년 가까이 억울한 삶을 살아온 까레이스키들의 보상은 어떤 금전적인 것으로 갈음되지 않는다.

조국조차 관심 밖에 있었으니 우리가 같은 조국의 국민이라고 과연 말 할 수 있을런지....

 

작가의 작품 중 <에네껜 아이들>도 같은 맥락에서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이 꼭 읽어야 할 필독으로 선정되면 좋겠다.

e*****0 2012.10.15.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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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없이 읽을 수 없는 까레이스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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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실 우리의 근대사를 다룬 역사소설을 부러 찾아 읽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주 오래전 역사를 다룬 책들과는 다르게 읽어 내려가기 힘들 정도로 가슴이 아픈 이야기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 책 또한 일본의 지배를 받던 때에 국경을 넘어 러시아 곳곳에 자리잡은 우리 한민족인 까레이스키의 고난과 역경과 끝없을 방랑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 내내 그들과 같은 분하고 억울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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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실 우리의 근대사를 다룬 역사소설을 부러 찾아 읽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주 오래전 역사를 다룬 책들과는 다르게 읽어 내려가기 힘들 정도로 가슴이 아픈 이야기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 책 또한 일본의 지배를 받던 때에 국경을 넘어 러시아 곳곳에 자리잡은 우리 한민족인 까레이스키의 고난과 역경과 끝없을 방랑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 내내 그들과 같은 분하고 억울함에 치를 떨고 고통스러운 날들에 대해 눈물을 흘리며 읽게 되는 책이다.

 

1924년 소련 신한촌에서 까레이스키로 태어난 동화가 화자가 되어 자신의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통해 까레이스키의 험난한 역사를 피를 토하듯 이야기하고 있다. 일본은 러시아에 패해 물러갔지만 일본의 앞잡이로 오해받은 까레이스키는 1937년 강제 이주 명령을 받게되고 정착지였던 신한촌의 모든것을 놓아둔 채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오르게 된다.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받으며 나무를 덧대어 틈새로 들어오는 시베리아의 차가운 바람을 막아내지 못하는 열차를 타고 목적지도 모른채 실려가는 까레이스키의 고통은 이제 막 시작이다.

 

화장실도 없이 오랜 시간을 주먹밥과 말린 음식으로만 버텨야 하는 그들은 점 점 추위와 병에 못이겨 하나둘 죽어가고 만삭이었던 엄마는 아이를 낳다 아이와 함께 죽음을 맞이한다. 그런데다 그들을 제대로 묻어주지도 못한채 언 땅위에 눈으로 덮고 떠나야 하는 동화의 심장이 갈기갈기 찢기는 것만큼 책을 읽는 나 또한 그 비참함에 두주먹이 불끈 쥐어질 정도다. 분노를 참지 못해 이대로 더이상 갈 수 없다고 사람들을 하나둘 불러 모으다 친구와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 넣고 만 오빠의 고통을 보는 일도 힘에 겨운데 40여일만의 고난 끝에 자신들을 내려놓은 곳은 눈으로 덮여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

 

하지만 역시 고려인의 피가 흐르는 그들에게 포기란 있을수 없는일, 눈을 치우고 갈대를 엮어 머물수 있는 지하동굴을 만들어 겨울을 나는가 하면 눈이 녹아 봄이 되자 꽁꽁 숨겨둔 씨앗을 뿌려 벼농사를 짓기에 이른다. 소금이 많은 땅이지만 벼농사를 짓던 까레이스키에게 그런것은 아무런 장애가 될 수 없다. 우슈토배에 정착해 가면서 오빠와 할아버지 마저 잃고 말았지만 기차에서 인연이 된 독립운동을 했던 태석이 오빠와 엄마처럼 자신을 돌아보주던 함흥댁 아주머니와 같은 분들을 의지해가며 서로 힘을 모아 척박한 땅을 개척해 나가고 행방을 모르는 아버지를 찾는 일을 포기 하지 못하는 동화를 보며 의지의 한국인이라는 단어가 괜히 생긴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사실 먼 타국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까레이스키와 같은 우리 민족의 이야기들은 우리가 들어주고 보듬어 주어야할 이야기들이지만 이런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그들을 책임져주지 못하는 현실에 분개하게 되고 지금 이렇게 편안하게 살고 있는 내가 한없이 부끄러워지면서 맘조차 편지 않게 책을 읽게 된다. 아직도 그들이 그 어디에서도 인정받지 못한채 방랑자의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이지 도저히 납득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의 독립운동으로 인해 우리가 이만큼 살아갈 수 있음을 인식하게 될때 그들과 아픔을 나누고 공유함으로써 그들이 우리와 같은 한민족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k*******7 2012.10.07. 신고 공감 2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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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레이스키, 끝없는 방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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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937년 가을, 까레이스키들이 강제 이주를 당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한숨과 눈물이 끊임없이 흐른다. 우리 민족이 일제강점기에 당한 기막히고 억울한 일들이 한 두가지도 아니지만, 멀쩡히 잘 살고 있는 곳에서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에서 빈손으로 살아가야 했던 이들을 이야기를 믿을 수가 없을 정도다. 말이 좋아서 강제이주이지 살아있는 사람들을 그냥 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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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937년 가을, 까레이스키들이 강제 이주를 당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한숨과 눈물이 끊임없이 흐른다.

우리 민족이 일제강점기에 당한 기막히고 억울한 일들이 한 두가지도 아니지만, 멀쩡히 잘 살고 있는 곳에서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에서 빈손으로 살아가야 했던 이들을 이야기를 믿을 수가 없을 정도다.

말이 좋아서 강제이주이지 살아있는 사람들을 그냥 갖다버린거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소련은 이 정책이 잘못되었다고 인정한 것이 49년이나 지나서였고, 그 후에도 소련연방이 해체되고 나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에필로그에 적혀있다.

실화는 아니지만 실화로 느껴지는 것은 실제로 일어난 일들을 바탕으로 적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주인공 안동화라는 아이가 열 다섯살에 겪었던 강제 이주와 그 이후의 세월들...

전쟁이란 것이 사람을 이토록 잔인하게 만든다는 것을 또 다시 느끼게 된다.

독일의 유태인 학살은 전세계적으로 알려지고 영화로도 많이 제작되어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우리국민이 겪었던 이 이야기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살아있는 사람을 얼어붙은 땅에 아무것도 없이 내버리는 일이 살인과 다를것이 없다고 생각된다.

우리 정부는 우리 국민을 위해서 어떤 일을 했는가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강제 이주가 결정된 후 아버지와 지식인으로 불리는 사람들이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산달을 한 달이나 남긴 소는 갑자기 송아지를 낳으려 하는데, 그런 소를 버려두고 가족들은 떠나야 했다.

동화의 어머니도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는데, 기차안에서 아이를 낳게 될 줄은 그때만 해도 가족들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카레이스키의 비극적 운명이 안동화라는 소녀의 이야기로 대변한다고 해도 맞을 것 같다.

어머니는 임신한 몸으로 기차를 타고 가다 아이를 낳다가 아기도 죽고 어머니도 죽고 만다.

그리고 오빠는 어머니를 묻은 곳에서 떠나지 않겠다고 버티다가 죽음의 위기에 처한다.

그 일로 동화 오빠의 친구가 죽게 되고 친구의 어머니는 동화오빠 때문에 자식이 죽었다며 동화오빠를 원망하며 정신을 놓는다.

아버지의 실종과 어머니의 죽음,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체 짐짝 취급을 당하며 기차에서 생활하다 40여일 만에 우슈토베라는 허허벌판의 눈세상에 도착한다.

집은 고사하고 아무것도 없는 이곳에서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라고 하는 것인지.... 그렇지만 카레이스키들은 그곳에서 살아남았다.

가지고간 씨앗으로 농사까지 지었으니 인간의 위대함과 끈질긴 생명력을 느끼게 된다.

동화의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카레이스키의 운명과도 같은것인지 모르겠다.

그들이 방랑이 아직도 끝나고 있지 않은 지금, 조국은 그들에게 손을 잡아줘야 할 것이다.

 

우리민족의 아픈 역사가 이 책속에 고스란히 들어있는 것 같다.

우리 아이는 이 책이 너무 어두워서 읽기 싫다고도 한다.  마음 편하게 읽기도 어려운 이런 일을 당해내야 했던 17만여 명의 우리 민족, 그리고 그 후손이 55만여 명이 살아가고 있다.

우리나라의 국격이 올라가고 잘 사는 나라라고 자부하고 있는 지금, 타국에서 힘들게 살아온 우리국민을 살펴보는 것이 진정한 나라의 힘이라는 생각이 든다.

 

n*****1 2012.10.18. 신고 공감 1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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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레이스키- 잊어서는 안 될 아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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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도 모른 채 살던 곳에서 강제 이주를 당해야 했던 사람들이 있다. 가족처럼 키우던 어미 소가 송아지를 낳는 것도 보지 못하고, 갑작스레 끌려간 아버지의 생사 여부도 모른 채 40여일 동안 기차 안에 갇혀 혹한과 굶주림에 사투를 벌여야 했던 사람들이 있다. 출산을 한달 앞둔 어미는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판자 틈 사이로 들어오는 시베리아의 칼바람을 맞으며 아기를 낳지만 핏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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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도 모른 채 살던 곳에서 강제 이주를 당해야 했던 사람들이 있다. 가족처럼 키우던 어미 소가 송아지를 낳는 것도 보지 못하고, 갑작스레 끌려간 아버지의 생사 여부도 모른 채 40여일 동안 기차 안에 갇혀 혹한과 굶주림에 사투를 벌여야 했던 사람들이 있다.

출산을 한달 앞둔 어미는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판자 틈 사이로 들어오는 시베리아의 칼바람을 맞으며 아기를 낳지만 핏덩이는 젖 한 번 물어보지도 못하고 죽는다. 하혈을 하던 어미는 어린 딸 '동화'와 아들 '동식이', 늙은 시아버지를 남겨둔 채 끝내 숨을 거두고.

이런 곳에 어떻게 엄마를 두고 갈 수가 있어?...

쓰레기 버리듯 엄마의 시체를 이르쿠츠크 눈 속에 던지고 돌아오며 '동식이'는 참을 수 없는 분노로 가슴이 터질 것 같다. 엄마의 마지막 말처럼 '동화'를 지켜야 하는데...아버지를 기다려야 하는데....자꾸 자신이 없어진다.

까레이스키들이 모여사는 신한촌으로 내무인민위원들이 들이닥친 건 불과 사흘 전.
러시아와 일본인들의 싸움때문에 엄청난 한인들이 죽어나간 '4월 참변'과 '해란강 학살'에서 겨우 목숨을 부지했건만 당장 살던 곳을 버리고 기차에 오르라고 협박을 한다.
살벌한 분위기에 저항도 못하고 블라디보스톡에서 기차를 탄 까레이스키들을 기다리고 있는 운명이 그토록 가혹할지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9월 말에 출발한 기차는 10월 중순으로 접어들면서 6개월이 넘는 시베리아의 매서운 겨울을 톡톡히 맛보인다. 창문도 없고 화장실도 없이 가축을 실어나르는 기차에 사람들을 꾸역꾸역 밀어넣고 밖에서 문을 잠그면 지독한 추위와 배고픔에 지친 사람들은 잠결에 하나둘 죽어 나간다.
 
하지만 추위와 배고픔 보다도 사랑하는 가족들을 잃고도 제대로 슬퍼할 수조차 없는 사람들은 절망에 빠져 소리내어 울 수조차 없다. 함흥댁 아줌마는 죽은 아기를 업은 채 내무인민위원들에게 반항한다는 이유로 총살당한 아들 '명철'의 이름을 부르고 '동식이'는 자신때문에 친구가 죽었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한다.

도대체 언제쯤 기차가 멈출까?
이 기차 안에서 살아남을 사람이 있기나 한 걸까?

모진 것이 목숨이라 근근히 숨만 붙은 사람들은 '우슈토베'라는 낯선 땅에 버려진다. 멀리 천진산맥 줄기가 보이지만 사방을 둘러보아도 온통 눈 쌓인 허허벌판 뿐이다.
 
살아야 한다는 본능으로 토굴을 파고 눈을 녹여 물을 만들지만 소금기 섞인 물을 마시고 동화의 할아버지는 설사가 멈추지 않고 정신이 나간 함흥댁 아줌마를 쫓아나갔던 동식이는 늑대에게 물려 생사를 헤맨다. 어리광을 피우던 열 네살의 동화는 눈도 못 감고 죽은 오빠와 할아버지를 눈 속에 묻으며 피눈물을 쏟아낸다.

엄마, 난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해요....

 

왜 '까레이스키'들은 자신들이 살던 곳을 떠나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를 당해야만 했을까?

레닌에게 혁명동지로 훈장까지 받아야 했던 '홍범도' 장군의 쓸쓸했던 마지막을 지켜보며 죄스럽고 송구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다. 연해주에 있던 까레이스키들의 대부분은 독립군들의 후손으로 제대로 못 먹어도 독립자금을 내는 것을 무엇보다 자랑스러워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일본군의 앞잡이가 되어 밀정 노릇을 하던 친일파들은 자신의 민족을 팔아넘기는 대가로 호의호식을 했다.

'레닌'의 뒤를 이은 '스탈린'은 '까레이스키'를 '적성이민족'으로 분류하여 시베리아 벌판으로 추방시켰다. 일본인들의 밀정 노릇을 한다는 게 이유였다. 강제 이주 전에 지식인들부터 처형할만큼 주도면밀하게 진행된 계획은 이주 후에도 그들의 허락없이는 제한 구역을 벗어날 수 없도록 까레이스키들의 숨통을 조였다. 나라 잃은 힘없는 백성들은 이유도 모른 채 일본에게 당했던 것처럼 한때 혁명 동지였던 소련에게도 철저하게 유린당해야 했다.

소련 연방이 해체되고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키즈스탄 등의 위성 국가들이 독립하게 되면서 타 민족들의 배척이 심해지자 까레이스키들은 어디로 가야할 지 막막하기만 하다. 까레이스키처럼 강제 이주를 당했던 독일인, 유대인, 그리스 인들은 정착지원금까지 받으며 자신들의 모국으로 돌아갔지만 남과 북으로 나뉜 모국 어디에도 돌아갈 수 없는 처지를 어찌하면 좋으랴.

 


 
 
피눈물로 이룬 땅을 버리고 다시 연해주로 돌아왔지만 수도와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아파도 병원조차 갈 수 없는 신세라니... 이 곳에서도 저 곳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떠돌이가 되어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들을 누가 기억이나 할까? 죽어서도 고향 땅에 돌아가지 못한 수많은 까레이스키들의 끝없는 방랑은 언제쯤 끝이 날까?

세계화도 좋고 다문화 가정에 대한 관심도 좋지만 뿔뿔히 흩어져 있는 우리 민족들의 한 많은 삶을 절대 모른 척 해서는 안될 것이다. 너무 쉽게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념과 사상을 떠나 인도적 차원에서라도 까레이스키들이 고향으로 돌아와 지친 몸과 마음을 누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애썼던 분들의 자손은 홀대를 받고 친일파의 자손들은 떵떵거리며 사는 현실을 계탄하며 절대 잊어서는 안될 역사를 감동적인 이야기로 만들어 준 문영숙 작가에게 감사드린다.
1*******n 2012.09.3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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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레이스키, 그들은 누구이며 우리에게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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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레이스키, 그들은 과연 누구일까? <까레이스키, 끝없는 방랑>을 통해 막연하게만 알고 있던 까레이스키의 강제 이주와 그 과정에서 겪었던 가슴 아픈 이야기들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일제에 의한 강제 병탄이라는 비극의 역사와 소련 공산당의 소수 민족에 대한 횡포, 그리고 우리의 무관심 속에서 오랜 시간 동안 잊힌 존재로 살아야 했던 까레이스키들의 가슴 아픈 역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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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레이스키, 그들은 과연 누구일까? <까레이스키, 끝없는 방랑>을 통해 막연하게만 알고 있던 까레이스키의 강제 이주와 그 과정에서 겪었던 가슴 아픈 이야기들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일제에 의한 강제 병탄이라는 비극의 역사와 소련 공산당의 소수 민족에 대한 횡포, 그리고 우리의 무관심 속에서 오랜 시간 동안 잊힌 존재로 살아야 했던 까레이스키들의 가슴 아픈 역사를 읽으며 우리 현대사를 다시금 떠올려보았다. 지난 시절 일본과 소련으로부터 오랜 시간 고통을 겪었고, 현재는 남북으로 나뉜 조국으로부터도 잊힌 채 살아온 그들의 이야기가 이 소설 속에 생생히 담겨 있다.

1937년 가을 연해주 신한촌에 살던 동화네 가족은 추수를 앞둔 벼와 진통을 시작한 소는 물론이고 얼마 전 끌려간 아버지의 생사도 모른 채 가축 운반용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강제로 태워진다. 열차의 벽과 바닥으로부터 들어오는 칼바람을 맞으며 배고픔을 견디다 갓 태어난 아이와 엄마는 끝내 죽음을 맞고 동화에게는 할아버지와 오빠만 남게 된다. 열차를 탄 지 40여 일 만에 카자흐스탄 우슈토베에 내린 동화네 일행은 온통 눈과 얼음뿐인 그곳에서 땅을 파 움막을 짓고 늑대와 싸우며 겨울을 나는 과정에서 또 많은 이들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 오빠와 할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난 뒤 홀로 남은 동화는 열차에서 만나 자신의 의지가 되어준 태석 오빠와 혼례를 올리고, 불모지인 우슈토베를 개간하고 노력영웅이 되지만 끝내 기다리던 아버지는 사망통지서로 돌아온다. 그 후 소련의 해체와 함께 독립한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민족주의를 내세우자 까레이스키들은 다시 힘든 상황에 처하고, 50년이 지나 연해주로 돌아왔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여전한 고난이었다.

책을 읽으며 내가 너무나 까레이스키에 대해 모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인터넷으로 몇몇 자료들을 확인해 보았다. 당시 총 36,422가구 171,781명이 1,800대의 화물열차에 태워져 9월 하순부터 12월까지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까지 6,000㎞의 거리를 3~4주에 걸쳐 이동했다. 그리고 이동하는 동안에 수많은 사람들, 특히 어린이와 노약자들이 병사하거나 사고로 죽기도 했고, 이주 전 끌려간 한인 지도자 2,500여 명은 모두 즉결 처형되었다. 그러한 속에서도 염분이 많은 중앙아시아의 황무지를 개간해 벼농사를 가능하게 하고, 최고의 생산성을 자랑해 수많은 노력영웅을 배출했으니 한민족의 부지런함과 억척스러움은 대단할 정도였다.

소설은 죽음의 유형을 떠나 50년이 지난 뒤에야 명예를 회복할 수 있었던 17만 명이 넘는 까레이스키들의 눈물겨운 삶을 충실히 담고 있다. 책을 읽으며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었지만 잊고 살았던 우리 민족의 가슴 아픈 역사를 알 수 있게 되어 좋은 독서 경험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제 이주 80년이 되어가는 지금 이주 1세대들은 고령의 노인이 되었고, 2~3세대들은 한국어를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니 어쩌면 우리의 무관심 속에서 까레이스키라는 이름은 몇 세대 후에는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겠다. 과연 까레이스키는 우리에게 누구이고, 우리가 그들을 끌어안을 수 있는 길은 없는지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j***g 2013.12.2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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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은 그 자체로 근현대사 이해를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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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소설에 대한 매력을 잃었다.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소설 속으로 빠져 들었던 시기가 지나서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사회과학쪽 책(그렇다고 전문적인 책들은 아니고!)을 읽다 보니 허구로 펼쳐지는 이야기들이 의미없게 느껴졌던 게 사실이다. 그러면서 동화는 푹 빠져 드는 자신을 보며 도대체 이유가 뭔지 스스로 의아해하곤 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한창 감수성이 예
"이런 책은 그 자체로 근현대사 이해를 돕는다" 내용보기

  언젠가부터 소설에 대한 매력을 잃었다.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소설 속으로 빠져 들었던 시기가 지나서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사회과학쪽 책(그렇다고 전문적인 책들은 아니고!)을 읽다 보니 허구로 펼쳐지는 이야기들이 의미없게 느껴졌던 게 사실이다. 그러면서 동화는 푹 빠져 드는 자신을 보며 도대체 이유가 뭔지 스스로 의아해하곤 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할 시기에는 소설을 읽으며 삶을 간접체험했고 아이를 키우면서는 동화를 읽으며 내 아이를 이해하고자 노력했고 더 나아가 내 어린 시절을 만나기도 했다는 사실을. 그러니까 어떤 식으로든 허구적 요소를 꾸준히 만나고 있었던 셈이다. 이제야 소설을 읽는 이유 내지는 의미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깨닫는다. 난 그동안 내가 납득 가능한 범주의 이야기들에만 마음을 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내면에서는 비록 인지하지 못했더라도 소설의 힘을 체험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런 면에서 <압록강은 흐른다>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책이 독일에서 엄청난 인기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엄청 기대를 갖고 읽었으나 당시 우리의 상황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들려주고 있을 뿐 새로울 게 없다고 여겨졌다. 나는 과연 소설에서 무엇을 읽길 바랐던 것일까. 새로운 기법이나 시도에 대해서는 지식이 없기에 판단할 수 없을 테고, 그냥 획기적인 뭔가를 얻길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때 만주로 이주한 사람들의 애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문득 예전에 읽었던 단편소설(헌데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다. 기껏 땅을 농사지을 수 있게 만들어 놓았더니 빼앗는 이야기였는데)이 떠오르는 걸 보며 이런 게 바로 소설의 힘이구나 싶었다. 특히 시대적 상황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소설의 경우 또 다른 역사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리얼리즘이 이래서 필요한 것인가 보다. 그런 견지에서 보자면 <압록강은 흐른다>가 아주 소중한 소설이며 그 연장선상에서 이 책 또한 같은 의미가 있지 않나 싶다.

 

  러시아로 이주한 조선인(고려인)을 부르는 명칭인 까레이스키. 식민지 시절 만주와 연해주 등지로 이주했던 사람들이 지금까지 그곳에서 살고 있다. 아직 풍습이나 언어는 유지하고 있다고 해도 엄밀하게 따지면 다른 나라 사람이다. 그러나 그 사람들을 탓할 게 아니라 그들을 잊고 사는, 여기에 있는 사람들의 잘못이 더 크다고 본다.

 

  여하튼 동화가 살고 있던 마을의 조선인을 전부 이주시키는 정책에 의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갑자기 기차를 타고 가면서부터 그들의 방랑은 시작된다. 글로 간단하게 써서 그렇지 실제로 그들의 삶은 얼마나 고달팠을까. 단순히 소설이 아니라 진짜 있었던 일이라는 게 더 가슴 아프다. 게다가 아버지를 제외한 네 가족이 출발했는데 살아남은 건 동화 뿐이니 어린 마음에 얼마나 상처가 되었을까. 당시 모습을 그린 소설들을 보면 사람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실험하는 듯한 생각마저 든다. 그나마 동화는 기차에서 만난 태석 오빠 덕분에 의지할 곳이 있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푸른책들에서 나온(게다가 이 작가의 전작이기도 하다.) <에네껜 아이들>을 통해 멕시코로 이민간 사람들의 비참한 삶을 알게 되었고, <우토로의 희망 노래>를 통해 일본의 우토로라는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이제 까레이스키들의 삶도 알게 되었다. 작가가 말하듯이 해방 이후에 아직도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까지 만나기를 기대한다. 동화네가 러시아로 간 것은 과거의 일이지만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이야기니까.



l*****8 2012.11.0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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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레이스키, 그들의 슬픔을 기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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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레이스키. 전에는 이 말을 참 많이 들었고 다큐로도 많이 보았던 것 같은데 요즘엔 자주 듣지 못했던 말이다. 이들의 존재가 점점 잊혀져가는 걸까. 책을 읽는 내내,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반드시 우리가 알아야할 역사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고 이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펴낸 작가의 노력과 열정에도 함께 응원해주고 싶다. 일반적으로 전에 접했던 것처럼 다큐의 형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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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레이스키. 전에는 이 말을 참 많이 들었고 다큐로도 많이 보았던 것 같은데 요즘엔 자주

듣지 못했던 말이다. 이들의 존재가 점점 잊혀져가는 걸까.

책을 읽는 내내,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반드시 우리가 알아야할 역사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고 이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펴낸 작가의

노력과 열정에도 함께 응원해주고 싶다.

일반적으로 전에 접했던 것처럼 다큐의 형식이 아닌, 이야기이기때문에 전달해오는 방식이 달

라서 느껴지는 감도의 메시지가 달랐다.

하나의 사실로 끝나는 것이 아닌, 그들의 이야기가 너무도 고통스러웠고 그런 현실을 받아들이

기엔 그들이 어린 나이였기에 정말 그 상황을 어떻게 이겨냈을지 생각이 많이 되었다. 나와 같

이 그들에겐 가족이 있었고 인간이 겪지말아야할 아픔, 고통을 보았다. 그같은 상황에 누구라도

처해질 수 있는 것이었다.

유태인들이 아무 이유도 모른체 수용소로 끌려갔던 것처럼 이들은 강제적으로 시베리아 횡단열

차를 타 러시아로 보내지게 된다. 

까레이스키가 아직도 슬픈 것은, 유태인들은 그들의 아픈 역사를 밝히기 위해 세계적으로 많은

영화가 제작되고 책도 출간이 되었지만 같은 동시대에 그같은 고통을 겪은 까레이스키의 역사는

많이 알려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그들의 존재를 강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사회라는

것. 아직도 그들은 방랑 중이고 방랑이 끝나지않았다는 것. 이것이 가장 슬프게 만든다.

까레이스키들은 연해주 등에서 활동한 독립군의 후손들인데 왜 그들이 국적을 잃고 소외되어 끝

없이 방랑해야만 하는 것일까. 독립을 위해 싸워왔던 그들의 삶은 어떻게 보장을 받고 또 그들의

한을 과연 누가 해결해줄 수 있을까.

 

이 이야기의 중심 축을 이루는 동화네 가족은 강제 이주 정책에 따라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오른다.

횡단열차에서는 인간으로서 기본적으로 해야할 어떤 것도 준비되어 있지않았다. 대소변도 해결하지

못했고 사람들은 배고파서 죽고 추워서 죽고, 총살당해 죽었다. 자신의 가족이 바로 자신의 옆에서

죽어가는 현실에, 이들은 정신을 놓을 수 밖에 없었다.

동화네 가족은 이미 아빠는 어딘가로 끌려가서 소식도 몰랐는데 임신 중이었던 엄마는 기차에서 너무

도 추워 결국 해산 중에 엄마도 태아도 모두 죽게 된다. 묻지도 못한체 눈 속에 엄마를 버리고 가게 되

고 한 달이 넘어 겨우 우슈토베 지장에 도착하지만 그곳에서 할아버지와 오빠가 죽고 동화는 홀로 남

게 된다. 아빠의 소식을 알기위해 척박한 땅에서 열심히 노력해서 노력영웅으로 수상을 하여 아빠의

소식을 알아보지만...

이미 아빠는 끌려갔을 때 총살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한 가족이 이렇게 무참히 끝나버리게 된 것

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런 현실에도 살아갈 수 밖에 없었다.

 

작가는 서두에서 이렇게 말했다.

역사 속에서 고통스럽게 살았던 사람들을 기억하고 위로하는 일을 작가의 소명으로 생각한다고...

독자 또한 책을 통해 그들을 기억하고 위로하는 것이 소명일 것이다.

희망을 보여준 그들의 삶에 박수를 보내지만 이제는 그들의 아픔이 해소되기를 바래본다.

l*******s 2012.10.0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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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의 잘못된 이주정책의 결과, 까레이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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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레이스키는 일제강점기 시기 독립운동을 위해 연해주에 정착했던 대한민국 사람들이 소련과 일본의 연해주 쟁탈전에 희생양으로 몰려(일본의 밀정 역할을 한다는 소련의 터무니없는 주장) 강제로 중앙아시아로 이주 당했던 사람들을 말한다. 흔히 고려인이라고 불려왔다. 까레이스키들이 일본을 상대로 독립운동을 했다는 것이 오히려 소련의 이주정책의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는 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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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레이스키는 일제강점기 시기 독립운동을 위해 연해주에 정착했던 대한민국 사람들이 소련과 일본의 연해주 쟁탈전에 희생양으로 몰려(일본의 밀정 역할을 한다는 소련의 터무니없는 주장) 강제로 중앙아시아로 이주 당했던 사람들을 말한다. 흔히 고려인이라고 불려왔다.


까레이스키들이 일본을 상대로 독립운동을 했다는 것이 오히려 소련의 이주정책의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는 점이 까레이스키들에게는 불행이고 상처고 아픔이었다. 스탈린은 까레이스키들을 모두 일본의 스파이 취급해서 강제 이주한 땅에서도 적성이민족으로 분류하여 사람다운 대접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까레이스키들은 일본을 상대로 독립운동을 한 사실을 일부러 드러내지 않고 살아야 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몸 바쳐 싸우고 레닌의 표창까지 받은 홍범도 장군도 카자흐스탄의 조그만 극장에서 청소부를 하다 돌아갔다고 한다. 이 사실은 까레이스키들의 뼈아픈 현실을 말해 준다.


조선이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후 조선인은 자연스레 일본 국적인 된 게 문제의 발단이었다. 연해주에서 오래 산 사람들은 러시아 국적을 받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까레이스키들은 민족성이 강해 러시아 국적을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라가 없어지자 자연히 본인이 원하지 않아도 일본 국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즈키즈스탄 등 중앙아시아 여러 국가들이 소련으로부터 독립되자 까레이스키들은 현지인으로부터 배척당하게 된다. 국적 불명의 국제 미아가 되어 아직도 많은 차별을 받고 있다. 우리 대한민국은 이들을 향한 장기적인 정책을 세워 독립운동을 위해 희생당한 이들에게 최소한의 보상을 해 주어야 할 것이다. 지금은 그들의 2세, 3세가 살아가고 있다.


이 책은 까레이스키에 대한 실상을 적나라하게 밝혀 내고 있다. 청소년들이 꼭 한 번 읽어 보았으면 한다. 대한민국의 정체성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c*******9 2017.09.2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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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레이스키,끝없는 방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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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또 이런책을 만나고 말았다. 책표지만 봐서 가슴이 뭉클해지고 마는... 나는 지금껏 살면서 단한번도 "까레이스키"에 대해서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매우 부끄럽게다. 이것은 사실이었다. 책을 읽기전에 읽어본 작가의 글에서 작가는 "역사 속에서 고통스럽게 살았단 사람들을 기억해 주고 그들을 위로하는 것이 작가의 소명"이라고 말하며 작가의 소명을 다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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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또 이런책을 만나고 말았다.

책표지만 봐서 가슴이 뭉클해지고 마는...

나는 지금껏 살면서 단한번도 "까레이스키"에 대해서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매우 부끄럽게다. 이것은 사실이었다.

책을 읽기전에 읽어본 작가의 글에서 작가는 "역사 속에서 고통스럽게 살았단 사람들을 기억해 주고 그들을 위로하는 것이 작가의 소명"이라고 말하며 작가의 소명을 다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1937년 가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18만여 명의 우리 동포들이-까레이스키라 불리는...-강제이주 열차를 탔다.

 

그것은 그냥 열차가 아니었다. 가축을 실어나르는 화장실도 의자도 없는 그냥 이동수단이었을 뿐이었다.

동화의 엄마는 만삭인 몸으로 할아버지와 오빠와 함께 이주열차를 타게 된다.

이 열차는 나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고 나의  말라버린 눈물샘을 다시 샘솟게 하는 말도 안되는 열차다.

화장실이 없어 나무바닥 틈새로 볼일을 해결해야 함은 물론 식사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동화의 엄마는 출산예정일이 한달이 남아있었지만 조산끝에 죽게되고 시체를 차가운 소련땅 눈속에 버려진다.

동식이는 엄마의 시신을 두고갈 수 없어 사람들을 선동하여 인민위원들에게 맞서 싸우기를 주동하고 이런 과정에서 동식의 친구가 처형을 당하게 되면서 모두는 감당할 수 없는 연속적인 충격에 빠지게 된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허허벌판외에 아무것도 없는 우슈토베라는 곳이었다.

 

지금도 중앙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그들이 존재하고 있다.

어쩌면 나도 그들을 이방인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는지 모른다. 너무나도 부끄럽다.

너무나 힘겹게 살았지만 한편으로는 강한 생명력으로 역시 우리민족이라는 자긍심을 갖게 해주는 그들이다.

우리에게 잊혀진 존재로 남여기지에 그들은 여전히 지구 저쪽에서 존재하고 살아숨쉬고 있다.

어쩌면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내가 어떻게 그들을 도울수 있을까마는 그래도 작은 관심을 갖고 그들을 인전하고 올바로 그들을 알고 있는것만으로도 많은 것이 달라지기 시작할거라는 걸 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도움이 필요할지 모르는 그들의 손을 붙잡아주기를 간절히 희망해본다.

y*****6 2012.11.1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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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레이스키, 구소련 한인 강제 이주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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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레이스키, 끝없는 방랑 , 우리민족의 강제이주사,       까레이스키, 고려인 ,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배블 받던 시절에 국경을 넘어 러시아 여러곳에 정착한 우리민족을 일컫는 말,  우리민족도 잊고 있던 우리민족으로 그들은 아직도 저 먼 차가운 땅에서 대한민국 사람도 아닌 , 소련 사람도 아닌 이방인으로소 고통스런 삶을 현재도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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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레이스키, 끝없는 방랑 , 우리민족의 강제이주사,

 

 

 

까레이스키, 고려인 ,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배블 받던 시절에 국경을 넘어 러시아 여러곳에 정착한

우리민족을 일컫는 말,  우리민족도 잊고 있던 우리민족으로 그들은 아직도 저 먼 차가운 땅에서

대한민국 사람도 아닌 , 소련 사람도 아닌 이방인으로소 고통스런 삶을 현재도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까레이스키, 끝없는 방랑을 만나기 전 까지는 나도 몰랐던 사실, 그렇기에 다 함께 읽었으면 좋겠다 싶어진 책이다.

 

 

 


 

 

 

230년 동안 발해가 다스리던 우리나라 땅이 있었습니다.바로 연해주였지요.  

그 후 비어있던 땅에 우리민족은 계절 농사를 지으며 우리 땅인듯 지켜왔습니다,

하지만 그곳은 버려진 땅이었을 뿐 주인없는 땅은 아니었습니다.

 

1900년대 일제 침략이 시작되면서 망명가나 독립투사들이 가세하며 더욱 더 많은

우리민족이 많이 살게 된 땅, 1905년엔 한일 민족운동의 주요지역이 되었고  

1910년 한일강제병합이 이루어 진후엔 식민통치의 고통을 피해 

 고향을 등진 더 많은 사람들이 정착한 땅이었습니다.

 

1917년 그 땅에서도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났고 1922년엔 일본과 러시아간  마지막 혈투로  

일본이 물러나면서  련땅으로 정착을 하는 듯 했으나  1991년  소련연방이  

해체되면서  또 다시 국적이 바뀌어버린 땅이었습니다.

 

그렇게 굴곡이 많았던 땅에 살았던 우리민족, 까레이스키는  그렇게 매번 주인이 바뀔때마다

감내해야만 했던 고통이 너무나 컸었음을 이제서야 제대로 바라봅니다.

 

 

  

 

 

1925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신한촌에서 카레이 스키고 태어난 나가 1937년부터

1956년 까지  20년간 살아온 과정은 어떻게 이럴수가 있었을까 싶은 우리민족의 잔혹한 아픔사였습니다.

 

 그 시작은 1937년 가을,  3일 안에 이곳을 떠나라라는 붉은 명령서가 도착하면서로  18만명에

달하는  우리민족은  판자를 얼기설기 연결해 시베리아의 칼바람이 고스란히 들어오던

가축용 운반기차요 강제이주열차에서의 40여일이 고통의 서막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서 해방을 했고, 6.5 전쟁을 거치면서도 근대화 과정 후 1988년의 올림픽

2002년의 월드컵을 치루면서 기회의 땅으로 자리잡아간 대한민국 하지만 조국으로부터 

 잊혀진 사람들에겐 국적은 포기하지 않은 죄로 인해 평생을 아니 2세, 3세로 이어지는

후손들까지 여전히 유랑생활을 하는 까레이스키 일 뿐이었습니다.

 

누구를 향해 분노를 해야하나?. 조선을 침략했던 일본, 적성이민국으로 지정 강제이주를

 단행했던 소련 그러한 백성을 잊어버린 대한민국과 국민들 아직도 ,

여전히 진행중이라는  사실이 더욱더 가슴이 아팠습니다.

아무리 전쟁중이었다고 하나, 어떻게 사람을 이렇게 까지 잔인하게 대할수가 있었던걸까 ?

 

갑자기 아버지가 사라져 버린후 난 만삭의 엄마와 오빠 할아버지와 함께 강제이주열차에 올랐습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지만, 태어나 처음으로 열차를 탈수있다라는 설레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시작된 이주는 좌석이라고는 찾아볼 수없는 바람이 숭숭들어오는 마룻바닥

기차에, 밤낮으로 달리는 통에 싸온 음식조차 제대로 끓여먹을수가 없습니다.

급기야, 기차탑승을 거부한 사람들을 향해 총살이 이루어진후 공포감은 더해가고 추위와

배고품에 지친 사람들은 여기저기에서 죽어갑니다.

 


 

  

 

 

 

 

어디로 가는지, 왜 가야만 하는지도 모른 채 몸을 실은 기차는 시베리아의 거친 눈보라와

칼바람을 견디기엔 역부족이었으니 기차에 오르는 순간 그들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어머니니는 기차 구석에서 막내를 낳다 아기와 함께 저 세상으로 행했으며 40일만에

도착한 새로운 딸은 기차에서 지친 그들을 받아들일만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살아남았고 지금도 살아있으며 소련도 대한민국도 변했지만 그들만

여전히 변하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남겨진 자들이 잊고있던 그들, 하지만  우리민족이기를 잊지 않았던 그들 언제쯤

아픔을 치유할 수 있을까. 전작에서 까레이스키들의 아픔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안급했던

작가는 이렇게 책에서나만 그들의 아픔을 공유하며 함께 나누고 있었의 많은 사람들이

읽고 그들을 기억하기를 바래봅니다.

 



 

 




d****0 2012.11.0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