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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치매환자 웬디 미첼이 아나 와튼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치매병력을 기록했던 <내가 알던 그 사람; http://blog.yes24.com/document/11364795>의 뒷이야기를 정리한 <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을 냈습니다. 원제목은 <What I wish people knew about dementia>입니다. ‘사람들이 치매에 대하여 알았으면 하는 것’이라는 소박한 생각을 담은 제목이라는 생각입니다.
제목을 들여다보니 ‘알다(know)’의 과거형 ‘알고 있다(knew)’를 사용한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치매라는 끔찍한 질환에 대하여 알고 있어야 제대로 대처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미로 보입니다. <내가 알던 그 사람>이 치매 환자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게 해준 것처럼 <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 역시 치매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한 것들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웬디는 2014년 7월 치매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2018년에 <내가 알던 그 사람>을 썼습니다. 그리고 <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을 2021년에 썼는데, 치매 진단을 받고 8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사회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치매 진단을 받으면 삶이 끝난 것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영국의 경우는 치매환자도 정상인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다양한 정책이 운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웬디는 치매진단을 받고서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하지만 치매에 대하여 알아가면서 생각했던 것만큼 크게 두려운 질병은 아니라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치매에 대하여 알게 된 것을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하여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내가 알던 그 사람>에서는 치매 진단을 받고서 겪은 일들을 정리했다고 하면, <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에서는 치매라는 질병을 이해하기 위하여 배운 내용들이 주를 이룹니다. 물론 치매환자의 입장에서의 생각을 더해놓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논문과 책의 내용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책의 얼개를 보면 편집자의 뜻이 많이 반영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책을 읽다보면 “이제 나는 예전처럼 편하게 대화하기 못한다. 특히 여러 사람과 함께하는 대화는 더 어렵다(130쪽)”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그런데 누리사랑방을 통하여 자신의 생각들을 독자들과 교감하고 있다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치매환자는 감각이 왜곡될 수도 있다는 것에서부터 새로 맞게 되는 관계, 의사소통이 중요하다는 것, 치매환자에게 필수적으로 조성되어야 할 환경, 치매환자가 느끼게 되는 감정과 유지해야 할 태도 등을 주제로 하여 책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치매로 진단된 환자들이 이 책을 읽어보면 투병의 방향을 정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재미있는 표현도 적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처럼 기억을 앗아가는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도 냄비의 물이 끓을 때 보글보글 올라오는 기포들처럼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면 깜짝 놀랄 때가 있다.(14쪽)”
하지만 말기 치매 환자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아직도 미지의 영역입니다. 웬디는 다양한 주제로 치매를 연구하는 학자들과 협업을 해왔다고 합니다. 가능할지는 여전히 알 수 없겠습니다만, 다음 책에서는 치매가 더 진행된 환자는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도와주면 좋을지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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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어버렸던 아내의 요양보호사 국가자격증
“환자들이 치매 진단에 대하여 느끼는 방식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이 전문가들의 태도라는 사실에 많은 치매 환자가 동의하고 있다.” (227쪽) 저자는 자신이 진단을 받은 뒤 6년이 흐른 지금도 전문가들의 말은 예나 지금이나 별로 바뀌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히려 치매 환자들은 의사나 간호사들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갖게 된 것 같다고 하면서 자기가 더 이상 검사도 받지 않는 이유라고 합니다. 병은 악화되었는데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말을 누가 듣고 싶겠는가 항변합니다.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그냥 우리의 말에 따르면서 마지막을 준비하세요.” 이 말을 들으려 병원을 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항변입니다.
저자는 주관적인 생각이라면서 전문가들이 우리에게 어떤 느낌을 받게 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준비를 할 수도 있고 망가질 수도 있다면서 치매 환자를 돌보는 전문가들에게는 올바른 태도를 갖추는 것이 아주 중요하며, 이는 그들의 언어를 통해 나타난다고 호소합니다. 그들이 언어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면, 적임자라고 할 수 없다고 단정합니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가 녹차가 마시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말을 할 수는 없지요. 이미 중증이기 때문입니다. 무언가 마시기를 갈망하는 눈망울을 알아챈 간병인이 커피를 내왔습니다. 할머니는 녹차를 원했지 커피는 싫습니다. 싫다고 표시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말을 못 하시잖아요. 할머니는 컵을 바닥에 던지는 유일한 표현 방법을 사용합니다. 그러자 간병인이 그럽니다. “아이, 할머니. 왜 그리 까다로워요? 커피잔을 던지는 폭력도 싫고요. 제가 말하는 것에 이렇게 도전적인 태도도 안 좋아요.” 할머니의 행동은 채워지지 않은 욕구의 표시일 뿐이지 폭력도 도전도 아닙니다.
이렇게 오해받는 치매 환자들은 어떻게 대처할까요? 한 치매 환자의 말을 전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해지고 싶고 그들에게 치매에 대한 통찰력이나 이해력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어 해요. 하지만 그렇게 한다는 것은 우리 자신의 감정을 부인하는 거예요.” (233~237쪽) 환자가 겪는 부조리입니다. 환자에게 가장 가깝고 소중한 사람도 모르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알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며 저자는 교육의 중요성을 이어서 설명합니다.
“자아에 대한 개념과 자아를 지키는 것의 중요성은 지금까지의 치매 연구에서 잘 설명되어 왔고, 일단 자전적 기억과 함께 자아감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쇠퇴 속도가 더 빨라지는 것 같다”라고 요약합니다. (240쪽) 한나 스코트는 2020년 보고서에서 여성 치매 환자의 태도를 고찰했습니다. 이 연구는 “긍정적인 자아개념을 유지하는 것이 저항이라는 전체 주제의 중심 내용이었다는데, 이 보고서는 또한 여성환자들이 가족에게서 받는 부정적인 태도 그리고 그 태도와 환자 자신의 태도와의 차이점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여성 환자들은 병의 악화가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니며 현재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반면에 가족들은 미래가 두려운 이유가 불확실성 때문이고 치매가 ‘얼마나 나빠질지’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영국이나 한국이나 비슷하겠지만, 저자는 영국 사회의 치매 낙인찍기를 줄이는 것을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이 책을 다 읽고 얻은 지식을 뽐내고자 이 글에서 정리한 내용을 아내에게 설명을 했습니다. 아내는 며칠 전 수개 월 동안 이웃 할머니를 돌본 후 지금은 쉬고 있습니다. 커피잔을 던지는 할머니 이야기며, 딸과 치매 어머니의 대화며, 치매 환자에게 친화적인 환경 등 책에서 얻은 사설을 열을 띄며 노래했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자기가 읽어야 하겠다며 책을 쓱 가져가더니 그동안 이웃 할머니의 케이스를 알려주었습니다. 치매 진단을 거부하는 할머니의 심정을 설명하고, 아내를 세 사람의 아이덴티티로 알고 계시다는 것도 알려주었습니다. 할머니가 거부하면 청소도 하지 않았고, 할머니가 정리하는 대로 마음에 들지 않아도 “잘하신다”라고 했으며, 할머니의 대화를 끊지 않고 몇 시간이고 들었다는 얘기에 저는 더 이상 국가자격증이 나이롱뽕을 하면서 딴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내의 국가자격증은 빛을 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큰코다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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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구입할 때만 해도 엄마의 행동이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지만, 보건소 문턱에도 가지 못했다. 도움이 많이 되었던 책이다.아니, 몇 년 전까지도 나는 확신했다. 그러나 본인이 완강히 거부하고, 가족들도 노화에 따른 건망증이라며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 좀 더 일찍 보건소에 가고, 케어했더라면 좀 더 낫지 않았을까? ㅠ 적어도 이 책을 읽어놓아서 나중에 엄마의 이상행동이 구체적으로 나타났은 때, 약간은 덜 당황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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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이어야 할 ‘태도’
저자가 글을 쓸 때, 키보드 위에서 움직이는 손가락을 보면서 손가락은 여전히 치매로부터 자유로워서 이 병의 지시를 받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고 안도하면서도, ‘안개 낀 날’ ‘아지랑이가 피는 날’로 부르는, 몸의 상태가 안 좋은 때에는 확실히 진단받기 전의 자신과 다르다는 것을 알아챕니다.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들 중에도 평생 똑같은 상태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 반문합니다. 이런 흉터들과 치매의 유일한 차이점이라면 흉터들은 눈에 더 잘 보이고, 보다 영구적이며, 완전히 회복될 수는 없어도 극복할 수도 있다는 점이라며 모든 것은 사물을 보는 방식에 달려 있다. 치매 같은 질병에 관해서도 태도가 싸움의 절반을 결정한다고 격려합니다.
대부분의 환자들에게 가장 두려운 전망은 통제력을 상실하게 된다는 점이라면서도 예전에는 ‘안개 낀 날’이 극적으로 나타나서 낯설고 충격적이었지만, 이제는 자주 나타나서 자기가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을 사전 경고로 받아들여서 일정을 비우거나 이불속으로 들어가 휴식을 취한다고 경험을 전합니다. 치매 증상이 나타나면 활동을 않을 수 있으니, 치매의 증상이 발현을 못하는 것이지요. 이를 치매의 자살골인 셈이라고 저자는 부릅니다. 저자의 친구들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합니다. 처음에 세상이 끝났다고 확신했던 진단이 생활 방식은 달라졌어도 여전히 똑같이 살아가는 길을 열어주었다고 전합니다.
치매를 바라보는 시선은 부정적입니다. 때문에 치매 진단을 거부하는 환자들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을 저자는 비판하지 않습니다. 자기는 태도가 슬픔에서 수용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안다며, 이런 변화 덕분에 오늘을 최대한 잘 살 수 있게 되었다고 말을 할 뿐입니다. 그러면서 “기억해야 할 중요한 점은 옳은 대처 전략은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역경에 대처하는 방식은 치매에 걸렸던 안 걸렸든 사람마다 다르다.”라고 인정합니다. (227쪽) |
| 둘러보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된 도서인데, 읽고 보니 무척 인상 깊은 내용이라서 놀랐습니다. 요즘같이 오래 사는 시대에 치매는 한번쯤은 생각해봐야 할 질병이라고 생각합니다. 환자 본인이 직접 쓴 글이라서 더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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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가족입니다. 답답한 마음에 먼저 미래를 상상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책을 구매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나서 읽을수가 없었기에, 저는 완독을 하지 못했습니다. 천천히 다시 들여다 볼 시간이 오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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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에 몰두하는 감정
“우리는 중증 치매 환자들과의 접촉을 통해 그들에게 말하기, 기억 등등의 문제가 있을 수 있음을 알고 있지만, 행복, 슬픔, 분노, 좌절, 만족 등 누구나 느끼는 모든 감정이 환자들에게서도 여전히 보여요.” (184쪽)
치매 진단을 받은 환자는 치매를 진단한 의사나 치매 연구자들이 자신들의 감정에는 관심이 없고 그들의 관심사는 오직 상황을 개선시키기 위해 그들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느냐는 것에만 열중한다고 느낍니다. 그들이 환자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난처해하는 이유가 대답해 줄 수 없기 때문인 것 같다고 환자는 생각합니다. 저자는 치매 환자의 감정이 끝까지 제대로 기능하지만,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을 뿐이며, 주의 깊게 관찰한다면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치매의 종류는 백 개도 넘는다고 합니다. 저자가 인터뷰한 사람들 중에 피크병 환자는 없었지만 그와 친구들은 모두 여전히 타인에 대해 높은 공감 수준을 보였다고 말합니다. “20년 전에 ‘암’이라는 단어가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준 것처럼, 치매에 대한 사회의 이미지 때문에 역시 똑같은 두려움을 영원히 남긴다.” (192쪽) 선입견을 갖게 된 이유입니다.
치매 환자의 뇌세포 중에서 나쁜 영향을 받은 부분은 일부분일 것입니다. 저자가 지금도 혼자서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 근거이지요. 저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진단을 받은 이들에게 포기나 묵살이 아닌 희망을 주고 싶다고 합니다. 환자는 죄책감을 느낍니다. 죄책감은 환자가 잃은 것이 아니라 치매라는 병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것입니다. 치매 환자를 판단력의 기준으로 보고 외면했던 부분입니다. 아니 어쩌면 판단력의 기준으로도 잘못 알고 있다는 의심도 들었습니다.
저자는 치매에 걸리기 전과 같은 방식으로 행복을 설명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머릿속이 차분해지는 날에 행복하다고 합니다. 지금은 어떻게든 부족함을 남기는 전체적인 상황이 아니라 아주 작은 순간에도 아름다움을 보는 법을 배웠다고 고백합니다. 행복이나 흥분은 여름에 정원에서 펄럭펄럭 날아다니는 나비와 같아서 도저히 잡을 수 없지만, 만족감은 손바닥 안에 쥐고 들여다보면서 볼 때마다 더 큰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고 설명합니다. 행복이 미래의 삶에 대한 조망까지 포함한다면 만족감은 ‘지금 이 순간’에 가지는 만족감이라고 이해했습니다. “아장아장 걷는 아기가 바닷가에서 작은 조개껍데기를 보면서 얼마나 즐거워하는지를 생각해 보라. 그 어떤 것도 아기의 주의를 딴 데로 돌리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버릇을 버린다. 대신에 다른 것들을 바라며 우리 앞에 놓인 현재를 망쳐버린다.”는 (210쪽) 저자의 말에 제가 제대로 알아들었다고 확신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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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친화적인 ‘환경’
저자는 세계보건기구가 실시한 전반적인 노화에 관한 연구를 인용하면서 치매 환자를 바르게 이해하면 모든 사람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노인들이 공식적, 비공식적인 사회생활에 참여하는 능력이 활동의 제공뿐만 아니라 교통과 시설에 대한 좋은 접근성, 활동에 대한 정보 획득에 달려있다고 연구결과를 인용하면서도 치매 환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치매가 무엇인지 이해하고 환자에게 포용적인 환경을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라고 강하게 주장한 것입니다.
병원과 쇼핑몰을 만들 때 설계 단계부터 치매 환자가 참여해 치매 환자가 혼란을 겪지 않도록 만드는 것부터 집을 개조하는 것 등 치매 환자에게 친화적인 환경을 만드는 노력을 소개하고, 정리정돈이 치매 환자에게 더 편안한 환경을 만드는 간단한 방법이라고 조언합니다. 환자가 집을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하여 잠금장치를 하는 것보다는 현관문 위에 커튼을 다는 것도 해결책이라고 정보를 제공합니다. 규모가 작은 요양원에서는 가족들이 방문객이라기보다는 구성원 대우를 받으며 식사 시간에 참여할 수 있다고 보고했고 이런 방침은 가족이 입소자를 더 자주 방문하도록 촉진시켰다는 2020년 리버풀대학교 보고서도 소개합니다. 거주지를 옮기려고 거주 시설을 알아보거나 치매 환자 또는 간병인을 위해 하루 휴식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징검다리가 될 수 있다며 단기 돌봄 서비스를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어머니가 계셨고, 장모님이 오랫동안 신세 졌던 요양병원의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휴일이 되어 병원을 방문하고, 휠체어를 태워 근처 식당에 가서 음식을 같이 나누던 즐거움은 간병인이 흘리듯 내뱉은 말에 주춤거렸습니다. “똥은 누가 치우는데…” “병원에서도 밥은 잘 드세요”(너무 많이 먹이지 마세요라는 말의 다른 버전입니다) 6인실의 병실, 식사시간을 지켜보면 간병인은 혼자 드실 수 없는 환자에게 몇 숟갈의 밥을 떠서 먹이고(밥이 얼마 남았든 무신경입니다), 뭔가 음식이 성에 차지 않아 거부하는 환자의 밥은 비우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도 시간이 지나면 치워버립니다. 환자를 돌보라는 사람이 환자를 돌보는 시늉만 하고 자기의 일거리를 줄이기에 골몰합니다. 그걸 뻔히 보고 어머니가, 장모님이 좋아하는 음식을 가져갔던 가족이 느끼는 황망함은 무력감으로 변합니다. 볼모로 잡힌 가족을 구출할 수 없는 무력감입니다. 저자는 여러 번 주장했다고 합니다. “나는 치매 환자가 될 수 있는 대로 오랫동안 자기 집에 머물면서 독립적으로 생활해야 한다.” (162쪽) 치매 환자라고 혼자서 생활할 수 없는 게 아니라는 놀라움은 저에게는 지적 충격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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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소중한 ‘의사소통’
“의사소통 수단 중에서 언어의 비율은 7퍼센트에 불과하다고 한다. 55퍼센트는 몸짓이고, 38퍼센트는 목소리 톤이다.” (99쪽)
치매 환자가 더 이상 대화를 주고받을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가 그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포기한다면 정말 슬프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답답한 마음은 간병인에게만 있는 게 아닌 것입니다. 환자도 답답하고, 자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간병인이 대화를 포기하는 태도에 슬픔을 느낀다는 말에 화들짝 놀라게 됩니다. 어머니의 말을 들어주기만 해도 되는 것을 말의 주어와 술어를 따지고 숨은 목적어를 찾아 미로를 헤매며 머뭇거리고 대화를 중단했던 제 모습이 어머니에게 슬픔을 주었다는 말이니까요. 저는 몰랐습니다.
저자는 치매 후기까지 진행된 환자들이 정말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더 이상을 말을 할 수 없을 때 정말 어떤 느낌인지 아무도 알지 못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가장 사랑하는 두 딸이 내가 아주 잘 아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려주고 나를 어루만지며 내 옆에 있어주리라 생각하고 싶다. 그러면 그들은 비록 나의 언어 능력은 사라져도 그로 인해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하는 바람을 적습니다.
저자가 책을 쓸 수 있었던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 있습니다. “어떤 이유 때문인지, 내 생각을 글로 적을 때는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서 생기는 좌절감이 없었다. 키보드에서는 어떤 표현을 찾느라 주저하는 일도 없었다.” (107쪽) 우리는 그렇게 키보드에서 자유롭게 춤추었던 손가락 때문에 그의 생각과 경험 그리고 조언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분야의 연구들 중에 아주 많은 부분이 기능하지 못하는 내 뇌에서 이 부분이 여전히 기능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는 연구는 거의 없다. 아무도 나에게 설명해주지 못한다. 아마 전문가들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에 처음부터 더 집중했다면, 우리의 삶은 진단 시점부터 훨씬 희망적일 것이다. 흔히 전문가들이 주로 보는 환자가 후기 환자들이기 때문에, 초기 환자를 이해하기는 어렵다고 느낀다. 많은 전문가가 이런 지식 부족 때문에 치매 환자에 대하여 그릇된 판단을 내리며, 이는 진단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110~111쪽) 아쉬움을 표합니다. “왜 그들은 우리가 할 수도 있는 일이 아닌 할 수 없는 일에 초점을 맞추는가?” (122쪽) 저는 어머니의 왜곡과 불능을 보았지 가능을 보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어머니를 진단한 의사의 말에 쉽게 동의를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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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도전하게 될 ‘관계’
“치매 진단이 환자 한 사람에게만 영향을 준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 치매는 환자의 뇌 속에서 존재하는지 모르지만, 그 진단은 환자 한 사람의 생활이 아니라 그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의 생활을 바꿀 것이다.”(63쪽)
주위를 둘러보시면 치매를 앓고 있는 분들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가깝게 알고 있던 사람들 중에서 치매로 고생하시거나 고생하셨던 분들에 대한 정보는 언제나 얻을 수 있을 지경입니다. 저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의 유산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갑자기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네 아버지가 생전에 그랬다. 며느리는 도둑이니 자기가 죽으면 절대 재산을 넘기면 안 된다.” 무슨 말이냐고 아버지가 왜 그런 말을 했겠느냐고 따지면서 물어도 어머니는 그 말을 번복하지 않았습니다. 아내가 아버지의 통장에 탐을 낸 적이 없는 것을 알기에 저는 분노했습니다. 다시 들으니 어머니의 말은 아버지의 돈을 아들인 내가 탐을 낸다는 말로도 들렸습니다. “알았습니다. 아버지 돈은 모두 어머니 통장으로 넣겠습니다.” 어머니와 헤어지면서 어머니의 욕심에 화를 냈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어머니는 그후 네 아버지가 저놈 아들도 믿으면 안 된다고 했다며 아버지의 말이라고 전했습니다. 그때는 어머니의 말을 조금 의심하며 들었습니다만 불쾌했습니다. 그후 세월이 흘러 어머니의 치매를 확인하고는 분노했던 나를 용서했고 어머니도 용서했습니다.
딸이 치매에 걸린 어머니와 실갱이 하는 모습을 많이 봅니다. “엄마. 몇 번을 말해야 하노. 그게 아이다. 아까도 말했잖아.” 안타까워 목소리의 톤은 높아지고 주변의 형제들의 동의를 구하는 애절한 눈길을 던집니다. 이렇게 치매는 가족의 생활을 바꿉니다. 실랑이는 계속 이어지고 가족들의 관계는 암울해지고 어두워지며 무거워지면서 행복은 과거의 것이 되어갑니다. 환자의 “뇌는 치매에 장악되었지만, 상대는 그저 스스로 조급함에 휘둘리고 있을 뿐”입니다. (83쪽) 치매 환자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어보면 서로 내용을 바로잡아주는 일이 거의 없다고 합니다. 대신 이야기를 그냥 받아들인다죠. 그들은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갑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바로잡으면, 당신이 재확인하는 동안 그는 말을 더듬고 머뭇거리게 될 것이고, 당연히 생각의 흐름이 흐트러지게 됩니다. (85쪽)
저자는 혼자 생활하는 것을 좋아하고 그렇게 딸들과 규칙을 정하고 살았습니다. 그렇지만 점점 외로워지고 있다며, 아직 말을 할 수 있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것이고, 존재한다는 것을 자신에게 입증하기 위해 사람과의 접촉을 필요로 한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간병을 하는 입장에서는 비록 간호사가 직업일지라도 환자를 직업적으로 돌보는 것과 환자가 된 가족을 돌보는 것은 아주 다르다고 합니다. 저자는 환자 대신에 일을 해주는 것은 상대를 무력하게 만드는 것이므로 도우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직접 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요청합니다. 환자와 간병인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게 한 내용입니다. 머리를 때리는 내용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