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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리뷰 이벤트를 위해 작성된 지극히 개인적인 리뷰이므로 구매하실 때 아무 영향도 끼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민음사 출판사에서 출간한 올가 토카르추크 작가님의 [다정한 서술자]에 대한 내용이며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문학은 정교하고 특별한 소통 수단이라는 점에서 특히 서술자가 소통하는 방식과 관점에 대한 생각을 해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특집에서 보고 구매하였는데 다양한 문학을 소개하는 특집을 자주 봤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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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책으로 탁월한 선택이었던 『다정한 서술자』. 이야기, 괴상함, 문학, 동물권, 통찰력, 번역가, 독서, 서술자, 기벽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올가 투카르추크의 강연록과 에세이가 실려 있다. 그녀가 만들어낸 신조어 혹은 키워드, 그녀가 소설을 집필하던 과정에서 생각한 것들, 익숙하지만 새롭고 낯선 관점에서 사고할 수 있는 소재들이 많아 재밌었다.
나는 우리 삶이 사건들의 총합일 뿐 아니라 각각의 사건들에 우리가 부여하는 다양한 의미들이 복잡하게 뒤얽힌 것이라고 믿는다. 이러한 의미들이 이야기와 개념, 아이디어 등을 엮어 멋진 직물을 직조해 내고, 이것이 공기나 흙, 불, 물 같은 자연 원소처럼 필수 불가결한 것으로 인정받으며 물리적으로 우리 존재를 결정하고, 형성한다. 그러므로 이야기는 우리가 세상을 다른 방식이 아닌 위와 같은 방식으로 바라보게 만들고, 그 무한한 다채로움과 복잡성을 이해하게 해 주고, 우리 경험을 잘 정리해 한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 그리고 하나의 존재로부터 또 다른 존재로 전달하는 다섯 번째 원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p. 35-36) 내게 문학이란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직조하는 끊임없는 과정이다. 상호 간의 영향과 연결이라는 통합적 관점으로 세상을 조망하는 에너지가 문학만큼 강렬한 장르는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가능한 한 폭넓게 이해된다는 점에서 문학은 본질적으로 '네트워크'와 유사하다. 네트워크 덕분에 하나의 존재를 구성하는 모든 개체 사이에 광범위한 교감과 연결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학은 정교하고 특별한 인간의 소통 수단이며, 그 수단은 명확하면서 동시에 총체적이다(p.40). 다정함은 우리를 서로 연결해 주는 유대의 끈을 인식하고 상대와의 유사성 및 동질성을 깨닫게 해 줍니다. 이 세상이 살아 움직이고 있고, 서로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더불어 협력하고 상호 의존하고 있음을 인식하게 합니다(p. 364). 나는 늘 이야기를 찾아다녔고, 좋아했다. 하지만 그 이유는 이야기들을 가까이하면 할수록 달라졌다. 이전엔 즉각적인 재미나 감동을 얻기 위해 이야기를 소비했다면 이젠 소외된 존재나 감정을 만나기 위해, 다른 세계를 경험하기 위해, 그리하여 무한히 상상하기 위해 이야기를 찾는다. 이야기는 세상에 필요한 상상력과 감정을 만들어내는 필수 불가결한 요소다. 서술자의 괴상하고 탈중심적인 상상력, 통찰력, 용기, 고통, 다정함과 어우러져 세상에 없던 것으로 세상에 꼭 필요한 힘을 가져다준다. 문학에 대한 믿음과 소망이 다정하게 드러난 올가 투카르츠크의 글을 읽으며 부지런히 읽고, 쓰는 서술자가 되고 싶어졌다.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자기 자신과 싸우며 세상에 필요한 힘을 만들어내고 있는 많은 서술자들에게 이 책은 강력하고도 다정한 백신이 되리라. |
| 이름이 너무 어려운 작가다 2018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폴란드 작가다 그녀의 소설은 아직 읽어보지 않았다 노벨상 수상 이후에 처음으로 나온 에세이 모음집이다 책을 읽다보니 제목을 참 제대로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소설들이 궁금해진다 문학은 정교하고 특별한 인간의 소통 수단이며 그 수단은 명확하면서 동시에 총체적이다 라는 문장이 인상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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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날개는 저자가 융, 그리고 불교철학에 큰 흥미를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글을 읽으면서 그녀의 사유가 불교철학과 연결되는 지점들을 다수 발견했던 것 같다. 여러 개의 주제를 다루는 <다정한 서술자>에서 저자는 세상이 왜 문학과 이야기를 필요로 하는지, 우리는 왜 인간중심의 사유에서 멀어져야 하는지, 통찰이란 무엇이고 서술자란 어떤 사람들인지..와 같은 주제들을 끝까지 놓지 않고 끌고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더불어 무인칭시점의 서술자, 기벽, 직해주의 등 올가 투카르추크가 사용하는 독특한 은유들 덕에 여태 생각해보지 못했던 주제나, 가져보지 못한 관점들에 대해서도 접근할 수 있었다. 플래그로 표시해둔 책의 후반부 발췌문을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p.217 서술자는 인간 경험의 다면성과 복잡성을 전달하지 못하는 우연투성이의 의례적인 구어체 언어에 대해 자신의 깊은 본성에서부터 반대합니다. 서술자는 복잡하고 다층적인 과정으로 이루어진 이야기를 통해 한 사람의 경험을 다른 사람의 경험으로 직접 전달하는 매개체입니다. p.256 통찰은 갑작스러우면서 예상치 못했던 무언가에 대한 인식의 변화로서 새로우면서 깊고도 완전한 이해로 이어집니다. 통찰로 인해 처음에는 어렵기만 하던 사안이 뜻밖에 아주 간단해지기도 합니다. 내게 통찰이란 시간의 딜레마가 존재하지 않는 완결된 전체를 인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p.259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내가 즐겨 사용하는 또 하나의 근본적인 개념이 있습니다. 바로 기벽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면서 취하게 되는 특별한 입장에 대한 이야기니까요. 즉 중심과 주류를 넘어서는 것, 대중적이고 조화로우며 다수에 의해 널리 통용되는 일반적인 현실 경험을 벗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 중심에서 멀어지려는 이 원심적 경향만이 기존의 사회적 지평 너머에서 존재하고 벌어지는 일들을 포착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p.322 직해주의는 신의 계시로 표현된 진리를 일차원적으로 받아들이고, 그 문맥적 특성을 파악하지 못하며, 스스로가 시간과 문화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기에 종교를 비하합니다. 직해주의는 미적 감각을 파괴함으로써 세상에 대한 사려 깊고 심층적인 관점이 생성되는 것을 방해합니다. 직해주의의 가장 큰 문제점은 편협성과 배타성입니다. p.347 이처럼 진실과 허구를 열렬히 나누는 경향 속에서 문학이 창조해낸, 우리의 경험에 대한 이야기들은 나름의 고유한 차원을 갖고 있습니다. 나는 픽션과 논픽션의 단순한 구분을 별로 지지하지 않습니다. 그저 선언적이며 임의적인 관점에서 이해할 뿐입니다. 허구와 관련된 무수히 많은 정의의 바다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버전은 사실 가장 오래된 것이기도 합니다만,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비롯되었습니다. "허구는 언제나 일종의 진실이다." p. 348 간단히 설명하자면 우리가 뭔가를 읽으면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 먼저 개념화 및 언어화되면서 기호와 상징으로 변형된 다음, 이것이 언어에서 경험으로 다시 바뀌면서 '해독' 과정을 거칩니다. 여기에는 특별한 지적능력이 요구됩니다. 무엇보다 주의력과 집중력이 요구되는데, 오늘날 극도로 산만하고 소란스러운 세상에서 이는 상당히 희귀한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p. 350 문학은 우리를 세상의 어떤 구체적인 사실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게 만들어주는 몇 안 되는 분야 중 하나입니다. 문학은 본질적으로 언제나 '심리학적'이기 때문입니다. 문학은 등장인물의 내적 논리와 동기에 초점을 맞추면서 다른 방식으로는 제삼자가 도저히 파악하기 힘든 고유한 경험들을 드러내 보이고, 독자를 자극해 등장인물들의 행동에 대한 심리학적 해석을 유도합니다. 오직 문학만이 우리로 하여금 다른 존재의 삶 속으로 깊숙이 파고 들어가서 그들의 당위성을 이해하고, 그들의 감정을 공유하고, 그들의 운명을 체감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다. 문학은 우리가 세상의 어떤 '구체적인' 사실에 가닿을 수 있게 해주는 통로, 혹은 세계를 제작해준다. 우리는 앞으로 더더욱 문학을 읽어야 할 것이다. 이는 '직해주의'라는 구렁에 빠져, 기존의 관점에 철저히 가둬진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일지도 모르겠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가 픽션(허구)라고 해서, 그 픽션이 전달하는 메세지, 철학, 사유의 농도마저도 허구일까. 문학은 공간을 상실한 자들에게 머물 공간을 제공한다. 문학은 금방 소진되어 타버리는 뜨거운 미디어가 아니다. 문학은 세상을 조명하기 위해 필요한, 새로운 은유들을 무한히 만들어낸다. 올가 토카르추크는 서술자들이 가지고 있는 저마다의 고유한 통찰력, 그리고 그 통찰력이 만들어낼 문장에서 독자가 획득할 또다른 통찰력을 기대하는 사람 같았다. 복잡하고, 다층적이고, 섬세하며, 종잡을 수 없는 성질의 무언가를 사랑하는 일은, 다양한 모양의 '폭력'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는 기회들을 제공한다. 생각하고 질문하며 상상하는 세계는 '팩트'가 아닌 '픽션'에서 시작된다. "허구는 언제나 일종의 진실이다." 나는 삶의 가장 소외된 부분, 그리고 수많은 언저리의 서사를 다루는 문학들이 앞으로도 무한히 생성되기를 소망한다. 이는 올가 토카르추크가 꿈꾸는 문학의 다음 페이지이기도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