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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 1쇄 발행 2013년 12월 1일
부제: 건축가 이일훈, 카메라로 세상을 읽다 도시산책자의 눈으로 본 나무와 공간과 동네와 세상
말로만 보호수일뿐 보호 개념 자체가 희박하다. 도로, 건물, 자동차, 사람 들에 시달리고 형식적 자비심으로 겨우 살아 있다.
<보호수라는 개념의 나무들이 있어서 보호가 잘 되고 있나 보다라고 막연히 생각했지 그 나무가 실상은 힘들거라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이 글을 읽기 전에는... >
No.3 권유할 만한 제한과 금지 금지의 시대로 불려도 좋을 개발독재 시대에 단 하나 잘한 것은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만든 것. 개발 금지를 알리는 저 말뚝은 산에 있는 밭에 있든 무조건 반가운데 이제 저 말뚝이 언제 어떻게 줄어들지 모른다.
<무조건적인 개발이 좋은 것은 아닐텐데...언제부터인가 그린벨트가 조금씩 조금씩 풀리고 푸르름은 인공적인 가공의 푸르름으로 대체되고 있기에 이 글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No. 6 그림 속에 생태는 없다 좋은 장소란 인간, 공간, 시간을 다 아울러야 한다. ~한구석이라도 그대로 두어 자연적 관계의 공평함을 살리자. ~모두의 장소, 전시용, 유원지, 그림, 쇼, 세트 등이 아닌 시간이 머무르는 공원을 보고 싶다.
<한국의 정원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가장 자연에 가깝기 때문이라고 들었는데... 어느 순간부터인지 우리의 조경은 인위적인 그 무엇을 추구하고 자연스러움은 없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대안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 그저 막연한 때에 이 글은 그저 한 공간만이라도 자연 그대로 두어도...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위안을 준다.>
No. 14 '녹색 성장' 시대의 케이블카는? 게으른 인간들이 꾀를 내어 만든 괴물이 쇠줄에 매달려 산다. 그 괴물의 이름은 케이블카. 돈 욕심은 감추고 각종 명목으로 산, 계곡, 바다 가리지 않고 케이블을 걸려고 안달이다. 케이블카를 설치하면 주변은 더 요란스럽게 위락과 상업시설로 개발된다. 그 다음은 안 봐도 비디오, 환경 오염과 파괴다. 생태, 친환경, 지속가능성.....등을 앞세운 무늬만 요란한 녹색정책은 이름만 바꾼 개발이다. 온전하게 유지하는 자연만이 미래의 자원이다. '녹색 성장'을 빛내려면 예전에 설치한 케이블카를 오히려 걷어내야 한다. 자연회복을 위한 철거, 그게 녹색 정신이다.
<게으른 인간에 속하는지라 처음엔 편한 케이블카가 왜 문제가 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산을 좋아하시는 분께 여쭤봤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정말 산을 좋아하시는 분은 케이블카를 선호하지 않고 그저 막연한 동경으로 잠시 들리기만을 원하는 게으른 사람들이 케이블을 선호한다는 것을... 다만, 정말 산을 좋아한다는 분들 중 극히 일부는 자신감이 넘쳐 위험한 길, 막아놓은 길을 가지 않던가. 그런 것은 게으른 자들의 눈에는 참 보기 안 좋다. 물론 케이블과는 별개의 문제지만... 역시 내가 게으른 인간에 속해서 편리함을 쉽게 놓을 수 없어서 녹색정신을 운운하기에는 많은 시간이 더 필요할 듯 하다.>
![]() 물의 변덕보다 무서운 것이 세상에 없다. 뉘누리: 소용돌이나 여울 너테: 여러 겹으로 얼어붙은 얼음
No. 23 불편한 대피소를 자랑하자 불편한 대피소를 만드는 것이 자연 보호에 최고다.
<건축에도 불편함을 감수하는 건축가 다운 생각이라고 느껴진다^^ 정말 자연을 사랑하는 구나 싶다. 다~ 맞는 말이다. 다만, 내가 게으른 인간류에 속하는지라 쉽게 동조하기는 어려움이 있다. 그런데 맞는 말이다. ㅠㅠ>
No. 24 비무장지대를 비개발지대로 이 땅의 옛 모습은 이제 그림 속에서나 찾을 수 있다. ~ 이 땅에 부족(필요보다 더 절실)할 것이 무엇인가. 손대지 않고, 않을 자연환경이 그 중 하나다. 비무장지대(한반도 전체 면적의 250분의 1에 해당하는 907제곱킬로미터)는 그 가능성의 꽃이다.
<지극히 게으른 인간의 표상이지만, 개인적으로 완전 동감한다.>
![]() 사람만 나무를 심는 게 아니다. 자연에선 새도 꽃을 심고 바람도 나무를 심는다.
No. 44 흔들리며 웃는 꽃 칡은 시계 바늘과 반대로 도는 왼쪽감기로 자라고, 등나무는 오른쪽 감기를 하니 둘이 엉키면 풀기가 어렵다. 하지만 감는 방향이 다르다고 갈등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No. 54 담장 속의 십장생 불멸을 꿈꾸지만 건축은 유한한 존재다. 세상 모든 단단한 것들이 먼지가 되듯 건축물도 종국엔 사라진다. 이념이 바뀌고 쓸모가 없어지고 재료가 닳아 사라지는 것보다, 더 큰 이윤이 보이는 순간 철거되는 것들이 더 많다. 건축은 구축의 방식보다 소멸의 방식을 먼저 고민해야 한다.
<더 큰 이윤에 의해 소멸해 가는 건축을 너무도 잘 표현했다. 파리의 에펠탑은 흉물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광명소가 되어 수리비보다 더 큰 이윤을 안겨주고 아직도 살아남아 있다. 이윤을 떠나 살아남을 건축이 얼마나 될까... 우리의 건축 사라지는 순간을 생각할 기회를 제공하는 글이다.>
![]() 사람의 집을 닮은 새집을 만들어 달면서 새의 습성보다 사람이 떼어가는 걱정을 먼저 하니, 오호라, 새만도 못한 인간이 참 많은 시절이더라!
<새집을 보고 새를 생각한 그 무엇이라 생각했지, 그것이 새의 습성을 고려했는지 새들에게 정말 필요한 집인지는 생각해 보지 못했었기에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었고, 사진에 철사로 감아 올린 새집이 새뿐만 아니라 새삼 나무에게도 힘듬일지 모른다는 느낌이 받았다.>
![]() 현장을 관리하는 태도가 바로 공사의 품질이다.
<가끔 보게 되는 현장의 화장실은 정말이지. 보기에도 힘들것 같아 보인다. 간이 화장실이라서라기 보다 그 지저분함에서 말이다. 그런데 이 사진은 달라보인다^^ 일반적인 건축주들이 자기 집을 예쁘게만 지으려고 했지 현장의 사람들을 생각하는 일은 없는데 이 사진의 건축주는 현장의 사람들까지도 생각했다. 현장은 당연히 간이 화장실인가보다 하고 생각했던... 습관에 젖은 내게 반성하는 계기를 주었다.>
No. 99 사람이 위험한 자전거길 탈것이 주인을 치면 안 된다. 가장 약한 사람이 안전해야 비로소 좋은 도시다.
<앞에서 안전한 횡단보도를 만들자는 개념과 일맥상통한다. 정말이지 어느 순간부터 사람 보다 탈것들이 주인행세를 한다. 사람보다 자전거가 자전거보다 오토바이가 오토바이보다 자동차가 그리고 더 큰 자동차가 강자의 논리를 내세우며 쌩쌩 달린다. 약자의 논리를 내세워 당당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래본다^^>
![]() 불안과 위험을 알면서 근본을 고치지 않고 주의와 경고문으로 버티는 것은 유사시 핑계 거리를 찾는 불순함 그 자체다. '주의 표시'하기 전에 본질에 더 '주의'하자.
<동감이다. 굉장히 많이^^>
No. 139 신물 볼때 주의사항 순진한 독자를 위해서 신문에도 주의사항을 표기하면 어떨까. '사실을 빙지한 불순한 왜곡을 경계하시오' 아니면 '편향적 시각을 조심하시오' 또는 '행간의 의미를 살피시오'. 그 말이 길다면 짧게, '오독 주의'는 어떤가.
<한겨례는 진보 조중동은 보수 등의 신문의 파를 나누며 사람들이 은연중에 생각하는 것들이 있듯이 신문이나 언론도 그 성향이 있는데 일반인들이 파악하기 어려울때 저런 표시가 있다면 어? 하며 다시 생각해보게 될까 하는 궁금증이...^^>
"사물과 사람 사이를 본다는 것은 인식의 여러 결 사이를 살피며 걷는 일이다."
*표지 가득 이일훈 건축가의 생각임을 알려준다. 그저 편하게 카메라에 담은 감상이려니 하고 읽었고 그렇구나 하고 넘기며 편하게 읽었다. 그런데 책을 정리하면서 다시 읽게 되고 다시 생각하게 되면서 짧은 시각으로 저런 생각을 할 수 없겠구나~ 정말 깊이 생각하는 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단편적인 생각들이 찰나를 모두 설명할 수 없지만, 분명 생각해야 할 시기가 있고 그것들을 지켜야할 시기가 있고 우리가 변해야 할 때가 있는 것처럼 적어도 자연에 만큼은 이분의 불편하게 살기가 적용되기를 바래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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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정로에서 만난 선배. 가끔 퇴근길에 은평의 집까지 걸어간다고 했다. 오늘도 함께 걸어보지 않겠냐며. 방향이 다른 나와 타협하여 아현, 이대를 거쳐 신촌까지 걷기로 한다. 금요일밤 길거리는 한적하고, 횡단보도 바뀌지 않는 신호등을 기다린다. 걸음을 멈춰 프랜차이즈가 아닌 카페에서 얼그레이 한 잔 마시는 여유까지_ 눈을 감거나 스마트폰에 마음을 빼앗겨버리기 일쑤인 여느 퇴근길과는 다른 밤공기가 나를 저만치 밀어낸다.
돌아가고 싶지 않지만_ 다시 대학을 선택하고 전공을 선택할 수 있는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건축에 대해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섬세하게 시간과 공간의 결을 다듬어 일상 속에서 살아 숨쉬는 그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는 것에 대한 막연한 동경.
건축가 이일훈이 카메라를 들고 도시산책자인 그가 읽어낸 눈으로 풀어낸 세상이다. 경향신문에 연재하던 글을 가리고 묶었다. 건축이란 무엇인가. 보이지 않는 것들을 물질을 통한 구축을 통해 세상에 내보이는 것, 새로운 지형을 만드는 것, 쓸모 있는 디자인으로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것. 더하여 그는 나무를 보고, 공간을 보고, 동네를 보고, 세상을 보고 있었다.
공간과 시간을 더하면 우주가 된다. 공간은 전후좌우에 아래위가 더해지고, 시간은 춘하추동에 주야의 갖은 움직임, 우주의 바탕을 이룬다. 생성과 성장, 소멸의 변화가 그 안에 있다. 그 우주 안에 사람도 파편의 하나인 것을_ 쓰레기가 되는지도 모르고 외양만 화려한 건축 디자인을 질책하며, 때로는 불안과 위험을 알면서 근본을 고치지 않고 주의와 경고문으로 버티는 핑계의 불순함을 지적한다.
도시의 디자인은 어떠해야 하는가. 소유는 사유이지만, 존재 의미는 공적이기에. 얼굴만이 초상이 아니고 도시의 풍경 또한 고스란히 우리네 삶의 초상이 된다. 랜드마크를 새로 구하기 전에 그 곳에 살아갈 사람에 대한 이해가 담겨 있는 공간의 궤적을 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