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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새벽에 누가 나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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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캄캄한 불빛의 집 ] 그날 우이동에는 진눈깨비가 내렸고 영혼의 동지(同志)인 나의 육체는 눈물 내릴 때마다 오한을 했다.   가거라   망설이느냐 무엇을 꿈꾸며 서성이느냐 꽃처럼 불 밝힌 이층집들, 그 아래서 나는 고통을 배웠고 아직 닿아보지 못한 기쁨의 나라로 어리석게 손 내밀었다 가거라   무엇을 꿈꾸느냐 계속 걸어가거라 가등에 맺히는 기억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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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캄캄한 불빛의 집 ]


그날 우이동에는

진눈깨비가 내렸고

영혼의 동지(同志)인 나의 육체는

눈물 내릴 때마다 오한을 했다.

 

가거라

 

망설이느냐

무엇을 꿈꾸며 서성이느냐

꽃처럼 불 밝힌 이층집들,

그 아래서 나는 고통을 배웠고

아직 닿아보지 못한 기쁨의 나라로

어리석게 손 내밀었다

가거라

 

무엇을 꿈꾸느냐 계속 걸어가거라

가등에 맺히는 기억을 향해 나는 걸어갔다

걸어가서 올려다보면 가등갓 안쪽은

캄캄한 집이었다 캄캄한

불빛의 집

 

하늘은 어두웠고 그 어둠 속에서

텃새들은

제 몸무게를 떨치며 날아올랐다

저렇게 날기 위해 나는 몇 번을 죽어야 할까

누구도 손잡아줄 수는 없었다

무슨 꿈이 곱더냐

무슨 기억이

그리 찬란하더냐

 

어머니 손끝 같은 진눈깨비여

내 헝클어진 눈썹을 갈퀴질하며

언 뺨 후려치며 그 자리

도로 어루만지며

 

어서 가거라

 

 

[ 어느 늦은 저녁 나는 ]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

 

 

[ 거울 저편의 겨울 ]

 

새벽에

누가 나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인생에는 어떤 의미도 없어

남은 건 빛을 던지는 것뿐이야

 

나쁜 꿈에서 깨어나면

또 한 겹 나쁜 꿈이 기다리던 시절

 

어떤 꿈은 양심처럼

무슨 숙제처럼

명치 끝에 걸려 있었다

 

빛을

던진다면

빛은

공 같은 걸까

 

어디로 팔을 뻗어

어떻게 던질까

 

얼마나 멀게, 또는 가깝게

 

숙제를 풀지 못하고 몇 해가 갔다

때로

두 손으로 간신히 그러쥐어 모은

빛의 공을 들여다보았다

 

그건 따뜻했는지도 모르지만

차갑거나

투명했는지도 모르지만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거나

하얗게 증발했는지도 모르지만

지금 나는

거울 저편의 정오로 문득 들어와

거울 밖 검푸름 자정을 기억하듯

그 꿈을 기억한다.

 

 

[ 서시 ]


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

나에게 말을 붙이고

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

내가 마음에 들었니, 라고 묻는다면

나는 조용히 그를 끌어안고

오래 있을 거야.

눈물을 흘리게 될지, 마음이

한없이 고요해져 이제는

아무것도 더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게 될지는

잘 모르겠어.

 

당신, 가끔 당신을 느낀 적이 있었어,

라고 말하게 될까.

당신을 느끼지 못할 때에도

당신과 언제나 함께 였다는 것을 알겠어,

라고.

아니, 말은 필요하지 않을 거야.

당신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고 있을 테니까,

내가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후회했는지

무엇을 돌이키려 헛되이 애쓰고

끝없이 집작해는지

매달리며

눈먼 걸인처럼 어루만지며

때로는

당신을 등지려고도 했는지


그러니까

당신이 어느 날 찾아와

마침내 얼굴을 보여줄 때

윤곽의 사이 사이,

움푹 파인 눈두덩과 콧날의 능선을 따라

어리고

지워진 그늘과 빛을

오래 바라볼 거야.

떨리는 두 손을 얹을 거야.

저기,

당신의 뺨에,

얼룩진.

 

 

[ 서울의 겨울 ]

 

어느 날 어느 날이 와서

어느 날에 네가 온다면

그날에 네가 사랑으로 온다면

내 가슴 온통 물빛이겠네, 네 사랑

내 가슴에 잠겨

차마 숨 못 쉬겠네

내가 네 호흡이 되어주지, 네 먹장 입술에

벅찬 숨결이 되어주지,  네가 온다면 사랑아,

올 수만 있다면

살얼음 흐른 내 빰에 너 좋아하던

강물 소리,

들려주겠네


 

[ 첫새벽 ]

 

첫새벽에 바친다 내

정갈한 절망을

방금 입술 연 읊조림을

 

감은 머리칼

정수리까지 얼음 번지는

영하의 바람, 바람에 바친다

맑게 씻은 귀와 혀를

 

어둠들 술렁이며 포도(鋪道)를 덮친다

한 번도 이 도시를 떠나지 못한 텃새들

여태 제 가슴털에 부리를 묻었을 때

 

밟는다, 가파른 골목

바람 안고 걸으면


일제히 외등이 꺼지는 시간

살얼음이 가장 단단한 시간

 

박명(薄明) 비껴 내리는 곳마다

빛나려 애쓰는 조각, 조각들

 

아아 첫새벽 ,

밤새 씻기워 이제야 얼어붙은

늘 거기 눈뜬 슬픔,

슬픔에 바친다

생생한 혈관을, 고동 소리를

 

[ 어느 날, 나의 살은 ]


어느 날 눈떠보면

물과 같았다가

그 다음 날 눈 떠보면 담벼락이었다가 오래된

콘크리트 내벽이었다가

먼지 날리는 봄 버스 정류장에

쪼그려 앉아 토할 때는 누더기

침걸레였다가

들지 않는 주머니칼의

속날이었다가

돌아와 눕는 밤마다는 알알이

거품 뒤집어 쓴



진통제 당의(糖衣)였다가

어느 날 눈떠보면 다시 물이 되어

삶이여 다시 내 혈관 속으로

흘러 돌아와가

 

[ 저녁 잎사귀 ]


 

푸르스름한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었다

밤을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찾아온 것은 아침이었다

 

백 년쯤

시간이 흐른 것 같은데

내 몸이 커다란 항아리같이 깊어졌는데

 

혀와 입술을 기억해내고

나는 후회했다

 

알 것 같다

 

일어서면 다시 백 년쯤

볕 솥을 걸어야 한다

거기 저녁 잎사귀

다른 빛으로 몸 뒤집는다 캄캄히

잠긴다

 

...  소/라/향/기  ...

s******8 2021.02.09. 신고 공감 25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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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0] 한강의 작품세계를 시로 읽다
"[20-50] 한강의 작품세계를 시로 읽다" 내용보기
소설가 한강의 베스트 송 모음 소설가 한강은 몇 차례 작가와의 만남 프로그램을 통해 만난 적이 있다. 그때마다 나지막하게 울리는 목소리에 어울리는 단아한 그녀와 그녀의 작품에 등장하는, 무엇인가 결핍된 인물들 때문에 뭔가 위화감을 느꼈다. 정확한 실체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창조한 인물, 예를 들면 <채식주의자>의 영혜나 <희랍어시간>의 주인공들인 말[語]을 잃어가는 여
"[20-50] 한강의 작품세계를 시로 읽다" 내용보기

소설가 한강의 베스트 송 모음

 

소설가 한강은 몇 차례 작가와의 만남 프로그램을 통해 만난 적이 있다그때마다 나지막하게 울리는 목소리에 어울리는 단아한 그녀와 그녀의 작품에 등장하는무엇인가 결핍된 인물들 때문에 뭔가 위화감을 느꼈다정확한 실체는 모르겠지만그녀가 창조한 인물예를 들면 채식주의자의 영혜나 희랍어시간의 주인공들인 말[]을 잃어가는 여자와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 등이 현실에서 한 발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어쩌면 작가는 자신이 창조한 인물에 자신을 일부라도 투영(投影)한다는 말 때문에 그녀와 그녀의 작품 속 등장인물 간의 유사성을 찾고괴리감을 느끼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것이 한때 내가 그녀가 한 라디오 프로그램 DJ로 활동하면서 엮은 산문집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2007)를 찾아본 이유가 아닐까책 소개에 따르면노래에 담긴 그리운 지난 시절의 기억을 되돌아본다고 하니 뭔가 좀더 감상적인 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또 그녀가 직접 만들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부른 10곡의 노래가 궁금하기도 했다불행히도 2010년대 초반에야 그런 생각이 떠올라서 종로에 있는 대형 서점 몇 곳을 둘러보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지금은 당연히 절판이다!)

 

그런 아쉬움 때문에 우연히 들린 대형서점에서 한강의 첫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를 보고집에 돌아와 주문을 했다시는 시인의 영혼을 담아 부르는 노래라고 생각했었고이 시집이 그녀가 20여 년간 여덟 권의 소설 단행본을 출간하는 틈틈이 쓰고 발표한 시들 가운데 60편을 추려 엮은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었다어떻게 보면 그녀의 베스트 송 모음집인 셈이다.

 

 

소리도빛도 없는 어둠을 넘어

 

새벽에 들은 노래

 

봄빛과

번지는 어둠

틈으로

반쯤 죽은 넋

얼비쳐

나는 입술을 다문다

 

봄은 봄

숨은 숨

넋은 넋

나는 입술을 다문다

 

어디까지 번져가는 거야 

어디까지 스며드는 거야 

기다려봐야지

틈이 닫히면 입술을 열어야지

혀가 녹으면

입술을 열어야지

다시는

이제 다시는 [pp. 12~13]

 

이 시는 혹시 <희랍어 시간을 염두에 두고 지은 것일까? ‘번지는 어둠 틈으로 반쯤 죽은 넋 <희랍어 시간의 남자처럼 시력을 잃어가는 것을혀가 녹지 않아 입술을 닫은 것은 같은 책의 여자처럼 모국어를 말할 수 없는 것을 각각 그린 것이 아닐까 

혹시 <희랍어 시간과 아무 상관 없다면 왜 시인은 혀가 녹으면 입술을 열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일까 

 

 

저녁의 소묘 4

 

잊지 않았다.

 

내가 가진 모든 생생한 건

부스러질 것들

 

부스러질 혀와 입술,

따뜻한 두 주먹

 

부스러질 맑은 두 눈으로

 

유난히 커다란 눈송이 하나가

검은 웅덩이의 살얼음에 내려앉는 걸 지켜본다

 

무엇인가

반짝인다

 

반짝일 때까지 [p. 85]

 

시인은 왜 내가 가진 모든 생생한 것이 부스러질 것들이라고 했을까이 또한 소설에서처럼 결핍을 나타내기 위해서일까? ‘부스러진 것이 아닌 부스러질 것이라는 표현으로 보아 마치 죽음으로 가는 길을 암시하기 위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실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라는 제목을 보면서 처음 들었던 생각은 왜 저녁일까’ 였다서랍이 무엇인가를 넣어 두는 수납공간인 것은 맞는데아침도점심도 아닌 저녁을 넣어 둔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이 결국 이 책을 사게 만들었다.

 

새벽에 들은 노래’, ‘피 흐르는 눈’, ‘저녁의 소묘’, ‘거울 저편의 겨울’. 이 시집에서 실린 연작 시()들의 제목들이다뭔가 검은 아우라(Aura)가 살짝 어른거리는 것처럼 보이는 제목들이다뭔가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노래하는 부분이 많다고 느끼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물론 이 책에 실린 시()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시()는 읽기 어렵다고등학교 국어시간도 아닌데 습관적으로 분석해보려는 마음 때문일까 

 

w******f 2020.08.01. 신고 공감 22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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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오래 꺼내보고 싶은 한강의 시
"오래오래 꺼내보고 싶은 한강의 시" 내용보기
일주일 만에 받아 본 한강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한 글자라도 놓칠 세라 소리 내어 천천히 읽어보았다. 시는 눈으로 읽기보다 소리 내어 읽을 때 더 크게 와 닿는다. 바람 소리와 바스락 거리는 나뭇잎 소리와 함께 내 목소리가 잔잔히 울려 퍼진다.  곱게 물든 가을 나무 아래서 읽는 한강의 시, <새벽에 들은 노래 2>가  내 마음 안으로 들어왔다. ● 새벽에 들은 노
"오래오래 꺼내보고 싶은 한강의 시" 내용보기
일주일 만에 받아 본 한강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한 글자라도 놓칠 세라 소리 내어 천천히 읽어보았다. 시는 눈으로 읽기보다 소리 내어 읽을 때 더 크게 와 닿는다. 바람 소리와 바스락 거리는 나뭇잎 소리와 함께 내 목소리가 잔잔히 울려 퍼진다.  곱게 물든 가을 나무 아래서 읽는 한강의 시, <새벽에 들은 노래 2>가  내 마음 안으로 들어왔다. ● 새벽에 들은 노래 2 언제나 나무는 내 곁에 하늘과 나를 이어주며 거기 우듬지 잔가지 잎사귀 거기 내가 가장 나약할 때도 내 마음 누더기, 너덜너덜 넝마 되었을 때도 내가 바라보기 전에 나를 바라보고 실핏줄 검게 다 마르기 전에 그 푸른 입술 열어 * 행과 행 사이 띄운 공간 속으로 바람이 넘나들고 새들이 날아다니고 다람쥐가 포르르 움직일 것만 같다. 푸른 입술을 열어 상처받고 지친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나무. 언젠가 작가도 나무로부터 작은 위로를 받은 경험이 있었을까? ● 몇 개의 이야기 6 어디 있니. 너에게 말을 붙이려고 왔어. 내 목소리 들리니. 인생 말고 마음, 마음을 걸려고 왔어. 저녁이 내릴 때마다 겨울의 나무들은 희고 시린 뼈들을 꼿꼿이 펴는 것처럼 보여. 알고 있니. 모든 가혹함은 오래 지속되기 때문에 가혹해. * 이 시를 읽는 동안 가슴이 시려오고 눈물이 났다. 아직 <소년이 온다>의 여운과 통증이 가시지 않았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다. <소년이 온다>의 동호, 정대, 정미, 은숙, 선주, 진수의 모습이, <작별하지 않는다>의 두 친구 경하와 인선이 떠올랐다. 한 인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오래 지속되고 있는 가혹함과 슬픔. 작가가 쓴 시에서처럼 어떤 종류의 슬픔은  물기 없이 단단해서, 어떤 칼로도 연마되지 않는 원석(原石)과 같을지 모른다. ● 괜찮아 태어나 두 달이 되었을 때 아이는 저녁마다 울었다 배고파서도 아니고 어디가 아파서도 아니고 아무 이유도 없이 해질녘부터 밤까지 꼬박 세 시간 거품 같은 아이가 꺼져버릴까 봐 나는 두 팔로 껴안고 집 안을 수없이 돌며 물었다 왜 그래. 왜 그래. 왜 그래. 내 눈물이 떨어져 아이의 눈물에 섞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말해봤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괜찮아. 괜찮아. 이제 괜찮아 (중략) . . * 새벽에 깨서 한 시간 넘게 악을 쓰며 울어 대는 두 살 배기 아이를 아무리 어르고 달래고 안아줘도 아무 소용이 없음을 깨달았을 때 결국 나는 아이와 함께 엉엉 울고 말았다. 울다 지쳐 잠든 아이를 보며 무기력한 엄마인 내가 너무 미워서 매일같이 반복되는 이 지긋지긋한 일상이 싫어서 울었다. 그럴 때마다 마음속에서 이 말로 나를 다독이고 위로했다. '곧 괜찮아 질 거야. 크면 나아 질 거야. 아이가 피곤해서 그런거야' 기적처럼 아이는 커갈수록  새벽에 깨서 우는 일이 점점 줄었다. 거짓말처럼 조금씩 괜찮아지고 있었다.'괜찮아' 이 시는 지난날 지치고 힘들었던 초보 엄마의 등을 토닥여주는 것 같다. 위로가 되어준다.   
YES마니아 : 골드 b*********3 2024.10.24. 신고 공감 21 댓글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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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리뷰]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 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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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가 시집도 펴냈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되고 구매했던 시집.어떻게 하면 소설가가 시집까지 펴낸 것일까.한승원 작가가 아버지라서 모태 신앙처럼 문학을 배웠던 것일까. 시집은 한강 작가의 문장처럼 간결하고도 깊은 울림을 주었다. 유리창,얼음의 종이를 통과해조용한 저녁이 흘러든다 붉은 것 없이 저무는 저녁 앞집 마당나목에 매놓은 빨랫줄에서감색 학생코트가 이따금 펄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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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가 시집도 펴냈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되고 구매했던 시집.

어떻게 하면 소설가가 시집까지 펴낸 것일까.

한승원 작가가 아버지라서 모태 신앙처럼 문학을 배웠던 것일까.

시집은 한강 작가의 문장처럼 간결하고도 깊은 울림을 주었다.

 

유리창,

얼음의 종이를 통과해

조용한 저녁이 흘러든다

 

붉은 것 없이 저무는 저녁

 

앞집 마당

나목에 매놓은 빨랫줄에서

감색 학생코트가 이따금 펄럭인다

 

(이런 저녁

내 심장은 서랍 속에 있고)

 

유리창,

침묵하는 얼음의 백지

 

입술을 열었다가 나는

단단한 밀봉을

배운다  (65~66페이지, 저녁의 소묘 3, 전문)

 

제목이 정말 좋아, 몇 번을 소리내어 읽어 보았다.

시인의 시선은 소설가의 시선 과는 또다른 것이려니 생각은 해보지만

이처럼 아름다운 시어들에서 시를 읽는 즐거움이 있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천지에도

남은 것들은 많았다 그해 늦봄

널브러진 지친 시간들을 밟아 으깨며

어김없이 창은 밝아왔고

흉몽은 습관처럼 생시를 드나들었다

 

(중략)

 

사는 일이 거대한 장례식일 뿐이라면

우리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126페이지, 회상, 중에서)

 

길을 걷다가도

차를 타고 가다가도

시집을 펼쳐 시를 읽을 수 있는 감성을 갖는다는 것.

그걸 부르는 시집이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h*****9 2018.12.24. 신고 공감 1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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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통해 위로를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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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살아가는 일은 무엇일까 물으며 누워 있을 때얼굴에햇빛이 내렸다 빛이 지나갈 때까지눈을 감고 있었다가만히<회복기의 노래> 많은 이들은 저자를 소설가로만 알고 있지만, 한강은 일찍부터 시와 소설을 병행한 작가였다. 그의 소설에서 보여주는 필력만큼이나, 시에서도 독자를 위로하는 저자의 힘을 느낄 수 있다. 내가 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딱히 한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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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살아가는 일은 무엇일까

 

물으며 누워 있을 때

얼굴에

햇빛이 내렸다

 

빛이 지나갈 때까지

눈을 감고 있었다

가만히

<회복기의 노래>

 

많은 이들은 저자를 소설가로만 알고 있지만, 한강은 일찍부터 시와 소설을 병행한 작가였다.

 

그의 소설에서 보여주는 필력만큼이나, 시에서도 독자를 위로하는 저자의 힘을 느낄 수 있다.

 

내가 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딱히 한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 않아도 되고, 그때 그때 생각날 때마다 다시 뒤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리뷰를 쓰려고 다시 이 시집을 손에 든 순간 <회복기의 노래>를 떠올리며 그 시를 찾았다.

 

사람들은 누구나 그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쉬고 싶을 때가 있다.

 

물론 그럼에도 쉬지 못하고 일을 해야만 하는 경우도 없지 않은 경우도 있다.

 

그럴 때의 내 마음을 알아주는 듯, 시인은 그저 가만히 누워 햇빛이 지나갈 때까지 눈을 감고 있으라고 속삭인다.

 

요즘처럼 무더위에 지친 상태에서 한번 시도해 볼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이밖에도 조용히 다가와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시편들이 적지 않다.

 

다시 또 언젠가 위로가 필요할 때 그의 시집을 찾을 수 있기를...(차니)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YES마니아 : 골드 이달의 사락 i*****n 2018.07.05.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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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 내용보기
#서랍에저녁을넣어두었다 #한강 #문학과지성사 #내돈내산 #시집 #한강파기한강 작가의 <흰>을 읽고 시느낌이 강렬했는데 이번엔 진짜 시집을 집어 들었다. 1992년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4학년때 연세춘추 주관 연세문학상에서 시부문 윤동주 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한강 작가는 소설 뿐만 아니라 소설집, 동화, 시집도 있다는 거.그럼 제목도 독특한 시집 속으로 들어가보겠다.<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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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에저녁을넣어두었다 #한강 #문학과지성사 #내돈내산 #시집 #한강파기

한강 작가의 <흰>을 읽고 시느낌이 강렬했는데 이번엔 진짜 시집을 집어 들었다. 1992년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4학년때 연세춘추 주관 연세문학상에서 시부문 윤동주 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한강 작가는 소설 뿐만 아니라 소설집, 동화, 시집도 있다는 거.
그럼 제목도 독특한 시집 속으로 들어가보겠다.

<마크 로스코와 나>라는 시가 두번 나올길래 마크 로스코에 대해 찾아 보았다. 러시아 출신의 미국 화가다. 주요 작품들을 빛의 속도로 훑어보고 다시 시집으로 돌아왔다. 더 모르겠다. 시를 속속들이 파헤쳐 읽으려 하는 자체가 잘못된 걸까. 그림처럼 시도 그냥 눈에 보이는대로 느끼면 되는 걸까.

<새벽에 들은 노래>도 3편 나온다. 잠못 드는 새벽에 깨어 있는 사람이 나처럼 책을 읽는 사람과 시를 짓는 사람, 글을 쓰는 작가들만 있는 건 아니지만 새벽은 푸른 빛이 들기 전의 온전한 어둠의 시간이라 야행성인 사람들의 머리와 가슴이 열리는 시간이 아닌가 생각된다.

<해부극장>도 2편 실려있다. 이탈리아 해부학의 창시자 의사인 안드레아 베살리우스의 책 제목이다. 이 책과 시의 상관관계도 알아야 할테니 그냥 시만 읽어 보겠다. 나도 40여 년 전 교통사고를 당해 후유증이란 이름으로 아픈 어깨와 무릎의 통증이 되살아나는 느낌이다.

<피 흐르는 눈>은 총 4편이 실렸다. 피 흐르는 눈 상상만해도 끔찍하다. 부서진 입술, 어둠 속의 혀, 눈에서 흐른 끈끈한 건. 허락된다면 고통에 대해 말하고 싶다고. 고통과 정면승부하는 시인의 시는 시라는 자체가 상징하는 메시지에 주목하게 된다

연작시는 <저녁의 소묘>.와 <조용한 날들>로 이어진다. 그밖에 삶과 고통, 상실과 슬픔을 노래한다. <거울 저편의 겨울>은 길고 길어서 시가 아니라 초단편 소설 같다. 거울 속에서 겨울이 기다리고 있다. 거울 저편의 정오로 문득 들어와 그 꿈을 기억한다. 지구 반대편의 낯선 공간 도시에서 씌어진 시들이다.

 이 시의 '나'는 시차와 거리감이 무의미해진 공간에서 오히려 자기 안으로 맹렬히 침잠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타자화된 '나'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거울 없이 맨눈으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듯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것이다. 소리도 없고 빛도 없는 침묵과 어둠의 공간에서 시인이 발견하는 순수한 언어의 존재이다.

소설가 한강으로 20년 동안 각인되어 있지만 그녀는 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한순간도 잊지 않았을지 모른다. 오로지 시인의 시로 읽어내는 일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주로 인간의 삶의 진실과 관련하여 어제나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왔듯이 고통받는 인물들이 등장해 왔다.

이제껏 한강의 인물들이 보여준 고통의 양상들은 날로 진화해왔다. 뿐만 아니라 그 고통의 기원으로부터 구체적이고도 특별한 불행들을 점차 소거해왔다.한강의 감각적인 문장이나 그녀가 그려내는 강렬한이미지에 매혹된 우리는 그녀의 소설에 언제나 시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왔다. 

한강의 시는 곳곳에서 영혼의 상처에 대해 말하면서 그 상처가 결코 회복될 수 없는 것임을 강조한다. 한강의 화자들은 고통과 마주하는 일을 피할 생각이 없다. 타락한 세계로부터 영혼의 순수함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인간은 고통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듯하다.

상처받은 영혼들은 침묵에서 진실된 말을 건져 올리려는 시를 쓰는 한강 그 자신이었을지 모른다. 침묵의 그림을 그리는 시인이자, 자신의 자화상을 그리는 소설가이다. 침묵의 그림에 육박하기 위해 피 흘리는 언어들이 있다. 그리고 피 흘리는 언어의 심장을 뜨겁게 응시하며 영혼의 존재로서의 인간을 확인하려는 시인이 있다.

서랍속에 있는 심장,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는, 소중한 무엇을 서랍에 넣어 두는 관점에서 모든것이 평온해지는 시간. 저녁을 소중하게 서랍에 넣어 두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시를 해석한다는 것은 외계어를 해석하는것 만큼이나 어렵지만, 그저 손가락 끝을 내밀면 되지 않을까. 그 끝에 닿는 느낌만으로도 전해지는 시인의 말에 귀 기울여본다.
YES마니아 : 로얄 이달의 사락 f*******1 2024.10.25.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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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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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님의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시라곤 중고등학생 시절 교과서에서 접했던 게 다였던 문외한이 제목에 이끌려 구매한 시집입니다. 아직 모든 시를 다 읽지는 못했지만 눅눅하고 우울하면서 어두운 감성이 저와 잘 맞았습니다. 밝고 희망을 주는 예쁜 시를 기대하시면 안 됩니다. 새벽녘 생각이 많아지고 이름 모를 감정에 잠식될 때 꺼내보고 싶은 시집입니다. 개인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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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님의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시라곤 중고등학생 시절 교과서에서 접했던 게 다였던 문외한이 제목에 이끌려 구매한 시집입니다. 아직 모든 시를 다 읽지는 못했지만 눅눅하고 우울하면서 어두운 감성이 저와 잘 맞았습니다. 밝고 희망을 주는 예쁜 시를 기대하시면 안 됩니다. 새벽녘 생각이 많아지고 이름 모를 감정에 잠식될 때 꺼내보고 싶은 시집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시집에 수록 된 <서시> 가 가장 좋았습니다.^^
i******5 2020.11.01.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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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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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좋아하는 나는 시를 잘 알지 못한다.그렇지만 긴 소설과는 달리 짧은 시는 잠깐 틈을 내어 읽을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것 같다.너무 함축적인 언어라서 인가? 시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나에게는 어려운 일이다.채식주의자는 재미있게 보았다. 지인이 보고 있기에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를 접하게 되었다.마크 로스코와 나를 읽었을땐 너무 섬세하고 사실적 표현에 약간 당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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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좋아하는 나는 시를 잘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긴 소설과는 달리 짧은 시는 잠깐 틈을 내어 읽을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것 같다.

너무 함축적인 언어라서 인가? 시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나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채식주의자는 재미있게 보았다. 지인이 보고 있기에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를 접하게 되었다.

마크 로스코와 나를 읽었을땐 너무 섬세하고 사실적 표현에 약간 당황하기도 했고, 시가 원래 이런 것이었나? 싶었으나 그래도 거부감은 없었다.

그리고 서커스의 여자 뭔가 끌리기는 하지만 더 깊이 알고 싶어서 해설해놓은 글이라도 찾아 읽어 보고 싶었지만 찾지 못했다.

뭔가 자꾸만 글에 끌리면서 모르겠는--;;

좀더 곱씹어보고 많이 읽어 보면 그 깊이를 알수 있으려나? 하...내공이 필요한것 같다.

k*******e 2020.05.09.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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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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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한강 작가님에 대한 기사나 뭐 소설이 언론에서 많이 화제가 되었던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특이하게도 화제가 되면 흥미가 식어버리는 타입이라 그 당시에는 언론에서만 한강 작가님에 대해 소식을 들었었고 작품을 통해서는 만난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저한테는 약간 어려운 느낌이었습니다. 시 자체가 보는 순간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유달리 좀 이해하기 어렵고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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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한강 작가님에 대한 기사나 뭐 소설이 언론에서 많이 화제가 되었던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특이하게도 화제가 되면 흥미가 식어버리는 타입이라 그 당시에는 언론에서만 한강 작가님에 대해 소식을 들었었고 작품을 통해서는 만난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저한테는 약간 어려운 느낌이었습니다. 시 자체가 보는 순간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유달리 좀 이해하기 어렵고 좀 무거운 느낌이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보려고요.
YES마니아 : 골드 s*****1 2021.04.27.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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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2013) _ 한강 지음(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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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한강의 시를 읽고 싶다고 생각한 건, 202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뒤 처음으로 발표한 글을 읽고 나서였다. 아, 한강 작가는 산문도 쓰는구나.짧은 산문 「깃털」은 외할머니에 대한 회상을 담고 있었다.문득 외할머니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나를 바라보는 얼굴이다.사랑이 담긴 눈으로 지그시 내 얼굴을 들여다보다가손을 뻗어 등을 토닥이는 순간.그 사랑이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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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한강의 시를 읽고 싶다고 생각한 건, 202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뒤 처음으로 발표한 글을 읽고 나서였다. 아, 한강 작가는 산문도 쓰는구나.

짧은 산문 「깃털」은 외할머니에 대한 회상을 담고 있었다.


문득 외할머니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나를 바라보는 얼굴이다.

사랑이 담긴 눈으로 지그시 내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손을 뻗어 등을 토닥이는 순간.

그 사랑이 사실은 당신의 외동딸을 향한 것이란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렇게 등을 토닥인 다음엔
언제나 반복해 말씀하셨으니까.

엄마를 정말 닮았구나.
눈이 영락없이 똑같다.


– 한강 「깃털」 중

900자 남짓한 글이었지만, 그 안에는 외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나를 잇는 그리움과 시간의 결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 짧은 문장들에 오래 붙잡혀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강의 시를 읽어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를 바로 구매했다.


하지만 세월의 바쁨 속에서 그 책은 정말로 서랍 속에 들어가 있었고, 최근에야 다시 꺼내 읽게 되었다.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는 제목 자체가 너무 아련하고 애틋해서, 어쩌면 선뜻 펼치지 못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는 아직 시를 충분히 이해할 만큼 문해력이 높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언어가 주는 ‘느낌’은 좋아하지만, 그 안에 숨어 있는 함축과 행간의 의미까지 읽어내기에는 아직 문학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일까.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는 분명 좋은 느낌의 시집이라는 건 알겠는데, 그것이 문학적으로 어떤 성취를 이루었는지까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런데도 「어느 늦은 저녁 나는」이라는 시는, 정말로 너무 좋았다.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 버렸다고
지금은 영원히
지나가 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


– 한강 「어느 늦은 저녁 나는」

시집의 첫머리에 놓인 이 시에 나는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그래서 그 이후의 시들이 어땠는지는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이 한 편으로 이미 충분했기 때문이다.


매일 반복되는 ‘먹는 행위’를 저렇게 표현할 수 있다니.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밥을 먹는다는 것은 생존을 위한 가장 단순한 행위이지만, 그 순간에 ‘지나가 버림’을 감각하는 일은 전혀 단순하지 않다. 김이 피어오르는 밥을 바라보는 장면 속에서, 나는 설명할 수 없는 상실과 쓸쓸함을 느꼈다. 무엇인가 이미 지나가 버렸고, 지금 이 순간도 지나가고 있다는 자각. 그 영원한 지나감 앞에서 느껴지는 슬픔.


그럼에도 마지막 문장은 담담하다.
“밥을 먹었다.”


어쩌면 그것은 현실에 대한 자각일지도 모르겠다. 지나간 것들에 대한 무기력이나 체념이 아니라, 그럼에도 살아내야 한다는 태도. 영원히 사라지는 것들 속에서도, 우리는 밥을 먹는다. 그렇게 오늘을 버틴다.


어렵다. 언어는 여전히 어렵다.
그런데 그 어려운 언어로 이토록 조용하고 깊은 감각을 건져 올리는 한강이라는 작가는, 역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시집은 다시 서랍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두고두고 꺼내 읽고 싶다.

그냥, 다시 한 번 “읽었다”고 말하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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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 2026.03.03.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