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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인문학’이라는 부제가 없었다면 제목만으로는 여행과 관련된 이야기일 것이라는 생각을 못했을 것 같습니다. <타오르는 시간>은 한신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치는 김종엽교수가 진정한 여행이란 무엇인가를 정리하여 담았습니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연구년에 아내와 함께 스페인과 모로코를 3개월 넘게 여행한 결과를 간략하게 정리해서 아내에게 헌정하려던 것이 416쪽의 방대한 분량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해외여행을 다녀오면 여행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들을 정리하고 있는데, 그 시작이 스페인, 모로코 그리고 포르투갈 여행이었습니다. 여행을 함께 한 아내에게 덤으로 주는 봉사라는 생각입니다.
많은 이들이 관광과 여행의 다름을 설파합니다. 위키낱말사전을 보면, 관광은 “여가 목적으로 가는 여행”으로, 여행은 “새로운 문화를 접할 목적으로 잠시 다른 곳에 가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보면 관광은 여행의 한 범주에 속한다고 이해될 수도 있겠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관광과 여행의 차이는 호사가들의 말장난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저자 역시 관광과 여행을 구분해보려는 시도 끝에 자크 라캉의 표기법을 차용하여 ‘관광/여행’이라고 규정했습니다. 두 용어의 사전적 해석과는 무관한 듯합니다. 그런가 하면 “여행기는 관광을 여행으로 전환하는 내적 과정이다.(27쪽)”라고 정의하였습니다.
머리말에서 관광과 여행을 정의하면서 페르디낭 드 소쉬르와 자크 라캉을 인용한 것을 읽으면서 예사롭지 않은 책읽기가 되겠다 싶었습니다. 이런 종류의 예감은 빗나가는 법이 없습니다. 저자는 ‘서론을 대신하여’라는 서론에서 뱃사공 신드바드와 짐꾼 신드바드를 예로 들어 여행기의 의미를 정리합니다. 그리고 1장에서는 여행과 관광의 의미를 본격적으로 추구했습니다. 2장은 권태에 관한 이야기인데 아마도 여행을 떠나는 이유가 권태로부터의 탈출을 이야기하고자 함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2장의 결말을 “관광/여행 속에서 우리는 시간을 죽이는 권태로운 일상에서 벗어나 시간을 활활 불사를 수 있다. 그리하여 시간은 일렁이는 불꽃으로 황홀하게 피어오를 것이다. 관광/여행은 그렇게 ‘타오르는 시간’이다(116쪽)”라고 마무리한 것을 보고, 이 책의 제목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3장은 여행의 목적지인 ‘그곳’의 장소론적 의미를 추구합니다. 4장은 관광/여행에 나선다는 것은 결국 걷기로부터 시작한다는 이야기를, 5장에서는 현대의 장거리여행에서 거의 대부분 이용하게 되는 비행기를 타러가는 길에 관한 이야기를, 그리고 6장에서는 그 비행기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었습니다. 마지막 7장에서는 목적지에 도착하여 머물게 되는 장소, 즉 숙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시작은 스페인과 모로코를 여행한 이야기를 간략하게 정리해보려 던 것이 관광/여행과 관련된 몇 가지 사안에 대한 철학적 사유로 발전한 것입니다. 쉬울 것을 예상했던 책읽기가 난이도가 높은 철학적 앎을 요구하는 단계로 발전함에 따라서 완독하는데 적지 않은 시간이 들여야 했습니다. ‘여행자의 인문학’이라는 부제처럼 문학, 역사, 철학 등 인문학 분야의 전문적인 지식에 더하여 회화, 건축 등의 분야에서도 깊이 있는 설명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비행기 여행이 안전하다는 점을 설파한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되었지만 “인간의 발명품 중 최악의 복잡성과 연계성을 가진 것은 원자력발전소이고, 이 때문에 사고의 위험성도 매우 높다(267쪽)”라는 주장은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단지 조직이나 장치가 매우 복잡하고 운용체계들의 연계성도 높기 때문에 사고의 위험성이 높다는 것은 이론적인 설명일 뿐이 아닐까 싶습니다.
관광/여행이라는 행위에는 이 책에서 다룬 동기, 수단, 숙소, 등 이외의 요소들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또한 이 책을 쓰게 된 배경이 스페인과 모로코 여행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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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작년에 읽은 책 중에 가장 재미있었다고, 사회학자 책 중에 가장 재미있었다고, 공항 등장 장면 중에 가장 재미있었다고, 모비딕에서 모비딕 만날 때처럼 끝까지 읽어야 (......)을 만나보기나 할 거라고, 그게 또 엄청나게 재밌다고 해서, 너무나 궁금했던 책이다.
그... 그런데, 두꺼운 양장본의 위엄, 머리말에서 페르디낭 드 소쉬르와 자크 라캉 인용하며 시작하는 책... 이제야 제목이 눈에 들어온다. 이 책과 더불어 뇌가 타오르는 시간을 보내겠구나. 물론 태평한 독자인 나는 이해 못한다고 고통 받지 않는다.
내게 관광과 여행은 아주 다른 풍경이지만, 순순히 자크 라캉의 표기법 관광/여행을 수용한다. 그보단 한번 밖에 가본 적이 없어 상대적으로 미지의 장소들, 스페인, 포르투갈, 모로코가 여행의 시작이라 많이 설렜다.
머리말에 놀란 가슴으로 읽은 서론(을 대신하여)에는, 여행기의 의미가 정리되어 있다. 아무래도 내가 생각한 여행기가 아니구나. 사회학자가 쓴 여행을 소재로 한 인문학서가 되겠구나, 점점 예감이 확실해진다. 뱃사공과 짐꾼 신드바드... 스페인으로 가자요...
1장 여행지도 도착하지 않고 여행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여행과 관광의 의미... 2장 (아마도) 여행의 떠나는 이유인 권태, ,결말에 이르면 제목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일상이 시간을 죽이는 권태이고, 관광/여행이 시간을 불사르는 시간이라서 ‘타오르는 시간’이다.
“삶의 연속성을 끊어내서 한때를 만들어 낸다.”
나는 일상이 시간을 불사르는 시간이고, 여행이(관관 가본 적 없음) 그 불을 잠재우고 쉬는 시간이라서 ‘타오른다’는 의미를 오독했거나 전혀 다른 여행 목적을 가졌다는 생각을 한다.
일상의 촘촘한 인간관계와 매일의 의무처리사항들을 해치우는 일은 고열에 시달리고 염증 반응을 일으켜서 늘 뜨겁고 아프고 힘든 일이다. 여행은 잠시 서늘하게 편안하게 내게 연결된 선과 매듭을 끊고 풀고 살아보는, 낯선 시공간, 수면 아래의 삶이다.
친구가 왜 모비딕 얘기를 했는지, 7장에 이르러서 깨달았다. 아무리 태평한 독자라고는 하지만, 그 여정에 하이데거, 벤야민, 마르크스, 짐멜, 제임스 티소, 터너, 괴테(색채론), 자코메티, 고호... 정신을 번쩍 깨우는 반가운 난기류를 만난 순간들이 있었다. 재미있었다.
그리고 마드리드 도착! 기대하던 ‘여행지’라는, 저자가 장소론적 의미를 추구한 ‘목적지’라기 보다는 ‘숙소’에 도착했다. 그런데... 도착 직후 ‘집에 대하여’ 사유를 깊게 하신다. 크게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웃기려고 쓰신 글이 아닐 텐데, 내 웃음코드는 말릴 수 없이 작동했다.
이 책은 ‘여행을 떠나기 전 당신이 생각해봐야할 문화적 통찰 가이드북’ 같다. 여행 전에 ‘타오르는 시간’을 보내야 여행 가서 제대로 불사를 수 있다는. 저기... 이 책 2부 있는 거지요...? 스페인, 포르투갈, 모로코 여행하신 이야기도 꼭 풀어 주시는 거지요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여행을 아직 계획하지 않았다. 탄소배출이 심각한 시절에 속 편히 즐겁게 다녀올 수 있을 것인지 계산이 덜 끝났다. 돌아보면 목적이 분명한 비행 - 유학, 출장, 워크숍, 학회 등 - 만 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약속은 지켜야 하는데... 꾸준히 일상의 탄소마일리지를 줄이고 관리하면서 정당화할 포인트를 계속 쌓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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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타오르는 시간 저자 김종엽
1. 첫인상
‘관광/여행은 삶의 전반적이고 일상적인 맥락 외부에서 진행되지만, 결국 그 맥락 한복판으로 귀환하며 그것을 새롭게 조명하고 구조화할 계기를 제공한다. 관광/여행은 경험의 빈곤을 극복하고, 경험을 구제할 기회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무엇보다 관광/여행 속에서 우리는 시간을 죽이는 권태로운 일상에서 벗어나 시간을 활활 불사를 수 있다. 그리하여 시간은 일렁이는 불꽃으로 황홀하게 피어오를 것이다. 관광/여행은 그렇게 ’타오르는 시간‘이다.’ - 뒷표지 중에서
나는 책과 처음 만나면 무턱대고 책을 열지 않고 먼저 표지에 집중한다. 인간이 처음 보는 이성을 마주치면 그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그 용모에 먼저 눈이 가듯이 책과의 데이트는 언제나 책 표지와 먼저 시작하게 된다. 김종엽 교수의 ‘타오르는 시간’을 처음 만났을 때도 그 표지에 눈길이 오래도록 머물렀다. (이 그림이 조르조 데 키리코가 1911년 그린 '시간의 수수께끼'라는건 책을 읽다가 중간에 소개되어 있어 알게 되었다) 고즈넉한 신전같은 건물에 한 고독한 순례자가 물끄러미 서있는 표지 그림도 무척 인상적이었지만, 미술에는 영 잼병인 나로서는 그림보다는 친숙한 문자들이 더 다가왔다. ‘타오르는 시간’. 왜 타오르는 시간이라는 제목을 선택한 것일까?
내가 책을 처음 만날 때 표지에 집중하는 이유는 그 한정된 지면 (겉으로 보이는 표지는 책의 맨 앞과 맨 뒤 딱 두 장 뿐 아닌가) 에 넣을 수 있는 정보는 매우 제한될 것이기에, 저자는 책의 제목을 선택하는 어려움 만큼이나 표지에 넣을 정보에 심혈을 기울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책을 처음 만날 때, 저자가 나(독자)에게 꼭 하고 싶은 말들의 핵심 결정이 표지에 담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표지를 보면 그 책이 말하고 싶은게 무언가가 어느 정도 와닿기 때문이다.
앞표지에 ‘타오르는 시간’이라는 제목과 함께 그 아래에 여행자의 인문학이라는 말이 있다. 여행자? 인문학? 그 일곱자에서 벌써 우리는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낄 수 있다.
뒤편으로 뒤집자 뒷 표지 맨 위에 쓰인 말 ‘관광객은 언제 여행자가 되는가’ 와 ‘타오르는 시간을 어떻게 경험할 것인가’ 가 먼저 보인다. 엇...첫 줄부터 무척 마음에 든다. 관광‘객’은 언제 여행‘자’가 되는가... ‘객’은 손님이고 대접받는 자이자 주체가 되지 못한 자이다. ‘자’는 주인이자 스스로 행위로 나서는 자이며 주체로서 존재한다. ‘관광’과 ‘여행’도 그러하지만, ‘객’과 ‘자’의 대립도 뚜렷하다. 저자는 관광객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여행자가 되어야 한다고 일갈하면서 그럴 때만이 타오르는 삶의 시간을 경험할 수 있다고 소리지른다.
그 아래엔 ‘관광에서 여행을 구제하는 여행자의 인문학’ 이라 적혀있다. 즉, 저자는 관광과 여행을 구분하며 (그것도 여행이라는 단어에 무척 호의적으로) ‘관광’에서 ‘여행’을 ‘구제’하는 ‘여행자’의 ‘인문학’ 이라는 표현을 쓴다. ‘관광’과 ‘여행’이 무엇이며 그 둘이 어떻게 다른 지는 조금 후 살펴보기로 하자. 지금은 ‘여행’이 권태로운 일상에서 벗어나 활활 ‘타오르는 시간’이 될 수 있고, 되어야 한다는 저자의 생각이 이 책의 핵심이라는 것에 주목하자.
그래서 제목이 ‘타오르는 시간’ 인 것이다.
2. 화두
저자가 1) ‘관광’과 ‘여행’을 구분하고 2) ‘관광’에서 ‘여행’을 구제해야 한다고 하는 표지를 보고 참 기대가 되었던 것은 나 또한 비슷한 생각을 해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관광’과 ‘여행’은 다른 것인가? 다르다면 무엇이 다르고 어떻게 구별해야 하는가? 아마도 이런 생각을 한 번쯤은 해본 사람들이 꽤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건 ‘관광’과 ‘여행’이라는 단어로 꼭 집어서 표현되지 않더라도 여행의 내용, 기준, 질 등을 평가하고 그를 통해서 자신의 ‘여행’을 계획할 때 종종 부딪치는 문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이 고민을 하게 된 것도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흔히 가족 여행을 계획할 때 부딧치는 고민이 좀 저렴한 패키지 관광을 할 것인가, 아니면 자유 여행을 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풍광이나 역사적 유물을 생생한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그 공간속으로 가서 녹아드는데 의미를 두는 사람들이 많다. 이 부류의 사람들은 주로 더 저렴한 패키지 상품 (일정의 대부분은 명소 관광으로 채워져 있다)을 선택하기도 하며 모르는 사람과 단체가 되어 함께 움직이는 것을 꺼려하지 않는다. 이는 여행사나 관광지의 이해 관계와도 맞아 떨어져 관광의 대량 생산, 대량 소비의 원천이 된다.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명소를 보는 것에 그닥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여행은 쉬자는 것이고, 평소에 못 해본 엑티비티들을 즐기며 맛있는 것도 먹고 하는 휴식과 힐링의 시간이지 도떼기 시장처럼 북적거리는 관광 명소에서 유명한 것을 눈으로 직접 본다는 흥분에 연신 사진기와 핸드폰의 셔터를 눌러대는 걸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여행사를 통하지 않고 스스로 계획을 짜거나 여행사를 끼더라도 비행과 숙박등의 최소한의 도움만 받고 일정의 대부분을 자유 여행이나 휴식, 엑티비티로 채운다. 설령 관광 명소를 들르는 걸 계획한다 하더라도 자신이 꼭 보고 싶고 있고 싶었던 최소의 (그러나 충실한) 선택만을 한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은 종종 수동적이고 객체로 머물러야 하는 ‘관광’(특히 패키지 관광)을 무지 싫어한다. 나 역시 그러했고.
나는 그래서 패키지 ‘관광’ 이냐 자유 ‘여행’이냐 하는 선택에서는 언제나 ‘여행’을 택했으며 마침 사용되는 용어 조차 비슷한 듯하면서도 딱 갈리는 용어 인지라 ‘관광’과 ‘여행’에 대해 비슷한 점과 다른 점에 대한 고민을 한 적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했을 것이다. 선택의 문제이니 어찌 고민을 안했겠는가)
‘관광’은 그 한자어에서 미루어 볼 때 觀光 즉, 빛을 보는 것이다. 빛(유적, 명소, 문화 유산 등)을 본다는 의미는 감각 기관을 통해서 정보를 획득하는 것이다. 외부의 세계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은 본질적으로 수동적일 수 밖에 없다. 주체 밖에 있는 외부 환경의 정보를 감각 기관을 통해서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여행’의 한자어 旅行 의 行은 외부 사물, 환경에 대한 나의 주체적인 개입이자 외부에 작용하는 행위이다. 본질적으로 능동적일 수 밖에 없다.
생물이 환경에 대응하는 방식은 감각 기관을 통해 외부 정보를 받아들이고, 이를 분석하여 사유하고 그 결과로 환경에 영향을 가져오기 위해서 운동 기관을 사용하여 개입하는 것이다. 즉, 감각 기관의 정보 획득, 사유(획득한 정보의 처리), 운동 기관을 통한 환경에의 개입이 계속적으로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게 생물인 것이다.
마지막 남은 글자 旅를 보자. 군사 려. 무리, 많은 사람을 뜻하는 한자어이다. 그럼 직역하면 旅行는 ‘많은 사람이 행하는 것’이지 않은가. 왜 많은 사람일까? 나는 그 의미가 생명체의 본질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도킨스가 ‘이기적인 유전자’에서 생물의 모든 행위는 자신의 유전자를 널리 퍼뜨리기 위함이다 라고 말했듯이 많은 생물들이 여행을 하는 것은 바로 자신과 종의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 아닐까? 어느 생물 무리가 여행하다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환경을 만나서 자리 잡았다고 하자. 환경이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니 새로운 환경을 찾아나서는 여행을 그만두는 것이 좋을까? 모든 생물이 다양성을 획득하려는 이유는 환경이 고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유리한 좋은 환경은 언제든지 열악하고 험한 것으로 바뀔 수 있다. 좋은 환경이라고 안심하고 있는 유전자들 보다 오히려 생존에 유리한 것은 다양성을 획득하여 변화할 수 있는 환경에 대비하는 유전자들일 것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환경을 찾아나서는 생물체의 여행은 본질적으로 생물의 특질일 수 밖에 없지 않는가? 이는 이미 다섯 번의 대멸종을 거치면서 그 대멸종에서 살아남은 생물들이 그 증거이다. 엘리자베스 콜버트의 책 '6번째 대멸종'에 보면 4번의 대멸종에서도 꿋꿋이 살아남았던 암모나이트가 그 두족류 친척인 앵무조개는 살아남았음에도 5번째 대멸종(유카탄 반도에 떨어진 운석이 원인이 되어 대멸종이 유래되었다고 추측한다)은 피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왜 앵무조개는 살아남았는데, 암모나이트는 멸종되었을까? 몇 학자들은 그 이유를 유생의 크기에서 찾는다. '암모나이트의 알은 0.25 mm 밖에 안될 정도로 매우 작다. 그 알에서 태어난 유생은 운동 기관이 없어서 수면 근처에서 물결을 따라 떠다니기만 했다. 반면에 앵무조개의 알은 거의 2.5 cm 으로 무척추 동물의 알 중 가장 크다. 산란 후 1년이 다 되어 세상에 나오는 앵무조개 유생은 몸집만 작은 성체와 다름이 없으므로 태어나자마자 먹이를 찾아 심해까지 헤엄쳐 갈 수 있다. 아마도 소행성 충돌의 여파로 해수면의 환경은 암모니텔라가 생존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지만 깊은 물속은 그렇게 심각한 상황이 아니었을 것이고, 그 덕분에 새끼 앵무조개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 '암모나이트에게는 잘못이 없었습니다. 플랑크톤처럼 떠다니는 암모나이트 유생은 그것이 존재하는 동안 훌륭하게 살아갔을 것입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종을 확산시키는데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었을까요? 그러나, 결국 그 때문에 스스로 파멸에 이르렀지요.'
어떤 특질이 다음에 올 위기에 유리한 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렇기에 생물학적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은 종과 유전자의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자신의 유전자를 널리 퍼뜨리고 다양한 환경에서 생존하기 용이하게 적응하기 위해서 우리는 본질적으로 모험을 원하게 하는 유전자를 소유하고 있다. 이미 적응되어 있는 집에서의 안락을 포기하고 두려운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게 하는 힘은 바로 그 유전자의 발현이 아닐까? 두렵긴 해도 가슴뛰는 흥분을 아드레날린이라는 생화학적 선물로 주면서 말이다.
그런데 이 모험이라는 것은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요구한다. 최초로 뭍에 오른 물고기가 있었던 것처럼 알 수 없는 미지의 공간에 자신을 던지면서 우리의 유전자는 밖으로 걸어나가라고 명령하고 있다. 설혹 그 길이 낯선 생물들과의 조우나 풍토병, 굶주림으로 인해 자신의 생명을 이슬처럼 던질 수 있다 할지라도 말이다.
주인공들이 자신의 목숨을 건 여행을 한다는 점에서 저자의 책에서도 여러 번 인용되고 있는 ’천일야화‘의 ’신드바드‘ 이야기나, ’오딧세이‘의 그 험란한 저주받은 귀향길 역시 예외일 수는 없었다. 뱃사람 신드바드는 온갖 우여곡절과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모험 속에 살았다. 짐꾼 신드바드에게는 이 목숨을 건 모험이 없다. 그는 안락한 장소에서 (그것조차도 자신의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것에 불과하지만) 그저 '듣기'만 한다. 감각 기관의 충족은 있으나, 사유를 거친 '행'이 없는 것이다. 그가 신세를 비관하고 불평등을 불평했다면 그에 대한 극복은 자신의 '행'에서 찾아야하지 않았을까?
집에 서재가 있다는 건 참으로 축복이다. 더군다나, 그것이 유년의, 이제 갓 글 읽기의 즐거움을 배워 흡사 휴지가 물을 빨아들이듯이 이 것 저 것 인쇄된 매체들에 흠뻑 젖는 시기에 책들이 가득 꼿혀있고, 종이 냄새가 그윽히 나는 방이 따로 있었다면 그 아이의 놀이터는 바로 그 곳이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국문학을 전공하신 교육자이셨고 당신도 책을 무척이나 아끼고 좋아하시는 분이셔서 (지금도 본가에 가면 아버지 살림살이의 구할 이상이 책과 책장이다) 조그마하지만 집 모퉁이 방 하나에 서재를 꾸미셨고, 그 곳은 여덟 살된 나에겐 보물 창고이자 놀이터였다. 학교 다녀오면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그 곳에서 보냈던 것으로 기억나는 것보면.
그 곳에서 찾아낸 전리품들 중 단연 압권은 내 팔뚝 서너개 합친 것 이상의 두께를 가진 '아라비안나이트' 였다. 서재에 있는 모든 책들 중 단연 두께로는 최고 였으며, 그런 책이 무려 네 권이나 되었다. 왜 그 책에 끌렸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느 날 부턴가 나는 천일의 이야기를 조금씩 읽어나가고 있었다. (그 책들은 리처드 버튼 판이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아라비안나이트를 몇 몇 쪼개져 잘 다져진 이야기로 알고 읽고 느꼈을 때 난 정말 천일 동안 이루어지는 이야기들을 1일 이전부터 시작해서 1000일 끝나고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될 때까지의 이야기를 다 접할 수 있었다. 물론, 여덟살 짜리에게 그 책은 너무 야하고, 난삽했고, 어려웠다. 그런데, 그 때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같다. 그냥 읽고 흡수하고 그런 과정이 마냥 좋아서 읽었던 것이다. (여덟살 짜리가 이해하기엔 성적 지식이 터무니없이 부족한 부분도 그냥 그렇구나 받아드리며 읽었던 것같다. 그러고보면 '아라비안나이트'가 나에겐 최초의 성교육지인 셈이다)
그게 가능했던 것은 '아라비안나이트'가 기본적으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아이에겐 비록 목숨을 거는 모험은 아니지만, 목숨을 거는 모험을 하는 주인공들과 함께 웃고 울며 공감하고 즐기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커서 마주한 세상은 어릴 적 황홀했던 모험과 여행이 더는 존재하지 않는 곳이었다. 이미 전 세계는 더 이상 그럴 수 없을 정도로 안전했고, 모험은 계획된 엑티비티의 허용된 범위내에서만 가능했다. 그러므로, 저자도 책에서 이야기 하듯 이제 오늘날의 여행은 관광안에서만 가능하다. 물론, 아마존이나 아프리카 오지 탐험이나 극렬한 익스트림 스포츠에 뛰어드는 것이 아직도 가능한 모험 아니겠느냐는 반문이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이 또한 잘 조율되고 확장된 위험일 뿐, 미지에 대한 공포와 싸우며 두려움을 이기고 한 발 한 발 아드레날린에 쩔어서 내딪어야 하는 숨막히는 모험은 결코 아니다. 죽을 수도 있기에 가입하게 되는 여행자보험의 존재는 오히려 역설적으로 여행자가 확률적, 통계적으로 이미 안전하다는 것을 보여줄 따름이다.
여기까지가 이 책의 첫 번째 화두였던 1) ‘관광’과 ‘여행’은 어떻게 다른가? 에 대한 내 사유의 여정이었다면, 지금부터는 이 책의 두 번째 화두인 2) ‘관광’에서 ‘여행’을 구제해야 한다. 어떻게? 에 대한 내 사유를 정리해보자.
관광-수동-객체-감각-외계의 반영 // 여행-능동-주체-운동-외계로의 투사 로 무리지어질 수 있는 화두 1)에서 각 그룹은 서로 어떻게 연관되어지는 것일까? 그 두 집단 사이를 매개하는 가장 핵심적인 교량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사유’라고 사유한다.
생물은 자신의 생존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외계 환경을 정확하게 반영해야만 자신의 생존 제1 목표인 ‘유전자를 퍼뜨려라’를 달성하기 쉬워진다. 그래서 그들의 감각 기관은 그것이 곤충의 겹눈이든, 어류의 옆줄이든 외부 환경을 빠르고 정확하게 반영하여 환경에 대한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는데 도움을 주도록 설계되어 있다. 눈 앞의 상대가 먹이인지 아니면 날 잡아먹을 포식자인지 아는 건 내가 상대를 잡아야할지 아니면 도망쳐야 할 지를 결정하게 하는 결정적 단서가 되는 셈이다.
우리가 흔히 오감이라고 부르는 시,청,후,미,촉의 감각은 이러한 외계 환경을 반영하여 내 행동을 결정짓게 하는 정보를 획득하게 한다. (물론, 오감 외에도 다른 감각들도 존재한다. 대표적인 것이 물의 흐름, 수압, 진동등을 감지하게 하는 어류의 옆선이라는 감각 기관이다. 이외에도 상어에서 보이는 전류와 전기장을 감지하는 로렌지니 기관등도 있다. 상어는 '먹이를 발견하는 과정에서 먼 거리일 때는 냄새와 소리가 가장 중요하게 사용하는 감각이고 근거리일 때는 옆줄 감각과 미각에 의존하며 마지막 공격 단계(1m 이내)에서는 전기장 감지 기관을 최 우선으로 사용하여 입을 정확히 먹이에 갖다 댄다'고 한다. 즉, 상어는 오감이 아니라 옆줄과 로렌지니 기관까지 모두 칠감을 가지고 있다) 이 정보는 뇌에서 분석, 처리되어 외계에 대한 생물의 반응, 행동을 결정하게 한다.
즉, 외부 환경계의 반영 도구로서의 감각 기관과 외부 환경에 대한 주체의 행동 수단으로서의 운동 기관이 있고, 그 사이에는 수집한 정보를 분석, 처리, 판단하는 중추 기관인 신경 기관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신경 기관의 핵심은 모든 척추동물과 대부분의 무척추동물에 있어서 신경계의 중추가 되는 기관인 뇌이다. 이 뇌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생각, 사유 아닌가? 감각과 운동을 통합하는 이 사유가 없다면 생물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Cogito, ergo sum’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 책의 두 번째 화두였던 2) ‘관광’에서 ‘여행’을 구제해야 한다. 어떻게? 에 대한 내 생각은, 그러므로 ‘사유로서’ 이다.
그게 저자가 자신을 ‘글쓰기의 낙원’에서 스스로 추방한 이유며, ‘고작 100여 일의 관광/여행을 다룰 책의 1부를 쓰는데 몇 년이나 걸린 이유이며, 이 책이 여행기이면서도 정작 1부(그러니까 전체 기획의 절반) 가 끝날 때까지도 여행 첫 날을 못 벗어나고 있는 이유 아닐까?
이 여행기는 물론 저자의 스페인과 모로코 여행이라는 구체적인 사건을 기반으로 쓰여졌지만, 그 구체적 장소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스페인이 아니라 싱가폴, 모로코가 아니라 태국이라 할지라도 이 여행기가 크게 달라졌을 것같지 않은 게, 이 책의 진정한 여행은 오히려 저자의 머릿속에서 진행된 ’사유의 여행‘ 아닐까? 그래서, 이 여행기는 처음부터 묵직한 화두를 던지며 저자와 함께 사유의 여정을 떠나기를 권하고 있는 것이다.
독자인 내 입장에서도 이 여행은 무척 흥미진진하다. 자신이 과거에 잠시 고민하다 그 밑바닦이 깊지 않아 쉽게 내려놨던 그 여정을 과연 이 대가는 어떻게 ’사유‘할까? 그는 나를 어느 산, 어느 골짜기까지 이 사유의 행복한 여정에 데려가 줄까? 이런 기대감이 책표지부터 나를 흥분시키는데, 이 책이 어찌 재미가 없을 수 있을까?
단, 이 책의 상업적 성공 가능성은 .... 참으로 암담하다. (뭐...나랑 상관은 없지만. 악담을 하는 것이 아니라 ... 저자도 어느 정도 이를 알고 있는 것같지만, 특유의 고집(?)으로 자신의 길을 우긴 것은 아닐까?)
일단, 이 책. 하드 커버이다. 하드 커버 책은 딱 보면 책꽂이에 진득하니 꽂혀 있는게 어울리는 책이다. 여행기는 잘 팔리려면 재미를 주거나, 정보를 주거나, 둘 다를 줘야 한다. 요즘같이 재미와 정보 모두 쉽게 유튜브에서 다이제스티브하게 얻는 세상에 하드커버라니. (심지어는 요즘 드라마나 영화도 유튜브 요약본을 보는 것으로 끝내는 사람들도 많은 세상에) ’나 쉽지 않아요~‘ 라는 냄새를 폴폴 풍기며 철갑을 두루고 있다니. 쉽고 재미있게 잘 읽힐 수 있다는 냄새를 퐁퐁 풍겨서 독자들의 도전의식을 고취시킬 수 있는 소프트 커버의 책이 더 다가가기 쉽지 않을까? 또한, 내가 편집자라면 그나마도 인문학적 재미를 줄 수 있는 4장 ? 7장만 살리고 정작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의 핵심인 머리글에서 3장까지의 무려 170 페이지에 달하는 글을 전체 삭제, 또는 최소한 2-30 페이지 이내로 줄일 것을 작가에게 권했을 지도 모르겠다. 마케팅 초점을 ’관광 명소들에 대한 지식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재미있는 인문학적 지식의 보고‘, ’재미와 지적 호기심 만족‘. ’그 곳으로 여행가기 전에 최소한 한 번쯤은 읽고 가야 할 알아두면 쓸 데 있는 신기한 인문사전‘ 으로 잡고 작가를 설득했으면 훨씬 더 상업적으로 성공한 책이 되었을까? 한 가지 분명한 건 그렇게 해도 하나의 훌륭한 책이 나왔겠지만, 그러나, 그건 세상에 많은 비슷한 여행기들에 하나를 더 더하는 것밖에 안되었을 것이다.
흥미롭게도 2022년 12월 15일 공개되어 세계적인 화제가 되고 있는 대화형 인공지능 채팅 프로그램인 chatGPT 에게 동일한 화두를 던져 보았다.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동일한 질문을 반복하는 것이 가능하므로, 앞에 붙은 번호는 같은 질문에 대한 답변들이다.)
[ 관광은 여행과 어떻게 다른가? ]
1) 관광은 일반적으로 관광지나 명소를 찾아가며 재미있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관광은 주로 한국에서 외국으로 가거나, 외국에서 한국으로 오는 경우에 일어납니다. 관광은 주로 일정이 정해져 있고, 정해진 관광지나 명소를 찾아가며 즐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행은 관광과는 조금 다릅니다. 여행은 새로운 곳을 찾아가며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행은 주로 자신이 원하는 장소나 지역으로 가서 자신만의 일정을 짤 수 있습니다. 여행은 새로운 경험과 새로운 장소를 찾아가며 즐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2) 관광과 여행은 일반적으로 서로 다른 개념이지만, 일부 사람들은 이 두 개념을 서로 교차해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관광은 일반적으로 어떤 장소를 잠시 정착해서 그 장소의 관광지, 역사적 장소, 예술적 장소 등을 살펴보는 활동을 의미합니다. 관광은 주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장소를 살펴보거나, 일반적으로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소를 살펴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행은 일반적으로 집이나 작업 장소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장소로 이동해서 잠시 체류하는 활동을 의미합니다. 여행은 주로 장거리를 이동하는 경우가 많고, 새로운 장소와 문화에 접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관광과 여행을 서로 교차해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3) 관광과 여행은 일반적으로 서로 다릅니다. 관광은 어떤 지역, 도시, 국가 등의 장소를 방문하고 그 장소의 역사, 문화, 전통, 자연 장관 등을 살펴보기 위한 활동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일본의 요가, 일본의 정원, 일본의 자전거 관광과 같은 경우에는 일본을 방문하고 그곳의 정원과 자전거를 즐기는 것이 목적입니다. 반면, 여행은 일반적으로 잠시 떠나서 새로운 장소를 찾아가고 새로운 경험을 즐기기 위한 활동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유럽 여행과 같은 경우에는 유럽 여러 나라를 찾아가며 새로운 문화와 전통, 자연 장관 등을 즐기는 것이 목적입니다.
4) 관광과 여행은 사실 상당히 유사한 개념이지만, 여행은 일반적으로 관광과 비교해서 조금 더 자유로운 의미로 사용됩니다. 관광은 장소나 지역을 살펴보는 것을 주로 의미하고, 일반적으로 계획된 일정과 체계가 있고, 장소를 살펴보는 것이 주된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여행은 조금 더 자유로운 의미로 쓰이며, 새로운 장소를 살펴보거나 여행을 계획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행은 주로 개인이 즐기기 위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조금 더 자유로운 일정과 장소 선택이 가능합니다.
[ 관광객은 언제 여행자가 되는가? ]
1) 관광객은 언제든지 여행자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가까운 지역을 여행하기 위해 여행자가 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전 세계 어디든 여행을 가기 위해 여행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장소나 문화를 체험하고 새로운 사람과 소통하려고 여행을 가기 위한 의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2) 관광객은 언제든 여행자가 될 수 있습니다.관광객은 장소를 찾아보거나 장소에서 관광을 하고 있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즉, 언제든 새로운 장소를 찾아가는 사람은 여행자가 될 수 있습니다.장기간의 여행을 계획하거나 기존의 여행과는 다른 장소를 찾아가는 경우에도 여행자가 될 수 있습니다.장기간의 여행을 계획하고 있거나 새로운 장소를 찾아가려는 경우에는 여행자가 될 수 있습니다.
3)관광객은 언제든지 여행자가 될 수 있습니다.관광객은 자신의 주거 지역을 벗어나 다른 지역을 찾아가는 사람을 의미합니다.이는 지역을 잠시 찾아가거나 한국을 잠시 찾아가는 외국인이나 지역을 잠시 찾아가는 국내 사람 모두 관광객이 될 수 있습니다. 즉, 여행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사람이 여행자가 되고, 이를 찾아가는 사람이 관광객이 됩니다.
[ 타오르는 삶의 시간을 어떻게 경험할 것인가? ]
1) "타오르는 삶의 시간"이란 개념은 정확한 정의가 없어 정확한 조언을 제공하기 어렵습니다.그러나 일반적으로 인간의 삶에서 "타오르는 삶의 시간"은 각자가 경험하고 있는 삶의 상황과 생각, 감정 등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이러한 "타오르는 삶의 시간"을 경험하고자 한다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직접적으로 살펴보고 정리하는 것이 좋습니다.예를 들어 자신의 삶에 대한 생각과 감정을 적은 일기나 작품을 작성하는 것, 친구나 상담사와 이야기하는 것 등이 좋은 방법일 수 있습니다.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인지하고 정리할 수 있고, 삶의 의미와 목표를 찾거나 재정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타오르는 삶의 시간"을 직접 경험할 수 있습니다.
2) "타오르는 삶의 시간"이란 개인의 생각과 감정에 따라 상이할 수 있습니다.어떤 사람은 새로운 경험, 자신의 생각과 생각을 공유하거나 새로운 사람과 친해지는 경회에서 타오르는 삶의 시간을 경험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나 스포츠 활동, 예술 활동 등으로 타오르는 삶의 시간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과 춤추며 즐기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며 감동을 느끼는 경우도 타오르는 삶의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중요한 건 자신이 즐기고 흥분할 수 있는 경험을 갖게 될 수 있도록 자신의 관심사와 취미를 찾아보는 것입니다.
나는 원래 저자가 아닌 타인의 서평이 책 속에 들어가 있는 것을 싫어한다. 더군다나 그 서평이 책을 열자마자 본문보다도 앞에 있는 경우에는 거의 백퍼센트 안 읽고 본문으로 넘어간다. 그 책의 저자와도 제대로 대화하는 것이 힘들면서도 재미있는데, 다른 사람이 '내가 읽었더니 이 책이 이러저러하더라' 라고 흡사 정리문 던지듯 던지는 것이 그 책에 대한 내 선입견을 형성해버리는 것이 싫어서 저자의 머리글이 아닌, 타인의 (주로 저명한 이의) 서평이 책 본문보다 앞서 있으면 그냥 넘기고 본문부터 본다. 책의 끝부분에 붙어있는 서평은 오히려 재미있게 본다. 이미 내가 다 읽은 책에 대해서 남의 견해가 어떤가를 보는 것도 한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영화나 드라마의 스포일러를 싫어하는 심정과 비슷하다고 할까?
그런데, 지금 내가 쓰려는 글이 어떤 의미에서는 원책의 내용과 사유과정을 미리 스포하는 독후감이 될 수도 있겠다 싶어 저자와 함께 여행해야 하는 사유의 여정은 기술하지 않으려 한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중 아직 책을 못봤고, 온전한 독서의 즐거움을 만끽하고자 하는 분들을 위하여 혹시 모를 스포의 위험성을 배제하기 위하여 지금까지의 내 글은 저자가 던진 화두와 그 화두에 대한 내 생각을 위주로 적었다.
하지만, 이 책의 머리글은 책 전체의 저술 과정과 사유의 전개 과정에 대해 기술되어 있기에 핵심적인 내용에 대해 인용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서 저자가 왜 이 책을 썼는 지, 이 책을 통해 얻고자 하는 목적은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이 독후감이면 으례 마땅한 덕목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2017년 연구년을 맞아 아내와 함께 스페인과 모로코를 3개월 넘게 여행했다. 이 책은 그 여행에 대한 기록을 여행기로 출간하고자 하는 동기에서 시작되었다. 매번 글쓰는 작업 도중 아내를 괴롭히는 것이 미안하였기에 함께한 여행에 대한 글을 편안한 글쓰기 작업을 통해 아내에게 헌정하려한 것이다. 하지만, 결국 5년이나 흐른 뒤에야 출판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 작업이 결코 녹녹하거나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 이유로 '자신이 사회학도이기에 여행기가 처한 맥락과 그것의 작용에 대해 사유하고 나아가 여행기 자체가 그런 성찰을 내면화할 것을 촉구'하기에 다른 여행기처럼 여행 첫날의 여행담으로 쉽게 시작할 수 없었음을 말한다. 그러므로, 저자의 글쓰기는 편안하기는 커녕 이번에도 지난한 사유의 미로에서 지지부진하게, 혹은 풍부하게 고뇌할 수 밖에 없었으며 이 사유의 과정이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형성한다. 결국 이 책은 전체 여행기의 1부에 해당되는 절반만이 먼저 출간되었으며 그것도 시간상으로는 100일 여정중 첫날 단 하루만을 포함하고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 책을 읽는 재미는 바로 그러한 저자의 사유 과정을 뒤쫒으며 함께 하는 속에서 얻어진다.
이 사유는 '관광'과 '여행'을 구분하는데서 출발한다. 그 사유 위에서 '모든 관광객은 여행자를 꿈꾸지만, 이미 여행은 관광 안에서만 가능한 시대에 '여행자'라는 자의식은 허위의식이 '되었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관광의 반짝이는 포장지 속은 비어있을 때가 많지만, 그 안에서 여행이라는 달콤한 사탕이 툭하고 떨어질 때가 있는' 것이다. '관광이라는 형식 속에서 여전히 숨 쉬고 있는 의미를 향한 충동으로서의 여행'의 의미로.
이런 세계에서 여행기가 기능하는 방식은 무엇일까? 저자는 양 극단의 대조적인 여행기 두 개를 검토한다. 하나는 하이데거의 그리스 방문기인 '체류'이고 다른 하나는 바르트의 일본방문기인 '기호의 제국'이다. '하이데거의 사상 전체에서 그리스가 가진 의미를 생각하면, 그가 73세에 비로서 겨우 며칠동안 방문했다는 사실은 놀라운 데가 있다.' 그 이유를 하이데거는 자신의 책에서 '오늘의 그리스가 고대 그리스와 그것에 고유한 바가 환히 밝혀지는 것을 가로막아 실망에 빠질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라고 썼다. '대상과 지나치게 농밀한 해석학적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이 그 대상에 접근하는 것을 오랫동안 방해한 셈이다.' 반면에 '롤랑 바르트에게 일본은 전통에 매개된 영향사가 없는 나라였다.' '이 차이로 인해 두 여행기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서술된다.' '하이데거에게 있어서는 여행은 이동이 아니라 체류이며, 그렇기에 그에게는 다른 관광객이 무지 불편한 존재'였다. '대상과 의미론적으로 내밀한 관계를 맺지 못하고 사유를 포기'하며 연신 카메라 셔터만 눌러대는 관광객들을 경멸한다. 바르트의 '기호의 제국'에서는 미지란 그저 호기심과 관심의 대상으로서 편안할 따름이다. 그러니 그에게는 다른 관광객이라는 존재가 불편하지 않다. 그에게는 '여행이란 대상의 내적의미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관조와 음미의 과정이 대상의 표면을 부드럽게 스치며 차이를 관조하고 음미하는 과정'일 뿐이다. '대부분의 여행기란 이 두 가지 여행기가 섞여 있는 형태이다.'
저자는 '여행작가가 잘 알려진 관광지를 피해서 어떤 진정성을 경험한 장소를 여행기에 기록하지만, 그런 행위야말로 그 장소를 평범한 관광지로 전락하게 만드는 역설적 결과에 직면하게 마련' 이라며 '여행기는 장소와 그것이 열어주는 풍경을 미학화하고 밀도 있는 의미를 제공하는 관광객/여행자의 문화적 능력을 과시하는 현학적 작업에 그칠 수도 있다.'고 경계한다.
'하지만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쓰는 이에게 여행기는 관광을 여행으로 전환하는 내적 과정이다. 여행기는 여행자 역할과 관광객 역할 사이에서 생기는 심리적 갈등을 다룰 수 있게 해주며, 관광/여행 대상과 자신 사이의 내밀한 대화를 표현할 수 있게 하며, 그럼으로써 대상뿐 아니라 자아를 표현할 수 있게 해준다. 요컨데 여행기는 관광 대상에 대한 지각적 '체험'에 붙박힌 자아를 소통 가능한 여행 '경험'의 지평으로 이끌어갈 여지를 품고 있다.' 이것이 바로 저자가 이 책을 저술한 목적이다.
나 역시 그러했지만, 이 글을 읽는 독자들 모두 '관광에서 여행을 구제' 하시길 바란다. 저자의 사유 과정을 함께 여행하는 즐거움을 만끽해 보시길 권해드린다.
이 글을 마치는 지금 무척 궁금한 것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이 책의 표지 그림에서 신전(건물)에 걸려있는 시계의 로마문자 표지판 중 4시에 해당되는 것이 흔히 우리가 아는 로마자인 Ⅳ 가 아니라 ⅡⅡ (문자판에 같은 문자가 없어서 유사한 것으로 대신했슴) 으로 되어있는 것이다. 이 표지 그림은 조르조 데 키리코의 '시간의 수수께끼'를 잘라서 사용한 것으로 키리코가 1911년에 왜 Ⅳ를 저렇게 그렸을까 궁금하다.
또 다른 하나는, 이 책의 집필 동기가 처음에는 저자의 까탈스러운 글쓰기에 고생하는 아내가 안스러워 선물로서의 글쓰기를 보내고 싶다는 소박한 이유에서였다고 한다. 과연 이번에는 까탈스럽지 않은 글쓰기 시간이었을까? 왠지 아닐 것같다는 생각에 미소지어 보며 독후감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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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읽은 최악의 책이다. 글 군데군데 본인의 느낌을 지식과 함께 나열해 놓았는데 그 지식들이 유기적으로 연기되지도 않는다. 지식이소개될 때도 자세한 설명도 없다. 본인 머릿속에서 알고 있는 몇몇의 철학 예술 지식을 이리저리 나 열을 해놔서 마치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적국의 암호를 해독해야 하는 느낌이다. 잘 읽히지도 않고 글도 난잡하고 내가 도대체 이 시간을 들여서 이 책을 읽었는지 의미를 모르겠다. 책값은 또 왜 이리 비싼지 쓸데없이 중요하지도 않은 책을 하드커버로 해놔서 접근성은 이래저래 떨어지고... 하여튼 안 사고 안 읽는 이유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