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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소통이 필요해!
"우리는 소통이 필요해!" 내용보기
위르겐 하버마스는 현재 유럽을 대표하는 사회 철학자다. 그는 1929년 생으로, 80세가 넘었음에도여전히 활발하게 활동중이다. 사실 동시대 철학자인 푸코나 데리다, 들뢰즈에 비해 이 분. '하버마스'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한동안 실존주의에 빠져 있기도 했고, 그의 사상이 '의사소통 행위이론'이라는데'토론'을 중시하는게, 너무 이상적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우리는 소통이 필요해!" 내용보기

위르겐 하버마스는 현재 유럽을 대표하는 사회 철학자다. 
그는 1929년 생으로, 80세가 넘었음에도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중이다. 



사실 동시대 철학자인 푸코나 데리다, 들뢰즈에 비해
이 분. '하버마스'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한동안 실존주의에 빠져 있기도 했고, 
그의 사상이 '의사소통 행위이론'이라는데
'토론'을 중시하는게, 너무 이상적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내가 하버마스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좀 엉뚱하게도 그의
장애 때문이었다.
그는
선천성 언청이로 태어났다고 한다.
그래서 다섯 살 때 수술을 받았지만
여전히 그의 말을 알아듣기 힘들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장애를 뛰어넘어 현존하는 철학자 중
위대한 인물이 되었다. 



또한 그가 강조하는 사상 중 
'의사소통'

"철저한
민주주의 없이는 법치국가의 쟁취나 유지는
더 이상 불가능하다."


는 말과 함께
'토의 민주주의'를 강조한다고 한다. 
우리의 정치 상황과 잘 들어맞는 말 아닐까.
국민의 의견이 무시되고 있는 현재 상황과 말이다. 




그래서 우리와 거리가 좀 멀게 느껴지지만
니체와 칸트와는 또 다른 독일 철학자.
규범과 법, 윤리의 문제에 결코 타협하지 않는 철학자.
하버마스의 이야기를 들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2세대 프랑크푸르트 학파

이성의 소멸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다!



 

 

하버마스는 '2세대' 프랑크푸르트 학파다.
굳이 이런 어려운 걸 알아야 될까 싶지만
'1세대' 프랑크푸르트 학파에 속하는 철학자들이
워낙 유명해서, 이 둘을 비교해 보는게 좋을 듯 하다.

'1세대' 에는 벤야민, 아도르노, 마르쿠제, 호르크하이머, 프롬 등이 속해 있고 '2세대' 대표자는 하버마스.
그리고 현재는 '3세대'인 호네트로 이어지고 있다.



하버마스는
1세대의 사상을 비판하며 춣발한다. 

1세대 철학자들은 문명화된 사회 전체가
'야만'에 
빠져 있다고 보았다. 

이들은
'이성'을 의혹의 눈길로 바라본다.
이들이 살았던 20세기 초는 상상하기 힘든 
인류 대학살이 자행되었고,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삶은 기계화되는 등 혼란스러운 시기였던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인간 '이성'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한편 하버마스는 이들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다.
그가 보기에 1세대 처럼
'이성' 전체를 부정할 필요는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계몽주의를 새롭게 쇄신하기로 한다.
이것은 우리의 역사를 과거로 되돌리자는 것이 아니다.
현재 우리 시대를 위해, 이 끝나지 않는 이성의 의무를
계속 수행하려는 의지다. 

'이성의 소멸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다.'




이에 더해 하버마스는
'과학주의'와 '실증주의'에 대해
비판하면서 유명해졌다.

여기서
'과학주의'인간의 모든 지식을 
과학적 지식으로 환원
하고자 하는
과학주의적 흐름을 말한다.
그는 이에 맞서서 과학은
가치 중립적이라고 주장했다.

인간의 모든 인식이 결코 과학적 인식으로 환원될 수
없으며, 과학적 인식은 인간의 특정 인식이나 가치를
전제할 수 밖에 없다고 강조한 것이다. 

이런 비판의식은 이후 그의 사상에서 꾸준히 지속된다.

 




의사소통 행위이론

'나'가 아닌 서로 소통하는 '우리'가 출발점



 

 

하버마스에 따르면 '1세대'들의 사유는 
주체-객체 모델에 입각한 '의식철학'의 패러다임에
구속되어 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유명한 명제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근대 철학은
주체의 자기의식을 모든 사유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데카르트적 주체가 세계를 구성하고 해석하는 틀이 바로
'이성'이다.


하지만 하버마스는 이러한 데카르트적 '나'가 아니라
서로 대화를 주고받는 '우리'가 모든 사유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근대적 주체는
'인간중심주의'나 
타자를 부정하는
'주체중심주의'라는 문제를 함축한다.
이러한 나의 시선 속에서 세계는 언제나 나에 의해
규정되고,
타자는 지배될 수 있는 수단, 대상으로
출현할 뿐이다. 

결국 이러한 도구적 이성은 한계와
'폭력성'을 갖는다.




이러한 근대적 주체에 대한 반성이 현대 철학의
중심 주제라고 할 수 있다. 
하버마스는 근대적 주체를 타자와의 의사소통적
상호작용을 통한 사회화의 산물로 설명한다.
그는 이러한 정의를 통해,
타자에 대한 인정과 
소통
을 전제하고 있다. 

 




그는 언어적, 사회적 존재인 인간에게는 
타자를 도구화하지 않고 타자의 타자성을 인정하는
의사소통 행위의 가능성 역시 존재한다고 말한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 상호 이해를 추구하고
서로의 행동을 조정한다. 



의사소통 행위 속에서
주체는 타자를 나와 동등한 주체로 인정해야만 한다.
만일 상호인정이 되지 않는다면 합리적 대화 자체가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버마스는 화자의 주장에는
세 가지 타당성 요구
진리, 규범적 올바름, 진실성 요구가 함축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이 개념을 통해 도구적 이성을 극복하고 
이성의 획일화를 비판할 수 있게 된다. 


 




생활 세계 식민화

'토의 민주주의'로 극복하기


 

 

 

하버마스는 가족, 학교 등 상호이해에 기초한
의사소통으로 유지되는 영역들에 화폐나 권력  같은
매체들이 침투하는 과정을 '생활 세계 식민화' 현상이라고 말한다.
이런 과정 속에서 생활세계는 '물화'된다.

예를 들어, 교육이 경제 성장을 위한 노동력 재생산 
과정으로만 여겨지고, 예술이 시장 논리로 지배된다는 것이다. 
이런 상항 속에서 노동력 또한 하나의 상품이 되고,
자본에 의한 노동착취는 공정한 교환 형태가 된다. 





하버마스는 이러한 현상의 극복을 위해
'토의 민주주의'라는 이론을 내놓는다.
이 이론은 성숙한
민사회의 공론과 
의회의 상호작용
에 의해 발전되는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것이다. 


시민들이 소통하는
'공론장'은 언론, TV, 인터넷 등 매우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이렇게 다양한 매체를 통해 형성된 시민들의 의사는 
의회의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반영되어야만 한다.
이를 통해, 민주주의가 활성화될 때 비로소
생활세계 식민화의 제어도 가능하게 된다.


 




 

 

그의 주장은 너무나 '이상적'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국민의 의견이 얼마나 
의회의 결정에 반영되고 있는 건지 답답하기만 하다.


하지만 이러한 우리의 수많은 공론들.
그 공론들이 쌓이게 되면 큰 힘이 되기도 한다.
하버마스가 바란 것은 결국, '실천'이 아닌가 싶다.

머리 속으로만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라! 공론화 하라!
그리고 나와 다른 '타인'을 인정하고 소통하라!





한국이 좀 더
'소통'이 잘 되는 나라가 되길.
그리고 타인의 말을
'잘 듣고 인정하는' 나라가 되길
바래본다. 
나같은 일반인 보다는, 정치가들이 읽어야 할 책 같다
YES마니아 : 로얄 m*******a 2016.01.2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