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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수학여행을 가 본적이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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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해보지 못한 것이 하나 있다. 수학여행을 가본적이 없는 것이 그것이다. 중학교때는 왜 못 갔는지 기억에 없지만 아무튼 어디로, 얼마동안 갔는지에 대한 기억 역시 전혀 없는 것을 보면 아마 학교에서 가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고등학교때에는 5,6년 선배들이 여행지에서 사고를 치는 바람에 학교에서 수학여행 자체를 금지했다. 바로 1년 밑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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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해보지 못한 것이 하나 있다. 수학여행을 가본적이 없는 것이 그것이다. 중학교때는 왜 못 갔는지 기억에 없지만 아무튼 어디로, 얼마동안 갔는지에 대한 기억 역시 전혀 없는 것을 보면 아마 학교에서 가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고등학교때에는 5,6년 선배들이 여행지에서 사고를 치는 바람에 학교에서 수학여행 자체를 금지했다. 바로 1년 밑 후배들부터 다시 가기 시작했으나, 그들 역시 사고를 치면서 영원히 금지되었다. 아마 지금도 그런지, 아니면 다시 수학여행을 가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나와 수학여행은 운이 닿지를 않은 것 같다. 그래서인지 당시에는 다른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수학여행 가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면 침만 질질 흘리면서 부러워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별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그땐 남들 해보는 것을 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조금은 서운했지 싶다.

 

  이런 수학여행은 한국과 일본에만 있는 대단위 단체여행으로, 우리나라의 경우 일제강점기 신민의식의 내면화라는 일본의 정책적 시도아래 시작된 식민의 잔재라고 한다. 이 책 [백 년 전 수학여행]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수학여행이 시작되었을 때의 모습을 살펴보고 있다. 저자는 과거와 현재의 시간적 거리감 속에서 수학여행을 더듬어보고 그 의미를 재구성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수학여행은 1900년을 전후해 철도가 부설되어 학교와 학년 단위의 장거리 여행이 가능해지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수학여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20년대 들어서이며, 수학여행지는 당연히 철도가 지나는 지역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는 단체객의 운송상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1900년대 경주가 수학여행지에서 찾아볼 수 없었지만 1920년대 철도가 개통되면서 수학여행지로 명성을 얻기 시작한 것이 그 단적인 예이다. 당시 수학여행은 교사의 인솔아래 학교에서 행하는 숙박여행으로 학생들에게 현장학습 및 단체생활의 학습경험을 제공하는 개념으로 통용되었으며 애국심 고취, 조선혼의 집단체험이라는 목적으로 이해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언론이나 지식인들이 학생들의 수학여행에 호의적이었고 적극 권장하기까지 했다.

 

  조선학생들의 수학여행지로는 명승고적지가 주를 이루었다. 특히 일본은 식민지배를 합리화하기 위해 평양과 경주를 선별적으로 조사 발굴하여 수학여행지로 삼도록 했다고 한다. 1920년대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수학여행지는 만주와 일본으로까지 확장되었지만, 1900년대 초부터 일제강점기 말까지 학생들이 가장 많이 찾았던 여행지는 경성이었다고 한다. 각 지역 학생들이 수학여행지로 경성에 온 것이다. 이는 1960~1970년대에도 비슷했던 것 같다. 시골에서 대부분 수학여행지로 서울을 택하였고 동물원과 식물원, 그리고 궁궐을 구경하는 것이 주를 이루었다는 기억이 있다.

 

  당시 수학여행을 다녀온 학생들은 기행문을 쓰는 것이 당연시되었다고 한다. 1920년대 조선의 중등학교 수학여행은 휴양과 쾌락을 넘어 역사, 지리, 이과, 인문 등 모든 현상을 관찰하고 지식을 함양하는 수단으로 인식되면서, 배워서 안 것과 보면서 느낀 것을 기행문에 담았고, 이런 기행문은 교지에 실리기도 하고 신문에 실리는 경우도 흔했다. 1930~1940년대 기행문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수학여행지로는 금강산과 경주였다. 그러나 태평양전쟁이 본격화되면서 수학여행의 소비성이 제한되고 황국 신민화의 이념성이 강화되면서 신사참배가 필수코스가 되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런 수학여행을 모든 학생들이 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당시에도 수학여행 경비를 마련하는데 부모들의 허리가 휜 것은 지금과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1930년대 수학여행을 제한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난 것은 바로 이러한 학부모들의 경제적 부담과 수학여행지에서의 사건사고 때문이었다. 수학여행 찬반론은 수학여행이 시작되면서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찬성하는 쪽에서는 교육적 효과와 신문물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을 주장했고, 반대하는 쪽에서는 학부모 부담과 못 가는 학생, 소비풍조, 겉핥기식 여행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루었다. 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닮아도 너무나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근래 들어서도 수학여행 무용론과 같은 다양한 논쟁이 반복되고 있다. 특히 세월호 참사와 같은 비극이 일어나면 각 학교들은 수학여행을 금지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다. 어떤 의미가 있는 토의와 협의 끝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무의미한 반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이러한 시대에 수학여행이 꼭 필요한 것인지, 필요하다면 다른 형태로 변화될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는 없는지에 대해 묻고 답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근대 백 년의 수학여행을 더듬어 보았다고 한다.

 

  수학여행은 학창시절의 소중한 추억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예전과 달리 지금은 굳이 수학여행이 아니래도 자신이 하고 싶은 여행을 쉽게 할 수가 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나는 수학여행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아이들은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모두 수학여행을 다녀왔다. 큰아이는 제주도(중학교)와 일본(고등학교), 작은아이는 금강산(중학교)과 제주도(고등학교)로 갔었다. 헌데, 그때 수학여행을 못 간 아이들이 반에서 열 명 가까이 되었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 모두가 참가할 수 없는 여행이라면 차라리 가까운 곳으로 다같이 소풍을 가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싶다. 백 년 전 수학여행을 읽으면서도 가지 못하는 학생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그 기간동안 무엇을 했을 지에 더 마음이 갔다. 이제는 수학여행에 대해 묻고 답하는 시간이 필요할 때라는 저자의 말이 공감이 간다.

k*****1 2018.09.06. 신고 공감 11 댓글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