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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녀장의 시대]라는 책 제목을 보자마자 너무나 자연스럽게 ‘가부장’을 대체하는 어떤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상상했다. 책을 다 읽고난 후의 나의 감상은 집안의 가장이 딸로 대체되었을 뿐 가부장의 비공식적인 규율은 ‘가녀장의 시대’에도 반복된다는 것에 대한 놀라움이었는데, 바로 이 부분이 굉장히 흥미롭게 느껴졌다.
책의 마지막에 있는 ‘작가의 말’에 이런 문장이 있다. **작은 책 한 권이 가부장제의 대안이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저 무수한 저항 중 하나의 사례가 되면 좋겠습니다.** 시대와 문화에 대해 고민하는 이슬아 작가가 가부장제의 폐해와 한계를 정확히 알고 있었을거라 생각한다. 보수없는 집안일은 당연히 엄마가 하고, 권위를 독차지한 가부장 아빠, 집에서 우선순위가 아닌 딸들, 이런 시대를 뒤로 하고 새 시대가 도래하길 바랐다는 작가의 말처럼 전복적이고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소설에 나오는 가족이 겉으로 갖추어져 있는 시스템을 전복시킨 형태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 안에 흐르고 있는 관계의 역동은 가부장 위계 시스템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느껴졌다. 가녀장은 가족 중 가장 돈을 많이 벌고, 모든 구성원들의 경외를 (존경과 두려움을 동시에) 받고 있다. 직원들은 가장의 눈치를 봐야 하며, 가녀장은 직원들을 ‘놀리고 평가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그녀가 가끔 선을 넘는 것은 적절한 보수와 보상을 통해 ‘입막음’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렇게나 직원을 잘 챙기는 훌륭한 나 자신’을 칭찬하는 달콤한 나르시시즘 타임 ㅎㅎ
이슬아 작가가 미디어에도 많이 노출이 되고 본인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 소설의 내용이 대부분 현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쉽게 추측할 수 있다. 물론 이 내용들이 현실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것이 미러링을 하려는 의도인지, 정말 ‘슬아’라는 주인공이 자신이 가부장과 다르다고 믿는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더욱 헷갈렸던 것 같다. 비꼬는 것일까? 아니면 정말 이렇게 믿고 있는걸까?
개인적으로 이 지점이 흥미로웠던 이유는, 지위가 높아질수록 공감 능력을 담당하는 뇌가 퇴화된다는 심리학 연구 때문이다. 어떤 형태의 그룹이든 위계가 생기고 권력과 지위과 높은 사람이 정해지면 (그것이 외부에서 정해준 것이든, 그룹 안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이든 간에) 권력을 잡은 사람의 뇌와 사고방식, 행동 패턴이 달라진다고 한다. 더 높은 지위와 혜택을 누릴수록 공감 능력이 떨어지고,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할 가능성이 크다는 연구 결과들이 많은데, 우리 가녀장 슬아도 자기애와 자기중심적인 면모를 발산하는 것을 보고 재미있다고 느꼈다.
한편, 어쩌면 우리 안에 여성에 대한 엄격한 기준 때문에, 여성(딸)은 그래도 아무리 가장이어도 공감능력은 갖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부모님을 저렇게 대하는건 좀 아니지 않나, 하는 잣대를 들이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 내용들에 가끔 갸우뚱한 지점들이 있긴 했지만, 인간적인 한계를 보여주는 슬아가 밉지는 않았다. 글이 재미있어서 하루이틀만에도 술술 빠르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고, 책을 함께 읽은 친구들과 감상을 주고받는 것이 특히나 재미있었던 책이다. |
| 이슬아 작가의 책을 읽기 시작한건 얼마되지 않았지만 술술 잘읽힌다는 것과 읽다 보면 피식피식 하면서도 그럼그럼 동조하다가 나는 왜 그러지 못했는가 라는 지점에 다다르게 되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인생을 바꾸는 이메일 쓰기라는 어이없는 제목의 책을 읽다가 가녀장의 시대에 관심이 생겨서 읽기 시작했는데 뭔가 페미니즘에 관한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예상과는 달리 그냥 또 냅다 본인의 일상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한다. 가녀장이 뭔가 대단한 개념일까 했는데 그냥 돈 많이 버는 딸이 있는 어느 집안의 이야기다. 약간 허구적이다 싶은 부분은 그녀의 부모가 일반적인 권위의식에 사로잡힌 분들이 아니라는 점이다. 진정한 어른들이시고 각자 삶의 철학이 있으신 분들이다. 가녀장이 뭐 대단한 벼슬도 아니고 거창한 타이틀도 아니다. 그냥 일종의 역할 같은 것이고 가녀장이 가녀장일 수 있는 것은 또한 복희씨와 웅이씨가 있기 때문이다. 소소한 에피소드를 특유의 유쾌한 문체로 솔솔, 졸졸, 재잘재잘 풀어내던 중에 '누가 여자역할이에요' 꼭지를 읽다가 여기가 방점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작가님 곁에 좋은 사람들이 많아서 이런 이야기가 샘솟듯 솟아나나보다 싶었다. 안본눈 삽니다라는 말처럼 아직도 읽지 않은 이슬아 작가의 이야기가 여러권이라 다음 읽을 책이 더더 기대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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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읽던 소설과는 결이 다르게 에세이를 읽는 느낌이 강한, 작가 이슬아의 삶을 대하는 태도를 볼 수 있는 자전적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등장인물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는 소설 초반, 작가가 사용한 모든 3인칭 대명사가 ‘그’로 통일되어 있어서 누구를 지칭하는지 이해하고는 헛웃음이 났다. 인간과 반려동물, 남성과 여성, 노인과 젊은이, 부모(작가는 ‘모부’라고 칭한다.)와 친구 모두 차별 없이 ‘그’이며, 경어의 사용 역시 마찬가지다. 더 나아가 슬아가 웅이(아버지)에게 식당 종업원을 ‘이모’라고 부르지만 ‘고모’라고 부르지는 않는 상황을 짚어줄 때는 나 스스로가 이미 ‘언어란 세계의 질서’라는 진리에 얼마나 깊이 동조되어 있는지 깨달았달까? 문득 양자경 주연의 영화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의 초반 대사가 떠올랐다. 영어는 왜 ‘he, she’이런 구분이 있냐고, 중국어처럼 他면 된다고 투덜대던 그녀. ‘가녀장의 시대’는 이 영화 주인공의 상황과 오버랩되어 다루고 싶은 부분이 몇 군데 있다. 뻔한(?) 패미니즘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부분과 삶 속에 스며들어 있어 이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던 것들을 되짚어 보게 되는 이야기. 나의 직업 탓인지 슬아가 글쓰기 수업을 받는 아이들에게 해준 말이 기억에 남는다. “이 수업은 우리가 같이 만드는 거야. 모두가 책임을 나눠 가지는 만남이거든. 그러니까 손님 말고 주인처럼 앉아 있어 줄 수 있어?” “주인이란 달콤하고도 피곤한 것. 하지만 손님으로만 지내는 자는 결코 다다를 수 없는 세계가 글쓰기에 있다.”는 말이 공감되었다. 편집자 덕분에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던 작가의 마지막 문장처럼 “월화수목금토일이 반복되는 이유는 월요일부터 다시 잘해볼 기회를 주려고 어김없이 돌아오는 거라고. 그렇게 내 삶의 시행착오 속에서 더 나은 한 발을 내딛기를 기대한다. |
| 이야기장수 출판사에서 출간하고 이슬아 작가님께서 집필하신 가녀장의 시대를 읽고 작성하는 리뷰입니다. 지인으로부터 추천을 받아 구매한 책이에요. 가녀장이 주인공인 책이라 하여 흥미로웠고.. 노동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던 글이었어요. |
| 이슬아 작가님의 가녀장의 시대 리뷰입니다. 요즘 현대 사회가 아직 앓고 있는 문제를 센스있고 창의력 있게 풍자한 작품입니다.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나는 요즘 어떤 사람으로 살고 있는지를 반성할 수 있었고 요즘 사회 문제에 잠시 무관심했던 자신을 반성할 수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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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사 놓은지는 오래 전인데 이 좋은 책을 이제서야 읽었다니. 진작에 읽고 또 읽고 다시 한 번 또 읽을걸. 이슬아 작가 워낙 유명하지만, 예전에 미돌이 보내준 ‘깨끗한 존경’을 읽고 이 작가가 보통 사람은 아니구나 싶었다. 그 후에 ‘날씨와 생활’을 읽고서는 새로운 비거니즘을 지향하는 젊은 세대의 흥미로운 통찰력에 감탄하며 글 참 잘쓴다~ 싶었고. (기존 질서에 의문으 제기하고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는 주체가 되는 젊은 세대를 따라가기 다소 벅찼던 기억도 난다.) 그녀의 첫번째 소설 ‘가녀장의 시대’는 이게 과연 소설인지 실화인지 헷갈린다. 그도 그럴것이 이슬아 작가의 모부인 장복희와 이상웅이 책 속에 그대로 등장하고, 꽤 많은 부분에서 실제 상황같은 이야기들이 대거 등장하기 때문이다. 다소 픽션이 가미되었다는 느낌은 후반부로가면서 살짝 들긴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나는 이 이야기가 실제이길 바라고, 이토록 멋진 가녀장의 시대가 얼른 도래하길 몹시도 바란다. 당연하게 여겨왔던 많은 것들에 일찌감치 의문을 가진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을 특이하거나 괴짜 혹은 사회 부적응자라고 치부해오고 왕따 시키던 폐쇄적인 사회는 점점 도태되고 있다. 세상은 조금씩 두번째 인간 중심 르네상스 시대로 다가가고 있는 것 같다. 시니어들의 사회적 포지션이 갈수록 애매해지는 세상에, 그저 돈이라도 있어야 체면을 유지하고 자식들 앞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외치는 현실에서 그들이 자랑스럽게 키워낸 자녀들을 가장으로 옹립(?)하여 삶을 영위하는 방식은 (그것도 딸자식을) 굉장히 새롭고 독보적이다. 소설같지만 현실에서 일어나지 못하라는 법도 없다. 슬아의 아빠 웅이씨와 비슷하게 공구 다루기를 좋아하고 자식들 일이라면 언제든지 두 팔 소매 걷어부치고 달려드는 우리 아빠 생각도 났다. 내가 아빠를 고용한다는 상상을 해보지 못했는데 안 될 일은 또 뭔가? 작가의 글솜씨와 관점 그리고 따뜻하고 옳곧은 마음까지 박수치게 만드는 이유가 뭘까 곰곰히 생각해보았는데. 일단 이 소설 속에는 허세가 1도 없다. 소설이라고하지만 왠지 거짓도 1도 없는 것 같다. 작가가 어느 정도는 책과 비슷하게 살고 있을 것 같다. 읽으면서도 괜히 신나고 자신감과 용기와 주인의식이 뿜뿜하게 된다. 평범한 이야기를 진짜 무덤덤하게 풀었는데 그 안에 그 어떤 ‘젠체, 난체’하는 부분을 발견하지 못했다. 독자를 가르치려는 문장도 없었다. 짧게 끊어지는 문장은 건조한듯하지만 간결하게 분명하다. 작가는 마음 속에 깊은 우물 하나를 품고 살아가는 사람같다. 각 챕터 끄트머리에 다다르면 작가가 우물 밖으로 끌어낸 육중한 우물바가지 속에 감동의 물결이 찰랑거리면서 목마른 독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이슬아 작가는 허공에 맴도는 이야기도 권위적인 이야기도 일절 하지 않는다. 관념적인 이야기 더미 속으로 사람들을 질리게 만들어 매몰시켜버리지 않는다. 이슬아 작가의 글을 읽음과 동시에 나의 이야기가 팝콘처럼 쉬지않고 타타타닥 튀어오른다. 아 안되겠다! 잊어버리기 전에 얼른 적어두자 싶어서 생각나는 일화들을 대충 적고 제목을 붙이고 draft로 저장을 해두고보니, 5개의 제목이 나왔다. 개짱이 / 아침루틴 / 아빠와 김훈 / 넘의집 살림 / 머리띠. 책을 다시 한 번 읽으면 더 많은 제목이 나오고 나의 이야기들이 줄줄이 비엔나 소세지처럼 엮여 나올 것 같다. ‘가녀장의 시대’를 읽으면서 엉뚱하게도 나의 이야기가 화장지 풀리듯 술술 풀려나오는 마법에 걸린거다. 독자들로하여금 읽는 행위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구성할 수 있게 만드는 작가의 능력은 도대체 그 정체가 뭔가. 그것이 궁금하다. 당장 일간 이슬아 구독을 신청하고, 매일 쓴다는 것의 무게감과 책임감. 동시에 가볍게 휘발해버려 어디론가 사라져 불특정 다수의 마음에 스며들 수 있는 글의 모순됨과 확장성을 생각해본다. 삼십대 초반인 작가는 1992년생이다. 1992년생이 벌써 삼십대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 만큼 내 나이가 실감이 나지 않아 늘 숫자 앞에서 멈칫한다. 현실은 숫자 계산이 잘 되지 않아서이지만 마음으로는 아.. 젊은애들 못 따라가겠네 이제. - 라며 어느 정도 그들의 새로운 시선 앞에 진심어린 존경을 표하게 된다. 나이와 성숙도가 비례하지 않는다는것은 알고있지만 이렇게 가볍지 않은 글을 경쾌하게 세상에 내어놓는 작가를 보니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젊음은 역시 눈부시도록 아름답고 부럽다. 바로 그 때 나의 20대에 똑같은 말을 해주었던 어떤 어른이 떠올랐다. 나의 젊음이 정말 부럽다고 했었지. 지금이 정말 좋은 시절인지 아냐고 물으시길래. '저도 압니다' 라고 건방떨며 대답했었지. 그때 그 시절이 좋은지 알았지만 그렇게 좋은 것인지는 절대로 몰랐을테다. 이 순간 존재하는 내가 유일하고, 유일한 현재로 젊음을 바라보는건 그때는 상상도 못하지. 똑같이 주어지는 시간을 야금야금 먹으면서 살아가는 시간앞에 평등한 우리는, 조금 더 먼저 인생을 산 사람들이 어린 사람에게 보내는 격려와 부러움이 뒤섞인 응원의 말로 세월을 품는다. 생각해보니 이것도 '부지런한 사랑' 이라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다음에 읽을 작가의 작품 제목이 '부지런한 사랑'이다) 드라마로도 나온다니 기대가 크다. 이슬아 작가가 직접 드라마 작가로 데뷔하기도 하는 본인 작품이라니. 책 읽으면서 영상을 상상하게 된다. 캐스팅도 굉장히 기대됨. 슬아 역은 도대체 누가 맡으면 좋을까? 작가 본인이 연기를 직접해도 좋겠는데. 책만 읽어보아도 드라마가 얼마나 재미있고 기발할지. 왠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모든 식구들이 빠져들어 보았던 그 따뜻한 우영우 이야기같은 드라마가 만들어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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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아 작가님이 젊었을 적부터 열심히 글쓰기를 하여 일찍히 성공한 것에 대해서 많이 부러워지는 책입니다. 일간 이슬아뿐만 아니라 출판사도 같이 운영하면서 가녀장으로 살고 계신 것에 대해서 존경스러워요. 가녀장의 시대 읽었으니 다른 책들도 하나씩 독파해보려고 합니다.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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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아 작가님의 장편소설 <가녀장의 시대> 리뷰입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으니 감상에 유의 부탁드립니다. 가부장제라는 말은 익숙하지만 가녀장이라는 말은 또 처음 들어보는데요. 가녀장의시대는 아빠가 권력을 잡은 가부장도 심지어 엄마가 잡은 가모장도 아닌 집안의 딸이 가녀장인, 또 주인공인 이야기입니다. 장녀로서 이입이 정말 잘되고, 통쾌하면서도 생각할 거리가 많은 소설이라 좋았습니다. “그들의 집에는 가부장도 없고 가모장도 없다. 바야흐로 가녀장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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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녀장'이라는 다소 생소한 단어를 보며 책을 펼쳤다. 제목 그대로 딸인 슬아가 가장이 되어 집안을 이끄는 이야기였다. 엄마와 아빠는 딸의 출판사에 직원으로 고용되어 각자 잘하는 일(청소, 요리 등)을 한다. 가족회사여도 업무시간에는 존댓말을 사용하여 서로를 존중한다.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성격이 매우 뚜렷하고 재미있었다. 먼저, 작가이자 출판사 대표이자 이 집의 가장인 슬아는 책임감 넘치고 스스로를 단련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에 비해 엄마 복희는 웃음이 많고 따뜻하며 너그러운 사람이며, 아빠도 친절하고 귀여운 면을 보여준다. 가족회사 그리고 가녀장이라는 형태에서 엄마와 아빠가 별다른 불만 없이 일상을 꾸려나가는 이유는 슬아가 그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이유도 있겠지만, 그들이 딸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슬아를 대표로서, 가장으로서 극진히 모신다.
웅이가 훌훌 떠나보낸 문학을 슬아는 힘껏 붙들고 있다. 슬아를 모시는 게 어쩌면 문학을 간접적으로 사랑하는 방식일지도 모르겠다고 웅이는 생각한다. - p. 62
한편씩 짤막하게 구성된 이야기가 꼭 가족 시트콤을 보는 것 같다. 재미있는 가족의 일상이 쭉 지금처럼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슬아 작가의 글은 처음이었는데 다른 책도 얼른 읽어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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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녀장의 시대> 이슬아 3.5 / 5.0
이슬아가 쓰는 글은 가볍게 마음을 간질이고 쉽게 공감하게끔 만든다. 워낙 다작하는 작가라 시기를 놓치면 금방 읽을 책들이 쌓이지만 기꺼이 즐겁게 읽게 된다. 이 책은 픽션인 듯 픽션이 아닌 듯한 경계를 넘나드는 재미를 선사한다. 평소 이슬아 작가 팬이라면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