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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희 감독님의 '카메라를 끄고 씁니다' 리뷰입니다. 책에 대한 소개를 읽었을 때도, 너무 좋은 책일 것이라고 생각했고, 읽고 나서도 너무너무 좋은 책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읽고나서 어떤 말을 해야할까 꽤나 오랫동안 책에 대한 감상을 정리하지 못한채 한없이 슬퍼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삶이라는 것이 감히 통제할 수 없는, 내가 어떻게 될지 앞날을 알 수 없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특히나 격동의 시기를 살았던 이들은 더더욱 그러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찌할 수 없는 슬픔이 가득했던 것 같습니다. 꼭 필요한 이야기를 해주셔서 감사하나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꼭 한번 읽어보기를 감히 추천드리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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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일주일에 세 번 투석을 시작했다. 두 달이 되어 간다. 투석실이 있는 십팔 층의 대기실에서 잠시 기다려 차례가 되면 침대로 이동하고 자리에 눕는 것을 확인한 다음 다시 일터로 돌아간다. 세 시간 반의 투석이 끝나는 시간보다 조금 이르게 다시 병원 대기실에 기다렸다가 아버지를 집으로 모신 다음 다시 일터로 향한다. 십팔 층의 대기실은 해가 잘 들고, 간호사들은 모두 선하고, 나는 틈틈이 책을 읽는다.
“나는 가족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직계가족에서도 벗어나고 싶은데 타인과 새로운 가족을 만들라니, 제정신인가. 아버지의 딸, 오빠들의 여동생, 여성, 재일코리안 같은 명사들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가족을 향해 카메라를 든 이유도, 도망치기보다 그들을 제대로 마주 본 다음에 해방되고 싶어서였다. 영화 하나 만들었다고 무엇에서 해방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손목 발목에 주렁주렁 차고 있는 그것들에서 자유로워지려면 그것들의 정체를 알아내야 했다. 알아야만 비로소 벗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P.31)
아버지는 삼 년 전에 폐암 4기 판정을 받았다. 칠십대의 마지막 생일을 몇 달 남겨 놓은 때였다. 육신의 외곽에는 아무런 징후가 없었지만 나는 아버지와 동행하여 세 개의 병원을 들락거렸다. 다행스럽게도 여든 셋이 된 올해까지 별다른 악화 없이 버텼지만 아버지의 육체와 정신은 코로나를 앓은 4월 이후 한꺼번에 무너져내렸다. 갑작스러운 인지 저하, 신장 기능의 급격한 쇠락, 폐암과는 또다른 발원지의 희귀암 발병이 몇 달 사이 한꺼번에 아버지를 습격했다.
“지금에 와서야 짐을 싸던 어머니의 미소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머니 눈엔느 일본에서 온 상자와 봉투를 열어보고 기뻐할 가족들의 얼굴이 보였던 것이다. 오직 그 생각 하나만으로 살아왔을 것이다. 볼 수 없는 가족의 웃는 얼굴을 매일매일 따올리면서, 그 얼굴에 그늘이 지지 않도록 다음번 소포에 무얼 담을지 궁리했을 것이다. 만나지 못하는 씁쓸함을 상상으로 메우고 있었을 것이다...” (P.43)
나는 아버지와 평생 불화한 사이다. 아버지 앞에서 아니오, 라고 해본 적이 없어 아버지는 그리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내게는 너무 분명히 그렇다. 아버지는 보안사에서 장교 생활을 시작했고, 전두환의 군사 반란 시기에 현역이었다. 아버지는 폐암 발병 이후에도 극우 유튜버의 동영상을 끼고 살았다. 아버지의 동영상 시청에 진절머리내는 엄마에게 내버려 두시라고 했다. 그 증오의 힘이라도 빌어서 살아 나갈 수 있다면, 덧붙였다.
『나는 옥류관에서 열린 잔치를 카메라로 기록하면서 채플린의 말을 떠올렸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나는 내 가족을 롱숏으로 바라보기 위해 렌즈의 힘을 빌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랑해도 미워해도 답답해도 멀리 떨어져 살아도 가족과 정신적으로 거리를 두기란 쉽지 않다. 그러한 존재를 부감하여 다각도로 보기 위해서는 밀어낼 필요가 있다. 가족에게서 눈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가족을 원거리에서 응시하고 내가 어디서 왔는지 알고 싶었다. 살아온 날들을 해부하여 내 백그라운드의 정체를 넓고도 깊게 알고 싶었다. 그런 다음 가족과 나를 분리하고 싶었다.“ (p.87)
아버지는 이제 천진난만한 이가 되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아버지와 불화하였던 남동생은 이 편이 나은 것 같다고 한다. 투석이 끝난 아버지를 집에 모셔놓고 돌아서는 나를 현관까지 따라온 아버지는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자식인데 뭘 그렇게까지 매번 현관까지 배웅을 하냐고 타박하는 어머니를 향해 역정을 내기도 한다. 자식이라도 고마운 것은 고마운 것 아니냐고. 아비지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가족이란 혈연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절절히 믿게 되었다. 서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기능하는 관계성이 있어야 집합체가 비로소 가족이 되는 건지도 모른다.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기억을 공유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비록 당사자는 될 수 없지만, 타인의 삶을 완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윤곽 정도는 알고 싶다는 겸손한 노력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 알고자 하는 것이다. 사건과 사실을, 감정과 감상을, 그리고 말할 수 없는 상상과 망상까지도.“ (pp.175~176)
저자 양영희는 조총련의 고위층 간부를 부모로 두었다. 그리고 그 부모는 북송 사업에 따라 저자의 세 명의 오빠를(중학생이던 막내를 포함하여) 모두 북으로 보냈다. 저자는 북쪽에 있는 오빠들 그리고 자신의 부모를 주인공으로 삼아 <디어 평양>, <굿바이, 평양>, <수프와 이데올로기>라는 세 편의 다큐멘터리를 찍었다. 저자의 아버지와의 불화는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고, 그것이 다큐멘터리에 담겼을 것이다, 어떤 화해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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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영희 저 <카메라를 끄고 씁니다> 리뷰입니다. 양영희 감독님의 이야기(가족이야기 등)는 여러 논문과 기사에서 접했었는데 이렇게 책으로 만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언젠가 감독님의 다큐멘터리 영화도 꼭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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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한국인이 아닌, 남한 국적도, 북한 국적도 아닌 조선인으로 살아가는 디아스포라의 삶. 특히 부모님은 열열한 북조선 조총련계 임원으로 김일성 추종자였으니, 그녀의 삶이 어떤 색으로 채색되었는지를 상상하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다. 재일조선인은 익히 재일조선인 교수이며 작가인 '서경식'의 디아스포라 책들을 통해 가슴 아프게 접했고,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디아스포라 기행, 디아스포라의 눈, 이민자들, 나의 조선미술 순례, 시의 힘, 등 모두 재일조선인의 시선에서 한국인도 아니고, 일본인도 아닌 어정쩡한 국적으로 디아스포라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아픈 글들이었다. 이러한 디아스포라의 삶은, 이탈리아 유대인이면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고향으로 돌아간 쁘리오 레비,의 저작에서 시작되었다. (쁘리모 레비,는 이렇게 많은 책을 써내고 내적 치유가 이루어진 것처럼 보였지만, 끝내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 심리적 고통의 깊이를 이기지 못하고 죽음을 선택했다.) 그랬기에, 이 책이 내게 다가오는 깊이와 무게는 남달랐다. 서경식 교수의 책을 통해 재일조선인의 아픔을 경험했다고는 하지만, 양영희 작가의 글은 조총련계 임원 부모의 딸로서 색다른 아픔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이 책을 내는 그 때까지도 집 안에 김일성과 김정일의 사진이 걸려있는 집에서 살아야 했다. 부모님은 김일성 찬가를 즐겨 불렀다. 그 삶이 어떠했을지는 감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북한의 '귀국 사업'으로 아들 셋을 모두 북한에 보내고, 딸 하나만 데리고 살아가야 했던, 도저히 이해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비극의 정중앙에서, 부모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김일성의 환갑 잔치를 위해, 이미 두 아들이 북에 가 있는데도, 마지막 한 명의 아들까지 차출해서 북으로 보내는 그 몰인정함. 부모는 북한 정권을 찬양했지만, 북으로 간 아들의 삶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자신들의 주선으로 북으로 떠난 친척들에게는 무슨 낯으로 다가갈 수 있을까. "지상낙원이라는 자신의 말을 믿고 북에 가기로 결심한 가족과 친척들을 출신 성분으로 차별받는 '귀국자'로 만든 것에 대한 속죄였을까.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그래야지, 그거라도 해야지. 부모님은 늘상 말했다. 아버지는 북송 사업의 선봉대 역할을 자처했다." (71쪽) 저자는 그 속마음을 담고 싶어, 위험을 무릅쓰고 캠코더를 챙기기 시작했다. 뉴욕으로 떠나 가족과의 거리를 두고, 자신의 삶을 살아내면서, 그녀는 이데올로기가 무엇인지, 도대체 무엇때문에 그런 삶을 살아가는지, 부모에 대해, 이념에 대해, 그리고 사람들에 대해 렌즈 구멍을 통해 이야기하려고 했다. 찾아내려고 했다. "평양으로 향하는 고속도로 위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무엇을 찍어야 할지, 무엇을 찍고 싶은지, 무엇을 찍으면 문제가 될지 죽을 힘을 다해 고민했다. 그리고 이전에 사진과 필름을 압수당했던 사람들이 했던 언행은 하지 않도록 조심하자고 다짐했다." (63쪽) 그녀는 그렇게 <디어 평양>, <굿바이 평양>, <스프와 이데올로기>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자신의 가족들을 주인공으로 하여, 20년의 세월을 두고 찍은 필름으로, 완성하고 공개했다.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하고, 그 영화로 인해 그녀는 더 이상 평양 방문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사진을 찍고 가족의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으면서, 아버지도 쓰러지고, 큰오빠도 사망한다. 그렇지만 아버지가 살아 있었다면 결코 승인하지 않았을, 일본인 남자를 만나 결혼한다. 북조선 조총련 장모님은 김일성 액자 아래에서 일본인 사위에게 백숙을 끓여주고, 북으로 간 아들들 대신 자신이 아들이 되겠다며, 사위는 열심히 연습을 하고 장모님에게 다시 백숙을 끓여 대접한다. 그녀의 세 번째 영화 <수프와 이데올로기>에서 수프는 오랜 시간 고아 만든 백숙의 국물이다. 그것은 바로 그녀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이데올로기의 완성이었다. "이데올로기가 다른 사람들이 새로운 가족이 되어 함께 밥을 해서 나눠 먹는다는 사실이 무척 숭고하게 느껴졌다. 생각이나 가치관이 달라도 같이 살 수 있다는 것을 어머니와 카오루가 증명해주는 것만 같았다." (174쪽) 그렇게 북과 일본이 만나고, 조선과 일본, 뉴욕과 일본이 만난다. 그리고 놀랄만한 반전은, 어머니의 제주4.3 사건 증언. 제주 4.3 사건 이후 많은 사람들이 살기 위해 일본으로 밀항을 했다고 한다. "제주도에 뿌리를 둔 부모님이 한국을 부정하고 북한을 지지하며 살아온,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이유가 거기 있을지 모른다고 직감했기 때문이다." (167쪽) 이 기막힌 가족 비극 역사의 시작은 바로 제주 4.3 사건이었다. 그 비극 때문에 세 아들은 북에 가 있고, 딸은 국적 없는 조선으로 살아가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김일성 외에는 종교를 가져서는 안 되는 부모님이었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손을 모으고 기도한다. "어쩌면 어머니가 가족을 위해 해 온 모든 행위가 기도였던 것이 아닐까. 남편을 바라보고, 아이들을 안아주고,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깨우고 꾸짖고 칭찬하는 그 모든 것이 기도였다는 생각이 비로소 든다." (209쪽) 책의 마지막처럼, 영화의 마지막처럼, 그녀의 남은 생도, 두 오빠의 북한에서의 삶도, 어머니 기도의 힘으로 더 좋아졌으면 좋겠다. 새로운 역사를 시작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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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 <수프와 이데올로기>를 봤어요. 보통의 가족 영화에서 볼 수 없는, 엄청난 역사를 품고 있어서 놀라웠어요. 겉보기엔 평범한 가족이지만 그 이면에 감춰진 이데올로기, 오히려 덤덤하게 보여줘서 복잡미묘한 감정이 들었네요. 이 책은 영화에서 담을 수 없었던 뒷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어요. 《카메라를 끄고 씁니다》 는 가족을 기록하는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양영희님의 특별한 삶을 담은 책이에요. "한때 이카이노라고 불렸던 오사카시 이쿠노구. 어머니는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재일코리안 사회의 축소판과 같은 이곳은, 주민의 4분의 1 이상을 재일코리안이 차지하고 있었다. 국적이나 사상과 관계없이 이곳에 사는 재일코리안의 9할은 한반도의 남쪽, 한국 출신이다. 일본 사회의 민족 차별과 가난으로 고통받던 이들의 생활은 조국 분단으로 인해 더 큰 혼란에 빠졌다. 북이냐, 남이냐. 모두가 이념을 따져야 했다. 정치와 떼어놓을 수 있는 일상이란 없었다." - <수프와 이데올로기> 중에서 (17p) 과거 일본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이 얼마나 고통을 당했는지, 우리는 감히 짐작할 수조차 없어요. 하지만 사랑하는 가족이 아프고 괴로워하는 심정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어요. 책을 읽다가 쇠약해진 아버지 옆에 누운 저자의 사진과 에피소드에서 그만 눈물이 터졌네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는 대동맥류가 발견되어 입퇴원을 반복했고,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어가고 있어요. 영화 마지막 장면에는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담겨 있는데, "늘 가족과 함께라고 믿고 있는 어머니는 매일 기도를 올린다"라는 내레이션에 가슴이 뭉클했어요. 어머니에게 남은 마지막 기억은 사랑하는 가족이었네요. "'가족이란 사라지지 않고, 끝나지도 않아. 아무리 귀찮아도 만날 수 없더라도 언제까지나 가족이다' 그런 실감이 나를 새로운 해방구로 이끈다." (7p) 라는 저자의 말이 뜨겁게 와닿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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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프와 이데올로기를 보고 읽으니까 더 깊은내용을 알 수 있어 좋았다. 처음엔 학교에서 추천책이라고 해서 그냥 읽어봤지만. 읽다보니 책에 점점 빠져들었다.. 읽다보니 마음이 아팠다. 내가 읽다보니 좋아서 추천도 하게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한번쯤은 읽어봤으면 좋겠다. 카메라를 끄고 씁니다. 감독이 카메라 밖의 얘기를 쓰는 내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