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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창(펴냄)
11월을 함께한 니체의 《아침놀》을 덮으며 리뷰를 어떻게 쓸지? 첫 문장은 뭐로 하면 좋을지? 고민이 많았다. 띄어쓰기 빼고 한 3000자 나올 것 같은데... 아마 철학 제대로 전공하신 분들이 읽으면 깔깔 웃을지도 모른다 ㅋㅋㅋ 대학 교양 시간에 교육학, 교육사철학 공부 한 게 전부인데, 그때 왜 제대로 수업을 듣지 않았을까 후회가 되기도 하고 철학 책을 만날때마다 이상하게 교수님 얼굴이 떠오른다.
◆읽기 전에 니체에 대해 왜 그렇게 오해가 많을까? 니체를 떠올리면 '신죽음'을 외친 철학자, 망치를 든 철학자, 이런 기존 수식어들이 니체 학문에 접근하지 못하게 막는 것 같다. 정말 신이 죽었기 때문에 '신죽음'을 외친 걸까? 사람들은 주장의 이유는 보지 않고 결과만 본다. 최근에도 지젝이나 아감벤, 바디우 등의 철학자들의 주장 (뭐 굳이 비교 대상은 아니지만), 간혹 페미니즘 여성 철학자들이 목소리를 내는데 이런 주장에 대해 사람들은 단지 불편해하기만 할 뿐, 왜 이 시대에 그런 외침이 나오는지를 생각하지는 않는다. 철학은 불변의 것이라고 말하는 분도 있는데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각 시대마다 외치는 철학은 조금씩 달랐고, 또 각 시대가 요구하는 철학은 달랐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는 과연 어떤 철학이 필요할까?
니체 철학을 읽기 전에 니체의 삶에 대해 먼저 알아야 한다. 니체 개인이 삶을 공부하면 그의 철학 책 읽기도 조금 쉽지 않을까? 니체를 알아야 그의 철학을 안 것 같고, 그를 모르고서는 그의 철학을 말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다행히 그동안 나는 니체의 삶에 대한 책, 철학 해설서 위주로 몇 권 읽어본 적이 있다. 이 책은 잠언의 구절로 말하듯이 쓰인 글이다. 니체 삶에서 볼 때 중기 철학, 이 책 바로 전에 쓴 #인간적인너무나인간적인 과 비교한다면, 비슷한 잠언의 형식이되 후기 책인 #도덕의계보학 이런 계열보다는 읽기가 쉬운 편이다. (도덕의 계보학은 한글로 읽되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모르겠는??) 이 책을 계기로 이제 본격적으로 니체가 세상을, 도덕을, 종교를 해부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전기의 니체가 여러 방향성 가졌다면, 이 책을 터닝포인트로 과감하게 세상을 재단하기 시작한 느낌?
◆읽으며 헤겔의 법철학 서문에서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저물어야 그 날개를 편다'라는 너무나 유명한 문장이 나온다.( 나도 정말 좋아하는 문장이기도 하고) 부엉이(지혜)는 낮이 지나고 그 날개를 펴듯이 철학은 앞날을 예측하는 학문이 아니라, 이미 이뤄진 역사적 현상이 지나간 후에 그 뜻이 분명해진다는 뜻이다. 헤겔의 황혼 녘에 반대되는 의미의 아침놀이 아닐까? 감히 생각해 본다.
니체는 전통을 부정하고, 종교를 비판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전통의 잘못된 부분을 치유해가자고 주장한 사람이다. (인류가 존재한 이상 도덕이 없을 수는 없기에... ) 우리가 믿는 신, 종교가 옳고 도덕과 전통이 마냥 옳다면 오늘날의 사람들은 왜 이렇게 아픈가?!!!!! 정신분석을 앓고 편집증, 신경증과 고통에 시달리는 현대인들, 진리를 따른다는 자들은 왜 아플까? 니체는 그런 부분에 대해 깊이 탐구한 것 같다. 다른 철학자들처럼 도덕이나 선이나 악은 무엇인가? 이런 거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전통과 고전의 기존 질서, 기존 기독교의 잘못된 부분에 대해 말할 때 니체는 아마도 목숨의 위협을 느꼈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대에 니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주목받았더라면 그는 아마 어떤 집단에게 테러를 당행을지도 모를일이다. 그는 목숨걸고 철학한 자다!!!
책을 읽으며 니체의 사유가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지가 내 가장 큰 관심사였다. 역자님 말씀처럼 목차를 정하기 참 힘든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각 문단 키워드를 뽑아봤는데 도대체 이 미치광이 철학자가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가? 내가 뽑아본 요지는 도덕의 권위를 고발하고, 말이 우리를 방해하는 수단이 되며, 주체라는 세계에서 도대체 이웃은 무엇인지? 이성 VS 원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망각과 목적에 대하여, 결혼에 대해, 여성에 대해.. 그리고 그러해서, 무려 마침내 575개의 구절로 이어진다. 이 방대한 내용에 목차를 정하고 분류한다는 것은 그런 생각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저녁놀을 밀어낸 니체, 당대 어둠의 철학을 밀어낸 니체, 빛은 어둠을 이기고 근대는 중세를 이겨 냈다. 휴머니즘이 신학과 이성을 이겨내고,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와 비슷한 나이인 서른여섯에 죽음을 경험하며 쓴 글, 새로운 세계에 대한 붙잡음, 창세기에 대한 도전이자 내 양심의 반증이다.
◆나오며 이 책을 읽으며 나는 거의 모든 독서에서 마치 공부하듯 책을 대하며, 전지적 시점에서 읽을 때 마음이 편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예를 들면 영화를 볼 때도 배우, 감독, 스토리를 다 꿰고 보는 편, 남들은 스포하는 것을 엄청 싫어하지만, 나는 스포 해주면 매우 고마워?한다 ^^ 그러니까, 뭐든지 내가 알고 가는 길만 가려고 하고, 모르는 길 혹은 처음 무언가를 할 때 불안하고 고민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철학 하게 해 준 책!!!!
▶▶▶나의 느낀점...사유...◀◀◀ 역자 이동용 교수님도 어지간히 '니체 팬'인것 같다. 감정을 억누르며 쓴 역사 후기에서조차 역자의 감탄사가 마구 새어나오서 읽는 독자의 숨이 가쁨. 우리가 진리라고 생각하고 믿어온 것에는 '비진리'가 숨어있다. 절대적인 것이라고 주장 할 때는 이미 그 말을 하는 자의 '이데올로기'가 묻어있다...... 철학은 '여백을 사유하는 학문'이 아닐까? 사람은 삶을 알아야 한다. 삶은 의무이자 권리다. 우리가 철학해야하는 이유는' 삶을 알기 위해'서. '삶의 문제는 사는 것'이지 죽는 것이 아니라는 점. 니체 지하에서 지상으로 나가는 길을 뚫어준 사람... 철학은 이미 해석된 것을 재해석 하는 학문이 아닐까.... (니체의 이데올로기가 묻어있는 책을 들고 불면의 밤을 보내며 내 나름의 가치관으로 재해석한 날들....) 해마다 반복되는 '니체앓이', 알면 알수록 더 모르겠는 사람, 읽을 때마다 말갛게 사고를 원점으로 돌려놓는 그가 니체이고 찬란한 아침의 승리다!!!
니체가 글로 쌓은 성에 깃발을 꽂는 것은 바로 당신이고 나다!!!!
468절 아름다움의 나라가 더 크다. 우리는 모든 것에서 그 고유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기 위해, 또 그 아름다움을 현장에서 붙잡기 위해 자연 속을 많은 계획은 가지고서 즐겁게 돌아다닌다. 때로는 햇볕 속에서 때로는 폭풍우가 휘몰아칠 것 같은 하늘 아래서 때로는 가장 창백한 황혼 녘에 우리는 바위들과 바닷둘이 넘실대는 항구와 올리브 나무들과 소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저 해변의 한 부분이 완벽한 작품처럼 드러나는 것을 바라보게 된다. 이런식으로 우리는 또한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녀야만 한다. 그때 우리는 그들을 발견하고 검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또한 그들이 갖고 있는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증명해 내고. 이를 통해 어떤 이는 햇볕 아래서 어떤 이는 폭풍우가 휘몰아칠 것 같은 날에, 어떤 이는 거의 밤이 다 되어서 또 비가 내리는 하늘일 때 비로소 전개되는 그들이 고유한 아름다움이 나타나게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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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의 불꽃 같은 삶도 니체의 상처 입은 분노도 스스로의 현실엔 더이상 도움될 것이 없다 말한다 “ - 나에게 쓰는 편지, 신해철 신해철의 노래 가사로 처음 만난 니체 가볍게 훑고 지나간 철학책이나 니체에 대한 에세이에서 스쳐지나간 니체 니체가 대체 누구길래? ..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쉬운게 아니지만 남이 풀어쓰거나 해석한 책을 읽는게 아니라 원전 그대로를 본다는 기쁨 ( 혹은 괴로움)을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었다. 편견없이 , 날것의 그 사람 그 자체를 만날 수 있으니까 그래도 이 책의 친절하고 긴 주석 덕분에 ( 거의 니체반, 주석반 느낌 ) 고전 시 해석하는 기분으로 무슨 말이야? 하는 막막함을 희석해가면서 읽을 수 있었다. 흔히 우리가 디폴트값으로 생각하고 사는 도덕, 진리, 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을 뒤집어 생각해 보게 하는 책. 종교에 관한 부분은 나도 나일론 신자이고 믿음이 깊지 못한 탓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새로운 시각이구나… 정도로 봤는데 독실한 신자들 입장에서는 굉장히 불편하고 니체를 불러다가 옆에 앉혀놓고 ‘당신이 완전히 오해하고 있어요' 설명해주고 싶어진다고 했다. 인간의 본성에 관한 부분, 잔인함이랄지 힘의 역학관계, 권력, 우월성에 대한 해석이 흥미로웠다. 코로나 투혼하며 읽느라 안그래도 어려운 책이 더 어렵게 느껴져서 비몽사몽간에 읽어내느라 고생… 그래서 더 니체가 대단해보였다. 아프면 모든거 다 내려놓고 싶고 포기하고 싶어지는데 니체는 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그렇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며 투쟁하고 극복하는 철학을 할 수 있었지? 잠언으로 철학하는 니체, 한번 읽고 마는 것이 아니라 여러번 반복해서 읽고 암송되길 바랬던 이유로 잠언이라는 형식을 취했다고 한다 그의 바램대로 손이 가는 부분을 반복해서 읽다보면 그의 강인한 정신력, 생의 철학을 조금은 알 수 있게 될런지 틈날때마다 옆에 두고 열어보아야겠다 ㅡ 인상 깊었던 구절들 ㅡ ㅁ 그를 돕는 사람은 아무도 오지 않는다. 마주치는 위험, 우연, 악의, 궂은 날씨와 같은 모든 것을 그는 혼자 감당해야 한다. ㅁ 도덕은 종종 단 한번의 시선 만으로도 비판적 의지를 의지를 마비시키고, 나아가 자기편이 되도록 유혹한다. 그래서 그 의지가 전갈처럼 자신의 침을 가지고 자신의 몸을 찌르게 한다. ㅁ가장 오래된 위로의 수단 인간은 불쾌한 상황이나 불운에 처할 경우, 이 때문에 자신이 누군가 다른 사람을 괴롭히지 않으면 안되는 어떤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때 그는 자신에게 아직도 남아있는 힘을 의식하며, 이것이 그를 위로한다. ㅁ 자신의 강력한 욕망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뛰어난 능력 역시 뒤로 숨겨두는 것 개인은 ‘인간'이라는 개념의 보편성이나 사회 밑에 자기 자신을 숨긴다. 진리에 대한 감각은 근본적으로 안전에 대한 감각일 뿐이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통제하고 자기 자신을 숨어서 감시한다. ㅁ 우월의 도덕 우리는 우리의 모습이 타인에게 고통을 주고 그리고 타인의 시기심과 무력감, 몰락의 감정을 일깨워주길 원한다 ..위대한 예술가, 그가 위대해지기까지 그의 힘을 잠들지 않게 했던 것은 그가 정복한 경쟁자의 질투에서 느껴지는 쾌감이었다. ㅁ 결혼제도는 사랑이 지속할 수 있는 열정의 일종이고 또 평생동안 가능한 사랑이 정상이라는 사실에 대한 고집스러운 믿음을 전제한다. ㅁ 최고의 유용성을 증명했다 하더라도 그것의 기원을 설명하는데는 한걸음도 내딛지 못한다. 즉 우리는 그런 유용성으로는 결코 실존의 필연성을 이해시킬 수 없다. ㅁ 개인이 자신의 행복을 바라는 한, 행복에 이르는 길에 대한 어떤 규정도 그에게 주어져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개인적인 행복은 어느 누구에게도 알려져 있지 않은 자신만의 고유한 법칙들에서 솟아나기 때문이다. 밖에서 주어지는 규정은 그 행복을 방해만 하고 저지하게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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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놀- 니체 서평 독서모임 지원 도서이자 체고 마지막 도서여서 애정을 갖고 본책이다. 아침놀 이전에 니체가 직접 쓴 작품을 읽어본적이 없었다. 아침놀에서 직접 마주한 니체 덕분에 한달이 너무 힘들었다. - 이 모글같은 글을 읽고 내가 제대로 이해한게 맞는지 힘들었고 아직도 그를 다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나의 뇌를 망치로 깨부시는 것 같은 고통을 준 책이자, 나의 생각 근육을 조금은 강화시킨 책이라는 것은 분명히 맞다. 지금은 니체와 잠시 헤어지고 싶다. 솔직한 마음이다.
[[[[[[[[아침놀에서 만난 주제들]]]]]]]]]]]] <대립의 행복> 즉, 균형과 조화 = 줄타기 하듯 살아야한다. <풍습/윤리/도덕>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노예근성 노노>
생각해 볼 문제이다.사색, 정신적인 부분을 게을리 하지 말자. <미움, 증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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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크인 독서 모임으로 어설프게 스쳐지나간 니체의 생각들에 마음이 뺏긴 후, 제대로 니체를 알게 된 첫 책. 제목도 없는 잠언이라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 세창의 [아침놀]은 소화를 흉내내는데도 사실 많은 시간과 공이 들었다. 서론에서 남의 피를 이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경고성 멘트를 날려서인가.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들어가서인지 생각보다 외국어처럼 읽히지는 않아서 다행이다 싶게 읽어나갔다. 물론, 길잡이가 되어준 한줄기의 빛같은 주석들이 있어 길을 잃지 않고 끝까지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럼에도 니체는 역시 한번의 눈맞춤으로는 이해하긴 어려울 것 같다. 왜냐하면 니체는 자신을 완벽하게 이해한 독자만이 그의 독자일 것이기에...
그렇다면 나는 왜 니체가 좋았을까. 이 책을 읽으며, 정리가 되었다.
부모로서의 탄생은 나를 새로이 했다. 아이가 이제 여섯 살이지만, 나도 여섯 살인 기분. 나는 누구이며, 세상은 어떤 곳이고,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하는지 아이와 함께 성장중인 나에게 니체의 끊임없는 질문들이 본질적 자아라고 불리는 것들에게 다가가는 기분이였고, 그에 대한 불분명하지만 단호한 생각들이 묘한 안정감을 들게 했다.
난 참으로 평범한 가족의 테두리 안에서 맏딸로 평생을 비윤리적인 행동을 한적이 없으나, 내 생각에 대한 양심의 가책을 평생 느끼며 살았다. MZ 세대의 첫 시발점에 서있는 나에게 내 생각은 기성시대에 맞지 않는 도덕관이였고, 그 도덕이란 개념을 깨야한다고 말해준 니체가 지금까지 고생했을 내 마음에 대한 위로처럼 다가왔다. 개인주의적, 자유로운, 자의적, 버릇이없는, 예상할 수 없는, 계산에서 어긋난 것, 같은 내가 좋아하는 단어들이 모두 '악'하지 않다라고, 강하게 위로해준 기분이랄까. 요즘처럼 다양성의 존중이 점점 더 중요해지는 시대에 모든 생각들과 현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코드들이 내가 생각하는 니체를 대세남으로 만든건 아닐까 싶기도 했다.
번호로 매겨진 단위의 벽돌들은 나에게는 주체적인 삶에 대한 생각의 벽돌을 쌓아가게 했다.
48. '너 자신을 알라'가 학문의 전부다. 모든 사물에 대한 인식의 끝에 도달해서야 인간은 스스로 자기 자신을 알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물들은 오로지 인간의 한계가 될 뿐이기 때문이다. 93p
나를 제대로 알아야하는 건 대충 사는 그런 삶이 아니라 고스란한 삶을 살기 위함이다. 니체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주목하고, 뒤집고, 고뇌하고 하는 점이 나에게는 삶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느껴졌다. 어떻게 하면 주체적인 삶을 통해 삶을 사랑할 수 있을까. 그 온전한 사랑 속에서 100%를 누리고 싶은 환상을 쫒는 그의 열정이 나의 요즘 상태라 공감이 되었다.
반드시 10대라, 20대라고 해서 방황을 하는 건 아니다. 모든 나이대에는 새로운 미션이 기다린다. 인생은 한번뿐이라 모든 매순간이 처음이고, 그래서 그 나이대의 나를 몰라 방황한다. 하지만 점점 나이가 들수록 익숙한 정신들에게 딴지를 걸기가 어려워진다. 많은 선입견과 편견 속에서 안정감을 누리고 싶은 관성이 늙음인지라, 잠언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손이 닿는 가까운 자리에 두고 조금씩 조금씩 곱씹으면서 사고의 유연성을 기르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코로나 시대가 도래하면서 우리 또한 삶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마스크와 함께 세상을 맞이한 코로나 베이비들의 부모로서 사실 경험해 보지 않은 시대에 대한 답이 없어 나처럼 많은 부모들이 방황중일 것이라 생각된다. 무엇도 확실하지 않고, 무엇도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으며,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 점점 희미해진다. 현재의 우리에게도 니체의 그 때처럼 새로운 시작이 도래하고 있다.
내가 부모세대로부터 배운 것들이 전혀 적용이 되지 않는 완전히 새로운 시대.
어둠을 몰아내고 빛이 일고 있을 [아침놀]이 요즘같은 격변의 시대에 나만의 해답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게 아마 내가 니체가 좋았던 이유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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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순간.
그간 수박겉핥기로 알던 니체는 나에게 호감을 주진 못하였다.
계속해서 삐딱한 시선으로 니체를 바라보았던 것을 인정하고 고백한다.
다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니체의 말 대신 진짜 니체의 말을 들어보자.
600페이지가 넘는 책 속 벽돌들을 하나하나 꺼내서 만져보았지만
"작은 이탈된 행위들은 더 가치 있다!" (149)
더 곱씹어보고
신경쓸 일이 너무 낳은 현대인,
"누군가 강조하는 미덕은 바로 이 분야에서 부족함을 느끼는 것이다" (165)
감각적 오류라는 감옥 안에 갇혀있지 말고,
무엇보다도 이 책의 가장 좋은 부분은 바로 이동용님의 친절한 주석과 작품 해설이다. 주석이 없었다면 나는 이렇게 많은 벽돌을 줍지 못했으리라 감히 단언한다.
수수께끼를 내는 것도 능력이다. 없던 문제도 만들어 내며 살아야 한다. 삶에서 얻어지는 온갖 내용들을 수수께끼 형식으로 대한다는 것 자체가 철학에 임하는 행위와 같다. 늘 사람을 묻고 삶을 묻는다. (589p 작품해설 일부 발췌)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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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니체의 의도와 무관하게 새해 아침놀과 함께 완독하고 싶었다. 철학과 결심과 의지가 충분하지 않은 나는 계기와 기회와 핑계 삼을 거리들이 무척 도움이 된다. 발명품이긴 하나 새해라는 약속도 그렇다.
이해인 수녀님 시를 읽으며 ‘명랑하게’ 힘을 내어 보자 했는데, 첫 번째 작심삼일이 될 것 같다. 어째서 이토록 우울할까.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 그런 듯 쓸쓸하고 적막... 메리와 해피를 전하기가 어려운 이유 중에는 애도하지 못한 여전히 출혈 중인 참사가 있다.
문학과 영화의 경고들이 현실이 될 것 같아 불안이 심하다. 니체는 “미리 걱정하는 사람들의 소모적인 상상력”에 대해서도 (잠언 254) 지적했다. 미리 괴로워하다 정말 일어나는 순간에 이미 지쳐 있을 거라고. 나는 분명 거듭 지치고 지치고 지칠 것이다.
팬데믹에 기대했던 깔끔한 마무리와 뉴노멀은 오지 않았고, 멈추지 못한 전쟁만 계속 된다. A형 독감에 순차적으로 걸리는 가족들... 사람이 모이는 곳에 폭증하는 전염병들. 겨우 몸은 대략 회복하고 정신은 좌절하는 새해 같지 않은 2023년이 시작되었다.
읽고 쓰는 것만으로 어휘가 확장될 거란 기대도 순진했다. 사유가 언어라면 순서가 틀렸나 싶기도 하다. 단어가 먼저, 생각이 먼저? “우리는 모든 순간에 바로 그 생각만을, 즉 우리 손에 주어진 단어들에 잘 어울리는 생각만을 가지고 있다.”(257)
“오만함이란 연출되고 아첨하는 긍지에 지나지 않는다. (...) 어렵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의 위선이며 동시에 대부분 실패한 자들의 위선일 뿐이다.” (291)
“뭔가 하고 싶은 대로 성공을 거두지 못한 자는 결국 분노를 터뜨린다.‘세계 전체는 몰락해야 한다!’ 이런 끔찍한 감정은 질투심이 보여 줄 수 있는 최고의 형식이다.”(304)
“사람들에게 고통을 줄 때에만 기쁨을 즐기는 그런 종류의 도덕주의자들은 (...) 잔혹한 만큼 초라하기만 한 그들의 즐거움은 오로지 이웃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데 있으며, 그러면서 또한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바늘을 꽂아 그 이웃에게 깊은 상처를 주는 데 있다.”(357)
“자기가 지배하거나 폭력을 가하는 대상이 되는 사람들, 거리낌 없이 고상하게 거만을 떨거나 무소불위의 화를 내도 되는 무기력하고 비겁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항상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내게는 긍지에 찬 사람들로 보인다. 그들은 잠시 자기 자신의 비참함을 넘어서기 위해 (...) 한 마리의 개를, (...) 한 명의 친구를, (...) 한 명의 여성을, (...) 하나의 당파를, (...) 매우 드물기는 하지만 한 시대 전체를 필요로 한다.”(369)
많은 문장들이 니체가 지금 여기 현실에서 어딘가에 투고한 내용 같이 읽힌다. 그 익숙한 오독에 위로받고 좌절한다. 그럼에도 삶은, 지구가 멈추지 않는 한 쉴 틈 없이 사는 것이고, 그로 인한 고됨보다는 실은 심장이 멈출까봐 더 두렵다.
3권부터는 편하게 읽었다. 기존 ‘진리’ ‘본질’ ‘필연’ ‘의미’ ‘이유’ 등이 우주 어디에도 없다는 걸 배워서일까. 당시 니체는 짐작보다 외롭고 힘들었겠다. 늘 바라고는 있지만... 어떻게 내내 편안하고 즐겁고 행복한 일상을 보낼 수 있겠는가.
아침놀 빛이 슬퍼도 조금씩 힘을 내자. 매일 몸을 움직일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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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놀》 도덕 그 자체가 아니라 도덕에 대한 잘못된 편견에서 벗어나라! 프리드리히 니체는 그의 자서전 《이 사람을 보라》에서 자신이 지금까지 저술했던 작품에 대해서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도덕적 선입견에 대한 생각들’이라는《아침놀》의 부제목을 통해 짐작할 수 있듯이, 니체는《아침놀》이라는 책으로 도덕에 대한 나의 전투가 시작된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도덕이라는 이름 아래 경외되고 숭배되기까지 했던 모든 것을 이 책으로 작별을 고한다고 선언한다. 다시 말해 니체는 《아침놀》이라는 작품에서 모든 도덕가치로부터 해방을, 지금까지 부정되고 의심되며 저주받아왔던 모든 것에 대한 긍정과 신뢰가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니체는 《아침놀》 서문에서 ‘나는 도덕에 대한 우리의 신념을 파내기 시작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니체는 도덕 자체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전통적인 도덕에 대한 그릇된 편견을 부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다. “나는 깊은 곳으로 내려갔다. 나는 땅속으로 구멍을 뚫었다. 나는 낡은 신념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우리 철학자들이 수천 년 동안 가장 확실한 땅 위에 세워 놓았다고 생각해 왔던, 바로 그 땅을 파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모든 건축물이 무너졌어도 또다시 팠다.” 니체가 새로운 아침을, 다시 새로운 아침을 여는 이제껏 발견되지 않았던 은근한 붉은빛을 찾는, 새로운 날들의 세상 전체를 여는 방법이 바로 ‘모든 가치의 전도’이다. 이 책의 제목 자체가 ‘아침놀’이듯이 니체는 그동안 사람들을 지배해 온 어둠을 깨뜨리고 아침에 해가 뜰 때 붉게 물드는 아침놀처럼 인간의 이성적인 능력을 강화시켜 인간이 자신의 운명의 주인이 되게 하려고 했다. 니체는 《이 사람을 보라》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 과제는 인류 최고의 자기 성찰의 순간인 위대한 정오를 준비하는 것이다. 이때 인류는 과거를 회고하고 미래를 내다보면서, 우연과 사제의 지배에서 벗어나 왜?, 무슨 목적으로?라는 질문을 최초로 전체적으로 제기할 것이다.” 니체는 인류의 역사를 회고하면서 우연과 사제의 지배에서 벗어나 왜?, 무슨 목적으로?라는 질문을 최초로 전체적으로 제기했다. 여기서 우연과 사제의 지배란 이원론에 바탕을 둔 플라톤주의와 그리스도교가 지배해 왔던 가치를 말한다. 다시 말해 니체는 ‘모든 가치의 전도’를 통해 기존 서양을 지배해 왔던 형이상학의 토대를 전복하고 새로운 철학적 지평을 제시한다. 그래서 니체는 《아침놀》에서 ‘영혼’, ‘정신’, ‘자유의지’, ‘신’ 등을 거짓 개념이자 도덕의 보조 개념들에 불과하고 그것들이 인류를 파괴해 왔다고 말한다. 특히 기존 형이상학의 ‘영혼의 구원’은 진정한 자기인 ‘몸’에 대한 경멸이며 데카당스의 처방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니체 사상은 그의 저술 활동을 기준으로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제1기는 《비극의 탄생》과 《반시대적 고찰》을 1869년부터 1876년이다. 제2기는 18776년에서 1882년까지 니체 스스로 자기 철학이 겪은 발전 과정을 ‘오전의 철학’이라고 표현한 시기이다. 그는《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1 2》, 《아침놀》,《즐거운 학문》등 네 권의 작품을 썼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3기는 1883년부터 1888년까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선악의 저편》, 《도덕의 계보》등의 작품을 발표하면서 니체 철학이 그 정점을 찍었던 시기이다. 1881년에 출간된 《아침놀》은 시대정신이었던 계몽주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았던 두 번째 시기에 속하는 작품이다. 또한 《아침놀》은 니체의 후기 작품인 《선악의 저편》과 《도덕의 계보》로 연결되는 선악이분론과 도덕의 계보에 대한 분석과 비판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체계성을 싫어했던 니체는 《아침놀》에서도 575개의 아포리즘, 즉 잠언의 형태로 기술하고 있다. 니체의 아포리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읽기만 해서는 안 되고 해석의 기술이 필요하다. 즉 읽을 수 있게 되기까지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번에 세창출판사에서 출간된 신간 《아침놀》은 기존의 책과 다르게 번역자의 자세한 미주가 달려있어서 원문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아침놀》뿐 아니라 니체의 작품들을 꾸준히 시간을 내서 반복해서 읽다보면 어느 순간 니체의 말이 다가오는 날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침놀 #니체 #니체의말 #세창출판사 #베스트셀러 #신간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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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놀 서평 고전 읽기 시리즈와 다양한 철학책등 체크인독서모임과 잘 어울리는 책을 출판하는 세창출판사에서 니체의 아침놀을 지원받아 함께 읽었어요. 니체의 아침놀를 읽기 전 체크인 독서모임에서는 니체,하이데거에 대한 교양서와 철학개론서들을 가볍게 읽고 니체에 대한 관심이 많이 생긴 멤버들과 함께 했어요. 도덕적 선입견에 대한 생각들이라는 부제목으로 묶인 아침놀은 니체의 책들 중에 잠언형식으로 쓰여있는 책이어서 니체가 처음인 사람에게도 무리하지 않고 읽을 수 있는 것같아요. 니체의 글만을 볼 경우 이해가 되지 않고 어렵다고 느낄 수 있으나 이동용 인문학자의 주석과 작품해설로 이 책은 더욱 빛나게 되었다고 생각해요. 물론 모든 부분에서 완벽한 이해를 하는 것은 어려우나 니체의 원전을 읽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동용 인문학자가 옮긴 아침놀은 추천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침놀 속에서는 니체의 고뇌의 시간이 온전히 담겨있으며 그의 글은 굉장히 단언적인 어투의 글로 도전적이고 도발적인 편이에요. 안정감보단 흔들림이 드러난 그의 글이어서 솔직한 그의 마음을 보며 청년의 열정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의 사상에 전적으로 지지와 동의를 보낼 수는 없지만 그의 사상에서 더 많은 생각으로 이어나갈 수 있었어요. 모임은 각자 최소 5개의 좋았던 구절을 나누고 총평을 하며 거의 13*5= 80개의 문장을 다시 바라보며 풍성화시키는 작업을 했어요. 읽으면서 넘어갔던 부분이 누군가에게는 마음의 위로가 되기도 하고, 화를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 중 기억에 남는 나눔은 우선 레이나의 자유에 대한 나눔이에요. 니체가 이야기하는 범주를 넘어서는 자유에 대해 이야기했던 부분이 인상깊었어요. 세상을 발전시키는 것은 진보적인, 무언가를 깨뜨림으로 얻어내는 것일지 모르지만, 조화롭게 유지시키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범주를 지키며 살아가는 것같다는 말이 마음에 굉장히 남았어요. 윤정의 나눔도 기억이 나는데요.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이야기, 즉 나를 잘 아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쓴 책으로 느껴졌다는 나눔에 나를 아는 것에 대한 정의, 나를 잘 알기위해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나눠주면서 더 많은 생각으로 이어나갈 수 있게 도와준것 같아요. 니체는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에 의문을 던지고 전위적인 생각을 던지라고 강권해요. 점점 우리에게 주어진 관습과 습성들에 아무런 고민없이 살아지는 대로 살때가 많아요. 니체처럼 생각하는게 피곤하다는 생각도 들고요. 하지만 한번쯤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이 우리의 삶에 큰 디딤돌로 나아갈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독서모임에서 함께 책을 읽고 나누면서 다양한 시야에서 바라보는 연습을 한것 같아요. 똑같이 이 책을 읽어나가도 모두 다들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당연한 것 같아오. 동의를 하고 하지않고를 차치하고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매 순간이 감사한 일이죠. 이 책을 계기로 정식 체크인 독서모임 1기는 마무리합니다. (서평도서로 책 한권을 제외하고) 4-5달동안 힘든 스케쥴 모두 최선을 다해 따라와준 우리 멤버들 항상 너무 고마웠어요. 체크인, 이제 전부 체크아웃합니다. 체크인 독서모임은 언더스토리로 스토리 아래에 서로 공존하며 나누는 모임으로 전환됩니다. 277. 따뜻한 덕과 차가운 덕. - 사람들은 차갑고 견고한 마음으로서의 용기와 뜨겁고 거의 맹목적인 저돌성으로서의 용기, 이 둘을 사람들은 하나의 동일한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하지만 차가운 덕은 따뜻한 덕과 얼마나 다른가! 그리고 ‘선함’이라는 것이 오로지 따뜻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진짜 바보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 ‘선함’이라는 것이 차가움을 통해서만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그에 못지않은 바보일 것이다! 진실을 말하자면, 인류는 따뜻한 용기와 차가운 용기가 매우 유용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으나, 그런 발견이 충분할 정도로 자주 일어나지 못했다는 것이고, 그래서 그 용기를 보석 아래로 퍼져가는 두가지의 은은한 색깔로 인식해 낼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355. 사랑이 사랑으로 느껴지기 위해. -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항하여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그리고 또 우리는 타인에 대항하여 자기 자신을 인간 친화적으로 변장시킬 수 있기 위해 자기 자신을 잘 알아 둘 필요가 있다. 이는 사람들이 그 변장된 모습을 바라보며 사랑과 호의의 징표를 찾아낼 수 있게 위함이다. 그런데 이런 행위는 너무나 본능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사랑에 빠진 여 들은 자신들이 이렇게 위장한 채 지속적으로 극히 섬세하게 기만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게 된다. 동시에 그들은 대담하게도 사랑은 닮아 가게 만든다고 주장하게 된다. 즉 그 사랑이 기적을 행한다는 것이다! 만약 어떤 한 사람이 사랑을 받고 있으며 그래서 자신을 위장할 필요를 전혀 느끼지 않고,이러한 위장을 오히려 사랑에 빠진 그 다른 사람에게 맡겨야 할 때는 이 모든 것이 간단할 뿐이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서로에 대한 열정으로 가 득 차 있고, 또 양쪽 모두 자신을 버리려고 하고, 그럼으로써 그 다른 사람 과 닮아 가려 하게 될 때, 더 나아가 그 사람하고만 닮아지려 할 경우, 상황 은 더 복잡해지고 꿰뚫어 보기 어려운 연극이 되고 만다. 그러다가 결국에 가서는 두 사람 중 어느 누구도 더 이상 무엇을 모방해야 할지, 자신을 어떤 것으로 위장해야 할지,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등을 전혀 알지 못하는 상황 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아름답고 어리석은 이러한 연극 짓거리는 바로 이 세계에서는 너무나 훌륭하게 평가되고 있으며, 사람들의 눈에는 너무나 미묘한 것이 되고 말았다. 570. 상실들. - 우리의 영혼이 어떤 것을 상실했을 때, 비탄을 쏟아 놓기보다는 높고 검은 측백나무 아래에서처럼 침묵하며 걷게 되며, 그런 식으로 영혼에게 숭고함을 전해 주는 그런 상실들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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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니체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다녔다. 니체의 어떤 점이 좋았냐고? 모르겠다. 니체의 책은 하나도 읽지 않은채, 니체를 해석한 책들만 읽은 채, 마치 니체를 다 아는 것처럼. 니체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혼냈겠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척 하지말라고. 처음으로 니체에 대한 누군가의 의견서가 아닌, 니체를 읽었다. 아... 나는 니체의 이 불안을 사랑했구나. 끝없이 질문하며 무너질것처럼 흔들리는 이 사람의 열정을 사랑했구나. 기존 관습에 저항하며 나 자신으로 살아내라는 말에 힘을 얻었구나. 나는 내가 살고있는 세상의 틀을 깨고싶었구나. 40대를 넘기고도, 중반을 향해 달려가는 지금. 적당히 포기하고, 안주하며 사는 삶의 나를, 소진된 열정을 나이탓으로 넘겨본다. 리뷰를 쓸땐 언제나 고민이지만, 오늘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한가지 이야기만 써보려한다. 풍습에 관해. 나는 풍습을 거부하던 사람이었다. 누군가 당연히 해야된다고 말하면, 그것이 왜 당연한가 따지고 들던 프로질문러 니체와 같은 사람이었다. “자유로운 인간은 비윤리적이다.”/ 아침놀 9번 그래, 나는 자유롭고 비윤리적이인 인간이었다. 왜 안돼요?가 입에 늘 달린 말이었다. 지금은 얼토당토 않은 일들이 당연하던 시절. 나는 내가 속한 틀을 깨고 싶어서 이리저리 발길질을 해대던 아이였다. 그렇게 계속 차대면 틀이 깨질 것 같아서. 그리고 세상은 조금 변했다. 그런데, 과연 그 틀은 내가 차서 깨진 걸까? 자유로운 인간들이 규범의 선을 넘고, 그들이 세상을 발전시킨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들이 발을 딛고 발길질을 할 수 있도록 흔들리지 않게 해준 사람들 덕분에 세상은 발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발길질하는 사람들만 존재하면, 그 사회는 혼란과 혼돈뿐이겠지. 그리고, 규범 안에서 순종하는 사람들 뿐이라면 세상은 이를 이용하는 악한자가 등장하겠지. 풍습을 거부하고 규범을 넘어서는 일은 필요하지만, 그들만이 옳다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 이제 나는 그들이 발을 잘 딛고 설수 있도록 발판이 되어주는 사람들에게 눈길이 간다. 틀 속에서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아내면서 성장하여 몸집을 키우고 틀이 그들을 다 담을 수 없어 균열을 일으키게도 한다. 나는 이제 이런 균열을 환영한다. p.s 본문보다 서문과 작품해설이, 그리고 주석이 더 인상적인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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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는 허무주의를 설명하려고 애를 썼지 삶이 허무하다는 말을 한 것은 아니다. " 아침놀 서문 1번의 주석 내용이다. 니체는 왜 허무주의 철학을 하는지 의문이었는데 이 주석을 보고 조금 의문이 풀렸다. 아침놀은 니체에 관한 몇 가지 책을 읽었을 때 열광했던 20대 시절의 내 모습이 계속 생각나는 책이었다. "인류의 새로운 교육을 위해서- 제발 좀 서로 도와주어라" '길들' - 소위 '지름길들'이 인류를 항상 커다란 위험 속에 빠뜨렸다. 인류는 항상 그런 지름길을 찾았다는 복음을 들으면 쉽게 자신들의 길을 떠나 버린다. 그리고 그 길을 잃어버린다. "어느 정도까지 동정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보호해야 하는지. - 동정이란 것은 하나의 나약함이다. 동정은 그것이 실제로 고통을 유발시키는 한에서 만 진정한 의미를 지닌다. ~ 동정은 해롭기만 한 감정에 휩싸여 자기 자신을 상실해 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 동정에 관한 글을 읽고 개인적으로 깨닫게 된 부분은 '그동안 나는 지나치게 나의 삶을 스스로 동정하고 그 동정이 너무 우상화가 돼버린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었다. 나 스스로를 위해 해왔던 동정이 어느 순간 우상이 되어 나를 갉아먹고 있음에 대한 반성을 통해 전반적으로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매일 사용되어 닳아 버린 사람들"이란 문장에서는 정해진 방향으로 살아가게 지시받는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의 인간에 대해서 고민했었고, "진리에 대한 가장 개인적인 질문들"에 대한 문장에선 나라는 사람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과 진리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 그리고 니체가 갈망하는 삶 역시 현재의 우리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짐작해 보았다. 그러나 기독교적인 부분에서는 역시나 맞지 않는 철학자였다. "이 모든 영혼적 탈선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도를 넘어선 듯한 나의 지나친 숙고를 용서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라는 문장 옆에 내가 적어논 메모는 "뭘~ 지나치게 용서를 구하는 숙고까지~ 뭘 그리 빌기까지 하면서 도를 넘고 숙고를 하고 그래~"라고 써놨는데 정말 딱 그 마음이었다. 사도바울에 대해 최초의 기독교인이라는 호칭을 붙인 것도 굉장히 새로운 시각이었고, 그러나 성경은 꼭 읽어야 한다는 문장에서는 폭소하기도 했다. 잠언 형식의 글이라 그런지 문장을 발췌해서 읽는 재미가 쏠쏠하기도 했고 참 작은 것 큰 것을 가리지 않고 고민하던 철학자 니체의 모습을 관찰하는 기분이었다. 니체의 일기장을 읽는 기분이라는 게 좀 더 어울리는 표현이랄까? 문장을 하나씩 발췌하며 읽는 재미가 개인적으로는 즐거웠던 책이었고 인본과 신본에 대한 시각을 다양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재미난 책이었다. 인본적인 입장에서는 뼈를 때리는 조언들도 많았다. 그래서 혼란했던 요즘 내가 읽기에 참 좋았다. 마지막으로 가장 좋았던 문장으로 소감을 마무리한다. "그대들 사람에 정통한 자들이여, 그대 자신을 좀 더 잘 아는 방법을 배우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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