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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이 부끄럽다고 생각한 적이 있을까. 전도하라고 등 떠밀려서 교회에서 단체로 나갔던 어릴 때의 모습. 복음이 부끄러웠나? 아니면 내가 나가는 게 부끄러웠나?
로마서라는 바울 신학의 정수라는 성경의 본문을 통해서 플레밍 러틀리지는 나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다. 들리는 설교에서 읽어지는 설교인, 텍스트화 된 책으로 전해진다.
처음에는 출판사의 마케팅 되는 겉표지만으로도 압도되었다. 그리곤 비아에서 나온 <예수의 마지막 말들> 때문에 더 생각나게 되었다. 두터운 100의 책보다 먼저 보게 된 비아의 책 덕분에 러틀리지의 글을 통한 선포는 나에게 더 와닿게 되었던 게 아닐까 싶은.
로마서를 읽어도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면, 이 책이 좀 더 넓은 시야로 보게끔 해주지 않을까. 그리고 다시금 로마서를 만나면, 새로운 지평이 열리리라 믿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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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로마서를 선포하는 시대적 상황을 생각해본다면 예수를 믿고 다른다는 것 자체가 목숨을 걸 일이요 급진적인 상황에 대한 상정을 염두에 해두어야 하는 문제들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전파된 복음이 힘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시대나 세상이 원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복음 자체가 가진 생명때문이 아닐까, 세상은 밟으려 하나 밟히지 않았던 힘의 이유와 근거가 되시는 그리스도께 맞추고,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생명의 법을 향한 소망이 시대를 극복하는 가장 큰 힘이아니었을까,
저자는 이런 관점에서 시대 아래 있는 성도가 아니라, 시대적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성도의 삶을 로마서를 통하여 설교한다. 잔잔한 움직임이 아니라, 역동적이고 힘있는 성도의 삶에 대한 선포들은 때론 당연 한 것을 잊고 있던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때론 무거운 몽둥이처럼 다가온다.
죄인을 위한 모든 수치를 감당하신 주 앞에서, 부끄럽지 않기 위해선 다시 수치를 당하지 않아야 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수치를 짊어지시면서 까지 주신 거룩함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