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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부터 책장에 번역 공진호의 <악의 꽃>이 꽂혀있어 간간히 시를 펼쳐 읽곤 했었는데 문유림, 김대영의 <악의 꽃>은 같은 시인의 또 다른 시집같은 느낌을 받게 한다. 공진호의 <악의 꽃>은 126편이 모두 담겨있다면, 문유림, 김대영의 <악의 꽃>은 20편만 선별해서 담았고, 공진호의 <악의 꽃>이 차례대로 126편을 번역했다면 문유림 김대영의 <악의 꽃>은 시의 순서를 번역자의 의도에 맞게 새롭게 재배열 시켰다. '현대성'을 전하기 위한 이유로 의역 또한 많이 사용되었고, 열과 행까지 읽기 쉽게 편집된 정도이기에 어찌보면 본래의 시에서 완전 다른것으로 변한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 점은 책의 장점일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단점일수도 있겠구나 생각든다. 원서를 번역하는 과정이 거치는 단계에서 처음과 달라짐은 어쩔수 없는 부분이라 이해는 하는데 소설이 아닌 특히나 시집에 있어서 원서의 운율을 100% 고스란히 느낄 수 없다는 점은 아쉬움이 무척 크다. (최초 글쓴이 나라의 언어를 모두 구사할수만 있다면 참 좋으련만....) 시라는 것이 참 쉽게 마음에 와닿기도 하지만 너무 심오해서 무척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보들레르의 <악의 꽃>은 후자에 가까웠다. 그래서 문유림의 짧은 시평이 함께 수록되어 있는 것이 책의 장점 중 하나이다. 시를 보고 알듯 모를듯 애매함 속에 허우적 거리다가 시평을 통해 도움을 받게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중간중간 실려있는 고양이 그림이 무척 좋았다. 표지에 실린 고양이 그림은 악과 꽃이라는 단어의 강렬한 대비 만큼이나 선에서, 고양이 눈빛에서, 빨간 입에서 임팩트 강하게 시선을 사로 잡는다. 함께실린 모든 그림이 전부 다 마음에 들었다. 상당히 개성넘치고 감각적이다. 보들레르의 시는 분명 강한 끌림이 있는데 왜 좋은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그 무언가가 있다.(그게 뭘까...) 시를 읽다보면 간간히 알수 없이 뭉클하고 슬퍼지는 이유는 또 뭘까.. 이 표현은 무슨 의미일까 명쾌히 이해하고 싶지만 모르겠어서 답답하게 느껴지는 경우도 많은데 시인 자체를 깊게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인것 같다. 그때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시인의 인생 전반을 이해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시인의 마음을 추측해 볼 수 있고 그 마음을 알아야 시의 구절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간단히 알아본 보들레르의 인생 배경들로 그의 영혼을 상상해 본다. 보들레르가 태어나던 1821년 아버지 나이가 무려 62세, 충격적인건 어머니 나이는 28세였다(34살 차이????). 6살때 아버지를 여의고 그 다음 해 엄마는 바로 재혼을 한다. (평범과는...거리가 먼.... 뭔가 일렁이는 삶인 산듯한) 성인이 되었을때 친부가 남긴 큰 유산을 쓸 수 있게 되었는데 짧은 기간안에 유산의 절반을 환락에 의해 탕진해 버리자 의붓아버지는 그에게 법정 재산관리인을 지정하여 매달 빠듯한 생활비정도만 연금식으로 받을 수 있게 조치했다. 이 일로 보들레르는 분노와 반항심, 평생 씻을수 없는 상처를 입게되고 경제적 어려움을 개선해보려 했지만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건강 악화로 46살이라는 참 이른 나이에 세상과 이별을 한 보들레르의 영혼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시여서 그럴까? 시의 의미를 명확히 이해하지 못해도 왜 읽고나면 마음이 먹먹해지는건지 모르겠다. 뭔가 심오하게 깊고 무겁고 눈물도 고이고... 아프다. '꽃과 침묵하는 사물의 언어를 어렴움 없이 들으리!' -p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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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꽃>을 읽었다. 현대시의 시조로 추앙받는 프랑스 출신의 유명한 비평가이자 시인(시입은 <악의 꽃>이 유일하다) 보들레르를 나는 지금까지 랭보로 착각하고 있었다. 오래 전, <토탈 이클립스>라는 영화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을 맡았던 장면만 오롯하게 떠오른다. 그리고 그는 보들레르가 아니라 랭보였다.
번역을 맡은 문유림 역자는 원래 100편의 시로 된 <악의 꽃>에서 20편을 선별해서 그림동지 김대영 씨와 함께 에드가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를 연상시키는 일단의 고양이 이미지들로 보들레르의 시를 소개한다. 시의 상당 부분을 현대에 맞게 의역했다고 하는데 프랑스어 원문이 없으니 어떤지 알 도리가 없다. 물론 실렸다고 하더라도 내가 프랑스어를 번역할 리는 없고. 그저 제목에 나온 프랑스어 정도로 만족해야 하나 보다.
<악의 꽃>은 발표 당시부터 센세이션이었다. 시의 내용보다 외설스럽다는 비평 때문에 곤욕을 치러야했다. 결국 그래서 6편을 제외하고 세상의 빛을 보았다지 아마. 프랑스 혁명 후, 루이 보나파르트의 제정이 돌아온 보수적 사회 분위기는 죽음과 섹스라는 주제를 전면에 내세운 삼십대 시인의 시를 용납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내가 읽은 <악의 꽃>에 죽음에 대한 예술가/시인의 동경은 읽을 수 있었어도 후자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아마도 시에는 전혀 문외한이라고 할 수 있는 독자의 무지 탓이라고 말하고 싶다. 다만 “노스탤지어를 일깨우는 후각과 향기의 이미지”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용연향’에 대해서는 닥터 한니발 렉터가 영화에서 사용해서 유명해졌다는 것 정도 밖에는 알 수가 없었다.
기독교 윤리관을 지닌 서구 사회의 시인이 <전생>을 노래한 점도 흥미롭다. 시마다 따라붙는 역자의 주석은 개인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오리지널 시의 시상을 제약하는 요소가 되는 게 아닌가하는 노파심이 생긴다. 나의 주관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게 과연 옳은 것인지 말이다.
<적>에서 보들레르가 말하는 “불분명한 적”의 정체는 무엇인가. 시간이 삶을 먹어 치운다고. 우리에게 시간은 그렇다면 축복인가 아니면 저주인가. 때로는 무작정 시간이 지나 가기만을 바랄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고통 받지 않았던가. 주석은 더 알쏭달쏭하다. 나를 만들기 위한 내면의 싸움이 멈추는 순간, 죽음이 자란다고.
솔직히 고백하건대, 시를 잘 읽지 않는 무지한 독자라 그런지 작가가 인도하는 무궁한 세계로의 초대는 버거웠다. 무언가 뚜렷한 메시지를 원했건만, 대부분의 시들이 그렇듯 모호하고 명징하지 못한 컨텐츠는 고래가 소화시키지 못하고 토해낸 용연 같다고 해야 할까. 다만 그 용연이 어떻게 쓰이냐에 따라 바다의 황금이 될 수 있듯이 눈 밝은 독자에게 보들레르의 <악의 꽃>은 축복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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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꽃 / 샤를 보들레르 /알비 시화집은 언제 만나도 반갑고 좋은 구성이기에 일러스트레이터가 누구냐에 따라 동일한 작가의 작품일지라도 여러 권 소장하고 싶기 마련이다. 이번에 만나게 된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의 <악의 꽃>은 귀여우면서 묘하게 심난한 기운을 내뿜는 고양이가 그려져있다. 좀 더 그림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자면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한 김대영작가로 고양이가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사진과 그림으로 이야기하는 작가라고 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귀여우면서도 심난한 기운을 내뿜은 까닭도 아마 이런 이유일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와 살아가는 것은 마냥 기쁘기만 한일도 그렇다고 괴롭기만 한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을 보들레르는 다음의 내용으로 시에 담아냈다. 희미한 삶을 짓누르는 권태와 막막한 슬픔은 뒤로 하고, 강한 날개로 빛나고 청명한 들판을 향해 날아오를 수 있는 자 행복하여라. - 상승 중에서, 27쪽- <뚜껑>이란 작품의 내용은 하늘아래 그 어떤 인간일지라도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 예측하지 못함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노래하고 있다. 함께 실린 그림은 벽뒤에 숨어 고개를 내민 고양이의 모습이었다. 당당하게 앞으로 나서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뒤돌아 모르는 척, 태연 혹은 초연한 척 할 수 없는 상황이 그대로 전달된다. 작품 내용 중에 믿음이 있는 자에게는 희망이, 믿음이 없는 자에게는 두려움이라고 표현한 부분이 크게 와닿기도 하다. 두려움뿐 아니라 광적인 희망도 때로는 죽음과 맞닿아 있음을 알기에 씁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책 표지가 된 그림은 <빨간 머리의 거지 소녀에게>와 함께 실린 그림으로 죽음과 고통으로 일그러지는 주변사람들과 인간이기에 벗어날 수 없는 죽음을 보다 실제적으로 느끼게 된 시인의 상황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그리고 마치 군데 군데 붉게 표시된 고양이의살짝 위를 향한 시선이 애매모호한 분위기를 더한다. 작가가 되길 희망했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그럴 수 없었던 초년과 말년까지도 그다지 순탄치 않았던 보들레르의 삶은 마냥 희망적이지도 그렇다고 지나치게 암울하지도 않은 선을 잘 드러낸다. 한 작품이 마무리 될 즈음에는 고양이 일러스트와 함께 짧은 코멘트가 이어지는 구성으로 시를 통해 보들레르가 바라본 삶과 죽음을 한 번 느끼고 그림을 통해 다시금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마지막으로 내가 놓치고 있는 부분, 좀 더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짧은 메세지를 통해 정리하게 된다. 서문에도 밝힌 것처럼 같은 내용일지라도 추려놓은 작품의 수와 내용이 다르고 또 함께 실린 그림에 따라 같은 작품이라도 시의 분위기가 사뭇달라지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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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보들레르의 '악의 꽃' 처음 읽어봤는데 그리 거부감은 없었다, 다행히~ ^^;; 하지만 서평을 어찌 써야 할지 막막한 건 사실이다, 왜냐하면 난 시인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런 무지한 상태에서 단 20편의 시를 읽고 이해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것이며 더군다나 그의 시는 난해함으로 똘똘 뭉쳐져 있기도 하니깐. 시란 자고로 지극히 개인적인 감성이 깃들여져 있다. 해서 그 시를 쓴 당시의 배경 또한 중요하다. 그러니 당연히 시인의 삶에 대해 알아야 한다. 그래서 검색을 하면서 좀 더 시인에 대해 알아보았고 이해하려 애썼고 필히 이해하고 싶었다. 현대 시의 시조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는 '악의 꽃'. 그럼 현대시와 고전 시에 대해 먼저 알아야 하지 않을까! 이 역시나 파고들려니 만만하지 않음에 잠시 보류~ ^^;; 길쭉한 책 속 새하얀 두툼한 종이가 그림을 그리는 캔버스를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시와 함께 감상 포인트가 되는 고양이 그림들. 참으로 잘 어울린다는 생각과 시성을 더 높여주는 역할에 그림도 한참을 쳐다보게 되었다. 천재적인 시인 샤를 보들레르, 그의 인생은 암울했다. 시대를 잘못 태어난 것일까?! 그에 대해 명확히 알지 못함에 섣불리 판단을 내리지는 못한다. 그가 사랑한 여인들과 그의 삶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은 계기를 만들어 준 시집이다. 난해한 또는 공감적인 시를 통해 인간의 생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고 그의 시의 세계로 빠져들 수 있었다. 살짝 너무 난해하지는 않을까 미리 걱정했는데 생각 외로 내게 의미 있는 시간을 가져다준 시집이었다. 번역가는 또 다른 시인이자 작가라고 생각한다. 이 시집의 번역을 맡은 두 분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역자의 짧은 시평 또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삶에 대해 고뇌하기 좋은 계절 가을이다.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는 자연을 만끽하며 읽기 좋은 시집, 추천한다. 샤를 보들레르가 말하는 '악의 꽃'을 찾아 천천히 출발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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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보들레르'의 이름이나 '악의 꽃'이라는 시집의 이름은 익히 들어본 적이 있으나 직접 읽어보긴 처음이다. 책 머리의 저자 소개에서 '샤를 보들레르'가 프랑스 출신 시인이란 사실을 처음 알았다. 이 시는 1850년대에 발표한 시집으로 보들레르는 이 시집으로 프랑스 낭만주의와 상징주의 시풍의 시조가 되었으며 보들레르부터 프랑스 현대시가 시작되었다고 여긴다니, 문학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가 있는 시인이다.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63XX19000051
보들레르의 생애는 무척 비극적이었다고 하는데, 생의 극단에 치달아 있던 시인의 감성이 고스란이 녹아 있듯 삶과 감정의 가장 밑바닥을 노래하고 있는 듯한 많은 시들에서 깊은 어둠과 공허가 느껴진다. 특별히 '알비'에서 출판한 이 시집은 표지와 삽화에 들고양이를 그려 넣은 것이 독특하다. 책의 중간 중간 그려져 있는, 누구에게도 길들여지지 않고 홀로 야생의 거친 삶을 살아가는 야생 고양이의 삽화는 마치 시인의 고달팠던 삶과 닮은 듯하다. 이 책은 한 페이지에는 시가 씌여 있고, 나머지 반 페이지는 빈 공간으로 두거나 간촐한 고양이 삽화를 그려 넣었다. 충분히 텅 비어 있는 여백으로 프랑스에서 온 이 조금은 낯설고 이국적인 시들을 천천히 읽을 수 있는 여유를 마련했다. 한 편의 시를 다 읽으면 뒷장에 짧은 한 줄이 시를 더 깊이 음미하도록 이끈다. 이 시를 프랑스어 원문으로 직접 읽으면 운율이나 두운법 등의 시적인 효과를 더 느낄 수 있을 테지만 아무래도 번역이란 과정을 거치다보니 시 본연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느끼지 못하는 점은 아쉽다. 하지만 자신의 인생을 '저주'라고 정의 내렸다던 시인이 끊임없이 시선을 둔 곳은 '죽음', '무한', '삶의 어두운 그늘', '낮고 추한 곳', 그리고 '자신의 영혼과 심연'이란 것은 충분히 알수 있었다. 시가 주는 진한 감동과 여운이 100년이 지난 지금에 읽어도 세련되고 아름다움에 고전의 반열에 오른 이 시의 진가를 느낀다. 시집의 제목이 인상적이다. 들고양이 삽화가 이 시집에 참 어울려 한 권의 아름다운 시집이 출판됐다는 생각이 든다. 보들레르의 시, 19세기 프랑스 시를 접하고픈 분, '악의 꽃'이란 시집을 처음 읽으시려는 분들께 이 시집을 권한다.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제공해 주신 도서를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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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보들레르 저의 『악의 꽃』 을 읽고 역시 시는 쉽고도 어렵다. 일반적으로 양이 적기 때문에 읽기가 쉬운 것 같아 유혹 당한다. 하지만 접근하면 결코 쉽지 않은 것이 시라는 매력이 아닌가 생각이다. 그래서 시는 어렵다. 대하면 대할수록 더 어렵게 느껴진다. 특히 자신이나 시대를 초월하는 처절한 싸움의 시간을 살았던 시인들은 그 만큼 어렵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다만 문학책에 나오는 인물이나 시집정도로 기억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솔직히 샤를 보들레르 시인도 프랑스 시인이고 유명 시로 '악의 꽃'이 있다 정도로 기억하고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알고 있지 못하였다. 그런데 이번 시대를 초월해 시대와 자신을 살펴보게 하는 ‘악의 꽃’시를 그림 작가인 김대영의 고양이 그림을 첨부한 작품들을 하나하나 감상하면서 샤를 보들레르 시인을 알 수 있는 최고 기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보들레르는 1821년 파리에서 신앙심과 예술적 조예가 깊은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여섯 살에 아버지를 여읜다. 젊고 아름다운 어머니는 육군 소령과 곧 재혼한다. 명문 중학교에 기숙생으로 입학하나 품행 불량으로 퇴학당한다. 파리로 상경해 법학을 공부하지만 술과 마약, 여자에 탐닉하며 자유분방한 생활을 한다. 불안과 가난 속에서 왕성한 창작을 이어간다. 미술비평서 『1845년 살롱전』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해 1847년 중편소설 『라 팡파를로』를 발표한다. 프랑스 최초로 미국 시인 에드거 앨런 포의 책들을 번역하여 소개한다. 1857년 시집 『악의 꽃』을 출간하나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유죄판결을 받는다. 1860년 중독과 시 창작에 관한 에세이 『인공 낙원』을 출간하고, 1863년 〈피가로〉에 미술비평 「현대 생활의 화가」를 연재한다. 1866년 시집 『표류시편』을 출간한다. 보들레르는 자신의 존재는 물론 자신의 시에 대한 열정에 대해 그 어떤 작가의 것보다도 대담하고, 형식적으로 거침없이 새로운 것이었다. 주제성 또한 인간 본성이 마주 보기 싫어하는 고통과 악을 철저히 파헤치고 동시대 사회의 어두운 면을 소재로 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 속에서 예리하게 인생의 본직을 추출하였다. 그런 사람은 말년까지 평탄하지 않았다. 중풍과 성병, 빚더미와 자살 충동 등 몸과 마음이 지친 가운데 1867년 46세 나이로 파리에서 사망한다. 이와 같이 일생도 보통사람들의 모습보다는 완전 특이하였다. 자연스럽게 '악의 꽃'에서 밝히고 있는 작품도 바로 작가의 모습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역자가 '악의 꽃' 재판의 126편과 '새 악의 꽃' 16편 총 142편의 시 가운데 대표적인 것과 시적 세계와 가치관인 잘 드러난 20편의 시를 선정하였다. 시마다 독자의 해석을 돕기 위해 역자의 짧은 서평을 수록하였다. 시마다 실감나는 고양이 그림을 첨부해 시의 느낌을 최대한 살렸다. 편안하게 읽을 수가 있다. 세상에서 지켜야만 하는 가치들이 위기에 놓였을 때 보들레르의 ‘악의 꽃’은 내면과 사회의 내부에 교묘한 존재를 고발하고 있다. 그것들이 잠식하려고 한 진정한 자유와 사랑, 허무의 반대에 있는 영원과 꿈의 존재가 얼마나 빛나는 것들인가를 그 명암의 대비로 드러낸다. 어느 시대에나 눈을 가리는 어두움은 존재해왔고, 우리가 사는 이 시간에도 그렇다. 시인이 마주했던 ‘악’의 존재를 통해 지금의 시대를 돌아보고 나의 영혼을 살펴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진정한 '악의 꽃'의 의미를 안 것 자제만으로도 나에게는 큰 수확의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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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보들레르. 아는 건 그의 명성뿐. 정작 그의 시(詩) 한 편 읽어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궁금했습니다. 그는 누구이며, 어떤 시를 썼는가. 이미 국내에 출간된 <악의 꽃>은 여러 권 있습니다. 출판사마다 번역과 구성이 달라서, 제목만 빼면 전혀 다른 책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니 어떤 <악의 꽃>을 읽느냐는 각자 자유롭게 선택하면 됩니다. 중요한 건 지금 내 손에 있는 <악의 꽃 Les Fleurs du Mal> 이 내게는 처음이라는 것. 희한하게도 <악의 꽃>이라는 제목이 낯설지 않습니다. 보들레르의 명성 때문이 아니라 단어의 조합이 그렇습니다. '악'과 '꽃'이 어떻게 어울리는지 설명할 수 없지만 왠지 그냥 '악의 꽃'이 존재했던 것처럼 보였습니다. 세상을 살다보니 '악'은 흉칙한 모습이 아니라 곱디고운 꽃으로 보일 수도... 모든 인간들이 선과 악을 제대로 구분할 줄 알았다면 애초에 악마에게 속지 않았겠지만. 이 책은 '악의 꽃' 재판 126편과 '새 악의 꽃' 16편, 총 142편의 시 가운데 대표적인 20편의 시를 선정했다고 합니다. 제목이 없는 시는 첫 행을 제목으로 하였고, '*'로 표시했으며 시마다 독자의 해석을 돕기 위해 역자(문유림님)의 짧은 시평을 수록하였습니다. 또한 책표지를 비롯하여 각 시마다 고양이 그림이 새롭게 추가되었습니다. 길 위 고양이들을 그렸다는 김대영님의 그림이 절묘한 조화를 이룹니다. 솔직히 보들레르의 시가 얼마나 훌륭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보들레르의 생애를 알고보니 시 속에서 보들레르가 보였습니다. 어릴 적부터 작가가 되길 희망했으나 법관이나 외교관이 되길 바랐던 의붓아버지의 반대와 억압으로 삐뚤어진 그는 수많은 재산을 탕진하다 가족에 의해 금치산자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존재에 대한 열정만큼이나 그의 시는 대담하고 거침없이 새로운 것이었다고 합니다. 1857년 처음으로 출판된 '악의 꽃'은 과감한 주제와 선정성을 이유로 풍기문란죄로 고소당하고 벌금형을 물었습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후 유죄선고 받은 6편의 시를 제외하고 다른 시들이 추가된 2판이 출판되었습니다. 1949년 5월 11일, 보들레르를 옹호하던 많은 유명인사로 인해 보들레르에게 무죄 판결이 내려졌고 삭제되었던 6편의 시가 다시 프랑스에서 출판되었습니다. '이것은 분노와 인내로 쓰인 책입니다. 게다가 이 책의 긍정적인 가치의 증거물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 말하고 있는 악(惡) 안에 있습니다.' - 샤를 보들레르 (153p) 아하, 바로 악! 그때는 불건전하다고 비판받던 시집이, 지금은 예술적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그건 거짓이 아닌 진실이었으니까. 보들레르 자신의 삶에서 끌어올린 시였으니까, 라고 추측해봅니다. 유죄선고 받은 6편의 시를 아직 읽지 않았기 때문에, 아니 겨우 스무 편의 시만 읽어봤기 때문에 보들레르의 영혼까지 느끼진 못했다고 핑계대고 싶습니다. 다만 작은 떨림은 느꼈습니다. Rest in peace ! 목소리 La voix 나의 요람은 책장 뒤편에 기대어 있었다. 소설과 과학책과 우화집과 라틴의 재와 그리스의 먼지가 한데 섞인 어두운 바벨탑에. 내 키는 이절판지 책만 했다. 두 목소리가 내게 말했다. 첫 목소리는 확신에 찬 투로 능글맞게 말하길. "이 '땅'은 달콤함으로 가득 찬 케이크야. 나는 네 식욕을 풍부하게 해 줄 수 있어. (그러면 네 기쁨은 끝나지 않겠지!)" 두 번째 목소리는 말하길 "와라! 꿈속을 향한 여행으로, 가능성의 너머로, 아는 것들의 너머로!" 첫 목소리는 모래사막의 바람처럼 노래했다. 어디서부터 오는지 알 수 없는 이 구슬픈 유령의 소리는 귀를 달콤하게 어루만지면서도 두렵게 했다. 나는 두 번째 목소리에 답했다. "그렇게 합시다, 친절한 목소리여!" 아아! 이날을 내 눈물과 불행의 시작이라 칭할 수 있다. 끝없는 존재의 장식품 뒤에서, 심연의 가장 검은 곳에서, 세계의 기이함을 또렷이 보고, 이 황홀한 통찰의 희생물로서 나는 내 신발을 문 뱀들을 끌고 다닌다. 이때로부터 나는, 선지자처럼 사막과 바다를 뜨겁게 사랑하며, 상중에 웃고 축제에서 울며, 가장 쓴 술에서 단맛을 찾고, 너무나 자주 사실을 거짓으로 여기고, 하늘에 눈을 고정하다 구렁에 빠진다. 하지만 그 '목소리' 내게 위로하며 말하길 "네 몽상을 지켜라. 바보보다 아름다운 꿈 현명한 자는 가지지 못하리니!" (76-8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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