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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 동양 미학과 한국 현대 미학의 탄생
캉유웨이, 야나기 무네요시, 고유섭 이 세 사람을 지은이 정세근 선생은 동양의 미학과 한국 현대 미학의 탄생과의 관계를 들여다보는 이 책은 일반에게 쉽게 읽힐 수 있는 대중 교양서를 지향한 듯하지만, 내용은 꽤 어렵다 아니 어렵다기보다는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이 철학, 미학, 미술사, 철학사 등 개념만을 이해하는 데도 한참 걸리는 분야다 보니 도입부부터 장애물을 만나게 된 셈이다.
세 사람의 이야기- 왜 세 사람인가?
중국의 개혁가였던 캉유웨이(강유위)는 서예와 미학적 전환을 시도했던 인물이었다. 한나라의 옛 글씨로 돌아가자고 했는데 그 안에 담긴 정신은…. 일본인으로 조선을 사랑했던 민중 예술(민예)연구자 야나기 무네요시, 귀족적 예술보다는 소박, 순박하고 수수한 조선의 예술을 발견했다. “조선의 예술은 인류의 비극을 담는다”라는 한 마디로…. 한국의 고유섭은 야나기의 영향을 받으면서, 예술사, 철학을 담아낸 미학을, “탑”에 담긴 힘참을 노래했다. 이야기 전개는 캉유웨이, 야나기 무네요시, 고유섭 순으로….
캉유웨이 글씨체가 바꿔야 정신세계가 바뀐다
중국의 캉유웨이는 조선의 김옥균과 비슷한 사람이다. 김옥균은 삼일천하로, 14년 후 캉유웨이의 무술정변은 백일천하로 개혁 사상이 꽃을 피우지 못하고 스러졌지만, 후자는 전자와 달리 제자를 길러냈다. 그리고 서예 이론가로서 역사에 등장하는데….
캉유웨이는 약해 빠진 중국을 보고 분발한다. 그의 이상은 강한 중국이었다. 지도자들의 문란, 문화의 방만, 정치의 우유부단함, 학자들의 태만함을 넘어설 길의 하나로 그는 글씨체를 바꿔쓰는 것이었다. 금석학의 부흥이다. 철이나 돌에 새기는 글씨는 글씨로서 그치지 않고 정신세계의 복원이다. 강건하고 힘 있는 글씨를 쓰면서 예쁜 글씨에 매달리는 식자들의 사고가 개혁된다는 생각을…. 그의 서예학은 심미의식 전환을 꾀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사화 개혁에서는 혁명적이지 않았다. 군주제를 옹호하면서 황제에게 권력이 집중되지 않는 한 개혁은 실패로 돌아갈 것으로 생각했다. 지은이는 이러한 캉유웨이의 사고를, “한글 창제” 당시 조선의 권문세족들이 한결같이 반대했던 것처럼. 국가, 계급, 인종, 남녀, 가족의 경계조차 허물어 버리자는 <대동서>에서 주장과 모순되는 보황론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이는 또 다른 문제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야나기 무네요시의 “민중예술” 이름이 있음에서 이름이 없음에로
야나기는 이름 없는 사람들의 예술이 참다운 예술이라고 생각했다. 당대의 일본 사회는 군국주의자와 자본가가 중심세력이 된 흐름 속에서 민중예술을 찾는다. 그에게 영향을 미친 18세기 말, 19세기 초에 활동했던 영국의 시인이자 판화가 블레이크, 야나기는 블레이크가 산업혁명 당시 아이들에게 강요되는 노동에 분개, 아동노동의 현실을 고발한 시를 통해, 예술적 구원을 만난다. 그리고 민예의 이상적인 모습을 한국에서 찾고, 슬픈 한국의 선에서 종교적 구원을 만난다고 지은이는 평하고 있다.
고유섭, 한국의 탑은 기백을 드러낸다
당대의 흐름은 철학은 서양철학이요. 사상 또한 외국사상이 유행이던 때, 그가 생각한 것은 우리나라에 할 일이 무엇인가였다. 그래서 한국 미학과 한국 미술에 전념하게 되는데, 야나기의 말을 수용하고 그에 대해 정면으로 반발하지 않았다. 산천을 누비며 탑을 찾고, 보고, 느끼고 노래했다. 그가 한국의 탑으로 말하고자 했던 것은 “기백”이었다. 고유섭에게 스승은 노자였다. 노자가 바로 ‘소박’이란 말의 어원이자 예술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모두 다함의 세계가 버젓이 있음을 말한 철학자다. 그는 노자를 통해 부정의 변증법을 익혔다.
이 세 사람 모두 미학적 전환을 이룬다. 캉유웨이는 근대사회로 이행되는 중국 사회의 혼란함과 나약함을 극복하자는 정신개혁을 글씨체를 바꿈으로써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서예를 통해 종이에서 돌로, 야나기는 이름이 있음(존재를 드러내고 권위를 내세우는 있는 자들의 세계)에서 이름 없음으로, 고유섭은 그릇에서 집으로 나아간다.
미학이란 서양철학의 내용 중 하나로 미학이란 번역되기에 아름다움의 학(美學)이라고 하면 선뜻 그 의미가 와 닿지 않는다. 미학은 본디 감성학(Aesthetics)에 바탕을 둔다. 서양식 분법에서 철학이 이성만 다루기에 감정의 영역도 다루게 된 것이고, 이어서 예술사도 건드리게 된 것이다. 세 사람이 활동하던 시대에 미학은 양식사적인 관점이 우세했다. 어느 시대마다 중심되는 양식이 있어 이를 통해 미의식이 드러난다는 미술사 인식방법이다. 고전주의니 낭만주의니 하는 ‘주의’ 역시 형식 속에 사상이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이들 세 사람의 미학을 탈바꿈의 미학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종이에서 돌로, 이름있음에서 없으므로, 작은 그릇에서 집(탑을 포함)으로라는 예술, 탐구, 심미의 대상이 달라지면 세계가 달라지듯, 내용이 존재를 규정하듯, 세계관의 전환이라 해도 좋을 듯하다.
고유섭 연구는 미학 분야에서보다는 예술사 분야에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지은이는 고유섭의 한국 현대 미학의 창설, 이후의 변천 과정을 연구해보고 싶다고 말한다. 고유섭의 모순되는 어법에 대한 이해가 어려웠던 점들(한자 중심의 글쓰기라는 점, 일본어 번역 투의 문장들)도 이해의 곤란에 한몫했다고...
아무튼, 꽤 흥미 있는 주제를 다룬 이 책이 널리 읽히기를 바라며….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동양미학과한국현대미학의탄생#캉유웨이야나기고유섭#정세근#파라아카데미#미학#2022인문교육콘텐츠선정작#중국의금석학부활글씨체를바꾸자#민중예술의야나기#한국의탑기백의고유섭#책콩카페#책콩서평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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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미술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특별 전시회가 있거나 여행 갔을때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있으면 둘러보는 편입니다. 오래 전에 그려진 그림이지만 그림을 보고 있으면 화가가 바로 옆에서 그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시대순으로 그림을 보면서 주제나 특징이 조금씩 바뀌는게 재미있었네요. 본격적으로 미술을 알고 싶다는 생각에 유명한 책 중의 하나인 곰브리치가 쓴 서양미술사를 읽었는데 어려운 내용도 많아 읽기 쉽지 않았네요. 그러면서 미술사와는 다른 미학이라는 분야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중국과 일본, 우리나라는 지리적으로 가까이 있어서 역사적으로 서로 많은 영향을 주고 받았습니다. 문화적으로 유사한 점도 있지만 다른 점도 많은데 남아있는 문화재에서도 그 차이를 볼 수 있네요. '동양 미학과 한국 현대미학의 탄생' 의 저자는 철학과 교수로 많은 책을 내었는데 이 책에서는 각 나라에서 근대를 살았던 인물 한 명씩을 선정해 그들의 업적을 중심으로 미학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4대 문명 발상지 중의 하나로 수천년 동안 높은 수준의 문화를 이룩해 왔으며 주변 나라들 뿐만 아니라 유럽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하지만 청나라 말기에는 유럽 열강들과의 전쟁에서 연달아 패하고 점점 나라가 쇠락해가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캉유웨이는 개혁을 위한 상소를 올렸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는데 베이징에 머무는 동안 고대 글씨를 연구하면서 책을 썼네요. 그가 쓴 '광예주쌍집' 은 서예를 다룬 무척 중요한 책으로 한나라, 수나라, 당나라 등 중국 고대의 글씨를 비교 연구하면서 오늘날 어떤 글씨를 본받아야 하는지가 담겨 있습니다. 한자는 예서, 전서, 행서, 초서 등 쓰는 방법에 따라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지는데 글자 하나하나에 중국의 역사와 문화가 농축되어 있는 느낌입니다.
야나기 무네요시는 일본인으로 일제 시대에 우리나라에 와서 살았습니다. 야나기는 우리의 전통 문화에 깊은 인상을 받았는데 그중 '민중예술' 을 뜻하는 '민예' 에 관심이 많았네요. 어떤 가정집에나 있는 개다리 소반은 밥 먹을때 쓰는 평범한 밥상이었습니다. 아무도 소반에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야나기의 눈에는 다르게 보였나봐요. 전국의 다양한 소반을 수집하면서 예술적인 아름다움을 발견하였네요. 소반 외에도 밥을 먹가나 차를 마실때 쓰는 사발도 수집 대상이었습니다. 이를 주제로 책을 쓰기도 하였으며 일제가 광화문을 철거하려고 하자 반대하는 글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 쉽지 않은 행동이었겠지만 그만큼 조선을 사랑하였기 때문이 아닐까요.
마지막에는 우리나라의 고유섭이 등장합니다. 지금도 일부 비슷하겠지만 과거에도 미학을 전공하는 것은 먹고 살기 힘든 길을 택하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일제 시대여서 고등 교육을 받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고유섭은 미학을 연구하였네요. 야나기가 도자기나 소반, 사발 등 일상 생활에서 쓰는 물건들에 관심을 가졌다면 고유섭은 전국에 있는 석탑을 찾아다녔습니다. 석탑은 불교 건축물로 전국 곳곳에 있는데 수백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무너져 내리거나 폐허가 된 곳이 많았습니다. 석탑이 주는 아름다움도 있지만 석탑을 보면 기개와 장대함이 느껴지는데 고유섭은 석탑을 보면서 나라의 독립을 위한 정신을 찾지 않았을까요. 이른 나이에 요절하였는데 만약 조금더 오래 살았다면 미학사에 큰 영향을 미쳤을텐데 아쉽습니다.
미를 보는 기준은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대를 관통하는 보편적인 기준도 있을 것입니다. 근대라는 격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각각 중국와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에 살았던 세 인물을 통해 그들이 생각하는 미학에 대해 자세히 읽어볼 수 있어서 도움이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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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섭은 이른바 개성 3걸을 낳은 스승이다. 미술사학자인 황수영, 진홍섭, 최순우를 낳았으니 그의 문화벅 자극은 대단했다. 황수영과 진홍섭은 경제학을 전공했고, 최순우는 문학도였으나, 1933년 고유섭과의 만남을 통해 한국미술사학이라는 토대를 마련했다. (-26-)
캉유웨이는 문자가 변한다는 데 초점을 둔다. 그런데 변화는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연속되기 때문에 과거의 모양이 현재의 모양에 남는다. 현재의 모양이 미래의 모양으로 바뀔 때도 마찬가지다. 단적으로 소전에는 대전의 형태가 있고, 예서에는 소전의 형태가 있다.하다못해 후한 말의 예서는 미래에 올 해서의 형태가 있다. (-51-)
우리는 캉유웨이를 보면서 미학도 하나의 운동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느낀다. 개혁은 머리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손으로도 한다. 심미안을 개척함으로써 세로운 세상을 열 수 있다. 이것이 캉유웨이가 알게 모르게 지탱하던 사고였다. (-91-)
조서의 소반은 순박한 아름다움에 단정한 모습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친숙하게 봉사하며 세월이 흐를수록 아취를 더해가니 올바른 공예의 표본이라 부를 수 있다. (-106-)
스물다섯의 야나기는 1915년 750 여 쪽에 이르는 『윌리엄 블레이크, 그의 생애와 작품 및 사상』이라는 단행본을 출간한다. 그리고 그의 작품을 모아 1919년에는 그의 복제판화 전람회를 연다. (-134-)
『국어대사전』으로 유명한 이희승(1896~1989) 은 고유섭보다 열 살 가량 나이가 많은 대도 그와는 대학동기였다. 고유섭의 사진에 조선어 전공의 이희승과 함께 찍은 사진이 있다. 이희승은 미에 대한 학술적인 구명究明 을 도락이나 취미와 구별한다. 미를 좋아할 수는 있지만 미를 본격적으로 해염하려는 사람은 감상만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151-)
파라아카데미 인물철학1 권 『동양 미학과 한국 현대미학의 탄생』 에서, 한국의 미술사학가 우현 고유섭(1905~1944), 청나라 말엽 서구의 침략에 대처하자는 변법 자강 개혁론을 주장한 캉유웨이(1858~1927), 조선을 사랑하였으며, 1924년 조선미술관 설립을 시도한 한 야나기 무네요시(1889~1961) 의 업적을 기술하고 있었다. 이들은 우리 미술 근현대사를 이해하은 중요한 인물로서, 조선, 일본, 청나라의 혼란스러운 시기에 살았다. 자신의 예술을 사회적 개혁으로 이끌어낸 역사적인 햑심 인물이기도 하다. 동양 미학과 한국 현대 미학의 융합, 단순히 미술을 감상하고, 만족하는 것을 넘어서서, 미학을 사회적 변화와 변혁으로 이끌어내는 중요한 구심점을 이루어낸다. 현시대의 문제점을 미술과 문학, 역사로 푸어나간다. 특히 우현 고유섭 선생은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서서』 를 쓰신 미술사학자 최순우 선생을 발굴하였으며, 후대에 미술 사학에 있어서 인재 양성에 힘쓰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한국의 미학과 동양의 미학을 동떨어져 보는 것을 넘어서서, 동양 미학 속에 한국 현대미학의 근원적인 성찰을 꾀하고 있었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낸 한국 햔대 미술,미학이 아닌 역사의 큰 물줄기에서 ,미학이 가지고 있는 강력한 힘,개혁은 행동으로도 가능하지만, 손으로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것이 우리 삶의 문화였고, 가치였으며, 한국인의 자긍심으로 영혼을 우리고 있음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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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미학을 말하면 중국, 일본, 한국의 미학적 산실을 말하고 있음이라 생각한다. 이 책 "동양 미학과 한국 현대미학의 탄생" 은 동양미학의 산실을 키운 인물로의 캉유웨이, 그는 금석학의 영향을 받아 왕희지 풍의 글씨를 넘어 새로운 글씨로의 미적 표준을 제시하고자 했던 인물이며 두번째 인물 야나기 무네요시는 놀랍게도 일제강점기 조선의 문화를 사랑했던 인물로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성과 조선 도자기에 대한 흠모를 통해 조선, 한국의 미를 비애로 단정하며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고유섭은 현대 한국미학의 새로운 표준을 제시하는 인물로 조선 전역에 세워져 있는 탑들에 적극적인 미적 의식을 가진 인물로 그들의 미적 표준이나 사유를 통해 동양미학과 한국 현대미학에 대한 발전의 기저를 살펴불 수 있는 책이다. 5장으로 구성된 미학적 사실에 대한 이야기는 각각의 인물과 역사를 통해 흥미로움을 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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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이라. 참 멋있는 단어라고 생각하고, 한번 공부해보고픈 분야이기도 하다. 그래서 호기롭게 선택한 책이었는데... 솔직하게 말하겠다. 조금 어려웠다. 그래도 제 3장인 '조선의 예술은 인류의 비극을 담는다' 는 꽤나 재미있었다. 그래도 한 명쯤 있지 않았을까? 막연하게 생각만 했던 '조선을 사랑한 일본인' 이 진짜로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3장은 다쿠미와 야나기에 대한 장이다. (개인적인 감상으론... 조선 문화를 사랑하게 된 '덕후' 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랬다. 생활비를 털어 소반을 샀다는 다쿠미의 이야기를 보고 밥값 아껴서 블랙핑크 앨범을 산 나의 모습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에...)
아래는 다쿠미(1891~1931)가 남긴 글이다.
"산 위에서 바라본 경복궁 내의 신축청사는 정말로 어이가 없어 화가 난다. 백악이나 근정전이나 경회루나 광화문 사이에 고집스럽게 비집고 들어서 있는 것은 너무나 뻔뻔해 보인다. (...) 백악산이 있는 한 영구히 일본인의 수치를 드러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조선신사도 영구히 일본과 조선민족의 융화를 도모하기는커녕 오히려 이것들이 문제가 될 것이다." -<조선의 흙이 된 일본인> 재인용
개인적으로 화 내는 모습이 재미있는 것은 바로 지식인들이 화를 내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욕설이나 물리적인 폭력이 섞인 분노보다는 고상하고 우아하게 왜 그것이 잘못된 것인지, 어떤 부분이 저급한지 논리적으로 요모조모 반박하는 모습이 어느 누구보다 신랄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당시의 사상적 분위기가 있다. 그것은 무정부주의로 흔히 테러리스트로 알고 있는 아나키스트다. (...) 당시 일본은 이러한 사상의 용광로였다. (...) 1910년 고토쿠 슈스이가 일왕 암살을 기도한 이른바 '대역 사건' 이 벌어진다." p.122
일제 강점기의 역사를 의무교육으로 받은 한국인의 입장에서, 일제 강점기 당시의 일본의 모습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한국인이 할 짓이냐?!' 정도로 분류된다는 암묵적인 룰이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때문에 함부로 관심을 가지지 못했고, 어떻게 접해야 하는지 감조차 잡지 못했었기에 책을 통해 처음 읽어보며 상당히 흥미롭다고 느꼈다.
<동양 미학과 한국 현대미학의 탄생> 책에서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롭다고 느꼈던 장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는데, 제2장의 '한나라의 옛 글씨로 돌아가자', 제4장의 '너희는 탑의 힘참을 보았는가' 장도 천천히 차근차근 읽다 보면 꽤나 재미있는 장이다. 조금 어렵지만... 한국의 미학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에게 내밀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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