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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토어베르크/ 문예출판사
이 책은 유대인의 자손인 프리드리히 토어베르크가 자신의 학창 시절 부정적 경험담을 그려낸 소설로 나치정부의 금서판정을 받았던 책이기도 하다. 이 후 그는 나치로부터 게르버로 인해 많은 박해를 받기도 했고 프랑스로 망명해 작가 생활을 해왔다.
학생들에게 쿠퍼신으로 불리는 아르투어 쿠퍼 교수는 명학한 사고 과정을 통해 '착석' 이 더 이상 '착석'이 아니면 그의 통치의 신적인 절대권력도 끝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권능이 유한한 신이었다. 그러나 권능이 있는 곳에서 그는 신이었다. 거기에 그는 거머리처럼 달라붙었다. page44
지금은 학생수도 적고 교권도 많이 순화되었지만 라떼는 스승의 그림자조차도 밟지 않는다는 압박같은 스승우월주의가 살아있던 세상이었다. 책을 읽다보니 과거가 소환되어 공감되고 이해되는 부분이 많았다. 교사도 사람이다보니 가르침에 실수가 있을 수 있고 혹여 그것을 아는체 지적하고 바로 잡으려다가 사사건건 교사와 부딪혀 학교를 그만 둔 친구도 있었다. 항상 수업준비에 철저해서 교과서 이외의 것까지 공부해 오던 친구는 교사들에게 밉보이기 딱 좋은 조건을 갖추었다. 이 책에 나오는 게르버처럼...
특히 책에서 시종일관 거론되는 쿠퍼교수와 게르버의 대립은 막상막하이다. 물론 쿠퍼교수의 지식적 함량은 높이 사고 싶지만 인간적인 부분에서 그는 완전 바닥이었다. 학생들 위에서 신처럼 군림하고자 하고 그것이 깨어질까 노심초사한다. 학생들보다 자신은 더 완벽하게 많이 알아야 하고 그렇게 하기위해 쿠퍼교수는 지나칠 정도로 지식에 집착하고 스스로 완벽하기를 요구한다. 이것이 유지되어야 스스로 학생 위에 군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똑똑하지만 성실하지는 않은 게르버, 그의 신념은 기본부터 오류가 있다. 수업에 대해 미리 준비하고 알려주지도 않은 도구를 챙겨오는 사람은 아첨꾼이며 성적을 잘 받기위해 노력하는 사람을 경멸한다. 스스로 생각해 학생들이 지켜야할 규율이 불합리하다면 날카롭게 지적하고 반항해 끊임없이 사소한 갈등을 빚는다. 쿠퍼교수와 게르버의 갈등은 살벌하다. 이는 쿠퍼의 편집증적인 성향과 소시오패스적인 인격에도 문제가 있다. 한편으로 게르버의 아버지는 우리의 아버지와 비슷해 공감이 되었다. 쿠퍼교수와의 대립을 아들 게르버가 피하길 바랬고 학교에서 진리와 정의 사랑을 배우기를 바랬다. 게르버의 기막힌 결말이 읽는 독자를 분노하게 한다.
절대권력을 휘둘러 학생을 파멸시키는 것이 교사가 추구하는 교권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부당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쿠퍼교수의 모습에서 강한 분노를 느끼며 과거 우리의 학창시절속 알량한 권력을 휘두르며 교사답지 못했던 인간들도 소환되어 기억이 났다. 당장 찾아내서 불합리했던 점을 따지고 지금이라도 바로 잡고 싶다는 생각이 솟구치기도 했다.
학교는 진리와 정의, 사랑을 가르쳐야 하는 곳임은 분명하다. 학생들이 인성을 배워 바른 어른으로 성장하는데는 교육자의 몫이 상당한 부분을 차지한다. 가르치는 교사도 배우는 학생도 서로를 존중하고 믿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세상이 완성되기를 기대해본다.
채성모의 손에잡히는독서 지원도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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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작가가 1930년 22세 때 발표한 소설이다. 이 책은 나치정부에 의해 금서가 되기도 했고, 이후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게르버는 똑똑하지만 성실하지 않은 학생으로 8학년 졸업을 앞두고 있다. 고등학교 졸업은 대학 입학과도 같기에 법학이나 철학 박사가 되고 싶은 게르버는 졸업시험을 꼭 통과해야 한다. 하지만 담임이자 수학 교수인 쿠퍼는 '쿠퍼 신'으로 불릴 정도로 학교 안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그는 엄격한 규율을 내세워 학생들 위에 군림하고, 기를 꺽어 놓으려고 한다. 게르버는 교수의 권위에 도전을 하며 학생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려하지만 심장병이 있는 아버지와 사랑하는 어머니가 학교를 옮겨서라도 졸업을 하기를 간절히 원하기에 자신을 끈임없이 꼬투리잡는 쿠퍼 신과의 관계를 개선하고자 노력한다. 누가 '교수진'과 그의 '동료들'에게 수십 년 동안 한 사람의 존재를 규정할 권리를 보장했는가? 241p- 당신은 우리를 이끌어줄 의무가 있는데 우리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붙였습니다. 244p- 그 어느 추리소설보다 강한 반전과 충격을 받았다. 이것이 소설인가 실화인가 헷갈릴 정도다. 우리나라도 8~90년대에 대학이 인생을 정의하는 기준이 되기도 했다. 야간 자율학습과 체벌교사가 있던 시절, 선생들의 권위에 학생들은 말 한 마디도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 시험이 끝나면 가끔 티비에 안타까운 뉴스가 방송되기도 했다. 누가 그들의 운명을 결정짓는가? 그 기준이 학생들이 살아온 삶을 판단하는 기준에 적합한가? 화가나고 울분이 차오른다. 교육이란 무엇인지 계속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 이 글은 @moonyebooks 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쓴 솔직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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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평범한 학생의 기막힌 이야기'라는 부제처럼 졸업시험을 앞둔 주인공 게르버가 성적과 졸업시험 합격이 인생 최대의 목표인 학교와 절대적 권의를 휘두르는 수학교수 쿠퍼신의 눈밖에 나면서 졸업시험까지 일어난 마지막 학기의 이야기들을 엮은 소설이다 책을 읽기전 나치정부가 사제의 문제를 증오심에 가득찬 왜곡된 형태로 그린 소설로 판정해 금서가 되었다고 해서 어떤 내용일까? 더 궁금증이 생겼다 반항적이지만 똑똑한 학생 게르버와 그런 그를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버릇없는 녀석으로 반드시 기를 꺾어놓아야 할 대상으로 게르버를 괴롭히고 망가뜨리려고 하는 교수 쿠퍼신을 보고 나의 학창시절과도 비슷한 몇몇 장면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자식의 미래를 위해서라는 말로 포장된 부모님의 비뚤어진 사랑까지.. 처음엔 "쿠퍼 같은 사람 앞에서 도망치지 않을 거예요!"라고 당당하던 게르버가 쿠퍼신이 휘두른 치졸하고 부당한 권력앞에 점점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을 위해 아무일도 못하는 쓸모없고 불필요한 존재가 아닐까 괴로워하는 모습은 너무 안타까웠다 내가 본 소설속 게르버는 다른 학생들보다 공부든 우정이나 사랑문제든 철학적일만큼 생각을 많이하고 사고의 폭이나 깊이도 다른 인물이었다 이런 학생에게 졸업시험에 합격이냐 불합격이냐의 판단이 강압적이고 편협한 한사람의 교수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 자체가 불행이고 비극이다 소설 첫부분에 '세상은 세가지의 것에 근거한다 바로 진리와 정의, 사랑이 그것이다'라는 문구가 나온다 과연 게르버가 느낀 학교생활이 그랬을까? 게르버가 살았던 시대와 나의 학창시절은 분명 다르지만 여전히 똑같은 고민을 하고, 똑같은 문제로 아이들이 꿈을 포기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이데아에 나오는 사방이 꽉막힌 교실에서 젊음을 보내는 아이들과 '오 캡틴, 마이 캡틴!'을 외치며 우리의 학창시절에 키팅 선생님이 있었더라면 부러워하면서 본 죽은 시인의 사회의 아이들의 모습이 낯설지않다 이 소설이 단순히 학교소설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고민하고 바꿔가야할 사회문제라는데 충분히 탐독할 가치가 있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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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쾌하고 불쾌하여 토가 나올 것 같고, 눈물조차 짜증나는 소설. 너무나도 현실과 닮아있는 모습에 구역질이 나온다. 과거와 달라진 게 없는 현실, 책을 읽으며 중간중간 덮은 이유는 권위주의적인 교사와 순종적인 학생들에게 화가 나서가 아니었다. 모든 상황이 오늘날의 고등학교와 별반 다를 게 없어서, 작가가 신랄하게 비판하는 모든 것들이 나의 19년 인생과 현재라는 것을 상기시켜줄 때마다 무력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도 우리는 선생님들의 부당한 차별과 다른 대우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대학 입시에 중요한 생기부에 안 좋게 기재되고, 괜히 선생님들 사이에서 안 좋은 소문이 돌까봐 겁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도 인사를 안 했다고 교무실에서 윽박을 지르며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고 인격모독을 하는 선생님들이 가득하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린 그저 묵묵히 “죄송합니다.” 라고 해야할 뿐이다. 대학에 가야 하니까. 괜히 선생님의 심기를 건드려서 불이익을 당하면 안되니까. 1등급 친구들에게만 세특을 수정할 기회를 주었다는 한 친구의 양심고백을 듣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그걸 왜 모두에게 알리지 않은 거야? 나머지 애들은 어떡해?’ 이기적인 생각이었다. 모두가 다 이기적이었다. 나 역시도 선생님의 권위에 복종해버려서 은연 중에 선생님이 아닌 그들을 먼저 탓해버렸다. 학교가 이렇다. 정말 친한 친구였는데도 입시와 관련되면 누구보다 매몰차게 변해버린다.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 정말 역겨운 것은 이 책을 읽으며 은연 중에 든 생각이, ‘이제 내신 끝나서 다행이다’ 라는 것이었다. 문제임을 알아도 어찌할 수 없는 세상이 나를 무력하게 한다. 정말이지, 이렇게 살고 싶지도 이런 학교를 지속시키고 싶지도 않다. 대학 입시가 우리를 지탱해주는 것일까? 아니, 우리를 도와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 이 끔찍한 생활을 견디게 하는 것이다. 복종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적응시킴으로써 말이다. ‘게르버가 죽을까? 죽겠네. 죽을까? 아…안 죽어. 안 죽어. 죽었네.’ 게르버를 읽으며 든 생각이었다. 나를 게르버와 동일시하며 죽을 것 같았던 게르버가 죽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으로 바뀌었었다. 그 지옥같은 시간을 어떻게든 버티고 있는 나와 내 친구들을 겹쳐보았기 때문이다. 게르버와 똑같은 환경에서 살고있는 우리가 버텼으니 게르버도 버틸 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어째서일까? 우리는 반항 의지가 없었기 때문에 버틴 것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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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부모가 믿는 만큼 자란다고 하였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절대적인 내 편이 한 명이라도 존재하는 사람은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순간이 와도 삶을 살아가는 힘을 낸다. 부모는 아이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한다. 아이들이 고등학교 때 몇 년간 학교폭력위원회에서 활동을 하였다. 자주 열린진 않았지만 학교에서 소집 문자가 오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부모님과 아이들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듣다 보면 거의 대부분의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믿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가 밖에 있으면 끊임없이 전화해서 어디 있는지 물어보고 확실하냐 확인을 하신다. 아이들은 예민하게 부모가 자신을 믿지 못하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러한 이야기들을 들으면 끝에 항상 '아이를 믿어주세요.'라고 말을 한다.
만약 여름방학 때 쿠퍼와 마주친 후 아버지가 '괜찮다. 잘 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낙제하더라도 다른 방법들은 많으니 걱정할 것 없다.'라고 말하였다면 어떠했을까? 사랑한 리자와의 일과 한 번만 더 심장발작이 오면 위험할 수 있는 아버지에 대한 압박감은 게르버를 짓누른다.
게르버는 쿠퍼가 모든 문제를 맞힌 차셰에게 수업 종이 울린 후까지 문제를 풀게 한 후 <미흡>을 주어 분노하였다. 차셰가 쿠퍼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을 때에는 가만히 있다가 그가 사라지고 난 후 분노하는 게르버에게 쉰탈은 '수업 시간에 그랬어야지. 게르버!'라고 한다. 그리고 다음 시간에 루프레히트와의 수업에서 배운 내용이 나오며 긍정적인 점수가 나오며 게르버는 기뻐한다.
이것이 게르버의 행동의 버튼이지 않았나 한다. 자신이 기뻐한 것을 쿠퍼의 제의를 덥석 수용하고 투항했다 생각한다. <11장 작은 말은 쓰러진다> 전체에 흐르는 게르버의 심리 상태에서 어쩌면 결말을 예상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마지막 장은 충격적이면서도 씁쓸한 기분을 느끼게 하였다.
<게르버>는 프리드리히 토어베르크가 1930년 22살 때 발표했다. 프라하 출신으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게르버가 겪은 학업의 어려움, 교수와의 갈등, 우정과 사랑의 문제 등은 작가 자신이 프라하의 권위주의적 학교에서 겪은 경험이었다.
1930년의 프라하 학교와 2023년 대한민국의 학교의 모습은 데자뷰같다. 100여 년의 세월은 어디로 사라진 것인가. 예전보다는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학업 스트레스, 학교폭력 등으로 죽음을 선택하는 아이들의 뉴스는 계속되고 있다. 작은 관심이 비극을 막을 수 있다. 아이의 공부하는 등이 아니라 얼굴을 마주하고 '힘들지? 괜찮다.'라는 말을 전해 보는 것은 어떨까? 새해를 시작하는 지금 올해는 더 이상 이러한 소식이 뉴스에 등장하지 않기를 바라본다.
수능에 모든 것을 올인하고 있는 수험생과 부모님들께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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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문장에서 또르르!
1933년 나치 정부가 "사제의 문제를 증오심에 가득 찬 왜곡된 형태로 그린" 소설로 판정해 금서가 되었던 <게르버>는 카프카의 유고를 정리 발표한 막스 브로트의 도움으로 출간되었던 책이다.
어느 평범한 학생의 기막힌 이야기라는 부제가 눈길을 잡아 끈다. 대학에 가기 전 졸업시험을 앞둔 마지막 1년. 우리나라 학제로 치면 고등학교 3학년 게르버가 주인공이다.
담임과 학생으로 만나게 된 쿠퍼 신과 게르버가 한 교실에서 맞닥트리게 되는 상황들은 나를 조마조마하게 만들고, '설마, 아닐 거야.'를 생각하면서 끝까지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다. 자연스레 게르버를 응원하고 있는 엄마의 마음이 되었다.
성실하진 않지만 똑똑하고, 불합리한 학교 규율을 날카롭게 지적하면서 선생들에게 반항하는 게르버는 학교에서 사소한 갈등을 빚게 된다. 옛말에 스승의 그림자도 밝지 않는다는 말처럼, 권위주의적인 학교에서 게르버를 다른 선생들은 젊은이의 반항과 치기로 이해했다.
하지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쿠퍼 신은 도전하는 학생에게 엄격한 규율로 반드시 응징하면서 권력 맛에 도취되어 있는 선생이다. 다른 영화에 나오는 미친 선생은 단순히 폭력적인 모습으로 비치지만, 여기에 등장한 빌런 쿠퍼 신은 지능범에 사이코패스 형 수학 선생이다.
법학이나 철학 박사가 되고 싶은 게르버는 심장병이 있는 아버지의 전학 권유를 뿌리치고, 반드시 고등학교 졸업시험에 합격해야 했고, 학교 선생의 전횡을 참고 견뎌야 하는 이유였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선 아직 힘이 없는 학생 신분이었으니까. 그리고 심장병을 앓고 있는 아버지에게 더 이상의 충격을 주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권력을 휘두르는 선생들이 지금은 모두 사라졌을까? 최근에도 학생에게 폭언과 막말과 욕설을 퍼붓는 선생에 대한 뉴스를 자주 볼 수 있다. 교권이 사라졌다고 주장하는 선생과 존경할 선생이 없다는 학생들의 이런 첨예한 입장 차이는 왜 좁혀지지 않는 것일까?
모든 아이들이 1등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모두 입시지옥에 빠져서 허우적 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성적만을 중시하는 사회가 바뀌지 않는 이상 학교 시스템도 바뀔 수 없다. 시험 성적에 대한 압박으로 내몰린 아이들이 어른이 되고, 그 어른이 사회를 이끌어 가는 사회에서 당장 바뀌기를 기대할 순 없겠지만, 귀한 아이들을 귀하게 대하는 사회가 되어야 어른이 되어도 귀한 대접을 받기를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학교 다닐 때도 미친 선생이 꼭 한 명씩은 있었는데,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일이라면 더 이상은 개인의 일로 치부할 수 없음을 알기에 더욱 많은 분들이 읽어 보시기를 권한다.
#네이버독서카페 #리딩투데이 #리투서평단 #게르버 #프리드리히토어베르크 #문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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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버』 프리드리히 토어베르크 | 한미희 옮김 | 문예출판사
독일 소설 / p.428
'매우 우수', '우수', '충분', '미흡'으로 평가되는 학업 성취도. 대학 입학 자격을 결정하는 시험인 고등학교 졸업시험. '미흡'은 낙제를 의미했고, 시험의 합격은 전국 모든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고 여겨졌다.
8세부터 시작해 19세가 될 때까지 12년이라는 오랜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면서 그 과정보다는 균등한 틀에 갇힌 채 '결과'에 따라 한 사람의 인생이 좌지우지되는 것이다.
누가 그들에게 한 인간의 삶을 결정할 권리를 주었을까? 그 자격을 결정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오직 당신, 교수님이시죠! …… 임신 초기의 태아가 세상에 나와도 되는지 묻는 거예요. 말도 안 되지요, 그렇죠? 설사 그럴 수 있다고 해도 누가, 누가, 대체 누가 태아에게 자격이 없다고 말할 권리가 있을까요?' p.242-243
한 교수는 게르버를 재능이 많고 오래전 학교 수준을 벗어난 젊은이라 말한다. 그리고 그의 반항적인 모습은 단지 젊은이의 자연스러운 기질에서 오는 거며, 학교가 주는 기회가 충분하지 않은 거라 말한다.
하지만 학생들 사이에서 신으로 거닐고 싶었던 절대적 권위를 지닌 수학 교수 쿠퍼신(神)은 게르버가 자신의 수업에서 웃을 일이 없을 거라 말하며 버릇없는 그의 기를 꺾어놓을 거라 말한다. 그것도 게르버의 아버지에게 대놓고.
동일한 인물 게르버를 두고 다른 말을 하는 교수들. 그들의 견해에 따라 달라지는 결과.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일까? 과연 이 상황에서 아주 중요한 학년 '졸업반'이 된 게르버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교수로부터 졸업 시험에 대해 합격 판정을 받아야 했던 그가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 상황을 잘 헤쳐나가길 응원했다. 그리고 절대 권력에 푹 빠진 교수 쿠퍼신에게 K.O를 날려주길 바랐다.
때론 그가 이성 친구로 인해 방황하고 학업에 충실한 모습을 보이지 않을 때면 절로 잔소리를 하게 만들었지만 그 또한 청소년이었으니 또 이해가 되던 웃픈 상황이 생긴다. 그리고 너무나도 생생하게 그려지는 인물들의 행동과 사회 제도가 현실감 있게 다가와 지금 어디에선가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뒤로 갈수록 빠져들었던 소설 『게르버』였다.
두 아이의 부모로서, 게르버가 처한 상황이 남 일 같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지금 현재 모든 학생들의 일처럼 여겨졌다. 특히 고3 수험생들의 모습이 덧입혀지며 숨이 막혀왔다.
특히 반 전체가 보는 앞에서 교수로부터 따귀를 맞은 슐라이히가 그 교수에게 미흡을 받지 않기 위해 용서를 빌어야 했을 때, 쿠퍼신의 질문에 모든 대답을 하던 차셰가 미흡을 받을 때까지 계속 테스트를 받아야 했을 때 그리고 게르버의 생각지도 못한 마지막 선택에.
나 또한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제도에 따라 살았다. 그리고 그들처럼 그 모든 일이 얼른 다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 생각했었다.
나치 정부의 금서 판정을 받았던 『게르버』를 통해 지금 학교의 역할이 무엇일지 생각을 안 해볼 수가 없다.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어떤 일이 우리 중 한 사람에게 일어난다면, 그건 더는 개인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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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버』 프리드리히 토어베르크 ㅣ 문예출판사
'동서고금' 이라는 사자성어는 동양과 서양, 옛날과 지금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저 먼 곳 유럽, 그것도 아주 오래 전에 창작된 작품 『게르버』를 읽으며 '동서고금'이라는 사자성어가 생각났다. 여기 이곳이나 저 바다 건너 먼 곳이나, 21세기인 지금이나 100전인 오래 전이나 학교와 학생의 대립, 억압과 자유에 대한 열망, 권위주의와 경쟁의 숨막힘은 변함이 없었다.
사색적이고 총명하며, 비열하고 권위주위적인 것에 조롱을 보낼 만큼 대범한 소년 게르버는 8학년 졸업 학기를 앞에 두고 변화한다. 그의 변화는 권력자 쿠퍼 교수의 노골적인 모욕과 교수의 계략으로 졸업에서 낙제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업을 위한 게르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절대 강자 쿠퍼 교수의 음모는 계속되고, 적자생존의 경쟁은 부추겨지며, 부당하고 이기적인 행동은 기회가 되는 교실을 보며 게르버는 자멸한다.
교실의 절대 강자임을 당연시 여기며, 학생을 먹잇감 혹은 자신의 절대적인 위치를 확인시켜주는 존재로만 생각하는 수학 교수 게르버. 밥맛이며 끔찍하다. 그는 정확한 판단력으로 자신의 한계가 어디인지 깨닫고, 자신의 힘이 학교 울타리 안에서만 발휘되는 것을 인지하여 누릴 수 있는 최대한의 힘을 학교 안에서 누리는 찌질이였다.
문제는 학교 안 모두가 그의 찌질함과 그의 비겁함과 그의 불공정함을 알면서도 아무도 어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잘못됨을 알면서도 개선하지 못하는 이유는 세상을 바꾸는 불편한 번거로움을 감수하기 보다는 잠깐 자세를 바꾸어 이 세상을 벗어나기만 하면 된다는 안일한 태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로 참아내고, 상황에서 벗어나길 기다리고, 벗어난 후에는 망각의 장치를 발휘하여 잊어버리게 된다. 이런 우리 모두의 안일함이 사회의 오랜 모순과 불합리함을 굳건하고 단단하게 만듬을 이상한 선생 쿠퍼를 통해 깨닫는다.
작품 속 게르버의 친구 바인베르크가 한 말을 우리는 되새겨야 할 것이다. 자신의 일만 아니면 상관할 것 없다는 비인간적인 친구들에게 그는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어떤 일이 우리 중 한 사람에게 일어난다면, 그건 더는 개인의 일이 아니야" 라고 말한다.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부당함이라 생각하며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한다.
시험과 평가라는 압박은 청춘들을 병들게 한다. 친구는 우정을 나누는 대상이 아니라 이겨야 하는 적으로 만들고,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도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비굴한 사과를 함으로써 폭력을 정당하게 만들어 버린다. 그럼에도 자신들을 병들게 하는 사회와 사람들에게 존경과 찬사를 보내야 하니 어찌 그들이 미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답답한 노릇이다. 청춘들의 답답함이 사리지기 위해선 학교가 신나고 공정한 경쟁, 함께 하는 성장이 가능한 곳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더 이상 '학교' 때문에 창밖으로 몸을 던지는 '게르버'들이 생기지 않길 바래본다.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 투데이’를 통한 ‘출판사’ 지원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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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인생이 학교와 아무 관계가 없다고 믿는다면 그건 잘못이다.' 아버지가 그렇게 말씀하셨던가? 그렇다. 그게 그것일까? 규정할 수 없는 것-그것일까? 처음부터 그것이었을까? 410쪽 주인공 쿠르트 게르버는 8학년을 앞둔 실과고등학교 학생이다. 반항적이고 명석한 학생인 게르버는 교우관계는 나쁘지 않지만, 교수들에게는 호불호가 심하게 갈린다. 원칙적이고 보수적인 교수 쿠퍼는 이런 게르버를 썩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 게르버와 쿠퍼의 갈등으로 아버지와 주변 교수님들 마저 전학을 권할 정도지만 게르버는 물러서지 않는다. 그러나 졸업시험의 압박이 다가오며 게르버는 깊은 고뇌에 빠진다.
알다시피 교수(교사)는 학교 안에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다른 사회에서 그들은 민간인, 이웃, 지나가는 행인에 불과하다. 그러나 학생 입장에서 그들의 눈 밖에 나는 일은 이득이 되지 않는다. 그들에 대한 평가는 전적으로 교수의 손에 달려있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어쩔수 없이 침묵해야한다. 학생의 사회는 제한적이다. 더 넓은 곳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졸업 전까지는 학교를 벗어날 수 없다. 게르버의 상황을 살펴보며 나는 학창시절 어떤 학생이었나를 되짚어 보았다. 갈등을 원체 힘들어하는지라 선생님과의 마찰이 거의 없었다. 어릴 적부터 고루한 기질이 있어서 그런지 어른 말을 대부분 따르는 학생이었다. 학교에 게르버같은 학생이 있었다면, 속으로 조금 피곤한 타입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다만 강압적이고 인간적인 모습이 결여된 선생님께 한 두마디씩 토를 다는 친구들을 보며 통쾌하다고 느낀 적도 있음을 고백한다. 2000년대 까지만 해도 교사의 권위가 있었다. 물론 권위를 이용해 정도에 지나친 체벌을 가하는 교사도 있었다. 2010년 이후 학생인권조례가 발의되며 교권에 대응하는 "학생인권"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며 이후 교사와 학생의 관계는 완전히 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게르버, 그가 현 시대 학생이었다면 학생인권조례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쪽이었을까? 결말을 보면 꼭 그런것 같지도 않아보이지만. <게르버>의 배경이 1920-30년대임을 감안하면 게르버는 시대를 앞선 혁명적인 학생임이 틀림없다. 그 시절 학생들의 고민은 게르버와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게르버>를 읽으며 공감하고, 한편으로는 통쾌했을 것이다. 비단 쿠퍼와의 갈등뿐만 아니라 가까운 이성이었던 리자와의 관계에서 오는 내적 갈등과 교우 벤다의 죽음을 바라보며 진정으로 슬퍼하는 친구가 없음에 느낀 염세는 지금 학생들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만한 이야기였다. <게르버>를 읽으며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생각나기도 했다. 갈등 상황은 다르지만 사회의 축소판을 학교에 대입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비슷하게 느껴졌다. 두 작품 모두 교과서에 실렸다는 공통점도 있다. 틀에 박힌 사회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고자 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게르버>의 결말은 다소 당황스러웠지만 자존심 강한 학생의 결말다웠다. 학창시절을 모두 보낸 어른이라면 <게르버>를 읽으며 지난 과거를 회상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리딩투데이 지원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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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평범한 학생의 기막힌 이야기 『 게르버 』 프리드리히 토어베르크 / 문예출판사
아이가 '응애'하고 태어나는 순간 하나의 인격체로서 스스로 사회의 중심에 서기까지 나 그리고 부모, 더나아가 지역사회와 국가가 협력해 키워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 대한민국의 공교육이 우리만의 특성을 살리지않고 학생들을 집단으로 분류해 똑같은 과정을 밟아 지성을 겸비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성장하는데 이것이 과연 옳은 방향인지 관계자조차 알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생업에 종사하는 부모는 태어난지 얼마되지않은 영유아를 기관에 맡기고 약 20년간의 교육을 국가에 위탁하는데 이렇게 교육을 성실히 이수한 아이들 모두가 자신이 하고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불신의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1933년의 나치 독일에서 정부의 금서 판정을 받은 <게르버>, 이후 유대인 작가로서 박해를 받았던 이 작품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얼마나 큰 어려움이 있었을지... 읽는내내 긴장감을 멈출 수 없었다. 지금에서야 독일 교과과정에 선정되어 누구나 접할 수 있지만 이 책이 독자에게 전하는 메세지는 꽤나 강렬해 짙게 새겨진 여운이 쉽사리 가시질 않았다.
실과고등학교 출석번호 7번 쿠르트 게르버(별명:셰리)... 8학년 졸업반의 시작은 그다지 밝아보이지 않았다. 담임 교수인 아르투어 쿠퍼가 그를 좋게 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무오류성을 강조해 '쿠퍼 신'으로 불리며 대놓고 게르버에게 나중에 우는 사람에 속할지도 모른다며 경고한다. 게다가 자신의 전능한 권력과 지배욕으로 '착석'이라는 명령은 학생들의 입을 닫을 기본적 수단으로 그것을 어기면 가감없이 '미흡'이라는 성적으로 되갚고야 만다는 사실...
애초에 게르버의 아버지는 담임이 쿠퍼란 소식을 듣고 아들의 인생을 그런 자에게 넘기고 싶지않다며 다른 학교로의 전학을 권했지만, 일을 크게 벌이고 싶지않았던 게르버는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하며 아버지를 설득한다. 아버지는 게르버의 선한 의지 그리고 낙관주의를 펼치려는 그를 응원하지만 지금의 교수는 그의 앞날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거란 진심어린 조언을 해주었다는거...
한편 게르버가 마음에 품었던 리자 베어발트... 여러 남자를 만나며 겉도는 행동을 하지만 자신에게만큼은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던 그는 서툰 사랑의 감정으로 갈피를 잡지 못한다. 문제는 리자가 게르버에게 가진 감정은 모성애 같은 것들로 위선과 비겁함이 섞여 있었다는거... 다만, 그녀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과연 이 이야기의 끝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려는 것일까?
<게르버>는 교수라는 직위 또한 도장찍힌 종이로 인정된 바이니 학생의 앞날을 종이 한장으로 위협하는 권위적인 협박은 옳지않은 일이라 말한다. 모든 학생이 세상을 바꿀 순 없지만 수많은 인생길의 막다른 골목에서 구해줘야 하는 것이 바로 교수의 역할이라고... 낙제로 위협하며 자신에게 굴복시키는 도구가 아님을 간절히 그리고 쉬지않고 외쳐대는 심리책이었다.
입시지옥이라는 우리 또한 간과할 수 없음에 경고장을 날리는 <게르버>... 어쩌면 우리의 인생은 찰나의 시간일 수 있다. 청소년 시기의 찬란한 빛을 어둠으로 치닫게 만드는 게르버는 학업에 심리적 압박을 경험한 청소년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찰나의 순간을 견뎌내면 희망을 볼 수 있다는 걸 믿어 의심치않도록...
게르버, 프리드리히토어베르크, 문예출판사, 독서카페, 리딩투데이, 리투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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