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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좋아하는 유명 방송인 겸 작가가 SNS에 '평생 돌보거나 책임져야 될 혈육이 없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삶인가'라는 글을 올렸다. 순간적인 공감에 '좋아요'를 눌렀는데 되새겨 볼수록 마음 한켠에 불편함이 남았다. 누군가를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건 상상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홀가분한 게 사실이다. 그의 말처럼 책임질 누군가가 있는 사람에 비해 '나를 돌보고 성장시키고 탐험하는 멋진 삶'을 살 가능성이 더 많아질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를 책임지지 않고 사는 삶은 가능하다 치더라도, 나는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 평생을 살아갈 수 있을까? 물론 능력과 돈이 있다면 혈육이 없어도 의료기관에, 요양시설에 나를 의탁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를 돌볼 책임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돈으로 구매한 돌봄 속에서 '공감', '친절', '동정'과 같이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 속에서만 공유할 수 있는 감각까지 바란다면 그것은 이기적인 것 아닐까? 누군가의 돌봄이 없었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나의 가치를 드높이며 스스로 대단하다 여길만한 삶을 살아가지도 못할 것이다. /p12 우리 모두는 타인의 돌봄에 의해 형성된 존재다. 세상으로 우리를 꺼내주는 조산사의 쪼글쪼글한 손에 닿던 순간부터 지금 이 시점까지, 우리 각자의 삶은 우리의 발달과 후생을 보살피고 지원해준 수많은 사람들 덕분에 지탱되어왔다. /p399 터클은 "우리가 기술에 더 많은 것을 기대하고 서로에게서는 더 적은 것을 기대하는" 디스토피아적 미래의 모습을 암시한다. "관계에 대한 요구 없이 동반자라는 착각을 제공하는 기술에 끌리는 세계"말이다. 그러한 미래에서 돌봄제공자와의 대면 접촉은 매우 희귀한 사치품일 것이다. 어쩌면 아주 부자만 그런 것을 이용할 수 있고, 나머지는 디지털 플랫폼과 센서와 인공지능 동반자에 의지해야 할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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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노동. 사랑이 필요한 노동이란 무엇일까? 세상에 이 노동과 무관한 사람은 없으며,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온 생애에 걸쳐 제공하거나 받게 되는 것, 바로 ‘돌봄’이다. 돌봄은 필수불가결한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너무나 당연시되고 평가절하되어왔다. 또한 돌봄노동자로 규정되는 건 보통 여성이라는 점에서 페미니즘과도 연관이 있다. 이처럼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돌봄노동의 가치와 중요성을 드러내는 것이 이 책의 목표다.
저자인 영국의 저술가 매들린 번팅은 코로나19가 터지기 전에 5년 간의 취재를 거쳐 이 책을 집필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동안 수면 아래 있었던 돌봄노동 문제는 팬데믹으로 인해 관심이 급증하며 전세계적인 이슈가 되었다. 이번 팬데믹은 우리가 다른 이들의 돌봄에 얼마나 의존하는지, 돌봄노동이 얼마나 귀한지 몸소 깨닫게 해주었다. 또한 팬데믹 동안 돌봄노동과 ‘필수적인’이라는 단어가 같이 사용되는 빈도를 보면 돌봄을 받을 수 없는 환경에 처한다는 게 얼마나 치명적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이토록 중요한 돌봄노동이 왜 그동안 저평가되었을까? 먼저, 그저 ‘간병인’으로 치부하며 돌봄노동 종사자를 하찮게 여기는 사회적 시선에 문제가 있다. 돌봄노동은 사명감이 없으면 하기 힘든 숭고한 일이고 전문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아무나 할 수 없지만, 그저 육체노동으로 취급받아왔다. 또한 일상적이고 주로 가정 내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가시화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돌봄노동은 더 이상 가정만의 문제가 아니다. 점점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노인의 지속적인 돌봄 구조를 구축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으며, 저출생, 독거노인 등 다양한 사회 문제가 돌봄노동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돌봄노동의 위기는 이뿐만이 아니다. 과잉노동, 낮은 보수, 인력 부족, 열악한 노동 조건, 사회적 무관심 등 바로잡아야 할 것이 많다. 그리고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상업적 개념으로 바라보는 태도도 지양해야 한다. 신뢰와 헌신을 바탕으로 하는 돌봄은 단순노동이 아닌 감정의 교감으로, 돈으로 사고 팔 수 없다. 진심과 인간애가 결핍된 지나친 상업화는 돌봄의 질을 훼손하며 학대로 변질될 수 있으므로, 돌봄노동의 상품화는 인력난에 대한 해결방안이 아니다. 이는 윤리와 연대를 통해 조명해야 하며, 국가는 돌봄노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도적·정책적 차원에서 보완할 필요가 있다.
볼륨도 있는 터라 한 편의 논문을 읽은 기분이다. 번역체이다 보니 쉬이 읽히진 않았지만, 돌봄노동의 현실을 보다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한 챕터가 끝날 때마다 단어를 설명한 부분이 인상 깊었다. 사전적 의미를 명시함으로써 본질에 주목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셰익스피어의 고전 『리어왕』을 ‘돌봄의 부재’라는 주제로 성찰한 것 또한 신선한 접근이라 기억에 남는다. 세상에 돌봄노동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돌봄노동이 가치를 인정받고 제대로 자리잡는 그 날까지, 우리 모두 관심을 가지고 촉구해야 할 것이다. 이 사회를 위해, 미래를 위해,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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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노동 #매들린번팅 #반비출판사 처음 1장 시작하는데 어렵다..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읽을수록 와닿는 단어들과 문장들이 속도를 높여주더군요. 간호사, 의사, 간병인, 사회복지사, 아이를 키우는 부모와 부모를 돌보는 자녀 등 우리 주변에 돌봄은 너무나 흔하게 그리고 필수적으로 존재합니다. 엄마의 육아가, 간호사, 요양사의 돌봄이라는 행위가 너무나 당연하게 그리고 하찮게 여겨지고 있는 것에 마음이 아팠어요.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이야기에 마음이 너무 씁쓸했네요. 과연 우리는, 우리 사회는 그들에게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 저도 이제 세아이의 육아를 하게 되면서 내 시간의 희생을 돌봄이라는 행위로 넣어야합니다. 대부분의 돌봄이라는 것이 여성들에게 더 많이 분포되어있다는 사실도 조금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우리 주변의 그리고 내가 받기도 하는 돌봄에 대해 다시금 귀하게 여기는 계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네요. ?? 돌봄의 위기는 극적인 사회변화에 직면한 문화의 위기이자 정치의 위기이며 윤리의 위기다. 오래도록 돌봄의 가치와 중요성을 폄하해 온 뿌리 깊은 편견이 21세기의 현실과 충돌하고 있다. ??나는 내 삶, 내 아이, 내게 놓인 선택지 등을 비교할때 일곤하는 몇몇 어려운 감정에 불을 비추고 직면해야 했습니다. 일종의 프레임 재설정이 필요했지요. 부끄러움은 비밀과 어둠을 좋아합니다. 환하게 불빛을 비추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 해야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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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가정, 병원, 시설, 임종의 침상 곁에서, 돌봄과 관계와 몸의 이야기’처럼 간병인, 사회복지사, 의료인, 장애아동을 돌보는 부모 등에 관한 책이다. 돌봄이란 무엇일까? 공감되는 글귀가 있다. p, 86 에이드리엔 리치는 돌봄을 “해놓고 돌아서면 누군가가 하지 않은 것처럼 되돌려놓는 일들, 자질구레한 일들, 어린아이가 끊임없이 필요로 하는 일들에 대한 관심”이라고 정의했다. 돌봄의 비가시성에 대해 쉽게 풀어쓴 문장이다. 매일 반복적으로 수행되지만 조금이라도 하지 않으면 금새 하지 않은 것처럼 돌아간다. 몇 십년 열심히 해도 하루라도 안하면 티가 나는 것이다. 돌봄 종사자의 대다수는 여성이며 저임금이고 돌봄 특성상 업무강도가 높다. 예산 감축, 민영화 등으로 돌봄 현장이 악화되괴 있기에 영국에서는 돌봄 수요는 증가하지만 돌봄 채용에 지원하는 사람들은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고 한다. 사람이 없으면 기계가 하자는 생각으로 테크놀로지에 투자를 많이 하고 있다는데 과연 사람을 기계가 대신할 수 있을까? 돌봄이란, ‘우리가 그 세계 안에서 되도록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의 세계를 지속시키고 유지하고 고치기 위해 하는 모든 활동’, ‘노동인 만큼이나 관계인 것’, ‘내재적으로 관계적인 노동’, ‘다른 이와의 관계에서 자신이 무엇일 수 있는지 발견하게 되는 기회’ 등이라고 이 책에서는 말한다. 그만큼 돌봄에서는 관계가 중요하다. 컴퓨터 1대가 사람 1명보다 많은 환자를 관리하고, 로봇의사가 인간의사보다 더 높은 정확도로 수술을 집도하여 효율적인 의료시스템을 운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기는 어렵다. 애절리 힐 의사들에 따르면 돌봄의 특징은 (p.222 참고) 관심과 연속성이라고 한다. 상대의 이야기를 주의깊게 듣고 관심을 가져야 더 명확한 진단을 내릴 수 있으며, 환자에 대해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깊이있고 지속적인 지식은 신속하고 정확한 의사결정에 영향을 준다고 한다. 하지만 정부에서의 예산 삭감과 인력 감축 등으로 지속적인 관계 형성을 어렵게 하고 있다고 한다. 왜 예산을 삭감하고 인력을 감축하게 되었을까? 의료와 요양 서비스가 민영화 되었기 때문이다. 민영화는 이윤을 위해 업체 입장에서의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만들지언정 종사자의 업무체계와 급여를 불확실하게 만들고 지속성을 떨어트리고 이는 돌봄대상과의 관계 형성을 방해하고 돌봄 수요를 만족시키지 못하기에 돌봄의 질을 하향화한다. 또한 돌봄에서의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고 단순 업무로 바라보는 대다수의 시선 때문이다. 경력이 높은 사람이 왜 필요한지 판단하지 않고 인력 수급에만 집중한다. 이런 대중의 시선과 무관심이 돌봄의 질을 떨어트리는 정부의 정책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p.294 좋은 돌봄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에는 회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제로아워 계약 하에 장거리를 다니면서 일주일에도 여러 사람을 돌봐야 하는 방문 간병인에게 모든 것을 부담시켜서 지속가능하고 환자를 잘 보살피며 통합적인 의료 및 사회적 돌봄 시스템을 달성하기란 불가능하다. 지역당국은 시간이나 분 단위가 아니라 결과를 기준으로 계약해야 한다. 너무 많은 인력이 그만두는 상황에서 시간 단위 계약은 가짜 경제 논리다.(중략) 그들의 존재를 계속해서 당연시한다면, 그리고 일을 맡기는 방식과 규제하는 방식에 대해 현재의 역기능적인 체제를 고치지 않는다면, 우리가 나이 들었을 때는 그러한 사람들이 여전히 곁에 있으면서 우리를 돌봐주리라고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이미 영국에서는 의료, 요양 등의 서비스에서 정부 예산 감축이 많이 진행되었고, 민영화되어 질은 낮아지고, 공급이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며, 현장은 더욱더 열악해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나라의 사례와 진정으로 좋은 돌봄이란 무엇인지 알아보고,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 정부의 돌봄 정책에 관심을 갖고 국민의 의견을 피력하게 된다면 우리는 영국과는 다른 길을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돌봄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고 정부의 정책을 눈여겨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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