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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치유에 대한 이야기였다. 상담사 임해수는 한 사건으로 모든 게 망가져 버린 삶을 산다. 그 일로 인해 일하던 직장도 잃고 소중한 친구도 잃는다. 게다가 이혼까지 하게 된다. 그 후 세상과 사람들과 단절하며 어둠 속에서 살게 된다. 심지어 산책도 사람들이 별로 없는 깊은 밤에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동네에서 길고양이 순무를 만나게 되고 순무로 인해 세이라는 초등학생과 고양이를 챙기는 마루맘도 만나게 된다. 서서히 그녀는 길고양이 순무와 정이 들고 교감을 한다. 순무를 좋아하는 세이와도 더욱 가까워진다. 그녀는 순무로부터 왠지 모를 위로도 받는다. 순무와 같이 다니는 까미라는 애교가 많은 고양이도 만나게 된다. 그녀는 점점 더 고양이들을 챙기기 시작했으며 어느 순간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캣맘의 모습이 되어있었다. 그녀는 순무가 아픈 몸으로도 살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며 연민을 느끼기도 한다. 이 책에서는 특히 언어가 생략된 길고양이 순무와의 교감을 통해 침묵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임해수는 사람들이 자신한테 있었던 일에 대해서 뭐라고 얘기하는 것을 불편해한다. 그러면서 자신마저도 타인에 대해, 타인의 일에 대해 함부로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책에서 그녀는 길고양이 순무와 교감하며 침묵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깨닫는다. 자신은 그저 넘쳐나는 말들에 둘러싸여, 불필요한 말들을 함부로 낭비하는 인간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타인의 일에 함부로 얘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부터 힘들다고 하는 사람한테 힘내라고 얘기하기도 힘들어졌다. 그 힘듦의 크기를 내가 어떻게 알고 힘내라는 말을 함부로 할 수 있을까. 또한, 이해한다고 함부로 말하기도 싫어졌다. 직접 겪은 당사자가 아닌 이상 그 어떤 것도 내가 100% 이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다시 한번 타인에게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고, 나의 궁금증을 풀기 위해 무례하게 질문하는 것보다 침묵하는 게 더 낫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오히려 모르는 척하는 게 그 사람을 위한 것일 때가 많다.
그녀는 결국 자신에 대해 함부로 얘기한 기자와 악플러들에 대해서 고소를 진행하지 않고 자신이 있었던 센터 대표의 퇴사 통보도 항의 없이 받아들이기로 한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잘못한 것은 인정하며 반성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나도 그랬듯이 이 소설의 주인공도 결국엔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받아들이며 그 일로 인해 성장하고 배웠다. 그 일을 딛고 앞으로 나아갔다. 이 모든 과정을 따라 읽으며 나도 함께 깊이 공감하고 위로받을 수 있었다. 타인의 일에 함부로 판단하고 얘기하는 것보다 오히려 모르는척하고 침묵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여전히 이 세상엔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판단하고 함부로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대부분 자신이 상대방에게 무례한 얘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도 모른다. 그래서 무례한 말을 들은 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다잡는 방법밖에는 없다.
부디 많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판단하고 얘기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자신이 생각 없이 한 말들이 타인에겐 큰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이런 것들을 아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우리 세상이 좀 살만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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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들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고 했던가? 나는 어떤 사람일까? 입을 닫으려 노력하는 사람일까? 남편과 나는 가끔 장난처럼 말한다. 우리 둘이 있을 때는 이런저런 농담도 하고 마음속 이야기를 할지언정 다른 사람 앞에선 최대한 입을 무겁게 하자고. 우리는 부부니까 입이 가벼울 수 있지만 다른 사람 앞에선 그러면 안 된다고. 아이들이 이야기를 시작하면 입을 다물고 최대한 충고는 하지 말고, 끝까지 들어주자고. 서로에게 다행인 것은 둘이 있을 땐 서로의 편을 들어주고 서로를 위로한다고나 할까? 듣는다는 것.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불쑥, 충고 아닌 충고를 하고 싶고 반박을 하고 싶지만, 끝까지 들어야 한다. 상대가 상처 입지 않도록, 상대가 원하는 답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들어야 한다. 그래서 ‘말’이라는 것은 늘 어렵다. 아니 무섭다.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나의 충고나 말이 상처가 될 수 있으니까.
임해수는 심리 상담 전문가다. 한때는 잘나가는 상담가였지만 그날 이후, 그녀의 일상은 중단됐다. 내담자들에게 자신 있게 조언하고 충고했지만, 이제는 그녀의 삶이 사라진 것 같다. 해수는 그날 이후 밤마다 편지를 쓴다. 하지만 어떤 편지도 완성하지 못한다. 상담하며 바쁜 일상을 보내던 그녀였지만 그 일이 이후, 모든 것이 중단됐다. 이런 해수에게 어느 날 길고양이 한 마리가 신경 쓰인다. 고양이는 어딘가 아파 보이고 해수는 고양이에게 도움을 주고 싶지만 쉽지 않다. 고양이 순무 덕분에 세이라는 소녀를 알게 된다. 그 일 이후 그녀에게 적대적인 사람투성이였지만, 세이는 해수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고양이와 세이 그리고 그 일. 해수는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예의와 품위의 장막 뒤에 숨어 약속이나 한 듯 이처럼 간접적인 제스처를 취하는 것이 실은 그녀를 가장 괴롭힌다는 것을. 그것이 자신들이 가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하고 강력한 처벌의 방식이라는 것을 (95) 전 가끔 그런 생각해요. 요즘 사람들은 다 반성에 미쳐 있는 게 아닌가. 어디서나 반성하라고 난리잖아요. 반성해라. 왜 반성 안 하냐.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냐. 정말 지긋지긋한 데가 있죠. 그런데 생각해 보면 실은 반성은 본인을 위한 거 아닌가요? 같은 실수를 두 번 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 (244) 억측과 오해 같은 것들이 무섭게 번져 나가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는다. 선인과 악인, 호의와 악의. 그렇게 이름을 붙이고 판단을 내린 뒤, 높다란 경계를 세우는 것만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271)
나이를 먹으면서 조심하는 게 있다. 섣불리 누군가에게 충고하지 않는 것. 그리고 상대의 말을 끊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는 것. 아이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나도 참, 꼰대 기질이 있는 건 아닌지 반성한다. 가능하면 잘 들어주고 영혼 없는 충고는 하지 않겠다고 생각하지만, 쉽지 않다. 아이들보다 더 많이 살았다고는 하나, 나의 의견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 잘 들어주는 것.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이제는 알 것 같다. 누군가를 위한 충고 또한. 상담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 상담으로 인해 누군가가 죽었다면, 사람들은 누군가를 향해 쏟아낼 것이다. 그 혹은 그녀가 죽은 이유, 원인을 찾기 위해서라도. 그래서 무섭다. 누군가를 위한 충고나 상담이 어렵다는 것을.
나에게도 가끔 지인들이 어떤 상황에 대해, 어떻게 하면 좋을지 조언을 구할 때가 있다. 내가 하는 말이 그들에게 어떤 도움이 될지는 모른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다. 변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지금의 고통이나 아픔을 들어주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조심하려고 한다. 상대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100% 알지 못하기 때문에 쉽게 충고를 할 수 없다. 그래서 김혜진 작가의 책이 답답한 듯 이해할 수 있었다. 세상에는 명확한 답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어른이 되는 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고 세상에 대해, 우리의 일상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지만, 여전히 어렵다.
가끔 지인들이 말한다. 언니는 책을 많이 읽어선지, 선택하는 단어나 상황에 대해 냉철하고 고급스럽게 말하는 것 같다고. 하지만 나는 안다. 나는 여전히 배워야 하고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을. 김혜진 작가의 책은 참 좋다. 읽고 나면 많은 생각을, 숙제 같은 생각을 던져 준다. 쉽게 말하지 말자. 아니 상대의 인생을 다 안다는 듯 충고하지 말자. 그 충고가 누군가에게는 수긍할 수 있는 이유가 될 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상처가 될 수 있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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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토리
주인공은 방송에도 출연하는 꽤 성공한 상담사였다. 그러던 어느 날, 라디오에서 어떤 배우에 대한 구설수와 관련해 비판적인 발언을 했는데, 몇 달 뒤 그 배우가 자살을 하면서 그 사람을 자살로 몰고갔다는 사람들의 비난을 받게 된다. 그 일의 파장으로 회사에서도 사직하게 되고, 주인공은 산책도 사람 없는 밤시간에만 하는 은둔생활을 하게 된다. 주인공은 라디오에서 주어진 대본을 읽은 것뿐이고, 그 내용도 당시 사람들이 많이 하던 얘기일 뿐인데, 자신만이 중점적으로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된 것에 대해 억울해하며, 인신공격성 비난을 가해대는 네티즌들에 대해 분노한다.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편지를 썼다가 다시 찢었다가 하기도 하고, 변호사를 통해 악플러들을 고소하지 말지 고민만 하면서 혼란에 싸여 있었는데, 어린 길고양이와 초3소녀를 만나 이들과의 교류를 통해 안정과 위안을 얻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다시 삶의 현장으로 복귀한다는 게 이 소설의 줄거리다.
이렇게 줄거리만 보면, 이 소설이 되게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소설 같다. 그러나 나의 관점에서 이 소설의 내면을 봤을 때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 작가가 무엇을 의도하고, 독자의 어떤 반응을 기대하고 이 소설을 쓴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게 이 소설은 아름다운 소설이 아니다.
2 결말에 대하여.
주인공은 억울함과 분노를 지우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악플러들에 대한 법적 대응도 포기한다. 그리고 학폭에 시달리다가 괴롭혔던 애한테 싸움을 건 초3소녀에게도 먼저 사과를 하라고 소녀의 아빠에게 말한다. 그런데 과연 이게 맞나? 아름다운 결말인가 주인공은 자기에게 아무런 위해도 가하지 않은 사람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도 쉽게 비난한 사람이다. 그렇다면 그 사람의 자살에 대해 도의적으로라도 미안함과 책임감을 갖는게 맞다. 그러나 주인공은 자살자와 유족한테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겠다는 게 아니라, 자기 억울함을 유족이 이해해줄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인 것 뿐이고, 어린 고양이와 소녀한테서 우월감을 얻어 자존감을 회복해, 예의의 뒤에서 간섭과 뒷담화를 하는 인간들을 더 이상 신경쓰지 않겠다는 것일 뿐이며, 악플러에 대한 법적 대응의 포기는 악플질은 조만간 사그라들거라는 막연한 기대와 그간의 악플질에 대해서는 대응하기 귀찮아져서 갖게 된 태도일 뿐이다.
유족에 대해서는 지극히 비도덕적인 자세고, 고양이와 소녀와의 관계는 우월감을 회복하는 계기가 됐던 것 뿐이고, 악플러들에 대해서는 잘못된 대응을 한거다.
악플러들에 대해서는 법적 대응을 하는게 맞다. 주인공이 다른 직업 찾을 것도 아니고, 상담사로서 계속 일할거면, 상담사로서의 사회적 명성을 유지해야 될 필요가 있을 테고, 그러려면 악플러들이 더 이상 설치지 못하게 법적 대응을 해야만 된다. 악플러들은 대부분 현실에서 부적응한 실패자들로서, 치졸하고 궁상맞은 도덕적 우월감만으로 뒤에서 물어뜯을 상대만 찾아다니는 찌질이들이다. 얘네들은 상대가 강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계속 물고늘어지기 때문에 확실하게 선을 그어줘야된다.
주인공은 자기 문제에 대해서도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소녀의 아버지에게 소녀가 먼저 사과해야 된다는 바보같은 조언을 한다. 주인공은 자기에게 아무런 위해도 가하지 않은 사람에게 함부로 비판하는 말을 해, 그 사람 자살의 원인일지도 모를 짓을 한 사람인 반면에, 소녀는 줄곧 자신에게 학폭을 행했던 아이한테 반격을 한거다. 소녀가 먼저 사과할 일이 전혀 아니다. 주인공이 자기의 사연에만 빠져, 소녀에게 자신과 같은 대응을 요구한 것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이처럼 주인공과 소녀는 곤란에 처한 이유 자체가 다를 뿐만 아니라, 환경도 다르다. 주인공에게 힘든 상황이라는 것은 기껏해야 예의 뒤에 숨은 인간들의 참견과 뒷담화일 뿐이지만, 소녀는 직접적인 물리적, 언어적 폭력에 노출된 환경에 처해있다. 자신이 처한 환경에 따라 대응방식은 달라져야 한다. 물론 소녀가 물리적 반격을 한 게 적절했다는 것은 아니다. 미성년의 경우 법적 보호에서 홀대되는 미성숙한 사회적 상황일 수도 있고, 보호자의 제대로된 보호를 받기 어려운 환경일 수도 있지만, 상황에 따라 가장 적절한 대응방식을 찾아볼 수는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고려해볼 대응방식들 중에 평화롭고 안전한 환경에 있는 주인공의 조언은 너무나 한심하고, 무책임하다.
3 관계에 대한 고찰.
이 소설을 읽고 관계에 대해서 생각을 좀 하게 됐다. 인간은 상대보다 우위라는 느낌을 통해 자기 안정감을 얻는다. 그러한 행태의 대표적인 모습이 다음의 세 가지라고 생각한다.
1) 폭력 물리적 우위 또는 말빨의 우위(실제로는 자기 잘못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 상대의 조그마한 잘못? 심지어는 어이없는 이유로 상대를 몰아세우는 뻔뻔함의 우위)로 자기 우월감을 느끼려는 행위. 미성년이나 눈치를 안봐도 될 것 같은 상황에서 성인들이 하는 방식.
2) 참견과 뒷담화. 참견은 조언을 빙자하여 자기 우월감을 느끼거나, 상대에 대한 통제권을 갖고 싶어하는 행위. 뒷담화는 남의 흠집을 잡아 자기 우월감 또는 무리에서의 안정감을 느끼려는 행위. 기본적인 예의는 지켜지는 사회에서의 개인이 존재의 불안을 해결하는 방식.
3) 경청 상대의 불안한 상황에 비해 자신의 안정적인 상황을 이용한 자기 우월적 행위. 문명화된 사회에서 사회적 위치를 가진 자가 행하는 가장 도도한 지배적 행위다. 반면 경청은 양면성을 지닌 행위이기도 하다. 상대에게 알아서 다 털어놓으라는 지배적인 행태일 수도 있고, 아무런 이의제기 없이 그저 받아들여야만 되는 지배를 당하는 행태일 수도 있다.
4 이 소설에서 나오는 지배적 행태.
주인공은 성공한 상담가로서 사람들의 심리를 꿰뚫어볼 수 있다는 우월감을 갖고 살아온 사람이다. 그런데 자살사건에 휘말리게 되면서, 일상에서는 참견과 뒷담화를, 네티즌들에게는 언어적 폭력을 견뎌야 되는 상황을 맞는다. 수도배관을 수리했던 게 접점의 전부인 사람이 주제넘은 조언을 해대는 등, 지배당하는 상황에 놓인 굴욕감을 맛본다.
이런 주인공이 고양이와 소녀를 만난 게 과연 따뜻한 교류였을까.
주인공은 몸상태가 매우 심각해보이는 어린 고양이를 구해주려고 한다. 그런데 과연 이것이 순수하게 타자를 위한 행위였을까. 그 고양이를 정말 생각했다면, 비전문가인 자기가 고양이를 잡으려고 틀을 설치하고 막연히 기다리는게 아니라, 포획전문가에게 의뢰해서 신속히 고양이를 구하려고 했어야 되지 않을까. 고양이를 걱정하며 포획틀을 놓고 기다리는 행위는 자기가 그 고양이에게 은혜를 베풀어줄 수 있다는 지배적 우월감을 계속 느끼려는 행위로 볼 수도 있다. 사회적관계에서 상실해버린 우월감을 상처입은 고양이를 통해 채운거다.
학폭피해 소녀에 대해서도 주인공은 구체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고, 기다림, 일종의 경청의 자세를 견지한다. 이것은 소녀에 대한 배려와 존중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 소녀가 자기에게 의지한다는 데서 얻는 우월적 위안감을 계속 유지하고픈 행위로도 볼 수가 있다.
자기가 타인의 무분별한 간섭으로 인해 괴로웠다고, 자기는 그런 간섭을 안하고 타인 또는 타자에 대해 경청의 자세를 취하는 인격을 보인 거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과연 그게 맞나. 생존의 위협에 시달리는 고양이, 물리적 언어적 폭력에 그대로 노출된 소녀에 비해 주인공은 예의 뒤에 숨은 사람의 참견과 뒷담화라는 사치스러운 시련만 겪었던 거다.
고양이와 소녀를 통해 주인공은 상담가로서 경청의 자세로 누렸던 우월감을 다시 느낀 것에 불과하며, 그러한 관계를 통해 자존감을 회복해서 다시 세상에 복귀할 생각을 하게 된 것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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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는 죽어도 잊을 수 없는 일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쉽게 잊히는 일이 되기도 하니까요. 잊을 수 없는 사람은 피가 마르는데 잊은 사람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아간다는 게 어떻게 가능할까요.p7 고양이들은 소리 나지 않게, 보이지도 않게 골목 이곳저곳을 바쁘게 오간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한 필사적인 움직임. 그것이 학습된 것이라면 고양이들은 틀림없이 잊을 수 없는 끔찍하고 오싹한 경험들을 지나왔을 것이다. 옳고 그름, 정의와 불의. 선과 악. 그런 인간적인 가치와는 부관하게 습득해야 하는 생존의 법칙들. 이의를 제기할 수 없고, 다만 받아들여야 하는 규칙들.p56-57 그녀는 선을 긋고 편을 가르고 어느 한쪽에 서고 싶은 마음을 억누른다. 분명하게 입장을 정하는 것이 그렇게 하지 않는 것보다 어떤 면에선 쉽고 수월하다. 그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 주는 신속한 방식이고 그러므로 매혹적이다. 자신과 무관하기만 하다면 어떤 사안에 대해서든 빠르게 판단을 내리고 그보다 더 빠르게 그 판단을 철회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망각 속으로 던져 버리는 건 너무나 쉬운 일이다.p102 이 길이 모두의 것이라면 거기엔 고양이와 비둘기 같은, 인간 아닌 다른 생명이 가진 권리가 있을 것이다. 생명을 지ㅣ고 태어난 것들은 각자의 삶을 살아 내야 할 숙명이 있다. 그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p105-106 . . 유명한 상담사였던 임해수는 어느 순간 의도치 않게 가해자가 되어 모두의 지탄을 받고, 모든 것을 잃은 채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간다.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담아, 또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사건과 관련 있는 이들에게 끊임없이 편지글을 쓰지만, 하상 끝맺음을 하지 못하고, 보내지 못한다. 사람들과 마주칠까 두려워 한산한 시간을 골라 골목을 다니다 우연찮게 세이라는 아이와 길고양이 순무와 만나게 되며 조금씩 갇혀 있던 세계에서 밖으로 한걸음씩 내딛기 시작한다. 아픈 고양이 순무와 따돌림을 당하던 세이는 누구도 보살펴 주지 않고, 마음 쓰는 이 하나 없지만, 꿋꿋하게 삶을 이어가려 노력하고, 그 모습들을 통해 임해수는 해보지도 않은 고양이 구조를 시도하고, 따돌림을 당하던 세이를 조심스럽게 관찰하며 가만가만 위로하려 한다. 그렇게 조금씩 밖으로, 밖으로 나오며 그녀 스스로도 치유받기 시작한다. 주인공 임해수가 잔인한 가해자인지, 혹은 가혹한 누명을 쓴 피해자인지에 대한 결론은 책 속에 나오지 않는다. 사회적 판결은 유보한채, 그저 사회로부터 단절되고, 숨는 주인공의 이야기만이 담겨 있을 뿐이다. 김혜진 작가의 소설들이 모두 그러하듯, 언제나 소외되고 외면 당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묵직하게 담겨 있다. 고통과 상처에 얼룩져 힘들어하는 주인공의 삶에 새롭게 등장한 고양이 순무와 세이와 마음을 나누는 모습들이 뭉근한 감동을 자아낸다 .괴로움을 이겨내고,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힘겹게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는, 안타깝지만 따뜻함이 담겨 있는 김혜진 작가의 시선과 그녀가 하는 이야기들이 참 좋다. 역시 이번에도 엄지 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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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 대하여 영화와 소설에 대한 감동으로 인해 김혜진의 팬이 되었고, 그래서 구매하고 읽게 된 책. 세상과 사람과 동물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과 관점이, 태도가 개인적으론 늘 공감이 되고 동의가 된다. 이 책의 경우 경청이라는 제목 자체가 주는 호기심에 이끌려 읽게 된 책. 아직 읽고 있는 중이라 결말이 궁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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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청. 이 단어를 처음 접한 건 나의 초등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으로부터다. 선생님께서는 우리에게 선생님 말씀에 항상 경청해야 한다고 하셨다. 경청을 하기 위한 첫 번째 자세는 의자에 꼿꼿이 앉아 자세를 똑바로 하고, 선생님의 눈을 쳐다보면서 선생님의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선생님의 말씀 때문에 그 당시 어렸던 나는 경청이 단지 자세를 똑바로 하고 상대방의 눈을 바라보는 “행위”인 줄만 알았는데, 그 “행위”를 통해 상대방이 정말 하고자 하는 말을 듣고 이해하는 모든 과정이 “경청”이었다는 걸 시간이 꽤나 흐른 후에야 깨닫게 되었다. 그만큼 “경청”하는 건 힘든 일이기에 오랜 시간 동안 진정한 의미를 깨닫지 못한 것 일 수도 있다. 이처럼 경청이 힘든 행위라는 것은 비단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었나 보다. 작가 김혜진은 《경청》을 통해 경청의 의미에 대해 우리에게 알려준다. 작가는 “경청”이란 실행하기 힘든 행위이고,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서 경청은 대부분 제대로 행해지지 않는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경청을 해야만 하는 이유는 누군가의 마음을 만져줄 수도 있는 일이기에 주인공 해수와 그녀와 얽혀 있는 여러 인물들의 관계를 통해 경청이라는 의미를 이 책에 담아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해수는 경청을 반드시 해야만 하는 직업인 상담사로 살았다. 심지어 오랫동안 상담사로서 유능하기까지 했다. 아마 해수가 상담사로서 유능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면 그저 의무적으로 상담하는 사람이었다기보다는, 상담할 때 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에 대해 신중히 말을 하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이 무색할 정도로 해수의 말 한마디로 인해 “박정기”라는 배우가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만다. 물론 해수가 그 사람을 구제불능이고 한심하다고 말했기 때문에 그 배우가 자살을 결심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배우에게 해수의 말이 낙타의 등을 부러트리는 마지막 지푸라기 같은 임계점이었는지, 아니면 자살을 결심하게 하는 도화선이었는지, 아니면 정말 아무 영향도 미치지 않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쨌든 해수는 유능한 상담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생각 없이 남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를 방송에서 했고, 이 때문에 이성목 기자는 정확하지도 않은 사실이지만 이 모든 것이 해수 때문이라고 비난하는 기사를 냈다. 그 기사 때문에 사람들은 동요했고, 해수를 맹렬히 비난했다. 마치 자신들은 지금까지 남에게 비수 되는 말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사람들처럼. 그들은 오직 자신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해수를 비난했다. 사람들 사이에 경청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해수를 향한 신랄한 비난만이 존재했다. 결국 그 비난들은 해수가 상담사로 일하지 못할 지경까지 끌고 갔으며, 자신의 제일 친한 친구, 동료들, 엄마, 남편과도 다 틀어지는 시발점이 된다. 삼십 년 지기인 친구 주현과 해수의 엄마는 사람들의 비난을 멈추기 위해서는 해수가 그 가족에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해수에게 쏟아지는 비난이 안타까워서 사과해야 한다고 했지만, 해수는 친구와 엄마의 말에 경청할 수 없었다. 해수는 정말로 자신이 잘못한 것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것에 대해 무조건 사과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 또한 해수가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주현이나 엄마보다 해수에게 더 공감이 갔다. 주현과 엄마는 해수를 걱정하긴 했지만, 진심으로 해수의 심정이 어떤지 해수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은 채로 해수에게 사과를 하라고 다소 강압적으로 종용했다. 이런 식의 대화는 경청하기 힘들뿐더러, 오히려 해수를 남들과 같이 비난하는 꼴이니, 당연히 해수가 이에 대해 담담히 수긍하기보다는, 화를 내고 상처가 되는 말을 이들에게 되돌려 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양쪽 상대가 모두 경청을 하기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의 마음에 귀 기울여야 일어나는 것인데, 서로의 마음을 듣기보다는 한쪽은 당장 일어난 문제를 그저 잠잠하게 하기 위해 무조건적인 사과를 하라고 강요 아닌 강요를 했고, 다른 한쪽은 그에 대해 화나서 소리를 지르기만 했으니 경청이 행해졌을 리가 만무하다. 이렇게 이 이야기를 끝맺었다면 아마 해수는 굉장히 안 좋은 결말을 마주했을 수도 있다. 해수는 세상에는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은커녕 자신을 비난하고 힐난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고 매일 같이 생각했을 것이며, 집에서 보내지도 못하는 편지만 끊임없이 끄적였을 것이다. 편지에다가 해수의 마음을 담지 않는 이상 세상 그 아무도 그녀의 말에 경청하지 않는다고 느꼈을 테니. 결국엔 해수는 배우 “박정기”와 같은 삶의 마지막을 마주하며 세상에서 사라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다행히도 해수에게 다시 일어날 한 줄기의 빛, 희망이 찾아왔다. 세상이 야속하고 각박한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수에게는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희망이 보였다. 바로 고양이 순무 때문에 세이를 만나게 되었을 때였다. 아이러니하게도 해수에게 힘이 되어준 세이와, 알게 모르게 해수와 세이에게 치유가 된 고양이 순무는 해수와 정반대의 성향을 가졌다기보다는, 해수와 비슷한, 즉 해수를 비추는 거울 같은 존재였다. 세이가 딱히 잘못한 게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이의 반 친구들은 세이를 왕따 시키고, 피구연습이라는 명목아래 세이의 몸과 마음에 수없이 많은 상처를 냈다. 마치 해수의 직장동료들, 친구, 그리고 엄마가 해수의 마음에 상처 냈듯이. 고양이 순무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친 것은 없지만 순무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순무에게 해코지를 했다. 마치 해수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악성댓글과 말로 해수를 신랄하게 비난했듯이. 세이와 해수는 자신들과 비슷해 보이는 고양이 순무를 구출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들도 언젠가는 순무처럼 “누군가”에 의해 구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을 가졌고, 다행스럽게도 세이와 해수에게 그 “누군가”는 서로가 되어 주었다. 즉, 아이러니하게도 상처밖에 없는 그들이었지만, 오히려 서로를 구출하고 위로가 되어줄 수 있었던 건 고양이를 구한다는 명목아래 어느 순간부터 서로에게 동질감을 느꼈고, 그러면서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상대방의 마음에 “경청”하기 위해서는 단지 비슷함이나 동질감만이 아닌 결국 상대방의 마음을 진심으로 “이해”하려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은 서로의 마음을 이해했기 때문에 남들처럼 섣불리 가벼운 응원이나 조언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런 것들이 얼마나 큰 비수가 되는지 알았기에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해수는 세이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세이가 그것을 들키기 싫어한다는 것도 알았기에 세이가 자신에게 힘듦을 털어놓을 때까지 기다렸다. 세이 또한 마찬가지로 해수가 유능한 상담사였으나 악플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이에 대한 얘기를 해수에게 함부로 하지 않았다. 그들은 남들과 달랐다. 변호사가 해수의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은 채 그저 악플러들을 혼내기 위해선 고소뿐이다라고 말하거나, 해수와 마찬가지로 누군가를 고소해야 하는 수진과 승표가 해수를 이해하지도 않고 무조건 자신들의 아픔만을 공유하려는 독단적이고 이기적인 사람들과는 달랐다. 세이와 해수는 서로 비슷한 것을 알았고, 그저 비슷하기만 한 걸로 그치는 대신 서로의 마음을 이해해주려고 했고, 그렇기에 서로에게 경청할 수 있었다. 결국 “경청”이라는 행위 덕분에 세이와 해수는 자신들의 상처를 점차 치유할 수 있었다. 해수는 자신이 마주한 문제들을 풀어나가기 위해 박정기의 배우자를 만났고, 세이가 자신처럼 더 큰 상처를 입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세이의 부모님에게 해결책을 제시하며 어찌 보면 다시 상담사로 일어서는 첫걸음을 뗄 수 있었다. 세이 또한 계속 당하는 대신 그에 대해 대항하고, 전학을 가게 되었다. 물론 이 방법들이 완벽했던 것은 아니다. 또한 이 방법들을 통해 그들의 상처가 완벽하게 아문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서로에게 경청하려는 따뜻한 마음과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돼주는 한, 분명 언젠가는 자신들이 갇혀있는 상처라는 알을 완벽히 깨고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작가가 진심으로 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단순히 “경청을 하자”라는 메시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단지 세상에 있는 여러 방법들 중 “경청”이라는 수단을 통해 사람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따뜻함”과 “이해심”이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말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몇 년 전 기사에서 경찰과 난동을 부리던 시민을 안아주는 청년이 생각났다. 경찰과 시민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때 옆에 서 있던 청년이 그 시민을 경찰이 강압적으로 제압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대신, 그 시민을 포옹해 주고, 등을 토닥이며 따뜻한 몇 마디를 건네자 그 시민은 난동 부리는 것을 멈췄다. 아마 지금 우리 세상에 필요한 것은 이 책에서 나타낸 것처럼 서로에게 앞뒤 안 가리고 무조건적인 차디찬 비난을 퍼붓는 것보다는 그저 사람들의 이야기와 마음에 경청하고 이를 통해 따뜻함과 이해심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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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진의 경청이라는 작품은 재미있어 보이는 책이 없나 찾아보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삼십대 후반의 잘 나가는 심리상담사인 주인공이 한 방송에서 어느 배우에 대한 대본을 읽었다가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소설입니다. 중간 중간 마음에 와 닿는 구절들이 많아서 북마크를 많이 하게 되었던 작품입니다. 다시 세상으로 나올 수 있게 서로를 '경청'하는 모습이 작품을 읽는 저에게도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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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민음사에서 출판된 김혜진 작가의 경청입니다. 제 개인적인 의견을 담고 있으므로 구매시 참고로만 이용 부탁드리며 약간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으니 주의바랍니다. 올해 읽은 한국 소설 중에서 단연 최고라고 말하고 싶은 책이다. 표지부터 너무 취향이라 안 살 수가 없었는데, 민음사 티비를 볼 때 추천 받고, 또 다른 편집자k 유튜브에서도 추천받아 구매하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 김혜진 작가님을 처음 만나게 되었는데 어찌나 술술 읽히게 글을 쓰는 지 이게 소설인가 누군가의 에세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의 브이로그를 눈 앞에 틀어주는 실정이다. 아무래도 유명 상담사였던 주인공이 누군가의 죽음과 연관된 일을 했고, 그것의 비난을 받는 장면들이 나오는데 그 때마다 인터넷 유저로서 나는 자유로운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무리 그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글을 썼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보지 않았다고 한들 그에게서 자유로울 수 있냐 하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정말로 좋았던 것은 남들이 말하는 망한, 한 번에 나락간 인생을 얻게 된 주인공이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중요한 건 꺾이더라도 계속 해 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위안과 성장 서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만족감도 동시에 얻을 수 있었다. 앞으로도 김혜진 작가님의 다른 책들도 다 독파할 예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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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가 사과하면 정리되는 문제예요. 다른 문제들은 그 다음에, 그 이후에 방법을 찾고 해결하면 돼요. 이 일로 세이가 훼손되는 일은 없어요. 그럴 만한 일도 아니고요. 세이는 중요한 걸 배울거예요. 아이가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요."
너무 낯익은 말투다. 주변 사람들뿐 아니라 나 또한 너무 쉽게 저지르는 말. 내가 경험했으니까, 내가 잘 아니까, 너는 몰라서 그런거라고, 경험이 없어서 그런거라고, 쉽게 단정하고 함부로 가르치는 것 또한, 남한테 상처주는 일일텐데.
경험하지 않은 것은 쉽게 말하면 안된다는 게 요즘 생각이다. 내가 상처받지 않을 수 있도록 남이 해주길 바라는 그것, "모르면 말하지 않기". 근데 나부터 시정되지 않는, 너무 쉬운 것 같은데 너무도 고치기 어려운 그 습관. 왜냐. 내가 아니니까. 상처받는 저 당사자는 내가 아니니까. 나는 쓴소리 해주는 거니까.
모두 각자의 사정이 있고, 각자의 우주가 있다. 모두 실수하고 후회하지만 다시 실수를 번복하면서 반성하고 성장한다.
내가 제일 잘알고, 내가 제일 똑똑하고, 내가 제일 깨끗하다는 오만함. 벗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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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보는 김혜진 작가의 글이라고 까지는 하지 못하겠으나...언젠가는 한 방이 있을 것이라 생각되는 작가이기 때문에 꾸준히 그녀의 글을 찾아보고 있다. 사실, 요즘의 작가들 중에서 그녀만큼 생활밀접형의 글쓰기를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대부분 스타일리쉬하고...가볍고...있는 척(?)하는데 도가 텄다. 여하튼 그 와중에, 항상 이런 저런 사회의 한 단면을 꺼내어 보여주는 작가의 글쓰기가 나쁘지 않다. 이번 작품을 읽으면서 생각했던 것은...아무래도 김혜진 작가는 조금은 착한 사람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생각해보면 작품들이 대부분 해피엔딩이였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가거나, 살아내는 삶에 대한 작가의 응원이 이 책 뿐만 아니라...읽는 책 곳곳에서 느꼈던 것 같다. 아마, 이 부분은...그녀의 장점이 될 수도...하지만 또 단점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의외로 삶은 그렇게 녹록하지는 않으니까. 상담사라는 직업을 가진 주인공과 동네의 11살 소녀, 그리고 길고양이가 주인공. 이제 벌써 10년도 더 지났지만...소시적에 상담을 좀 받아본 경험을 되새겨 보기도 하였고, 동물을 좋아하는 만큼 스트릿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도 뭐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11살 소녀와의 관계나 에피소드는...사실 조금 과장되거나 너무 미화된 듯 싶게 살짝 이질감이 들었다. (그냥 내 생각이지만 김혜진 작가가 넘어야할 부분이 바로 이런 부분. 더 리얼리티를 살려야 하지 않나 싶다. ) 여하튼, 여전히 ‘그래 바로 이작품이야!!’ 하는 느낌이 아니므로... 그녀가 최고의 작품을 쓸 때까지 조금 더 기다려 볼 예정. 끝. - 이 책이 좋았던 점 : 이런 삶도 있었고..이렇게 또 살아가는구나...뭐 이런 느낌 - 이 책이 별로였던 점 : 11살 소녀가 너무 비현실적임 - 이 책이 내게 던지는 질문 : 그럼에도 불구하고...나도 최선을 다해서 주어진 삶을 살아야하지 않겠냐? 는 자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