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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통감은 방대한 분량의 책이다. 몇 권의 번역서를 읽으면서 느꼈던 일이지만 대단한 역작이라는 생각을 했다. 중국의 역사를 춘추전국시대의 시작인 주 위열왕부터 북송이 건국되기 전인 후주까지 이르는 1,300여 년의 역사를 294권의 분량에 편년체로 기록한 책이다. 나라에서 지원하여 편찬하도록 했기에 정치적인 대립 속에서도 이 책은 편찬이 가능했던 것으로 얘기한다. 저자 사마광의 대단한 노력이 함께했지만 송나라에서 황제의 은근한 도움이 이 책이 이루어지게 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말이다.
자치통감은 ‘다스림에 도움이 되고 역대를 통해 거울이 되는 책’이란 뜻이다. 역사가 정리되지 못하고 있음을 안타깝게 여긴 북송의 황제 영종이 사마광에게 서서를 편찬하라고 지시해서 시작된 것이다. 당시 구법파와 신법파가 대립하고 있었는데, 그 대립과 분쟁을 완화하기 위한 의도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것을 다음의 북송 평화의 시대를 연 신종이 지원하는 태도를 지녔기에 신법파가 정권을 장악해도 저술은 지속될 수 있었다. 물론 사마광 혼자서 한 일은 아니다. 많은 학자들의 이 책의 저술에 참여했다.
우리가 이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방대한 분량을 번역한 신동준 선생의 노고 또한 컸다. 중국의 역사서를 번역하다가 그 질고의 시간 속에 타계한 번역가의 일은 참으로 안타깝다. 그를 통해 번역된 많은 중국의 책들을 우리는 만날 수 있고 중국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가 있다. 우리가 중국의 사서에 조금 더 가까이 갈 수 있었던 것은 역자의 비상한 노력 덕택이다. 이 책은 중국 공산당을 이끈 마오쩌뚱이 애지중지했다는 얘기가 있다. 십여 번을 정독해 읽고, 손에서 이 책을 놓지 않았다 한다. 그만큼 이 책을 통해서 지혜를 얻었던 듯하다. 현대 공산당에서는 이 책을 제왕의 교과서라 명명한다. 숱한 후대 황제들이 이 책을 읽었던 이유가 되리라 여겨진다,
저자가 첨언을 하고 싶은 부분에는 ‘신 사마광이 말한다.’란 말을 달고 자신의 견해를 덧붙인다. 역사에 대한 견해가 남다른 것을 이 부분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충분히 사마광의 의견을 통해 역사에 대한 생각의 깊이를 더해 갈 수 있다. 원문이 번역된 글의 뒷부분에 게재되어 있다. 한자에 대해 깊이가 있는 사람들은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다. 번역이 비교적 직역이 많아 원문과 비교해서 읽어도 되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하지만 방대한 분량의 글을 읽어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기에 역자의 노고가 마음에 무척이나 다가오는 책이다.
4권에는 후한 광무제에서 한 환제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권 42에서 권 54까지 후한의 역사서라고 할 수 있게 4권을 편재하고 있다. 한 시대를 비교적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다고 보면 되겠다. 광무제가 외효와 공손술을 토벌하는 이야기부터 시작하고 있다. 그들을 토벌함으로 후한의 나라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었다. 이들을 토벌한 일은 왕망이 세운 신의 흔적을 지우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편년체는 시간을 중심으로 역사를 기술하는 방식이다. 그러기에 시간에 따라 일어난 일들을 목차를 정해 기술하고 있다. 가령 1. 월수 태수 제수 2. 가을 역질 발생 3. 외지의 왕들이 공물을 바치는 봉헌을 함. 4. 태중대부 양통의 상소 등과 같이 같은 시간대에 일어난 일들을 항목을 제시해 풀어나가고 있다. 일어난 일들을 기록한 것이 다양하게 펼쳐지니 방대한 분량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도참설 과신, 반초의 서역 경영, 두씨 외척의 전횡, 음황후 폐위, 유모의 정사 개입, 외척 양기의 발호, 최식의 정론, 환관이 권력을 쥔 이야기 등이 굵은 내용으로 소제목이 되고 있다. 자기 시대에 제시되는 소제목의 내용이 그 시대를 대표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마지막 환관들이 권력을 잡은 이야기는 후한이 종말로 가고 있는 상황과 연결된다. 후한 말에 환관들이 권력을 쥐고 십상시의 난를 일으키는 등 나라가 혼란스럽게 되어가게 되는데 그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의 정권 야욕과 민중들의 피폐한 삶을 등에 업고 일어난 황건적의 난 등으로 후한은 그 불꽃이 사그라져 간다. 이 혼란한 틈에 각지에서 영웅호걸들이 일어나 삼국시대로 전개되어 가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후한의 마지막은 환관들이 정치에 관여해 황제의 권력이 약화되는 계기가 되고, 새로운 역사로 나아가게 되는 상황이 된다. 이렇게 후한이 멸망해 가는 야야기가 제공되는 곳이 이 책의 마지막이다. 다음 5권에서는 3국의 이야기가 다루어질 것으로 여겨진다.
정말 방대한 분량이다. 그 가운데 후한의 역사를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지금의 우리들 어법과 같지 않아 읽는데 부담을 느끼기는 하나 내용이 워낙 자세하게 그려져 있어 그런 거리감을 지울 수 있게 만들어준다. 읽으면서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들로 되어 있다. 읽으면 한 시대의 삶이 그려져 나타난다. 그들의 삶이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모본이 되고 귀감이 된다. 역사가 또 다른 역사를 만든다는 말은 역사를 통해 지혜를 배우고 그것을 현실에 적용시켜 새로운 일들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리라 여겨진다.
역사를 전공하고 후한을 익히 알고 있는 사람들도 워낙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나오고 그들이 익숙한 이름들이 아니기에 책읽기가 조금은 어렵다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 인물 위주로, 중요 사건을 찾으면서 읽어나간다면 작은 얘기들을 더러 건너가더라도 역사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는 무리가 없을 듯하다. 역사는 위대한 스승이다. 자고로 이 책이 모든 왕들의 필독서처럼 되었다고 한다. 그것은 역사가 삶의 지혜를 가득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도 세상을 두루 이롭게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교과서처럼 인식되어야 할 책이다. 조선시대도 중국에 가는 사람들이 있으면 이 책을 가져올 것을 주문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다.
역사서를 읽는다는 것은 보람이 있다. 그 보람은 찾음과 지혜에 있는 듯하다. 이 책을 읽으면 안목이 그만큼 넓어진다. 역사를 읽는다는 것은 그렇게 눈을 크게 뜨게 하는 모양이다. 방대한 분량의 서적, 동양 역사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이 책을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한다. 대단한 역작을 만나면서 서가에 책이 놓여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진다. 책을 편찬해준 인간사랑에 감사하며 이 책을 읽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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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보내준 <자치통감> 4권을 읽으면서, 방대한 분량과 번역문을 통해 그 내용을 비로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동안 사마천의 <사기>에 못지않은 역사서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정보를 알고 있었지만, 비로소 이 책을 열독함으로써 중국 한나라의 역사를 연대기로 서술한 내용을 접할 수 있었다. <자치통감>은 그 전체 분량이 294권에 달하고, 중국 고대의 주나라로부터 1362년의 역사를 1년 단위로 서술하여 엮은 책이다. 저자인 사마광은 북송의 인물이며, 이 책을 엮으면서 정사(正史)와 함께 다양한 실록과 야사 및 소설 등을 참고했다고 한다. 사마광은 유학자로서 경전의 해석에 조예가 깊었으며, 당시 개혁정치를 추구했던 왕안석에 맞서 보수적인 태도를 취했다고 한다.
우선 책의 제목에서 ‘자치(資治)’는 정치의 밑천이라는 뜻이며, ‘통감(通鑑)’은 역사를 통하여 거울로 삼는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리하여 역사 기록을 선택하는데 있어서도, 당시의 정치상황이나 인물의 장단점을 평가하여 과거의 역사를 거울로 삼아 정치의 규범으로 삼으려고 했다고 여겨진다. 왕조의 역사를 기록하면서 그 흥망의 원인과 명분을 밝히고자 하였고, 그 내용을 통해 후대에 귀감이 되고자 하려는 의도를 분명히 제시하고 있다고 평가되고 있다. 특히 주요 사건의 경우 사마광 자신의 논평을 곁들이고 있어, 이를 통해 그의 역사관을 엿볼 수 있다고 하겠다.
‘후한시대’의 광무제로부터 환제까지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4권의 내용은 대체로 황실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와 주변국과의 전쟁 등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시대와 인물만 다르지 그 내용은 건조하게 서술되고 있는데, 한때 권력에 취해 무도한 행태를 저질렀던 이들에 대해서도 매서운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리하여 정치 상황과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한 지도자의 비참한 말로가 초래되기도 하고, 외척과 환관들에게 휘둘리는 무능한 황실의 모습이 연출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권력은 무상하고 지도자의 무능력은 역사에 의해 고스란히 증명된다는 것만은 역사를 통해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무엇보다 방대한 원전을 충실하게 번역하고자 노력한 역자의 노고를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는데, 번역문과 원문을 나란히 수록하고 있어 전공자들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또한 어려울 수밖에 없는 용어를 풀어서 쉽게 설명하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는데, 예컨대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치주(置酒)’라든가 ‘관심의 대상에서 제외하는 치지도외(置之度外)’ 등과 같이 전편에 걸쳐 해당 용어를 풀어서 설명하면서 원 표현도 그대로 적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방대한 역사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기는 쉽지 않았으나, 역자의 이러한 친절로 인해 한문으로 기록된 표현의 뜻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결국 번역이란 의미만을 그대로 옮기는데 그치지 않고, 독자들이 그것을 어렵지 않게 접하도록 배려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논어>나 <맹자>는 물론이고 <사기> 등의 한문 원전을 읽으면서 시대 배경을 따로 확인해야만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는데, 이런 기회를 통해서 중국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소득이라고 여겨진다. 추후에라도 기회가 된다면 나머지 책들도 읽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차니)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음. * 개인 독서 카페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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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신동준 선생이 역(譯)한 사마광의 [자치통감] 4권은 후한(後漢)시대를 다루고 있다. [자치통감]의 전체 권수 294권 중 42권(漢紀 34권)에서 54권(漢紀 46권)까지이며, 시기상으로는 서기 30년부터 163년까지 134년간의 역사이다. 역자는 시대구분을 하면서 한기 33권에서 한기 49권까지를 후한시대로 보았다. 그중 한기 33권은 왕망시대에, 그리고 한기 47권 이후는 삼국시대에 포함하여 역(譯)했다. 시대구분이라는 것은 후대의 학자들이 편의상 정한 것이다. 한 시대에서 다음 시대로 넘어가는 시기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으며, 그 혼란이 다음 시대를 잉태하기에 그렇게 나누어 편집한 것이 아닐까 싶다.
왕망이 세운 신나라를 무너뜨리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광무제는 33년간 재위하였다. 그는 농서의 외효, 서촉의 공손술 등 후한에 저항하는 호족 세력을 진압하여 천하를 평정하였으며, 내치에 힘써 후한의 기틀을 세웠다. 광무제 사후 황제에 오른 명제는 천축으로 사자를 보내 불도(佛道)를 구하고 책과 도를 닦은 사문을 얻어오게 함으로써 중국에 처음으로 불교가 전파되도록 했다. 황하 유역을 정비하는 등 내치에 충실하여 수성에 성공한 황제로 평가된다. 명제의 뒤를 이은 장제는 반초를 보내 흉노가 지배하던 지역을 되찾아 서역으로 가는 남도를 개통하여 서역을 열었다. 큰 내우외환이 없어 나라는 안정을 유지하였으나 황후 두씨에 의해 태자가 바뀌는 등 외척 세력이 처음으로 문제가 되기 시작한 시대이기도 했다. [자치통감]의 저자 사마광은 이를 두고 두씨 집안이 군주를 기만하는 것을 알고도 황제가 죄를 주지 않은 것에 대해 이는 차라리 그들의 간악함을 알지 못하는 것만도 못한 일이라고 평한다.
한 장제 사후 어린 태자가 즉위(한 화제)하자 두황후는 대리청정을 한다. 황후의 비호를 받는 두씨 형제들이 요직을 차지하고 방종한다. 이후 후한의 역사는 외척에 의해 휘둘리게 된다. 어린 황제들이 줄줄이 즉위하면서 등태후(화제의 황후), 염태후(안제의 황후), 양태후(순제의 황후)로 이어지는 태후들이 임조(臨朝)하여 청정(聽政)했다. 외척들이 전권을 잡고 사익을 추구하며 국정을 농단한다. 외척에 의해 태자가 폐위되기를 반복하고 황제가 독살되고 백성에 대한 수탈이 심해지면서 각지에서 이민족들의 반란이 일어나고 평정되기를 반복했다.
그런가 하면 후한 말기에 이르러서는 환관이 정치에 관여하게 된다. 한 화제는 환관들과 함께 두씨형제들을 제거한 후 이들과 정사를 의논하였는데 이것이 환관이 권력을 사용하게 된 시발점이라고 한다. 또 한 순제는 환관이 양자를 얻어 작위를 세습할 수 있도록 하여 환관이 정치에 참여하게 되는 단초를 제공했다. 양태후가 죽고 난 후 한 환제는 환관들에게 외척인 양기를 처단하라 밀명을 내리고 거사가 성공한 후 논공행상에서 5명의 중상시들을 열후에 봉함으로써 환관들이 정치를 좌지우지하게 만들었다. 외척에게 집중되었던 권력과 탐욕이 그대로 환관들에게 옮겨간 것이다.
이 시기를 다룬 [자치통감]에는 우리의 역사도 종종 등장한다. 한 화제 원흥원년(서기 105년)에는 고구려 태조왕 고궁이 요동의 6개 현을 구략했다거나, 한 안제 영초5년(서기 111년) 부여왕이 낙랑을 침범하고 고구려 태조왕이 예맥과 함께 현도를 침범했다거나, 한안제 건광원년(서기 121년)에는 유주, 현도, 요동 태수들이 모여 고구려를 쳤으나 오히려 요동과 현도에서 패했다는 내용들이 그것이다. 그해 고구려 태조왕 고궁이 사망하고 동생 고수성이 즉위했고, 한 안제 연광원년(서기 122년)에는 고구려 차대왕 고수성이 현도에 와서 항복했다고 한다. 여기에 나오는 고구려 태조왕 고궁은 6대 왕이고 차대왕 고수성은 7대 왕이다. 태조왕이 죽은 것은 서기 146년으로 [자치통감]의 내용과는 거리가 있다. 이는 중국의 사서에 나와 있는 우리 역사는 철저하게 그들의 관점에서 기록되었음을 말해준다. 우리가 역사를 읽으면서 조심해야 될 부분이 아닌가 싶다.
[자치통감]에서 전하는 중국의 역사는 다음 권인 5권에서 삼국시대로 넘어갈 것이다. 아직 후한시대가 마감되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시대로 넘어가기 위한 씨앗들은 잉태되었다. 환관들이 정치의 전면에 등장한 것이 그것으로 우리는 [열국지]와 [초한지]에 이어 이제는 [삼국지]를 읽을 차례가 된 것이다. [자치통감] 5권이 기다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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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통감 4 사마광/신동준 인간사랑/2022.10.20. sanbaram
<자치통감 4>는 ‘후한시대’ 130여 년간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왕망시대가 끝나고 광무제가 즉위하면서 후한시대’가 되었다. 여러 군벌의 저항을 누르고 국정의 안정을 위해 힘쓰며 30여 년간 집권하는 동안 피폐해진 국력을 안정시키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광무제에 이어 30세에 등극한 한명제에 들어서 나라를 안정 시켰지만 계속되는 천재지변으로 안정을 계속 유지하기는 힘들었다. 이후에 외척의 내정간섭과 외적의 침입, 그리고 이어지는 어린 황제의 등극을 틈타 권신들과 황후나 외척, 유모, 환관에 이르기까지 사리사욕에 사로잡힌 인간들에게 국정이 혼란스럽게 된다. 결국 지방의 세력들의 반란과 외족의 침입 등이 겹치면서 다시 혼란의 시대를 맞게 되고 외척 ‘양기’가 권력을 잡고 20여 년간 국정을 농단하니 결국 국력이 쇠하고 종말을 향해가는 역사가 이루어지게 되는 내용이다. 저자 사마광은 송나라 진종 때 사람으로 20세 때 진사에 급제하였으나 왕안석의 신법이 채택되자 관직을 사퇴한 뒤 <자치통감>저술에 몰두 했다. 그의 나이 48세 때인 1066년에 시작해 66세 때인 1084년에 마무리 했다. 역저자 신동준은 고전연구가이자 평론가로 <삼국지 통치학>, <전국책>, <중국 문명의 기원>, <공자의 군자학>, <맹자론> <장자>, <한비자> 등 100여권에 달하는 책을 출간했다.
왕망시대의 마지막 군벌이라 할 수 있는 공손술을 토벌하면서 광무제는 비로소 후한시대를 열게 된다. 그러면서 고구려왕 대무신왕 고무휼이 사자를 보내 조공하자 변방을 안정시키기 위해 왕망 때 고구려후로 폄하된 ‘고구려왕’의 왕호를 광무제가 회복시켜 주었다. 그러나 공신들의 세력이 커지자 국정의 안정을 위해 점차 공신들을 국정에서 배제시킨다. 한편 변방의 여러 국가나 종족들에게 화해의 손짓을 보냈지만 흉노의 세력은 수시로 변방을 침입하고 노략질 하는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 심심하면 국경을 침범하였기에 흉노 선우의 변동사항 등을 꼼꼼하게 기록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여러 지방 세력의 반란 및 진압, 선비족, 강족, 맥인 요동 침략, 만족의 침략 등도 누누히 기록되어 있다. 아울러 천재지변이라 할 수 있는 일식, 월식, 패성 출현 등의 기록을 여러 군데서 볼 수 있다, 그리고 지진, 가뭄, 홍수, 대수, 폭우, 황충의 재해 등이 빈번하여 나라의 안정이 쉽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광무제 붕어하고 황태자 유장이 30세의 나이로 보위에 오르니 한명제다. 선왕의 유지를 받들어 나라의 안정을 위해 힘썼으며 비교적 태평한 시대를 지낼 수 있었으나 18년 재위 하고 48세의 나이로 붕어했다. 그리고 한 장제가 즉위하면서 반초가 서역을 열어 국력을 키워 국정을 안정시켰으나 재위 10여년 만에 31세의 젊은 나이에 죽게 된다. 이틈을 타 두씨의 외척 세력이 권력을 쥐게 되며 국력을 약화시키기 시작했다. 두씨 외척은 10세 된 태자 유제를 ‘한화제’로 등극시켰다. 이로써 외척의 발호는 점점 심해질 수밖에 없었다. 화제가 18세가 되자 귀인 음씨를 황후로 삼았다. 그러나 음황후는 투기가 많아 황제의 총애가 점차 쇠퇴했다. 무고를 행하여 결국 폐위를 했다. 서기 105년 한화제 17년 봄에 고구려의 태조왕 고궁에 요동의 변세로 들어와 6개현을 구략했다. 그해 12월 22일 황제가 정덕전전에서 27새의 나이로 붕어했다. 이때 등황후가 태어난지 100여일 밖에 안 된 유륭을 보위에 즉위시켰다. 그가 한 상제이나 2세의 나이로 죽었다. 그리자 유소를 ‘한안제’로 등극시켰다.
한안제가, AD109년 16세의 황제 유소가 성년식을 한 뒤 천하에 사면령을 내렸다. 그러나 부여왕이 낙랑을 침구했다. 고구려 태조왕인 고궁이 예맥과 함께 현도를 침구했다. 또한 해적인 장백로가 다시 동래를 침구했으나 청주자사 법웅이 격파했다는 기록이 있다. 어린 황제를 빌미로 외척과 권신이 국정을 농단하고 사리사욕을 채우는 사이 국정이 문란한 틈을 타 곳곳에서 반란과 도적이 창궐했으며, 천재지변 또한 적지 않았다. 이 틈을 타 유모까지 정사에 개입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한안제 5년 여름 6월 고구려와 예맥이 현도를 침구했다. 선비가 변경일대를 침구했다. 군국 14곳에서 지진이 났다. 여름 4월 패국과 발해에 대풍과 우박이 있었다. 가뭄과 한재가 있었다. 북흉노가 침구했다. 12월에 개기일식이 있었다. 군국 8곳에 지진이 났다. 고구려가 다시 선비족과 함께 요동을 침구했다. 황제의 유모 황성은 태후가 오랫동안 정사를 돌려주지 않는 것을 보고는 황제를 폐하고 다른 사람을 추대할까 우려했다. 고구려왕 고궁이 사망하고 동생 고수성이 고구려의 차대왕으로 즉위했다. 사자를 보내 조문했다. 고구려 차대왕 고수성이 한인 가운데 살아 있는 자인 생구를 돌려보내고, 현도에 오아서 항복했다. 이후 예맥이 따라서 항복했다. 군국 27곳에 지진이 났다. 선비족이 현도를 침구했다.
한안제 18년, 3월 8일 황제가 붕어했다. 나이 32세, 염태후는 국정을 전횡하고자 어린아이를 옹립하고자 했다. 3월28일 북향후 유의가 소제로 즉위했다. 다음해에 황태후 염씨가 붕어했다. 그리고 그 다음해 2월 요동에 사는 선비족이 요동과 현도를 노략했다. 한순제는 영화로 개원한 뒤 천하에 사면령을 내렸다. 양주에서 9월 이래 180여 차례 지진이 났다. 한순제 8월 6일 황제가 향년 30세로 붕어했다. 태자가 즉위할 때 나이는 2세였다. 황후를 태후로 높였다. 한충제 원년 AD145년에 즉위 5달 만에 3세의 어린 황제인 충제가 붕어했다. 선비족이 대군을 침구했다. 각 지역에서 도적이 일어나 칭제했다.
한질제 원년인 AD146년 황제가 먹는 떡에 독을 넣어 어린 황제를 독살했다. 그리고 한환제가 등극했다. AD 148년 환제가 17세가 되어 관례를 뜻하는 원복을 입었다. 2년 후 양태후가 붕어했다. 양기가 병정을 한 지 거의 20년이 다 되자 안팎으로 위세를 크게 떨치게 됐다. 천자는 팔짱을 끼는 공수의 모습만 보인 채 정사에 직접 참여할 수가 없었다. “AD151년 군신들이 조회한 가운데 대장군 양기가 칼을 찬 채 궁궐로 들어왔다.((p.757)” 그러자 신하들은 모두 양기를 처형해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주청했다. 황제가 이를 듣고 양기를 주살하니 20여 년간 누리던 권세의 말로가 비참했다. 그런 후 천하에 사면령을 내리고 연호를 바꾸었다. 이후 옛날에 알던 사람이 고구와 사사롭게 은혜를 베푼 사람인 은사 대부분이 봉작을 받았다. 황후의 부친인 등향을 거기장군으로 추증하고, 안향후에 추봉했다. 다시 황후의 모친인 선을 곤양군으로 삼고, 오라비의 아들인 등강과 등병을 모두 열후에 봉했다. 나라의 곳곳에서는 산이 무너지고 반란이 일어났으며, 각지역 도적이 창궐하면서 환관이 권력을 흔들기도 하였다. 천재지변인 화재, 역병 발생, 우박, 산이 갈라짐, 가뭄으로 인한 기우제를 지내는 등 여러 가지를 행했지만 국가의 운명은 점차 위태롭게 변해갔다.
나라를 세우는 창업을 하는 것은 말할 수 없이 힘든 일이지만 수성 또한 그에 못지않게 힘든 일이다. 광무제가 왕망시대를 끝내며 후한 시대를 열고 국정의 안정을 위해 동분서주한 결과 30여년 만에 나라가 비교적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왕위에 오른 명제가 국정을 안정시키는데 성공하는 듯 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 외척의 득세로 인해 어린 황제가 등극을 하고, 권력다툼에 희생양이 되면서 국정은 혼란스럽게 변했다. 그 중심에는 20여년간 권력을 쥐고 흔들었던 외척 양기가 있다. 거기에 더하여 지진이나 가뭄, 홍수, 역병 등 천재지변이 잇따르면서 지방의 군벌세력이 반란을 일으키고 나라의 변방에서는 흉노를 비롯한 여러 종족과 고구려 등의 세력들이 혼란을 틈타 침공하면서 국력이 급격히 쇠퇴하면서 나라의 종말을 향해 달려가는 형국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국익보다 사리사욕에 눈먼 정치인들이 권력을 휘두를 때 나라는 급격히 힘을 잃고 백성은 힘들어 지는 것이라 생각 된다. 이 책을 읽으며 지금 우리나라의 정치행태를 볼 때 우리 국민들이 정신 차리지 않으면 정당이나 개인의 이익을 앞세우는 정치인들의 치졸한 정치 행태로 인해 우리의 삶이 피폐해 지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후한시대 역사를 기술한 <자치통감 4>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수 있다.
(인간사랑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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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이지만 자치통감(資治通鑑, 재물자 資, 다스릴치 治, 통할통 通, 거울감 鑑)에 대한 초두효과 때문인지 제1권때부터 각인된 기억이 있다. 알려진 바로 자치통감은 제왕학을 다루는 몇 안되는 대표적인 책이다. 동 국의 당나라때 오긍이 지은 정치상의 득과 실, 즉 부족함을 안다는 뜻으로, 개인적으로도 가지고 있는 중국역사상 가장 좋은 정치를 펼친 당태종 이세민의 치적을 모아놓은 정관정요貞觀政要와 더불어 정치적인 레토릭이 분명한 책이다. 학교에서 배운바와같이 당시의 우리로서는, 책도, 종이는 더더욱 부족했던 시대적 형편인때 조선의 제4대 임금 세종대왕께서도 늘 옆에두고 장독과 연구를 하셨다는 것을 서치중에 읽은 탓인지 볼때마다 세종 이미지가 떠 오른다. *재물 자 資(도움 資), #자치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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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전을 쉽게 풀어쓴 대중서, 자기계발서의 저술뿐 아니라 고전 저작 자체의 완역에 오랜 시간 동안 헌신해 온 고 신동준 선생의 유작 격인 <자치통감> 네번째 권입니다. 자치통감이라고 하면 권중달씨 역본이 국내 독자들에게 유명하겠고 그 책도 최근 개정판이 나오는 중이나, 고 신동준 선생의 번역판은 고전 무엇을 대상으로 삼았든 간에 기존 정평 있는 책의 대안이 될 만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