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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을 다시 이슬람에게 넘겨주자 , 유럽에서는 충격에 휩싸이게 되고 이 소식으로 교황 우르바누스 3세가 죽었고, 바로 즉위한 그레고리우스 8세도 죽게 된다. 게다가 살라딘에게 하릴없이 내몰려 열세에 처한 십자군 국가의 상황은 전 유럽에 3차 십자군을 결성하는 원인이 된다. 그러나 3차 십자군부터는 종교가 배제된 신앙과는 상관없는 세속적인 십자군의 성격이 강하다.
프랑스 존엄왕 필리프2세, '사자심왕'이라 불리우는 영국왕 리처드 1세의 원정을 시작되는 3차 십자군은 십자군 전쟁의 클라이막스라 할 수 있다. 하지만 , 이 십자군 멤버들의 화려한 등장과는 달리 리처드를 제외하고는 다른 멤버들은 전쟁에 딱히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장 여유 있고 이슬람에 두려움을 안겨준 미친 존재감 1위였던 프리드리히 1세가 어이없이 익사로 죽고, 사자심왕 리처드는 정의와 명예로 똘똘 뭉쳐졌으나, 지나치게 느긋하여 십자군 원정도 필리프보다 한달이나 늦게 도착하는데 그 와중에 결혼도 하고 신혼여행도 가고 , 리처드 1세의 패기와 여유가 한편으로는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하면서 리처드의 행보에 중간 중간 빵 터지곤 했는데 , 지금까지 사자심왕으로 영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살라딘 vs 리처드 결국 십자군에서는 2권에서도 말했듯이 그렇다할 인재가 없는데다가 유능한 지휘관이 없었다. 리처드가 도착하자, 이 젊은 왕의 전략과 전투력에 힘이 모아지게 되는 것은 자명한 일, 싸움은 리처드와 살라딘의 대결의 양상을 띠게 된다. 아코에서의 공방전과 더불어 첫 전투인 ‘아르수프 전투’ 에서도 리처드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불패였던 살라딘에게는 첫 패배이자, 그리스도교측에는 자신감과 용기를 불어넣어준 전투였다. 이어진 ‘야파전투’에서도 살라딘의 패배이지만, 기록에 살라딘은 이 전투에서 리처드의 전략에 감탄하였다고 한다. 십자군 이야기에서 가장 인상 깊게 다가 오는 장면은 이 두 사람의 만남이다. 리처드는 싸움을 계속해봤자, 많은 전사자만 나올 것이라 생각했는지,어쨋든 승승장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살라딘에게 진솔한 편지를 보낸다. ( 적군에게 말이다) 귀국하고 싶으니 예루살렘은 포기하겠다. 대신 몇가지 제안만 들어달라는( 이로 인해서 예루살렘 순례는 가능해진다.) 종교가 다르고 서로 적인 상황이지만 남자대 남자로서의, 사람과 사람으로서 순수한 마음이 전해지는 순간이라 살라딘과 리처드는 십자군 전쟁에서는 최고의 영웅으로 기억될 것 같다. 이렇게 맺은 강화조약은 30년 동안 평화를 유지한다. ![]()
4차 십자군 인노켄티스3세가 교황에 즉위하자, “교황은 태양이고, 황제는 달이다.” 라는 권위의식을 다시 내세우며 종교적인 성격이 가장 적었던 3차 십자군을 '불신의 무리'로 일컬으며 ‘신의 뜻’을 다시 강조하여 십자군에 참여한 이들에게 무조건 면죄부의 포고를 선언하자, 다시 4차 십자군이 결성된다. 그러나 이들의 목적지는 예루살렘이 아니라, 이집트의 카이로였다. 그러나, 4차 십자군은 목적한 곳이 아닌 같은 그리스도교인 비잔틴 제국을 공격한다. 그리스도교가 그리스도교를 공격한 것도 모자라 나라까지 빼앗았다는 사실은 십자군 이야기중의 가장 최악의 원정대이다.
1291년, 1차(1096년) 부터 8차까지 근 300년 가까이 지속된 전쟁은 결국 아코 공방전으로 끝나는데 이 때 아코를 탈환한 이슬람측이 “두번 다시 그리스도교가 상륙할 수 없도록 ” 아코를 파괴하는 것으로 십자군 전쟁은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역사에 대한 글을 쓰면서 통감하는 것 중 하나는, 정보란 그 중요성을 인식한 자에게만 올바로 전해진다는 사실이다. 십자군 역사에서도 마찬가지이고, 이 점에 대해선 그리스도교도든 이슬람교도든 예외가 아니었다. 고대 로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이렇게 말했다. “현실의 모든 것이 누구에게나 보이는 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현실만 본다.” 역사를 인식하는 자, 는 아마도 십자군을 저술하면서 이슬람 측의 사료와 십자군 역사가 즉, 그리스도교나 유럽의 역사학자들의 사료를 참고하면서 느껴지는 말인 듯하다. 각측에서 십자군 전쟁의 역사를 기록한 바로는 자신들의 유리한 점들만을 기록하였다고 저자는 느꼈던 듯하다. 1권에서도 말하였지만 시오노 나나미는 그런 역사의 관점에서 벗어나 오로진 ‘인간’ 의 관점으로 역사를 보기를 원하였던 것 같다. 인간의 관점으로 본다는 것은 작가의 상상력에 의지하여 역사를 상상할 수밖에 없지만 , 예를 들어 사자심왕에 대한 평가를 주관적인 시각으로 혹평한 역사학자의 주관적인 시각보다는 오히려 시오노 나나미의 역사에 대한 통찰이 의외로 조금 더 냉정하게 시대상을 직시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게다가 시오노 나나미의 역사적 관점을 지나치게 주관적이라고 할 수 없는 이유는 역사의 기록에 또한 충실했기 때문이다. 단지 십자군 전쟁을 종교가 아닌 영토와 이권을 둘러싼 전쟁에 종교를 덧입힌 '인간'의 욕망에 충실한 전쟁으로 바라보는 점은 기존의 역사이야기보다 더 사실적이고 실존적이다.
십자군 전쟁이 인류사에 남긴 것은 어찌되었든 간에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종교 전쟁이라는 기록은 변치 않을 것이다. 결국 이 전쟁으로 인하여 이슬람은 자신들만의 성전을 구축하여 미국(현재 대표적인 그리스도교로 본다면) 의 헤게모니에 굴복하지 않은 유일한 민족으로 존재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십자군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 로 시작된 전쟁은 신이 그것을 바라지 않으셨음을 알게 되는 전쟁이다.
옳은 것만 말하는 신이 바란 일이니 옳은 전쟁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따라서 신의 존재가 후퇴한 뒤에도 ‘옳은 전쟁’만은 남았다. 아니, 적어도 이 정도는 남기고 싶다고 인간이 생각했기에 남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20세기에 맹위를 떨치고 21세기인 지금까지 계속 남아, 전쟁을 이끌어내는 측이나 이끌려나간 측 모두, 옳은가 옳지 않은가 하는 문제를 두고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다.(560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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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는 옛날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인간이 아무리 창조를 하고 상상을 해도 인간들의 이야기만큼 박진감 넘치는 실감은 없을 것이다. 허구보다는 100번 공감을 할 수 있는 역사 이야기. <십자군 이야기>는 재밌는 뼈만 있는 역사 이야기에 작가 자신의 쌓은 지식과 식견으로 맛있는 생선 한마디를 만들어 냈다. 역사가처럼 딱딱하지 않고 소설가처럼 허무맹랑하지 않으며 mc처럼 이야기를 만들어 진행하지 않았다. 그만큼 시오노 나나미 자신은 현장을 답사하고 다양한 역사서를 섭렵했으며 허황된 통계에 집착하지 않았고 그 누구의 편도 들지 않았다. 당시의 사료가 말도 안 되는 것이라면 앞뒤 상황을 파악한 다음, 자신이 재해석해서 이야기를 쓴다. 그런 과감한 면이 시오노 나나니스러웠다. 당연히 작가라면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글로 나타내야 한다. 역사는 인간이 쓰는 기록이다. 작은 오류하나가 시대를 거듭하며 커질 수도 있으며 사라질 수도 있다.
<십자군 이야기> 시리즈에서 단연 3권이 압도적이었다. 압도적인 것은 두가지에서 비롯됐는데 첫 번째는 내용이며 두 번째가 양이다. 십자군 전쟁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사자심왕 리처드왕과 살라딘의 전투씬이 있으며 560 페이지라는 두툼한 분량을 자랑한다. 재밌는 책이 페이지가 적으면 무척이나 아쉽다. 하지만 재밌는 책인데 페이지까지 많으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며칠 동안 <십자군 이야기> 3권을 읽으며 다른데 신경쓰지 않아 몸과 마음이 얼마나 편했는지 모른다. 전투 장면에서는 긴장한 나머지 손에 땀까지 났을 정도다. 그 장대한 200년 분량의 페이지가 다달았을 때는 허무함과 책에 대해 쓰고 싶다는 욕구밖에 들지 않았다.
진정한 남자들의 전쟁 십자군 전쟁의 최고의 장면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이 부분을 뽑으리라. 그리스도교 리처드왕 vs 이슬람교 살라딘. 시오노 나나미는 말한다. 역사란 어쩌면 공평할지도 모른다고. 이유인 즉, 어느 한쪽에서만 인재가 나지 않는다며. 그런데 이렇게 공평할 때도 있을까? 양쪽에서 모두 인재가 나온 것이다. 그 인재들이 바로 리처드와 살라딘. 그렇지만 지략과 지혜에서는 리처드왕이 우세했으며 살라딘은 그의 대응하는 정도였다. 서로의 적이지만 그들은 서로를 존중하며 전쟁 중간에서도 서로 서신과 선물을 교환하는 담대함도 지녔다. 생명이 오고가는 전쟁 속에서도 공과 사를 칼같이 구분하는 모습을 보아 그들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진정한 남성의 모습을 이들에게 보았다. 이들의 전투속에서 얼마나 전율했는지 모른다. 남자들의 우정이 이토록 뜨거울 줄이야...
황제 프리드리히의 싸움의 기술 고수들은 싸움은 될 수 있으면 피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그런데 만약 맞붙어야 한다면 인정사정없이 상대방을 모조리 쓸어야 한다. 프리드리히는 진정한 고수였다. 백 번을 싸우면 백 번을 다 이길 수 있는 전투에서 굳이 싸우려 하지 않았다. 무력이 아닌 분위기로 압도하는 싸움도 싸움의 기술이다. 때리지 않고 겁주는 방법, 싸우지 않고 원하는 것을 얻는 방법, 협상하는 법, 웃으면 겁박하는 방법 등 다양한 기술을 보여줬다. 전투를 피할 생각은 없었지만 굳이 싸우려 들지도 않았다. 주위에서는 부추기는 싸움에 오히려 비웃었을 뿐이다. 그는 모든 상황을 다 파악하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전쟁은 시작됐고 수만가지의 시나리오가 팽팽히 돌아갔다. 비상한 머리다. 그리고 강인한 힘을 지녔다. 감히 넘볼 수 없는 숨겨진 뒷모습까지. 남자가 봐도 매력적인 사내다.
십자군 전쟁의 민낯 처음부터 신을 위한 전쟁은 어디에도 없었다. 단지, 전쟁이랑 명분보다는 '신을 위한' 전쟁이 필요했을 뿐이다. 정치를 위한 전쟁이다. 교황은 자신의 지위를 위해, 왕들은 자신의 상황을 타계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했을 뿐이다. 다시, 그 도구는 종교의 이름으로 신앙심 깊은 그리스도인들이 희생됐다.중세시대의 종교는 목숨보다 중요했다. 신이 바라신다, 는 명분으로 시작한 전쟁은 그 놈의 명분 때문에 믿음이 강한 신도들부터 차례로 비참하게 죽게 된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십자군 전쟁을 크게 보면 그리스도와 이슬람이 맞붙은 전쟁이다. 신들의 전쟁인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리스도가 졌다. 그럼 그리스도라는 신은 없는 것인가? 아니면 이슬람이 더 센 신인가? 이 문제점에 대해서는 역사에서 다룬 것을 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함부로 신에 대해 입을 담을 수 없었거나 그 종교에 대해 잘모르거나 그것도 아니면 그 종교인들의 보복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도 모른다. 십자군 전쟁은 신을 위한 전쟁도 아니고 인간들의 땅따먹기도 아니다. 왕과 교황의 세력다툼에 신이 이용됐을 뿐이며 결국엔 왕이 이겼다. 이렇게 정리하면 쉽게 이해할지도 모른다.
카노사의 굴욕 - 200년 십자군 전쟁 - 아비뇽 유수
십자군 전쟁에서 몸숨걸고 싸운 기사단은 프랑스왕이 뒤집어 씌운 전쟁의 패배의 멍애로 싸그리 죽임을 당했다. 그놈의 '명분'으로 시작된 십자군 전쟁 참가한 기사들이 그놈의 '명분'으로 죽임을 당하는 말도 안 되는 일, 이것이 십자군 전쟁의 처음과 끝이다. 허무하지 않나? 그들의 죽음은 역사에 평가에 별로 중요하지도 않다. 그저 프랑스왕 때문에 죽은 것이 이유면 이유인 것이다. 우린 역사에서 무엇을 바랄까? 결국엔 쓰디쓴 허무만을 안길뿐인 것을. 결론이 조금 씁쓸하지만 <십자군 이야기>시리즈는 정말, 최고였다. 평생을 기억하고 싶을 만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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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이야기3 (1, 2, 3권 종합) 사람들이 여럿 모인 곳에서 절대 꺼내지 말아야 할 화제가 있다면 바로 ‘종교’와 ‘정치’ 이야기일 것이다. 특히나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할 사람들의 모임이라면 더욱 그렇다. 자유주의 국가에서 표현의 자유가 주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 이러한 민감한 문제는 처음부터 아예 꺼내지 않는 것이 불화와 반목을 줄이는 지름길이 아닐까 한다. 성숙한 인간이라면 내 종교가 소중한 만큼 다른 이들의 종교 또한 소중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내 종교가 아닌 사람들을 이단의 무리로 간주하게 되는 경향이 있기 마련이다. 역사란 동전의 양면 같은 것 이 책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자신은 그리스도교도도 아니고 이슬람교도도 아니기 때문에 중립 적인 입장에서 썼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종교가 있는 나에게는 이렇게 중립적으로 쓰여진 글을 읽더라도 철저히 나의 주관대로 읽게 된다. 읽으면서도 특히 애정이 가는 인물들이 있고 얄미운 인물이 있다. 비록 나와는 다른 종교를 가졌다 하더라도 그렇다. 어쩌면 철저히 객관적인 역사 쓰기도 역사 읽기도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마치 그리스도교 측에서 보면 에데사 ‘함락’이 이슬람교 측에서 보면 ‘탈환’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 십자군 이야기1에서는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는 야심 차고 득의 양양한 구호 아래 1차 십자군이 탄생되고 그들의 성공과 활약을 통해서 성도 예루살렘을 찾고 십자군 국가가 성립되는 것, 즉 십자군들의 성공스토리였다면, 십자군 이야기2와 십자군 이야기3은 2차 십자군에서 8차 십자군에 이르기까지 십자군국가가 어떻게 몰락해가는가를 그린 십자군측에서 보면 실패스토리이다. 모든 일에는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더라도 그렇다. 한 왕조나 국가가 시작되고 유지되다가 멸망하게 되기까지, 비록 각각의 특성은 다를지라도 흥망성쇠의 공식은 비슷하다. 역사의 기록이 어차피 승자의 기록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하나의 국가가 멸망할 때쯤 되면 정치권은 부패하고 상류층은 향락에 빠져있으며 인재들은 수모를 겪거나 죽임을 당한다. 민초들은 이런 세기말적 상황에서 누구보다도 삶을 지속하기가 힘들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자연재해까지 빈번해진다. 이런 혼란한 세상에서 구세주 같은 인물이 나타나 자신들을 구원해주길 간절히 바라게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십자군도 마찬가지로 1차 십자군은 그야말로 신의 뜻이라는 말로 마음을 하나로 합쳤다는 데 그 성공비결이 있다. 말 그대로 초심이다. 그런데 2차부터 8차까지 일어난 십자군은 그렇게 마음을 하나로 모으지 못한 듯 하다. 교황과 왕의 권력 다툼, 프랑스왕 필리프 2세의 영토확장의 욕심, 베네치아공화국과 제노바, 피사의 상호 견제 및 해상권 장악을 위한 다툼 등 신보다 자신의 권력이나 자국의 이익을 앞세우기 위한 이권다툼으로 얼룩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인간 본성 측면에서 보면 어쩌면 당연한 일들이겠지만, 결국 초심을 잃어버려 대의를 져버린 셈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초심을 잃어버린 집단은 단결력을 잃기 마련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비록 그것이 하느님의 이름을 걸고 싸우는 성전일지라도 그러하다. 특히 1차 십자군이 이슬람측 보다도 훨씬 적은 수로도 예루살렘을 차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 신이라는 이름 하에 하나로 모아진 단결력 때문이었던 만큼 더욱 그러하다. 이슬람 측에서 십자군을 반격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 분열된 시아파와 수니파를 통합해서 이슬람세력을 단결시켰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을 보면 적과의 전쟁보다 더 무서운 것이 내부 분열인 것 같다. 처음에 시작이 아무리 좋고 옳다 하더라도 내부에서 분열이 일어나면 스스로 망하는 꼴을 초래한다. 이럴 때는 적에게 어부지리로 승리를 갖다 바치는 셈이다. 온화함이 강함을 이긴다. 세 권을 합하면 상당한 길이의 십자군 이야기를 술술 단숨에 읽으면서 카리스마가 철철 넘치는 영국의 사자심왕 리처드에게도 끌렸지만 주위의 왕들을 도우면서 십자군의 명성을 오래도록 유지시킬 수 있었던 인물인 발리앙 이벨린의 온화함과 정의감에 많이 끌렸다. 장기적으로 살아남으면서 자신의 세력도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었던 인물인데다 의리 있는 충신에 합리성까지 골고루 갖추어 지금 이 시대에도 꼭 필요한 인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살려주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이벨린은 예루살렘에 남아있는 프랑크인들의 목숨을 하나라도 더 구하기 위하여 과감한 협상을 벌이고 이러한 행동은 적의 수장인 살라딘과 그의 동생 알 아딜의 감동시킨다. 물론 맘루크인 바이바르스가 수장이었다면 어림 없는 일이었겠지만 말이다. 인재는 인재를 알아보는 법인가 보다. 비록 그가 적군이더라도 존경과 감동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일이다. 역사에 쉽게 다가가기 역사란 이미 지나간 과거, 고리타분한 것, 오래된 책에 슨 곰팡이처럼 퀴퀴한 냄새를 풍기는 것, 지나간 세대의 안주거리, 새로운 세대의 발목을 잡는 것 등으로만 생각해왔던 나는 이 책을 읽음으로써 역사란 생각보다 재미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봄이 지나면 여름이 오고, 가을이 지나면 겨울, 다시 봄이 오듯이, 역사라는 것도 인간의 수레바퀴처럼 돌고 도는 것이다. 결국 지나간 역사라 하더라도 어느 미래를 예언할 수도, 혹은 예언까지는 아니더라도, 현재와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역사 또한 인간이 행한 기록이고 인간이란 예나 지금이나 그 본성이 그다지 많이 변한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고로 역사와 친하고 쉽게 다가갈 수 있다면 이를 반추하면서 좀 더 지혜롭게 현재와 미래를 추측해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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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십자군 이야기를 종교적 광풍이 만들어낸 산물로만 간주한다면 십자군 이야기에 대해 할 수 있는 이야기란 그저 유일신교의 배타성과 집단 편집증과 같은 신앙활동에 대한 비난 외에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얘기가 없게 되는 것이고, 역사를 지나치게 단순화해 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모든 학습활동이 대학입시를 향해 나란히 정렬하고 있는 경박한 대한민국의 교육체계에서 이미 반복하고 있는 행태이고 창피하기 그지 없는 관점일 것이다.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를 접하면서 내가 바라보고 싶었던 관점은 십자군 전쟁의 시작부터 종료까지의 역사적 사실을 알고자 하는 기본적인 동기외에 과연 그 시대를 살고간 사람들이 그 시대의 패러다임에 어떻게 반응했는가 하는 점이었다.
지나간 시간을 재구성하는 디테일에 자신의 상상력을 살붙일줄 아는 시오노 나나미의 글은
1. 패러다임에 저항할 수 있는가? 온 일생을 바친 사람들, 못지않은 광신적 종교행태가 여전히 남아있다. 하곤 한다. 또한 대한민국에는 특정 진영에 대한 적개심과 이를 부추기는 세력, 그리고 이를 이용하여 마녀사냥과 같은 행동을 언제고 서슴지 않고 저지를 사람들도 있고, 더더욱 위험하게도 이러한 사람들 중 상당수는 권력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또한 이름 있는 대학(절대 좋은 대학이 아니다)을 가기위해 모든 자원을 동원하고, 인생에 한 번 있을 청소년기를 이에 매몰시키는 것을 당연하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전 인구의 대부분인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순진하고 순수성까지 느껴질 정도다. 계몽사상의 역사도 이미 300여년을 넘어서고 있고, 이성에 대한 신뢰와 그 결과가 만들어낸 첨단 과학 시대를 살아가는 이 시대의 대부분의 사람들도 시대를 장악하고 있는 패러다임을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시대의 패러다임을 벗어난 그 너머를 바라보거나 이룩한 사람들은 선각자라 존경받을 수도 있고, 감상적으로 몽상가라 불릴 수도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는 이단이나 정신병자 취급을 받기가 쉽상이고, 십자군 시대를 전후하여 유럽과 서아시아에서 삶을 살아갔던사람들을 마치 광신적 종교에 의해 쉽게 경도되고, 쉽게 선동된 것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그 당시를 지배하고 있던 패러다임과 전혀 상관없는 다른 시대의 시각으로 그 시대를 재단하려는, 접근방법부터 잘못된 시각이라 할 수 있다. 2. 시대를 이끄는 열정과 이를 유지시키는 합리성. '십자군'이 언급될 때는 그 사실 자체보다는 종교에 대한 비판, 대학살, 개개인의 영지 확장 목적으로의 변질 등 뭔가 부정적인 얘기를 하기 위한 목적에서 언급되었기 때문이다. - 의외성을 강조하는 표현을 사용해 보자면 - 순도가 높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프랑스 왕의 동생 위그, 투루즈 백작 레몽, 풀리아 공작 보에몬드, 예루살렘 왕 보두엥과 노르망디 공작, 플랑드르 백작, 그리고 지금도 신의가 두텁고 생기 넘치는 영원한 젊은이를 상징한다는 탄크레디. 그것이 단순히 강력한 권력에 의하여 떠밀려지듯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스스로 군대를 모으고, 경비를 모으고, 언제 돌아올지 모를 먼 전장으로 나설 때는 분명 자신들이 순종하고 인정하는 신념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들은 결국 예루살렘 함락이라는 목표를 이뤄냈고, 또 이 외중에 목숨을 바치기도 했던 것이다. 목적을 향한 이러한 일관성과 결국 목적한 바를 이루어냈다는 것은 충분히 경의를 보낼만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보다도 더더욱 주목받아야 할 위대한 업적은 이러한 광풍의 시대에도 여전히 합리성과 타협을 잃지 않았던 시대의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쉽게 전도되고 흥미를 느끼지만 십자군 이야기 3권을 통털어 시종일관 나의 눈길을 잡아끌었던 것, 그리고 내 개인적으로 놓치지 말아야 할 사건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은 극단적인 배타성을 기반으로 하는 두 개의 대표 종교와, 그 종교의 모티브가 극단적으로 강조되던 시기에 살라딘, 발리앙 이벨린, 리처드 1세, 프리드리히 2세, 알 아딜, 알 카밀 등에 의해 끊이지 않고 전개되어온 협상과 타협의 흐름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를 과연 무엇을 근거로 11~12세기에 비해 합리적인 시대라 할 수 있을것이며 종교적 광풍에서 인간의 합리적 이성이 얼마나 독립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암흑시대라 불리는 중세시대에도 살아 있었던 합리적 인간의 이성이 만들어낸 타협의 역사적 흔적들은 여전히 이 시대에도 그러한 합리성이 끊이지 않고 존재할 것이라는 희망의 근거가 되어주는 얘기들이라 할 수 있다.
3. 보두앵 4세, 그 신화와 같은 이야기. 아마도 영화 '킹덤오브 헤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십자군 역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인물은 십자군이 함락한 예루살렘에서 일곱번째 왕위에 오른 문둥이 왕 보두앵 4세이다.
살라딘이라는 거대한 적에 맞서서, 나병이라는 당시로서는 천형과도 같았던 질병을 몸에 지닌채로 13세에 왕위에 오른 보두앵 4세의 이야기에서 감동적이었던 것은 있지는 않다. 오히려 자신의 사후 예루살렘을 지켜나가기 위한 준비에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인간의 수명이 짧은 시대였고, 이미 사춘기 시절이면 독립적인 성인대접을 받았던 시대라 하더라도, 10대의 젊은이가 얼마남지 않은 자신의 수명을 인식하면서 사후를 준비한다는 것은 보통 비장함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결국 보두앵 4세 편은 아니었고, 결국 24살에 불꽃같은 삶을 마무리 지은 보두앵 사후 십자군은 살라딘에 의해 하틴 전투에서 궤멸에 가까운 타격을 받음으로써, 보두앵 4세라는 초인적인 삶을 살다간 한 젊은이의 모습을 더더욱 강한 인상으로 남게 하고 있다.
영화 '킹덤오브 헤븐'에서는 이 때, 예루살렘을 사수하여 끝내 예루살렘의 기독교인들의 목숨을 건져낸 발리앙 이벨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십자군 이야기 1, 2, 3권을 통털어 그 시대의 최고 영웅으로 보 두앵 4세를 꼽기를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4. 십자군의 몰락, 템플 기사단의 몰락, 교황권의 몰락. 물론 십자군이라는 사건에 대해 그 시대의 패러다임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인 듯 기록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하여 이 사건이 '삽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 자체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아코 전투'라는 마지막 서사시가 십자군의 대미를 장식한 후 유럽에서 그 후유증이 정리되는 과정은 추악한 인간사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템플 기사단의 최후는 그 단적인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신념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이들은 일단 그 시대의 패러다임에 누구보다 열정을 다한 집단이었지만 그 패러다임이 무너진 이후 그 열정은 구차한 구세대의 유물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된다.
템플기사단 소속 기사 대부분은 모진 고문을 받고 감옥에서 최후를 마치게 되고 마지막 단장 자크 드 몰레는 템플 기사단이 이슬람에 예루살렘을 팔아넘겼다는 혐의를 비롯한 127가지의 조작된 협의를 뒤집어쓰고 화형을 당하게 된다.
전장의 극단적인 상황, 이슬람 교도에게 체포되었을 때도 굳건히 버텼던 이 역전의 용사들이 이렇게 무력하게 사라져간 이유를 '자신들의 존재이유를 모두 빼앗겨 버린 이들의 무력감'으로 해석한 시오노 나나미의 평가는 참으로 적절한 평가가 아닐까 싶다.
이렇게 십자군은 몰락하고, 템플 기사단도 몰락했으며, 따라서 십자군을 2세기에 걸쳐 주도한 교황권 역시 추락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베드로의 지상 대리인 '교황의 무류성'(공식적인 교황의 교권을 근거로 내리는 결정에 잘못이 없다)은 여전히 오늘날 카톨릭에서 믿을 교리에 해당하지만, 만약 십자군의 시작과 몰락에 간섭한 당시 교황의 모든 선택에 오류가 없다면, 그것은 교회 자체보다 교황권의 쇠퇴로 인해서 역사의 주인이 인간으로 바뀌고 그것이 인간의 합리성에 대한 신뢰의 시대인 르네상스로 연결된다는 시각에서만 타당할 것이다.
종교 권력은 여전히 21세기 지구에서 중요한 위치를 놓지 않고 있다. 실체도 불분명한 권위를 기반으로 한 종교 우두머리들의 말 몇 마디에 일말의 자책감 없이 주변 사람들을 상하게 할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 의외로 쉽게 발견된다. 또한 지구상의 의외로 많은 지역에서 자라나는 새로운 세대들이 '나 외에 신은 없다'는 사상을 공교육을 통해 학습받으며 육성되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이러한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면, 역시 같은 논리로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인류역시 미래를 기약할 수 없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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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었다. 어찌 읽지 않고 버틸 수 있으랴. 이토록 재미있게 빠져들게 되는데. 작가의 문체도(비록 번역이지만) 생각도 상상력도 표현도 모조리 마음에 든다. 내 시간을 온전히 바치는 게 아깝지 않을 정도로.
십자군. 고등학교 세계사 시간에 배운 이후로 어떤 경로로든 끊이지 않고 읽어온 내용이다. 읽는 당시에는 뭔가 알아낸 것 같다고도 곧 깡그리 잊어버리고 마는 내 기억력의 한계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서도 또 낯설었다. 황제나 교황들의 이름 몇몇은 들었다는 기억이 나기는 해도 워낙 그 이름이 그 이름이어서 내가 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신통하다. 전혀 지겹지 않고 읽어도 읽어도 재미있으니.
남의 나라 이야기라서 그런 걸까. 우리 역사 이야기를 읽다 보면 속이 터지고 답답해서 그만 딱 덮어버리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우리 것이니, 그때 누가 이렇게 했더라면 지금 이 모양이지는 않을 수 있지 않았겠는가 뭐 그런 안타까움 따위. 그런데 서양 역사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그런 게 없다. 그냥 그러려니, 그랬구나, 저런, 그런 식의 거리감이 구경하기에 좋은 마음 상태를 만들어주는 모양이다.
작가의 말처럼 참으로 지겹게도 전쟁을 한다. 전쟁을 하지 않을 인류는 없을 모양이다. 생의 본능일까, 그것도 집단적인 생으로서. 내가 살기 위해서는 너를 죽이겠노라, 함께 살 수는 없노라, 뭐 그런 식의. 하기야 이제 우주 산업도 민간인이 참여하게 되었다면서 우주로의 영토 획득에도 눈을 돌리게 된 현대 인류이니. 과거 우리의 조상들이 땅 따먹기를 위해서든 종교의 쟁취를 위해서든 싸웠다는 것이 새삼스러울 것은 없겠다.
중동의 평화는 어려울 것 같다. 쉬었다가 싸웠다가 되풀이될 것이다.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다. 몇 백 년 전, 몇 천 년 전부터 이어져 온 싸움이다. 해결책은, 안타깝지만 없어 보인다. 다만 십자군 기간의 잠깐 동안의 평화처럼 지금도 그런 식의 평화와 전쟁이 되풀이될 뿐일 것 같다. 그게 어디 그곳 뿐이랴. 지구상 인간들이 모여 사는 곳은 다 그러할 테지. 독도든 만주든...
힘과 지혜가 답이다. 역사에서 배우고 이웃에서 배워야 한다. 그리고 내다볼 줄 알아야 한다. 이 일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패하고 멸한다. 과거 지상에서 사라졌던 모든 나라들이 그랬던 것처럼.
며칠 이 책을 읽는 동안, 행복했다. 독서의 기쁨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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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그것을 바라신다.”라는 한마디로의 말로, 인류의 큰 사건은 시작된다.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그것은 인간이 일으킨 전쟁이었고, 소수의 인간을 위한 전쟁이었다. 카사노의 굴욕으로 십자군이야기는 대단원의 막은 오른다. 어쩌면 종교 권력인 교황과 세속의 권력인 왕과 황제들의 대결로 인한 사건들로 수 많은 사람들의 죽음과 희생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격렬한 전쟁 속에서 영웅은 나타난다. 1차 십자군전쟁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십자군 국가의 성립과 보두앵의 죽음으로 막을 내린다. 예루살렘(성도)해방이라는 목표를 가진 그리스도교 세력과 단합하지 못하는 이슬람 세력간의 전쟁은 이미 그 결과가 정해진 것 아닌지. 하지만, 이것은 단지 시작이었을 뿐이다. 유리한 이슬람 세력에서 어떠한 변화가 있을까? 패배 이후 이슬람의 영웅인 살라딘도 역시 지하드(성전)의 깃발을 높이 올리고 그리스도교 세력을 분쇄하고 예루살렘을 해방시킨다. 1099년 7월 예루살렘을 점령한 십자군은 이슬람 성직자와 금욕주의 수도자 1만여명을 성전산에서 살해했다. 포로가 된 자들은 신발 한 짝 가격에 노예로 팔려갔다. 그로부터 100년이 채 안 된 1187년 6월, 후일 십자군을 몰아내는 이슬람의 영웅 살라딘은 예루살렘의 십자군 사령관 발리안에게 말한다. "우리는 너희가 과거 예루살렘 주민들을 다룬 것과 똑같이 죽이고, 노예로 삼고, 잔인하게 다룰 것이다." 살라딘의 정복 활동은 피로 얼룩졌지만, 그는 늘 아들에게 충고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피를 흘리는 일을 경계하고, 거기에 몰두하지 말며, 습관으로 만들지 말라. 피는 결코 잠들지 않기 때문이다." --- 예루살렘 전기 중에서 시작된 폭력과 이에 대응한 철저한 보복, 폭력의 악순환이 반복된다. 하지만 폭력은 끝없는 폭력을 낳을 뿐이다. 공존과 존중이 서로를 위해서 더욱 소중하지만, 인간의 탐욕은 멈출 줄을 모른다. 이후 8차에 걸친 십자군 원정으로 이어지고 수많은 목숨들이 사라져 버리지만 별다른 성과 없이 십자군시대는 막을 내린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역사란 무엇인가 라는 의문이 점점 증폭된다. 역사는 무엇보다 객관적 사실이고 다양한 인간성의 거대한 경험, 인간간의 오랜 만남 등 다양한 정의가 내려진다. 하지만, 이런 판단은 누가하는가? 사람들의 이기적인 마음과 편협 된 시각을 극복하고, 진정한 역사서술이 가능할까? 이 이야기도 다들 자기 중심으로 기록된 기록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 아닐까? 무엇보다 십자군 전쟁에서는 제 삼자가 남긴 기록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그리스교도 쪽의 황제, 왕들, 귀족들, 교황과 수도원 그리고 이슬람쪽의 칼리프, 슐탄 그리고 각 태수들과 시아파와 수니파, 아랍과 투르크 등 풀리지 않을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상황 속에서의 사건들의 전개를 통해 그 시대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인간에게 전쟁은 숙명인가? 일어나게 되어있는 일은 일어날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전쟁은 비극이다. 십자군 전쟁의 목표는 예루살렘 해방이었다. 그 이후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겠는가? 그러기에 200년간의 전쟁으로 수많은 목숨들이 신의 이름으로 사라져 갔다. 이교도를 몰아내고 성스러운 땅을 그들의 손에서 해방하는 일이야말로 너희가 하려는 속죄에 대한 신의 보상이다. 이런 전쟁에서는 종교 특히 조직화된 종교(종교 교단)은 그 중심 역할을 했고, 종교가 개입되면 각 진영 별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게 되어 무엇이 답인지 더욱 알기 힘들어진다. 종교의 차이는 증오를 심화시키고 살인을 용인하고 천국의 보상을 약속한다. 또 전쟁은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신성한 계획의 일부가 되어버린다. 양쪽 모두 십자군 전쟁(성전)에서 전사하는 자는 천국으로 바로 갈 수 있다. 한마디로 천국 행 티켓을 제공했고, 권력층의 탐욕과 야욕 그리고 인간들의 싸우려는 의지와 보복하려는 감정이 작용한 결과이다. 점점 신에 대한 서약보다는 사욕에 집착하는 인간들의 탐욕이 적나라게 보인다.
상대의 종교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성립하는 일신교끼리 격돌한 싸움이다. 양쪽 다 이교도를 죽이는 것은 신을 기쁘게 하는 행위이고, 설령 죽음을 당한다 해도 순교자가 되어 승천할 따름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3차 십자군은 세속의 인간들이 일으킨 전쟁이었다. 신도, 신의 도움도 끼여들 여지가 없는, 오직 인간들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이었던 것이다.
저자는 어느 한쪽에 편향된 시각이 없었다고는 하나 사건의 대부분이 그리스도교도쪽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느낌이다. 그리고 민중의 역사가 아닌 귀족이나 영웅의 역사로 그들의 업적에 많이 치중한 것 같이 보인다. 자인한 학살도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져 파묻혀 버렸고 같은 그리스도교도이면서도 대립하는 그리스정교회(비잔틴제국)와 가톨릭교회(교황)는 무엇을 위해서? 서로의 이익만을 추구한다. 십자군 전쟁기간 동안 두드러진 활약을 펼친 베네치아, 제노바, 피사 등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은 공화정으로 왕권과 교황에 의해 움직이는 십자군과 대조적인 모습을 보인다. 또한 템플, 병원, 튜턴기사단 등의 활약이 돋보였고 템플기사단의 비참한 최후, 신을 위해 싸웠건만 그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인간의 탐욕이었다. 이들의 유기적인 활약이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영웅의 시대는 평화를 이끌었지만, 평화의 종말은 노예출신 바이바르스에 의해 잔인한 결말을 맞게 되었다. 이 전쟁에서 진정한 승자는 누구일까? 승자가 없는 패자들의 전쟁이 아닐까 생각된다. 많은 영웅들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발리앙 이벨린과 사자심왕 리처드와 살라딘이 머리에 오래 기억될 것 같다. 리처드와 살라디딘, 그들의 위대한 점은 뛰어난 무용이 아니라 함께 공존하는 상생이었기에 더욱 빛나는 것 같다. 이벨린은 자신은 안위보다는 불쌍한 사람을 하나라도 더 구해내려는 그의 노력이 더욱 빛났다. 이에 살라딘은 감격하고 말았다. 동석한 살라딘의 동생 알 아리 역시 형 이상으로 감격해 1천명 분의 몸값을 자기가 내겠다고 나서 형의 동의를 얻었을 정도였다. 무엇보다 이런 일들은 인물이 인물을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이런 지도자들이 있어야 평화와 공존이 가능한 것 같다. 책을 읽는 중에 나도 모르게 그리스도교도 쪽의 시각으로 바라고 있는 것을 보면서 상당히 놀랐다. 그리스도교나 이슬람교, 그들과는 별다른 관계도 없지만, 우리가 받은 교육은 서구중심이었기에 우리의 마음속에 서구는 해방자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있는 것 같다. 분명한 것 그들의 공로도 있지만, 탐욕과 사리사욕에 눈이 먼 집단이었다. 역사의 한 장을 남겼지만, 그 속의 수많은 사람들의 파와 눈물 그리고 목숨을 담보로 한다. 어떻게 보면 스펙타클한 영화나 뛰어난 대하드라마, 사극을 보는 느낌이다. 생동감이 넘치는 영상처럼 쉼 없이 넘겨지는 종이 장, 다음이 궁금하여 기다려 지는 시간들, 영웅의 멋진 활약상 등으로 우리를 매혹시킨다. 저자의 묘사는 정말 사실적이라고 할 수밖에, 저자가 조사하여 기록한 전쟁역사는 새로운 역사의 기술의 한 면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기존의 역사가들이 기술한 것과 어떤 차이와 얼마나 다른지가 궁금해진다. 세계의 화약고, 중동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와 ‘알라 아크발!’ 아직도 끝나지 않은 비극적인 종교전쟁, 예루살렘은 축복과 저주가 공존하는 도시로 언제 그 끝을 맺을 수 있을까? 무엇보다 객관적인 방법으로 증명되지 않는 ‘나의 신은 그의 신보다 위대했다.’ 점은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만들어버리는 것 같다. 과거의 십자군 전쟁은 신의 말씀을 따랐기에 ‘옳은 전쟁’이었다. 신의 말씀이 없지만, 아직도 인류의 전쟁은 계속되고 사라지지 않는다.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해서? 진정 인간에게는 신이 창조한 것을 바꿀 권리가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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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3권을 읽었다. 고마운 이웃님이 선물해 주셔서, 일주일을 손에서 놓지 않고 읽은 것 같다. 3권을 읽다보니, 이 엄청난 사람들 이름 덕분에, 1.2권을 또 다시 뒤적거리게 되고, 마지막 장까지 갈수 있을까 싶었는데, 결국엔 책장을 덮었다. 아득함... 이 허함을 무엇으로 표현해야 할까? 1차에서 시작해서 8차까지의 이 기나긴 전쟁에서 남은것이 무엇이 있을까하는 생각에 가슴이 텅비어 버린 느낌이다. 또 다시 내 머릿속 지우개로 모든 것이 사라지기 전에 <십자군 이야기 3>로 들어가야 겠다.
십자군의 남자들과 이슬람의 남자들을 지나서 이름만으로 헉 소리 나오는 인물들이 즐비하게 나오기 시작하는 제 3차 십자군의 문이 열렸다. 제 3차 십자군에는 '교황대리'가 동행하지 않았다. 독일 황제도, 프랑스 왕도, 영국왕도 성도 예루살렘이 이제 자신들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경악시키고 남았기 때문에, 교황이라는 제창자도, 그 제창을 받들어 유럽 전역을 설득하러 다니는 설교사도 필요하지 않은 '세속인들의 십자군'이었다. 표면적으로는 말이다. 믿음이 있는 사람도 움직이고, 싸움만 좋아하는 사람도 십자군이라는 이름하에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제 3차 십자군은 프랑스 왕과 영국 왕이 이끄는 군대가 중근동에 도착한 1191년에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하틴'에서 대패하고 예루살렘마저 탈환당한 1187년의 나머지 반년이 채 지나기 전에 티루스를 놓고 벌어진 공방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 티루스 공방전이 제3차 십자군의 첫번째 전투인 셈이다. 상대의 종교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성립하는 일신교끼리 격돌한 싸움. 양쪽 다 이교도를 죽이는 것을 신을 기쁘게 하는 행위이고, 설령 죽임을 당한다 해도 순교자가 되어 승천할 따름이라고 믿었던 사람들, 특히 예루살렘을 잃은 그리스도교측에는 한층 그런 마음이 강했으니 이 싸움의 끝은 알수가 없었다.
'붉은 수염'이라는 독일황제는 싸움터까지 가지도 못한 상태에서 익사를(작가는 늙은이의 냉수라는 표현을 한다. p.67) 하고, 프랑스의 젊은 왕 필리프는 잔머리를 굴리느냐고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유럽에서 온 그리스도교도', 이슬람교도가 '프랑크인'이라고 불리던 사람들 중 영국왕 리처드는 달랐다. 퍼포먼스로 사람들을 모을 줄 알았고, 지략과 전략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의 도착과 함께 그리스도교측은 지휘계통의 일원화가 실현되면서 수뇌들은 리처드의 명을 따르기 시작한다. 예루살렘 왕, 기드 뤼지냥이 있었지만, 누가 그의 말을 들었겠는가? 야코의 들어서기 전부터 그리스도측에 도움이 되는 안티오키아, 트르토사, 트리플리, 티루스와 키프로스를 제압한 후 리처드는 아르수프, 야파, 아스칼론을 차례대로 제압하기 시작한다. 이 상태로 나가면 성지수복은 코앞에 있을 것 같은 그때에 먼저 귀국해버린 프랑스왕 필리프가 리처드의 동생인 존과 함께 반란을 일으킨다는 소식이 전해져 온다.
<그림으로 보는 십자군 전쟁(시오노 나나미)>중 '살라딘과 리처드 1세' by 구스타브 도레
로빈후드 속 존왕과 사자왕 리처드가 이렇게 연결이 되는지 <십자군 이야기>를 통해서 알았다. '사자의 심장을 가진 자'처럼 전장을 누비는 갑옷을 두른 장수를 보면서 가슴이 철렁했었을 이슬람교도들이 붙힌 별명. '사자심 왕 리처드'가 로빈후드의 위기 때 짠하고 나타나던 그 사람이라니. 역사는 알면 알수록 재미있다. 어쨌든, 이제야 무적의 살라딘에게 적수가 생겼는데, 너무 많은 사상자를 내다보니 양쪽이 다 쉬고 싶었던 것 같다. 하루라도 빨리 영국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리처드. 점점 십자군측에 유리한 상황에서 살라딘과 강화를 맺을 생각을 한다. 교섭은 고급 아랍어를 구사할 뿐 아니라 협상에 달인이라는 발리앙 이벨린과 살라딘의 동생 알 아딜이 맡는다. 리처드는 전쟁을 좋아했던 인물이었지, 신앙심이 좋은 인물은 아니었던 것 같다. 빨리 영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자신의 누이 동생 조안나를 알 아딜에게 주어서 예루살렘 왕으로 추대를 하겠다는 말까지 하니 말이다. 물론, 이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알 아딘이 받아들였을리도 만무하지만, 조안나 역시 가만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기나긴 밀당끝에 리처드는 예루살렘을 포기하겠다, 아스칼론도 포기하겠다면서 빨리 강화를 체결하자는 서신을 살라딘에게 보내고, 살라딘은 종교적인 관용과 경제적인 고려를 포함한 강화를 한다. 이렇게 제3차 십자군은 끝이 난다. 분명 십자군측은 예루살렘을 수복하지 못했다. 이를 목표로 세우고 원정을 시작했으니 군사적으로는 실패한 셈이다. 하지만 리처드와 살라딘이 성립한 이 평화는 강화조문에 명기된 3년 개월이라는 기한을 훌쩍 넘어, 1218년까지 26년 동안 이어진다. 물론 중간에 사고가 있긴했지만 말이다.
이제 로마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와 베네치아 공화국 도제 단돌로, 살라딘의 뒤를 잇게 된 알 아딜이 주역으로 나오는 4차 십자군 전쟁의 막이 오른다. 시종 표면에 나섰던 이가 베네치아 공화국의 도제, 엔리코 단돌로였으니 이 싸움은 이교도와의 싸움이라고 보기 보다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실리를 위한 싸움이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그리스도교도이기에 앞서 베네치아인'이라는 이들은 철저하게 실리를 앞세우면서 자신들에게 빚을 진 십자군들을 몰아붙이기 시작하면서 같은 그리스도교도인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하기도 한다. 어쨌든, 원리주의와 무관한 일반 사람들에게 제 4차 십자군으로 얻어진 베네치아가 기지로 삼은 섬과 영리사업 덕분에 순례행은 더욱 안전하고 쾌적해졌다. 교황대리 '펠라조'가 움직인 제5차 십자군은 뭐라 할말이 없다. 무엇을 했는지도 모를정도로 헛수고였음에는 지명한 사실임에도 펠라조에게 책임을 묻는 이는 아무도 없었으니 말이다.
1228년부터 1229년까지의 황제 프리드리히가 이끄는 제 6차 십자군의 이야로 들어가보자. 제 3차 십자군이야기 만큼 재미있는 제6차 십자군. 교황은 십자군 참전을 끊임없이 하라고 하고, 죽어라 뻰질거리면서 가지않는 프리드리히에게 교황 그레고리우스는 '파문'을 공표하는데, 별 소용이 없었다. 이 남자는 가고 싶으면 가고 맘에 내키지 않으면 가지 않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카노사의 굴욕'을 생각했을 교황청에게 '로마 교황청이 어린 나를 도와주었다고 하는데, 내가 유년기였을 무렵 로마 교황청은 시칠리아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아 내 지위를 노리는 자들이 마음대로 활개를 치고 다녔다'(p.365)라는 서신을 보내니, 열받을 만큼 받은 교황은 두번째 파문을 내린다. '애랑 노는 사람은 다 적이다'를 공표한 셈이니, 교황이나 황제나 유치하기가 짝이 없다. 어쨌든 이 지조 강한 남자는 싸움보다는 교섭을 좋아했고, 알 카밀과의 교섭은 10년간의 평화를 가져오는것 처럼 보였다. 문제는 불신앙의 무리와 교섭을 한 황제를 교황이 너무 미워했다는 것이다. 공공연하게 황제 프리드리히를 '그리스도의 적'으로 만들어 버리는 교황. 1230년 9월 1일에 '평화의 키스'로 화해를 하긴 하지만, 이 웃긴 남자들 덕분에 <십자군 이야기 3>편에서 어이없는 웃음을 지게 만든다.
제7차와 제8차 십자군 전쟁을 끝으로 십자군 이야기는 끝이 난다. 성인이라는 칭송을 받는 프랑스왕 루이9세가 제1차 십자군을 시작으로 얻어냈던 모든 것을 하나씩 빼앗기기 시작하더니,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성지만 남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성지 탈환'을 위해서 평생을 살았던 사람들의 모든것도 사라지기 시작한다. 교황이 콕콕 찔러서 십자군을 일으켜야하는데, 프랑스의 미남왕 필리프 4세는 십자군도 성지도 되찾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찾은 방법이 프랑스에 있는 템플 기사단을 이단으로 몰아 붙이는 것이었다. 프랑스로 돌아가기 위해 적극적이던 템플 기사단은 눈엣가시같은 존재였으니 말이다. 이단재판소를 통해서 벌어지는 템플 기사단의 고문은 상상을 초월한다. 성지에 세운 십자군 국가를 2백 년 동안 지탱해온 기둥 중 하나로 2만 명이 넘는 단원을 희생해온 템플 기사단은, 그릇된 신앙방식을 고발하는 '이단재판'의 심판을 받게 된 것만으로도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졌을 것이다. 거기에 이단의 증거가 127가지나 된다고 고발을 했으니 왕이라는 자들의 상상력이 좋았던 것인지, 비열하기가 극을 달했던것인지 알수가 없다.
'성묘의 수호자' 고드프루아와 젊음의 상징이었던 탄크레디를 시작으로한 제 1차 십자군부터 문둥이 왕, 보두앵 4세와 이슬람의 장기를 거친 누네딘, 살라딘, 알 아딘, 사자심왕 리처드와 존엉왕 필리프등의 이야기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던 <십자군 이야기>는 끝이 났다. 유일신을 믿는 두 종교 집단의 이야기였지만, 진정 이 싸움이 신을 위한 싸움이었을까? 200년에 걸친 8차에 걸친 싸움은 수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냈고, 십자군을 모티브로한 이야기 또한 수없이 만들어지고 있다. 유럽에 싸우는 영주들에 눈을 다른곳으로 돌리기 위해서, 자신의 권위를 위해서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는 말로 젊은이들을 싸움터로 보내버린 200년의 싸움. 왜 유럽에서 이 먼곳까지 와서 싸움을 걸까하고 아무 생각없이 싸우다, "알라는 위대하다!"라는 말로 유일신들의 싸움이 되어버린 곳. 그들의 싸움은 분명 끝이 났는데, 여전히 나는 전쟁의 한가운데에 서있다. 나는 어느곳을 향해야 할까? 바라보는 눈이 진정 신의 눈이 되어 신이 바라시는것을 바라볼 수 있을까? 십자군 전쟁은 끝났지만, 아직도 십자군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아마, 이 싸움은 인류가 살아있는 한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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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놀라운 글
지금 놀라운 글을 읽고 있다. 역사 공부를 하면서 대강의 내용을 선지식으로 갖고 있었지만 지금 이렇게 눈에 보일 듯이 그날들의 상황을 마주할 수 있다니 놀랍다. 중세의 지도(맵)와 분노를 느끼면서 움직였을 당시의 사람들 모습이 시각적으로 선명하게 다가온다. 800년 전의 공간도, 시간도 현재화 되어 내 앞에서 그들의 소리를 지르고 있다. 감동적인 내용을 만나고 있다. 유럽과 서아시아 중세의 모습들이 손에 잡힌다. 더구나 일본인에 의해 이렇게 소상히 지중해와 소아시아, 그리고 이스라엘 땅이 그려지고 있다니 더욱 마음에 다가오는 것이 있다. 감동이다. 작가가 글을 쓰면서 느꼈을, 취재하면서 보았을 것들에 대한 느낌의 감동이다. 200년에 걸친 십자군 전쟁의 기록과 그 결과에 대한 분석 등이 너무나 세밀하게 제시된다. 작가의 노력에 가슴이 떨릴 만큼 마음이 움직인다. 모든 내용들이 너무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낱낱이 지역적인 그림과 함께 다가오는 내용이 이스라엘과 유럽과 중동의 관계를 재조명해 볼 수 있게 한다. 그리고 당시를 살았던 분들의 마음들까지 손에 잡힐 듯 느껴진다. 읽으면서 행복함까지 함께하는 것을 느꼈다. 2. 십자군 이야기
3차 십자군 전쟁부터 3권이 시작된다. 2차 십자군 전쟁의 ‘하틴’ 전투에서 십자군이 대패하고 성도 예루살렘까지 이슬람의 살라딘에게 넘어가자 유럽 전역에서 분노의 소리가 들끓는다. 그것이 3차 십자군 원정의 기폭제가 된다. 그래서 유럽 곳곳에서 소규모로 혹은 대규모로 전투 장소인 이스라엘 지역으로 넘어 오게 된다. 그 중 큰 부대는 독일의 프리드리히 1세, 영국의 리처드 왕, 프랑스의 필리프 왕 등이다. 그들은 1년을 사이를 두고 중동으로 와 이슬람 지역을 통일한 살라딘과 대적한다. 그 전 아스라엘 땅 지중해 연안에는 크리스트교의 지배 도시가 몇 있었다. 그중에서 이스라엘 점령 후 모든 곳이 살라딘의 수중에 넘어갔는데 티루스만 견고한 성이라 남아 있다. 그곳은 이 후 십자군의 보루 역할을 한다. 살라딘이 여러 번 그곳을 공격하다가 많은 손실을 입고 결국 군사를 물리게 되는데, 그곳을 발판으로 삼아 십자군은 다시 세력을 얻게 된다. 그곳에 3차 십자군이 오면서 아래쪽의 잃었던 아코 도시를 수복하기 위한 전쟁을 하게 된다. 그때 유럽의 많은 전사들이 신앙심으로 그곳 전투에 참가한다. 이 전쟁은 살라딘까지 참가하면서 2년의 공방전으로 이어진다. 아코가 영국왕 리처드를 중심으로 한 3차 십자군들에게 점령당한다. 그리고 목적의식을 잃은 일부 세력이 이탈된 가운데 예루살렘 탈환전이 이루어진다. 십자군은 병력이 2만을 조금 넘고 살라딘의 대치된 병력은 그 두 배를 넘는다. 그런 가운데 바다의 지원을 받은 십자군은 일사분란하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살라딘 군이 그들을 뒤따른다. 결국 그들은 아르수포에서 한 번의 대결이 이루어진다. 2만과 4만이 넘는 병력의 충돌이었다. 전투는 살라딘이 이스라엘로 행군하던 십자군 병력을 가운데로 쳐들어가 두 부분으로 절단하고 뒷부분을 공격하는 것으로 이루어졌다. 십자군이 처음에는 그곳에서의 전투가 목적이 아니었기에 방어전의 형태로 나아갔다. 그러나 후미가 적의 공격으로 부서지는 상황이 되자 리처드를 비롯한 전군이 기수를 돌려 피비린내 나는 격전이 이루어진다. 결국 살라딘은 그곳에서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은 십자군의 반격에 군사를 물리게 된다. 그 전투에서 결과적으로 살라딘은 1만 명의 병력을 잃었고, 십자군 측은 700명 정도의 손실이 난 것으로 전해진다. 십자군의 대단한 승리로 끝이 난 것이다. 그곳에서 리처드의 전과는 혁혁하여 그 후부터 그는 사자심왕이란 호칭을 얻기까지 하였다. 리처드는 지중해 연안의 해상 도시들을 거의 회복한다. 그리고 성도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을 뚫기 위해 분투한다. 그러는 가운데 고국에서 불길한 소식이 들려온다. 프랑스 왕 필리프가 리처드의 동생 존과 합의하여 리처드의 영역을 잠식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한 상황에서 리처드는 살라딘과 적이지만 서로 인간적으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관계가 된다. 그런 상황에서 리처드는 강화를 맺고 영국으로 돌아간다. 돌아가는 길에 신성로마제국에서 고생도 하지만 결국 영국으로 돌아가게 되고, 그동안 잃었던 실지도 다시 회복한다. 제 3차 십자군 전쟁은 로빈 훗의 이야기 배경이 되는 시대다. 읽으면서 리처드의 귀환과 로빈 훗의 무용담이 많이 생각났다. 영웅적인 기질을 지녔던 리처드가 지혜로웠던 살라딘과의 예루살렘 성도를 두고 벌린 전투의 결과는 비교적 서로 용인할 수 있는 결과를 얻고 끝이 난 듯하다. 아마 십자군 전쟁에서 장수들끼리 서로를 인정한 그리고 자신들의 뜻을 관철하기 위한 가장 의지를 가진 전쟁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십자군 전쟁은 말 그대로 종교를 위한 목숨을 건 싸움이다. 사후 세계에 대한 보장을 받고 나가는 싸움터는 처절할 정도로 절박하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건 싸움이 된다. 그런데 3차 십자군의 모임의 성격은 성도의 회복에 그 궁극적인 목적이 있지만, 이탈리아 수군과 극동 지역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장하는 목적도 강했던 것을 보인다. 그렇기에 지중해 연안에 있는 도시들을 중심으로 전쟁이 이루어지고, 그 외에는 회담을 통해서 결과가 결정된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3차 십자군 전쟁의 중심은 영국 국왕으로 종교적인 색깔이 조금은 희석되어 나타난다. 영웅들의 치열한 기 싸움 같은 모습을 보이는데 지중해 연안의 도시쟁탈전과 그들의 활약이 주가 되는 전쟁이었기 때문이리라. 리처드와 살라딘이 맺은 협약 때문에 크리스트교인이 나사렛, 예루살렘 등지를 방문은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중세 가장 힘이 강했던 교황 인노켄티우스가 등장하고, 갈 수는 있지만 아직도 아랍권의 지배하에 있던 성도에 대해서 만족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다시 군사를 일으키게 되는데, 이 4차 십자군엔 배네치아의 선단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도제 단돌로를 중심으로 그들에 의해 병력이 이동되고, 그들의 능력에 따라 전쟁 수행 능력도 달라지기도 한다. 즉 4차 십자군의 중심이 된 기사들은 선단 도제의 청을 외면하고 자신들의 목적을 성취시킬 수는 없는 처지라, 도제가 요구한 자라를 공략하는데 힘을 보탠다. 자라는 그리스 서부에 있는 도시인데 베네치아 선단에서 필요한 도시였다. 이것으로 인해 교황의 큰 분노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 후 그들은 콘스탄티노플을 공략한다. 그들의 적은 이슬람인데, 그곳은 그리스 정교가 머물고 있는 곳이다. 십자군의 행로가 아상하게 변질되어 움직인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라틴 제국을 세우고 전쟁을 수행했던 공작 중에서 한 명을 투표로 황제에 올리기도 한다. 제 5차 십자군은 현지 십자군이라 불리기도 한다. 예루살렘 왕 브리엔이 이끄는 십자군이 알렉산드리아를 노리고 다미에타로 진격한 일을 두고 말한다. 전쟁은 교착 상태에 빠진다. 이때 강화의 사자로 유명한 성 프란체스코가 등장하기도 한다. 전쟁은 이슬람에 여의치 않았던 모양이다. 통치 기반이 아직 약했던 알 카밀이 강화 제안을 여러 차례 한다. 그러나 “불신자들과 타협하는 것은 옳지 않다. 피를 통해서 성지를 회복해야 한다.” 등의 주장을 하는 일부 세력들 때문에 교섭이 결렬된다. 그러다 자연 재해가 겹치고 도저히 지탱할 수 없는 상태가 되자 8 년간의 불가침 조건의 약속을 하고 서로 철수하는 상황으로 결론지어 진다. 6차 십자군은 신성로마황제 프리드리히 1세로 인해서 이루어진다. 교황청과 반목이 많았던 황제는 교황청이 싫어하는 일들만 한다. 그래서 파문을 당하기도 한다. 허나 교황청에서 시키는 일에 고분고분하지만 않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강단을 지녔다. 그런 그가 드디어 6천의 병사들을 이끌고 중동에서 크리스트교의 기반이 되는 아코로 간다. 아코의 모든 사람들은 열렬히 환영을 한다. 그런데 그는 전쟁보다는 대화를 원하고 상대자 알 카밀과 대화를 지속해 나간다. 서로 끈기 있는 대화를 통해 예루살렘의 귀속권을 서구에 넘겨주기로 하고 일부 지역에서 이슬람 인들이 거주하는 것으로 한다. 또 나사렛 등도 크리스트교 쪽으로 넘겨주기로 협의가 이루어지고 강화가 이루어진다. 전쟁을 하지 않고 원정이 이루어진 십자군의 모습을 보여주는 유일한 십자군이다. 7차는 루이 9세에 의해 이루어진다. 당시 6차에 의해 협의된 예루살렘이 이슬람 과격분자들에 의해 점령되는 사태가 일어났고, 그것이 교황청을 분노케 한 것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루이에게로 총대장의 임무가 부여된 7차 십자군이 형성되었다. 루이는 2만 5천의 병력을 이끌고 이집트 다미에타 쪽으로 향했다. 다미에타를 점령하고 나일강을 올라가다 만수라에서 템플기사단의 참극이 벌어진다. 200명 가까이 되는 인원이 전명하는 것이다. 또 그 후 7차 십자군 거의 전원이 포로가 되는 일이 벌어진다. 서구의 입장에서 보면 최악의 참람한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그 후 포로들을 놓고 교섭이 진행된다. 영토 반환, 몸값 등으로 교섭을 진행되면서 2만 5천의 사람들 중에 5-7천 명 정도가 풀려난다. 그리고 1만 명 이상 사망, 7-8천 개종 등으로 전해진다. 이로 인해 중동 지역에서 크리스트교의 위상이 매우 약하게 되었고, 거의 세력 회복 불능의 상태에 이른다. 그러는 가운데 몽고의 이슬람 침입이 있었고 이를 물리치는 가운데 맘루크라는 새로운 세력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 세력에 의해서 제 8차 결성된 십자군이 패퇴하였고, 또 십자군의 흔적이 살아있는 마지막 전투가 행해진다. 아코 전투다. 그곳에서 키프로스 세력들을 중심으로 이슬람 세력에 대행해 보지만 역부족으로 모두 죽거나 물러나고 아코는 파괴된다. 200년에 걸친 십자군 전쟁의 종결되고 그로부터 그 지역은 이슬람이 지배하는 땅이 되었다. 소득 없는, 소모적인 숱한 생명들이 저당 잡힌 전쟁은 그렇게 일단락되었다. 3. 십자군 그 이후
이 200년에 걸친 십자군 전쟁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중세 유럽과 이슬람에 많은 문제를 만들어 내었다. 중세 크리스트교의 부패와 기사들을 중심으로 하는 싸움 집단들의 직업화, 또 이권이 개입된 철저한 신앙의 도구화 등등. 정말 많은 문제를 만들었다. 인간 존중이라는 문제를 일깨워볼 수 있게 만든 전쟁의 참혹함 등도 생각해 보게 만들었다. 이러한 것들이 문예부흥과 인간성 존중의 철학 또 종교 개혁이라는 발판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참으로 인간이 만든 참혹한 역사로 여겨지는 이 시대상, 그들을 읽으면서 쓰린 가슴이 된다. 4. 놀라운 사람
저자의 놀라운 화술에 다시 감탄을 보낸다. 너무 이야기가 쉽게 풀어져 있다. 전체적으로 온전히 내용을 통찰하였기에 가능한 일이다. 아마 많은 답사도 이루어졌으리라. 숱한 자료도 수집했으리라. 그것만으로 이러한 글이 나올 수는 없다. 면밀히 검토하고, 재구성한 노력이 이와 같은 역작을 만들었으리라. 또 아랍과 서구를 공정하게 바라보는 시각도 본받을 만하다. 시각이 한 쪽으로 치우치면 어떤 내용이든 부족한 부분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모든 상황을 자세하게 검토하면서 우리들에게 전해주는 메시지가 치우침이 없다. 사실의 전달과 간단한 평가들이 내용에 쉽게 다가가게 만든다. 역사 속의 인물들이 되어 보게 한다. 그 인물들 속에 빠져들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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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십자군 이야기 시리즈를 다 읽었다 그것도 책이 도착하고 사흘만에................, 내가 산 책중에 특히 시리즈로 된 책 중에 이렇게 일일이 따로 사서 읽어 본 책은 이 책이 처음이다 보통 시리즈책이면 다 발간이 되어야 통체로 사는 나의 성격상 이렇게 따로 나올때 마다 사서 읽은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런 만큼 굳이 읽어보지 않아도 기대되었던 작가라는 이야기도 된다는 얘기다 시오노 나나미 그녀의 필체는 아주 코믹스럽고 재미있다 그녀의 취향? 즉 역사적 해석과 취향은 둘째 치더라도 상당히 글 자체가 눈에 쏙쏙 들어오고 귀에 읽혀지며 눈으로 어니 머리로 그녀의 글을 상상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가 쓴 책안으로 내가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한편의 영화를 보게 될 정도로 그녀의 필력은 아주 맘에 든다 그래서 난 십자군 이야기를 전편이 아닌 나올때 마다 따로 사서 읽어봐야 했을 정도다 그리고 난 그 책이 시리즈면 시리즈 전체를 주로 리뷰를 하는 편인데 이번엔 마지막 시리즈인 3권의 리뷰만을 하고 싶었다 그이유는 내용도 가장 많았고 또한 마무리가 좀 아쉬웠기 때문이다 그녀는 지중해사(史)에 관한 책들이 무수히 많다 일단 십자군 이야기 성지인 예루살렘을 서로 차지 할려고 했던 싸움으로 십자군이 앞에 이름을 내거는 것을 보면 그리스도교 쪽에서 먼제 전쟁을 시작했음을 알수 있다 그리고 이슬람권은 거의 1차때 전멸하다시피 할 정도로 갑자기 들이다친 전쟁이기도 하고 그리고 서로 탈환을 하면서 이야기는 죽이어진다 물론 200년이 넘게 걸린 전쟁중에 잠시나마 평화도 오게 되고 말이다 물론 책 내용도 재미있다 그런데 원 작자인 시오노 나나미가 3권까지 라고 못을 박아서 그런지 더 쓰고 싶은데도 다 이 이야기를 다 못쓰고 책이 끝났다는 기분이 드는 건 나뿐인가? 가장 무서웠던 건 그냥 서로 합의하에 합의서만 작성하고 온다는 것이 오히려 욕을 먹고 피를 흘리면서 이겨야지 진정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가 된다고 생각하는 그 사상 정말 섬찟했다 현실주의자가 욕을 얻어 먹는 시대? 무서웠다 솔직히 왠지 아쉬웠다 차라리 5권까지로 하고 좀더 내용이 더 자세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재미있기도 하고 우리가 몰랐던 사실들이 많았다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았던건 이 전쟁이 기독교 입장도 아니고 이슬람 입장도 아닌 유일신을 믿지 않는 작가에 글이라 그런지 왠지 멀리서 자기가 신인냥 그렇게 중립적인 해석을 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맘에 들었다 만약이 이 책이 기독교 작가나 이슬람 작가가 글을 썼으면 이런 내용이 절대로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책을 덮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서로간의 문명의 충돌은 21세기인 지금도 아직도 계속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을 알았다 도대체 왜 그럴까? 단순히 영토 그리고 자원에 문제일까? 지금 현재에도 종교 때문에 서로 죽이고 싸우고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니 뭐 참 이 책을 읽고 나서는 느낀것이 많았다 그런데 글로 표현하기가 뭔가 애매하다 이제 십자군 전쟁은 끝이 났으면 좋겠다 영화 킹덤오브 헤븐이 생각났던건 2권때 였지만 3권을 읽는 내내 그 영화만 계속 머리에 떠올렸다 그리고 그 영화에 마지막 글이 생각난디 1000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전쟁중이라는 그 글 서로 피 흘리면서 성지를 빼았는것은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 신은 더 이상 없어진지 오래 같은데 말이다 시대가 시대이니 만큼 그러나 아직도 신은 그것을 바라신다고 생각하는건 아닐것인데 그렇다 신도 그것을 바라지 않았을것 같고 알라는 위대하지만 알라도 그것을 바라지는 않았을것 같다 그리고 구성이 아쉬운건 1,2권은 아주 얇은 편인데 3권을 맞춘다고 600쪽이나 되는 꽤나 두꺼운 책이 나왔다는 것이고 그런데 라이센스 계약문제인지는 몰라도 책이 양장도 아니고 종이도 그렇게 좋은 재질은 아닌것 같은데 가격이 좀 비쌌다는것이 이런 책은 양장으로 나와도 손색이 없을텐데 말이다 나중엔 분명히 양장으로 세트로 팔겠지? 그때 가면 나는 또 결제하고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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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 밝히는 생각이지만 시오노 나나미가 거둔 성과는 대단하다.
그녀로 인해 어쩌면 우리에게 생소하고 먼 나라 이야기로 들릴 법한 지중해의 역사가 영화처럼 한눈에 펼쳐졌다. 그녀의 필력이 있었기에 현재 케이블방송에서 상영중인 미드 스파르타쿠스가 한층 흥미진진하게 느껴지고, 글래디에이터(2000), 킹덤오브헤븐(2005), 로빈후드(2010)같은 영화를 한번 더 꺼내보게 되는 것이다. (써놓고 보니 위의 세 영화는 모두 리들리 스콧 감독의 작품이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그리스, 로마사와 동로마제국-유럽중세사는 따분하고 어려운 '학문'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 그녀는 이러한 역사의 대중화에 큰 공헌을 했다. 다른 나라에서의 판매부수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한국에서의 인기는 쉬 누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공헌과 별개로 이번 십자군이야기 시리즈의 세부 내용에 대해서 지적할 부분이 너무 많다.
대략 다섯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첫째로,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의 편협성이다.
역사를 서술하는 자는 아무리 어렵더라도 최대한 객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동시대의 어느 편 연대기작가가 아니라면, 자기와 혈연-지연에 얽매인 내용이 아니라면 더더욱 객관적인 시각과 서술이 필요하다. (한국인이 유럽과 아랍세계가 맞붙은 11~13세기 역사를 배울 때는 이 부분이 더욱 중요해진다.) 그러나 그녀는 출생 탓에 더 쉽게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었음에도 그 기회를 쉬 저버렸다. 그녀는 대부분의 장면에서 유럽-십자군의 시각으로 책을 서술하였음은 물론 평가의 공정성도 포기하였다.
그녀가 원래 십자군 편에서 이야기를 쓰려고 한게 아니냐고 따질 수도 있겠다. 더불어 혹시 독실한 그리스도교 신자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는 프랑크인 연대기 작가가 아니다. 종교적인 광신에 의해 이 책을 쓰는 것도 아니다. 역사를 이야기로 쓰는 작가, 이야기꾼일 뿐이다. 그 이야기는 당연히 팩트에 근거해야 하고 팩트가 아닌 것은 어떠한 호감, 비호감적인 것도 배제해야 마땅하다. 그녀는 이 부분에서 낙제점이다. 과도함 감정이입이 시각의 편협성을 낳았다.
십자군원정은 말그대로 유럽 십자군의 침략과 아랍세계의 방어로 점철된 역사이다. 이 개념 안에서 팩트를 명기해야 한다. 종교적 사명, 또는 옳고 그름의 명제는 그 다음이다.
또한 일방의 역사가 아닌 쌍방간의 전쟁의 기록이므로 양측의 기록과 평가를 더 세세하게 살폈어야 한다. 그러나 그녀는 아랍인이 쓴 기록은 유리한 부분만 가져다 사용한다. 그녀의 이러한 습관은 심지어 근현대 사학자들의 저작들에서 내용을 발췌할 때도 똑같이 행해진다. 이건 역사를 쓰는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 아무리 역사학자가 아니더라도.
둘째, 굉장히 심각한 영웅사관이다.
그녀는 곳곳에서 '심취해있다'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어느 제후가 어느 왕에게 심취해있다거나 동생이 형에게 심취해있다는 등의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원문의 이탈리어 또는 영어가 어떤 것이지는 잘 모르겠으나 번역자가 굳이 이 단어를 선택한 걸 보면 이 단어가 원작자의 의도에 가장 부합한다고 봐야할 것이다. '심취하다'라는 뜻을 과연 사람에게 적용하는게 가능한가 의심스럽지만, 내가 보기엔 그녀 자신이 (그녀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소수의 영웅에 심취해있는게 아닌가 싶다. 로마인 이야기는 한마디로 불멸 무결점의 인간 카이사르에 대한 심취의 기록이고, 십자군 이야기는 사자심왕 리처드에 대한 심취의 기록이다. 사실 그녀가 사랑하는 도시 베네치아의 도제 단돌로도 중요한 심취의 대상이며, 각 기사단의 단장과 기사들, 신성로마제국의 프리드리히 황제 또한 그녀에게 행복한 상상력을 제공하는 남성 영웅들의 상징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의 심취의 대상들이 몽땅 등장하는 이번 3권이 십자군 이야기의 핵심이며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비교적 기록과 증거가 풍부한 시대의 역사를 읽으면서 신화적 요소가 가미된 로마사를 읽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녀의 이러한 영웅사관 때문이다.
그녀는 너무 긴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무려 2천년의 역사를 쏜살같이 달리다보니 소수의 인물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십자군 시대는 다르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을 바꿨어야 했다. 그녀가 짝사랑하는 그 남성들을 '여러분도 나랑 같이 심취하세요!'라고 권유하진 말았어야 했다.
셋째, 4차 십자군이 저지른 콘스탄티노플 함락을 이야기에서 통채로 빼버렸다.(p.287)
그녀의 이유는 간단하다. 다른 책에서 썼으니 거기서 읽어보라는 것이다. 이건 책을 쓰는 사람이 내세울 핑계가 아니다.
4차 십자군 원정의 핵심은 누가 뭐래도 십자군이 저지른 콘스탄티노플 함락과 그 전후의 잡다한 사건들이다. 그녀가 사랑하는 도시 베네치아, 그리고 그녀가 사랑하는 정치인 단돌로가 그 앞장에 섰더라도 빼먹을 대목이 아니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인해 십자군은 더이상 십자군이 아니 것으로 많이들 평가하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그녀의 입장을 정리했어야 했다. 십자군 원정의 시발점이 콘스탄티노플의 구원 요청에서 비롯된 것임을 잊어서는 안되다. 콘스탄티노플이 동로마의 수도이자, 그리스도교가 성립된 토대임도 잊어서는 안된다. 그 도시를 십자군이 빼앗고 약탈한 것이다.
넷째, 셋째에서 이어지는 대목인데 4차 십자군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각이다.(p.298)
그녀는 4차 십자군의 과오를 과오로 보지 않는다. 이유는 20세기에 들기 전까지 누구도 4차 십자군에 대해 악평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교황도 파문하지 않았고, 주요 삽화도 남아있기 때문이란다. 어떻게 이런 논거를 찾았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거기다 한술 더 떠서 예루살렘 순례가 더 자유로워졌으므로 다행인 거 아니냐는 생각도 내비친다. 아주 위험한 생각이고, 비논리적인 생각이다. 보통은 독재자나 전쟁광들이 펼치는 논법이기도 하다. 1~2권에 이어 다시 말하지만 그녀의 보수로의 퇴행(또는 강화)은 굉장히 속도가 빠르고 심각하다. 아직 어린 학생들이 이런 사관을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다섯째, 다른 사학자의 서술을 엉뚱한 방법으로 꼬고, 활용한다.
특히 스티븐 런치먼에 대한 언급은 그녀 자신을 부각시키기 위해 학계의 거물을 논하면서 동등한 권위를 쉽게 얻으려 하는 목적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평생동안 한 우물만 판 학자와 이야기꾼인 스스로를 같은 면에 맞대보는 것도 우습지만(이것은 소설가 김훈이 조선사를 연구한 학자에게 실력을 겨뤄보자고 큰 소리 치는 꼴이다. 우위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비교대상이 아니다.), 러치먼의 저작을 '재인용'이라고 에둘러 비판한 것은 이 베스트셀러 작가의 오버이다. 그러면서도 리치먼의 센스있는 인물평은 그대로 인용한다. 모두 동의할 수 없다고 하면서도, 재미도 주고, 자기도 돋보이게 만들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다.
리치먼의 저작 중 '1453 콘스탄티노플 최후의 날'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동시대 역사에 관심있는 많은 독자들이 한번쯤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재미는 모르겠지만 깊이가 다르다는 점은 확실하다.
마치려 하니 시오노 나나미에 대한 평이 너무 박하다. 맞다. 그녀는 우리 시대의 둘도 없는 역사분야 베스트셀러 작가이고, 해박한 지식을 지닌 사람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제라도 그녀의 역사관, 장단점을 면밀히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그녀의 책을 읽는 수만명의 독자들, 특히 학생들을 생각한다면, 급하다.
잘못된 역사관은 잘못된 현실감각을 키운다. 그래서 전쟁은 계속되는 것이다. 그녀가 말한 '옳고 그름의 문제'가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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