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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인 동 카즈무후는 포르투갈어로 '무뚝뚝 경', '퉁명 공'이라는 뜻이다. 말년에 이 동 카즈무후의 화자, 벤투 (벤치뉴)는 예전과 똑같은 집을 짓고 그 안에서 자신의 회고록을 쓴다.
...나의 옛집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복제품이라는 것을 알고있다. ..이렇게 복제품을 만든 목적은 인생의 양끝을 연결하고자 함이었다....p.172
벤투는 존경받고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어도, 객식구들이 도와 엄마 글로리아와 풍족하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학교갈 나이가 된 그에게 닥치는 강요 하나는, 엄마 글로리아가 첫째를 낳은 후 죽자 두번째 아이는 신부로 하나님에게 바치겠다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벤투는 이웃의 카피투와 이제 조금씩 첫사랑을 쌓고 있었는데 말이다. 이러한 10대의 이야기는 이 책의 3분의 2짜기 차지한다. 서사는 매우 느리게 진행되지만, 앞부분에서는 이런 벤투의 성격과 심리를 알 수가 있다. 귀가 얇고 조울증 비슷하게 감정적으로 굴곡지며, 쉽게 싫증내도 죄책감을 느끼기에 또 감언이설에 귀를 기울이고, 나르시스트에 집착과 지투, 의심증이 있는 벤투. 도대체 그의 심리 외에 이야기는 어떻게 진행됭 것인가 하는 즈음에서, ...제19장 친구여, 그러지 말길 바란다....휴식을 취하자는 생각으로 이 책을 펼친 나의 친구이자 독자는 우리가 절망의 나락을 배회하는 모습을 보고는 서둘러 책을 덮고 깊을 것이다....친구여, 그러지 말길 바란다. 내가 방향을 바꾸겠다.....p.309
제101장 천국에서...독자가 기다림으로 지칠대로 지쳐 한눈팔기전에 행복해지도록 하자....p.263
이렇게 저자가 첨언을 하니 참 책을 놓을 수도 없고..마치 저자, 아니 벤투가 바로 앞에서 듣는이의 눈치를 보고 자기 이야기를 멈추고 독자가 궁금해하는 이야기로 넘어간다는 게 보인다. 그게 바로 벤투의 성격이겠지. 자신의 이야기를 3분의 2이상 쏟아놓고서는 자기가 한 잔인한 행동에 대해서는 금방 해치우고 넘어가면서 그러면서도 청자의 눈치를 보며 자신의 합리화를 하는.
신학학교에서 에제키우에우 지소자 에스코바르를 알게되었고 그와의 우정은 그전에 없던 공평한 관계를 만들어준다. (그전까지는 객식구인 주제 지아스에게 부탁하여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 신경을 썼다면). 그리고 그는 어쩌면 그 이후를 어슴푸레 예견하였을지 모른다. 연극 [오델로]의 이야기가 나오기 떄문이다.
과연 그가 저버린 아들이 불륜의 결과인지 자신의 아들인지는 이 자아가 강하고 자기합리화를 하는 저자에 의해 이미 판결이 나있었다. 독자인 우리는 막연히 오델로를 생각하고, 의심을 품을 뿐이다. 이렇게 자신의 불신으로 괴로움을 겪었던 이들의 이야기는 단 몇페이지 몇줄로 줄어들고 그는 자신의 고통만을 호소할 뿐이다.
질투는 누구나 한다. 심지어 강아지들도 하나만 편애하면 이에 대해 화를 내며 자기분에 상당하는 관심을 요구하기도 한다. 귀엽다. 하지만 이 질투라는 것은 적절한 곳에서 머물지않는다면 굉장히 파괴적인 것이 되기도 한다. 말년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었던 이 화자는 끝내 사랑을 주고 받고를 하지 못하고 행복하기만 했던 어린 시절의 집을 똑같이 짓고 거기에 머뭄으로서 다시 행복을 찾아다고 자신을 속인다. 그 사이에 사랑하는 아내는 사망했고 아들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는 즐거움을 잃어버린채 커버렸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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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은 모든 것을 병들게 만든다.
잊고 있었다. 주아낑 마리아 마샤두 지 아시스라는 작가의 <브라스 꾸바스의 사후 회고록>을 읽었었던 사실을! 친구가 브라질 문학의 최고봉으로 주저 없이 추천해 주었던 작가였다. <동 카즈무후>를 택배로 받고서야 떠올랐다.
<동 카즈무후>는 무슨 뜻일까? 포르투칼어로 '무뚝뚝 경' 혹은 '퉁명 공'이라는 뜻이다. 카즈무후는 말없이 자기 세계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 붙이는 별명 같은 것이다.
벤치뉴와 사랑하는 아내 카피투와 아들 에제키에우와 그의 절친 에스코바르와 그의 부인 산샤의 이야기다. 어느 날 갑작스러운 사고로 친구 에스코바르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친구의 장례식장에서 벤치뉴는 무엇을 보았을까? 눈물을 흘리는 아내 카피투의 모습에서 그는 대체 무엇을 보았나?
똑같은 것을 보아도 전혀 다른 생각을 하게 되는 가장 무서운 의심이 시작된다. 자신보다는 친구 에스코바르를 더 닮아가는 듯 커가는 아들 에제키에우와 장례식장에서 눈물을 흘리는 아내 카피투를 보고 벤치뉴는 스스로 의심의 바다로 뛰어들게 된다. 지금처럼 유전자 검사를 할 수도 없고, 버선목이라 뒤집어 보이지도 못하는 현실.
오셀로 증후군??? Othello syndrome은 명확한 증거 없이 배우자의 불륜을 의심하고, 이 때문에 자신이 피해를 입고 있다고 생각하는 증상을 말한다. 이 증상이 심해지면 성(性) 적으로 배우자가 부정하다는 증거를 찾으려고 억지를 부리기도 한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의 하나인 ≪오셀로≫에서 이러한 현상을 잘 표현하고 있어서 오셀로 신드롬이라 부른다. 배우자의 불륜으로 자신이 피해를 받는다고 느끼는 비이성적으로 생각한다는 면에서 부정망상(infidelity delusion)은 의처증과 의부증으로 알려져 있다. 심리묘사의 대가의 사랑과 광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진실을 말해줄 친구 에스코바르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벤치뉴는 아내 카피투에게 진실을 다그치지만 카피투는 변명하지 않는다. 벤치뉴는 모두 다 쫓아내고, 스스로 고립을 선택한다. 벤치뉴의 행동은 얼마나 잔인한가? 하루아침에 아무런 이유도 모른 채 아버지에게 버림을 받게 되는 아들 에제키에우는 급기야 독이 든 커피를 마시게 된다.
이미 시작된 의심의 꼬투리에 카피투는 왜 강하게 부정하지 않았을까? 진짜로 외도를 했던 것일까? 아니면 자신을 의심하는 남편의 태도에서 이미 믿음이 깨어진 것을 보았던 것일까?
아~~ 답답해. 죽은 자는 말이 없다지만, 다 읽고 나니 동 카즈무후는 벤치뉴가 아니라 카피투가 아닐까? 진실을 알고 있는 단 한 사람, 카피투를 소환해서 물어보고 싶다. 진실의 문아~ 열려라!!!
#네이버독서카페 #리딩투데이 #리투서평단 #휴머니스트 #흄세 #세계문학 #동카즈무후 #마샤두지아스 #주아낑마리아마샤두지아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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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 카즈무후>는 브라질 소설로 동아시아에서 첫 번역 작품이라는 소식을 들으며 작가의 이력을 살펴보았지만, 첫 번역이라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 아샤두 지 아시스가 세계문학사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작가로 그의 수백 편 소설 중에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는 호평받았다는 <동 카즈무후>가 한국에 처음 출간되어 반갑다.
열다섯 살의 주인공에게 이제 막 오페라가 시작한 것이다. 사춘기 벤치뉴가 일인칭 화자이자 주인공으로 그에게는 절대 잊을 수 없는 11월의 어느 성대한 오후를 떠올리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어머니와 객식구 간의 대화를 엿들으면서 자신이 신학교에 가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열네 살의 카피투가 있었다.
성년기 벤투 산치아구는 카피투와 결혼에 이르러 아들까지 낳았지만, 장년기 동 카즈무후의 막역한 친구 장례식에서 보여준 카피투의 태도에 의처증이 발호한다. 그의 질투와 의심으로 이들 부부와 부자지간 관계가 막장 드라마처럼 흘러간다. 작가가 그려내는 주인공과 그의 주변 인물, 주인공 상황에 따른 오페라와 같은 묘사는 잘 짜인 작품의 매력을 한층 돋보이게 한다.
그리고 해설을 보고 뒤늦게 알았지만, 이 소설의 모티프가 셰익스피어의 희곡 <오셀로>다. 질투와 망상을 그대로 끌어들여 동 카즈무흐가 자신의 욕망으로 타자를 왜곡하고 자기 논리를 정당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그의 서사를 구축하고 있다. <동 카즈무후>를 읽는 동안 작품의 구조와 숨겨진 구성을 미처 몰랐지만 나름 오페라의 아름다움에 감흥을 얻어간다.
"껍질 안에 있는 과실처럼 한 사람이 이미 다른 사람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p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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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와 복수는 짝패 관계다. 주인공은 지인의 질투나 음모로 인해 곤란과 역경을 겪게 되고, 오랜 시간 인생 막장의 쓴맛을 인내하며 견디다가 마침내 가해자에게 통쾌한 복수를 행한다는 스토리는 《암굴왕》이란 제목으로도 유명한 《몬테 크리스토 백작》이나 박찬욱 감독의 영화 「친절한 금자씨」 같은 복수 판타지의 뼈대를 이룬다. 복수가 아닌 질투에 더욱 강조점을 둔다면, 셰익스피어의 《오셀로》가 대표적이라서, 자그마한 질투와 의심이 얼마나 비참한 파국을 부르는지 경고하는 모든 서사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른바 '오셀로 증후군'이 바로 그러하다.
브라질 국민작가 마샤두 지 아시스의 대표작 《동 카즈무후》(휴머니스트, 2022)는 표면상 질투와 복수의 이야기 간판을 내걸고 있지만, 전체 이야기의 전개 양상을 보자면 오히려 폐쇄적인 아웃사이더 화자의 고백록 같은 심리소설이다. 제목 '동 카즈무후'는 '무뚝뚝 경' 또는 '퉁명 공' 이라는 뜻의 포르투갈어로, 주인공 벤치뉴의 별명이다. 귀족 뉘앙스가 풍기는 이 별명은 비슷한 이름을 가진 스페인 문학의 전설적 주인공을 떠올리게 하는데, 돈 키호테의 내달리는 상상력과 중세기적 망상과는 달리, 동 카즈무후는 아들과 부인에 대한 의심과 망상으로 고독한 인생을 살게되는 한심한 유형이다. 전체적인 이야기는 죽마고우 카피투를 사랑하는 예민한 부잣집 도련님의 애타는 러브 스토리다. 얄굿게도 풋내나는 러브 스토리는 병적인 의처증의 수렁에 빠져 진흙탕이 되고 만다.
벤치뉴의 성장기를 따라가면서 나는 두 인물이 떠올랐다. 한 명은 실존적 인물이다. 바로 내밀한 감수성을 보여준 독일 문호 헤르만 헤세다. 신학교에 입학해 사제의 길을 준비하다 도주하는 삶의 이정표나 예민하고 날카로운 문학적 감수성은 헤르만 헤세의 모습과 묘하게 겹쳐 보인다. 가령 이런 대목을 보라.
"알다시피 사람의 영혼은 집의 구조와 같다. 사방에 창문이 나 있고, 많은 빛과 신선한 공기가 들어온다. 수도원이나 감옥처럼 창문이 없거나 창살로 둘러싸여 없는 것과 매한가지인 폐쇄적이고 어두운 곳도 있다. 또한 예배당과 시장, 소박한 농가나 호화로운 궁전도 있다."(159쪽)
벤치뉴는 신학교에서 절친 에스코바르를 사귀게 되는데, 얄궂게도 에스코바르는 벤치뉴의 '질투 나침반'이 향하는 암묵적인 대상이 되고 만다. 단짝 에스코바르의 장례식날, 사랑하는 아내가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둘의 불륜을 의심하게 되고, 외동아들이 점점 친구의 모습을 닮아간다는 나름의 심리적 확증은 질투의 불씨에 끓는 기름을 퍼붓게 된다.
다른 한 명은 가상적 인물이다. 바로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도련님》에 나오는 도련님이다. 벤치뉴는 부잣집 도련님 출신으로, 어려서 과부가 된 어머니, 코즈미 삼촌, 주스치나 당이모, 객식구 주제 지아스씨 등과 함께 산다. 주제 지아스는 어머니와 주인공의 사이를 오가며 벤치뉴를 추앙하는 흥미로운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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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별명이자 이 책의 제목인 '동 카즈무후'란 '무뚝뚝 경' 혹은 '퉁명 공'을 뜻하는 포르투갈어이다. 그리고 이 책은 브라질 소설이다. 브라질 국민 사이에선 굉장히 유명한 작품이라고 한다. 책 표지에 그려진 무언가 훔쳐보는 듯한 눈과 이 책의 내용이 너무나 잘 맞아 떨어져 책을 다 읽고 나서 표지를 다시 접했을 때, 섬뜩한 느낌이 배가 됐다.
이 책은 주인공인 동 카즈무후가 나이가 들어 회고하는 내용인데, 모든 것을 다 가진 듯 만족스러운 상황에 놓였던 동 카즈무후에게 위기가 닥친다. 동 카즈무후의 친구 장례식에서 눈물을 훔치는 아내의 모습을 본 것이다. 지인의 죽음 앞에서 흘리는 눈물이 뭐 그리 대수로운 일일까 싶지만, 동 카즈무후는 의심과 질투심이 불타오른다. 게다가 성장할 수록 아들은 점점 친구의 모습과 닮아간다.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는 상황이다. 요즘 같아서는 유전자 검사를 통해 바로 확인을 할 수 있지만, 당시로서는 죽을 맛이었을 듯 싶다. 한 번 의심이 들기 시작한 그는 결코 멈출 줄을 모른다. 동 카즈무후의 생각대로, 자신의 자식인 줄로로만 알았던 아들이 친구의 아이였던 것일까?
브라질의 소설은 처음 접해 본다. 심리소설의 대가인 마샤두 지 아시스는 그 명성만큼이나 주인공의 심리 묘사에 탁월했다. 책을 읽고 있을뿐인데, 한 편의 영화를 보고 있는 듯 해당 장면이 연상되니,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책의 분량이 많지 않아 금세 읽을 수 있지만, 여운이 상당히 길게 남았다. 한 가정을 파국으로 몰고간 가장의 의심과 질투심, 소설이지만 너무나 현실감이 넘쳐 한 편의 다큐멘터리와 같았던 동 카즈무후,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야만 책을 손에서 내려 놓을 수 있을만큼 몰입감과 흡입력이 정말 대단한 작품이다! |
![]() 포르투갈어로 '무뚝뚝경' 혹은 '퉁명 공' 이라는 뜻의 < 동 카즈무후 > 제목도 생소하고 작가명도 생소하고, 더군다나 브라질 문학은 아마도(?) 처음 접해보는 거라 어떤 분위기일지 내심 궁금한 작품이다. 작가가 브라질의 대문호이자 심리소설의 대가라고 하는데, 브라질에서는 국민 대부분이 이 작품을 알고 있고, 현재까지도 영화,드라마,연극 등으로 끊임없이 선보인다고 하니, 국내에 브라질 작품이 얼마나 적게 소개되고 있는지 어느 정도는 가늠해볼 수 있겠다. 오셀로 증후군을 소재로 하고 있는 이 작품은 중년에 이른 주인공 벤치뉴의 회고 비슷한 내용으로 전개된다. 태어날 때부터 사제의 길을 걸어야 할 운명을 타고난 벤치뉴는 어린 시절 서로 좋아했던 '카피투' 와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주변인물의 조언과 도움을 얻어 길고 긴 길을 거친 후 드디어 카피투와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된다. 그 조언과 도움의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 중 하나는 신학교 때 알게 된 벤치뉴의 가장 친한 친구 '에스코바르' 이다. 그러나, 벤치뉴가 어릴 때는 그저 카피투를 좋아하는 마음이 큰가보다 싶었고, 성인이 되어서는 애인을 향한 그리움을 접하면서 또 그 정도로 사랑하나 보다 싶었다. 그러나, 훗날 아내가 된 카피투를 너무도 신성시하는 마음과 동시에 끊임없는 질투와 의심을 달고 사는 모습을 보면서는 이 벤치뉴라는 남자가 참으로 너무도 유약해보이기도 하고, 답답하게도 느껴진다. 이런 도를 넘어서는 애착은 급기야는 사랑하는 아내와 죄없는 자신의 아들을 한 방에 불행의 늪으로 몰아넣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동시에 벤치뉴 자신도 세상과 단절된 채 쓸쓸한 중년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독자로써는 이 파국이 정말로 벤치뉴의 오해로 인한 것인지 헷갈리기도 하다. 자신의 외도로 아들조차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고 믿는 남편에게 강한 항변도 하지 않고 그의 처신에 맡기는 수동적인 카피투의 반응은 작품의 2/3를 차지하면서 보여줬던 당차고 적극적인 카피투라는 인물을 놓고 봤을 때 정말 의아하기 짝이 없다. 그만큼 질투에 눈이 멀어 선을 넘는 의심까지 하는 남편 벤치뉴에게 단번에 마음이 돌아선 걸까..아니면 정말로 남편의 의심이 맞았던 걸까... 그 어떤 쪽이라도 참으로 마음 한 켠이 착잡해진다. 그러나 전체적인 분위기는 전혀 어둡지 않고, 책의 결말에 닿기 전까지는 벤치뉴의 인생과 카피투에 대한 사랑과 심리묘사가 굉장히 섬세하게 그려지고, 지루할 틈 없이 전개되는 스토리가 무척이나 매력적인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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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태생의 마샤두 지 아시스 작가님의 [동 카즈무후] (1899)는 질투와 의심으로 인해 한 가정이 와해되는 과정이 치밀하게 그려진 장편 소설이다.
전체 361페이지의 이 소설은 총 148장의 소주제로 엮여진 회고록 형식의 소설이다. 책의 차례에는 동 카즈무후 (P. 7) / 해설: 오셀로 증후군이 빚어낸 파국 (P. 362)이라고 써 있다. 번역가님의 해설 제목만 보고 책을 완독하기까지 주인공의 서사를 따라가면서 오셀로와 같은 비극은 언제 어떤 방식으로 그려질까 내심 아주 궁금해 하면서 읽었다.
이 책의 제목인 '동 카즈무후'는 회고록의 주인공 화자인 벤치뉴의 별명이다. 제1장에서는 이 책의 제목이면서 자신이 이 별명을 얻게 된 경위에 대해 설명해 준다. 원래 말이 없고 은둔형 기질인 벤치뉴를 두고 이웃들이 사용하던 말이 결국 어느 날 밤 열차에서 만난 청년에 의해 별명이 되어버린 것이다. 여기서 '카즈무후'는 사전적 의미가 아닌, 말이 없고 자기 세계에 빠진 사람에게 흔히 붙이는 별명이며 '동'은 귀족 냄새를 풍기기 위한 반어적 표현으로, 동 카즈무후는 '무뚝뚝 경' 혹은 '퉁명 공'이라는 뜻의 포르투갈어라고 한다.
그리고 제2장에서는 이 책을 쓰게 된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삶의 양 끝을 연결하여, 노년기에 이르렀을 때 젊은 날의 의미를 되찾는 것이 그 목표라고 한다. 화자가 그저 누군가를 잃기만 한 것이라면 괜찮았을지도 모르지만, 나 자신을 잃어버린 경우엔 모든 것을 잃은 것과 같아서 그 빈자리는 절대 채워지지 않는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 소설 전체에 흐르는 화자, 벤치뉴의 성격은 동 카즈무후가 중년에 이르러 가지게 된 현재 별명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브라질의 유망한 귀족 가문에서 첫아들이 사산된 후, 독실한 어머니인 글로리아 부인이 둘째 아이를 지키기 위해 사내아이라면 그 아이를 교회에 보내겠노라고 맹세한 후에 태어난 아이가 바로 벤치뉴이다. 벤치뉴가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과부가 된 어머니는 하느님께 경외심을 품고 있었던데다 친척과 가족에게 자신의 맹세를 털어놓음으로써 그 의무를 이행해야 했다. 벤치뉴의 어릴 적 장난감, 성서, 성상, 가정에서의 대화, 모든 것이 제단으로 귀결될 정도로 신앙과 신실함으로 단단하게 다져진 가문의 어리고 섬세한 소년이었다.
한편 벤치뉴의 이웃에는 어릴 때부터 친밀하게 지내 온 카피투라는 소녀가 부모님과 살고 있다. 사춘기에 이르러 서로 사랑을 맹세하게 된 소년 소녀는 벤치뉴가 신학교에 입학하지 않아도 되는 방법을 궁리한다. 어머니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지만 파도와 닮은 눈빛을 지닌 아름다운 카피투를 떠나 신부가 될 수 없는 벤치뉴는 객식구인 주제 지아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상파울루로 가서 법학 공부를 하는 것이 좋다고 여기지만, 하느님을 거역할 수 없다는 어머니의 바람에 따라 벤치뉴는 신학교에 입학한다.
서로의 사랑은 깊어지지만 벤치뉴는 주제 지아스의 지나가는 말 한마디, 거리에서 만난 모르는 남자의 카피투를 향한 시선 한 번에도 의심과 질투의 감정은 고통과 고뇌로 변한다.
소설의 중반부에서부터 시작되는 벤치뉴의 의심으로 비롯된 감정들은 벤치뉴가 신학교를 그만두고 법학을 공부한 후 변호사가 되고 카피투와 결혼을 하고 난 후에도 사라지지 않는 불씨로 남아있다. 신학교에서의 절친인 에스코바르와는 각자의 결혼 후에도 친밀하게 왕래하는데...
벤치뉴 부부와 에스코바르 부부는 더없이 행복한 삶을 살지만 에스코바르의 갑작스런 사고사로 장례식장에서 추도사를 하게 되는 벤치뉴는 눈물 몇 방울을 조용히 흘리고 있는 카피투를 보고 걷잡을 수 없는 의심의 늪에 빠지고 그때부터 그의 가정은 순식간에 와해된다.
성장해 가는 아들을 보면서 에스코바르의 환영을 보는 듯한 벤치뉴는 급기야 공포 속에서 약물을 구입하는데...
제135장의 제목은 <오셀로> 이다. 극의 주제만 알고 있었던 벤치뉴는 손수건 한 장으로 질투심에 사로잡히는 오셀로의 비극을 보면서 마지막 장면에서 죽어야 하는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카피투라고 여기기까지 한다. 결백했던 데스데모나와 카피투를 비교하면서 밤새도록 거리를 배회하며 자살을 암시한다.
마지막장까지 벤치뉴의 고백록은 너무 세세하여 마치 실제 존재하는 한 사람의 마음을 세세하게 기록한 논픽션인 듯 착각하게 만든다. 신앙심이 깊으면서도 질투와 의심에 사러잡힌 남자의 고해를 읽는 것 같았다. 오셀로 비극과 비슷한 결말을 상상하며 회개의 고백록일 것이라고 추측했지만 역시 벤치뉴는 파국으로 치닫는 선은 넘지 않아 내심 안도하며 완독했다. 비록 그의 가족은 와해되고 사건 사고가 많았지만...
결국 제2장에서 이 회고록을 쓰게 된 경위에 대해 설명한 부분에서 벤치뉴의 성향을 재차 알게 된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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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주인공인 벤치뉴가 자신에게 '동 카즈무후'라는 별명이 생긴 배경을 이야기하며 시작한다. '동 카즈무후'란 '무뚝뚝 경' 혹은 '퉁명 공'이라는 뜻의 포르투갈어로, 도시에서 엔제뉴노부 농장으로 오는 열차 안에서 만난 그 동네 출신의 청년의 이야기를 듣다가 졸았더니 붙은 별명이다. 후에 벤치뉴가 도시의 친구들에게 그 일화를 들려줬더니 그것이 그의 별명으로 굳어진 것이었다.
노년기의 말이 없고 은둔형 기질의 벤치뉴는 옛 기억들을 되살려 자신의 살아온 삶을 글로 적었다. 그의 이야기는 1857년 11월 마타카발루스 거리에 살던 때에서 시작한다. 응접실에 들어서다가 우연히 그 집의 객식구 주제 지아스가 자신의 어머니에게 벤치뉴와 옆집 파두아 집안의 카피투가 붙어 다니는 사실을 밀고하는 것을 듣는다. 주제 지아스는 벤치뉴의 어머니 글로리아가 전적으로 신뢰하는 인물이었다.
주제 지아스의 밀고에 어머니는 자신이 벤치뉴를 가졌을 때 하느님께 했던 맹세를 떠올리며 벤치뉴를 되도록이면 빨리 신학교에 입학시키려 했다. 벤치뉴는 주제 지아스에게 부탁까지 하며 자신이 신학교에 가는 운명에서 벗어나고자 했으나, 어머니가 자신이 하느님께 했던 약속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된다는 강력한 의지에 의해 신학교에 입학할 수밖에 없었다. 그 신학교에서 벤치뉴는 에스코바르라는 세 살 위의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둘은 비록 신학교에 다니나 신부가 아닌 다른 미래를 꿈꾸었다. 그리고 에스코바르의 기지로 벤치뉴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게 되는 기회를 얻는데…….
소설은 앞 부분에 서사가 제법 길어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중후반부에서 휘몰아치며 전개된다. 약간 루스한 전개라서 앞부분을 읽을 때는 조금 지치기도 했다.
이 소설을 오셀로 증후군이 빚어낸 파국의 이야기라고 말하지만, 소설을 다 읽고 난 나는 소설이 아무리 벤치뉴의 1인칭 시점으로 적혀 있다고 할지라도 과연 이것을 카피투의 불륜에 대한 비합리적인 부정망상으로 봐야 하는지가 의문이다. 유전자는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아들 에제키에우의 모습이 커갈수록 에스코바르의 판박이인데 어떻게 벤치뉴를 의처증 환자로 치부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카피투는 벤치뉴가 집에 없을 때 에스코바르가 방문한 사실을 의심받을까 봐 숨긴다. 그것은 다른 말로 도둑이 제발 저린다고 의심받을 짓을 했으니 의심받을까 봐 걱정하는 것 아닐까? 심지어 카피투는 아프다는 핑계를 대며 억지로 벤치뉴 혼자 공연을 보러 가게 해놓고 집에 방문한 에스코바르와 둘만의 시간을 보낸다. 물론 예상보다 일찍 도착한 벤치뉴에게 들켰을 때는 에스코바르가 다른 방문 핑계를 댔지만.
벤치뉴 혼자만 아들인 에제키에우가 에스코바르를 닮았다고 하면 벤치뉴의 피해 망상으로 치부하겠지만, 카피투도 닮았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카피투는 우연의 일치로 에스코바르를 닮았을 뿐이라고 하지만 그게 과연 우연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심지어 목소리까지 똑같은데…. 그게 만약 나에게 일어난 일이라면 나는 과연 벤치뉴만큼 냉정하게 대처할 수 있을까? 대답은 NO. 벤치뉴는 그녀와 아들을 스위스에 보냄으로써 둘의 삶을 정리했다지만 완전히 끊어내지 않고 생활을 지원해 준다. 심지어 그 아들이 다 커서 찾아왔을 때 학술 연구비까지 대준다. 누가 감히 벤치뉴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이 소설이 정말 질투에서 비롯된 의처증에 의한 피해 망상이라고 누가 감히 단언할 수 있을까? 그런데 책의 소개 글은 오셀로 증후군에 의한 파국이라고 소개하니 정말 답답하기 그지없다. 작가님, 대체 진실은 뭔가요?
*YES24 리뷰어클럽 체험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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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 카즈무후는 브라질 작가 마샤두 지 아시스의 대표작이다. 작가는 심리소설의 대가로 유명하다고 하는데, 이 소설 역시 그러한 면모를 뽐내고 있다. 동 카즈무후는 무뚝뚝 경이라는 뜻인데, 무뚝뚝한 주인공 내면의 혼란스러움을 굉장히 실감나게, 그리고 유머스럽게 잘 그려냈다고 느껴졌다. 이 소설은 주인공이 아내의 외도를 의심하는 이야기를 그려내는데, 친구와 닮은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계속해서 흔들리고, 또 마음을 잡아가다가도 질투를 거두지 않는 모습을 흥미진진하게 전해준다. 브라질 소설은 처음 읽어보는데 특유의 분위기와 유머가 있는 듯해서 시간 가는줄 모르고 읽을 수 있었다. 주인공은 책의 제목처럼 무뚝뚝한 사람이기에, 본인의 속마음을 겉으로 내비치지 않으려 애쓴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의심은 커져가고 본인을 희생자라 여기게 된다. 그래서 스스로 완성되었다 여긴 본인의 삶을 광기로 가득찬 비극으로 이끈다. 책의 표지에 찢겨진 종이 사이로 눈이 우리를 관찰하는데, 무뚝뚝한 주인공이 계속해서 지켜보며 의심하고 질투하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그려낸 느낌이다. 주인공은 끊임없이 눈을 언급하는데, 타인의 시선을 의미하기도 하며 주인공의 주관적이고 편의를 가진 눈을 의미하기도 하는 것 같다. 특히, 주인공의 관점에서 일기를 쓰듯 진행되기 때문에 점점 평정심을 잃어가는 그의 시선이 느껴지는 듯 했다. 처음 읽어보는 브라질 소설이지만 굉장히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번역가와 출판사의 노고 덕분에 즐거운 독서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앞으로 다양한 곳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주저없이 읽어봐야겠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느낀 점을 쓴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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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 카즈무후 스페인어는 아닌데 어감이 웬지 낯익다 싶다. 하지만 정말 처음 듣는 제목의 소설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고전이란다. 또 쓸데없이 상처 아닌 상처를 입는다. 고전인데 제목조차 처음 듣는 소설이 존재하다니 이제 그만 받아들일 만도 하건만 세상에 좋은 책들이 너무 많고 아무리 책을 좋아한다고 해도 내가 모르는 고전과 양서들이 차고 넘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낯선 제목의 클래식에는 항상 이렇게 쓸데없는 상처를 받는다. 이야기는 간단하다. 사랑 해 마지 않는 나의 아이가 나보다 나와 가장 친한 친구를 닮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 세상 무뚝뚝한, 그래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방법을 모르는 주인공의 의심과 괴로음 그리고 깊숙한 곳의 시기와 질투심을 주인공의 심리묘사와 인물들간의 대화로 세밀하게 잘 그려낸다. 이야기가 그리 새로울 것이 없다고 느꼈는데 사실 내가 읽고 본 모든 비슷한 이야기들의 원류가 이 책이 아닐까 한다. 물론 소재 자체야 한번 쯤 생각 해 볼 수 있는 사건이지만 그 사건을 마주한 주인공의 대응과 심리묘사 및 시간의 흐름이 굉장히 극적이고 치밀하다. 동 카즈무후는 무뚝뚝씨 정도로 해석되는 제목이라고 한다. 유럽어권은 주인공의 이름이나 별명을 제목으로 내세우는 경우가 꽤 되는 데 그 제목 하나로 소설을 이끌어가는 주요 인물의 성격이 이미 알려지니 독자가 방향을 정해놓고 읽어가는 느낌이 강했다. 굉장히 세련된 문체라고 생각하면서 읽었는데 번역의 힘인지 작가의 힘인지 잘 모르겠다. 번역가와 작가의 다른 작품도 찾아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 잘 읽히는 단단한 소설 하나를 발견한 기분이다. 겨울 밤 읽을 탄탄한 소설 하나 추천하라면 이 작품으로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