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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23일, 아름다운 혼례 잔치를 봤다. 신부는 아직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지만 뱃속에 아기가 자라고 있었다. 부모들은 그것을 문제 삼지 않고 축복으로 받아들였다. 신랑 신부 부모가 깊고 오랜 인연을 이어가고 있었고 신랑 신부들은 어려서부터 함께 놀며 자랐다. 얼굴만 봐도 서로 흥겨웠다. 신랑 신부가 나란히 입장하고 그 뒤에 사돈들이 서로 사이좋게 손잡고 들어왔다. 마침 식구들 수도 꼭 같아 홀로 들어오는 이가 없었다. 신부는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으며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깊고 오랜 인연의 부모 동무들이 사회를 보고 축하 공연을 했다. 신랑 아버지가 혼자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신랑 신부 식구들이 모두 나와 손잡고 노래하며 춤을 췄다. 아름다운 혼례 잔치여서 우리 아이들의 잔치를 생각하게 했다. 선생이 가는 자리는 어디든 잔치판이다. 선생이 생을 바쳐 일했던 교실도 다르지 않다. 선생이 늘 기타와 악보를 가지고 다니며 노래를 즐겨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람들 마음을 어루만지고 다독여 마침내 마음을 열게 하고 하나 되게 하기 때문이다. 그게 곧 잔치판이 아니겠는가. 선생은 학교 교실은 잔치판이 되게 하기 위해 온갖 일을 한다. 달마다 부모님들에게 편지 쓰기, 달마다 아이들에게 편지 쓰기, 제자의 친구 주례 서기, 아이들이 돌아가며 조회와 종례를 맡게 하기, 책 읽어 주기, 아이들 스스로 게시판 만들게 하기, 좋은 강사 불러서 이야기 듣기, 학생들 선배 이야기 듣기, 문집 만들기 따위를 한다. 선생의 활동은 학교 밖까지 이어져 아이와 함께 산책하며 등교하기, 아이들 가정 방문하기, 봉사 동아리 교사로 장애인 시설에서 봉사하기, 기타 동아리 지도 교사로 아이들과 노래하기 등. 기타 반 수업이 끝날 즈음 소박하고 작은 음악회를 열었다. 걸상 하나에다 마이크 하나 세워 놓은 단출한 무대다. 한 사람씩 나와 부르고 싶은 걸 불렀다. 혼자 부르기 자신 없으면 같이 부르고 싶은 동무와 짝지어 부른다. 모두 다 진짜 가수로 데뷔하는 순간이다. 저마다 목을 가다듬고 정성껏 부른다. 노래하다 말고 코드를 더듬는 아이, 기타를 잘 치는데 전혀 엉뚱한 음으로 노래하는 아이, 재즈 피아노 반주로 편곡해서 노래 부르는 아이, 얌전히 앉아 기타만 팅팅 치다가 그럴듯하게 노래 부르며 잘 넘어가는 아이, 노래 따로 기타 따로 노는 아이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이 시간, 여기에서 만큼은 아무 조건도 없이, 누구 눈치 볼 것도 없이 저마다 제 빛깔을 뽐내며 맘껏 즐기며 놀았다. 반짝반짝 아이들이 빛나는 자리였다. (171쪽) 선생이 근무하는 학교는 대도시 잘 사는 동네가 아니다. 그렇다 보니 아이들 형편이 좋지 않다. 농공고에 다닐 때 아이들은 거의 다 학교 성적이 조금 뒤떨어져 늘 꾸중을 듣고 큰 아이들이다. 그래서 공부 얘기만 나오면 주눅이 들고 자신을 잃고, 하는 일마다 의욕이 잃는 경우가 많다. 세상 살아가는 일이 성적으로만 되는 게 아닌데도, 늘 그것만으로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을 대하고 평가해서 여러 문제들이 뜻밖에 많이 생긴다. 그것을 너무 잘 아는 선생은 동료들의 편견과 맞서 싸우기도 하며 아이들 편에 선다. 저마다 제 빛깔을 뽐내며 맘껏 반짝반짝 빛나도록 함께한다. 집단 폭력으로 징계를 받은 아이들 9명과 함께 토요일 오전 바닷가를 걷는 벌을 봄나들이로 삼은 것은 선생의 면모를 잘 드러낸다. 물론 아이들의 자유분방함 때문이었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선생의 품이 참 넉넉하다. 선생의 집은 잔치판의 중심이다. 선생은 아담한 슬래브 단독 주택에서 22년을 살았다. 마당에 잔디를 심고 한쪽 구석에는 밭을 만들었다. 상추도 심고 고추도 심고 가지도 심었다. 밭에 넣으려고 음식 쓰레기로 퇴비도 만들었다. 아들들과 함께 야구도 하고 농구도 하며 놀았다. 무엇보다 동료 교사들이 술 마시고 마지막 들르는 곳이었다. 둘째 아들은 동료 교사를 보고 술 취하지 않은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오덕, 이상석 선생님도 오시고, 박기범 작가도 오고, 동인 식구들도 오고, 그리고 당신이 가르치는 반 아이들 30여 명이 놀러 온 적도 있다. 마당에 솥을 걸고 라면 한 상자를 끓여 먹기도 했다. 아들 학교 학부모와 교사들 30여 명이 놀러 와 하룻잠을 지새기도 했다. 이렇게 당신의 집을 잔치판의 중심으로 만들었다. 선생은 당신이 살아가는 마을도 잔치판으로 꾸린다. 선생은 오랜 동안 살아 숨 쉬는 자연 가까이에 텃밭 일구며 살아가기를 원했다. 당신과 비슷한 꿈을 가진 사람들과 만나 마을을 이루어 살기를 꿈꾸었다. 그러고는 마침내 힘든 과정을 거쳐 생태마을을 만들었다. 비슷한 꿈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함께 살아가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그렇지만 선생은 마음이 이랬다저랬다 엎치락뒤치락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면민 체육대회에 적극 참여하여 원주민들과 함께 놀고, 어린이 캠프를 열어 다양한 활동을 하며, 주민들과 모임을 만들어 여러 가지를 배우고, 공동 경작지에 여러 과일나무를 심고, 마을 도서관을 준비하고, 복합문화관 동아리 손님맞이하기 등 진정한 생태마을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8년 11월 마지막 바깥나들이로 다녀간 마을이기도 한 그곳에서 선생은 마을을 잔치판으로 만들기 위해 지금도 기타 줄을 고르고 있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