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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해서는 다른 분들의 서평이 많이 있으니 책 내용을 직접 언급하기 보다는 전체적인 맥락 관점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그래도 책의 제목인 ‘나쁜 페미니스트’의 개념에 대해서는 책의 내용을 인용해서 밝혀두는 게 좋을 듯하다. 나는 페미니스트의 역사에 정통하지 않다. ~~ 내 관심사와 개인적인 성향과 의견은 주류 페미니즘과 같은 선상에 있다고 할 수 없다. 나는 나쁜 페미니스트가 맞다. (p.8) 즉 록산 게이는 페미니즘의 문제와 결함, 다양성을 인정하고 아직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음을 인지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류 페미니즘의 곁에 있지 않으면서 다양하게 페미니즘을 펼치는 자신이 나쁜 페미니스트라는 것이다.아마 록산 게이가 바라는 ‘온갖 차이를 포용하는 페미니즘’은 당도하지 않을 것이다. 정치적 이상으로서야 좋은 슬로건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현실에서 적용하기에는 매우 나이브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나의 정치적 이상이 어떻게 현실에서 갈라지고(부정적 의미로만 사용하는 표현은 아니다) 새로운 논점을 향해 치달아 갔는지는 과거의 사례들이 보여준 바가 있다. 가까이는 자본주의 내에서도, 공산주의 내에서도. 그리고 사람은 다양하다. 물론 글쓴이가 페미니즘의 다양성을 몰라서 그와 같은 언급을 한 게 아님은 책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지역 별로도, 인종 별로도 또 출신 계급 별로도 각자가 선 위치에 따라 다양한 프리즘의 페미니즘이 분출될 수밖에 없음은 이미 드러나고 있는 현상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일련의 페미니즘을 주도한 특정 계층의 페미니스트들은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의제를 가지고 ‘당신들의 페미니즘은 우리들의 페미니즘이 아니야.’라고 외치는 새로운 페미니스트들이 등장하고 있음은(또 등장해왔음은) 여러 매체를 통해 알려진 바 있다. (등장한다는 표현이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이와 같은 상황이 새로운 갈등을 야기하기도 한다. 글쓴이는 페미니즘을 반대하거나 나아가서 아예 그런 움직임의 싹조차도 끊어 내려는 움직임에 효율적으로 대처하려면 페미니스트들이 폭넓게 연대해야 한다는 의미로 포용의 페미니즘을 이야기하지만 그 지점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극복해야 할 차별이 세상에는 너무 많다. 그걸 알기 때문에 록산 게이는 책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을 주로 거론하지만 또 다른 차별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런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 하고 물으면서. 내가 받아들이기로는 이런 일련의 과정이 낸시 프레이저의 책 제목처럼 ‘진화하는 페미니즘’의 전개라는 것이다. 때로 깨지고 때로 수용하고 때로 싸우면서 페미니즘의 골격을 탄탄하게 만드는 프로세스를 밟고 있다고 이해한다. 그런데 페미니즘을 옹호하는 사람이 동성애는 절대로 안 된다고 한다면 그가 페미니스트라고 할 수 있겠는가? 마태오 복음서에 보면 이런 얘기가 나오는데(정확하게는 모르겠다) ‘너희가 나더러 주님, 주님 한다고 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네 입으로 뱉는 것과 머릿속에 든 게 다르면 안 되지 않겠니, 라는 예수의 말. 마찬가지로 나 스스로 차별주의자가 아니라고 한다고 해서 차별주의자가 아닌 것은 아니다. 그가 보이는 말과 행실이 그를 증언할 테니까. 사람은 평등하다고 하면서 여성은 빼고, 노란 애는 빼고, 또 뭐는 빼고 뭐도 빼고 하는 자들이 수두룩하지만 사람이라면 나부터라도 거기에 담그고 있는 발을 조금씩이라도 물려야 함은 자명하지 않겠나? 아, 물론 이 땅에서는 페미니즘이라는 낱말만 나와도 경기를 일으키고 제사 준비 하나 안 하고 있다가 절만 하고는 제사 음식 타령하는 인간들 많아서 갈 길이 멀기는 하다. 여자가 감히, 깜둥이 새끼, 돈도 없는 것들 같은 말이 툭툭 튀어나오는 인간들도 많고. 페미니즘은 앞으로 오랜 기간 동안 중요한 정치적 화두가 될 것이다. 그 힘은 점점 더 커질 것이고 당위적으로도 커져야만 한다. 아무리 도태시키려고 해도 이미 일정 규모 이상을 형성한 그 물결은 사그라들지 않으리라 본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우리가 타자에게 행하는 차별과 멸시와 폭력이 사라지기를 기대한다. 나에게 그것만은 분명하다. 페미니즘의 사고 방식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이는 젠더 폭력의 앞 단에 서있는 사람이라는 것. 그저 거부하지 말고 받아들이며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 우리는 차별과 폭력이 사라진 세상을 만들 수 있다. 우리에게는 적어도 그런 세상이 한걸음이라도 더 우리 가까이 다가설 수 있도록 할 능력이 있고 의무가 있다. |
![]() ![]() ![]() ![]() 록산 게이의 책 『나쁜 페미니스트』에 대한 정보를 구하고자 이 글을 읽게 된다면 그건 잘못된 일이라고 먼저 말해주고 싶다. 사실과 정보보다는 느낌과 단상 정도는 써 낼 수 있다. 번아웃 증후군이라는 거창한 말보다는 소진이라는 걸 겪어 내고 있을 때 틈틈이 조금씩 겨우 『나쁜 페미니스트』를 읽어 나갔다. 주말과 빨간 날은 쉴 수 있다. 다른 게 아닌 이 정도가 행운이라고 느낀다. 남들 다 쉴 때 쉬지 못하는 이들이 태반이니까. 쉬어야 할 때는 쉰다. 단순한 명제에도 쉬는 것에 왜 죄책감을 가지게 되었을까. 지금보다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겠지. 알고리즘 관리를 어떻게 했길래 갓생과 미라클 모닝에 대한 영상만을 보고 있는 걸까. 그러니까 좀 더 생산적인 인간이 되고 싶은 열망에서. 한 번 해보고 해 봤으니까 이 정도면 됐다는 생각으로 쉬고 있다. 『나쁜 페미니스트』를 읽으며 책에서 소개해 주는 영화들을 봤다. 《나를 찾아줘》와 《헬프》. 《헝거게임》은 너무 긴 시리즈라 유튜브에 올라온 요약본으로(바쁘다 바빠 집순이 사회). 《오스카 그랜튼의 어떤 하루》는 좀 더 있다가 보자. 록산 게이는 다정하고 쉬운 언어로 페미니스트의 진정한 의미를 구하고자 한다. 책에서 표현한 대로 '페미니스트란 개똥 같은 취급을 받고 싶어 하지 않는 여성일 뿐'이라는 의미 말이다. 여성이라 함은 날씬하고 외모를 가꾸고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고 그럼에도 경력을 이어 간다는 것. 그러한 범주에서 벗어나면 왜를 끊임없이 질문하는 사회에 살아가고 있다, 여성들은. 연애나 결혼을 하지 않는 나이가 있는 여성들을(이건 남성들에게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향한 부정적인 시선은 고쳐질 기미가 없다. 미디어 역시 한몫을 하고 있다. 록산 게이는 영화, 드라마, 뉴스, 잡지에 실린 기사의 예를 소개하며 잘못된 점을 이야기한다. 『나쁜 페미니스트』를 읽으며 그동안 인종 문제에 무지했다는 걸 깨달았다. 주변에 없다고 해서 문제가 없지는 않다. 미국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종 차별의 사례는 좋아지기는커녕 심각해지고 있다. 미국의 경우를 든 것이겠지만 한국 사회 역시 마찬가지라는 걸 안다. 인종, 성별, 계급, 나이, 학력을 근거로 일어나고 있는 차별. 우리는 차별 사회에 살고 있다. 록산 게이는 말한다. 자신은 나쁜 페미니스트라고. 페미니스트의 본질에서 한참을 벗어난 나쁜 페미니스트. 여성의 인권 신장을 위해 공부하고 강의하고 글을 쓰지만 누군가 자신을 도와주면 좋겠고 다른 사람의 말과 시선에 신경을 쓰며 핑크색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자신은 어쩔 수 없이 나쁜 페미니스트가 될 수밖에 없다고. 남성 임금의 77퍼센트만을 받고 꾸밈 노동을 강요받는 사회에서 우리는 좋은 사람이 좋은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다. 나쁘고 좋다고 두 갈래로 분류하는 걸 좋아하는 모양인데 그걸로 한 시대를 지탱한 모양인데 이제는 어림없다. 이분법으로 세상을 재단하는 건 이제 한 물 갔고 좋고 나쁘고 이상하고 기묘하고 독특한 세상이 찾아왔다. 나쁜 척하면서 좋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그런 것들이 섞이다 보면 다양한 면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있다. 외모와 살 이야기를 하면 너무 한 거 아니냐고 사과하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나쁜 페미니스트가 되면 좋은 여성이 될 수 있다는 록산 게이의 말을 오래도록 간직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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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저자의 책으로 이번에 개정판으로 만나게 된 '나쁜 페미니스트'-
저자의 시종 유머와 적절히 쏟아붓는 말에 포함된 다양한 주장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은 물론 지금까지 여성이란 자리가 과연 그 자신들이나 후대 여성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를 되돌아보게 한다.
제목이 나쁜 페미니스트라고 한 저자의 말엔 말 그대로 나쁘다는 뜻이 아닌 완벽하지 않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본인의 어릴 적 아픈 기억을 꺼내어 솔직하게 털어놓은 부분에선 글쓰기를 통해 마음을 치유했다는 내용이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저자는 다양한 주제를 통해 사람들의 인식 속에 페미니스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여성들에 주어진 상황들이 남성들과 어떤 점과 달리 차별을 받고 잇는지에 대한 사례를 통해 들려준다.
그 자신이 흑인이란 사실과 부모님의 목적 있는 교육관에 따라 공부를 했다는 과정, 이어서 미국 드라마나 영화 속에 존재하는 여성 캐릭터들을 조명하고 이에 여성들의 지위와 한계에 부딪치는 장면을 통해 하나씩 일갈하는 점들은 때론 그 나라의 실정에 맞는 부분도 있고 우리나라와는 조금은 다른 부분들도 있어 두루두루 살펴볼 수 있는 점들이 좋았다.
특히 여성들의 재생산권 권리 부분은 얼마 전 미국에서 법의 개정을 통해 많은 논란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그 누구보다도 여성 스스로 자신의 몸을 보호할 권리와 생명에 대한 결정권들이 어떻게 법이나 기타 타 남성들의 기준, 종교에 입각해 결정지을 수 있는지에 대해 다룬 저자의 글이 여성들이라면 공감을 사지 않을까 싶다.
양성평등을 외치는 시대라지만 여전히 남녀평등이 이뤄지고 있는가에 대해선 아직 미국에서 여성 대통령 배출(타국에선 여성총리가 있지만 말이다.)이 극히 드물고 인종차별, 여성비하에 이르기까지 아직도 가야 할 길은 멀다는 생각이 든다.
성희롱, 성추행, 이보다 더한 문제들에 이르기까지 암묵적인 사회의 분위기나 문화 속에 잠재된 오래된 관점에서 길들여진 타성에 젖은 시선들은 앞으로도 꾸준히 개선되어야 함을 느끼게 하는 글들이 그의 TED강연과 함께 더욱 와닿는 부분들이 많음을 느낀다.
예전보다 많이 개선된 부분들 중 하나가 흑인들이 등장하는 영화나 드라마, 문학 작품 속에 흑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비중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하지만 여전히 백인 비중이 대부분이고 그들의 곁에서 보조 내지는 나쁜 인물로 등장하는 점들에선 개선의 여지가 많고 흑인 여성이 등장하는 부분에서는 남성보다도 더 비중이 적다는 점은 선택할 여건이 부족함을 보여준다.
저자는 여성이란 한계를 짓지 않은 것, 페미니스트가 남성을 공격하고 증오하며 정치적인 여성이 아니란 것을 다시 말한다.
완벽한 인간이 아니기에 잘못과 실수에 대한 인정을 하며 완벽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페미니즘이라는 틀에서 바라보는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를 되새겨보는 것이 아닐까?
모두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시대임을 알고 노력하는 것, 그것이 지금보다 훨씬 긍정적인 미래의 사회로 변할 것을 기대해 볼 수 있다.
***** 출판사 도서 협찬으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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