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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제 강제징용 해법을 놓고 한·일 관계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미국은 즉각 한국과 일본 정부의 합의를 환영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 이면에는 동북아에 새롭게 재편되고 있는 신냉전의 질서가 작동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궁지에 몰린 러시아는 중국과의 동맹을 강화하여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에 반기를 들고 있다.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의 원칙을 수립하고 대만의 독립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중국은 미국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북한의 핵 문제도 동북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요인이다.
그는 일본 작가 홋타 요시에(1918~1998)의 소설 『광장의 고독』(논형, 2023)의 주인공이다. 올해 국내에 출간된 이 소설은 개인의 운명이 국제정치에 맞물린 현실을 날카롭게 파악하고 있다. 태평양전쟁 패전 후 일본은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1950년에 발발한 6·25 전쟁으로 일본은 미국의 병참기지가 됐고, 8월에는 맥아더의 지령으로 ‘경찰예비대(후에 보안대·자위대로 재편)’가 설치되면서 ‘재군비’라는 ‘역코스’를 걷게 된다.
냉전 상황을 맞아 미국은 일본이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계획을 철회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에 일본에서 출간된 『광장의 고독』은 국제정치의 역학 관계로 선택의 기회를 상실한 일본 청년의 방황을 그린 작품이다. 소설의 주인공 ‘기가키’는 한 신문사의 임시 직원이다. 영어에 능통한 기가키는 번역 업무를 맡고 있었다. 1950년 여름, 기가키는 긴급으로 타전된 통신을 접수한다. “적(enemy)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진하고 있다”는 통신문을 번역하던 기가키는 잠시 혼란에 빠진다.
기가키는 미국인 기자 헌트와 대화하면서 줄곧 “일본은 누구의 편도 아님”을 얘기하지만, 헌트는 오히려 그런 기가키를 이상하게 바라본다. 헌트는 한국에서 부상당한 미군 병사를 후송하는 구급차를 가리키면서 “이래도?”라고 반문한다. 기가키는 도시에 가득한 영어 간판과 항구에 가득한 수송선을 보면서 그 풍경 이면에 아시아 민중들의 고통이 은폐되었다고 생각한다.
젊은 시절의 훗타 요시에
태평양전쟁 중 게이오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국제문화진흥회’에 취직한 홋타 요시에는 중국 문학가 루쉰의 글을 접하고 중국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945년 3월 도쿄 대공습을 겪은 홋타 요시에는 국제문화진흥회의 도움으로 상하이로 건너갔다. 그리고 국민당계 신문사에서 일하다가 그곳에서 종전을 맞이했다. 그는 점령자의 입장에서 갑자기 피점령자의 위치로 전락하는 현장을 직접 겪었다. 이 시기의 경험은 『광장의 고독』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이 글을 쓰던 중 일본 작가 오에 겐자부로(1935~2023)가 지난 3일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전쟁을 반대하는 ‘평화헌법 9조’를 수호하는 모임을 결성한 오에 겐자부로는 일본을 대표하는 양심적인 지식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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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때 일본이 호황을 누리며 번영의 기초를 쌓았다는 사실은 우리나라에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당시 상황이 어땠는지를 알려 주는 작품은 한 번도 본 기억이 없고, 소개조차 받은 적이 없었다. 이 작품은 바로 그 때를 배경으로 한다. 이것만으로도 번역되어 출판될 자격이 있는 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시대배경 자체가 경계적 성격을 가지지만 등장하는 인물 또한 그러하다. 주인공 기가카는 신문사에서 ‘번역 알바’를 하면서 동거녀 쿄코와 함께 아르헨티나로 이주할 궁리만 한다. 주변 인물도 마찬가지다. 이런저런 이권에 개입해 한 몫을 챙기는 국제사기꾼이자 오스트리아 귀족인 티르피츠, 미국계 일본인이었다가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에 참가했던 도이, 중국인 기자 장궈쇼우 등도 정도와 입장 차이만 있을 뿐 부평초 같은 신세이다. 공간적으로 보면 도쿄를 그리 벗어나지 않지만 등장 인물들의 머릿속에 등장하는 공간은 의외로 ‘글로벌’하다. 상하이, 미국, 파나마, 아르헨티나, 베트남, 스위스, 프랑스 심지어 소말릴랜드도 등장한다. 길지 않은 작품이지만 세계를 담았다고도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여러 모로 시인 김수영이 생전에 작가 훗타 요시에를 주목했었다고 하는데, 그럴 만하다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작품이기도 하다. 소설에서 가장 인상깊은 장면은 일본인이 지배하던 중국과 동남아의 소년과 성인들이 일본인의 허드렛일을 해주며며 푼돈을 받던 때의 표정과 미군의 잡일을 해주는 일본인들의 표정이 같다는 것이다. 이 책에는 <광장의 고독>외에 <매국노漢奸> 이라는 제목이 붙은 단편소설 한가 더 실려있다. 일본어로 번역된 초현실주의 작품에 빠진 안드레 安德雷 라는 삼류 시인이 패전 후 상하이에서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를 다룬 작품이다. 희극적 주인공의 비극이라 할 수 있는데, 동정이 가면서도 너무 순진하게 살면 어떤 대접을 받는지도 생각하게 만들었다. 불행 중 다행이지만 안드레는 죽음을 당하지는 않았다. 심도 있는 작품해설도 읽어 볼 만 하며. 태평양 전쟁 직후 일본과 중국의 내면을 알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하는 작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