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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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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즈 글릭의 대표 시집 3권 세트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표지 디자인을 하고 있는 책이다. 색 배색도 너무 마음에 들고 정말 책 자체가 이렇게 고급스러울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정도로 예쁜 책이다. 표지의 재질까지 이렇게 섬세하게 신경을 썼다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표지만큼이나 고급진 내용의 시들은 이미 말할 것도 없었다. 루이즈 글릭의 시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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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즈 글릭의 대표 시집 3권 세트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표지 디자인을 하고 있는 책이다. 색 배색도 너무 마음에 들고 정말 책 자체가 이렇게 고급스러울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정도로 예쁜 책이다. 표지의 재질까지 이렇게 섬세하게 신경을 썼다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표지만큼이나 고급진 내용의 시들은 이미 말할 것도 없었다.

루이즈 글릭의 시들은 전반적으로 나를 생각에 잠기게 만드는 시들이 많았다. 표지만큼이나 예쁘고 아름다운 내용들이 주를 이루지는 않았지만 그런 잔잔한 마음들을 꾹꾹 눌러 담으면서 글자로 차근 차근 옮겨서 전달하였다. 그런 내 마음을 차분하게 하면서도 마음을 가다듬게 만들었다.

시라는 것은 시를 작성한 시인의 모든 마음과 감정을 전달하고 응축시켜 놓은 것이지만 독자로 하여금 모두 한번에 전달 받기에는 내 역량이 부족한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그래서 한번에 읽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한번 읽고 나중에 세월이 흘러서 나만의 경험이 쌓인 다음 또 읽고 느끼고 감상하고 싶은 그런 시들이었다.

특히나 '파란 원형 건물'은 나에게 그런 시로 다가 왔다. 파란 하늘 파란 얼음 얼어붙은 강... 그 모든 숨소리를 내가 온전하게 감상하고 싶어서 아주 조용한 새벽에 방안에서 조용히 루이즈 글릭의 시를 마주하였다. 시의 해설은 시를 이해시켜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모든 감정을 전달해주지는 못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러하였다.

#아베르노

#루이즈글릭

#글릭

#시

#노벨문학상

#퓰리쳐상

#PEN뉴잉글랜드어워즈

l****y 2022.11.2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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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즈 글릭 - 아베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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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아베르노다. 우리의 시인은 여전히 삶의 일상과 자연 속에서 죽음을 본다. 유년기의 남들과는 다른 정서적 직관적 수용의 이격의 체험과 이를 통한 자신의 역사적 정신적 분석과 해체를 통해 스스로의 병명을 퍼스트본으로서 부여하며 야생화와 목가적 풍경속에서 지독한 현실의 삶과 죽음을 보던 소녀는 이제 아이들과 노년의 삶을 바라본다. 이제 엄마가 된 것일까? 남들과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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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아베르노다. 우리의 시인은 여전히 삶의 일상과 자연 속에서 죽음을 본다. 유년기의 남들과는 다른 정서적 직관적 수용의 이격의 체험과 이를 통한 자신의 역사적 정신적 분석과 해체를 통해 스스로의 병명을 퍼스트본으로서 부여하며 야생화와 목가적 풍경속에서 지독한 현실의 삶과 죽음을 보던 소녀는 이제 아이들과 노년의 삶을 바라본다. 이제 엄마가 된 것일까? 남들과 같은 평범한 행복한 삶을 살게 된 것일까? 그렇다면 조금은 아쉽기도 하고 그래도 다행이라는 엇갈리는 생각이 동시에 들면서 읽어나간다.

서문격의 시에서부터 이런 생각은 무참히 박살났다. 우리가 의지하는 것들은 다 사라지고 영혼의 위안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충분하다 말하는 시가 전주곡이다. 이전 작에서 처럼 꽃이나 자연, 목가적 소재들에서 자신의 체험들에서 비롯된 기억과 시간들을 보고 이를 통해 본질과 죽음등의 보편성을 이뤘던 방식은 이번에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보편적 시간성을 갖는 매개를 등장시키면서 좀 더 집단적 기억을 자극한다.

자신의 탄생과 언니라는 존재와 그 죽음을 인지했을때 부터였을까? 자신의 시간성의 분석과 해체를 통해 존재론적 정립의 시기를 지나 외부세계를 관찰하며 내적 외적 본질을 직관하던 그녀가 이제는 여전히 죽음을 이야기 하지만 또한 동시에 새로운 탄생과 전승에 대해 말하려는 듯 하다. 야생 붓꽃에서도 경작자나 신적 시점에서 때로는 이런 요소를 담고 있긴 했었지만 노년과 아이들과 같은 본격적인 시간성을 나타내는 인물이라던가 `서사`라는 다각도에서 시간성을 대표하는 장치가 등장하는건 아베르노에서이고 이것들이 시집 전체의 중심 테마로 생각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독하게 비정하게 느껴진다..

"영이 죽으면 너는 죽는다.

영이 죽지 않면 살고.

잘할 수 없을지라도, 너는 계속하는거야"

(그래도 이정도면 글릭치고 많이 밝아지셨다..)

h******1 2022.11.2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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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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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역사상 두 번째 여성 시인 루이즈 글릭. 그가 노벨문학상을 탈 때 스웨덴 한림원이 언급한 시집이 바로 이 책이었다. 그만큼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책은 PEN 뉴잉글랜드 어워즈 수상작이기도 하다.   아베르노. 아베르누스의 옛 이름.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서쪽으로 십 마일 떨어진 작은 분화 호수, 고대 로마인들에게 지하 세계로 가는 입구로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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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역사상 두 번째 여성 시인 루이즈 글릭. 그가 노벨문학상을 탈 때 스웨덴 한림원이 언급한 시집이 바로 이 책이었다. 그만큼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책은 PEN 뉴잉글랜드 어워즈 수상작이기도 하다.
 

아베르노. 아베르누스의 옛 이름.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서쪽으로 십 마일 떨어진 작은 분화 호수,
고대 로마인들에게 지하 세계로 가는 입구로 알려진 곳.

(p. 10)

 

본격적으로 시가 시작되기 전에 아베르노의 뜻이 실려있는 이 책은 하데스에게 붙잡혀 간 페르세포네의 신화를 바탕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무래도 범상치 않게 시작해서 강한 인상과 여운을 남기는 시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웨덴 한림원이 왜 이 책을 언급했는지 조금은 알 듯 하다.
이 시집을 가로지르는 주제는 죽음과 사랑인 것 같다. 마치 지하 세계의 왕인 하데스에게 잡혀 간 아름다운 페르세포네의 마음을 들여다 보듯이, 루이즈 글릭은 죽음이라는,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는 것을 이리 저리 살피며 노래한다.

죽음이 그녀와 맞닥뜨릴 때, 그녀는
데이지 꽃 없는 초원을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녀는 갑자기, 어린 날 부르던 노래들
더는 부르지 못하고, 엄마의
아름다움과 다산을
찬미하던 그 노래들. 그 틈이
있는 곳이 바로 불화의 자리.
지상의 노래,
영원한 생명이라는 신비한 환상의 노래….
(p. 38)


인간은 모두 죽는다. 그러나, 그럼에도 우리는 연인을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하고, 친구를 사랑한다. 어쩌면 사람은 모두 죽음이라는 끝이 정해져 있기에, 우리의 사랑이 더욱 가치가 있는 지도, 또 우리는 그렇게 사랑에 목매고 사랑을 부르짖는지도 모른다. 사랑을 할 때면, 우리는 죽음의 공포도 잊고, 매 순간 기쁨으로 넘치며, 삶에 이유가 생긴다.

언니가 사랑에 빠질 때면, 내 여동생이 말하네,
번개에 감전된 것 같아.
(p. 40)


페르세포네의 신화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면서 죽음과 사랑을 환상적으로 이야기하는 이 시집에 그만 반해버렸다. 시라면 어렵기도 하고, 책장도 잘 넘어가지 않아 잘 보지 않다가, 루이즈 글릭에 호기심이 동해서 잡아 본 시집이 내게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 주었다. 이 책은 루이즈 글릭의 시집을 원문으로 보고 싶다는 열망도 불러일으켰다. 루이즈 글릭이라는 매력적인 시인을 알게 되어서 기쁘다.

 

 

 

 

 

 

 

 

 

d******m 2022.11.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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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위안을 고민하는 시인 루이즈 글릭 시집 '아베르노'
"영혼의 위안을 고민하는 시인 루이즈 글릭 시집 '아베르노'" 내용보기
아베르노는 라틴어로 '지옥'을 뜻한다. 이탈리아 나폴리 서쪽의 호수 이름으로 옛 로마인들은 여기에 지하 세계의 입구가 있다고 믿었다고 한다. 시인 김소연 님의 설명에 의하면, 죽음과 지하의 신인 하데스에게 붙잡혀 간 페르세포네의 신화가 이 시집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야간 이주 The Night Migrations 지금은 당신이 마가목 붉은 열매들을 다시 바라보는 그 순간.
"영혼의 위안을 고민하는 시인 루이즈 글릭 시집 '아베르노'" 내용보기

아베르노는 라틴어로 '지옥'을 뜻한다. 이탈리아 나폴리 서쪽의 호수 이름으로 옛 로마인들은 여기에 지하 세계의 입구가 있다고 믿었다고 한다.

시인 김소연 님의 설명에 의하면, 죽음과 지하의 신인 하데스에게 붙잡혀 간 페르세포네의 신화가 이 시집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야간 이주 The Night Migrations

지금은 당신이 마가목 붉은 열매들을

다시 바라보는 그 순간.

어두운 하늘에서는

새들이 야간 이주를 하고.

죽은 이들은 이것들 다시 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만 해도 무척 슬퍼지는데...

우리가 의지하는 이런 것들,

그들은 다 사라진다.

그렇다면 영혼은 어디서 위안을 찾을까?

영혼은 이런 즐거움들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것 같아, 나는 혼잣말을 한다;

존재하지 않는 것, 그것만으로도 그저 충분한 듯,

그것도 상상하기 어렵긴 하지만.

 

루이즈 글릭 <아베르노> p13

 

상상하기 어렵다.

존재하지 않는다니...

머리로는 뭔지 알지만 가슴으로 그 느낌이 무언지 상상조차 하기 싫은 거다.

신화와 연결하면 뭔가 꼬물꼬물 느껴지는 게 있지만,

나는 내가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것을 의미 있게 보기에

내게 드는 느낌과 생각에 집중한다.

다시 보지 못한다는 생각만 해도 슬퍼지는 사람이 있다.

엄마가 치매일 수 있음을 알고 나서 매일 눈물 바람이었다.

의지하는 것은 생각만 해도 좋고 그냥 어딘가에 있는 것만으로도 나를 따뜻하게 해주는 그런 존재이다.

 

<아베르노>는 '떠남'에 관한 이야기다. 떠났다가 돌아오는 이야기다.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상실과 죽음을 딛고 다시 돌아오고 돌아오는 이야기다.

김소연 시인

 

이 시집의 해설서에 김소연 시인이 '죽음을 기억하는 일'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인용했다.

루이즈 글릭의 시가 쿡! 하니 와서 박히는데, 김소연 시인의 해석은 가슴에 쿡 박힌 글들을 따뜻하게 풀어준다.

시가 준 느낌과 무언가 알게 된 것, 떠오른 것들이 내 안 어디론가 부드럽게 스며든다.

시월 October

2.

당신은 이 목소리를 듣는지? 이는 내 마음의 소리;

이제 당신은 내 몸을 만질 수 없어.

일단 바뀌었고, 굳어졌으니까,

다시 반응해 달라고 요구하지 마.

 

루이즈 글릭 <아베르노> p20

 

 

시월은 연작시처럼 여러 편으로 이어진다.

마음은 참 오묘하다.

바뀌면,

굳을 정도로 바뀌면,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올여름에 내가 겪은 변화가 그랬다.

그렇게 사랑하고 좋아했는데...

내게 강요하는 순간,

내가 느끼던 사랑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프리즘 PRISM

1.

이 세계가 무엇인지 누가 말할 수 있나? 세계는

흐름 속에 있다. 그래서

읽을 수 없고, 바람이 오가고,

보이지 않게 움직이고 변화하는 거대한 판들-

2.

먼지, 깨진 바위

조각들. 그 위에

드러난 심장이 집을,

기억을 짓는다: 가꿀 수 있는

정원들, 규모는 작지만, 바다 가장자리에

축축한 화단들-

3.

사람이

적을 하나 받아들이면, 이 창문들 통해

사람은 세상을

받아들이지

루이즈 글릭 <아베르노> p39

 

행 바꿈이 독특해서 무슨 의미일까 생각해 본다.

콜론과 세미콜론,

콤마와 마침표들까지도 뭔가 의미가 있는 듯하다.

다는 모르겠지만, 마지막에 있는

적을 받아들이고 세상을 받아들이는 연이 좋다.

적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내가 모르고 있던 나의 어떤 면.

그런 면을 아주 극대화해 살고 있는 사람일 수 있다.

그를 받아들이고 나면 내가 포용할 수 있는 세상이 넓어진다.

 

아베르노 호수(lake Averno)

사진출처 : mypacer.com

큰 부분을 차지하는 페르세포네 신화까지 알지 못하더라도 삶을 다시 살고 반복해서 사는 해석이 루이즈 글릭의 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나도 아이를 키우며 다시 태어났고,

한 젊은이를 사랑하며 내 청춘을 다시 살아봤다.

나라는 존재만 변함없을 뿐,

다시 태어나고 다시 사는 그 과정에 어떤 것도 같은 것은 없었다.

시는 죽음을 노래하지만 삶을 내포한다.

결실의 가을이 가고 얼어붙는 겨울이 오듯이.

 

* 본 리뷰는 시공사의 도서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a******t 2022.11.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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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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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루이즈 글릭의 시집 세 권 중 《아베르노》이다. '아베르노'라는 단어가 무슨 뜻인가 궁금했는데, 책장을 넘겨보니 그 의미가 바로 나온다. 아베르노, 아베르누스의 옛 이름.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서쪽으로 십 마일 떨어진 작은 분화 호수, 고대 로마인들에게 지하 세계로 가는 입구로 알려진 곳. (책 속에서) 또한 해설에도 보면 아베르노를 언급하고 있다. '아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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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루이즈 글릭의 시집 세 권 중 《아베르노》이다.

'아베르노'라는 단어가 무슨 뜻인가 궁금했는데, 책장을 넘겨보니 그 의미가 바로 나온다.

아베르노, 아베르누스의 옛 이름.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서쪽으로 십 마일 떨어진 작은 분화 호수,

고대 로마인들에게 지하 세계로 가는 입구로 알려진 곳. (책 속에서)

또한 해설에도 보면 아베르노를 언급하고 있다. '아베르노'는 라틴어로 '지옥'을 뜻한다는 것이다.

총 열여덟 편의 시가 수록돼 있는 이 시집은 하데스에게 붙잡혀 간 페르세포네의 신화가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페르세포네가 루이즈 글릭의 자아라는 것이다.

안 그래도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하데스와 페르세포네 신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최근에 소설까지 읽고 나니, 그 상황이 그려져서 더욱 가까이 다가오는 것 같았다.

《아베르노》는 '떠남'에 관한 이야기다. 떠났다가 돌아오는 이야기다.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상실과 죽음을 딛고 다시 돌아오고 돌아오는 이야기다. (11쪽)

이 책의 저자는 루이즈 글릭. 미국의 시인이자 수필가이다. 2020년 노벨문학상, 2015년 국가 인문 훈장을 받았다. 현재 예일대학교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책날개 중에서)

루이즈 글릭의 시를 보며 내가 알던 시, 내가 이해하던 시를 넘어서는 느낌을 받았다. 저 너머의 세계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세상에는 지금의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다. 이럴 때에는 쉼표를 찍고, 미래의 나 자신에게 한번 더 음미할 수 있도록 여지를 주어도 좋겠다.

《아베르노》는 죽음과도 같은 상실을 견디는 목소리들의 세계다. 시인은 우리에게 그 안에 깃든 삶과 죽음의 이중 리듬을 잘 느껴보라고 초대한다. (14쪽)

저 너머의 세계, 세상과 모든 감각을 뛰어넘는 세계, 모든 죽음을 아우르는 세계, 이 책을 읽으며 그 세계에 초대받는다. 그 내용을 모두 다 이해할 수는 없더라도,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한자락 남겨 놓는다.

 


 

어떤 눈물도 어떤 감정의 파고 없이 도달하는 애도. 모든 상처, 모든 상실, 모든 훼손, 모든 생, 모든 죽음, 모든 망실과 망각, 그 모든 인간 조건에 바치는 완전한 애도가 여기서 완성된다.

다른 한편, 그 유명한 페르세포네 신화를 차용하는 《아베르노》는 욕망과 폭력과 상실의 서사다. 페르세포네와 하데스의 이야기는 순결과 욕망에 관한 한 변치 않는 가장 익숙한 소재다. 그런데 글릭은 그 과거의 신화를 현대의 삶 속에서 새롭게 해석한다. (15쪽, 16쪽 발췌)

얼마 전 읽은 세 권으로 된 페르세포네 × 하데스 소설에서는 소설가의 상상력으로 신들을 인간화해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재해석했다면, 이 책에서는 시인의 시선으로 여성의 삶에 드리운 일들을 재해석한 것이다.

그러니 그리스 로마 신화 속에서 짤막하게 접했던 소재를 이번에 다양하고 깊숙하게 살펴볼 수 있었기에 특별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작가들이 보는 시선에 따라서 신화의 주인공이 달리 보이게 되니, 이 책을 통해 시인의 시점으로 바라보는 것도 독특했다.

물론 이 책 속에 담긴 시가 한 번에 이해되기는 어려운 일이었지만, 반복해서 읽다 보니 루이즈 글릭의 마음에 조금씩 접근하는 듯했다.

도전정신을 일깨워주고, 그만큼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준 시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s*****a 2022.11.19.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시집 추천 - 노벨문학상 수상 루이즈 글릭 '아베르노'
"시집 추천 - 노벨문학상 수상 루이즈 글릭 '아베르노'" 내용보기
2020년, 노벨문학상 역사상 두 번째 여성 시인이자 2000년대 여성 시인으로는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루이즈 글릭.' 시집 '아베르노'는 명실상부 그녀의 최고 대표작이다.   시집 아베르노를 구입하면 시집뿐만이 아닌 김소연 시인과 옮긴이 정은귀가 작성한 이 시집의 해설집도 같이 오는데, 개인적으로 이 해설집을 정말 인상깊게 읽었다. 본격적으로 시집을 읽기에 앞서 해설
"시집 추천 - 노벨문학상 수상 루이즈 글릭 '아베르노'" 내용보기

2020년, 노벨문학상 역사상 두 번째 여성 시인이자 2000년대 여성 시인으로는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루이즈 글릭.' 시집 '아베르노'는 명실상부 그녀의 최고 대표작이다.

 

시집 아베르노를 구입하면 시집뿐만이 아닌 김소연 시인과 옮긴이 정은귀가 작성한 이 시집의 해설집도 같이 오는데, 개인적으로 이 해설집을 정말 인상깊게 읽었다. 본격적으로 시집을 읽기에 앞서 해설집의 앞부분부터 정독하였는데, 루이즈 글릭을 '자신의 경험을 '되기억'하는 것을 소명으로 여겨 온 시인'이라고 표현한 점이 마음에 남았다. "그녀는 자신의 기억을 재정의하기 위해 해체를 수행하고, 그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고. 또 삶을 살아가는 내내 스스로의 허물을 벗겨내고 또 벗겨내 여러 번 죽음으로써 여러 생애를 겹쳐 산다는, 그래서 자연과 같다는. 그래서 기억에서 빠져나가 두려움 없이 되살아나고 되살아나 계속 살아가는 존재"라고. 이 표현이 뇌리에 박혀, 그리고 나 또한 그러한 삶을 살아가고 싶어 이 점을 기억하며 아베르노를 찬찬히 읽어내려갔다.

 

아베르노는 총 18개의 시로 구성되어 있었다. '아베르노'는 라틴어로 '지옥'을 뜻하며, 이탈리아 나폴리 서쪽의 호수 이름이기도 하다. 그 옛날 로마인들은 여기에 지하 세계로 향하는 입구가 있다고 믿었다고 하는데, 지하 세계의 입구를 의미하는 시집 아베르노는 '지하의 신 하데스에게 납치된 데메테르(대지의 신)의 딸 페르세포네의 이야기'를 차용하고 있다.

 

도입부의 시 <야간 이주>에서 화자는 새들의 야간 이주 풍경을 보며 죽은 이들은 더 이상 이러한 풍경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에 안타까워 한다. 하지만, 곧 화자는 깨닫는다.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그들이 과연 이러한 풍경을 보기를 원할까? 그러고는 이에 스스로 대답한다. 영혼은 더 이상 이러한 즐거움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라고. 존재하지 않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라고.

살아있는 자들은 이미 떠난 죽은 이들을 안타까워하지만, 그들이 정말로 안타까운지는 모르는 일이다. 우린 아직 그 누구도 죽음을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감히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 평론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경험해보지 못한 것에 대해 자신의 잣대로 함부로 판단하지 말 것. 이러한 사실을 시작부터 일깨워주는 이 시가 내게는 굉장히 새롭게 다가왔다.

 

나 더는 신경 쓰지 않아

바람이 무슨 소리를 만드는지

 

언제 내가 조용해졌는지, 그 소리를 묘사하는 게

언제 처음 무의미하게 느껴졌는지

 

그게 무슨 소리이건 그 자체를 바꿀 수 없으니-

'시월' 中

인상 깊었던 시 중 하나였던 <시월>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시월(10월)의 1편에서 화자는 이미 추위와 밤, 공포와 아픔이 끝난 게 아니었나 생각했지만, 그것들은 다시 찾아왔다.

 

그러면서 2편에선 여름이 끝난 이후(아마도 시의 제목인 10월)를 '난폭함 이후의 아늑함'이라고 비유하는데, 난폭함 이후의 아늑함, 즉 병 주고 약 주는 건 지금 내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왜냐면 이미 폭력(난폭함)이 자기 자신을 바꾸어 놓았으니. 일단 바뀌었고, 굳어졌으니 다시 반응해달라고 요구하지 말라고 한다. 이미 내 몸은 차가워져서 벌거벗은 벌판과도 같다고.

내면의 상처(난폭함)로 (아늑함)이 찾아왔음에도 바뀌어버린 나의 모습을, 여름날 강렬한 햇빛(난폭함)이 지나가고 찾아온 10월(아늑함)의 자연의 모습(차가움)에 비유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10월은 그 여름날 난폭함이 지나고 아늑함이 가득한 계절이지만, 동시에 겨울에 다다르며 차가워지고 대지가 굳어져간다. 상처 받은 내 마음이 이미 굳어버린 듯.

그렇다면 시인은 왜 여름날의 강렬한 햇빛을 난폭함으로 표현하였을까? 열렬함은 좋은 것이 아닌가? 하지만 때로는 그 열렬함이 누군가를 옥죌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내내 열심히 달렸음에도, 열심히 살았음에도 상처는 찾아온다.

(혹은, 이 시집이 페르세포네 신화에 착안하여 작성되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러한 관점에서도 해석이 가능하지 않을까. 페르세포네에 대한 하데스의 열렬한 사랑이 (난폭함)이 되어 납치란 행위로 이어지게 되었고, 그 납치 이후 하데스는 온 힘을 다해 페르세포네를 사랑해주었지만(아늑함), 난폭함 뒤의 아늑함은 이미 상처로 얼룩진 그녀를 치유해주기에 과연 충분했을까.

또 한편으로는 난폭함 뒤의 아늑함이란 말이 데메테르에게도 적용된다. 하데스의 페르세포네 납치라는 (난폭함)이 휩쓸고 지난 후 찾아온 가을의 (아늑함)이 그녀에겐 참을 수 없이 화났을 것이다. 그랬기에 대지를 수확과 풍요가 가득한 가을에서 겨울로 바꾸어버렸겠지)

 

3편에선 다시 겨울이 지나고 초록이 조금씩 고개를 내밀며 화자에게 내게로 오라며 손을 건넨다. 그러면서 말한다. '죽음은 나를 해칠 수 없어. 내 사랑하는 삶, 네가 나를 해친 것 이상으로는.'

우리는 때때로 죽음보다도 삶이 더 무섭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죽음이 당도함으로써 이 모든 삶의 무게를 내려놓아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기도 하다. 그만큼 아무리 죽음이라 할지라도 삶만큼 나를 해칠 수는 없을 거라는 화자의 말에서 그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4편에서 그리고 다시 봄이 지나고 가을의 빛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 가을은 다시 화자에게 말한다. 넌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라고.

여기서 '네'가 등장한다. 화자는 이런 가을임에도 여전히 네 안에선 불타오름이 느껴진다고, '박탈된 희망이 너를 파괴하지 않았지'라고 말한다.

가을이 되면 차갑게 식고 굳어져버리는 화자와는 달리 네는 가을에도 사그러지지 않는 열기를 갖고 있는 사람인가보다.

화자는 그런 네를 보고 네는 '특혜'를 받은 것이나 다름 없다고 말하고 있다.

 

5편에서 이 세계는 각자 생각에 잠겨 말은 않지만 동반자로서 우리들이 서 있고, 나는 말은 않지만 일하고 있으며, 시는 말한다. '너는 혼자가 아니야'

 

6편에서 화자는 내 친구 '대지'가 씁쓸해한다고 표현한다. 그러면서 햇살(여기서 햇살은 아마도 앞에서 말한 여름날의 강렬한 햇살. 즉 (난폭함)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이 대지를 망쳤다고 한다. 대지는 이제 혼자 남겨지기를 원하고, 대지에게 지지를 호소하는 것은 정말 포기해야 할 때라고. 그렇게 대지를 망쳤던 낮의 햇살이 지고, 밤이 찾아오며 차가운 별이 떠오른다. 그리고 대지를 망친 햇살과는 달리, '별들은 아무것도 주지 않고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즉 무관심. 화자는 이런 별과 비슷한 존재인 달을 보며 '아름답다'고 표현한다.

 

이 시를 지극히 주관적인 시선에서 해석해보자면, 화자는 시 전반에 걸쳐 여름날, 혹은 낮의 '따갑고 강렬한 햇살'을 '난폭함'이라고 표현한다. 그러고 6편에서 봤듯이, 이에 대조되는 '차가운 별'은 무관심하기에 그저 그 자리에 서서 그리 강하지 않은 빛으로 우리를 비추고 있다며 호감을 드러낸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화자는 오히려 지나치고 열렬한 관심에서 벗어나 그저 그 자리에 묵묵히 있어주는, 그런 무관심을 오히려 원하지 않았을까 싶다.

때때로 지나친 관심은 독이 되듯이, SNS를 통해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말들이 끊임없이 오가는 현대사회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지치게 만든다. 그렇기에 때때로 그러한 것들로부터 벗어나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혼자 사색을 즐기고 싶을 때가 있는데 아마 화자도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마치 시월의 6편에서 태양과 끝난 대지가 이제는 혼자 남겨지기를 원한다는 대목처럼.

 

.

.

 

나의 해석이 무조건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겠지만, 어찌되었든 나는 <시월>을 읽고 이러한 점들을 느꼈다. 개인적으로 '시'에서 작가의 의도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은 부차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선은, 내가 그 시를 읽고 어떻게 느끼고 해석했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렇기에 나는 아베르노를 이렇게 느꼈지만, 다른 사람은 또 다른 해석, 다른 관점에서 이 시를 바라봤을 것이다. 그렇기에 시 감상은 즐겁다.

 

 

신과의 경기장에서 당신 차례가 온다면,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페르세포네 그 방랑자' 中

페르세포네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지하의 신 하데스에게 납치되었다. 즉, 우리가 통상 알고 있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이야기로 생각한다면 페르세포네는 신과의 경기에서 패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루이즈 글릭은 이 페르세포네 신화를 전복하는 새로운 시각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페르세포네가 사실은 자신의 의지대로 납치된 것이었다면? 한번도 그러한 관점에서 이 신화를 바라보았던 적이 없던 나이기에, 내게는 이러한 새 제안이 굉장히 낯설면서도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시 <페르세포네 그 방랑자>에서 글릭은 어쩌면 페르세포네 입장에서 대지와 죽음은 똑같은 것이 아니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녀는 하데스에게 납치되어 죽음의 세계로 끌려갔다. 그러나 글릭의 시에서 페르세포네는 자신에게 부여된 '딸'이라는 역할에서 벗어나고자 대지(그녀의 어머니인 데메테르)를 떠나고 싶어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 의미에서 대지(데메테르)나 죽음(하데스)이나 그녀에겐 같은 부류라는 것이다.

'결국엔, 이상하게도, 똑같아 보이는 대지와 죽음 사이를 너는 떠돈다. ('페르세포네 그 방랑자' 中)'

 

그리고 시 <순수의 신화>에서, 페르세포네는 아예 하데스에 의한 납치가 사실은 자기가 의도한 것이었음을 고백한다. 자신의 기도에 응답하기라도 한 듯 하데스가 나타났다고. 그렇게 더 이상 순진한 소녀가 아닌 여자가 되어버린 자신을 그녀는 바라본다.

 

<헌신의 신화>는 하데스의 관점에서 쓰여진 시다. 하데스는 페르세포네를 사랑했기에 그녀를 위해 세상의 복사판을 만들었다. 그러고는 말한다. '사랑하오, 아무것도 당신을 해칠 수 없소'가 아닌, '당신은 죽었소, 아무것도 당신을 해칠 수 없소'라고. 그게 더 진실하고 그럴듯한 시작인 것 같다고 그는 생각했다. 동감한다. 때론 진실을 일깨워주는 것이 도움이 되지.

이 시에서는 페르세포네를 납치한 하데스가 로맨틱하게 표현되는데, 이러한 관점이 색달랐다.

그래서 그녀는 말한다, 나는 납치되지 않았어.

그래서 그녀는 말한다, 내가 나를 바친 거야,

나는 내 몸을 벗어나고 싶었어, 심지어, 가끔은,

내가 이걸 의도했어.

'순수의 신화' 中. 사실 이 납치극은 자신이 의도한 것이었음을 페르세포네는 고백한다.

 

 

시집 <아베르노>는 전반적으로 내가 이해하기에 쉬운 시집은 아니었다. 이러한 류의 시집을 제대로 읽어본 것이 처음이라 그런지 더욱더 그랬다. 그럼에도 읽는 내내 흥미로웠다. 시집 전체에 걸쳐 공통으로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대지'인데, 화자는 과연 이 대지를 어떠한 의미로 사용하였을까 그 점이 궁금했다. 페르세포네 신화를 차용한 이 시집. 그리고 그 페르세포네의 어머니이자 대지의 여신인 데메테르. 그렇다면 대지는 데메테르를 의미하는 걸까?

2부에서부터는 시가 뭔가 이해가 안 된다 싶으면 이게 데메테르가 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페르세포네가 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상상하며 읽었다. 그러니 이해가 되는 부분들이 생겼다. 절벽에 꽃을 피워 페르세포네를 유혹한 하데스, 페르세포네를 잃고 상실감에 겨울이란 계절을 만들어버린 데메테르의 심정, 가끔 대지 위를 추억하는 페르세포네 등의 이야기들.. 아베르노를 읽기 전 꼭 페르세포네 신화를 한번 읽어보고 감상하는 걸 추천한다.

 

그렇다고 꼭 페르세포네 이야기에만 한정시켜 이 시를 감상할 필요는 없다.

이 시는 자신이 나고 자란, 자신의 어머니가 있는 고향 '대지'를 떠나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지하 세계', 즉 죽음의 세계로 들어선 페르세포네의 떠남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 모두 역시 살아 생전 고향에만 살지는 않는다. 성장하고 어른이 됨에 따라 새로운 세계로 입성하게 된다. 마치 대지를 떠나 지하로 간 페르세포네처럼.

 

그렇기에 새로운 세계에서 변화를 맞이하는 페르세포네의 감정이 더욱더 공감된다. 그녀는 대지에서의 추억을 그리워하다가도, 낯선 세계에 대해 갈망하며 새로움을 발견한다. 모순된 감정의 공존. 부모님을 떠나 사회로 첫발을 내딛는 과정과 똑같다. 그런 점에서 나는 페르세포네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었다.

글릭은 페르세포네가 사실은 자신의 의지대로 납치된 것이었다면?이라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우리가 고향에만 머무르려 하지 않고 새로운 세계를 찾아나서듯, 그녀 역시 익숙함에서 벗어나 새로움을 경험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낯섦과 새로움은 언제나 리스크를 동반한다. 이에 글릭은 경고한다. '하지만 무지는 앎을 의도할 수 없다. 무지는 상상되는 어떤 것을 의도한다, 존재한다고 믿는 것을.' 페르세포네는 대지를 떠나기 위해 지하세계로 납치되는 것을 의도했다 하지만, 그 지하세계에 정작 뭐가 있을 줄 알고 무모하게 그런 납치를 의도한 걸까. 그녀가 지하세계가 실상 어떤 곳인지 그에 대해 무지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 역시,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에 대한 환상을 쉽게 갖곤 한다. 하지만 이러한 무지가 어리석은 생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글릭은 이 구절을 통해 말한다. 그렇지만 그것을 알고도 시도하는 게 인간 호기심의 힘 아닐까.

 

.

.

 

맨 마지막, 아베르노의 대미를 장식한 <페르세포네 그 방랑자>를 읽는 순간 소름이 돋으면서도 무언가 큰 깨달음이 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아, 루이즈 글릭이 페르세포네 신화를 차용한 이유가 여기에 있구나.

데메테르는 자신이 생명을 부여했던 그 존재(페르세포네)가 자신을 벗어나자, 그녀가 돌아오기를 계속해서 부르짖는다. 자식을 내보낸 부모의 마음은 다 이와 같겠지.

그렇게 페르세포네는 1년 중 3분의 2는 지상에서, 3분의 1은 지하에 머무르게 되는, 그렇게 지상과 지하, 즉 삶과 죽음을 계속해서 오가는 삶을 살게 된다.

'삶과 죽음을 오가는 삶'.

김소연 시인이 말했던, 루이즈 글릭은 여러 번 죽음으로써 되살아난다는 것. 그래서 두려움 없는 존재가 된다는 것.

죽었음에도 계속해서 살아나기를 반복하는 글릭의 삶은, 마치 죽음(지하)과 삶(지상)을 오가는 페르세포네와 같은 삶이었던 것이다.

죽어도 그것에 굴하지 않고 되살아나는 것, 그것은 나 자신과의 끝없는 투쟁. 글릭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분명 더욱 단단하고 발전된 존재가 됐음이 틀림없다.

 

해설집에서 옮긴이 정은귀는 이런 말을 한다. "딸을 기다리는 어미의 눈물도, 죽어 가는 아비를 바라보는 자식의 슬픔도, 이 세상을 잇게 만드는 모든 사랑의 말들도 모두 죽음 안에서, 죽음을 알 때 비로소 자유롭다."

루이즈 글릭은 시를 써내려가며 죽음을 인식하고, 또 여러 번 죽음을 경험함으로써 참된 자신의 모습을 찾아갔다.

그러한 점에서 그녀의 시를 읽다보니 실존주의 철학의 대가 '하이데거'의 사상이 떠오르기도 한다. 죽음을 인식하고 수용하여라. 그러면 참된 실존을 회복할 수 있을 테니.

 

나는 모순된 단어가 참 좋다. 죽음과 삶. 난폭함과 아늑함. 애정과 비탄. 두려움과 용기. 글릭은 이러한 모순된 감정을 시로써 풀어나갔다. 이 세상은 어느 한 가지만을 택할 수는 없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임에도 항상 함께할 수밖에 없는 것.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게 되는 순간, 우리는 진정으로 우리 자신을 마주할 수 있다.

 

.

.

 

앞에서 말했듯이, 그리고 아베르노를 읽으며 느꼈듯이, 루이즈 글릭은 자신의 기억을 재정의하기 위해 시를 써내려갔다. <아베르노>에 수록된 시들을 읽다보면 화자가 과거를 기억하기를 회피하거나 그 사이에서 방황하거나(시 <풍경>), 또 어느 순간 그 기억들을 끄집어내기도 하는(시 <프리즘>) 모습을 보이는 걸 알 수 있다. 회피하고픈 자신의 아픈 기억을 다시 끄집어내 해체하는 작업은 여간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감히 도전하지 못하는 영역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재정의하고 발전시켜나가는 루이즈 글릭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동시에 나는 어떠한 방식으로 내 삶을 재정의하고 발전시켜나갈 것인가'라는 과제가 내 머릿속에 던져졌다.

 

더불어, 전부터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루이즈 글릭의 시들을 꼭 한번 읽고 음미해보고 싶었는데, 이번 기회에 번역본으로 나와 그녀의 걸작을 감상하고 곱씹어보고 또 생각해보게 되었다는 점에서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녀가 내 최애 시인이 될 것 같은 느낌.

 

페르세포네 이야기라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차용함으로써 자신의 과거를 마주하려는 노력을 담은 그녀의 시집 <아베르노>는 정말 흥미롭고 새롭다. 노벨문학상을 탄 거장인만큼, 그녀의 시가 궁금하다면 명실상부 그녀의 대표작 이 <아베르노>부터 먼저 접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유기적으로 연결된 시들의 모음집이 한편의 소설처럼 읽히는 매력에 푹 빠지게 될 것이다.

 

정말 마지막으로, 내가 좋아하는 부분들의 모음.

그건 기다림의 시간,

유예된 행동의 시간이었다.

 

나는 현재에 살았다,

그건 네가 볼 수 있는 미래의 일부였다.

과거는 내 머리 위에 떠돌아 다녔다.

보이지만 결코 닿을 수 없는 해와 달처럼.

 

온갖 모순에 지배되는 시절이었다,

가령 아무것도 느낄 수 없어겁이 났어처럼.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 현재의 내 심정을 이토록 잘 대변해주는 구절이 또 있을까)

..

 

평생을, 너는 좋은 때를 기다린다.

그러면 그 좋은 때는

행해진 행위로 모습을 드러낸다.

'풍경' 中

내 잠에 대해선, 나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소리쳤을 때,

뜻밖에도 내 목소리가 나를 달래 주었다.

 

의식의 침묵 속에서 나는 내게 물어보았다:

내 인생을 왜 내가 거절했지? 그리고 대답했다

Die Erde iiberwaltigt mich:

대지가 나를 무너뜨린다.

'풍경' 中

대지는 애도하는 법을 모른다는 걸,

애도하는 대신에 바꿀 거라는 걸.

그런 다음 그가 없어도 계속 존재할 거라는 걸.

'아베르노' 中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된 글입니다.

c*******4 2022.11.1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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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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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2020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루이즈 글릭의 작품집 중 하나다.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로 "꾸밈없는 아름다움을 갖춘 시적 목소리로 개인의 실존을 보편적으로 나타낸 작가"라고 밝혔다. 한림원에서 루이즈 글릭의 작품 중 가장 아름다운 작품집으로 '아베르노'를 언급했다. 이런 찬사를 받은 작품이니 더 궁금할 수밖에 없다.제목 '아베르노'는 라틴어로 '지옥'을 의미한다.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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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2020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루이즈 글릭의 작품집 중 하나다.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로 "꾸밈없는 아름다움을 갖춘 시적 목소리로 개인의 실존을 보편적으로 나타낸 작가"라고 밝혔다. 한림원에서 루이즈 글릭의 작품 중 가장 아름다운 작품집으로 '아베르노'를 언급했다. 이런 찬사를 받은 작품이니 더 궁금할 수밖에 없다.

제목 '아베르노'는 라틴어로 '지옥'을 의미한다. 또한 이탈리아 나폴리 서쪽 호수의 옛이름으로 로마인들은 여기에 지하 세계의 입구가 있다고 믿었다고 전해진다.<작품 해설 중 일부>

총 18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는 작품집으로 하데스에게 붙잡혀 간 페르세포네의 신화를 모티브로 한 서사시라고 할 수 있다. 즉, 죽음에 대한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이야기라고 하겠다.

'아베르노'의 화자는 죽음을 앞둔 노인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노년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사람은 언젠가 죽어 세상을 떠난다. 사람은 떠나도 이 세계는 계속된다. 시인은 인간의 필멸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루이즈 글릭은 끈질지게 죽음을 기억하는 일에 매달리고 죽음의 문제를 탐색한다.

다른 시들에 비해 이야기 구조를 갖추고 있어 읽기엔 더 수월했다. 작품집 속 '프리즘'은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어 특히 색다르게 다가왔다. 작가를 알아가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디. 또한 페르세포네와 하데스의 신화를 재해석하는 과정도 신선하게 느껴졌다. 루이즈 글릭이 재해석하는 신화는 상실과 죽음이 아닌 결국 귀환으로 귀결된다.

짧은 표현력으로 이 시의 감상을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대서사시를 만나 호흡이 가쁘다. 우릴 지옥문 바로 앞까지 끌고 갔다 다시 돌려보낸다. 죽음에 대한 진중한 물음에 시인의 답변이 궁금하다면 이 작품집을 추천하고 싶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작품을 찾아보곤 했는데 시집은 사실상 처음이다. 그만큼 거리가 있었던 것 같은데 좋은 기회가 되어준 시집이다.

#아베르노 #루이즈글릭 #시공사 #노벨문학상 #시집 #책소개 #책리뷰 #책추천 #영시 #미국시인



g*******s 2022.11.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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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한 인간의 몰이해가 비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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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출간 시집이다. 같이 번역된 <야생 붓꽃> 다음으로 읽었다. ‘아베르노’는 라틴어로 지옥을 뜻한다. 시인은 책 앞부분에 ‘아베르누스의 옛 이름.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서쪽으로 십 마일 떨어진 작은 분화 호수’라는 설명을 붙여 놓았다. 하지만 시집을 끝까지 다 읽은 독자들은 ‘지옥’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페르세포네는 저승의 신 하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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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출간 시집이다. 같이 번역된 <야생 붓꽃> 다음으로 읽었다.

‘아베르노’는 라틴어로 지옥을 뜻한다.

시인은 책 앞부분에 ‘아베르누스의 옛 이름.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서쪽으로 십 마일 떨어진 작은 분화 호수’라는 설명을 붙여 놓았다.

하지만 시집을 끝까지 다 읽은 독자들은 ‘지옥’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페르세포네는 저승의 신 하데스의 부인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원해서 하데스의 아내가 된 것이 아니다. 납치의 결과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납치해 어떤 삶을 살게 했는지는 <헌신의 신화>에 잘 나온다.

 

이번 시집은 김소연 시인의 작품 해설부터 먼저 읽었다. 적은 분량이지만 인상적이었다.

옮긴이의 말은 머릿속에 강한 인상을 주지 못했다. 어쩌면 집중하지 못한 결과인지 모른다.

해설 등을 읽고 가진 이미지가 시집을 본격적으로 읽으면서 조금씩 깨어졌다.

물론 어떤 해석은 강한 인상으로 나의 시선이 머물게 했다.

“신과의 경기장에서 당신 차례가 온다면, /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페르세포네 그 방랑자> 부분)

이 질문을 나에게도 던져 본다. 무신론자인 나에게 의미없는 질문이지만.

 

이 시집에서 페르세포네와 여성의 삶을 떼어놓고 생각하기 힘들다.

“읽어야 하는 이야기- / 딸은 다만 고기에 불과한 것.” (<페르세포네 그 방랑자> 부분)

“그녀는 본다 / 같은 사람을, 아직도 그녀에게 달라붙어 있는 / 그 끔찍한 딸다움의 꺼풀을.”(<순수의 신화> 부분)

고기에 불과한 딸과 그 끔찍한 딸다움이란 시어가 강하게 서로 울림을 준다.

<프리즘>의 자전적인 시가 다른 시와 이어지면 뒤틀린 삶의 모습이 그려진다.

불면증에 시달렸던 어린 시절. ‘시달렸다’라는 표현을 다른 것으로 바꿔야 하는 그 순간들.

 

하데스의 사랑은 감각의 둔화다. 어둠에 익숙해지게 하는 것이다.

이 원초적이고 일차원적인 사고는 우리에게 익숙한 것이다. 진실은

“당신은 죽었소. 아무것도 당신을 해칠 수 없소”란 시어에 담겨 있다.

저승의 신이 사랑하는 연인을 죽은 자로 만들어 그 무엇도 해칠 수 없는 존재로 만들었다.

아!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원색적이고 원초적인 욕망이 빚어낸 비극이다.

현대로 넘어오면 얼마나 많은 어린 소녀들이 그 페르세포네들이 되었을까?

 

이전 시집보다 조금 더 쉽게 읽었지만 그 의미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얕다.

김소연의 해설 중에서 “죽음이 비통한 것이 아니라 죽음에 대한 인간의 몰이해가 비통한 것이다.”란 표현에 눈길이 간다.

이 문장을 조용히 음미하다 얼마 전 있었던 이태원의 큰 참사가 떠올랐다.

사고란 단어로 그 죽음을 일상의 하나로 치부하려는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인간의 몰이해’를 생각한다.

다음 시집은 또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 궁금하다.

f***2 2022.11.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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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르노 -루이즈 글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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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즈 글릭의 <야생 붓꽃>이 정원에서 영감을 받은 시라면 <아베르노>는 신화에서 영감을 받은 시라고 말할 수 있다. 아베르노는 ‘아베르누스’라고도 부르는데 라틴어로 ‘지옥’이라는 의미이자 나폴리 서쪽에 있는 호수를 일컫는다. 근데 이 호수에는 유황이 분출해서 새들이 날아들 수 없는 곳이라 사람들은 이 호수 아래에 지옥이 있다고 믿었고, 고대 로마인들에게 지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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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즈 글릭의 <야생 붓꽃>이 정원에서 영감을 받은 시라면 <아베르노>는 신화에서 영감을 받은 시라고 말할 수 있다. 아베르노는 ‘아베르누스’라고도 부르는데 라틴어로 ‘지옥’이라는 의미이자 나폴리 서쪽에 있는 호수를 일컫는다. 근데 이 호수에는 유황이 분출해서 새들이 날아들 수 없는 곳이라 사람들은 이 호수 아래에 지옥이 있다고 믿었고, 고대 로마인들에게 지하 세계로 가는 입구로 알려진 곳이 바로 이 시의 제목인 <아베르노>인 것이다. 고로 아베르노가 공포의 장소이자 죽음의 이미지가 강하다고 할 수 있는데 시를 읽어보면 무섭다기보다는 약간 몽환적이면서 내가 지금 구름 위를 걷고 있는 착각이 들 정도로 애틋함으로 포장된 싯구들이 가득하다.

 

시 전체를 감싸고 있는 모티브는 ‘죽음’이다. 하지만 시를 읽다 보면 이 죽음이 우리가 생각하는 죽음이 아니란 걸 알 수 있다.「시월」에서의 죽음은 사랑하는 삶을 위해 사수해야 하는 생존본능으로 다가오고, 이 시집의 제목인「아베르노」는 떠남(헤어짐)에 관한 이야기지만 그 헤어짐은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는 것처럼 보인다. 봄이 되면 여름이 오고, 가을, 겨울이 오는 것처럼 우리들의 삶도 상실과 죽음을 통해 세상이 끝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벌판이 불에 타 없어져도 일 년 후에 다시 파릇파릇 돋아나는 새싹들처럼 다시금 우리들 곁으로 돌아와 일 년 후 벌판의 모습처럼 활기 넘치는 생이 시작된다고 믿고 싶은 마음이 느껴진다.

 

알고 보면 자연도 우리와 같지 않다.

자연은 기억의 저장고가 없다.

벌판은 성냥을 두려워하게 되지 않고,

어린 소녀들을 두려워도 않는다.

벌판은 고랑들도 기억하지 않는다. 벌판은 몰살되고, 불에 타고, 그리하여 일 년 후에 다시 살아난다.

(본문 109쪽 ‘아베르노’ 中)

 

‘시(詩)’가 함축적 언어로 점철된 문학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 시인들의 시를 감상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미국 시인의 시를 이해한다는 게 솔직히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 시에 흐르는 정서나 감정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도 시이다. 다른 그 어떤 미사여구도 필요하지가 않는다. 루이즈 글릭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이 시가 나에게 주는 영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몽환적이면서도 애틋하고, 애틋하면서도 부질없는 삶과 죽음들, 그 속에 감춰져 있던 죽음의 기억들을 루이즈 글릭이 끌어내 올렸고, 그 끌어올린 사유의 단편들이 시집《아베르노》에 들어가 있다.

YES마니아 : 로얄 n*******o 2022.11.1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