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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도 먹다, 미셸 퓌에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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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것, 그리고 같이 식사를 한다는 것. 늘상 흘려보내지만 사실은 단순하지 않은 것.'먹다'라는 행위에 대해 개인적으로 든 생각을 적어보자면, 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정말 안 먹거나 정말 많이 먹는다. 안 먹는 경우에는 '식욕' 자체가 줄어들어서 밥 대신 커피 한 잔만 먹어도 배부른 느낌이 든다. 뭐가 먹고 싶다는 생각도 안들고, 목마름 정도? 점점 기운은 없어지고, 휘청휘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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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것, 그리고 같이 식사를 한다는 것. 늘상 흘려보내지만 사실은 단순하지 않은 것.


'먹다'라는 행위에 대해 개인적으로 든 생각을 적어보자면, 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정말 안 먹거나 정말 많이 먹는다. 안 먹는 경우에는 '식욕' 자체가 줄어들어서 밥 대신 커피 한 잔만 먹어도 배부른 느낌이 든다. 뭐가 먹고 싶다는 생각도 안들고, 목마름 정도? 점점 기운은 없어지고, 휘청휘청 거리기 시작하고. 반대로 정말 많이 먹는 경우에는 위가 욕심이 많아지는 것 같다. 배부르다는 걸 아는데도 다 먹고 싶고, 더 먹고 싶고. 그래서 계속 입에 무언가를 넣게 된다. 식사 시간이 아니라 중간 중간에도 입이 심심하다며 먹고 먹고 먹고. 그렇지만 둘다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데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처음에는 '아 살 빠지겠네'하는 묘한 기대감, 혹은 맛있는 것을 끊임없이 먹겠다는 즐거움으로 조금 기분이 나아지나 싶지만 결국은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가 없다. 우회적인 방법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가 없는 것이 당연한 일. 


*

어떤 젊은 여성이 음식을 놓고 벌이는 게임에서 권력과 지배의 즐거움을 느끼게 되면서 빠져드는 악순환의 늪이다.

스스로를 통제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폭군처럼 군림하는 데에서 오는 즐거움은, 점점 더 날씬해지면서, 동시에 의사를 이기고 모든 사람의 뜻을 꺾으면서도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가면서 점점 더 커진다.

이런 악순환에서 벗어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체중계의 바늘이 내려가면 갈수록 상황은 그렇게 심각하지 않고, 모든 것은 정상이며, 그저 자신이 예외적이고 초인적인 여자일 뿐이라는 환상은 더욱 깊어져만 간다. 다른 사람들은 이런 환상이 병적인 환각, 점점 더 심각한 고립으로 변해가는 것을 보며 안타까워 한다.

거식증이 '심리적인 병'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 병이 치명적이라는 것이다.


*

부유한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공장에서 생산된 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식용 가축의 사료로 쓸 콩이나, 농산물 가공업에 쓸 팜유 같은 일차 원료가 필요하다. 그런데 일차 원료가 주로 재배되는 가난한 국가에서는 이런 작물들을 재배하느라 정작 그 나라 국민들의 식량을 키울 지역 농업은 사라지고 있다. 그리고 이런 나라의 농민들은 자신들이 재배한 작물을 원료로 다른 나라에서 생산한 감자칩이나 쇠고기 스테이크를 사먹을 만큼의 돈을 벌지 못한다.

흔히들 우리를 먹이는 것은 자연이며 우리가 먹는 것은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밭에서 자라는 식물이나 들판의 풀을 뜯어먹는 가축, 그러니까 자연으로부터 온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를 먹이는 것은 산업이다.


*

음식은 스스로를 조절하는 강력한 수단이고, 이 수단으로 스스로를 안심시키거나 기운을 북돋고자 하는 것은 괜찮은 생각이다. 하지만 음식은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한 에너지가 되어야지 구체적인 행동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



d********6 2014.02.09. 신고 공감 14 댓글 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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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다』 먹는 행위로 배우는 인간생활.
"『먹다』 먹는 행위로 배우는 인간생활." 내용보기
나는, 배고프지 않으면 밥을 먹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다. 맛있는 것을 먹고자 하는 강렬한 욕구도 거의 없다. ‘맛있는 이것을 먹어야 해.’하는 간절함이 아닌, 배가 고프면 길을 가다가 김밥 한 줄을 입에 물고 다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런 적도 많고. 일반적으로 내 주변의 사람들은 끼니때가 되었으니 밥을 먹자, 는 주의다. 그게 싫은 건 아니고 그저 먹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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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배고프지 않으면 밥을 먹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다. 맛있는 것을 먹고자 하는 강렬한 욕구도 거의 없다. ‘맛있는 이것을 먹어야 해.’하는 간절함이 아닌, 배가 고프면 길을 가다가 김밥 한 줄을 입에 물고 다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런 적도 많고. 일반적으로 내 주변의 사람들은 끼니때가 되었으니 밥을 먹자, 는 주의다. 그게 싫은 건 아니고 그저 먹는 것에 대해 나와 생각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나 역시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다 보면 배가 고프지 않음에도 먼저 식사하러 가자고 하거나, 다른 이가 식사하러 가자고 하는 말에 같이 나서는 경우가 많다. 정말 안 가고 싶은데 억지로 따라나선 경우도 종종 있다. 하지만 어쩌랴, 그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몸이 저절로 움직이는 것을. ^^ 그래서 먹는다는 것에 마음이 불편해질 때도 있고 귀찮을 때도 있다. ‘사람이 먹는 행위를 하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나?’ 하는 조금 웃긴 생각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먹지 않는 행위를 바라는 게 우선이 아니라 어차피 살아가는 동안 먹는 행위를 이어가야 한다면 그 시간을 좀 더 행복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자리로 만들어야 하는 게 빠른 해결책이다. ‘나는, 오늘도’ 시리즈의 다섯 번째 책 『먹다』는 우리 생활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먹는 행위, 음식을 통해서 볼 수 있는 인간에 대한 내적·외적 모습을 알게 한다. 무심코 지나치던 모습에서 정신적인 문제를 보게 하고, 음식을 둘러싼 사소한 자리 앞에서 사회적인 모습을 보게 한다. 먹는다는 것에 좀 더 구체적이고 다양한 시선을 둘 수 있다.

 

‘먹는다’는 행위에 나도 세세하게 인지하지 못했던 많은 의미가 숨겨져 있다.

먹는 것은 본능적 욕구다. 흔한 말로 먹어야 생명 유지하고 사는 것이기에 인간의 본능에 충실히 따르는 하나의 행위다. 또한, 먹는 것은 우리에게 사소한 기쁨을 안겨주는 가벼운 욕구이기도 하다. 거의 4시간에 한 번씩 먹는 행위가 반복되고 있으며, 그 행위를 반복하는 것은 우리 몸의 위가 비어 느끼는 식욕에 불과하다. 그 식욕을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 생각보다 중요한 일이 아닌 때가 많은 듯하다. 오직 먹는 것에 집중하는 것보다 다른 일을 하면서 먹는 경우가 많다. TV를 보면서, 바쁜 일 처리를 위해 길을 걸으면서, 휴대기기를 만지면서 먹는 경우가 많은 걸 보면 알 수 있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먹는다는 것은 사소한 즐거움이라고 생각해도 될 것 같다. 새로운 음식을 맛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관능적이고 강렬한 즐거움을 소소하게 즐길 수도 있다.

 

먹는 행위를 통해 자신을 알아갈 수도 있다.

먹는 음식에 따라,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누가 시켜주는 대로 먹거나, 엄마가 차려주는 대로 먹거나 하면서 본인이 선택해서 먹는 음식이 아닐 경우 내가 무엇을 먹는지, 좋아하는지 분명하게 얘기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음식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먹는 것에 있어서 스스로 주체적이지 못하게 되면서 내면에 쌓여가는 것은 더 나아가 성장하면서, 사회에 나가면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게 되는 우려도 만든다. 음식에 대한 자기조절 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보인다. 균형 잡힌 적당한 식사량으로 건강을 지키는 것 역시 자신이 관리해야 한다. 자기관리라는 것이 신체에 관한 것도 포함된다고 보면 이해가 되는 내용이다.

 

음식을 통해 다른 문화에 접근하기도 한다.

한국 사람이 한국 음식을 먹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한국 안에 살면서 한국 음식만 먹는다면(안다면) 더 넓은 세계와 문화를 이해할 수 없게 된다. 다른 나라의 음식을 알고 먹게 되면서 다른 문화를 접하고 배우게 되는 과정이 이어진다. 음식을 통해 문화적 교류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부분이 아닐까 한다. 음식과 사고방식, 다른 문화의 전통을 보게 된다. 먹는 방식이 다른 다양한 음식, 손님과 함께하는 식사자리, 어떤 자세와 태도로 먹느냐 하는 것에 따라 다른 음식문화가 보인다. 잘 차려진 밥상에 앉아 숟가락만 드는 경우도 있고, 뷔페처럼 차려진 곳에서 자신이 먹을 음식과 양을 적당히 덜어 와서 먹는 방식도 있다. 수저를 사용하는 곳도 있고,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하거나 맨손으로 먹기도 한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누군가를 초대하는 곳도 있고, 각자가 먹을 음식을 가지고 방문하는 곳도 있다. 그 나라, 혹은 그 공간에서의 음식문화는 그곳의 환경과 습관에 맞춰있다.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것보다 먼저 이해의 시선을 갖고 그 문화에 참여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음식은

삶과 문화에 있어서 근본적인 역할을 하며,

개인과 사회 집단의 정체성을 이루는 핵심 요소이다. (19페이지)

 

음식을 통해, 먹는 자리를 통해 사회성과 융통성을 배운다.

왜 우리는 “언제 밥이나 같이 한번 먹자.” 라는 인사를 자주 할까? 그게 빈말이든 다음번의 구체적인 약속으로 이어지든 밥을 같이 먹자는 말이 익숙하다. 예전 우리 어른들의 말로는 “식사하셨어요?” 라고 인사를 건네는 것은 밤새 안녕했느냐는(굶어 죽는 경우가 많았던 때) 인사였다고 하지만, 오늘날 밥을 같이 먹자는 말은 어떤 화합이나 대화를 이어가는 계기가 된다. 학교생활, 사회생활, 가족 사이에서도 밥을 함께 먹는 자리는 대화의 장이 되기 쉽다. 서로의 근황을 전하고, 어떤 정보가 오가기도 하고, 앞으로의 일을 도모하기도 한다. 서로가 일로 미팅 시간이 정해진 관계가 아니라면, 함께 음식을 먹는 자리는 부족한 교류의 시간을 만드는 자리가 된다. 또한, 어려운 얘기를 꺼낼 자리이기도 하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맛있는 음식을 먹고 포만감을 느끼는 때가 육체적인 만족감과 함께 온전한 마음의 행복을 가져오는 때라고 한다. 그럴 때가 사업상의 식사라면 계약서를 꺼내 서명을 받기 좋을 때이고, 집안에서의 식사라면 성적표나 카드대금 명세서를 꺼내기에 적절한 시점이라고 한다. ^^ 웃음이 나면서도 공감의 시선을 던질 수 있을 것 같다. 사람이 배가 부를 때 너그러워진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 것도 같다.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은 이해와 공감, 결속력을 다지는 시간으로 봐도 좋을 듯하다.

 

반면, 혼자 먹는 행위는 비사회적이고 이기적인 행위로 간주하기도 한다.

어려웠던 시절에 음식이 부족해서, 나눠 먹는데 엄격한 규칙이 필요했던 때의 기억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그런 시선으로 보면 혼자서 먹는 행위는 다른 이에게 아무런 방해도 불편도 주지 않음에도 이기적인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혼자 먹는 것 자체에 대한 이런 시선을 버려도 좋지 않을까. 오늘날의 모습은 내가 봐도 혼자 먹는 경우가 흔하다. 나부터도 혼자 먹을 때가 많다. 같이 먹을 시간을 놓칠 수도 있고, 누군가와 함께 먹는 게 불편해서일 수도 있다. 그럴 경우 혼자서 먹는 것은 내가 택하는 최상의 해결책이라고 본다. 바쁜 세상에서 포장음식이 흔하고, 누군가와 같이 먹을 마음이 없거나 시간을 맞추기 어려울 때 식당에서 혼자 먹는 사람, 많다. 어느 식당에는 1인용 좌석이 따로 있는 경우도 있으니 오늘날의 음식문화의 한 형태로 받아들인 것이다. 개인적인 바람은, 이렇게 혼자 먹는 것을 바라보는 의식의 변화가 필요할 듯하다.

또한, 혼자 먹는다는 것은 어떤 자리로부터 피하고 싶거나 거부하고 싶은 의사를 비치는 한 형태이기도 하다. 같은 시간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 시간이 불편하고 마음속의 증오나 미움이 들끓는 상대와 함께라면 따로 식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다. 그 자리가 편할 수도 없거니와 맛있게 먹는다는 즐거움의 본능을 앗아가고 있지 않겠나. 같이 식사하는 자리를 피하는 게 반항으로 보일지라도 사랑과 유대가 없는 불편한 식사는 나도 거절하고 싶어진다.

 

음식문화는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하게 변화되어왔고 발전해왔다. 땅에서 재배해서 우리 식탁에 음식으로 오르기까지 직접 만들었던 많은 것들이 기계화 산업화되었다. 사람들의 식성만큼이나 음식이 걸어온 과정도 많이 달라진 것이다. 그 음식 속에 세계 곳곳의 다양한 문화가 담겨 있고, 우리 각자의 습관과 내가 세운 문화 역시 녹아들어 있다. 폭식이나 거식을 통해 음식이 우리 자신에게 가져오는 병이나 정신적인 문제를 보게 했고, 많은 사람과의 관계를 함께했다. 먹는 즐거움과 고통을 함께 주기도 했으며,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한 방법을 제공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과의 공존을 꾀하기도 하고, 행복과 조화를 창조하는 기회를 만들기도 한다. 살기 위해 먹어야 하는 것의 당연한 이치를 말하면서, 그렇다면 먹는 것이 즐거움이 될 수 있다는 기쁨을 전한다. 먹을 때마다 항상 그런 기쁨과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 하는데, 먹는 것이 즐겁기도 하다는 것은 행운이다. 우리는 밥을 먹을 때마다 이런 행운을 매번 새롭게 경험한다. (101페이지)

 

 

 



n******i 2014.01.28. 신고 공감 3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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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기록장 구백칠십이번째.- 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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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정말 신기한 점 중 하나는 세계에서 이렇게 보편적이고 당연하게 섭식 장애를 강요하는 나라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작품에서 다루지 않는다는 것이다.  옆나라 일본은 어마어마하게 먹는 것을 중요하게 다룬다. 주인공이 특정 음식을 맛있게 만드는 집만 찾아다니는 건 물론이고, 밴드나 아이돌을 한다면서 왠지 케이크만 어마어마하게 먹어대는 애니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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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정말 신기한 점 중 하나는 세계에서 이렇게 보편적이고 당연하게 섭식 장애를 강요하는 나라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작품에서 다루지 않는다는 것이다.

 옆나라 일본은 어마어마하게 먹는 것을 중요하게 다룬다. 주인공이 특정 음식을 맛있게 만드는 집만 찾아다니는 건 물론이고, 밴드나 아이돌을 한다면서 왠지 케이크만 어마어마하게 먹어대는 애니메이션도 있다. 더군다나 가족끼리 둘러앉아 식사하는 풍경, 혼자서 음식을 만끽하는 풍경, 도저히 한 사람으로서 불가능할 듯한 대량의 음식을 허겁지겁 먹어대는 풍경, 차를 천천히 마시면서 명상에 잠기는 풍경 등 먹는 장면도 굉장히 다양하게 등장한다. 또한, 미국 드라마같은 데서는 친구들과 만찬을 즐길 때 내내 라자냐가 등장한다. 영국 드라마에서는 자세히 보면 알겠지만 옷 다음으로 음식이 그 작품의 준비성과 품격을 증명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내 기억으로는 혼술남녀라는 드라마와 아름답다라는 영화, 혀라는 소설 외에 먹을 것을 심도있게 다룬 매체가 그닥 없다. 우리나라의 한 소설가가 계속 먹는 장면을 심오하게 다루긴 하지만, 단지 맛있는 음식을 맛있게 먹는 걸 다룰 뿐 독창성이 없다. 토를 맛깔나게 하는 배명훈의 단편이 최근 나왔지만 그것도 그저 단편일 뿐이다. 이로 볼 때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굉장히 예외적인 작품이고, 장르도 글로벌하다. 서양 언어에는 맛을 표현하는 어휘가 우리말에 비해서 엄청 풍부하다 하는데, 나는 그것을 교육의 힘이라 봅니다. 콘코디아 언어마을이란 데서는 맛에 대한 토론으로 언어를 배운다고 하더라.

 

 

또한 햄버거병에 대해서 따져보자.

 물론 아기에게 햄버거를 먹인 어머니에게도 잘못이 있고 클 것이다. 그러나 아기에게 햄버거를 먹이지 못하게 하는 법령이 없고, 왜 그 때 아이에게 햄버거를 먹였는가 하는 사전 과정은 모두들 알고 싶지 않은가보다. 사실 그들도 하나같이 섭식 장애로 일컬여질 만큼 말도 안 되는 음식들을 먹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전형적 남자들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맘충이 무식하니까, 라는 이유 외엔 알고 싶지 않겠다. 또한 전형적 여자들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그들도 자신의 아이들에게 햄버거를 먹인 적이 있음을 알리고 싶지 않겠다.

 

 

김훈이 라면을 굉장히 그리워하는 산문을 썼지만, 이를 뒤집어 생각하면 우리나라는 거의 60년 동안 맛이 강렬한 분식에 의해 지배되었었다는 소리도 된다.

 그런 화학 식품을 그리워하는 자가 여성을 차별하는 발언을 한 것도 또한 있을 법하다. 여성은 먹고 싶은 걸 먹을 권리도 주장하지 못하는 특이한 인종에 속하기 때문이다. 결국 OECD에 뭔가로 승부를 걸고 싶다면 음식문화부터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줄 수 있는 권력을 상실해가고 있고, 괜히 무안해지니 맛에 대해 공부할 시간에 수학 문제집이나 풀라고 잔소리하고 있다.

 

 

먹는 건 중요하다. 그러나 한 권으로 간추린 빵의 역사라는 책이 목침과 맞먹는 두께로 되어 있듯이 먹는 걸 사랑하는 건 어렵다.

 사회, 정치, 환경, 심지어 초자아에 대한 극복까지 통달해야 우리는 야밤에 치맥을 먹는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 (건강에는 해로우니 가끔 하길 바란다. 그리고 아침 치맥도 꽤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걸 귀찮아한다면 이미 당신은 반은 죽어있는 인생을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내가 장담한다. 일단 흥미있어하는 음료나 음식의 역사에 대한 책부터 찾아 읽어보라. 상당한 재미가 있을 것이다.

v*******5 2017.07.2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