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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다] [★★☆] [나를 원하다] [2016. 9. 3 완독]
'원하다.'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다.'라는 것을 알고 있다. 혹여 모든 것을 마음 속에 품고 있더라도 모든 것을 품을 수는 없는 법. 그래서 우리는 성장하면서 '선택과 집중'이라는 단어를 수도 없이 들어왔다. 성인이 된 우리가 과거에 했던 선택과 집중이 옳다라고는 쉽사리 얘기하지 못하겠다. 한번뿐인 인생이기에 '만약에'라는 말을 쓸수도 없는 복잡한 개개인의 삶에, '성공'이라는 단어가 각자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오듯 스스로가 '원했던' 일이 어떻다는 것은 본인 스스로 판단할 일이니까 말이다.
<원하다>가 보여주는 초연함, 자유 의지는 살짝 현실과 떨어져 있는 느낌도 든다. 삶의 주인이 되라고? 원하면 이루어 질 것이라고? 그런 말을 믿기에는 너무 현실을 일찍 알았는가. 의지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일도 있으니 말이다. 대신, 나는 이렇게 얘기해주고 싶다. 원하는 것이 생겼을 때 투자해야하는 것, 포기해야 하는 것, 그리고 후회하지 않는 것. 그게 모든 것을 원해도 이룰 수 없는 현실의 최선이라고 본다. 원하는 것에 대해 내가 어떻게 '주체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가. 굳건한 성격과 강철같은 의지를 가지고 앞으로 전진 할 수 있는가. 적당히 하자.
영웅 흉내는 내지 말란다. 재미있다. 커다란 성공 뒤에 뒷받침 되어야 하는 노력과 희생이 중요한 것이 아니란다. 뭔가 원하고 앞으로 나가고자 하는 의지. 즉, 결심이 중요 하다고 한다. 큰 성공도 큰 재물도 중요한 것이 아닌 그저 작은 의지, 작은 결심 '나'가 '나'로 남을 수 있는 최소한의 영역. 결국 우리가 원해야 할 것은 밖이 아닌 안. 자아(自我). 자기 자신으로 살기 위한 수단이 '원하는 것'일뿐 그것이 어떠한 목적이나 목표의 수단이 아님을 얘기하는 어투에서 작가의 자유 의지가 엿보인다. 흥미롭다. 그저 그런 자기 계발서 같은 말투로 시작했다가 '적당히 해~ 대충살어~'라고 말을 걸어오니 친근하다. 나를 구원하는 '원하다'. 그래,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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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나라는 진짜 원하는 걸 찾기 이전에 원해야만 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을 찾는 게 먼저라고 본다.
물론, 책을 쓸 거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 안 쓰는 사람들도 많고 심지어 그 와중엔 책도 안 읽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는 옆에서
책을 쓰라고 쓸데없이 강요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던가, 여러 이유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역시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 만일
글을 쓰고 싶다면 당장 책을 잡은 뒤 느낀 점을 글로 옮기기 시작하는 게 제일이다. 너무 부담간다면 일상에서 만난 사람들과 감상부터 조금씩
일기처럼 써 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타인에게 강요받고 있다면, 게다가 그 타인의 사랑에 굶주려 중독된 듯 글을 쓰길 원한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면 정말 최악이다. 아무리 글쓰기가 사람들에게 좋아도 그렇지, 아주 심각한 경우 당장 글쓰기를 그만 두고 정말 자신이 원하는 걸
찾는 게 훨씬 낫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타인에게 무언가를 원하라고 강요하는 건 대부분 이유 쪽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자신이 글을
쓰지 못할 것이며 심한 경우 자신의 인생은 끝났다고 생각하며 자식에게 글을 쓰길 강요하는 부모가 있으리라. 그러나 그것도 꽤 옛날 얘기다.
60대에 헬스장을 다니며 근육을 단련하고 모델로 나가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P. S 만약에 공무원(ex.서울시 공무원)을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발령이 안 나고 한 곳에 오래 살면서 사랑하는 사람(이 만약 있다면)과 아이 낳고 기르는 것이 그 사람 행복의 요체고 직업은 그냥 수단에 불과하다면 어떠한가? 라는 질문이 있었다. 뭐 직업을 돈 때문에 하는 건 그 사람의 자유고 상관없지만 결국 훗날에 박차고 나가는 걸 난 너무 많이 봐서... 그리고 공무원도 열성없음 짤린다(...) 결국 짬밥을 오래 먹는다는 건 어떻게든 직업에 재미를 붙여서 잘 지낸다는 뜻일 수 있다. 즉, '행복해야만 해'라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으면 아무리 철밥통이라도 죽도밥도 안 된다는 것. 내가 훗날 행복을 느낀다면 잘 된 일이지만 잘 안 될 수도 있으니, 굳이 도박을 하기 싫다면 원해야만 하는 일은 피하는 게 상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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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것은 단지 무언가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만은 아니다. 책을 읽으면서 근육으로 비유한 것이 특히 인상깊었다. 여러가지 운동으로 균형을 잡으며 근육을 키우고 단련시키는 것처럼 의지도 단련시켜야 한다는 것. 어느 연예인의 몸매처럼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단련시켜야 더욱 크게 빛을 발할 수 있다는 것. 책 속에서 언급한 것처럼 언제 스스로를 지켜야 할 결정적 순간이 올지 모르니까 말이다. * 누구나 선하고 기분 좋고 정상적인 일만을 원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 궁극적으로, 합리적 선택이란 초연함의 자유를 초월하는 것이지 그것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마음만 먹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점을 충분히 잘 알고 있고, 또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아무 일이나 해보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나의 선택은 어느 모로 보든 자유롭고 진실한 것이기 때문이다." * 자신이 원해서 결심한 것을 선택하고 실행하는 것. 특히나 자기 자신과의 힘든 싸움 이후에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음을 느끼는 것은 기분 좋은 만족감을 선사한다. 이런 만족감은 철학자들의 표현대로 '삶의 주인'이 되는 데 중요한 동기를 부여한다. * 의지가 가진 힘은 근육의 힘처럼 구체적인 행동을 통해 드러난다. * 성공 비결은 너무 힘든 목표를 잡지 않으면서 충분한 시간을 들여 조금씩 조금씩 발전해나가는 것이다. 때로는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비록 아주 조금씩이라도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끊임없이 발전해가는 것이다. ~시작은 힘들지만 갈수록 힘든 것은 줄어들고 만족감은 커지는 것이다. 자존감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기분도 좋아지고,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게 정신적, 신체적 준비가 되어 있다는 자신감까지 생긴다. * 무언가를 진정으로 원하는 의지와 막연한 희망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단호함이다. 단호하게 원한다는 것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 의지, 또한 의지를 강하게 만드는 기술, 생각, 능력을 키워가는 일은 결국 원하는 대로 스스로를 빚어가는 능력을 키우는 일이자, 진정한 자신 자신을 세워가는 일이며, 이것만으로도 의지는 부인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 의지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한 수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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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셸 퓌에슈 - 『원하다』
오늘은 책 리뷰입니다. ^^ 우연찮게 이 책을 접하게 되어 단숨에 읽었습니다.
이 책의 저자 미셸 퓌에슈는 소르본대학의 철학교수이며, 철학 전공자를 위한 책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겪는 기본적인 것들에 대해서 사유해 보자는 의도로 <나는 오늘도 - > 라는 9권의 시리즈 책을 집필하였습니다.
온전한 자신으로 살기 위해 우리가 느끼고, 행동하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찬찬히 들여다보자는 것이지요.
“하루에, 나의 행동 딱 하나만, 깊게 생각해보기.
연구실에 갖혀 있던 딱딱하고 어려운 철학을 미셸 교수님의 통찰과 재치로 표현하여 읽는 내내 흥미진진하였습니다.
이 책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참 쉬우면서 어려운 주제이지요.
저나 여러분이나 정신없이 하루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정말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는 것에 대해 반성하게 됩니다.
행복을 다루는 책에서 빠지지 않고 나오는 주제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원하는지? 원하는 대로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 자신있게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일 것입니다.
저자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무엇이든 원할 수 있고, 원하기만 하면 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말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할 수는 없다. 상식적으로... 당연한 말 아니겠는가?"
불멸의 인간이 되기, 슈퍼맨처럼 하늘을 날기와 같이 불가능한 것도 있지만...
우리가 원했기에 인간은 날지 못하지만 비행수단을 통해 하늘을 날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원했기 떄문에 가능했던 것이지요. 물론 과학의 힘을 빌려서 말이죠.
인류의 모든 업적은 먼저 누군가 그것을 원했기 때문에 이루어졌고, 인류가 이 정도로 발전한 것은 우리가 끝없이 무언가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원한다고 해서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마약이나 폭력, 자해와 같이 타인 뿐만 아니라 자신까지 해칠 수 있는 행위는 제외가 되겠죠.
인류 보편의 윤리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자유를 행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온전한 자신으로 살지 못하는 이유는 집단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가족 혹은 직장에서 여럿이 같이 살다보면 내가 원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에 맞추어야 할 떄가 있고, 그것이 빈번하기 때문에 자신을 지우며 살게 되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한국은 저자의 모국인 프랑스 보다 개인의 자유나 표현의 제약이 매우 큽니다. 아무래도 유교의 영향 때문이겠죠.
모난 돌이 정을 맞듯이... 한국 사회에서 소위 <튄다>는 건 사회적 자살행위입니다.
저자는 또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당신이 지금 원하는 것은 '원해야만 하는' 것인가, 그냥 '원하는' 것인가?"
어쩔 수 없어서 원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원하는 것이 아니라고 일갈합니다.
<초연함의 의지>를 초월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이 원해서 결심한 것을 선택하고 실행하는 것,
특히나 자신 자신과의 힘든 싸움 이후에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음을 느끼는 것은 기분 좋은 만족감을 선사한다. 이런 만족감은 철학자들의 표현대로 '삶의 주인'이 되는 데 중요한 동기를 부여한다.
이런 만족감에 맛을 들이면, 이렇게 자존감이 높아진 순간과 스스로 뿌듯했던 순간을 기억하면서, 다시 그런 심리적 보상을 얻기 위해 의지력을 단련하게 된다."
라고 표현합니다.
저자는 이런 강한 의지력이 독이 될 때도 있음을 경고하는데요.
"자신의 의지대로 남들을 휘두를 때이다."
"타인을 지배하는 데에서 오는 즐거움은 중독성이 강해서 처음부터 맛보지 않는 것이 낫다, 한 번 맛보면 쉽게 포로가 되어버린다."
이런 예는 역사적으로 극단으로 치달았던 독재자와 폭군들 뿐만 아니라 현재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비정상적 의지의 중독성에 대해 원문을 그대로 옮기겠습니다.
"처음에는 다만 어떤지 궁금해서 시험 삼아 시작한다. 두번째는 첫번째 경험을 해보니 별일 없었기 때문에 또 한다. 세번째는 달리 생각도 해보지 않고 한다. 네번째는 이미 걸려들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중독이야말로 원하지 않았던 것, 피하고 싶었던 것인데 말이다."
우측 그림으로 쉽게 표현하였는데요.
<바로 이것이 중독에 빠지는 전형적인 순서이다.>
그리고... 저자는 중독성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중독성이 강한 행위에 빠진 사람은 무엇인가를 실질적으로 원할 수 있는 의지가 없다. 그 행동을 시작했던 처음에는 원해서 시작했을 것이고, 그때만 해도 그 사람의 의지는 살아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중에는 그 행위가 사람을 지배하고, 조금씩 혹은 빠르게 그의 의지력을 갉아먹는다. 네번째 이후 혹은 열번째 이후에는 더이상 예전의 그가 아니며 과거에는 원하지 않았던 상태에 빠져 있다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한다. 심지어는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조차 원하지 않는다. 더이상 예전의 그가 아니기 때문이다."
"중독자가 잃어버리는 것은 단지 자유롭게 무언가를 원할 수 있는 의지뿐만이 아니라,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다."
저자는 이런 의지상실을 의지박약녀와 꾸물남으로 빗대어 표현합니다.
의지박약년은 아니 의지박약녀는 원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행동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텔레비전 드라마를 그만 보고 집안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다."
의지박약녀의 쌍둥이 형제인 꾸물남은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사람입니다.
오늘 하루의 나태함과 무책임에 대해 관대하게 생각합니다.
'아무 일도 없을 거야, 이미 늦은 일이 조금 더 늦어지는 것뿐, 크게 달라질 건 없어.'
반대로 강철 같은 의지, 혹은 굳건한 성격, 강한 의지력은...
"의지가 가진 힘은 근육의 힘처럼 구체적인 행동을 통해 드러난다."
"의지와 근육의 비유에서 볼 수 있듯이 <단련>의 중요성이다. 근육은 단련을 통해 발달시킬 수 있는 것이며, 단련의 유일한 방법은 운동, 즉 근육을 직접 사용하는 것이다."
저자는 근육과 의지의 비유를 통해 너무 무리하게 쓰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지나친 사용으로 녹초가 되면 자존감이나 다시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져 회복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게 된다고...
"그러니까 노력도 적당히 하고, 강철 의지를 가진 영웅 흉내는 내지 말자."
진정한 이완에 대해 저자는 통찰력을 발휘해 이 같이 표현합니다.
진정한 이완 상태를 유지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또한 저자는 의지와 결심을 구분해야 한다고 외칩니다.
"결심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잠깐이면 할 수 있고, 게다가 기분 좋은 일이다."
흡연자가 '이번 주부터는 금연이야!"라고 결심하지만, 결심과 지속적인 금연의 실행가능성은 다른 것이지요.
"하지만 하고자 하는 의지, 단순한 희망이 아닌 진짜 의지는 결심보다 훨씬 멀리 가는 것이다. 우선 의지는 시간상으로도 훨씬 지속적이다. 무엇을 결심하거나 막연히 희망하는 것은 금방 지나가버리는 일이며, 시간 안에서 지속적이지 못하다. 반대로, 진정한 의지는 시간 안에 자리잡으며 그 자리에 남는다. 의지는 단순한 의도가 아니다.
의지는 하나의 행위, 행위의 시작으로, 시간 안에 자리잡는다.
의지란 어떤 행위를 계획하는 것과는 다르다. 의지는 행위의 시작에서 첫번째 단계이다."
구구절절 옳은 말입니다. 그리고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정말 무엇을 원하는지 알려면 스스로에 대해 솔직해져야 한다."
'의지의 항구성'으로 표현하며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대끼면서도 자신만의 고유한 됨됨이를 간직하는 태도와 통한다고 설파합니다.
100% 진심, 100 우직
저는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이 구절이 가장 마음에 와닿더군요.
이 단호함의 소유 여부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니까요.
"의지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한 수단이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논리적으로 인간이 정말 자유로운 존재라면, 언제든지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부정의 자유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이런 자유를 행사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 역학을 하는 것이 바로 의지력이다. 그러니 미리미리 스스로를 단련해서 무언가를 진정으로 원할 수 있는 의지를 길러놓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언제 스스로를 지켜야 할 결정적 순간이 올지 모르니까 말이다."
- 2014년 8월 마지막 주 Written by Peterp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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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거참.. 철학이 어려운 건 알지만, 그래도 사람 사는거 다 거기서 거기 아닌가? 느끼는게 조금씩 틀리긴 하겠지만 그래도 간단하게 말하자면 사람사는 것에서 철학 운운하는 거 아닌가 싶다. 내 짧은 생각으로는..^^;;
암튼, 우연히 이 작가의 책이 몇권 들어와서 간단하게 읽어보려고 펼쳤는데 허얼~ 간단한게 아니구나. 글은 짧고 그림도 있어서 책장이 넘어가긴 하는데 당최 뭔 말인지 모르겠다. 마음을 비우면 내용이 보이려나?
그치만 문제는...... 이 책을 읽다가 졸았다는 사실.
진심 책 읽으면서 진짜 피곤하지 않는 이상 졸지는 않는데, 이 책 심각히(?) 졸립다.
글을 읽고 있지만 의미를 파악 할 수 없는 글이라니.......
게다가 제목은 <원하다> 인데, 내용은 의지력, 자존감 이런것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원하기 위해서는 의지가 필요하고 원한다고 해서 전부 이루어 질 수 없으며 블라블라........
익히 그냥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들의 나열이다. 딱히 새로울 것도 없는 철학적 메세지(?) 느낌.
뭔가 새로움을 크게 기대한 건 아니지만 어느정도 우리가 느끼는 것들의 나열은 좀 곤란하다. 게다가 주제가 <원하다>였다면 좀 더 그 쪽으로 깊이 있게 파고 들어 달라고...... 이상하게 의지력으로 결부시키지 말고...... 차라리 그럴거면 제목을 "의지력"으로 했었어야지.
마지막엔 거의 의지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
물론, 뭔가 연결이 되긴 하는데 완전 =(이콜) 느낌은 없음이다.
아, 철학적 자질이 부족한겐가? 이해하기 난해한데?
그냥 글은 글로서 단순하게 받아들이는 방식이 난 좋은가 보다. 이런 글은 나한텐 글쎄올시다구나.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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