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짧고 재밌는 소설'을 찾고 있었는데, <어느 삶의 음악> 추천을 받아서 구매했습니다~ 분량은 짧지만 정말 강렬하고 아름다운 소설이었어요. 소설 속 세계로 여행을 다녀온 느낌.. 이북으로 샀지만 뭔가 종이책의 물성을 소유하고 싶어지는 그런 책이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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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삶의 음악, 안드레이 마킨, 2022년
? 책 소개 이 책은 1957년 시베리아에서 태어나 모스크바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1987년 프랑스로 망명한 작가 “안드레이 마킨”이 2001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안드레이 마킨은 30년간 시베리아와 모스크바에서 성장한 뒤, 프랑스로 망명했지만 1990년 “소련 영웅의 딸”이라는 작품을 프랑스어로 발표한 천재적인 작가이다.
“어느 삶의 음악”은 화자(話者)가 시베리아 극동 지방을 여행하고 모스크바로 돌아오는 여정에서 시베리아 한복판 한 도시의 기차 정거장에서 만난 알렉세이 베르그와 인생여정을 대화형식으로 들은 내용이다. 스탈린 시대 유명한 극작가와 음악가인 부모를 둔 부르주와 계층의 알렉세이는 10년간 시베리아의 수용소 생활을 마치고 30대 중반의 나이를 짊어지고 모스크바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작가는 이 시대의 환경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자기가 사는 나라는 천국이고. 느닷없이 전쟁의 발발을 알리는 냉혹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대도 몸을 털고 일어나 아무렇지도 않은 듯 전쟁을 맞을 준비를 하고 고통과 희생을 감수할 것이다. 누추한 이 기차역, 철로 너머로 끝없이 펼쳐지는 평원의 추위 속에서, 굶주림이든 죽음이든 삶이든 그 모두를 당연한 듯 받아들인다. 이들에게 지붕 위로 기어오르고 열차 꽁무니를 따라 뛰라 한데도, 누구 한명 불평하지 않을 것이다. -호모 소비에티 쿠스.’
? 독후감 모스크바의 부르주와 계층을 부모로 둔 음악도 알렉세이의 가정환경은 전체주의를 표방하는 스탈린 독재정부로서 제거해야할 가정이었다. 많은 부르주와 계급과 인텔리 계층은 스탈린 독제세력에 처형당하고 유배를 당했다. 부르주와 계층의 핵심인 알렉세이 부모도 처형당했거나 수형생활을 하고 있다고 단정할 뿐이다. 몸서리치는 부모 집 창가에서 부모의 슬픈 모습을 보며, 연주회를 이틀 남겨 놓은 알렉세이는 아버지의 승용차로 칠흑의 어둠을 도움삼아 이모가 살고 있는 우크라이나 시골마을로 숨어 들어간다. 모스크바 어느 곳도 알렉세이에겐 숨 쉴 공간이 없었다.
국가보안위원회 제복을 입은 남자는 짐승처럼 알렉세이를 벽에 밀어붙이고 “썩어빠진 인텔리겐치아 놈”이라는 경험을 물리치기 위해 모스크바를 떠난 것이다. 그러나 도망 온 우크라이나 시골 마을도 안전하지 않았다. 승자들도, 인민의 적들과 용감하게 싸운 이들 조차도 안전을 담보하지 못한 혼돈의 시대.
조카의 안전을 위해 동분서주하던 이모부부도 스탈린 독재정부의 압력에 자신의 안전을 지켜줄 수 없다는 것을 알렉세이는 인지했다. 2차 세계대전의 포화가 이모부부의 시골마을에도 점점 다가온다. 알렉세이라는 이름으로 러시아에서 살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한 그는 전쟁터에서 죽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의 이름으로 군인이 된다.
전선에서 첫 두 해 동안 알렉세이는 이름을 빌린 죽은 군인(세르게이 말체프)의 이름으로 몇 통의 편지를 받았으나 답장을 쓰지 않았고, 부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한 뒤 휴가를 받아도 전선을 떠나지 않았다. 인내를 요구하는 통증과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회복된 척하며 그는 제대만은 면하려고 했다. 갈 곳이 없고 자신의 신분이 들어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알렉세이가 대신 삶을 사는 사망한 세르게이 말체프의 가족과 친구들은 친구와 자식을 찾으려고 알렉세이 주위를 파고든다.
운전을 할 수 있다는 이유로 알렉세이는 장군의 운전병이 된다. 행운인지 불행인지 알렉세이가 운전한 차가 폭발해 장군이 심한 부상을 입게 된다. 알렉세이는 자기가 모신 장군을 부축하고 긴 시간동안 얼어붙은 숲을 가로질러 안전한 곳으로 대피했다. 살아난 장군은 알렉세이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며 자네는 내 아들과 같다고 신뢰를 한다. 전쟁의 혼돈 속에서 장군은 승진하여 모스크바 국방부로 영전되자 그도 그립고 불안한 모스크바에 들어오게 된다.
모스크바에 체류한 몇 주 후, 사면당한 죄수들의 소식을 듣는다. 대도시로 올 수 없는 그들은 우랄지방이나 시베리아, 중앙아시아에 정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처형당한지 모르는 부모님을 시베리아 한 복판에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희망도 솟아난다. 가짜신분이 탄로날까봐 부모를 찾을 수 없음도 걸림돌이다.
어느 하루. 장군은 “이보게 세르게이. 자네와 관련된 정보가 올라온다네. 자네의 부모가 아들이 살아있고, 친구도 만났다는데 자네가 고향으로 돌아오려 하지 않고 숨어 지내니 이유를 모르겠다는 거야. 한마디로 신분위조와 관련된 예기가 회자된다네.”
장군의 운전사인 알렉세이는 장군의 집에서 자신보다 10살 어린 딸 스텔라를 만난다. 스텔라의 피아노 연주는 알렉세이의 추억을 반추하게 하고 흥분시킨다. 얼굴을 보지 않아도 반짝이는 금발과 드레스, 피아노 건반에서 춤추는 오른 손과 왼손의 흔들림이 흥분과 쓸쓸함이 동시에 전해온다.
스텔라는 그를 자기 옆에 앉히고 악보를 넘겨달라고 했다. 또한 피아노 치는 법을 가르쳐 준다고 한다. 알렉세이가 배운 피아노곡은 “장난감 병정”. 알렉세이의 인생과 전쟁터 이야기 등 스텔라의 충동적인 질문은 자신의 신분이 노출될까봐 긴장했다. 감성적이고 순수한 어린 스텔라는 알렉세이에게 키스를 하는 풍경도 연출한다. 물론 이루어질 수 없는 현실들.
스텔라에게 약혼자가 생겼다. 약혼자 가족들과 친구들도 초대한 파티. 스텔라는 연주를 하고 운전수인 알렉세이에게도 노래 한 곡 연주를 요청한다. 스텔라 자신의 교사로서의 자질도 뽐낼 겸. 알렉세이는 둔탁한 손놀림으로 ‘장난감 병정’을 연주한다.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은 스텔라의 티칭 실력과 장군님 부처는 운전기사도 피아니스트라며 아첨의 칭찬이 흩어진다.
불행인지 앙코르 연주가 필요했다. 그의 양손이 건반 위에서 춤을 추는 순간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의 희희낙락한 표정과 주고받는 눈길들이 경직된다. 알렉세이가 꿈을 꾸어왔던 연주자의 본능을 거침없이 표출했다. 수년 동안 신분을 속이며 목숨을 연명했던 그가 이 순간에는 앞으로 닥칠 불행도 존재하지 않았고, 공포도 느끼지 않았다. 불안도 후회도 없고 오로지 아름다운 음악이 탄생했다.
화자는 극동지방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시베리아 복판에서, 동시베리아에서 10여년의 수형생활을 마치고 부모와 자신의 고향 모스크바로 돌아오는 알렉세이와 대화로 소설은 시작된다. 도피 생활하기 전 연주회를 하려고 했던 철도 문화원 연주 홀에 앉아 있는 알렉세이의 모습을 비추며 소설은 끝난다.
전체주의와 스탈린 독재로 한 인간의 삶이 휘날리는 모습을 작가는 담담하게 기술했다. 작가 본인도 프랑스로 망명한 아픔을 알렉세이를 통해서 공산주의의 허상을 이야기한 슬프고도 아득한 소설이다.
번역자는 이 작품이 번역 작품이 아니라 창작품이라고 느낄 정도의 섬세하고 역동적인 표현으로 이 소설의 깊은 맛을 독자에게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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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은 용서할 수 없지만) 영화 피아니스트의 주인공 슈필만이 떨리는 손을 피아노에 얹던 그 먹먹함, 곱아든 손, 공포에 가까운 설렘과 입김... 그 눈물을 기억하시는 독자에게 추천하고픈 책이다. 좌절조차 희미해진 시간 속에서 떠올리는 아득한 때의 행복, 사랑, 떨림. 절망에 맞닿은 그리움. 문자로 쓰였으되 문자 이상의 것으로 들어차있다. 기억이라고 할 수 있을까. 6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