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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 시대 리더십으로 본 조선왕 성적표』 by 신동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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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 시대 리더십으로 본 조선왕 성적표』에서는, 조선조 역대 군왕 가운데 난세의 시기에 재위한 인물을 선정해 그들의 리더십을 집중 분석하였다. G2 시대의 혼란스런 모습은, 조선조 역사에 등장한 왕조교체기의 혼란스런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동양 전래의 역사에 비춰 천하의 주인이 바뀌는 왕조교체기에 해당하는 21세기는 G2 시대이며, 저자는 이를 난세로 판단하여 3번의 G2 시
"『G2 시대 리더십으로 본 조선왕 성적표』 by 신동준" 내용보기
G2 시대 리더십으로 본 조선왕 성적표』에서는, 조선조 역대 군왕 가운데 난세의 시기에 재위한 인물을 선정해 그들의 리더십을 집중 분석하였다. G2 시대의 혼란스런 모습은, 조선조 역사에 등장한 왕조교체기의 혼란스런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동양 전래의 역사에 비춰 천하의 주인이 바뀌는 왕조교체기에 해당하는 21세기는 G2 시대이며, 저자는 이를 난세로 판단하여 3번의 G2 시대를 현명하게 이끈 기준을 판단으로 삼아 명군(明君), 용군(庸君), 암군(暗君)으로 분류했다. 미ㆍ중이 격돌하는 현재는 우리에게 위기이자 기회다. 한반도 통일이 달성될 가능성이 커지기도 했거니와, 최고통치자를 비롯해 경제전쟁에서 기업 CEO들의 현명한 대응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21세기 동북아시대는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4강국이 치열한 각축을 벌였던 1세기 전의 상황을 방불케 한다. 

 

   

■ 최고의 리더십을 발휘한 명군 

 

  •  태조 : 위화도 회군의 결단으로 새 왕조의 창업주가 된 점에서 명군으로 뽑힌 태조 이성계는 급진개혁파인 정도전과의 합작품으로 쿠데타를 성공시켰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왕명을 거부한 비주체적인 사대주의 행보로 폄하하고 있으나 고려 말의 상황은 개혁을 절실히 필요로 했고, 시대적 흐름을 읽은 이성계는 새로운 왕조를 개창하는 위업을 이뤘다. 다만, 개국 후 불사이군(不事二君)의 명분을 내걸고 몸을 숨긴 고려의 유신들을 조정에 참여시키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  태종 : 원명 교체기에 놀라운 결단력과 지혜를 발휘해 조선조 건국의 기틀을 닦은 태종 이방원을 사실상의 창업주로 칭했다. 또한, 두 차례에 걸친 왕자의 난을 일사천리로 진행시켰다. 조선조 개창 당시 최고의 개국공신은 말할 것도 없이 정도전이나, 이방원의 공 역시 이에 버금갈 정도로 컸다. 왕권에 대한 도전은 용납하지 않았으나 재상 등에 대한 탄핵은 적극 수용하고, 성향이 다른 인사들을 동시에 재상에 임명해 서로 견제하도록 만들어 세력화를 억제했다. 이는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새 왕조의 기틀을 다질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  세종 : 역사상 인류가 찾아낸 문자 가운데 최고의 문자로 평가되는 한글을 창제한 세종은, 문무 두가지 측면에서 조선조 5백년을 통틀어 최고의 성세를 구가했다. 패도로 일관한 부왕 태종과 달리 패도와 왕도를 적절히 섞어 사용하는 최고의 통치술을 발휘했고, 천성으로 타고난 총명과 호학(好學)에서 비롯된 '수불석권(手不釋卷)'의 자세와 중국의 문물에 사로잡히지 않은 강한 주체의식, 애민사상에 입각한 훈민정음 창제는 우리 민족문화유산의 위대한 업적으로써 조선조 최고의 명군으로 꼽힌다.
  •  세조 : 전광석화 같은 반격으로 신권 세력의 발호를 제압하고 완권을 튼튼히 함으로써 5백년 사직의 기초를 튼튼히 한 세조(수양대군)은, 제2의 창업주에 해당한다. 세조는 조선왕조 운영의 기본 틀이 된 '경국대전' 편찬을 비롯하여 역대 군주를 통틀어 부국강병책을 가장 강력히 펼친 군왕이다. 문종의 죽음과 함께 어린 세자 단종이 즉위하면서 불안정한 정세에서 막강한 신권을 제압하기 위해 계유정난을 일으켜 김종서과 같은 권신을 제거하지 않았다면 조선조는 이내 신하의 나라로 전락했을 공산이 컸다. 조카 단종의 왕위를 찬탈한 것 역시 사림 세력의 왜곡된 시각을 그대로 채용한 것으로써, 단종이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보위를 물려준 것으로 재해석해야 옳다.
  •  광해군 : 국가 패망의 위기에서 취해진 일종의 편법으로 부왕인 선조에 의해 왕세자가 된 광해군은, 조선조가 맞닥뜨린 두 번째 G2 시대인 명청 교체기 때에 놀라운 외교수완을 발휘해 나라를 보존하고 백성을 안녕케 하는 보국안민을 꽤했다. 차서자라는 이유로, 명나라로부터 세자 책봉을 거부당하고 명나라 사신마다 막대한 양의 은자를 수탈해 가는 관행까지 생겨 보위 계승의 정통성에 큰 상처를 입었던 광해군은, 연산군과 더불어 조선 5백년을 통틀어 신하들에게 쫓겨난 군왕이었다. 왕권강화를 위해 대규모 궁궐 건축 사업에 지나치게 몰두한 나머지 반정의 빌미가 되었고 몰락을 알리는 전조가 되었다.

 

 

■ 성군?! 재평가가 필요한 용군

 

  • 성종 : 세조가 가차없이 철폐시킨 집현전의 후신인 홍문관을 개설한 성종은, 후대 성리학자들로부터 명군이라는 칭송을 얻었지만 그들의 관점일 뿐이므로 재평가가 절실하다. 언론권을 장악한 신진 사림세력이 재상권의 주요 구성원인 훈구대신을 압도하고 명실상부한 신권세력의 주축이 된 것은 상대적으로 왕권 취약을 들 수 있다. 조선이 패망한 가장 큰 원인은 왕권국가에서 신권국가로 나아간 데 있다. 그 계기가 바로 사림세력의 효시인 김종직의 중앙정계 진출이며 그를 총애하여 도학군주를 염원했던 성종의 리더십은 결코 높이 평가할 수 없다.  
  • 중종 : 연산군은 미치광이 폭군이 아니었고, 한낱 일신의 안녕과 부귀영화를 위해 자신들을 총애한 주군을 내친 배은망덕한 소인배들에 의해 중종반정이 일어났다. 연산군을 폭군으로 매도하는데 결정적인 배경이 된 무오사화와 갑자사화의 근본 원인을 왕권에 대한 신권의 도전에서 찾을 수 있다. 중종에 대한 평가는 그가 사림세력의 우두머리인 조광조를 끌어들여 공신세력을 제거한 뒤 다시 이들 사림세력을 제거하는 '기묘사화'와 직결된다. 재위 8년 동안 자신을 보좌할 측근 한 사람 만들지 못했고, 시종일관 우유부단함을 면치 못했던 중종은, 시세도 파악하지 못할 뿐더러 신권 세력에게 휘둘린 용군에 불과하다.
  • 숙종 : 재위 46년 동안 네 차례에 걸쳐 환국을 단행한 숙종의 기형적인 통치는, 신권 세력 같의 갈등을 교묘히 이용해 강력한 왕권을 유지하기는 했으나 각 붕당 세력들은 언제 유혈 숙청의 대상이 될지 몰라 전전긍긍했다. 인현왕후와 장희빈을 비롯해 경종까지, 처자식을 왕권 보호의 도구로 이용한 점은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그들 모두가 환국정치의 희생양이었다. 환국정치는 오히려 부메랑이 되어 군약신강을 더욱 부채질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노론 세력에 의해 보위에 오른 영조가 자식까지 뒤주 속에 가둬 죽인 것이 그 증거다.
  • 영조 : 탕평은, 당파의 구분없이 모든 사람을 고루 등용하여 정치적 안정을 꾀하고자 함에 있다. 영조에게 탕평은 노론을 제압하기 위한 명분일 뿐 아니라 왕권을 강화하는 유일한 방안이었다. 영조의 탕평은 완벽한 탕평이 아닌 외척과 연결된 '완론탕평'의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는 점에서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영조의 탕평이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없음은, 척족 세력이 함부로 날뛰는 결정적인 실마리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탕평정치는 정조가 죽은 후 19세기 세도정치로 변질되어 정치적 혼란기를 맞이하였다.
  • 정조 : 정조는 경서와 사서를 막론하고 모든 분야에 걸쳐 최고의 인문학적 소양과 학문적 수준을 과시한 것이 걸림돌로 작용했다. 도학의 적통을 이어받았다는 취지에서 '군주도통론'을 주장하고 이를 왕권강화의 상징으로 삼고자 했으나, 이러한 학문적 결실은 현실정치에서는 착각이었다. 실제로 그는 군주도통론으로 인해 신권세력의 반발을 자초했고, 학문적 권위로 신권세력을 제압코자 했던 '군사론' 역시 더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노론 벽파를 포함한 신하들을 일거에 제압할 수 있는 결단력도 부족했고, 결정적인 순간에 결단하지 못한 채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이는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는 정조의 리더십을 높이 평가할 수 없다.

 

 

■ 나라를 위기와 혼란에 빠트린 최악의 왕

  • 선조 : 선조는 보위에 오르자마자 최고의 사림이 되기 위해, 내관의 수를 줄이고 본업인 제왕학 연마를 뒤로 한 채 문을 닫고 늘 책만 읽었다. 사림세력이 선조의 행보에 극찬을 아끼지 않은 이유이며, 중앙 정계를 사림이 독점한 연유다. 조선조의 패망은, 주변국의 변동상황을 외면한 채 성리학자인 퇴계와 율곡을 전면에 앞세워 권력투쟁을 일삼은 후기 유학자들의 책임이다. 왜란을 미연에 방지했거나 그로 인한 폐해를 극소화할 수도 있었지만,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일본을 곁에 두고도 현실과 동떨어진 명분주의에 빠져 오로지 성리학만을 추구했다. 문제는, 왜란을 패배로 인정하지 않는 조선이 전혀 반성할 필요를 느끼지 않은데 있었다. 현재까지도 선조의 처세를 ‘목릉지치’라 하며 명군으로 평가하는 것은, 자신이 범한 과거의 역사에 대한 반성을 결여한 처사다. 결과는, 3백 년 뒤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참사로 이어졌다.
  • 인조인조정권이 정묘호란 당시에 맺었던 '형제지맹'의 약속을 어느 정도 이행키만 했어도 병자호란은 능히 막을 수 있었으나, 척화파들은 형제지맹 파기를 요구하면서 부모의 나라인 명을 대신해 청과 결전을 치를 것을 주장하고 나섰다. 청의 요청을 거부하며 명의 군사에게 식량지원을 해놓고선 대비책도 없이 전쟁을 자처했다. 군주는 물론 나라와 백성조차 안중에도 없는 성리학에 함몰된 조선조 사대부들의 정신상태를 짐작케 한다. 숙부인 군주 광해군을 내쫓고 아들인 소현세자와 며느리에 손자들까지 잇달아 죽인 어리석고 비정한 군주의 시호가 인조인 것은, 그와 함게 반정을 도모한 서인들이 권력을 함부로 사용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인조의 '친명사대'는 이후 조선의 군신으로 하여금 '소중화'를 내걸고 자폐의 길로 나아가도록 만들었다는 점에서 조선조 역대 군왕 가운데 최악의 군주로 꼽을 만하다. 반정의 주역인 인조는 왜란을 초래한 선조와 함께 암군의 전형이다. 땅에 떨어진 군위(君威)를 완전히 박살낸 장본인은 인조였다. 명분도 없이 광해군을 보위에서 끌어내고 쿠데타를 합리화하기 위해 대명 사대외교를 명분으로 내걸었다가 두 차례의 호란을 자초했다. 소현세자를 제거함으로써 정조 때까지 이어지는 심각한 정통성 문제까지 촉발시키는 우를 범했다. 이에 인조를 조선왕조 사상 최악의 군주로 임명한다.
  • 고종 : 고종 44년의 재위기간 중 시기별로 매우 다양한 모습을 보여왔기에 그의 리더십에 대한 평가는 어느 한 가지 관점에서만 파악하는 것은 적잖은 논란이 된다. 자주독립을 겨냥한 일련의 개혁정치였던 '광무개혁'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그 성과에 비춰볼 때 나름 평가할 가치가 있다. 고종의 리더십에 대한 평가는, 광무개혁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이 전제되어야 한다. 하지만 개혁이 진행되는 동안 열강의 이권침입은 더욱 극성을 부렸고, 개혁 자체도 열강에 의존하였으며, 가장 큰 문제점은 군도의 요체인 결단력이 부족하다는 점에 있었다. 고종의 광무개혁이 오랫동안 주목 받지 못한 것도 이런 맥락에 있다. 그러나 사상 최초로 동서의 패권국이 서로 맞붙는 G2 시대의 난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나라를 패망의 위기로 몰아간 것에 대한 책임을 면피하기는 어렵다. 특히 대원군이 제거한 망국적인 세도정치를 부활시킨 점은 최대 실책에 해당하며, 이것이 조선 패망의 근본 원인이 되었다.

 

 

 원래 '조祖'는 창업주에 버금하는 대공을 세운 군왕에게만 부여하는 것이 원칙이다. 창업주인 태조 이성계와 강력한 왕권을 토대로 국세를 떨친 세조를 제외한다면, 선조, 인조, 영조, 정조, 순조 모두 '조'보다는 '종'의 묘호가 적합하다. 영조와 정조는 나름 업적도 있어 넘어갈 수 있다지만 선조와 인조의 경우는 완전히 어긋난 결과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왜란과 호란을 초래해 나라를 패망 위기로 몰아간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영조 때 붕괴됐던 4색 당파가 선조 때 다시 형성되는 빌미를 제공했고, 그의 묘호가 선종에서 선조로 승격된 것은 명분주의에 함몰된 조선조의 사대부들이 만들어낸 역사왜곡에 지나지 않는다. 선조의 치세는 한마디로 붕당정치로 요약된다. 그의 치세에 들어와 사림세력들이 거대한 붕당을 형성해 왕권을 위협하는 막강한 신권세력으로 부상했다. 후기에 들어와 군약신강의 신권국가로 치달은 이유다. 선조 때 시작된 붕당정치, 조선이 신권 우위를 기초로 한 성리학의 왕도를 유일한 통치 이념으로 삼은 데 있다. 당시 선조가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신권세력을 제압한 가운데 위엄을 보였어도 임진왜란 같은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조선왕조 5백년을 돌아보면, 나라를 다스리던 사대부 지식인들이 나라의 안녕과 민생은 아랑곳없이 오직 정적만 제거하는데 열중한 당쟁의 후과였다. 현재의 한국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모든 위기는 역대 정부가 합작으로 빚어낸 실정의 결과물에 다름아니다. 고금의 역사가 보여주듯 반란이 성공하면 새 왕조의 창업주가 되고, 실패하면 만고의 역적이 된다. 암군들은 거시적 차원의 통치에 어두워서 주변 정세의 흐름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 상대의 의도를 읽었다면 주어진 상황에서 나름대로 최선의 방안을 강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넓은 관점에서 나무가 아닌 숲을 보는 지혜가 필요했다. 왕권강화에 목을 매면서도 결국 신국의 통치 속으로 들어간 조선의 왕들.. 자고로 나라의 최고 통치자는 전체적인 밑그림 먼저 그릴 줄 아는 배포가 있어야 할 것이다. '선조'처럼 사소한 일에 집착하게 되면 대의를 그르치기 마련이다. 조선시대의 사대부들은 소모적인 논쟁으로 시간만 허비했을 뿐, 보다 더 시급한 우선적 과제에 열중하지 않았고, 발전방안을 모색할 수 있는 여지조차 간과하는 실수를 범했다. 

 

 조선조 사대부들에 의해 성군의 칭송을 받은 성종과 중종, 숙종, 정조 등은 엄밀한 재평가를 요했다. 성종은, 모후인 인수대비에게 휘둘려 국가를 문란케 만들고 사람을 중용해 붕당정치의 길을 열어 '신하의 나라'로 변질되는 단초를 제공했다. 사대부들이 일으킨 최초의 반정으로 얼떨결에 보위에 오른 중종은 대책도 없이 기회주의로 일관하다가 기묘사화의 유혈참사를 빚었다. 이는 군왕을 압박하며 극단적인 명분론을 펼친 조광조가 명신으로 떠받들어지는 빌미가 됐다. 숙종은, 처자식까지 당쟁의 희생양으로 삼아 유혈당쟁을 자초한 장본인이다. 21세기 현재 세종과 더불어 최고의 성군으로 일컬어지는 정조의 경우는 신하들과 재치를 다투는 식으로 나라를 다스린 점에서 더 큰 문제를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 모두 군도가 아닌 신도의 길을 걸었다는 점에서 결코 명군으로 평할 수 없으며, 평범한 군주를 뜻하는 용군으로 분류했다. 



d******7 2013.12.30. 신고 공감 12 댓글 16
리뷰 총점 종이책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과는 사뭇 다른 성적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과는 사뭇 다른 성적표.." 내용보기
G2 시대라 함은 양 강대국이 서로 패권을 다투는 시기라고 볼 수도 있다. 어찌 보면 난세에 해당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G1시대야 유일한 강대국의 질서에 편입되기 때문에 선택에 그다지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난세에는 순간의 선택이 개인은 물론 국가의 흥망과 직결되기 때문에 그만큼 선택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G2가 서로 선택을 강요한다면, 지도자의 올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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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 시대라 함은 양 강대국이 서로 패권을 다투는 시기라고 볼 수도 있다. 어찌 보면 난세에 해당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G1시대야 유일한 강대국의 질서에 편입되기 때문에 선택에 그다지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난세에는 순간의 선택이 개인은 물론 국가의 흥망과 직결되기 때문에 그만큼 선택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G2가 서로 선택을 강요한다면, 지도자의 올바른 현실인식과 리더십은 한층 중요해 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현재의 세계를 흔히 G2 시대라고 말한다. 중국이 팍스 아메리카나를 대신해 팍스 시니카를 열어갈지는 의문이지만, 그러나 분명한 것은 미국과 중국의 격돌 한가운데 한국이 끼여 있으며, 선택을 강요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에 불거지고 있는 미중 방공구역 충돌만 보아도 어렵지 않게 그러한 현실을 느낄 수가 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며, 지도자의 리더십은 어떠해야 할까?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하여, 이 책의 저자는 조선시대 역대군왕들 가운데 난세의 시기에 재위한 왕들의 리더십을 분석하였다. 그들의 리더십을 통해 난세라 불리는 현재의 난관을 타개할 지략을 얻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조선시대 세 번의 G2시대가 있었다고 말한다. 조선 개국초기의 원,명 교체기, 왜란, 호란으로 상징되는 명,청 교체기 그리고 아편전쟁 이후 동서문명의 충돌시기가 그것이다. 모두 중국의 왕조교체기에 해당되며, 이 때 조선은 어김없이 혼란을 맞이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현재 맞이하고 있는 소용돌이의 원형이라고 한다. 그는 이러한 혼란시대 재위했던 조선 왕들의 리더십을 분석하여 명군(明君), 용군(庸君), 그리고 암군(暗君)으로 나누었다. 물론 이는 저자의 분류이고, 저자의 역사인식이기 때문에 전부 다 동의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왕조국가에서 필요한 군왕의 리더십은 신하의 리더십과 분명히 달라야 한다는 점이다.

 

그가 명군으로 분류한 왕들은 태조, 태종, 세종, 세조, 광해군으로 광해군을 제외하고는 모두 개국초기에 몰려있다. 그만큼 새로운 왕조를 창업하고, 왕조의 기반을 닦는데 군왕들의 리더십이 중요함을 일깨워주는 것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태조는 위화도 회군이라는 결단으로 새 왕조를 일으켰다. 그것은 토지개혁을 비롯하여 사회 변화를 둘러싼 신구관료들의 대립 속에서 대대적인 변혁을 요구하는 시대흐름을 읽은 것과 무관하지 않았다고 한다. 태종은 사실상의 조선 창업주라 할 수가 있다. 신권국가를 꿈꾸었던 관료들을 제거함으로써 왕권국가를 확고히 한 조선 최고의 명군이자 난세리더십의 표상이라고 저자는 평가한다. 과거의 역사는 항상 신권과 왕권의 대립 속에서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난세에는 강력한 왕권만이 혼란을 방지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또한 창업과 수성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으며, 수성의 요체는 창업자의 유지를 이어받아 통치기반을 확고히 다지는 후계자를 선발하는데 있다고 할 때, 세종은 수성을 완성시킨 군왕이라고 할 수가 있다. 저자는 세조를 조선왕조 제2의 창업주라고 말한다. 문종이 죽으면서 훈구 대신을 보정대신으로 임명하고, 단종은 인사권마저 이들에게 의존하는 허수아비 신세로 전락하는 등, 조선이 신권국가화 하는 조짐이 보이자 세조는 계유정란을 통해 통치리더십이 패도에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고 평가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명,청 왕조교체기에 선택을 강요 받는 조선을 그들과 직접적인 마찰을 피하면서 이끌었던 광해의 리더십을 명군의 대열에 올려 놓고 있다. 그러나 광해가 명군인지 여부는 잘 모르겠지만, 명과 후금 사이에서 조선의 국익을 지킨 것은, 인조가 호란을 자초하고 그 결과로 삼전도에서 굴욕을 당한 것과 비교해 볼 때, 그의 리더십과 현실인식이 그만큼 뛰어났다는 것이 분명하다고 볼 수가 있다.

 

저자는 또 용군으로 성종, 중종, 숙종, 영조, 정조를 꼽고 있다. 용군이라 함은 평범한 군주를 일컫는다. 그들은 조선조 사대부들에게는 성군 혹은 명군이란 칭호를 받았지만, 재평가가 필요한 군왕들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성종은 집현전의 후신인 홍문관을 개설하여 성리학으로 무장하고 지역기반을 토대로 한 신진기예들을 등장시켰고, 이는 신권국가의 기반을 닦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후 사람을 중심으로 한 신권세력이 왕권을 압도하는 붕당정치가 시작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반정으로 보위에 오른 중종은 공신세력을 제거하기 위하여 사림과 손을 잡음으로써, 성리학을 이용하여 신권국가를 확고히 하려는 사림들에게 그 기반을 제공해 주었다. 숙종은 군약신강의 형세에서 환국정치로 유혈당쟁을 격화시켜 왕위 유지에 급급했으며, 영조의 탕평정치는 붕당정치의 폐해가 극에 달한 시점에서 시의적절 했으나, 그것이 단지 노론을 제압하기 위한 명분이자 왕권강화의 유일한 방안이었다는 점에서 허울뿐인 탕평이 되었다. 또한 척신의 중용으로 훗날 세도정치의 빌미를 제공했다. 정조는 실학시대를 연 호학군주의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사도세자의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결단력 또한 부족했다고 한다. 그렇기에 신하들과 소모적인 쟁지(爭知)에만 몰두했고, 그것은 현실정치와 동떨어진 도학에 대한 자신감이 빚어낸 결과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들 용군들은 모두가 훗날 사대부들에 의해 성군으로 칭송 받았으며, 그 이유는 그들이 군왕의 리더십을 보여준 것이 아니라 신하의 리더십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달리 이들을 용군으로 분류하였고, 더불어 엄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암군으로 선조와 인조, 그리고 고종을 들고 있다. 모두 나라를 전란에 빠뜨린 군왕들이다. 사림세력이 거대한 붕당을 형성하여 왕권을 위협하는 신권세력으로 부상하자, 선조는 이들의 갈등을 이용하여 왕권을 보호한다는 안이한 발상으로 붕당론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당쟁은 겉으로는 성리학 이론의 해석을 둘러싼 이론투쟁의 모습을 띠었지만, 내막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권력투쟁에 불과했다. 그리고 왕권과 신권의 경쟁에서만은 당파와 상관없이 언제나 일치된 견해를 보였다. 이런 붕당의 폐해가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가 왜란이었지만, 선조는 반성은커녕 승리를 자축하며, 스스로 사림의 일원이 되고자 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인조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이유가 필요 없다. 사욕을 위해 반정을 일으켰고, 현실을 무시한 채 명분을 위해 숭명배금을 고집하다 두 차례의 호란을 자초했다. 구한말 민비의 치맛자락에 휘둘려 총 한번 쏘아보지 못하고 나라를 일제에 고스란히 상납한 고종도 하등 다를 게 없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혼란기, 조선시대 군왕들에 대한 저자의 평가가 조금은 색다르다. 그의 평가내용을 읽다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교차한다. 그렇지만 그것들에 대한 재평가는 역사학자들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다만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어떤 점을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지, 과거 군왕들의 리더십이 현재에 어떻게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는지, 그 교훈을 깨닫고, 현재를 이겨내는 방법의 단초를 얻을 수 있다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k*****1 2013.12.06. 신고 공감 10 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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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의 안녕을 위하는 명군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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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선도하는 나라로 급부상한 중국은 여느 나라가 추격하기 힘들 정도의 속력으로 경제대국의 면모를 띠고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이 높아졌다. 세계적 패권을 장악하는 기존의 초강대국인 미국과 신흥강국인 중국이 세계적 흐름을 관장하는 국가로 G2시대의 리더로 경제위기 극복·기후 변화에 따른 문제 해결 등 각종 국제적 현안을 해결하는 시대에 이르렀다. 두 나라의 밀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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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세기를 선도하는 나라로 급부상한 중국은 여느 나라가 추격하기 힘들 정도의 속력으로 경제대국의 면모를 띠고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이 높아졌다. 세계적 패권을 장악하는 기존의 초강대국인 미국과 신흥강국인 중국이 세계적 흐름을 관장하는 국가로 G2시대의 리더로 경제위기 극복·기후 변화에 따른 문제 해결 등 각종 국제적 현안을 해결하는 시대에 이르렀다. 두 나라의 밀접한 영향 아래 놓인 나라의 국민으로서 현 정세를 둘러싼 상황을 바로 진단하고 향후 대책을 마련함으로써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는 일이 미룰 수 없는 과제로 떠오른다. 지리적으로는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과 대립의 칼날을 세우고 있고, 동북아 공정으로 고구려의 역사까지 자국의 역사로 밀어붙여 한민족의 정체성까지 짓밟는 시대에 싸움의 소용돌이 속에 자리한 우리 민족은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음에는 틀림이 없다.

 

   난세를 극복하고 잘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줄 영웅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조선 시대의 왕들 중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여 어려움을 타개하여 성군으로 추앙받는 왕들의 지도력을 배웠으면 하는 바람으로 글을 읽어갔다. 한 나라의 통치자로 치세하는 동안 리더십을 발휘하여 백성들의 안위까지 책임지고 돌보며 부국강병을 이룬 '명군(明君)'은 국민들의 간절한 바람일진대 쉽게 만날 수 없기에 독서를 통해 떠오른 생각을 정사에 반영한 세종대왕의 창조정신은 빛을 발한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넘나들며 시대상황과 비전을 읽어낸 세종의 통찰력은 한글을 창제함으로써 실질적인 애민 정신을 실현하였고, 부왕인 태종의 부국강병책을 구체화해 조선의 강역을 두만강 일대까지 확정할 수 있었다.

 

   오동 이르건으로 구성된 기마대를 통해 막강한 무력을 정비한 이성계는 왜구의 침공이 극심한 때 고려의 패망을 앞당기고 중앙정계에서 지위를 굳히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 위화도 회군의 명분을 찾아 역성혁명의 기틀을 마련해 새 왕조를 열었다. 왕자의 난을 거쳐 부위에 오른 태종은 강력한 왕권에 기초한 왕권 국가를 만들기 위해 사병을 혁파하고, 의정부 기능을 대폭 축소했다. 태종은 육조직계제를 채택함으로써 왕권 우위 통치 체제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며 왕권 축소를 꾀하는 정도전 세력을 제압키 위해 무인정사를 일으켰다. 사서 및 제자백가를 두루 박람한 수양은 강력한 무력을 바탕으로 한 패도로 계유정난을 일으켜 권력을 장악하고 권신을 제거하는 결단력으로 인사대권을 행사하며 통치해나갔다. 정난(靖難)이라는 의미대로 단종을 해치려는 역도들을 몰아내고 위급한 상황을 평정하여 부국강병책을 강력히 펼친 군왕이었다니 그 의미를 왜곡하여 평가해왔는지 의구심이 든다. 폭군으로 알려진 광해군 역시 기미책을 구사한 외교술로 국익을 지켜낸 왕으로 후금과 직접 충돌하는 것을 피할 수 있게 하여 백성의 안녕을 지켜냈다.

 

   조선조 사대부들에게는 성군이란 당대 평가와 달리 평범한 왕에 불과한 '용군(庸君)'은 기존의 평가를 뒤엎었다. 장인 한명회와 생모인 한 씨의 합작으로 왕위에 오른 성종은 도학군주가 되고 싶은 바람이 컸기에 김종직을 총애하여 벼슬길에 발탁함으로써 김종직 등이 언론 3사를 장악하여 막강한 세력을 행사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였다. 이후 사림을 중심으로 한 신권 세력이 왕권을 압도하는 붕당정치가 고착화되는 단초가 되었다. 명분만 조작할 수 있다면 군왕을 몰아낼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긴 연산군의 폐위는 군약신강의 신권국가가 된 배경으로 작용한다. 반정 세력을 등에 업고 보위에 오른 중종은 정국공신의 수를 개국공신이나 정난공신보다 월등히 많이 남겨 반정의 목적이 사리를 도모하기 위한 것이라는 의심을 초래했다. 시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우유부단함으로 신권 세력에게 휘둘린 중종은 막강한 공신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조광조와 손을 잡았지만 갈등의 골은 깊었다. 조광조가 천거에 바탕을 둔 새로운 관리 등용 방안인 현량과를 들고 나와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려는 야욕을 불식시키기 위해 기묘사화를 일으켰다.

 

   숙종은 현안이 나타날 때마다 집권 정당을 수시로 교체하면서 왕의 의견을 관철하는 환국정치로 통치해 왔다. 숙종은 국약신강의 틀이 고착된 상황에서 왕권을 보호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환국을 단행할 때마다 유혈 숙청은 뒤따랐다. 당쟁을 유발해 왕권을 강화하려던 의도가 불순한데다 처자식까지 왕권 보호의 수단으로 이용한 점은 인륜의 도를 저버린 행동에 불과했다. 경종 독살설에 휘말려 역모 혐의를 받은 왕조가 살아남아 보위에 오른 영조는 무수리 출신의 생모를 둔 신분상의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호학군주를 자처하고 탕평책을 펴서 노론을 제압하기 위한 명분으로 삼았으며 왕권을 강화하는 방안으로 정책을 시행했다. 군신 간의 힘겨루기를 반복하느라 심리적 압박에 시달린 영조는 붕당정치의 붕괴로 왕권 강화로 이끌었으나 척신계 인사를 대거 발탁해 순조 이후에 나타나는 세도정치의 빌미를 제공하였다. 사도세자의 죽음을 지켜봤던 정조는 신권세력을 견제키 위해 영조의 탕평책을 이열치열의 방식으로 이어나가 붕당 간의 공존을 꾀하였다. 우유부단함으로 인사대권과 군사대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한 채 노론의 시파와 벽파의 대립 구도 속에서 정국을 운영할 수밖에 없었다. 사도세자의 죽음과 관련된 임오의리에 얽매여 많은 시간을 허비한 정조는 모든 정파의 신하들을 일거에 제압하는 결단력이 부족했고, 인문학적 제왕으로 당대 최고의 문신을 친위 세력으로 거느린 자만심이 화를 초래한 점은 안타까움으로 남는다.

 

   위기에 처한 나라의 망국을 초래한 '암군(暗君)'으로 분류된 선조는 사림세력들이 거대한 붕당을 형성해 왕권을 위협하는 막강한 신권세력으로 부상한 붕당정치의 빌미를 제공해 왜란까지 자초했다. 선조가 사림의 일원임을 자처하며 신도의 길로 나가 제왕학 연마를 뒤로 하고 정계에서 훈척세력을 밀어내고 사람의 명사들을 대거 등용해 난세를 타개할 대책을 마련하기보다는 이민족의 침입을 불렀다. 조선의 국가이익에 반하는 친명배청의 기치를 내걸고 청의 침공을 초래한 인조반정은 대북 세력의 전횡에 불만을 품은 붕당 세력이 하나로 결집하여 일으킨 쿠데타로 주군을 내몬 반역집단으로 해석했다. 인조는 서양의 과학문명에 눈을 뜨고 돌아온 소현세자가 청나라의 힘을 빌려 자신의 자리를 폐할까 아들을 죽음으로 몰았고 며느리와 손자까지 죽인 비정함을 보였다. 구한말 민비의 외척에 휘둘려 속수무책으로 나라를 일제에게 바친 고종은 광무개혁을 시행하여 나라의 독립을 꾀하였으나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경계의 벽을 허물고 융합과 통섭의 시대로 가는 21세기 한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에게 필요한 덕목이 무엇일지 생각해 본다. 왕권 통치를 기반으로 한 명령에 복종하는 지시 일변도의 카리스마보다는 여론을 수렴하여 민심을 살피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해 보인다. 주변 정세의 흐름을 알고 자율성을 회복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다방면의 책들을 섭렵하며 창의적인 생각을 정사에 반영하는 치세가 필요해 보인다.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가족까지 죽음으로 몰아넣는 패륜적 행동은 군민합일의 소통을 막고 민의를 저버리는 일로 비화될 수 있다. 국민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안심하고 평화롭게 살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일을 위해 골몰하는 국가 통치자를 머릿속으로 그리며 국민들의 안녕을 묻고 싶은 밤이다.



n*****9 2013.12.23. 신고 공감 7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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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권 강화한 왕에게는 후하게, 신권강화의 빌미 준 왕에게는 박하게 -조선왕 성적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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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들에게 일반적으로 알려진 평가와 다른 성적표를 받은 왕이 여럿이라 그런지, 그런지 좀 독특하다고 할까. 조선 왕에 대한 필자의 평가는 남다른 면이 눈에 확 들어왔다. 특히 엄밀한 재평가가 필요한 왕으로 꼽은 용군(庸君) 중 영조와 정조에 이르러서는 이견이 심하지 않을까.   우선 필자가 매긴 조선왕 성적표를 소개하자면 우등생이라고 할 수 있는 명군(明君)으로 태조,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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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들에게 일반적으로 알려진 평가와 다른 성적표를 받은 왕이 여럿이라 그런지, 그런지 좀 독특하다고 할까. 조선 왕에 대한 필자의 평가는 남다른 면이 눈에 확 들어왔다. 특히 엄밀한 재평가가 필요한 왕으로 꼽은 용군(庸君) 중 영조와 정조에 이르러서는 이견이 심하지 않을까.

 

우선 필자가 매긴 조선왕 성적표를 소개하자면 우등생이라고 할 수 있는 명군(明君)으로 태조,태종, 세종,세조, 광해 이렇게 다섯 왕을, 재평가가 필요한 용군으로 성종,중종,숙종,영조,정조 등 다섯 왕이 뽑혔다. 마지막으로 낙제 성적에 해당할 암군(暗君)에는 선조,인조, 고종이 들어갔다.

 

암군에는 대체적으로 동의할 것 같지만, 명군에서는 세조 등 최근에 많이 나오는 대중적인 역사 서적, 그 책들의 일반적인 흐름과는 다른 평가가 주라서 공감이 안간다는 독자가 꽤 많지 않을까 싶다.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필자의 기준이나 관점이 궁금할 수 밖에 없었다.

먼저 짚고 넘어갈 점은 필자는 G2시대의 리더십은 기본적으로 '난세'를 극복하는 리더십을 말하는 것이고, 그것은 치세의 리더십과 다를 수 밖에 없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중국의 왕도 정치와 패도 정치를 언급하고 또 군주와 신하의 권력 관계에 초점을 맞춰서 조선왕들의 성적을 평가하고 있다.

 

필자는 조선에서 덕치를 강조하는 왕도정치, 무력과 법치를 강조하는 패도정치 중 성리학적 질서가 강조되고, 특히 신하들의 권력이 강화되면서 왕도정치를 지향하는 양상이 됐지만, 부국강병을 지향해야 하는 현실정치 특히나 난세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패도 정치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왕권과 신권 중 왕권 강화에 손을 들어주고 있다. 조선의 난세, 조선의 위기는 신권이 강화되면서 군약신강(君弱臣强), 붕당 정치가 조선을 몰락으로 이끄는 원인이 됐다고 파악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왕권을 강화했던 왕들에게는 후한 성적을, 신권이 강화되는 빌미를 준 왕에게는 박한 점수를 주는 것은 그에게는 당연지사였을 것이다.

 

필자는 조선 건국 처음부터 신권강화에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정도전이 구상했던대로 조선이'왕도국가'가 됐다면 문약한 조선이 돼 조기에 패망했거나 정씨 일족의 발호로 자칫 정씨의 나라로 바뀔 소지가 컸다고까지 예상하고 있다.

필자의 눈에는 신권의 강화되고 붕당정치가 가속화 되면서, 왕비, 세자의 간택 등 후계구도에까지 당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신하들 손에 주도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니 신권강화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것이다.

숙종의 경우 환국을 통해서 일시적으로 통치를 유리하게 이끌었지만 결국은 후계자가 신하들 손에 결정되게 만드는 등 왕권을 약화시키는 쪽으로 영향을 미쳤기에, 정조는 친위군이나 자신의 지지해줄 신하들을 양성했지만 그들이 조직화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후한 점수를 주지 않았다. 아버지 사도세자의 추증에도 실패하는 등 왕권을 강화하는데 성공적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권을 견제하거나 신권을 분산하는 장치 없이 신하들에게 권력을 준 왕에게는 그런 결정이 패착이었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

 

심지어 조선 사대부들이 경세를 외면하고 공허한 사변 논쟁에 매몰된 것도 군약신강이 왜곡된 통치구조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사림에 뿌리를 둔 당쟁이 원흉이었다는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고금을 막론하고 '사림'으로 상징되는 재야세력이 위세를 떨치면 떨칠수록 통치 기능은 마비되고 통치 제체는 뿌리채 흔들리게 된다고도 했다. 이쯤 되면 필자의 견해는 논란의 소지가 다분하다.

 

그렇다면 필자의 왜 이런 견해를 피력하는 것일까? 아무리 조선왕을 평가한 것이라고 해도 조선시대로 돌어가 그 시대에 걸맞는, 아니 그보다 더 고전의 세계인 중국의 역사적 실례, 군주가 아닌 제왕에 가까웠던 중국사례를 거울 삼아 조선왕의 리더십을 평가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중국 고전 전문가인만큼 수시로 중국의 사례가 근거로 거론되는 걸 보더라도 그런 경향이 농후해보였다.

아무리 봐도  단선적이고, 통치라는 잣대를 과하게 개입시켜 평가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위기의 리더십이라고 했지만 지나치게 회고적이고 과거의 시각에 매몰된 평가가 아닌가하는 생각 또한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나 지금도 각계 지도자 역할을 '부국강병'의 첨병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언급하는 대목은 전혀 시대에 걸맞지 않아 보인다.

 실제로 뒤에 참고문헌 목록을 보면 70년대에서 90년대 논문, 책이 대다수였고, 2000년대 이후 논문이나 책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물론 책 속에서는 2000년대 이후의 등장한 입장에 대해서도 언급은 됐지만 필자는 그런 주장에 반박하는 쪽이었다. 한마디로 필자의 평가는 상당히 보수적이고 통치 편의적인 입장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조선왕 성적표'는  필자의 독특한 관점이 돋보였다. 흔하게 볼 수 있는 접근법이 아니라는 점에서 상당히 흥미롭게 읽혔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지금은 조선시대가 아니다. 지금 조선 왕의 리더십에 대한 평가가 의미를 지니려면 현대, 지금도 통용되고 배울만한 가치와 방법이 더욱 포함돼 있어야 하고,아무리 난세라도 해도 시대에 걸맞는 민주적인 리더십을 제시해야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e****0 2014.01.29. 신고 공감 6 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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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 시대리더십으로 본 조선왕 성적표 : 성적표를 비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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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공부할 때 누리는 호사는 과거를 자유롭게 평가하는재미입니다. 비록 그 당시 상황과 주변환경에 대해서 확실한 정보를 얻을 수는 없지만, 자신만의 기준으로 과거를 판단하고 점수를 준다는것은 역사책에서만 누릴 수 있는 기쁨입니다. 신동준의 [G2 시대리더십으로 본 조선왕 성적표]는 그런 책중 한권입니다. 조선왕들을 "리더쉽"이라는 기준으로 평가했습니다. 평가의 결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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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공부할 때 누리는 호사는 과거를 자유롭게 평가하는재미입니다. 비록 그 당시 상황과 주변환경에 대해서 확실한 정보를 얻을 수는 없지만, 자신만의 기준으로 과거를 판단하고 점수를 준다는것은 역사책에서만 누릴 수 있는 기쁨입니다. 신동준의 [G2 시대리더십으로 본 조선왕 성적표]는 그런 책중 한권입니다. 조선왕들을 "리더쉽"이라는 기준으로 평가했습니다. 평가의 결과는 크게 세 부류로 나뉩니다. 


1. 명군 : 태조,태종,세종,세조,광해

2. 용군: 성종,중종,숙종,영조,정조 

3. 암군: 선조,인조,고종        

기존의 평가와는 다른 왕들이 있습니다. 몇몇 왕은 과오에 대한 논란이 아주 치열한 왕도 있죠. 광해가 대표적인 왕입니다. 외교 성군설 부터 폐륜설까지 그 평가가 극과 극입니다. 신동준은 명군에 포함했습니다. 정조는 용군에 넣었습니다. 의외죠?! 기존 보통의 평가는 조선후기를 르네상스로 이끈 성군입니다. 이렇게 신동준만의 개성이 드러난 조선왕의 평가입니다.


내가 신동준의 평가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


1) 신동준의 평가를 가만히 살펴보면 그의 기준이 역시 독특합니다. 리더쉽을 기준으로 평가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의 리더쉽은 우리가  알고 있는 "같이 가는 "리더쉽이 아닙니다. 그의 리더쉽은 "끌고 가는" 리더쉽입니다. 이 리더쉽에 대한 생각의 차이가 조선왕들의 평가에 있어 큰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끌고 가는 리더쉽이라서 신동준의 리더쉽은 극단적인 단계로까지 이어집니다


치세에는 '군신 정치'가 맞지만 난세에는 '군주독치'가 정답에 가깝다. 

언뜻 보면 맞는 말 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신동준이 조선왕들에 대한 평가에서 보듯이 그리고 대부분의 왕과 정치인들이 말하듯이 모든 시대가 난세입니다. 통치자에게 의례적으로 하는 태평성대라는 아부성 발언말고는 모든 시대가 난세입니다. 우리 역사가 "자유"의 확대라는 역사관으로 본다면 이 군주독치의 위험이 크다는 것을 과거는 물론 현대사에서 수 없이 많이 경험했습니다. 난세를 핑계로 독재를 강화했던 수많은 통치자들을 우리는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2) 신동준이 왕들을 평가한 모습을 보면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명군은 광해를 제외하고는 모두 조선 초기의 왕들입니다. 모두 붕당으로부터 자유로었던 시기의 왕들입니다. 신동준은 붕당에 대해서 알레르기를 일으킬 만큼 반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학자로서 의외의 모습입니다. 사실 신동준의 평가를 보면 광해를 명군으로 평가한 것이 신기합니다. 암군으로 평가할 줄 았았습니다.암군은 모두 조선을 파탄으로 이끈 왕들입니다. 암군에 대해서는 크게 논란이 없습니다. 문제는 용군입니다. 신동준이 용군으로 평가한 왕들은 대부분 "붕당"으로 인해 저평가를 받았습니다. 신동준은 붕당자체에 대해 극단적으로 혐오감을 표시합니다.  "군주독치"를 선호하는 입장에서는 권력의 축을 신권과 나누는 붕당정치를 좋게 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붕당정치는 민주주의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견제와 균형이야 말로 우리가 그렇게 애타게 찾는 민주주의의 원동력입니다. 견제와 균형이 없는 민주주의는 없습니다. 붕당의 폐해는 붕당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먹을 것이 없어 가난했던 조선이라는 농업국가였기 때문에 나오는 문제였습니다. 양반이 재력을 얻기 위해서는 오로지 권력에 접근해야만 했기 때문에 모든 양반이 붕당에 참가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17세기 이후 경제가 침체되면서 붕당은 더 치열해집니다. 경제가 축소되어서 같이 먹는 타협은 없어지고 상대방을 죽이고 나만 살겠다는 생각이 깊어 지면서 붕당은 제로섬게임이 됩니다. 왕은 이런 정치속에서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피해자가 되기도 하죠. 하지만 신동준은 붕당에 대한 평가는 오로지 왕권을 제약했다는 이유하나입니다. 그래서 성종의 경우에는 아무런 공과도 평가하지 않고 오로지 사림을 등용하기 시작했다라는 이유 하나로 용군이됩니다. 이런 신동준만의 평가는 정조에 이르러 절정에 도달합니다. 정조의 많은 업적은 세종과 비교될만큼 훌륭합니다. 하지만 신동준은 정조가 신권을 완전히 제압하지 못하고 신하들과 지혜를 다투었다는 이상한 죄목을 근거로정조를 용군으로 폄하합니다. 세조가 호학하는 군주였다고 그리고 신하들에게 강연을 했다라며 칭찬하는 대목과는 모순되는 평가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민주주의"이념으로는 타당한 정조의 대화와 소통이 신동준에게는 입맛에 맞지 않습니다. 신동준은 세조를 편애합니다.

원래 강력한 왕권의 구축은 군왕이 쥐고 있는 인사권과 병권 등의 권한을 배경으로 신권세력을 제압해야만 비로서 가능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정조는 신도에 불과한 "쟁지"의 방법으로 군왕의 권위를 강화코자 우를 범했다. ~~~신하들과 지혜를 다툰 정조를 높이 평가 할수 없는 이유다.


3) 정조의 평가를 보고 다시 세조의 평가를 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 정조의 내치 업적은 세조에 비해 절대 떨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왜 세조는 명군, 정조는 암군에 가까운 용군이라는 평가를 받을까요? 세조의 평가를 보면 진관체제를 확립, 북방개척,농업생산력 확충을 통한 민생안정입니다. 그리고 "불안한 정세"를 안정으로 이끌었다는 것입니다. 진관체제의 비효율성은 여기서 따지지 않겠습니다. 북방개척과 농업생산력의 확충이 세종때의 업적을 이어가고 있었을 뿐이지만 망치지 않은 것이 어디냐라는 생각에 넘어갑니다. 하지만 불안한 정세는 이상합니다. 안평대군과 김종서가 반란을 일으키려해 어쩔 수 없이 정치에 개입했다는 이상한 논리를 폅니다. 그러면서 실록을 인용해 안평대군이 모반을 일으키려 했다고 그 세조의 쿠테타에 대한 정당성을 입증합니다. 있는 그대로 믿을 수 없는 실록입니다. 안평대군은 세조가 쿠테타를 일으키기 위한 핑계였을 뿐입니다. 역사의 기록은 승자의 기록아닙니까? 패배자 안평은 쿠테타 예비 혐의로 죽어야 합니다. 사실 신동준은 실록의 인용이 자의적입니다. 마음에 들면 그대 인용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실록이 조작이라고 합니다. 또 실록에 의해 세조가 당대에 평가가 좋았다라는 주장을 펼치며 세조를 옹호하여 당황스럽게 만듭니다. 서슬퍼런 쿠테라 정권의 시절이었습니다. 평가라고 다 같은 평가가 아니지요. 정조는 이미 강할 대로 강해진 신권과 대립했고, 쿠테타로 집권한 세조는 신권을 칼로 누르고 돈으로 통제합니다. 신동준은 부국강병이 조선왕들의 평가에 있어서 중요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세조 시절 한명회 등 공신들이 엄청난 부정축재를 저지른 것을 보면 누구를 위한 "부국"이었나 궁금합니다. 신동준에게 "누구를 위한 부인가?"는 중요하지 않아 보입니다. 오로지 강력한 왕권에 의한 부국강병뿐입니다.


신동준의 평가를 보면  그가 생각하는 좋은 리더쉽은 신권을 누르고 강력한 왕권에 의한 통치입니다. 헌법 조문이 생각납니다. 

제37조①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

          ②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난세를 핑계로 많은 "본질적인 자유와 권리를 침했던"역사가 먼저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그런지 군주독치라는 말에 거부감이 생깁니다.


이 책 이전에 조선왕들을 다룬 몇 권의 책이 최근에 인기를 끌었습니다. 저자의 말처럼 조선이 친숙하고 현재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조선왕들을 다룬 책에서 저자들마다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왕들을 평가했습니다. 그 당시의 상황을 많이 고려한 평가도 있고, 현대를 기준으로 내린 평가와 기존의 해석과는 다른 평가도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저는 백인백색의 성적표를 비교해 보겠습니다. 첫번째는 오늘의 주인공 신동준의 [G2 시대리더십으로 본 조선왕 성적표], 두번째는 이덕일의 [조선왕을 말한다], 세번째는 얼마전에 완간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그리고 기타 몇 권의 책들입니다. 모든 왕들의 성적표를 비교할 수는 없고 제가 관심이 가는 왕들과 평가가 엇갈리는 왕들을 중심으로 평가해 보겠습니다.


 

신동준 성적표   이덕일 박시백  기타 
 정조 용군(중) 
쓸데 없이 신하들과 지혜를 다투다.










성공 
정치 보복을 중지.
신분제 개혁, 화성 신도시 개혁으로 새로운 시대를 이끌여 함




독살설을 지지 
성공
뛰어난 자질, 자세, 성실성 부족함 없는 군주,신권이 왕권을 누른 시대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함, 사도세자의 한이 치세 내내 발목을 잡음


 


 
만병통치약 : 성장없는 발전의 시대. 이상적인 왕이었으나 현실을 뛰어 넘지 못함. 

 
세조

명군(상) 
권신을 토벌해 사직을 안정시키다.








실패
잘못된 쿠테타와 공신의 시대, 공신들의 무분별한 권력 남용과 부의 축적이 이루어짐 




중립
쿠테타로 집권 치세를 이루었으나 역쿠테타에 대한 두려움에 공신을 권력화 시킴, 공신들의 부정부패가 나라를 뒤흔듬


 
 
만병통치약 : 쿠테타로 집권. 치세는 이루었으나 치세를 일부 공신이 대부분 누림.

광해 명군(상)
탁월한 외교술로 국익을 지켜내다











보통
대외 문제에는 탁월한 현실인식, 내정 문제에서는 소수파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함, 자기 세력조차 조절 하지 못하고 사회통합에 실패함




실패(?)
빛나는 외교 능력과 훌륭한 솜씨를 가짐, 세자시절 적자와의 경쟁이 치명적 단점이 됨, 강력한 왕권이 오히려 옥사와 궁궐공사등으로 독이됨



오항녕,광해군 실패
과도한 궁궐 공사등 내정에 실패, 내정이 불안해서 전쟁능력과외교까지 불안, 실록에 의존한 평가

한명기, 광해군 성공
탁월한 외교능력,
실록은 반정세력에 의해 부정적으로 서술됨, 궁궐 공사는 부득이한 일이었고 대동법 등 내정에서도 노력함
 
 http://bog.yes24.com/document/6817006




 
만병통치약  : 외교로 인기는 얻을 수 있으나 선거에 이기려면 내정이 중요하다.

흥미롭게도 평가가 엇갈리는 세 왕은 조선의 전기,중기,후기에서 조선의 발전방향을 이끌었던 혹은 이끌어야 했던 왕이네요.세조는 조선 초기의 역동성을 발전 시켜야 했던 왕이었고, 광해는 명청 교체기에 조선의 위치를 확립하고 복구와 발전을 해야했던 왕, 정조는 조선 후기에 조선을 부흥시켜야했던 왕입니다. 모두 임무가 막중했네요.


신동준의 [G2 시대리더십으로 본 조선왕 성적표] 동의하던 동의하지 않던 같이 읽어보고, 같이 생각해 보았으면 하는 책입니다. 




YES마니아 : 골드 l****0 2013.12.20. 신고 공감 5 댓글 11
리뷰 총점 종이책
[13-68] 조선의 역대 왕을 평가하다.
"[13-68] 조선의 역대 왕을 평가하다." 내용보기
평가의 기준   누군가를 평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 평가의 기준을 선택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이 책에서 현재를 G2 시대라는 난세(亂世)로 보고 이를 타개할 리더십을 제시하기 위해, 조선의 역대 왕을 평가한다. 왜 조선의 역대 왕일까? 저자는 그 이유로 조선 시대가 가지고 있는 두 가지 특징을 들고 있다. “첫째, 조선조가 21세기를 사는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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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의 기준

 

누군가를 평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 평가의 기준을 선택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이 책에서 현재를 G2 시대라는 난세(亂世)로 보고 이를 타개할 리더십을 제시하기 위해, 조선의 역대 왕을 평가한다. 왜 조선의 역대 왕일까? 저자는 그 이유로 조선 시대가 가지고 있는 두 가지 특징을 들고 있다.

첫째, 조선조가 21세기를 사는 한국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왕조라는 점이다. 이웃 중국인과 일본인이 각각 조선조와 비슷한 시기에 존재했던 명/청조와 에도 막부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는 것과 같다. 대통령 후보가 청와대 입성 직후 예외 없이 선출된 왕의 모습을 보이는 게 그 증거다. 중국의 공산당 총서기와 일본의 총리가 각각 선출된 황제선출된 쇼군의 모습을 보이는 것과 유사하다.

둘째, G2 시대의 혼란스런 모습이 조선조 역사에 등장한 왕조교체기의 혼란스런 모습과 사뭇 닮아 있다는 점이다. 개국 초기에 빚어진 원/명 교체기의 혼란, 왜란 및 호란으로 상징되는 명/청 교체기의 혼란, 아편전쟁 이후 반세기 가까이 진행된 동서 문명의 충돌시기의 혼란이 그것이다. 모두 21세기 현재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G2 시대 소용돌이의 원형에 해당한다.1)

 

그런데 이런 기준으로 조선 왕을 평가하다 보면 상대적으로 위기상황에 강한 독재정(獨裁政)군주독치(君主獨治)’를 추구한 왕들에게 높은 평가를 할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신권정치(臣權政治)를 주장하는 정도전(鄭道傳)을 제거하고 사실상 조선왕조를 창업한 태종(太宗)이나 신권정치(臣權政齒)로의 회귀라는 흐름을 깬 세조(世祖)가 높이 평가 받는 것은 당연하다. 아니, 저자의 기준에 따르지 않더라도 이 두 사람은 명군(明君)으로 꼽을 수 밖에 없다.

또한 임진왜란에 대비하지 못한 선조(宣祖)나 병조호란을 유발한 인조(仁祖), 사실상 왕조의 멸망을 초래한 고종(高宗)이 암군(暗君)으로 꼽히는 것도 당연하다.

 

다시 말하면, 국제 정세에 대한 안목, 위기 상황에 대한 대처능력, 신하에 대한 장악력, 결단력 등의 유무를 기준으로 명군(明君), 용군(庸君), 암군(暗君)으로 구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 국왕의 리더십을 상, , 하로 평가한 것이다.

 

 

평가가 엇갈리는 국왕들

 

난세(亂世) 극복을 위한 강력한 통치 리더십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저자가 선정한 명군(明君) 가운데 태조(太祖)와 광해군(光海君)의 경우는 2% 부족한 측면이 있다.

 

우선 태조(太祖)의 경우 그가 장수(將帥) 혹은 군벌(軍閥)의 영수(領袖)로서 뛰어났지만, 즉위 후에 제왕의 통치 리더십을 발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정도전(鄭道傳) 등 급진개혁파 사대부의 얼굴마담이자 1의 사대부에 불과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당 태종(唐 太宗) 이세민(李世民)에 의해 당()나라의 개국 시조가 된 당 고조(唐高祖) 이연(李淵)과 비슷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본다.

 

광해군(光海君)의 경우에도 명/청교체기라는 위기를 중립외교로 잘 헤쳐나갔고, 대동법을 시작하는 등 나름 임진왜란 이후 전후 복구에 노력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궁궐의 재건에 지나치게 몰두하고, 훗날 거리를 두었지만 초기에 배타적 성향의 대북(大北)에만 힘을 실어주는 바람에 정치적 기반이 약화될 수 밖에 없는 정치를 했다는 점에서 영조(英祖)와 정조(正祖)를 제치고 서슴없이 명군(明君)으로 꼽기에는 다소 부족한 감이 있다.

 

 

저자가 용군(庸君)으로 선정한 5명의 임금은 모두 난세(亂世)가 아닌 치세(治世)의 군주라는 점이 흥미롭다. 게다가 그 가운데 성종(成宗), 영조(英祖), 정조(正祖)는 흔히 명군(明君)으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성종(成宗)의 경우에는 사림(士林)을 대간(臺諫)으로 중용하여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만들었고, 유명무실했던 삼사(三司)의 정치 비판기능을 강화하여, 민주정(民主政)의 성격을 가진 군신공치(君臣共治)’를 이루었다. 덕분에 당대와 후세에 세종(世宗)과 더불어 군주의 모범 롤모델로 추앙 받을 수는 있었지만, 저자의 지적대로 조선의 정체성을 군약신강(君弱臣强)의 신권국가(臣權國家)로 확정해버렸다.

 

저자는 영조(英祖)탕평(蕩平)을 기치로 내걸고 상황에 따라 환국과 처분을 적절히 구사하는 임기응변으로 신권 세력을 제압하고 왕권을 회복하는 데 나름대로 일정한 성공을 거둔 셈이다. 그러나 영조는 척신계(戚臣系) 인사를 대거 발탁해 순조(純祖) 이후에 나타나는 세도정치(勢道政治)의 빌미를 제공(하였다는 점에서) 외척과 연결된 완론탕평(緩論蕩平)’의 한계2)를 보였기에 명군(明君)이 아닌 용군(庸君)으로 선정하였다

정조(正祖)는 사물의 요체를 꿰는 지사(知事)에 해당하는 쟁지(爭知)’의 방법으로 왕권을 강화하려고 했다. 그 결과 그는 군신들로부터 공자 이래 문물을 뜻하는 사문(斯文)의 지도자, 세상을 밝게 다스리는 세도(世道)의 주재자, 성리학이 역설하는 의리(義理)의 주인이라는 칭송을 받게 되었다.3)

하지만 정조(正祖)가 선택한 ‘쟁지(爭知)’의 방법은 왕의 리더십으로 적합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2인자의 리더십에 해당하기 때문에 저자는 정조(正祖) 역시 용군(庸君)으로 평가하였다.

 

결국 저자는 이들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능력은 있지만, “모두 군도(君道)가 아닌 신도(臣道)의 길을 걸었다는 점에서 결코 명군으로 평할 수 없다4)고 주장하는 것이다.

 

 

조선왕 성적표가 말하고자 하는 것.

 

엄밀히 말해서조선왕 성적표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명군(明君)이고 용군(庸君)인가가 하는 조선 왕에 대한 평가가 아니다. 저자가 말하는 난세(亂世)G2 시대를 헤쳐나가기 위한 리더십으로 어떤 것이 좋은가가 중요한 것이다.

 

아마 난세(亂世) 극복을 위한 강력한 통치 리더십이라는 측면에서 다소 부족한 태조(太祖)나 광해군(光海君)을 명군(明君)으로 꼽은 것은 위국위민(爲國爲民)’이라는 기준에서 민생이라는 측면을 감안한 것이라 생각된다. 비록 본인의 리더십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뛰어난 신하를 통해 도탄에 빠진 백성의 삶을 향상시켰다는 점을 높이 산 것이 아닐까

 

아무리 리더십이 뛰어나더라도 그들만의 리그에서 발휘한다면 큰 의미가 없다. 한 국가의 지도자라면 박지원(朴趾源)이 말했다는 재물이 백성에게 축적된 뒤에야 비로소 국가 재정도 풍족해질 수 있다.5)는 말을 염두에 두고 백성을 위한 정치를 펼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모든 것은 국제 정세의 흐름을 살피고 국가의 위기에 대비하는 소위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위민(爲民)에 치우쳐 망국(亡國)을 초래하거나 위국(爲國)에 치우쳐 백성의 삶을 어렵게 만드는 것 모두 잘못된 길이라고 생각한다. 국가의 지도자라면 위국(爲國)와 위민(爲民)의 조화를 통해 국민이 자발적으로 지도자가 제시한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나아가도록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이 최고의 리더십이라고 본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에 대한 리뷰입니다


1) 신동준, <조선왕 성적표>, (인간사랑, 2013), pp. 8~9

2) 신동준, 앞의 책, p. 249

3) 신동준, 앞의 책, p. 253

4) 신동준, 앞의 책, p. 10

5) 신동준, 앞의 책, p. 363

w******f 2013.12.21. 신고 공감 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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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들의 성적표를 매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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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주관적이다. 그래서 누구라도 역사와 역사 인물을 평가할 수 있고, 그것이 타당한 논리를 가지고 있고, 나름의 교훈을 가지고 있다면 가치가 있다. 그리고 그런 소양을 대부분의 국민이 가지고 있다면 아마도 정말 희망이 있는 나라가 될 것이다. 그런데, 어떤 이의 평가와 나와 많이 다르다면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몇 가지의 반응이 있을 수 있다. 우선 그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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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주관적이다.

그래서 누구라도 역사와 역사 인물을 평가할 수 있고, 그것이 타당한 논리를 가지고 있고, 나름의 교훈을 가지고 있다면 가치가 있다.

그리고 그런 소양을 대부분의 국민이 가지고 있다면 아마도 정말 희망이 있는 나라가 될 것이다.

그런데, 어떤 이의 평가와 나와 많이 다르다면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몇 가지의 반응이 있을 수 있다.

우선 그 평가에 대해 배척하는 것이다. 나와 전혀 다른 배경에서 판단을 하고 있고, 그것은 옳지 않은 해석이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아니 널리 퍼져서는 안되는 견해라 보는 것이다.

전적으로 나의 견해를 바꿀 수도 있다. 그 동안의 내 잘못된 견해를 반성하고, 새로운 해석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중간은 없을까? 물론 있다.

비판하되 그런 평가에 대한 배경을 이해하려는 자세가 있을 수 있고,

받아들이되 일부의 견해만 받아들일 수도 있다.

비판하면서 이해하려는 자세에서도 비판과 함께 일부에 대해서 긍정적인 견해라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비판을 통해서 상대의 견해에 대한 비판의 무기를 벼리는 수단으로 쓸 수도 있을 것이다.

 

신동준의 조선왕 성적표를 읽으면서 이러저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신동준은 조선의 임금 13인을 두고 그들의 리더십을 평가하고 있다.

기본적인 인식은 현재가 G2 시대이며, 난세에 속한다는 것이고, 이러한 난세에 우리가 귀감으로 삼을 수 있을 만한 임금들, 반면 교사로 삼아야만 임금을 살펴보자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13인의 조선의 임금들을 세 부류로 나누고 있다.

명군(明君), 당연히 훌륭한 임금들로 최고의 리더십을 발휘하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바로 태조, 태종, 세종, 세조, 광해군을 들고 있다.

용군(庸君), 평범한 임금들이다. 기존에 어느 정도 평가를 받았던 임금들이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비판거리가 많다는 임금들로 성종, 중종, 숙종, 영조, 정조를 들고 있다.

암군(暗君), 형편없는 임금들이다. 선조, 인조, 고종을 여기에 포함시키고 있다.

 

기존에 이런 비슷한 평가를 한 사학자가 있다. 이덕일씨는 조선 왕을 말하다1권과 2권을 통해서 여러 각도에서 조선의 임금들을 평가하였다. 그런데, 이덕일과 신동준의 평가가 다른 부분이 적지 않다.

 

아마도 가장 첨예하고 다를 부분이 세조와 정조, 그리고 광해군일 것이다.

이덕일이 정조를 조선 후기 부흥을 꾀했던 임금으로 봐서 훌륭한 임금으로 평가한 반면, 신동준은 쓸데없이(!) 신하들과 지혜를 다투었던, 별볼일 없었던 용군으로 평가하고 있다.

세조의 경우에는 야욕에 불타 쿠데타를 일으키고 공신들에게 휘둘려 이후 화근을 만든 주인공으로 보고 있는 것이 이덕일의 견해라면, 신동준은 쿠데타는 필요했던 것이며, 많은 신하들이 환영을 했고, 단종도 순순히 선위를 했다는 견해를 펼치고 있으며, 이로써 권신들을 토벌해서 나라를 안정시켰다고 하고 있다.

광해군의 경우엔, 이덕일이 의도에 비해 한계가 많았던, 그래서 제대로 보위도 지키지 못한 임금으로, 즉 아쉬움이 많은 임금으로 보고 있는데 반해, 신동준은 탁월한 외교를 펼쳐서 국익을 지켜낸, 그래서 축출된 것이 못내 아까운 임금으로 보고 있다.

 

신동준의 평가는 스스로도 리더십에 대한 평가라고 한정짓고는 있지만, 정작은 그 임금 전체에 대한 평가를 하고 있다. 그런데, 리더십이라고 하는 것이, 대체로 패도에 치우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강력한 왕권을 확립해서 일사불란하게 국가 경영을 한 임금들에게 점수를 후하게 주는 것이다. 반면에 홍문관이니, 규장각이니 하는 학문이나, 언론 관련 기관에 대해서는 상당히 안 좋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래서 정조도 좋은 평가를 내릴 수가 없으며, 성종도 좋은 평가를 내릴 수가 없는 것이다. (예외가 바로 세종이다. 세종은 어찌할 도리 없이 좋은 평가를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의문이 드는 것은 과연 이런 평가의 의도가 무엇일까, 하는 것이다.

역사는 씌여지는 것이므로, 분명히 역사에 대한 평가에는 본인의 역사 의식이 담겨있을 수밖에 없다. 그것을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역사 의식에 공감을 할 수 없다면 그 평가에 대한 평가도 박할 수 밖에 없지 않나 싶다.

더더욱 G2 시대를 전제로 한 평가이기 때문에, 이러한 조선의 임금들에 대한 평가를 우리 현대사의 지도자들, 즉 대통령들에 적용시키겠다는 의도로 읽히는데, 그렇다면 어떤 대통령에 대해서 더 좋은 평가를 할지에 대해 (비록 표현은 하지 않고 있지만) 명약관화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나는 그러한 견해도 동의하지 않는다.

(민주주의 시대에 패도 정치의 표본인 태종을 본받으라?)

 

역사에 대해 논란이 많다.

역사 교과서에 대해서 공방이 치열하다. 아니 어수선하다.

역사 공부, 역사 교육의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서로 의견이 다르다.

이제 역사를 배우는 학생들에게 무엇을 주입시키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나라가 완전히 뒤바뀔 듯이 달려들고 있다.

그래도 국정 교과서로 한 가지의 해석만 존재하는 역사를 배웠던 세대가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처럼 논쟁을 하는 상황이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하는 생각도 든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서야 새로이 역사를 배우고, 역사를 달리 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도록 하는 것은, 역사 교육도 아니고, 역사 공부도 아니지 않나 싶다.

어떤 특정한 것이 옳은 게 아니라, 논쟁 속의 역사를 해석할 수 있는, 생각의 힘을 기르는 것. 그게 정말 역사 공부가 아닌가 싶다.

(물론 일제 침략까지도 미화시키는 역사 교과서는 기본적으로 역사 교과서가 아님으로 논외다)

 

신동준의 조선왕 성적표은 분명한 견해를 가지고, 일관되게 역사를 해석하였다. 그리고, 다른 견해들과 비교해서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것, 자신의 견해와 비슷한 것만을 읽어서는 책읽기를 통해서 생각이 깊어지고, 넓어지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신동준의 조선왕 성적표를 통해서 내 생각의 깊이와 넓이가 한 치라도 깊어지고 넓어졌기를 기대한다.

 



(2013. 12)

YES마니아 : 로얄 n*****m 2015.11.08.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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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 시대리더십으로 본 조선왕 성적표] G2 시대에 리더가 갖춰야 할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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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이 연일 시끄럽다. 무슨 이슈가 그리도 많은지 서로 싸움질 하느라 여념이 없다. 경제는 날로 어려워지고 국민들의 삶의 무게는 더해져만 가는데 그들의 관심사는 자신들의 이익뿐인 듯하다. 상대방을 비방하고 비꼬는 건 예삿일이고, 반대를 위한 반대를 행하고 때론 멱살잡이까지 서슴지 않는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한숨을 넘어 우울할 정도다. 덩치만 컸지 한 수 아래로 보던 중
"[G2 시대리더십으로 본 조선왕 성적표] G2 시대에 리더가 갖춰야 할 자세" 내용보기

정치권이 연일 시끄럽다. 무슨 이슈가 그리도 많은지 서로 싸움질 하느라 여념이 없다. 경제는 날로 어려워지고 국민들의 삶의 무게는 더해져만 가는데 그들의 관심사는 자신들의 이익뿐인 듯하다. 상대방을 비방하고 비꼬는 건 예삿일이고, 반대를 위한 반대를 행하고 때론 멱살잡이까지 서슴지 않는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한숨을 넘어 우울할 정도다. 덩치만 컸지 한 수 아래로 보던 중국이 미국과 맞먹는 강대국이 된 G2 시대가 되었지만, 대한민국은 여전히 제자리 걸음이다. 아니 어쩌면 국가 자체의 경제력을 제외하고는 전부 하향세로 돌아섰는지도 모르겠다. 달이 차면 기울 듯 국가도 흥망성쇠를 반복한다. 어떤 나라의 역사를 보더라도 국가의 전성기와 쇠퇴기가 존재하고 그 중심에는 해당 국가의 최고 지도자가 있다. 매번 새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많은 기대를 하지만 금새 실망감에 빠져서 관심을 끊게 된다. 판단은 각자의 몫이라지만 현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는 생각은 그리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 대통령들 중 누군가를 추종하여 내뱉는 정치적인 발언은 아니다. 내가 보기엔 전부 오십보백보라 여겼었다. 


역사를 알고자 하는 이유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기 위함일 것이다. 역사 속에서 수많은 국가들이 건설되었었고 패망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태평성대를 만들어 낸 지혜도 혹은 난세가 만들어진 원인도 배울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사실 이 책은 우리가 아니라 우리가 선출한 대통령 이하 정치인들이 봐야 한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은 제왕의 리더쉽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 시대의 왕의 권한과 현대의 대통령의 권한은 큰 차이가 있고, 정확히 말하자면 대한민국은 “국민”이 주인인 나라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국민이 선출한 대표들, 그들이 어떤 의사결정을 하느냐에 따라 국가의 운명이 좌우되는 것은 당시나 지금이나 똑같다. 저자는 G2 시대에 필요한 리더의 역량에 대해 과거 조선시대의 역사 속 왕들을 통해 추려냈다. 수많은 왕들은 존경 받아 마땅한 명군(名君), 그저 그렇다고 평가되는 용군(庸君), 나라를 망하게 한 것이나 다름없는 암군(暗君)으로 분류되고 있다. 역사에 대한 평가는 보는 시각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저자는 통치리더쉽에 초점을 맞춰서 왕들을 평가한다. 학계에서 의견이 분분한 내용에 대해서는 적절한 근거를 제시한다. 


저자가 책 전체를 아울러 전하는 핵심 메시지는 ‘군약신강(君弱臣强)’이면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즉, 왕권이 약화되고 신하의 입김이 강해진 시대에 나라가 위태로워졌다는 말이다. 저자는 나라의 기틀이 잡힌 안정기에는 덕을 바탕으로 한 왕도정치가 적절하지만, 대내외적으로 위태로운 시기에는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한 패도정치가 유효하다라고 말한다. 예를 들자면, 삼국지의 배경 시대가 난세인 만큼 국가의 존망과 관련해서는 유비의 정과 덕보다는 조조의 결단력과 추진력이 제왕에게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두 지도자의 행보에 따른 결과는 모두가 잘 알듯이 위나라의 통일로 종결되었다. 이런 관점으로 현재를 바라본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는 분명히 난세에 가깝다. 서민들의 삶은 나날이 팍팍해지고 대표로 뽑아놓은 이들과의 소통은 불가능에 가깝다. 대내외적으로 경제적 위기가 계속 되고 있고 부익부 빈익빈, 지역 및 계층 간 갈등의 심화, 그 외 다양한 사회적인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좋은 지도자의 소신 있는 용단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싶다. 물론, 대한민국은 왕권국가가 아니고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만큼 적절한 권한의 분배가 이루어져서 균형을 이뤄야겠지만,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는 식의 우유부단함보다는 국익을 고려한 뚜렷한 주관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책 속에서 대표적인 명군으로 소개되고 있는 태조, 태종, 세종, 세조, 광해는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읽고 변혁을 일궈냈다. 국가를 건설한 태조, 강력한 패도정치로 초기 과도기를 넘어 안정기를 만들어 낸 태종, 뚜렷한 소신으로 한글창제의 위업을 이룬 세종, 가장 강력한 부국강병책을 펼쳤던 세조, 후금과 명나라의 과도기에 탁월한 외교력으로 나라를 보위해낸 광해의 모습은 현 시대의 지도자들이 보고 익혀야 할 자세이다. 안타깝게도 작금의 현실은 명군으로 불릴만한 지도자가 없는 듯하다. 패망의 원인이 된 붕당정치, 세도정치의 모습이 현실에 자꾸 오버렙 된다. 국익을 생각한 명확한 비전과 방향을 제시하기 보다는 포퓰리즘 정책, 정치가 난무하고 그나마도 서로 간 이권다툼에 여념이 없다. 민생을 돌아보고 의견을 수렴하여 국책에 반영하기 보다는 단순히 귀를 닫아 버린 독재정치로 변질되어 가는 듯하다. 붕당정치에 참여하며 왜란을 자초했던 선조의 모습이나 줏대 없는 명분론에 빠져 두 번의 호란을 자초한 인조, 세도정치를 부활시키며 나라를 빼앗기게 만든 고종의 모습이 복합적으로 보인다고 하면 너무 과한 것일까. 


어떠한 조직이든 간에 변화는 아래쪽에서 시작될 수 없다. 개인 혹은 특정집단의 이익이 아닌 전체를 살피고 제시한 국가운영방안이 공유되고, 지도자가 큰 목표를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가되 귀는 열어두는 소통과 배려의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 시발점이 되리라 생각한다. 저자가 말했듯 제왕과 참조의 리더쉽은 엄연히 다르다. 참모들이 가져야 할 자세는 리더의 역할이 아니라 계층 간 소통의 창구 역할을 하겠다는 마음가짐이 아닐까 싶다. 독단으로 흐를 수 있는 정치의 균형을 유지하고 정책을 수행하되 만인을 챙겨보려는 자세가 비춰진다면, 국민들 역시도 반목을 멈추고 이기심을 버리고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길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난세에 군강신약(君强臣弱)이 필요하다지만 현대 시대에는 일방적인 군강(君强)도 문제가 될 듯하다. 지도자가 가져야 할 덕목들이 곱절로 늘어난 시대, 그만큼 위대한 지도자가 만들어지기 더 어려워진 듯하다. 그런 지도자를 만날 수 있을까. 간절한 바램을 가져본다.





a*****0 2014.01.08. 신고 공감 2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역사를 배워야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책
"역사를 배워야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책" 내용보기
학교 다닐 때 국사 선생님은 첫 날 첫 시간에 이렇게 말했다. "역사란 지금 현재 우리의 거울과 같다.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알기 위해 역사를 배우는 것이다. 그 전 역사를 통해 닮을 것은 배우고 잘못된 것은 고쳐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유는 모르지만 나는 그 말이 참 좋았다. 역사라는 지식을 왜 배워야하는지도 모르고 달달거리던 중학교 때와는 확연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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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다닐 때 국사 선생님은 첫 날 첫 시간에 이렇게 말했다.

"역사란 지금 현재 우리의 거울과 같다.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알기 위해 역사를 배우는 것이다. 그 전 역사를 통해 닮을 것은 배우고 잘못된 것은 고쳐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유는 모르지만 나는 그 말이 참 좋았다. 역사라는 지식을 왜 배워야하는지도 모르고 달달거리던 중학교 때와는 확연히 다른 역사관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20년이 지난 지금 나는 다시 한 번 이 말을 상기할 수 밖에 없었다. 같은 이유로 쓰여진 책 한 권을 만났기 때문이다.

 

   현 시대를 G2 시대라 칭한다. 냉전시기 이후 패권을 장악해 왔던 미국를 견제할 수 있는 신흥국가로 중국이 떠오르고 있어서이다. 조선시기 중국의 2번의 정권 교체가 이뤄졌고 조선 후기 일본이 새로운 패자로 등극한 경우까지 3번의 G2시기가 있었다. 그 당시 왕들의 면모를 살펴보면서 우리가 가져야하는 자세를 고민해보자는 것이 이 책의 취지이다.

 

  책 읽는 내내 가슴이 아팠다. 우리의 역사가 참으로 보잘 것 없구나 싶어서 우리가 진정한 자주 국가 였던 적이 언제였는지 한없이 초라해져보였다. 중화사상이란 것이 이토록 어처구니 없는 결과를 낳았구나 싶어져서 더욱 그랬다. 조선 왕조 500년의 시간 중 우리가 그나마 태평성대를 누리던 때는 태종과 세종시기 정도가 아니었나 싶어졌다.

 

   작가는 비록 광해를 명군에 넣었으나 글을 읽고 난 뒤 그의 외교능력은 칭찬해 줄만 하지만 궁궐 짓기에 몰두한 나머지 백성들에게 무리한 세금착출을 진행한 광해군을 나는 용군에 넣을 수 밖에 없었다.어차피 반역에 불과한 반정이었지만 그가 좀 더 국내 기반 안정에 초점을 맞춰 내실을 기했더라면 인조반정이 일어날 꺼리를 주지 못했을테고,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두 번의 호란으로 치욕의 역사를 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말한다. 역사에는 If란 없다고 만약 그랬더라면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그러기에 아쉬움이 남은 역사를 기록하지 않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그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아쉬움으로 점철된 역사를 남기지 않기 위해 세계 정세의 흐름을 살펴보고 그 흐름에 역행해 자만하지 않도록 대처해야 할 것이다. 어느덧 세계 경제에 이름을 알리고 나름의 한류를 펼치고 있다고는 하지만 강국 속에 대치해 있는 상황은 변하지 않았음이다. 무조건적인 외침보다 우리가 지켜야할 자세를 한 번 더 고민해야 할 때이지 싶다.

 

  책 자체는 어렵지 않았지만 성리학에 대한 기본 지식이 더 풍부했더라면 저자의 글을 이해하는  폭이 훨씬 넓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조선 왕조의 기본 틀을 성리학에서 찾아가는 오류 속에서 이런 문제들이 불거졌다는 글을 보며 그런가? 하며 넘어가는 내가 조금 창피했다. 전부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인 것 같다.

 

YES마니아 : 로얄 m******7 2013.12.22. 신고 공감 2 댓글 1
리뷰 총점 종이책
조선왕들을 통해 살펴보는 오늘을 사는 지혜-인간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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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다른 제목의 책을 한 권 읽게 되었다. 아주 독창적인 분석으로 조선의 왕들을 재평가하고 있는 책이다. 책은 G2 시대 리더십으로 본 조선왕들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담겨져 있다. 흥미롭게 읽혀지는 책이다. 우리가 조선왕들에 대해서는 많이 알고 있다. 여기에 소재가 되고 있는 인물들도 알고 있는 범위에 그리 멀리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바라보는 시각이 독특하다. 명군,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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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다른 제목의 책을 한 권 읽게 되었다. 아주 독창적인 분석으로 조선의 왕들을 재평가하고 있는 책이다. 책은 G2 시대 리더십으로 본 조선왕들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담겨져 있다. 흥미롭게 읽혀지는 책이다. 우리가 조선왕들에 대해서는 많이 알고 있다. 여기에 소재가 되고 있는 인물들도 알고 있는 범위에 그리 멀리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바라보는 시각이 독특하다. 명군, 용군, 암군으로 기준점을 정하여 기존의 질서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의 예상을 깨고 분류하고 있는 것이다.

 

G2 시대라 하면 큰 두 나라가 공존하는 시기를 말한다. 주로 역사 속에서 G2 시대는 국가가 바뀌는 시기다. 중국을 중심으로 얘기하면 원에서 명으로 넘어가던 시기, 명에서 청으로 넘어가던 시기, 또 일본이 득세하고 주변국이 일본에 시달리던 구한말 등을 말한다. 오늘날, 미국과 소련의 냉전 G2 시대가 끝이 나고 미국 유일의 글로벌한 시대가 한 참이나 진행된다. 그러다 중국이 막대한 인적 자원을 등에 업고 서서히 부상하여 미국과 어깨를 겨눌 만큼 성장해 있다. 지금은 미국보다 중국이 앞서는 것이 아닌가 할 만큼 그 힘이 거대한 것이 중국이다.

 

이러한 G2 시대에 조선왕들을 생각해 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저자는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조선왕들을 위에 제시한 분류 방법에 따라 3 가지 상태로 나누어 상세히 그 이유를 적고 있다. 충분히 공감이 가는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다. 오늘날의 G2 시대를 타개하는 지혜를 찾기 위해 조선 왕조 가운데 3번이나 등장한 G2 시대에 재위했던 조선왕들의 리더십을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분석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오늘날 경제 전쟁의 시대에 기업 CEO나 각계 지도자들에게 나라의 첨병 역할을 하는데 도움을 주길 원한다고 하고 있다.

 

저자는 12명의 왕들을 얘기하고 있다. G2 시대에 강인한 자세로 민족을 지켜낸 인물들을 명군의 위치에 놓고 말하고 있다. 그 인물들에는 태조, 태종, 세종, 태조 광해를 말하고 있다. 광해를 제외한 다른 왕들은 쉽게 공감이 가는 리더십을 보인 인물들이다. 위화도 회군을 통해 백성들을 전화 속에 내몰지 않고 나라를 세운 태조나 실질적인 개국자 태종 그리고 백성들의 입장에서 모든 어려움도 참아내면서 문화의 꽃을 세종 등은 쉽게 그 리더십을 이야기할 수 있을 듯하다. 세종은 한글 창제, 측우기, 해시계, 신기전 등은 세종이 통치하던 시기 백성들을 위한 특출한 리더십이 만들어낸 결과물이 아닌가 한다. 세조의 시대도 리더십으로 보면 강력한 모습을 보인다. 어린 조카가 왕이 되어 있던 때, 왕권이 약화되어 간다고 생각한 그는 강력한 집권 세력에 도전해 왕권을 강화하고 주변 세력들을 결집한 뛰어난 힘을 보여준다. 그 모든 것들이 나라 안정을 통해 백성들을 평안케 하고자 하는 일념이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광해에 와서는 일반적인 생각과 조금 다르다. 광해가 나라를 혼란케 하여 반정을 불러 오고, 결과적으로 폭군의 전형으로 남았다는 역사적 결과를 재해석하여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광해 재임 당시는 명, 청의 변환기다. 청이 욱일승천의 기세로 심양을 중심으로 세력을 얻고 있던 시기다. 이 때 명은 조선에 원병을 청하면서 임진왜란 때 도와주었던 사실을 담보로 하여 조선을 압박했다. 나라 안에서도 사대에 익숙해 있었던 신료들이 명을 도와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하는 세력들이 많았다. 그런데 광해는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읽고 있었다. 명이 서서히 그 세력을 잃어 가고 청이 일어나고 있다는 현실을 직시한 것이다. 그래서 명을 지원하는 척하면서 뛰어난 외교술로 청의 심기를 상하게 하지 않아 청의 공격을 받지 않는 상황으로 이끌어 나가면서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상황을 지워나가면서 백성을 지킨 것이다. 저자는 이 외교술을 광해를 명군에 넣는 요인으로 보고 있다. 사실 당시의 심양은 중국 본토와 고려 사이에 있었던 곳이고 청의 본거지였다. 중국의 두 세력 사이에서 적절하게 나라를 이끌어 가면서 백성을 지킨 것은 높이 살만한 일이다. 반정으로 그의 뒤를 이은 인조가 제대로 된 외교술을 발휘하지 못한 것과 비교해 보면 정말 뛰어난 리더십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인조가 통치하던 때 청은 중국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불안 요소인 조선을 그냥 둘 수 없어 병자호란을 일으키고 조선이 청에게 굴욕적인 화의를 맺었다는 사실을 보면 광해의 G2 시대에 대처했던 지혜를 생각해 볼 수 있게 한다. 저자는 이것을 광해를 명군의 반열에 놓은 이유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암군으로 분류한 왕은 선조와 인조 그리고 고종 등이다. 그럴 듯하다. 물론 개인적으로 시대가 그렇게 만들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왕이 뚜렷한 지도력을 가졌다면 피해갈 수 있었던 전란이 아니었을까 생각되어 진다. 동인, 서인의 붕당 정치로 인해 왜에 대한 사실적인 내용을 잘 파악하지 못하고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해 임진왜란을 자초했던 선조는 말할 것도 없다. 이이의 ‘십만양병설’을 실천에 옮겼더라면 조선이 그리 쉽게 왜에 당하진 않았으리라. 그 후에도 왜의 상황에 대해 이상한 느낌이 일어 김성일과 황윤길을 사자로 보내 그들을 탐지케 한 것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그것도 당파 싸움으로 제대로 실상을 알 수 없게(아전인수격으로 생각함) 되고 준비하지 못한 상황에서 왜란을 맞아 그렇게 백성들을 아프게 만들어 간 것이다. 인조는 말할 것도 없다. 광해가 적절하게 조율하던 두 나라의 관계를 그대로 답습하여 했더라도 호란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다. 그런데 실리 없는 명분론을 앞세워 청을 자극하고 결국 호란을 당하는 입장에 처하게 만든 것이다. 고종도 나라를 혼란스럽게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세도정치의 뿌리를 근절시키지 못하고 결국은 나라를 패망의 길로 가게 만들었던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그러기에 저자는 이 3 왕들에게 가장 나쁜 점수를 주고 있다. 그럴 듯한 이야기다.

 

또 저자는 우리가 성군으로 칭송하는 G1 시대 왕들에게도 신랄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이들에 대해서는 각자가 생각이 다를 수도 있겠지만 저자는 용군-용군이라 하면 평범한 왕을 말한다. -으로 분류하여 이들을 말하고 있는데 그들은 성종, 중종, 숙종, 영조, 정조 들이다.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는 조선왕들이다. 그런데 저자는 성종은 붕당정치의 출발점이 되었고, 중종은 줏대 없이 기회적인 모습을 보였으며, 숙종은 환국정치로 피비린내 나는 정국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또 허울뿐인 탕평으로 아들까지 뒤주 속에서 죽게 만들었던 영조, 신하들과 쓸데없이 지혜 다툼 놀이만 일삼았던 정조 등으로 언급하면서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저자는 우리가 흔히 문화의 꽃을 피우고 유학을 높이고 도학 정치를 실현했다고 높은 점수를 주는 왕들을 이렇게 평가절하 하면서 다시 인식해 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한 번 귀담아 들어볼 만한 생각이다.

 

저자는 조선 왕들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지혜를 말하고 싶어 하고 있다. 글을 읽어가다 보면 그 평가의 기준에 주체성과 백성에 대한 사랑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얼마나 줏대 있게 자신들의 생각을 이끌어 나가는가? 얼마나 백성들의 평안을 만들어 내었는가? 이들이 왕들의 성적표를 결정하는 중요한 사항이 되어 있음을 우리는 책에서 볼 수 있다. 저자는 이러한 일관성 있는 기준을 가지고 조선왕들의 행적을 찾아가면서 그들에게서 오늘의 사는 지혜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좌우에 휩쓸리지 말고 뚜렷한 주관을 가지면서 민중들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갈 수 있는 위정자가 리더십이 있는 자라고 저자는 강변하고 있는 것이다. 위정자, CEO 등은 정말 귀를 열고 경청을 해볼 만한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에게 이 책이 좋은 선물이 되었으면 한다. 또 독자 모두 자신이 처한 현실을 직시하고 그 속에서 지혜롭게 대처해 나가는 슬기로운 생활이 되어야함을 배울 수가 있는 책이다. 감사하게 읽었다. 인간 사랑의 책들은 한결 같이 인간 사랑에 그 중점이 있는 듯하여 감사하다.



j****3 2014.01.03. 신고 공감 1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