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터 솔방울 인물 시리즈는 초등 고학년이상이 읽으면 좋은 수준의 책이다. 예술가 나혜석, 보건기구사무총장 이종욱, 고고학자 손보기, 무량수전배흘림기둥의 아름다움을 전한 혜곡 최순우, 한국최초의 현대식병원을 세운 올리버 R.에비슨, 세계최초 교육보험을 만든 대산 신용호...등 미쳐 잘 알지 못했지만 중요한 인물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좋아하는 시리즈다. 이번에 나온 <오늘 우리 놀이가 먼 훗날 역사가 된단다>는 민속학자 임동권님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옛날만해도 동네 곳곳에는 이야기들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서낭당, 공동묘지, 장승 등 온갖 무서운 이야기부터 일하면서 흥얼흥얼 읊조리는 노동요, 마을잔치를 할 때면 풍물놀이가 빠지지 않는 그 시대. 하지만 언젠가부터 이런 민속 에 대한 멸시 풍토속에 우리들의 가슴속에서도 잊고 있었던, 오히려 서양문화 보다 더 낯설어진 전통 민속 문화.
해방 후 일제 강점기동안 빼앗겼던 우리의 언어, 문화, 역사를 되찾게 되면서 여러 대학에 국어 국문학과가 만들어졌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하고 소설가의 꿈을 키워 온 임동권은 국학대학 문학과에 입학해 그곳에서 인생의 길을 바꾸게 한 스승 방종현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 방언 수집하러 지방에 따라 갔다가 우리 민족의 노래, 진짜 우리 음악인 노동요를 들으며 어린시절 고향 풍경을 떠올리고 감동적인 시를 읽는 느낌을 받는 가슴 뭉클함을 안게 된 임동권은 그 이후 본격적으로 민요 채집, 옛이야기 설화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민속에 관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찾아나서며 자료를 모은 그의 노력과 관심은 국학대학의 전임강사가 되면서 우리나라 최초로 대학에서 민속학 강의를 하게 된다. 스스로 민속학 연구의 길을 개척해 나가게 된 것이다.
이후 서라벌 예술 대학 학장이 된 다음에는 국악과 신설을 추진한다. 서양음악에 초점을 맞췄던 그 시대에, 농민들이 하는 농악이나 천한 무당들이 하는 무악을 대학에서 가르친다는 것은 말이 안먹히는 민속악 천시 풍토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국악의 위상을 드높이는 노력에 힘을 쏟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사진학과 역시 이 분의 노력으로 신설된 학과라는 것. 민속자료를 조사하면서 느낀 필요성 때문이었다. 어떤 글이나 말보다 잘 찍은 사진 한 장이 더 효과적이라는 걸 깨달았는데 당시 어느 대학에도 사진학과는 없었다. 어렵게 사진학과 개설 허가를 받아내고 학생들 사이에 '목석 같은 사나이'로 불릴 정도로 자신의 의지대로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목석처럼 단단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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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권님이 일궈 낸 성과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각종 무형문화재 지정에 힘을 썼다. 부녀자들이 모여 노래하고 춤추는걸 문화재로 지정하겠다는게 말이 안되는 소리였다는 그 당시에도 문화재 지정 된 '강강술래', 백제 병사들의 넋을 위로하고 마을의 풍요와 평화를 기원하기 위한 향토축제인 별신굿을 행하는 무녀들까지도 인간문화재로 함께 지정했던 '은산별신제', 유교와 무속이 합쳐진 우리나라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 된 향토축제이며 원시사회의 종교의식이 온전히 살아있는 향토 문화인 '강릉단오제'는 물론 나전 칠기, 매듭, 궁중 음식, 승무, 고싸움놀이 등 각종 민속문화들이 그의 노력에 의해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게다가 일제 강점기때 설을 없애기 위해 서양에서 들여온 양력설로 대신하면서 잃어버렸던 우리의 고유명절 설날을 (음력 정월, 구정) 되찾는다.
민속학 연구는 잃어버린 민족의식 회복, 우리만의 교유한 정서와 문화, 한민족의 생활사를 부각시켜 민속학을 하나의 학문으로 정립했던 월산 임동권 선생님. 한평생 민속학을 위해 살아 온 그는 평생 모은 자료들도 모두 아낌없이 기증하면서 민속학계 자료 공유와 후배들에게 많은 유산을 남겨주고 2012년 별세하셨다. 수많은 편견 속에 민속학의 토대를 일궈 낸 그분의 노력을 우리들이 잘 이어가야 할 텐데 말이다. 우리의 것은 다 낡고 쓸모없는 것이라는 편견속에 우리것의 소중함을 알린 진정한 우리의 학자인 임동권님의 노력에 절로 숙연해진다. 우리 민족만의 고유한 색깔이 담긴 전 통문화 '민속'. 민속학에 대한 진정한 가치를 많은 이들이 함께 알아갔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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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산 임동권 선생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민속학자이다. 이 책은 임동권 선생의 어린 시절부터 2012년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의 삶을 그린 동화이다. 대략 초등학교 고학년 수준이라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위인전이라고 하면 상당히 조선시대나 고려시대 유명위인들을 대상으로 한 경우가 많았는데 최근까지 생존해 있거나 또는 생존했던 인물들은 어린이들에게 좀더 현실감있게 다가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임동권 선생은 아이들에게 좋은 롤모델이 될 수 있는 위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1926년에 태어난 임동권 선생은 일제시대에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가 우리나라에서 민속학자의 길을 걸으신 분이다. 고려대학교로 통합된 국학대학(우석대학교)에 재학하면서 민속학에 관심을 두기 시작해 민속학 강의를 했고 중앙대학교로 통합된 서라벌예술대학에서 교편을 잡으며 다양한 민속 연구를 진행하신 분이다. 집문당에서 출간한 한국민요집 시리즈로 한글학회로부터 외솔상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상당히 감동적이다. 대학 재학시절 전국을 다니면 민요를 정리하여 모은 25,000여 장을 정리하고 분류해 전체 7권으로 계속 출간했던 것이다. 출간했던 출판사는 지금도 여러 전문학술서와 교양서적을 출간하는 집문당이다. 2012년에 세상을 떠나면서 그의 유언에 따라 가족들이 민속학 발전을 위해 2억원을 내놓은 일도 언급된다. "내 평생 벌어 놓은 것이 있다면 책과 제자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책을 사랑했던 선생은 결국 평생 모은 자료들과 재산을 모두 기부하는 것으로 생을 마감하였다. 본문만 130여 페이지에 각 장이 끝날 때마다 초등학교 교과서 속의 민속학이라는 주제로 판소리, 민담, 장승, 솟대, 고싸움놀이 등 아이들이 흥미를 끌만한 주제들을 사진과 함께 제공하고 있다. 학과 공부에도 도움이 되고 아이들의 다방면의 관심을 갖게끔 하는 책으로 널리 추천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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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나의 추억은 참 많답니다. 동네에서 놀던 여러 가지들이 추억의 한 페이지 같아요. 친구들과 산에서 소꿉놀이하던 것도 생각나고 특히 겨울이면 부모님을 따라 산에 들어가 땔감을 준비하던 것들도 생각나네요. 그리고 우리 집 밭 끝에 모셔 놓았던 상여 집은 항상 저에게 무서움을 전해주는 것 중에 하나였답니다. 어느 세 제가 자라면서 그것들이 살아져갔지만 말입니다. 특히 학교에서 돌아오던 나의 어린 시절은 무서움의 하교 길이었던 것 같아요. 특히나 나의 발소리와 함께 거닐던 비닐의 비 내리는 소리, 거기에 집에 가던 중간 다리 옆에서 떨던 추억들 그 다리 옆에는 누가 돌아가시면 남은 옷을 태운다고 하죠? 그걸 곳이라 항상 내 기억 속에 그 곳은 귀신이 나올 것 같은 무서운 곳이었답니다. 그리고 우리 집에 다다르면 산이 보이는데 산을 바라보면 꼭 산 속에서 무엇인가 나올 것 같고 마지막 집으로 내려가던 내리막 길 에서는 옆에 방죽이 있었는데 그 곳에서 어른 들이 달걀귀신이 나온 다는 말에 항상 나의 발자국은 사푼 사푼이었답니다. 혹 달걀귀신이 깨져서 그 안에 귀신이 나올까 그랬나봅니다. 내가 마음에 허해서 그랬나하는 생각도 들고 그런 생각들을 하면 웃음이 입가에 머물기도 합니다. 이상하게 자꾸 집착하고 생각하면 헛것도 보인다는 어린 시절을 경험한 저로서는 우리 어린 시절이 즐겁기도 하고 은근히 무서운 경험들을 한두 개는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출처- 네이버 인물)
이 책 『오늘 우리 놀이가 먼 훗날 역사가 된단다 』는 한국 민속학의 개척자 월산 임동권님에 대한 책이랍니다. 임동권님이 태어나면서 경험한 것과 그 경험으로 자라서 무엇이 되고 우리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하게 되는지 잘 나타나 있어서 참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이 가득한 분이랍니다. 이 분이 계시지 않았다면 우리 과거의 우리 것들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암담합니다. 다행이 임동권님이 계셨기에 이 만큼이나 우리의 것이 남지 않았나하는 안도가 생기네요. 임동권님도 어린 시절 공동묘지나 서낭당, 도깨비 둠벙, 장승…. 어린 동권의 고향도 이런 추억들로 가득했답니다. 초등학교 시절 청양에 살던 동권이 서울 명륜동 형에게 찾아간 이야기도 재미나고 그리고 동권이 유학으로 일본에 간 이야기, 거기서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공부한 이야기도 참 재미나네요. 그리고 전쟁으로 인해 우리나라에 돌아와 일을 하고 군인으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일하고 살아남기 위해 했던 것들도 말입니다. “임 군, 우리나라에 소설가는 얼마든지 있네. 소설가가 되고자 하는 사람 넘쳐나지. 하지만 민요를 연구하는 사람은 아직 없다네. 어떤가, 자네가 한번 그 길을 개척해 보지 않겠나?” p62 1947년 동권은 소설가에서 민속학자로 생각을 바꾸게 됩니다. 그동안 소설가가 되려고 노력했지만 전쟁이나 일본에 의해 우리나라가 국어를 배우지 못한 것에 안타까워 한 거죠. 그리고 방언을 수집하러 다니게 됩니다. 물론 교수님을 따라서 시작한 일이지만요. 그러면서 우리나라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우리 노래를 찾기 위해 우리가요, 우리 민요, 우리 얼을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합니다. 그 시절에 시골 어른들의 노래를 듣고 적기가 어려워서 녹음이라는 것을 알아 그것을 녹음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 것에 박수를 보냅니다. 우리나라에 녹음기가 별로 없어서 녹음하기 어려운 환경에서도 녹음을 하기 위해 여러 가지로 노력한 점 정말 우리에게 이런 우리 민요를 들려주시는데 여러 가지로 노력한 점에 정말 감사를 드립니다. 만약에 이 시기에 이런 노력이 없었더라면 살아지고 없어졌을 것들이랍니다. 특히 소리로 문화재에 오르신 분들의 이야기를 살며시 들여다보면 대부분 직업이 좋지 않았던 분들도 많은데 그 분들을 설득해 우리 것이 이 만큼 소중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보존하게 되는 노력을 하신 분이랍니다. 특히 우리에게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한국 민요집 1> 외솔상을 받으셨다 네요. 사실 저는 외솔상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아마 우리 것, 우리 소리를 널리 알라고 보존해서 받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약력을 보면 정말 우리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셔서 그런지 화려하고 존경스럽습니다. 민요집은 1편 이후에 출판사를 바꿔서 여러 민요집이 나와서 참 감사하더라고요. 이분들이 있어 우리의 것이 이렇게 소중하게 전해져오니 말입니다. 특히나 임동권 님은 “내 평생 벌어 놓은 것이 있다면 책과 제자이다.” 할 정도로 많은 제자가 있었고 책도 있기에 더욱 존경스럽습니다. 아이들 책이라 그런지 아이들이 이 좋은 분의 이야기를 듣고 앞으로 미래에 더욱 도움이 되는 그런 책이길 바래봅니다. 나도 모르던 이 분을 이렇게 책으로 알게 되어 참 감사를 드립니다. 정말 세상에는 좋은 분들도 많고 존경할 분들도 많은 것 같아요. 앞으로 저도 우리 것을 소중히 하고 아끼며 더욱 알아가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살며시 들여다보면서 이렇게도 파란만장한 인생을 사는 구나하는 생각과 이렇게 우리를 위해 많은 것을 남기시고 많은 노력을 하셨구나하고 감동을 하게 됩니다.
(1990년, 강릉 단오제에서 무녀들과 찍은 사진이에요)
![]() 강강술래는 임동권 박사가 발굴하고 주장해서 국가 지정 중요무형문화재로 등재한 첫 성과이다. 당시 원로 문화재위원들은 임 박사의 주장에 대해 시골 아낙네들이 모여 춤추는 것이 무슨 문화재냐며 반대했고,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강강술래는 2009년 유네스코 무형유산에 등재되었다. (사진 출처- 네이버 인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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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책을 읽다보면 참으로 부족한 엄마라는 것을 느낍니다. 이번에 만나게 된 샘터 솔방울 인물시리즈의 이야기는 민속학의 개척자 월산 임동권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솔직히 제게는 낯선 인물입니다. 아이에게만 읽으라고 줄수만 없어 함게 읽으면서 몰랐던 것을 하나씩 알게 됩니다. ![]() 우선 '민속학'이라는 말을 그냥 지나칠수 없습니다. 아이들이 민속놀이라는 말을 통해 민속이라는 단어는 그리 낯설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민속학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민속학'은 우리 민족의 고유한 색깔이 담긴 전통문화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합니다. 그 민속학의 개척자인 월산 김동권 선생님은 우리나라 최초로 대학에 민속학과를 만들고 민속학을 학문으로 발전시킨 민속학자입니다.
1926년 5월 22일, 충청남도 청양군의 작은 마을에서 일곱 남매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난 동권. 유교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넉넉한 살림속에서 어려움 없이 자랐습니다. 엄격한 어머니였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시던 어머니. 이렇게 어릴적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자라나서일까요? 그는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보통학교를 마치고 일본의 고등 보통 학교에 진학해서는 다양한 책의 세계에 빠집니다. 위대한 사람들은 그들만의 노력이 있지만 꼭 옆에서 도와주는 조력자들이 있습니다. 물론 그의 곁에도 처음 책의 세계에 빠질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동권을 위해 영어선생님은 자신의 서재에 있는 책을 마음껏 읽게하고 학교 앞 '홍문당'이라는 서점의 주인도 눈치를 주지않고 동권에게는 마음껏 책을 읽게 합니다. 그것을 계기로 작가라는 꿈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소설을 쓰는 작가가 되는 거야!'
이렇게 작가의 꿈을 가진 그가 어떻게 민속학자가 되었을까요. 국학 대학의 문학과에 입학하여 만나게 된 언어학자 방종현 선생. 소박하고 거칠지만 근사한 소설이나 시처럼 감동적인 민요를 들으며 방종현 선생의 권유로 민요 공부를 하게 됩니다. 그것을 계기로 민속학을 학문으로 발전시키고 싶은 마음에 민속학 강의를 시작합니다. 기존에 있던 학문이 아니라 처음 만들어가는 학문이다보니 어려운 점이 많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민속학 연구의 길을 개척해 갑니다.
내가 모은 자료들은 내 개인의 것이 아닙니다. 문화 유산은 모두가 함께 공유하는 것이에요. 삶의 애환이 담긴 민중의 유산이 제 손에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 본문 132쪽
새로운 길을 가는 사람들은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 분이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걸어갔기에 우리들은 그 길을 따라 어렵지 않게 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민속은 단지 옛것이고 지금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고 우리의 삶이 있는 것입니다. 샘터 솔방울 인물 이야기를 통해 한 사람을 알아가고 그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다양한 것들을 접하게 되는 알찬 시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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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국 민속학의 개척자, 월산 임동권 선생님의 삶과 우리나라의 민속과 전통 문화가 자리 잡히고 정립 되어 온 과정을 이해 할 수 있는 도서이다.
한국 최초로 대학에 ‘민속학과’를 만들어 ‘민속’을 당당한 학문으로 발전시키고, 문화재 위원으로서 우리 문화유산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널리 알리는 데 앞장섰던 분이 임동권 선생이다. 우리 민족의 고유한 색깔이 담긴 전통문화를 연구하는 학문이 민속학이라고 한다. 민속학이라는 말을 처음 들어 보았는데 아동서 이긴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민속학자인 임동권 선생의 삶과 함께 이런 분들의 수고가 있었기 때문에 일제 식민지 시대와 6.25라는 역사를 잃을 수 있는 과정속에서도 우리나라의 전통 문화과 보존 되어 왔음을 알게 될 수 있었다.
세시 풍속, 민속 예술, 판소리, 민화, 민담, 민속놀이 등에 대한 관심과 연구를 하였으며 애정을 갖고 우리 민속학을 체계화 시켜 우리가 실제 생활속에서도 여전히 지켜나갈 수 있음에 그동안 너무나 당연하고 늘 있어 왔던 우리의 민속 문화라고만 여겼다는 생각이 든다. 명절 때면 하는 연날리기, 제기차기...등의 민속놀이나, 요즘은 TV나 미디어를 통해 만날 수 있는 민요를 채집하고, 강릉 단오제, 강강술래, 나전 칠기, 매듭, 궁중음식, 승무, ...등 많은 민속문화들이 문화재나 문화유산으로 등재 되고, 구정이라 부르는 우리의 설날이 임동권 선생에 의해 만들어 졌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문화란 무엇인가? 그 민족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제가 민족 말살 정책을 펼친 이유도 한민족의 맥을 끊기 위함이다. 이 책은 단순히 우리나라의 민속문화를 적립한 임동권 선생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모두가 앞으로도 말 그대로 오늘 우리 놀이가 먼 훗날 역사가 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잘 보존하고 그 중요성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전통 문화를 경시하고 촌스럽고 구시대의 유물처럼 느끼며, 서구 문화가 세련된 사람의 상징인 것 처럼 느껴지는 요즘 어른들과 아이들 모두가 읽고 우리 문화의 소중함을 다시한번 느껴보길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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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학의 정의를 찾아보니 '예로부터 민간에 전승되어온 풍속·제도·습관·신앙 따위를 조사, 기록하여 민족의 전통적 문화를 구명하려는 학문'이라고 나온다. 다소 정의가 어렵게 느껴져서 아이에게 어떤 식으로 들려줘야 할지 어렵게 느껴졌지만 새로운 인물에 대해 배우는 계기가 되었다. 샘터 솔방울 인물 시리즈를 통해서 한국 최초로 대학에 '민속학과'를 만들어 우리 민족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전통문화인 민속이 학문으로 발전시킨 월산 임동권 선생을 처음 접했다.
우리 문화유산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알아보고 그것을 알리는데 최선을 다했던 월산 임동권 선생의 삶을 보는 것은 신선했다. 기존에 자주 접하던 인물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세시 풍속이나 민속 놀이들을 잊고 살게 된다. 어릴적 자주 하면서 놀았던 것을 요즘 아이들은 잘 알지 못한다. 언제간 유홍준 교수가 우리의 문화재를 알려주면서 몇백년 후에는 문화재라고 칭할만한 건축물이 없을 것이라는 말에 공감했었다. 세상이 변하면서 건축물은 고전미를 잃어가고 있고, 놀이 또한 변화하고 있다.
먼 훗날 놀이가 역사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오래되고 낡은 것은 버려야 한다는 생각을 바꿔야 하고, 외국 것이 무조건 좋다는 편견도 바뀌어야 한다. 우리의 것이 온전히 보전될 때에 가지는 가치를 잊어서는 안 된다. 임동권 선생의 삶을 보면서 누구나 가고 싶어하는 길이 아니라 우리의 것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지켜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정말 아름다운 인생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런 노력이 있었기에 우린 먼 훗날에도 우리 민족이 가진 저력을 역사로 남길 수 있는 것이 아닐까... |
한국 민속학의 개척자 월산 임동권 우리 민족의 고유한 색깔이 담긴 전통문화를 연구하는 학문인 민속학 월산 임동권 선생님의 삶을 통해서 우리의 전통문화에 대해 이해하고 가까워질 수 있었고 월산 임동권 선생님이 어떤 분이셨는지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어린시절의 동권은 문학소년으로 소설가를 꿈꾸었다가 국문학에 많은 업적을 남긴 언어학자 방종현 선생님의 영향으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민요와 설화를 채집하면서 관심 분야를 넓혀 나갔네요. 혼란했던 시기지만 민속학이 학문으로 인정받고 발전시키고 개척해 나가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어요. 전국을 돌아다니며 일일이 민요를 채집하며 자료를 모았던 선생님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어요. 민속학회를 만들어 우리의 전통문화를 아시아 전역에 알리며 그 위험성을 높여 나갔네요. 이밖에도 강강술래와 은산별신제, 강릉단오제등 문화재로 지정받기까지 끈질긴 노력으로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지킬 수 있었어요. 일제 강점기때 일본의 민족말살 정책으로 우리의 전통 명절인 설을 지내지 못하도록하고 신정을 지내도록 강요했다고 해요. 우리의 전통 명절인 설날을 바로 세울 수 있도록 노력하신분이 임동권 선생님이란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네요. 민속학자의 길로 들어서면서 활발한 활동과 노력으로 많은 업적과 성과를 이루어 내면서 발전시켜나간 모습에서 우리것에 대한 소중함을 배워나갈 수 있었어요. 초등학교 교과서속 민속학을 통해서 민속학과 관련해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가 되어있어 배경지식도 쌓으면서 배워나갈 수 있었어요. 위인을 통해 우리 민족 전통문화의 소중함에 대해 알아갈 수 있었던 유익한 시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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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놀이에 많이 노출되지 못하고 자라는 우리 아이들이 생각났고 박물관이나 명절날쯤 되면 마당에 전통놀이가 몇가지 체험할 수 있게 되어 있는 곳에서 간다하게 체험을 해 보는게 전부여서 이 책은 아이도 저도 읽고 나면 우리 놀이에 대해서 이해할 수 폭이 넓어 질 것 같아서 보게 되었어요 제목 밑에 민속학의 개척자 월산 임동권이라고 적혀 있는데 임동권이란 분이 어떤 분이지 아이가 책을 펼치기도 전에 질문을 해서...엄마도 잘 몰라...먼저 읽고 어떤 분인지 엄마에게 설명해 줄래라고 말했지만 책에 나올 절 도면 유명한 분일텐데...왜 모르고 있는지 ..아이에게 말을 안했지만 좀 챙피했답니다. 그래서 인터넷을 이용해서 제가 살짝 찾아봤어요 2012년 11월 25일 에 돌가가셨더군요 작년에 고이되 되어서...느낌이 좀 이상했네요 우리 민속을 문화재로 지정하신 분이신데...함자도처음 듣고 얼굴도 처음 인터넷 사진을 통해 뵙고 인터넷을 통해 경력사항을 읽게 되었네요 민속학자로 유명하신 분이셨어요 아이가 강강술래를 좋아하는데 책을 읽고 나서 강강술래를 문화재로 지정하신분이 임동권이라고 저에게 이야기 해 주네요 달 떠온다 달 떠온다 강강술래 동해동창 달 떠온다 강강술래 저 달이 뉘달인가 강강술래 강호방네 달이라고 강강술래 강호방은 어디가고 강강술래 저달뜬줄 모르는가 강강술래 이 책을 읽으면서 강강수래 노랫말을 정확하게 알게 된것 같아요 강강술래는 원시 시대때부터 전해져 내려온 부녀자들의 놀이였는데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왜적에게 우리 군사의 수가 많은 것처럼 보이기 위해 강강술래를 이용하기도 했는데 이런 놀이를 임동권으 문화재로 지정하자고 했지만 반대하는 분들도 있었다고 하네요 달밤에 노래하고 춤추는 걸 문화재로 가치가 있냐고 하지만 임동권은 오래전 인류에는 달밤에 행해지던 축제가 있었는데 아프리카 원시 문명의 사람들도 달밤에 축제를 벌였듯 강강술래도 우리 고유의 축제문화라고 설득하였고 노래까지 전해오는 경우는 외국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라고 계속 설득해서 중요 무형 문화재 제8호로 지정이 되었다고 해요 또 세계에서도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 무형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고 하네요 우리는 어릴때 그냥 놀이로만 하던 행동이 세계 무형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니...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게 감자기 너무 자랑스럽게 느껴졌어요 우리의 문화를 문화재로 만들고 우리의 옛것에 많은 애정을 갖고 계셨기에 가능한 일이였던 것 같아요 익숙한 현대문명 속에서 살고 있지만 옛것들을 보면 요즘은 정감이 가고 마음이 편안해지고 뭐 그런 느낌이 저도 요즘 있는데 그건 꾸며지거나 다듬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 물의 흐름처럼 자연에 가까운 느낌 때문일 거란 생각이 들어요 우리 것이 잘 보존되어서 우리의 훗손들이 우리 것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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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구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이 노래를 부르면서 우리나라는 왜 설을 두번 지내고 있을까? 궁금했던 분 많으셨죠?? 저만 몰랐나요 ^ ^ 전 이 책을 보고 그 이유를 알게되었네요.
'설날'이 한때 우리나라에서 사라진 적이 있었대요.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은 우리나라를 식민지 삼으며 우리의 민족성을 말살하여 그 종속관계를 영구화하기 위하여 수립한 정책인 민족 말살 정책을 펼치면서 우리의 전통 명절인 설(음력 정월)을 지내지 못하도록 하고, 서양에서 들어온 신정(양력 1월1일)을 지내도록 강요했다고 합니다. 일제는 설이되면 방앗간을 폐쇄하고 어린이들이 설빔을 입는것조차 막았다고 하네요. 그렇게 우리의 명절을 잃어버린채 살아오다가 1989년, 월산 임동권 선생님이 우리민족의 전통 명절인 설날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모든 사람들이 떳떳하게 명절을 지내도록 해야한다고 생각해서 힘쓰셨고, 우리의 설이 제자리를 찾게되었다고 해요.
그렇다면 월산 임동권 선생님은 어떤 분이셨을까? 너무 궁금하더라구요. 어린시절에 위인전을 필수도서로 읽었고, 아이 위인전을 아무리 살펴봐도 선생님 이름은 들어본적도 없었는데.. 임동권 선생님은 우리나라 최초로 대학에 민속학과를 만들며 민속학을 당당한 학문으로 발전시킨 민속학자랍니다. 무엇보다 더 관심을 갖고 보존에 힘써야 할 것이 바로 우리의 것, 민속학(우리 민족의 고유한 색깔이 담긴 전통문화를 연구하는 학문)인데 이런 훌륭한 분이 있었는지도 몰랐다니 많이 부끄럽더라구요.
책을 읽다보니 민속학이라고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었어요. 요즘 아이들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민속신앙, 장승, 솟대, 서낭당, 마을제사 심지어 판소리 까지 모두 민속학에 속하는 거니까요. 우리가 알고 있고 기억하고 있지만 점점 사라지는 것이기도 해서 조금은 안타깝죠. 일제 강점기라는 불운한 시대속에서도 우리의 것을 잊지않고 연구하고 이어나가는데 힘쓰시다가 돌아가실때까지 검소하게 모은 재산을 후배들의 장학금으로 내놓으신 월산 임동권선생님이야말로 우리나라 위인전에 가장 첫번째 씌여질 인물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답니다.
책을 읽으면 우리의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과 그 방법에 대해서 생각도 해보고, 책속에서 임동권 선생님의 어린시절부터 자라온 시대의 모습을 담아 잘 그려내고 있어 당시의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는데에도 도움이 될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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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가 쇠고 있는 설날이 일제 강점기 때 사라졌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은 민족 말살 정책으로 우리의 전통 명절인 설을 지내지 못하게 했습니다. 여전히 우리 민족은 설날을 명절로 여겼지만, 신정이 있다는 이유로 해방된 이후에도 설날을 되찾지 못하고 있었지요. 설날은 1985년에 '민속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겨우 1일간 공휴일로 지정된 게 다였습니다.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한 설날을 다시 공휴일로 지정하자는 건의를 올리고, 장관을 설득해 대통령의 재가를 얻어낸 분이 바로 월산 임동권 선생님입니다. 임동권 선생님의 노력으로 우리 민족은 1989년 정월 초하루부터 오늘날의 설날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 놀이가 먼 훗날 역사가 된단다>는 이처럼 우리 민족의 전통문화를 연구하고, 계승시킨 민속학자 임동권 선생님의 일대기로, 전통문화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동화입니다.
월산 임동권 선생님은 서낭당, 공동묘지, 도깨비 둠벙, 장승 등 옛이야기들이 살아 숨 쉬는 충청남도 청양군에서 자랐습니다. 임동권 선생님은 원래 소설가를 꿈꾸었지만, 우리나라에 민요를 연구하는 사람이 아직 없다는 방종현 선생님의 말에 본격적으로 민요를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임동권 선생님은 두 달 치 월급을 몽땅 털어 당시에는 KBS 방송국에도 세 대밖에 없을 정도로 귀했던 녹음기를 구입하는 등 민요 채집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는 분이었습니다.
또한 임동권 선생님은 우리나라에서 민속학이 생소한 학문이었을 때, 우리나라 최초로 대학에 민속학과를 만들어 민속학(예전부터 민중에 전해 내려오는 풍속이나 신앙, 습관 등을 조사하여 민족의 전통문화를 연구하는 학문)을 당당한 학문으로 발전시켰습니다. 민속학과뿐만 아니라 민속악에 초점을 둔 국악과, 사진학과를 신설하기도 하셨어요. 임동권 선생님은 때로 어떤 글이나 말보다 잘 찍은 사진 한 장이 더 효과적인 민속자료가 된다는 깨달음을 통해 사진의 가치를 내다본 것입니다. 선생님은 우리의 전통 문화인 강강술래, 은산 별신제, 강릉 단오제 등을 문화재로 등록하는 데 공헌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지만, 우리의 것보다 외래의 것이 더 좋은 것이라는 편견에 맞서 우리 것을 지켜내셨지요. 1970년 근대화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것이 빠르게 사라져갈 때 안타까워하며 하나라도 더 보존하고 기록하기 위해 노력하신 분입니다.
책을 다 읽고 우리의 전통 문화를 지켜기 위해 한평생을 민속학자로 살아오신 월산 임동권 선생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책을 덮었습니다. 선생님의 뒤를 이어 우리나라의 민속학을 연구하고, 계승시킬 수 있는 민속학자들이 많이 배출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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