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은 자신을 불완전한 상태로 탄생시킨 어머니를 원망하고 있다. 어머니 역시 다른 형제들보다 못난 시인을 미워하나, 시인에게 현실로 나가 있는 그대로 살 것을 권유한다. 어머니는 사람이 불완전해야 세상이 돌아간다고, 버나드쇼의 말을 빌려 이야기한다. 시인은 용기, 행복, 비열, 쾌락, 명예 등을 미워하면서도 그것을 전면적으로 부인하지 못하는 불완전한 인간상을 제시한다. 시인은 어머니와의 갈등이 날로 더해가지만, 아버지와도 원만한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다. 아버지는 가부장적 유교관을 가진 사람으로서, 시인에게 끊임없이 효를 다할 것을 명령하는 때문이다. 악귀의 등장을 통해 아버지가 서자였음을 명시하고 있는데, 이것은 아버지가 시인에게 효를 강요한 것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또한, 신주는 아버지와 시인에게 각각 아들과 손자의 역할을 다 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이는 우리 사회의 흐름이 인간 개개인의 삶보다는 가정 내의 일원으로서 해야 할 책무를 더욱 중요시 여겼다는 것을 가리킨다. 시인은 가족과의 갈등을 사랑을 통해 해결하려고 한다. 시인은 폐병에 걸린 백의녀를 만나 사랑을 키우나 그녀는 곧 숨을 거두고, 가족들은 시인에게 병이 옮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시인은 다시금 비의녀라는 여성을 만나 사랑을 키우게 된다. 하지만 백의녀, 비의녀 모두 시인에게 진실한 사랑이나 삶의 출구가 되어주지는 못한다. 그 과정에서 서양 여자인 비비가 나타나 인생에 관한 설교를 한다. 인생은 군두 뛰는 것이라는 비비의 말은 서양의 합리주의적 가치관과 연계되는 것으로써, 사실은 시인이 사랑 받기를 원하고 있는 어머니와의 결별을 부추긴다. 시인은 비비의 개인주의에 깊은 감동을 받으나, 그녀는 그 곁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시인에게는 본래의 어머니말고도 여러 명의 계모들이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들은 시인이 비비를 만나는 것을 보고 질색을 하나, 정작 계모들은 이 일에 깊이 관여하지 않는 무관심을 보인다. 시인에게는 잘생긴 동복제 외에 이복제라는 동생이 있는데, 시인은 이복제와 대화를 함으로써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표한다. 이는 시인의 혼란이 마감될 수 있는 종착역이 결국에는 어머니의 품이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한편, 어머니의 명령으로 시인 앞에 나타난 큰 갈레오토는 현실에 불만을 품기보다는 참고 기다려야 한다고 전한다. 이때 나타난 카로노메는 비비와 동일시되는 인물인데, 참된 깊은 가슴속으로 타인의 말을 들을 것을 다짐한다. 그들은 인생무상을 떨쳐내기 위해 부표를 잡아야 한다는 교훈을 제시한다. 카로노메 역시 시인의 어머니를 미워하는데, 그것은 시대의 고뇌를 덜어낼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어머니라는 데서 기인하는 애정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시인이 시종일관 어머니를 미워하고, 또 어머니마저 그렇게 대하는 것은 다분히 역설적인 애정의 표현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작품의 전반에서 그 출현이 자유로운 어머니는 시인의 손에 잡히지 않는 실체로서, 그 안에서의 난파만이 삶을 구원할 수 있는 행동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