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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와 제목에 대한 느낌> 낭만적인 느낌, 조금은 쓸쓸하기도 한. <이책은> 문예출판사의 개정판으로 5명 서평단 당첨 도서. <저자는>
<책내용 맛보기>
<책 읽은 소감> 세상은 스피드하게 움직이며 그 안에서 책들의 키워드도 삽시간 회전한다. 그럼에도 늘 회자되면서 언제 누가 읽어도 이구동성으로 예찬하는 책은 고전문학이 아닐까 한다. 내가 생각하는 고전문학은 많이 읽지 않아선지 이렇게 정리가 된다. '처음에는 아주 지리할 정도로 묘사도 많고, 그럼에도 느낌이 서정적이면서 어느 싯점의 클라이맥스를 시작으로 단숨에 읽게 되는 것'. 예전에 고전문학을 접했을 때의 느낌을 에둘러 표현해 보자면 딱 위의 귀절인데, 역시나 그랬다. 애초에 두 권이라는 것에서 예상은 했었지만, 이렇게 세밀묘사면서 주인공의 심리를 길게도 표현할 수 있을까...150 페이지여를 가면서 아주 지루했다.
영국의 '슈러프 앤드'라 명명하는 집에 찰스 애로우비가 산다. 매우 음울하고 고적한 바위 꼭대기에서 그만의 시간을 보내기에 찰스는 매우 만족이다. 혼자서 발가벗고 수영하는 걸 즐기는 삶도 좋고, 모양이 독특한 조약돌을 주워다 풀밭에 뉘어 진열하는 것도 좋다. 연극 연출가이자 배우로도 활약했던 왕년의 그가 이런 곳에서 바다와 접하는 삶을 세간의 그 누구도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는 자신의 삶을 회고하면서 매우 사실적인 기반에 근거해 술회하는데 그건 겸손하고는 조금 거리가 멀다. 제왕적 위치의 삶을 영위했던 그의 오만함과 군림하는 태도는 성격에서도 나타난다. 조금은 괴팍스럽고 사람들을 자신에게 굴복케 하는 능력이 있는 찰스.
찰스는 매우 검소하고 엄격한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금욕주의에 가까운 어머니의 영향이 매우 컸다고 보여지는 그에게 아버지는 자신이 기억하는 선에서 매우 근사한 남자다. 소시민에다 소심한 면이 큰 아버지였지만 책을 읽는 재미를 아셨고 생활이 넉넉치 않았음과는 별개로 사람들과의 교류를 그다지 지속하지 않았다. 그런 찰스가 연극에 관하여 광팬이라 할 수 있는 교장선생님의 관심과 배려로 세익스피어의 연극을 보게 되고 점차 빠져든다. 부모의 영향인지 타고난 성향인지 찰스는 교우관계가 폭넓지 않았는데 그런 찰스에게 연극의 세계는 매혹적이며 한정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사랑과 야망이 키워진다.
찰스는 12살 어린 나이에 한 소녀를 좋아하게 된다. 그 소녀는 메리 하틀리로 보통의 예쁘장한 소녀가 아니었으나 찰스에게는 천하에 없는 여자. 어린 나이라서 애무는 했을지언정 성관계는 절대로 없었음을 강조한다. 그녀와 18살이 되면 결혼을 하자고 그렇게 약속했건만 12살 어느날에 하틀리는 사라졌다. 그네의 부모를 봐도 모른다고 하며 오랜 시간을 찾았으나 그녀의 행방은 오리무중. 그렇게 마음 속에만 담은 채로 연극계에서 생활하며 성공 가도를 달리는 찰스. 찰스의 마음 속에 하틀리가 있는만치 '그의 연극계로의 진출을 못마땅하게 여겼고 불안해하던 하틀리'가 어디서라도 보고 있을거라 생각하면서 여러 여인들과 지내나 결혼은 절대로 안한다. 하틀리가 아니면 결혼하지 않겠다는 그 마음은 다부지다.
중략
성공한 사람이 매우 호젓한 바닷가의 별장 같은 곳에 산다. 자신의 삶을 회상하는데 바다가 보이는 집은 근사하다기보다 음울한 분위기. 기괴한 분위기가 잘 맞는다 생각하는 찰스는 자신의 스타일로 직접 챙겨 먹는 미식가다. 대단한 미식가의 입맛이니 연출가로써도 손색이 없는 성공을 했는가. 그의 여성편력은 대단했는데 어쩜 첫사랑이자 마지막사랑이라 믿는 하틀리를 늘 공기처럼 잊지 못하는 삶이기에 결혼은 절대 안된다는 원칙을 늘 들이댔다. 그런 찰스가 한때는 골똘히 하틀리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가장하에 차라리 그렇다면 더 괴롭지 않아도 되는 행복감을 말한다. 세상에는 운명이다 싶은 사랑이 있긴 하다는 생각인데 찰스의 하틀리에 대한 사랑이 그랬다. 어린 시절에 마음에 담은 사랑이어선지 순수한 마음이 바탕이 되고 불장난 같은게 없었고, 또 평생을 갖지 못한 애착이나 소유욕이라 더 아쉬움이 큰가라고도 생각되었다.
참으로 서정적인 풍경을 그리는데, 그건 아름답고 낭만적인 풍경을 말함은 아니다. 찰스가 매우 밝고 긍정적이며 사교적인 사람이 아니기에 풍경들도 그에 걸맞다. 물품구매를 위해 만나지는 사람들이 자신들을 비웃거나 조롱해도 그는 아무렇지 않을 뱃심이 있으니...'이탈리아 구두'를 읽으며 고립된 듯한 상황에서의 한 사내를 떠올리게 되더라는. 그 남자의 고독과는 다르지만 찰스는 고독을 즐기는 사람의 유형. 혼자서도 잘해요 라는 말이 딱 맞았다. 심심찮게 그의 주위를 맴도는 예전의 정부들이 있어 여전히 제왕처럼 군림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한다. 나이먹어감은 어느정도는 타협할 줄 아는 지혜가 있는법인데 괴팍하게 느껴지는 그의 곁에 달라붙는 사람들이 신기했다. 찰스가 가진 매력이 예술을 하는 사람들에겐 여전히 매력인지도 모른다. 우리네 평범한 잣대로는 결코 원만하지 않은 사람인데 말이다.
조금은 느긋한 책읽기가 필요할 때 고전문학을 접해 보라. 거기엔 조금은 답답하달 수도 있는 느림이 있다. 느릿하게 진행되는 그 속에서 느긋한 여유를 어느새 맛보게 된다. 그건 순수함 혹은 투박함과도 일맥 상통하는 느낌이다. 자극적이지 않고 큰 흥분을 불러일으키지 않아 조금은 밍숭맹숭한 느낌이라 여겨질 수도 있겠다. 특히, 저자의 철학적 접근은 어렵지 않고 편안히 읽힌다. 다만, 회상하는 중간 중간에 문맥이 매끄럽질 않고 설명하는 식이 나오는데 그건 내가 무척이나 싫어하는 형태다. 그건 독서 흐름에 인위적이란 느낌을 강하게 주기 때문이다. 그렇다해도 찰스의 사랑은 직접 읽어보지 않고는 표현하기가 어려운 굉장한 사랑이다. 혼자만의 감정이 치달아 상대가 곤혹을 치르게 되는 상황을 야기시켜 놓고도 나몰라라 할 수 있는 이기적인 사랑과 아울러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랑이 진짜 사랑이라 믿는 찰스. 현실에서의 이런 사랑은 매우 힘겹겠지만 문학으로서의 사랑을 읽는 독자는 이런 사랑도 멋지다는 생각을 일순 할 수 있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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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흔히 바다에 비유를 많이 한다. 잔잔하게만 보이는 바다는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파도를 넘으면 또 다른 파도가 와서 덮친다. 방심하고 있으면 안된다. 그런가 하면 풍랑을 만나서 잘 이겨내면 순풍에 돛 단 듯 망망대해를 만나게 된다. 60이 넘은 찰스 애로우비는 한때는 배우로 연출가로 극작가로 활동을 하다가 은퇴를 하여 조용한 바닷가에 오두막을 얻어 자신의 회고록을 쓰고 있다. 인생 60이 지나 뒤돌아 본다면 많고 많은 파도를 넘으며 왔을 것이다.그것도 배우로 극작가로 활동을 했으니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을까? 하지만 그는 지금까지 결혼을 한번도 안했다는 것,그에겐 많은 여자가 지나쳐 갔고 과거의 여자가 현재까지 이어지는 여자들도 있지만 그는 결혼을 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그가 여자를 경멸한다고 평가 하기도 하지만 결코 그렇지는 않다.왜 그는 곁에 여자가 많았지만 결혼을 하지 않은 것일까.
이 책은 먼저 '안정효' 의 역이라 더 읽고 싶었다.<하얀 전쟁>이란 작품으로 만났던 안정효는 내겐 깊게 박혀 있어 그의 번역작품도 만나보고 싶었다. 그런가하면 저자 '아이리스 머독'의 작품은 처음인데 부커상 수상작가라고 하는데 내겐 익숙하지 않은 작가라 더 읽고 싶었다. <바다여 바다여1,2>는 한 권의 작품이 아니라 두 권으로 나뉘어 있는데 '동양적 신비주의와 서양 철학, 추리에 가까운 사건 전개, 다양한 인물들이 엮어나가는 아름답고 신비한 이야기' 라고 하는데 1권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인내' 가 필요하다. 찰스의 과거와 현재의 삶,그 중에서도 여자들에 관한 이야기는 많은 인내를 가져야만 할 정도로 빈틈없이 빽빽하게 가득찬 텍스트로 인해 지루한 감도 있지만 반 정도 지나고 나면 서서히 감을 잡을 수 있고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가엾은 리지.무엇이 갑자기 나로 하여금 그녀에게 반쯤 진지한 편지를 쓰게 했을까? 바다에서 나에게 전해진 고독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었을까?
은퇴하여 바닷가에 스스로 일굴 수 있는 채소밭과 한적한 곳에 위치하여 알몸으로 수영도 즐길 수 있는 그야말로 때가 타지 않은 곳이라면 몇 몇은 로망으로 가지고 있을 곳인지도 모른다. 그런 자연 속에서 살아가고 싶은 것이 꿈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지는 못한다. 찰스는 사촌인 제임스와 비교를 당하며 살았다고 볼 수 있다.공부를 잘했지만 생각지도 않게 군인의 삶의 선택하기도 했고 불교를 믿거나 그외 이상한 전리품을 수집하는 사촌 제임스에 비해 그는 배우로 극작가로 유명세를 날렸다. 삶이란 정말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다. 어린시절 찰스가 제임스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삶을 살지 누가 알았을까? 그런 찰스는 과거 그를 거쳐간 여자들을 회상한다. 클레멘트, 리지,하틀리,로시나, 하지만 그 중에 제일 맘에 둔 것은 어린시절 함께 사랑과 우정을 키워갔고 결혼까지 생각을 했던 하틀리다. 하지만 그녀는 찰스와 결혼을 하지 않고 자취를 감추었다가 결혼했다는 소식만 타인들에게 전해 듣게 된다.왜 그녀가 그를 떠났을까? 그와 결혼하지 않고.
그녀는 나에게 다시는 없었던 선에 대한 순수하고 금이 가지 않는 신념이요, 증거요, 한 부분이었다.
바닷가 오두막에서의 찰스의 삶은 주변 사람들에게는 이방인처럼 보인다. '오두막'이 말해주듯 그의 삶은 과거에는 현란한 삶을 살았을지 모르지만 현재는 고립과 외로움 그리고 고독한 노인네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그가 늙은 것은 아니고 관리가 잘 되어 나이에 비해 젊게 보여서인지 아직도 그를 남자로 생각하는 여인네들은 현재까지 그를 쥐고 흔들어 놓는다. 찰스는 배우와 극작가의 활동을 할 때 깡패 혹은 폭군 같은 기질을 발휘하는데 지금 역시나 그의 기질은 변하지 않고 지속되고 있다는 것,그런 와중에 조용한 바닷가 마을에서 그의 인생에서 오로지 사랑을 느끼고 결혼까지 생각을 했던 '하틀리'를 만나게 된다. 어린시절에 누렸던 젊은 모습을 기억하고 있으니 지금의 나이에 본 하틀리는 볼품이 없다. 거기에 아직도 자신은 하틀리를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자신을 버리고 갔던 그녀의 결혼생활과 남편이 자신과 비교해보면 너무 보잘것 없다고 생각을 한다. 그들 부부 사이에는 애도 생긱지 않아 그녀 맘대로 입양을 결정하고 입양한 아들은 집까지 나가서 소식이 없다. 그런 하틀리를 만나면서 자신이 그녀를 구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찰스는 다시금 그녀와의 사랑을 불태우고 싶다. 그런 와중에 그는 집안에 꽃병이 깨지는가 하면 창밖에서 누군가 지켜보는 것 같기도 하는가 하면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고 생각을 한다.
기억이란 얼마나 이상한가.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로 내 마음 깊숙이 어둠 속에 축적되었던 그녀의 더 많은 모습들이 되살아났다.
'추리에 가까운 사건 전개' 라고 하는데 1권에서는 그렇게 큰 사건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지만 전조 현상을 보여준다. 찰스의 과거와 현재의 여성편력과 과거의 이루지 못한 사랑을 현재 이루고 싶어 안달하는 폭군적인 그의 사랑이 어떻게 전개될지 기대된다.과거의 사랑이었던 하틀리로 인해 그는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한다는데 1권에서 심리묘사가 깊게 이루어졌다면 2권은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다. 은퇴하여 자신의 회고록을 쓰는 찰스가 바닷가 오두막으로 내려 왔다는 것은 어느 정도 삶을 내려 놓았다고 보아야 하는데 현재 그의 삶은 전혀 과거의 모든 것을 내려 놓았다고 볼 수가 없다.과거나 현재나 똑같은 폭군기질을 보이는 찰스,더군다나 옛애인인 하틀리를 남나고 그녀를 남편 벤에게서 떼어내 자신과 결혼하여 살고 싶다고 느끼는 찰스의 바람처럼 삶이 그의 편이 될지. 인생이 뜻한 바처럼 이루어진다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잔잔한 바다에도 비가 내리기도 하고 폭풍우가 치는 날도 있는 것처럼 우리네 인생사가 해가 뜨는 날이 있으면 구름 낀 날이 있고 비가 내리면 말짱한 날도 있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기쁨과 슬픔 모든 것이 아우러지고 희극과 비극이 교차하기 때문에 인생이라 할 수 있는 것 아닐까.누군가는 비극을 경험하지 못한 인생은 실패한 삶이라고 했다. 여인들 위에서 폭군처럼 군림하던 찰스,그의 삶이 과연 희극일까 비극일까.비록 찰스의 눈에는 하틀리의 삶이 비극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맑은 날만 있을 수 없는 것이 인생이거늘 결혼도 해보지 않았고 자식도 없는 찰스의 삶을 놓고 본다면 그 또한 평범한 삶과 비교한다면 비극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찰스가 살고 있는 바닷가 오두막집의 배경처럼 인생의 절벽에 도달한 것 같은 찰스의 삶이 어떻게 전개될지 얼른 2편을 읽어봐야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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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왜인지 공포소설이 읽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요즘 한창 로맨스 소설에 푹 빠져 살아가는데 왜 갑자기 공포소설이 떠올랐던 것일까? 지금 쓸 서평과는 상관없는 이야기를 뜬금없이 써내려가고 있는 中 ~. 1978년 영국에서 가장 손꼽히는 ‘부커문학상’ 수상작이라는 것도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다. 마치 이왕이면 어떤 상을 수상했다는 것이 책의 재미를 보증해주는 것처럼 느껴졌으니까. 요즘 드라마 <예쁜 남자>를 열심히 시청하고 있다.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예전에 예쁘면 모든 것이 다 용서된다더니 그것이 지금은 남자에게까지 통용되는 것 처럼 보여졌다.
'파도여 슬퍼말아라~ 파도여 춤을 추어라 끝 없는 몸부림에 파도여 파도여 서러워마라~~~ ' 아이리스 머독의《바다여 바다여》는 세계 문학선집에 이름을 빼놓지 않고 올라오는 책이다. 예전 민음사에서 출간되어 읽었던 책을 이번에 문예출판사에서 개정된 것으로 다시 만났다. 제목에서 주어지는 느낌 탓인지 책을 읽으며 김추자의 '무인도'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인기의 절정'에 있을때 내려가라는 말을 지키듯이 나이 60을 넘기면 연극계에서 은퇴하겠다고 말하던 찰스 애로우비는 약속했던 나이가 되자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 은퇴를 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사라진다.
조용하고 은밀한 만족감을 나는 혼자 한껏 누린다. (p.44) 해변에 안식처를 만들어 둥지를 틀고 틈나는대로 바다에 나가 알몸으로 수영을 즐기는 생활을 한다. 안락한 생활의 보장이 된다면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그런 생활이 아닐까 싶다. 책은 은퇴한 배우 찰스가 연극계를 떠나 한적한 곳에서 살아갈때를 시작해서 자신의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그리고 스무살에 만난 첫번째 연인 클레멘트 메이킨(당시 39살)을 만났을때를 회상하고 있다. 첫번째로 만난 여자가 한참 연상의 여인이라 우리나라에 비해 서양의 자유분방한 연애관이 느껴지고 있다. 또한 찰스가 은퇴후 자리를 잡은 곳이 바로 그녀가 자란 고향이기도 하다.
"리지, 전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무슨 바보 같은 소리야. 난 당신을 '이해'하고 싶지가 않아. 그건 당신 사정이니까. 훌훌 털어버리고 나한테 오든지 아니면 아예 그만둬." (p.144)
리지에게 길버트와 자신 중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찰스, 그는 리지가 자신을 택할것이라는 자신이 있었던 것일까? 찰스이 일생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머리속에 떠오르는 인물이 바로 돈 후앙과 카사노바다. 상대가 처녀인지 유부녀인지 가리지 않고 자신의 마음에 드는 여자라면 무조건 유혹했다 마음을 얻었다 싶으면 버리는 것이 그들과 같은 맥락으로 느껴져서다. 그에게 반해 가정을 저버린 여인 중에는 로시나 밤버라는 유명한 여배우도 들어있다. 그녀는 찰스에게 버림받은 후에도 끊임없이 그를 쫓아다니며 그가 새로운 상대와 열정에 빠지는 것을 지켜보며 질투를 해댄다. 리지와 찰스가 결혼할 것이란 소문이 돌때는 그녀는 찰스를 찾아와 소문의 진실을 확인하고야 말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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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가장으로서 생계와 가족의 안녕,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했노라고 가족들 앞에서 마음 편하고 담담하게 말하고 후회없이 생을 마감할 수 있을까.아직은 그래도 가야 할 길이 멀고 험한 산과 물이 내 앞에 도도하게 서 있지만 사는 것 자체가 역경의 연속이도 남들도 모두 그렇게 체념하고 살아가고 있다면 지금 내 앞에 놓여 있는 온갖 장애물들을 겁내고 두려워할 필요가 있겠는가.내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나는 어떠한 회고록을 쓸 수가 있을까.과연 가감없이 솔직하고도 담백하게 쓰되 내가 남긴 회고록이 남아 있는 자식들과 타인들에게 얼마나 읽혀질까를 생각하니 가슴이 쭈뼛거린다.지금까지 아름다운 낭만과 행복의 성(城)을 견고하게 쌓기 위해 못다한 정열을 조금씩 불살라 가리라.
사람은 직업병이라는 것이 있다.인간에게 태어나면서 갖고 있는 본능과 본성이 있다면 사회생활 가운데 경험하고 체득한 것이 자신의 초상화가 될 것이고 타인의 시선으로는 품성,인격,인품 등으로 구분되어지리라 생각한다.셀 수 없이 수많은 직업 속에서 개인의 생각과 감정은 복잡하게 얽혀져 하나의 커다란 인격형성을 이루리라 생각한다.물론 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선천적인 기질과 체질도 어느 정도 개성과 인격을 형성해 나가겠지만 울퉁불퉁했던 외줄기 사회생활은 한 인간의 그릇의 크기와 정념이라는 감정의 울타리를 만들어 놓을 것이다.일을 통해 생계를 꾸리고 사람을 만나 대화와 소통,수다라는 언어행위와 성욕,질투,분노 등의 감정의 고리를 몸과 마음 속에 저장해 나간다.
20세기 영국의 대표적인 여성 지성인으로서 맨부커상(The Man Booker Prize)의 수상작인 '바다여,바다여(총2권)'는 연극의 삶을 살아 온 찰스 노인의 회고록과 일기를 섞어 현재를 기준으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다양한 에피소드를 들려 주고 있다.어느 나라든 나이 60이 넘으면 현역에서 물려나 퇴역의 신세를 져야 하는 몸이다.연극계라는 분야가 딱히 은퇴라는 제도가 있을까마는 찰스 노인은 북적북적거리는 대도회지 런던을 떠나 한적한 바다가 넓게 바라다 보이는 바닷가의 외딴 곳에 둥지를 틀고 지난 온 시절을 회고한다.찰스가 말했듯 그가 현역이었을 당시는 연극계의 대부인냥 언론 문화계는 그에 관한 특종(스쿠프)을 잡으려 문화부 기자들은 혈안이 되었던 것 같다.그를 두고 연극계의 폭군이요,야만이요,권력에 미친 괴물이라는 식으로 지상(紙上)을 점철하고 있다.또한 찰스는 연극계에서는 인간 영광의 덧없음을 배우게 되는 곳으로 생각을 가다듬고 있다.
그런데 찰스는 인생을 제법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정실 부인 하나 없는 외톨이 남자이다.청,중,장년시절 그와 짧든 길든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그리워하고 내치기도 하고 질투도 했던 여성들이 꽤 많다.주인공 찰스와 사랑을 나눴던 여성들이 얼추 여섯 명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은데 왜 그는 신체불구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못하고 혼자 남게 되었을까.일반인들의 시선과 생각으로는 그에 대한 좋지 않은 선입견이 있을 법한데 그의 사연인즉 여성관계가 복잡했지만 모든 여성을 내치고 오로지 한 여성을 머리 속에 품고 그리워하면서 꼭 자신과 함께 여생을 보내리라 애를 태우고 있는데 그녀가 바로 하틀리 부인이다.찰스는 하틀리를 사랑하고 하틀리도 그를 사랑한다고 믿고 있지만 하틀리는 이미 유부녀일 뿐인데,성질이 광폭하고 무뚝뚝한 사나이 벤과 함께 살고 있다.게다가 그녀는 어찌된 일인지 자신의 배에서 낳지 않은 남아를 입양시켜 한 가족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벤과 하틀리의 관계가 썩 좋은 편은 아니다.게다가 양아들 타이투스는 양아버지 벤으로부터 이렇다 할 사랑과 애정을 받지 못한 채 벤과 하틀리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되면서 정신분열증마저 일으키게 된다.
찰스는 뭇 여성들과 교제를 하고 사랑까지 나눈 사이지만 정열적인 로맨스보다는 은밀하고 내밀한 관계를 유지하려 했는지도 모른다.찰스에게 어머니와 같은 존재이고 사랑을 가르쳐 준 클레멘트,그리고 지성적이고 질투와 시기가 강한 로시나와 리지 그리고 사촌 동생인 제임스는 직업군인으로서 티베트로 출향하는데 그곳에서 얻은 정신적 체험과 신비스러운 동양문화가 가득 차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배우이면서 연출가였던 찰스가 연극을 버리고 고독을 되씹기 위해 안착하게 된 바닷가 한적한 곳에서 그가 내내 그리워하고 연모해 마지 않던 하틀리를 만나게 되면서 이 글은 급물살을 타게 된다.과연 찰스와 하틀리 그리고 주변인물들 간의 관계는 어떻게 흘러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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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심각하게 이 작품을 읽을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소설은 큰 사건의 연속이나 대단한 비극적 주제를 잔뜩 마련할 것만 같은 첫인상과는 달리, 대단히 희극적인 해 프닝의 연속과 비정상적인 인물들의 행동으로 가득한 구성이니까 말입니다. 이 작품은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내내 일관하고 있고, 어떤 것이 객관적 현실이며 어떤 것이 주인공 찰스 애로우비의 perception에 불과한지는, 2권의 끝까지 가 봐도 여전히 모호합니다. 독자는 차라리, 겉으로는 의연하고 흠 없이 보이는 전직 연예계 거물의 삶과 행적이, 사실은 미성숙한 소년의 그것만큼이나 위태하고 위험하다는 점에서, <광인일기>의 변형으로 이 작품을 받 아 들일 수도 있습니다. 1권은 그나마 독자가 주인공의 목소리에 어느 정도 공감과 동정을 보내면서 동행이 가능한 모드이지만, 2권으로 가면 갈수록 대책이 없어지는 품을 보고 (차라리)희극적인 혼란에 빠집니다. 그 과정에서 독자는, 더욱 차분한 태도로 진상과 환각, 혹은 이상과 현실 사이의 균형추를 살피게 되고, 이 거물의 아슬아슬하고 추하며 충격적인 노년 행보가 보편적으로 의미,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 객관적 성찰의 경지에 다다르게 됩니다. 주인공은 엄격한 양친 슬하에서 자랐습니다. 아버지의 동생, 그러므로 자신에게는 숙부가 되는 에이벨은(신의 총애를 더 입은 둘째 아들[아벨]의 이름이라는 점이 의미심장합니다) 여러 모로 자신의 아버지보다는 화려한 삶을 살았습니다. 심지어는 부인도 더 아름답고 더 부유한 여인을 맞았으며, 주인공 찰스의 양친은 여러 모로 이들 부부를 버거워하고 껄끄로워하다 못해 다소의 증오감을 갖기에 이르기까지 합니다. 주인공 역시 마찬가지로, 그 소생인 사촌 제임스(자신보다 연하입니다)가 지능이 우수하고, 더 현실적이며, 더 민첩한 육체적 특성과 냉정한 정신적 자질을 지녔음을 알고, 일종의 sibling rivalry로 고뇌를 겪습니다. 왠지 자신에게는 패배자로서의 삶이, 사촌 동생에게는 승자로서의 행보가 예정이나 되어 있을 것만 같습니다. 사촌의 부모들은 장차 자신의 아들이 영국 총리라도 될 것처럼 기대를 가졌고, 실제로도 제임스는 명문 대학에 입학합니다. 반면 자신은, 그닥 양호한 교육적 배경도 못 갖춘 채, 20살이나 연상(첫 만남 시 자신의 나이의 두 배라고 스스로 말하는)인 인기 여배우와 동거 생활에 들어가는 등, 어느 모로 봐도 비표준적이고 위태한 방식으로 사회 생활의 첫걸음을 뗍니다. 그런데 주인공 찰스의 자질은 진정 연예 방면에 있었던 듯합니다. 그 자신이 술회하듯, 일단 무대에서 일류 배우가 되지도 못했고 영화 쪽에는 데뷔도 못했지만, 대중에게 꽤나 이름이 알려진 위상이었고, 특히 비교적 젊은 나이에 연출에까지도 손을 뻗어, 이 분야에서는 큰
영향력을 지닌 거물이 됩니다. 연극계에 미치는 권력이 상당할 뿐 아니라, 대중 사이에 잘 알려진 인지도면의 성취까지 지닌 성공을
거둠으로써, 그는 겉으로 보아 남부러울 게 전혀 없는 화려한 인생을 산 셈이죠. 반면 사촌 제임스는 모두의 예상을 배반하며
군(軍)에 몸을 담습니다. 직업 군인이 되는 길이 인생의 실패라는 건 아니지만, 20세기에 들어서 군대란 과거(아주 먼
과거)에서처럼 개인의 입신 영달을 보장하는 통로가 아닙니다. 하물며 출신 집안의 재산이나 그 개인의 학맥도 어디 하나 빠질 것
없는 입장이라면 말이죠. 아무튼 그는 군대에서도 (좀 넘친다 싶은) 자질을 발휘했겠고(소설 속에서 직접 묘사는 없습니다만)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둬 장성 대열에 오릅니다(2권에 나옵니다). 그런데, 어떤 업무를 맞는지가 확실치 않았고, 1권 후반 이후로는 더욱
모호해집니다. 주인공 찰스가 이 제임스에 대해 편향된 attitude를 가지고 있고, 우리는 일인칭 주인공 시점의 불완전한
캐스팅으로만 사건의 진행을 접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어서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저는 이 장편을 <광인일기>(고골리 혹은
루쉰 어느 누구의 것이든)의 양식에 맞춰 읽은 편이었습니다. 화려하다 못해 난잡하기까지 한
여성 편력도 대단했습니다(많은 여성, 클레멘트, 리지, 로시나, 남성인[!] 길버트,... 그리고 문제의 하틀리까지). 그는 한
번도 결혼하지 않고, 소생도 두지 않았으며, 심지어 지속적인 애인도 돌보지 않은 채, 이 여인 저 여성을 변덕스레 옮겨 가다
적당한 시점에 버리는 이기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교활하고 뺀질거리는 스타일도 아니고, 전형적인 숫사자의 위엄으로 주변의 남녀 모두를
지배하려 드는, 더욱 골치 아픈 스타일로 말입니다. 그럼에도 그의 주변 여성들은, 그가 주던 매력을 잊지 못해 끊임 없이 그의
주변을 맴돌게 된다는 데에 이 찰스의 마력이 있었던 거죠(심지어, 동성애자인 길버트까지도 말입니다). 결국 여인들도 교제하는
과정에서 그의 인격적 결함을 알게 되고, 자신 역시 그런 지적의 일부를 수긍하게 되어, 성격만큼이나 괴퍅한 이 해변의 저택(그
위치도 궁벽할 뿐 아니라, 사람들이 한결같이 그 외양의 기이함을 입에 올리고 나섭니다)을 새로 장만한 그는 지척에 둔 바다의
안온하면서도 난폭한 풍광을 두고 묘한 감정에 빠집니다."바다여, 바다여!" 여기서 "바다"가 주는 의미는 다층적 해석이 가능합니다. 우선 "바다"는 육지의 끝과 마주 대하는 지점에서 시작합니다. 또 그것은 전젹으로 미지의 존재이며, 여태 디디고 겪어 온 세계의 작은 일부가 아닌, 압도적인 거대함으로 피조물을 맞이하는 포세이돈입니다. 우리는 그에 대해서 거의 아무것도 모르며, 그 거대한 원천은 우리에게 "니가 겪어 온 건 아무것도 아니다!"를 가르쳐 주려 하듯 우렁차게 포효합니다. 그것이 취하는 가공할 액션은 경고나 위협에 그치지 않고, 때로는 모든 것을 물리적으로 쓸어가 버릴 만큼 강력한 운동량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인생에 있어 좀 난관이다 싶은 장애가 닥치면, 주인공 찰스는 특유의 기질을 발휘하여 애교로 대상에 "안기는" 경향이 있는데(성격이 애교스럽진 않습니다만), 이사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그는 집 앞의 가장 험한 파도에 자신의 몸을 실어 "알몸으로" 수영하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입니다(끝난 후엔 역시 알몸으로 일광욕을 즐기는데, 물론 사유지 안에서이므로 가능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를 두고 빈축과 조소의 대상으로 삼는데요. 사실 이 대목은 광인의 주위에서 흔히 보이는 현상을 암시하죠. 그는 인생의 한 전환점, 아니 어쩌면 점잖게 종막을 맞이해야 할 시점에서, 이 사나운 바다가 미지의 괴물로 다가오는 그 지점에서 홀로 서게 되었습니다. 그는 나름 화려했던 무대 경력을 뒤로 하고 이 벽지에 은거한 셈인데, 과연 삶으로부터도 은퇴할 지경인지는 지켜 보아야 합니다. 그가 육체적으로 노쇠했느냐,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얼굴에는 주름 하나 없고, 혈색은 젊은이의 그것처럼 건강합니다. 노년에
이르러서도 그는 잦은 면도를 할 필요 없이 말끔한 행색인데, 이는 그가 타고난 육체적 자질이라 누가 시비할 수도 없습니다. 몸
역시 날씬하고 균형 잡혀 있으며, 동작도 민첩하고 자연스럽습니다. 완력은 강하지 않지만, 직업정신의 소산으로 언제나 육신을 단련해
왔기에 이런 모습이 가능합니다. 그는 또래의 남성들, 심지어 연하의 남성, 여인들이 자신보다 훨씬 빠른 노화를 보이고, 자기
관리에도 게을러 훨씬 망가진 모습을 하고 있는 걸 경멸하는데, 재미있는 사실은 상대방도 이를 인정하고 든다는 점입니다. 이런
외모에다 그간 해당 영역에서 압도적인 영향과 성공을 유지하며 모아 둔 재산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평가에
대해 "난 부자가 아니다."라고 하지만, 그건 상대적인 평가일 뿐이고, 심지어 자신도 다른 대목에선 "돈 좀 있음을 과시하기
위해 서재를 그렇게 꾸였음"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거추장스러운 배우자도 없고, 아직도 마음만 먹으면 연극계에서 사람 몇
정도는 살렸다 죽였다 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노년에 이르러 허물어지기는커녕, 더 완성되어 가는 인생입니다. "젊음, 그 덧없는
풋사과의 상처투성이를 보라!" 이 정도면 여느 젊은이가 부럽지 않은, 아니, 젊은이들이 부러워해야 할 인생입니다. 하지만 그의 내면은 너무도 불안합니다. 그는 갓 이사 온 집 안에서 찻잔 등의 가재도구가 별 이유 없이 파손된 모습을 보는가 하면,
바다 저편에서 거대한 괴물이 튀어나오는 장면을 목격하기도 합니다. 창 밖에 낯선 얼굴이 느닷 디밀어지는 일이 다 생기는데요.
그는 아무래도 이것이 환각이 아닌 것만 같습니다(2권을 다 읽은 후에도 독자는 여전히 그 명확한 진상을 알 수 없네요). 뭔가
붕괴의 처참한 순간을 앞두고 있는 것처럼, 위태하기 짝이 없습니다. 성공한 남성에게 설사 거대한 부와 권력이 남겨졌다고 해도, 그
전쟁을 겪고 치른 대가는 흉측한 외모의 노화, 붕괴인 수가 많은데, 이 찰스는 그렇지도 않습니다. 건강 또한 나무랄 데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이 원해서 찾아 온 바다 앞에서, 이처럼 총체적으로 다가오는 위기와 파국을 직면하고 있는 겁니다. 여기에는 유년 시절의 첫사랑인 하틀리가, 그 큰 원인으로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진정한, 유일한 사랑은 그저 첫사랑 하나일
뿐이다!" 어느 여인에게도 진정한 자아와 사랑을 베풀지 않은, 못했던 그였고, 그럴 의지도 없었지만, 이 여성은 언제나 마음 한
켠에 간직해 두고 살아 온 베아트리체였습니다. 우리말 상투어로 "몽매간에도 잊지 못했던 그녀"인 셈인데요. 정말 거짓말처럼, 갓
이사 온 이 지역에 그녀도 제법 오래 거주해 왔다는 사실이, 느닷 없는 조우를 통해 밝혀집니다. "바위 뒤에 보니 하틀리를 닮은 웬
늙은 여자가 있었는데, 놀랍게도 그녀는 진짜 하틀리였다." 이 소설은 이처럼, 별 개연성도 없는 사건이 폭발하듯 연발로
터지다가, 느닷 우연에 의해 일시에 정리되고 마는 구조도 특이합니다. 그 이면에는, 본디 삶이란 별 필연과 숙명 따위가 존재하지
않는 부조리의 연속일 뿐이라는 암시가 강하게 깔려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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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웬지 고독하다. 그리고 표지의 바다를 바다보는 남자의 뒷모습은 어둡다. 소설 바다여 바다여도 내겐 그랬다. 과거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이야기가 지루하게 이어진다. 그래서 조금 힘들었지만 읽다보니 어느 새 찰스의 인생에 빠지게 된다.
저자 아이리스 머독는 영국이 사랑한 20세기의 대표적 지성으로 철학자이자 당대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였다. 바다여 바다여는 그래서인지 굉장히 철학적이고 문학적이고 아이리스 머독, 그녀의 사상적 배경이 짙은 작품이다. 마르크스주의자가 되고, 처음으로 실존주의 철학을 접하기도 했다니 글이 얼마나 사상적인지 이해된다. 그렇지만 그녀의 결혼과 남편의 사랑속의 마지막의 모든 여자들이 꿈꾸는 것이 아닐지 싶기도 하다.
주인공 찰스는 성공한 연출자였고 60살이 되어 연극계에서 은퇴하여 바다가 근처에서 평온하게 남은 여생을 보내려고 한다. 아마 그는 여성편력이 심했다는 생각도 들고 요즘 말하는 나쁜 남자 스타일인 것 같다. 수많은 여성들과의 사랑 이야기를 자랑하듯 쏟아내는 것이 사실 같은 여성 입장에서 편하지만은 않았다. 많은 여성들은 매력을 느꼈는지 모르겠으나 난 그의 아집과 고집이 느껴진다. 일방적인 사랑은 사랑이 아닌데, 메어리 하틀리는 아마도 찰스가 사랑한 유일한 여성이었나보다. 청소년기에 순수하고 열정적인 사랑을 나누었지만 그녀는 찰스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의 집착과 광기는 무서울 정도다.
사랑을 둘러싼 수많은 갈등과 집착, 그나마 찰스가 그것을 깨달았으니 다행이다. 사랑이 이런 것이라면 아름답지 않을 것이다. 사랑은 희생과 배려가 필요하고 서로의 마음이 통하는 것이지 싶다.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나의 대한 모든 것을 독백하듯 스스럼없이 밝혀 내는 힘이 있는 것 같다. 다양한 사상과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어 편하게 읽히는 책은 아니지만 사랑, 삶, 인생을 이야기하는 부분을 담담히 받아 들인다면 훨씬 이해하기 쉬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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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소설보다는 영상물이 그것도, 빠른 전개를 위주로 하는 현란한 영상물이 좀 더 익숙한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것에 비해 소설은 상대적으로 인내심을 가져야 합니다. 직접 책을 읽어야 하고, 또한 이해가 안되면 앞으로 다시 가서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누군가 줄거리를 요약해 주지도 않습니다. 등장인물의 대사와 생각을 일일이 읽어야 하는 작업은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것 보다 더 많은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와중에 이 책은 선택한 이유는 두 가지 입니다. 하나는 이 책의 번역자가 안정효 님이라는 점입니다. 안정효 님의 번역 작품을 많이 읽은 것은 아니었지만, 읽은 작품들의 경우 만족도가 상당히 높았기 때문에 한 번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한 가지는 이 책이 유명한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라는 점입니다. 이 책은 권위있는 문학상을 수상했다고 하고, 그 작가 또한 20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여류 문학가라고 하는 점에서 평소의 저라면 선택하지 않았을 작품입니다. 왜냐하면 개인적으로 어려운 문학 소설을 좋아하는 편이 아닙니다. 어려운 문학작품의 경우, 그 깊이로 인해 재미보다는 읽기가 난해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선택한 것은 이 겨울이 완전히 가기전에, 그리고 완연한 봄을 맞기 전에, 그저 괜찮은 아니면 조금 어려운 문학 작품 한 권쯤 읽는것도 괜찮을지 모르겠다는 막연한 생각덕분이었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잘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그런 이유에서 인지 두 권으로 된 이 작품의 1권의 경우, 앞의 3분의 2정도에 넘어갈 때 까지 전반적인 흐름을 잡지 못해 고생했습니다. 또한 그 느린 속도감 때문에 읽어나가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빠른 전개의 영상물에 익숙한 것이 아마도 독이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인공의 이전의 선택에 대한 궁금증이 한 껏 높아진 상태에서 끝났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찌 보면 인간의 삶은 선택의 연속인데요. 주인공의 선택이 제가 생각한 방식과 조금 달랐기 때문에 더욱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1권의 끝까지 어렵게 넘어왔지만,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두 번째 권으로 바로 넘어갈 예정입니다. 다음이야기가 많이 궁금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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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스 머독의 작품 <바다여 바다여>는 그에게 맨부커상을 안겨 준 작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초반의 지루함을 이겨내야만 이글의 진면목을 접할 수 있을 것이다. 런던에서 잘나가는 연극 연출가인 찰스 애로비가 은퇴 후 외딴 바닷가 마을에서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쓴 회고록 형식의 독특한 이 작품은 찰스의 과거와 개인사를 들어줄 수 잇다면 작품 곳곳에서 저자의 철학과 사상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독특한 그의 글과 친숙해질 시간이 필요하단 이야기다.
연극계에서 한 때는 폭군으로 군림하던 찰스 애로비는 자기중심적이고 독선적이며 심지어 지나 온 세월을 반성하는듯 보이지만 잘 들어보면 수많은 미모의 여성들과의 염문, 그녀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는 은근한 자기 자랑이다. 그래도 자신은 첫사랑을 여지껏 못 잊어 결혼도 하지 않고 홀로 살아왔노라며 순수한 사랑을 간직하고 있는 사랑지상주의자인 자신을 오히려 옹호하는 자만심과 세상에 관한 그의 편견과 독선은 참고 들어 주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어린 시절 자신을 떠난 첫사랑 하틀리를 잊지못한 채 살아왔던 그가 회고록을 쓰기 시작한 이후로 마음 깊숙이 어둠 속에 축적되었던 첫사랑의 모습들이 더 많이 되살아나 그녀에 대한 기억과 사랑에 대한 집착으로 고통 스러워 하는 모습을 지켜보다보면 차츰 그를 이해와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 보게 되고 그에 대한 인간적인 관심과 더불어 그의 인생이 한 편의 연극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찰스는 조용한 노년을 보내고자 찾아 온 바닷가 마을에서 뜻하지 않게 첫사랑 하틀리와 재회하게 된다. 주름지고 초라해진 그녀의 모습을 보며 그는 그녀가 불행한 결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는 비참한 상황에서 그녀를 구해내 예전처럼 그녀와 함께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란다. 연극계에서 알고 지내던 배우들과 그의 유일한 사촌이 그의 바닷가 집을 찾아오게 되고, 찰스의 첫사랑에 관해 알게 된 그들은 첫사랑에 집착하는 찰스에게 저마다의 충고와 도움을 주고자 한다. 배우인 페레그린은 결혼 생활은 두려움에 바탕을 두어야 지속이 되는 거' 라며 그녀가 남편에게 받는 학대와 고통, 두려움은 결혼생활을 지탱하는 기본이며, 인간의 본질을 파헤쳐보면 맨 밑바닥에는 드려움이 깔려 있다고 말한다. "기를 못 펴게 하거나 주눅이 들게 하는 악착같고, 잔인하고, 야비하고, 이기적인 두려움. 결혼으로 말할 것 같으면, 사람들은 다만 지배와 복종의 위치를 맡을 뿐이야.” 라고 말하며 그녀의 결혼 생활에 관여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찰스의 사촌 역시 "오랫동안 정말로 그 여자를 사랑했다는 생각이 착각일지도 모른다는 거야. 혼자 상상해 낸 개념일 수 있어. 구원하겠다는 생각은 완전히 상상이고 허구라는 거야." 라고 충고 하지만 그녀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은 찰스에게 강박관념으로 치닫고 그녀를 회유히기도하고 때론 협박하여 못다한 사랑과 과거를 되찾길 바란다.
소설의 첫머리부터 지루하게 써내려간 그의 고백과 과거에 대한 회상이 쓸데없이 길다고 느껴지지만 그의 과거가 현재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회상속의 인물들이 바닷가 집을 방문하게 되면서 사건은 미스터리 형식을 취하며 빠르게 전개 된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찰스의 주변인물들과 그들을 둘러싼 사랑과 갈등, 욕망과 집착이 존재하는 현실을 그려내고 있다. 작가는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어쩌면 우리의 생각만큼 의미있거나 삶의 중요한 부분이 아닐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시시각각 바뀌는 바다의 모습과 인간의 변화무쌍한 삶은 매우 닮아있다. 모든 것을 삼킬듯 몰아치는 폭풍이 지나고 나면 언제 그랫냐는듯 바다는 이내 잔잔해 진다. 한 순간도 마음 놓을 수 없는 바다이지만 바다는 그 모든 순간들을 품을 줄 도 안다. 그래서 너른 바다를 바라보면 마음이 차분해 지는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바다여 바다여>를 통해 "세월은 바다 같아서 모든 매듭을 풀어놓는다. 사람들에 대한 판단은 절대로 궁극적일 수는 없어서, 정리를 하다 보면 또다시 재고의 필요성이 나타난다. 우리를 위로하기 위해서 예술이 무슨 거짓말을 하든지 간에 인간관계란 막연한 추측과 풀린 매듭에 지나지 않는다.” 고 말한다.
찰스의 사랑은 실패했고 그의 사랑지상주의도 막을 내렸으며 그의 명성도 인기도 곧 잊혀지겠지만 회고록을 쓰면서 그는 철처하게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자신의 지난했던 삶과 이루지 못한 사랑, 일과 성공. 어린시절부터 마음속에 담아 온 사촌에 대한 열등감과 견디가 힘든 진실과도 마주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제서야 그도 세상을 무대로 한바탕 연극과도 같은 자신의 삶을 한 발짝 뒤에서 되돌아 볼 수 있게 된 것이리라. 진실을 깨닫게 된 그가 비로소 자신의 욕망과 미련, 집착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이 책은 결론이 뻔히 보이는 다른 글과는 달리 진부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극적인 사건이나 빠른 전개도 없이 끝까지 잔잔하게 주인공의 의식의 흐름이나 생각을 중심으로 이어지지만 작가의 뛰어난 상상력과 통찰력, 진실을 꿰뚫어 보는 예리함이 돋보이는 글로 인간적인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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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자체가 연극 무대이고 사람은 무대 위에 던져진 배우라는 연출가이자 극작가이자 배우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찰스 애로우비가 인생을 성공과 실패, 라는 한 가지 잣대로 말할 수 없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