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흔히 아이의 교육을 위해 부부가 떨어져 지내는 사람들을 보고 기러기라고 말한다. 그 기러기에 대한 문제가 우리 사회에 많이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한 번 기러기가 된 사람들은 그 생활을 포기하지 않는다. 아이들의 보다 나은 교육 환경이라는 이름만으로. 결혼 생활 횟수로 15년째. 우리 부부도 아이들의 교육 때문에 고민을 하지만 기러기를 생각해 본적은 한 번도 없다. 나도 그렇지만 남편 역시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함께 있어야 한다는 이유로. 아이들은 어차피 어른이 되면 독립하고 각자의 인생을 살 텐데 어릴 때부터 떨어져 지난다는 건 아이들과의 추억이 반 토막 나는 것 아닐까? 물론 같이 있다고 좋은 추억을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우리는 서로에게 좋은 부모와 자식 이라고 생각한다. 여기 한 남자가 있다. 아내와 아들을 미국에 보낸 흔히 말하는 기러기다. 그녀를 처음 만나 곳은 평소 남자가 자주 다니던 레스토랑이다. 레스토랑에 앉아 있는 그녀를 처음 본 순간 어딘가 불편한 듯 묘한 표정을 짓는 그 모습이 남자의 마음 안으로 들어왔다. 혼자 앉아 있는 여자의 모습은 신비로운 관능의 빛깔을 가지고 있었고, 설레임을 동반했다. 레스토랑에서 나가면 그녀를 다시는 볼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밖으로 나온 남자. 그런데 그녀가 남자에게 말한다. 우산을 함께 쓰자고.. 그녀의 이름은 리지이고 어릴 적 노르웨이에 입양 된 한국 여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찾아온 여자와의 시간들... 그녀와 함께 한 시간은 단순하면서도 복작하고, 황홀하면서도 파멸적이고, 쾌락을 동반하지만 묘한 공허함을 선사한다. 그녀는 떠나기 전 당신을 레스토랑에서 만나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묘한 말을 남긴 채 떠나간다. 그로부터 몇 개월 뒤 남자에게 변호사가 연락을 한다. 아내가 조만간 이혼을 요구할지도 모른다면서... 단순히 아내와 아들을 미국에 보낸 기러기의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남자 입장에서 기러기 아저씨가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끌어간다. 기러기의 내적 변화와 갈등을. 기러기 가족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본적 없기에 외로운 중년 아저씨의 심리를 모두 이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언제든 어떤 것에든 유혹에 넘어갈 수 있는 위태로운 마음 상태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결혼 전 아내를 불안하게 했던 일, 결혼 이후 실패하기만 했던 사업, 그 사업을 아내 힘으로 다시 일으켜 세웠고, 가장 잘 나갈 때 모든 것을 정리하고 미국으로 아들과 함께 가버린 아내. 반발하고 반대하고 싶었지만 자신에겐 그럴 능력이 없음을, 그리고 그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남자. 때문에 오랜 시간 유학을 준비했던 아내에게 대항할 수 없었다. 그렇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기러기 아빠가 된 남자는 아무도 없는 오피스텔에서 더욱 외로워진다. 그때 나타난 리지는 남자에게 아마 꿈같기도, 마약 같기도 한, 산소 같은 존재 아니었을까 다시는 누구도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은 중년의 남자. 마지막 한 번 열정을 다해 그녀를 사랑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 현재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을지언정. 수 만 가지 생각이 남자의 마음을 혼란하게 만들었을 무렵 아내의 이혼 통보는 결코 반갑지 않다. 더군다나 사람을 붙였을지 모른다는 의심은 남자를 더욱 힘들게 한다. 그리고 좌절하게도 만든다. 떨어져 있다는 것. 부부가 떨어져 있다는 건 어쩜 의심을 낳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물론 같이 있어도 외도하는 사람들이 많기도 하지만. 한 번 균열이 간 부부의 마음은 쉽게 돌아올 수 없다. 하지만 누군가를 그것도 내 아내나 남편을 시험하는 듯 한 설정은 아닌 것 같다. 그게 더 마음의 상처를 크게 할 테니까. 오로지 남자 입장에서 남자의 심리를 잘 표현했다. 그렇다고 해서 투박하거나 거칠게 표현하지도 않았다. 남자의 마음을 이렇게 아름다운 글로 단어들로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이 참 좋다. 행동은 거칠게 그리고 무섭게 나올 수 있는 중년 아저씨지만 그 마음은 여느 여자들과 똑같이 흔들리고 상처 받는다. 그래서 더 슬픈 건지도 모르겠다. 점점 힘을 잃어가는 아빨 빠진 호랑이나 사자가 되어 가는 것 같아서... 처음 만나는 작가다. 표현력이 참 좋다는 생각을 했다. 이 작가의 다른 책도 찾아봐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