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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9] 위기에 대처하는 리더십
"[13-69] 위기에 대처하는 리더십" 내용보기
1차 사료의 소중함.   1962년 10월 14일, 미국의 U-2 첩보기가 쿠바에 배치된 소련의 준중거리 탄도미사일을 발견했다. 이틀 뒤인 10월 16일,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이 사실을 보고 받고 비상대책기구인 엑스콤을 소집한다. 이후 13일 동안 인류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꿀 뻔한, 이른바 쿠바 미사일 위기가 벌어졌다.   우리는 어쩌면 제3차 세계대전이 벌어졌을 지도 모르는
"[13-69] 위기에 대처하는 리더십" 내용보기

1차 사료의 소중함.

 

1962 10 14, 미국의 U-2 첩보기가 쿠바에 배치된 소련의 준중거리 탄도미사일을 발견했다. 이틀 뒤인 10 16,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이 사실을 보고 받고 비상대책기구인 엑스콤을 소집한다. 이후 13일 동안 인류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꿀 뻔한, 이른바 쿠바 미사일 위기가 벌어졌다.

 

우리는 어쩌면 제3차 세계대전이 벌어졌을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젊고 용기 있는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가 과감하고 냉철한 판단으로 쿠바 미사일 위기를 해소했다고 알고 있다.

이것은 그의 동생이자 법무부장관인 로버트 케네디의 회고록인 <13의 영향이 크다. 이는 우리가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비극에 대해 그의 부인 혜경궁(惠慶宮) 홍씨(洪氏)가 남긴한중록(閑中錄)>을 통해 바라보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이런 사건 당사자의 기록은 그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들려주면서도, 해당 당사자의 입장에 따라 왜곡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점에서 조선시대의승정원 일기와 같은 1차 사료의 가치는 크다. 다행히도 쿠바 미사일 위기와 관련되어서도 비슷한 성격의 1차 사료가 존재한다. 소위 케네디 테이프라고 불리는 녹음테이프다. 이것은 쿠바 피그스 만 침공이 실패했을 때 사람들이 말을 바꾼 것에 실망한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자신의 집무실과 각료회의실에 동생 로버트 케네디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르게 녹음 장치를 설치해서 만든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그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알 수 있다.

 

물론 이런 1차 사료가 없더라도 신문, 방송 등의 자료를 통해 그 당시의 급박했던 상황을 재현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뉘앙스까지 살리는 것은 쉽지 않다.

 

사석위호(射石爲虎)’라는 이광 장군의 일화를史記漢書가 각각 어떻게 표현하였는가를 보면 그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광이 사냥을 나가 풀 속의 돌을 보고 호랑이인 줄 알고 활을 쏘았다. 돌에 명중하여 화살촉이 깊숙이 박혔으나 잘 보니 돌이었다. 그래서 다시 쏘아 보았지만 끝내 화살촉을 돌에 꽂을 수 없었다.

[史記] 廣出獵 見草中石 以爲虎而射之 中石沒 視之石也 因復更射之 終不能

[漢書] 廣出獵 見草中石 以爲虎而射之 中石沒 視之石也 他日射之 終不能入矣

양자의 차이는 , ‘因復更射()他日射之로 바뀌었고, 후자가 ’, ‘을 한 자씩 생략한 것뿐, 사실상 거의 같은 내용이며, 일견 班固(반고)가 문자를 절약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因復更射()他日射之로 바뀜으로써, 돌도 꿰뚫은 강궁술에 자신도 놀라 한편 흥분하고 한편 자신도 믿을 수 없어 곧바로 다시 한번 시험해 보는 李廣(이광)의 생생한 경험과 심리상태가 사라졌을 뿐 아니라 ’, ‘ 2자가 생략됨으로써 돌도 꿰뚫을 정도의 강궁술을 강조한 사마천의 의도도 반감되었고, 전체 문장이 말해진 것에서 쓰여진 것으로 변질되고 말았다.1)

 

간단히 한국의 정치인이 천황(天皇)폐하께서~”라고 말한 것을 의미가 같다고 해서 일왕(日王)~”라고 고쳐서 기록을 남겼을 때의 뉘앙스 차이를 떠올리면 될 것이다.

 

 

위기 상황에서 지도자는 어떻게 행동하여야 하는가?

 

13일이라고 불리는 쿠바 미사일 위기 상황은 위기가 발생했을 때, 지도자가 파국을 피하기 위해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가를 알려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쿠바 미사일 위기는 존 F. 케네디 정부가 자초한 일이다. 그가 쿠바의 피텔 카스트로(Fidel Castro; 1926~ ) 정부를 축출하고 반공정권을 세우기 위해 피그스 만 침공 계획이나 몽구스 작전을 승인하고 실천에 옮기지 않았더라면, 쿠바의 피텔 카스트로 정부가 미국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소련의 미사일을 배치하는 일종의 치킨 게임을 시도하지 않았을 테니까.

 

어쨌든 쿠바 미사일 위기가 벌어졌을 때, F. 케네디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전쟁이냐 협상이냐 하는 양자택일의 길 밖에 없었다. 불행히도 군사전문가들은 전쟁쪽을 선호했다.

 

커티스 르메이(Curtis E. LeMay; 1906~1990) 장군은 소련이 보복 공격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하면서,

봉쇄와 정치적인 조치가 오히려 전쟁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 그런 조치는 뮌헨에서의 유화 정책만큼이나 잘못된 방안입니다. ... 제가 판단하기에는 지금 당장 직접적인 군사적 개입을 하는 것 말고는 다른 해법이 없습니다.”

이 순간, 자리에 참석했던 장군들 모두가 숨을 죽이면서 대통령의 반응을 기다린 것이 틀림없다. 르메이의 발언은 군 최고통수권자에게 조언을 하거나 이의를 제기하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다. 르메이는 당대의 겁쟁이를 상징하는 최고의 비유, 1938년 뮌헨에서 이루 어진 히틀러에 대한 유화 정책을 끄집어내 대통령의 얼굴에 집어 던진 것이다.

케네디 대통령은 르메이가 던진 미끼를 물지 않는다. 놀랄 만큼 침착한 태도로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은 것이다.

~ 중략 ~

동료들의 단결을 등에 업은 르메이 장군은 쿠바 미사일이 미국과 라틴아메리카를 핵 공갈에 노출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여러 동맹국과 중립국은 봉쇄와 정치적 대화를 매우 약한 대응으로 여길 겁니다. 많은 미국인도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르메이는 대통령을 거의 비웃는 듯한 태도로 내뱉는다. “다시 말해, 각하께서는 지금 아주 난처한 상황에 처하셨습니다.”

케네디가 차갑게 되묻는다. “뭐라고 했소?”

르메이가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이 한 말을 되풀이한다. “지금 아주 난처한 상황에 처하셨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케네디는 신랄한 웃음과 함께 대꾸한다. “장군도 나와 같은 처지에 있지 않소. 그것도 직접 말이오.”2)

 

    장군들만 쿠바 침공을 선호한 것은 아니었다. 상원 군사위원회 위원장인 리차드 러셀(Richard B. Russell Jr.; 1897~1971) 상원의원도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몰아붙였다.

각하, 저는 이런 상황을 가만히 두고만 볼 수 없습니다. 미국인들에 대한 의무감 때문에 이보다 더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제가 보기에 우리는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미국이 최강대국인지 여부를 가늠할 갈림길 말입니다.3)

 

이처럼 합참 수뇌부와 엑스콤 자문위원, 의회 지도자들은 호전적인 조언을 넘어 마치 맞짱뜨기를 원하는 것처럼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압박하였다.

하지만, “케네디는 거의 화를 내지 않았다. 10 29일 러스크와 있었던 일을 제외하면, 적어도 위기가 절정에 이른 시점에서 합참 수뇌부와 엑스콤 자문위원, 혹은 의회 지도자들의 가차 없는 비난 앞에서도 쉽게 동요하지 않았다.

케네디는 오만과 독선에 빠지지 않았다. 또한 누구도 심하게 몰아붙이지 않았고, 짜증나거나 화가 날 만한 상황이 분명할 때에도 목소리를 좀처럼 높이지 않았다. 러스크를 호되게 꾸짖을 때조차 자신의 비난이 개인적인 차원으로 한정된다는 점을 꼬집어 말했다. 모든 사람이 항상 자기 목소리를 내도록 했고, 결국 헌법에 따른 결정권은 전적으로 자기 몫이라는 사실을 확신했다.4)

 

이런 대통령의 자세는 그가 최선의 선택을 하는데 있어서 큰 역할을 했다. 왜냐하면 엑스콤 회의 참석자들은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철저하게 논의할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미/소 양 강대국이 서로 상대방의 목을 겨냥한 비수를 치우기로 합의한다는 최선의 방안을 결정하고 실천에 옮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대통령 1인 혹은 소수의 독선에 의해 정책이 논의되고 결정되었다면 다양한 변수를 고려하지 못했을 것이고, 다수의 의견에 무조건적으로 따르기만 했다면 타이밍을 놓쳐서 상황을 악화시켰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까지 살아왔던 삶에서 나온 경험과 지성에 의해 중대한 모든 일을 최종 결정해야 하는 대통령에 있어서 쿠바 미사일 위기에서 보여준 존 F. 케네디의 모습은 하나의 좋은 사례가 아닐까 생각한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에 대한 리뷰입니다.


 

1) 이성규 편역, <사기 중국고대사회의 형성 - >, (서울대출판부, 1987), pp. 71~72

2) 셀던 M. 스턴, < F. 케네디의 13>, 박수민 옮김, (모던타임즈, 2013), pp. 128~130

3) 셀던 M. 스턴, 앞의 책, pp. 158~159

4) 셀던 M. 스턴, 앞의 책, pp. 363~364

w******f 2013.12.25. 신고 공감 7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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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F.케네디의 13일" 그들은 왜 쿠바를 놓고 도박을 했는가
""존 F.케네디의 13일" 그들은 왜 쿠바를 놓고 도박을 했는가" 내용보기
구소련이 붕괴된 지금에 와서 이른바 "냉전(cold war)"은 인간의 막연한 공포심이 만들어 낸 한낱 상상의 전쟁에 불과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52년전. 1962년 10월 냉전은 실제 전쟁의 문턱까지 갔다 왔습니다. 위기는 금방 해소되었고 그 긴장감을 직접 느껴야 했던 극소수의 지도자들을 제외하고는 그 시절을 경험해 보지 못한 우리 세대에게는 그 때의 상황이
""존 F.케네디의 13일" 그들은 왜 쿠바를 놓고 도박을 했는가" 내용보기

구소련이 붕괴된 지금에 와서 이른바 "냉전(cold war)"은 인간의 막연한 공포심이 만들어 낸 한낱 상상의 전쟁에 불과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52년전. 1962년 10월 냉전은 실제 전쟁의 문턱까지 갔다 왔습니다. 위기는 금방 해소되었고 그 긴장감을 직접 느껴야 했던 극소수의 지도자들을 제외하고는 그 시절을 경험해 보지 못한 우리 세대에게는 그 때의 상황이 얼마나 긴박했는지, 인류의 종말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거의 알지 못합니다.

핵전쟁 이후의 세계는 수많은 영화나 게임, 소설의 소재로 사용되고 있죠. 핵전쟁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즐길 수" 있지만, 만약 1962년에 정말로 핵전쟁이 일어났다면 분명 우리의 삶은 현재와 엄청나게 달라졌을 것입니다. 물론 "폴아웃"이나 "메트로 2033"처럼 문명 자체가 멸망하고 방사능에 찌든 괴물이나 좀비가 득실되는 아포칼립스적인 세계가 펼쳐지지는 않았겠지만 지구의 많은 부분이 지금까지도 복구되지 못한 채 우리는 훨씬 빈곤하고 척박하게 살고 있을 것은 틀림없습니다.

제2차세계대전 말, 나치 독일이 항복하고 일본의 패망을 눈 앞에 둔 1945년 7월 16일 미국 뉴멕시코주 화이트샌드의 사막 한가운데에서 인류 최초의 핵실험이 성공합니다. TNT 20kt 위력에 맞먹는 플로토늄 폭탄 "갯짓(Gedget)"이 폭발하자 12km 상공까지 버섯구름이 치솟았으며 폭 330m, 깊이 3m의 거대한 웅덩이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8월 6일과 9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각각 한발의 핵무기가 투하되면서 전 인류에 핵전쟁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처음에는 미국만이 보유했던 핵무기는 1949년 8월 29일 소련이 핵실험에 성공하면서 미국의 핵독점시대는 끝났고 뒤이어 영국과 프랑스 또한 핵실험에 성공하면서 강대국들은 너도나도 경쟁적으로 핵개발에 열을 올렸습니다. 또한 이어서 핵무기와는 위력에서 비교도 되지 않는 수소폭탄과 이를 탑재하기 위한 탄도미사일이 개발되어 테이블 위에서 버튼을 한번 누르는 것만으로도 수천킬로미터를 날아가 상대의 수도와 주요 도시를 괴멸시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50년대는 바로 핵우위를 차지하려는 강대국들의 경쟁 시대이자 인류의 위기였습니다. 만약 핵전쟁이 정말로 일어났을 때 그 결과가 얼마나 파멸적일지에 대해서는 그 때까지도 단 한번도 진지하게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전까지의 전쟁은 재래식 전쟁이었고 전쟁이란 적이 굴복할 때까지 때려 눕히는 것이지 쌍방이 공멸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핵전쟁의 공포는 단지 막연한 상상력일 뿐이었습니다. 따라서 양측의 전략은 서로 먼저 대량의 핵무기를 날려서 상대의 재공격 능력을 최대한 파괴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최초의 목표는 군사적인 표적이 되겠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상대의 전쟁의지를 꺾겠다는 이유로 인구밀집지대 또한 표적이 될 수 있었습니다.

더욱이 서방진영은 유럽과 아시아, 중동 모든 곳에서 소련과 바르샤바 조약군보다 재래식전력에서 훨씬 열세했기 때문에 그 열세는 오로지 핵전력의 우세만이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중부유럽에서 나토군보다 4배 이상 우세했던 바르샤바 조약군은 전쟁 발발 2, 3일 내에 나토의 최일선 방어선을 돌파할 수 있었으며 미국과 나토는 바르샤바 조약군의 진격을 막기 위해서 이들에 대한 대량의 핵무기 사용과 함께 모스크바와 주요 도시에 대해 핵을 발사했을 것입니다. 1963년 당시 미국은 핵전력에서 절대적으로 소련보다 우세했는데, 미국의 핵무기는 29,459개에 비해 소련은 1/7에 불과한 4,238개를 보유했습니다. 또한 미국은 유럽과 터키, 한국 등 소련에 인접한 서방 동맹국들에게 대량의 핵무기를 전진 배치함으로서 소련을 에워싸면서 소련을 압박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소련에게 위기감과 미국에 대한 패배의식, 그리고 이를 어떻게든 극복하겠다는 노력으로 이어졌고 미국 역시 자신의 우위를 지키려고 노력하면서 이것이 악순환되어 양측의 경쟁과 긴장관계는 더욱 고조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쿠바 미사일 위기는 처음으로 인류에게 핵무기 경쟁이 얼마나 가공할 위험을 안고 있는지 경고하고 새삼 돌아보게 하는 크나큰 사건이었습니다.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미소는 워싱턴과 모스크바를 연결하는 핫라인을 설치하여 우발적인 사건이나 상대의 의도에 대한 오해로 인해 최악의 상황이 빚어지는 것을 피하려는 노력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이후에도 위기는 수차례 있었고 양 진영의 경쟁과 불신은 여전했지만 파멸적인 핵전쟁은 구소련이 무너지는 순간까지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냉전시기 역사에 관심이 있거나, 하다못해 학교에서 배우는 세계사에서도 쿠바 미사일 위기를 짧게나마 다루고 있기에 쿠바 미사일 위기라는 말이 생소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이 왜 일어났는가, 왜 소련은 미국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쿠바에 군대와 핵무기를 배치했는가. 또한 미국은 여기에 왜 그토록 격렬하게 반응했는가. 그리고 그들은 왜 마지막 순간에 극적인 타협을 선택했는가. 여기에 대해 정확히 알고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쿠바 미사일 사건을 다룬 영화 "D-13"은 흥미를 위해 각색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사실에 근거한 논픽션영화이며 미국의 많은 대학에서 국제 정치 수업의 보조 교재로 사용될 정도로 사실적이지만 케네디 대통령의 특별보좌관이었던 케네스 오도넬의 시각에서 설명하고 있기에 전적으로 '미국의 시각'만 있을 뿐 소련과 쿠바의 시각은 제외되어 있다는 것이 한계이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당시 법무장관으로 회의에 직접 참여했던 로버트 케네디의 회고록 "13일" 역시 전적으로 자신의 시각과 입장에서 회고하는 것이기에 자신의 주관이 많이 들어 있으며 오류 또한 많습니다.

작년 11월에 모던타임즈에서 케네디 암살 50주년 기념으로 출간한 셀던 M. 스턴의 "존 F. 케네디의 13일"은 쿠바 미사일 위기 직후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집행위원회 이른바 "엑스콤(ExComm)"의 비밀회의에 대한 녹음 테이프를 통해 당시의 상황을 분석한 책입니다. 셀던 M. 스턴은 케네디 도서관의 역사학자이자 쿠바 미사일 위기에 대한 권위있는 연구가입니다. 1973년 7월 17일 케네디 도서관은 케네디 행정부 당시 대통령이 주관한 각종 회의와 통화 내용에 대한 기록을 공개하였습니다. 대통령 기록물을 꽁꽁 감춰두고 자기들끼리 정쟁의 수단으로나 활용하는 우리 정치권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라 할 수 있죠.

이 책은 냉전의 확대, 철저하게 실패로 끝난 1961년 4월의 피그스만 침공작전, 그리고 CIA가 실추된 미국의 위신을 회복하겠답시고 쿠바에 대한 무력 침공과 카스트로 암살 등을 포함하는 이른바 "몽구스작전"의 수립, 그리고 쿠바와 소련의 밀월관계와 소련의 쿠바 핵무기 배치에서 시작합니다. 책은 어디까지나 케네디의 비밀 테이프에 대한 분석으로 일관하기에 제반 상황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만, 이해를 돕기 위해 부연 설명하자면 정권의 안보는 물론이고 자신의 신변조차 위협받았던 카스트로는 소련에 접근하여 대량의 신형 무기와 자금의 원조를 요청하였습니다. 1961년 9월 소련과 쿠바는 군사협정을 체결합니다. 그러나 흐루시초프는 이 문제에 대해 매우 신중했는데 소련의 관심사는 전적으로 유럽에 있었고 그 외의 지역에 대해서는 무관심한데다(당시 소련의 역량으로는 유럽만도 벅찼기에) 미국의 턱밑이나 다름없는 쿠바에 개입했다가는 미국과 심각한 정치적 마찰을 빚을 것이 뻔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미국의 ​피그스만 침공에 대해서도 소련은 이렇다할 반응을 보이거나 이를 이용해 쿠바에 접근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소련에 손을 내민 쪽은 쿠바였습니다. 군사협정을 체결한 뒤에도 쿠바의 거듭된 요청에도 불구하고 소련은 쿠바에 대한 원조에 소극적이었으며 3개월이나 지난 뒤인 12월 20일에야 군사원조에 대한 논의를 하였고 1962년 2월 8일 1억 3,300만 달러의 군사 원조를 제공하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럼에도 처음에는 어디까지난 모두 방어용의 구식 무기에 국한되었습니다. 그러나 1962년 4월 흐루시초프는 쿠바에 대공미사일을 제공하기로 했고 그와 함께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대규모 소련군 병력을 쿠바로 수송하기로 합니다.

쿠바와 소련이 손을 잡고 소련이 쿠바에 무기를 제공한다는 사실은 미국 역시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쿠바에서 탈출한 망명자들은 소련이 쿠바에 핵무기를 배치했다고 주장했으나 그들의 주장은 모두 과장되고 사실이 아니었기에 미국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미국 일각에서는 소련이 쿠바에 핵무기를 포함해 공격 무기를 배치할 가능성을 제기했지만 10월 14일에도 국가안전보좌관인 맥조지 번디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런 증거는 없다"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날 쿠바를 정찰한 U-2 정찰기는 쿠바에 중거리 탄도미사일 기지가 건설되고 있다는 사진을 촬영하였습니다.

 

이 사진은 그동안 소련이 그런 선택을 할 리 없다고 여겨왔던 케네디에게 굉장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케네디는 자신의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에서 "흐루시초프는 정치가가 아니라 깡패"라고 말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10월 16일 정오 엑스콤 첫번째 회의가 개최되었습니다. 이 책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합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놓고 쿠바 침공부터 미사일 기지에 대한 제한적인 공습, 해상 봉쇄 등 다양한 안이 논의됩니다. 미국으로서는 이를 묵인했다가는 워싱턴과 뉴욕을 비롯해 미 동부지역 전체가 심각한 위협에 놓이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군사적으로 공격했다가는 큰 손실은 물론이고 소련 역시 이를 묵인할 리 없을 것이기에 상황이 더 악화될 수도 있었습니다.

 

또 한가지, 그들의 중요한 의문은 "흐루시초프가 왜 쿠바에 핵과 탄도미사일을 배치했는가"였습니다. 여기에 대해 회의 참석자들은 "미국을 위협하기 위해서"라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미국의 턱밑에 핵무기를 배치함으로서 소련이 핵전력과 핵전략에서의 열세를 뒤엎겠다는 의도라는 것이죠. 그들 기준에서 나름 상식적인 판단에 근거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이 "결코 물러설 수 없다"라고 강경하게 나설 수 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그들 입장에서의 생각일 뿐 소련의 진짜 목적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왜 흐루시초프는 쿠바에 핵무기를 배치하여 스스로 미국과 극단적인 대결 양상을 선택했는가. 소련은 공산진영의 종주국이었지만 중국과 관계가 틀어지면서 공산진영은 분열되는 양상을 보이게 됩니다. 중국은 소련이 자신의 안보를 지키는데만 급급하고 미국에 대한 패배주의에 사로잡혀 "세계 혁명 전파"에 소극적이며 한반도나 베트남에서도 뒤에 한발 물러난 채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격렬하게 비난했습니다. 따라서 제발로 공산진영의 새로운 형제가 된 쿠바의 위기를 모르는 채 한다면 공산진영에서 소련의 위신은 땅에 떨어질 판이었습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하여 소련의 체면을 세우는가가 바로 흐루시초프의 지도력에 대한 시험대였습니다. 철권통치를 했던 스탈린과 달리 권위가 취약했던 흐루시초프로서는 자신의 위신 때문이라도 이전처럼 소극적으로 행동할 수 없었습니다.

 

그가 처음부터 미국과의 타협을 안중에 두었다거나 미국이 사실을 알았을 때 어떻게 나올지에 대해 얼마나 신중하게 고민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흐루시초프 자신은 미국과 전쟁을 할 생각이 없었다고 해도 이를 전달할 방법이 없는 이상 미국은 충분히 소련의 의도를 오해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할 소지가 있었습니다. 만약 미국이 쿠바나 쿠바로 향하는 소련 선박을 공격한다면 소련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일단 전쟁이 시작되면 소련 역시 물러날 수  없기 때문에 베를린이나 다른 곳을 공격해야 할 것이고 미국 역시 그에 합당한 보복을 했을 것입니다. 보복과 보복이 확대되면 전면전으로 치닫게 되는 것이죠. 과연 흐루시초프는 이런 상황을 통제할 자신이 있었던가. 정말로 단순히 자신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마지못해 선택한 것인가, 아니면 소련 입장에서 딱히 이익될 것도 없는 작은 나라 쿠바 때문에 모든 것을 잃을 지도 모르는 제3차 세계대전조차 각오했던가. 어느 쪽이건 그의 행동은 충분히 핵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케네디가 소련과의 전면전을 각오해서라도 쿠바를 공격해야 한다는 군부의 압력에 시달렸듯, 같은 시간 흐루시초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는 지도자에게는 치킨 게임이나 마찬가지인데, 어느 한쪽이 물러서지 않으면 두 사람 모두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상대에게 "겁쟁이"로 비웃음 당할까봐 물러설 수 없다는 것이 딜레마였습니다. 최악의 상황을 피한다는 명목으로 한번 양보하기 시작하면 다음에는 또 어떤 양보를 강요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바로 그 점이 케네디와 흐루시초프의 고뇌이자 벼랑에 내몰린 것이죠.

 

따라서 양측은 앞에서는 자존심을 내세워 밀고 당기며 전쟁이라도 불사할듯 강경하게 엄포를 하면서도 한편으로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상대의 의중을 파악하고 물밑 접촉을 시도하였습니다. 흐루시초프는 미국에 쿠바에서 미사일과 군대를 철수시키는 대가로 터키에 배치된 주피터 핵미사일을 철수시키라고 요구합니다. 사실 케네디는 터키에 배치된 주피터 핵미사일을 "그게 아직도 있었던가"라고 되물을 만큼 관심도 없었고 또한 터키정부는 핵미사일보다 핵미사일을 배치한 댓가로 얻는 원조에 더 관심이 있을 뿐이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실질적인 가치는 없다고 해도 소련과 타협한다는 것 자체가 외교적인 패배로 비추어질 수 있고 또한 동맹국들의 신뢰 실추로 이어질 수 있기에 그로서는 쉽사리 "OK"라고 할 수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하지만 흐루시초프 역시 기왕 칼을 뽑았는데 뭐라도 얻지 못한 채 꼬리를 내린다면 소련의 체면은 패배자로서 땅에 떨어질 판이었습니다.

 

양쪽은 쿠바 미사일 위기 내내 회의를 거듭하면서 상대의 목적이 무엇인가, 우리가 상대에게 기만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렇게 있다가 선제공격을 당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놓고 내내 격론을 벌입니다. 또한 유엔에서 미소 양측은 상대에 대해 격렬하게 비난하면서 벼랑끝 전술로 맞섰습니다. 물밑 접촉을 통한 타협은 성사될 듯 하면서도 다시 결렬되었고 양측은 상대의 기만을 의심했습니다.

 

결국 10월 28일 미국이 터키에서 후퇴하는 조건으로(미국은 공식적으로 쿠바 미사일 사건과 터키 철수는 서로 전혀 별개의 건이라고 주장했지만) 흐루시초프는 쿠바에서 물러나기로 최종 결정하였고 미해군과 대치하고 있던 소련 선박들은 해상 봉쇄선을 코앞에 두고 회항함으로서 인류는 핵전쟁의 문턱에서 간신히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미국은 자신들이 이겼다고 생각했고 소련은 소련대로 자신들이 이겼다고 서로 승리를 자축하였습니다. 물론 긴장관계의 해소는 일시적인 것이었고 근본적인 해결은 구소련이 몰락할 순간까지도 아무것도 되지 않았지만요.

 

이 책은 독자가 이 사건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전제 아래 서술해 나기기에 일반인들이 재미로 읽을 수 있는 교양서적이라기보다 상당한 관련 지식을 요구하는 학술 서적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쿠바 미사일 위기는 냉전 시기 가장 위험했던 순간이자 성공적으로 위기를 극복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사건이며 국제 정치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필독서라 해도 좋습니다.

 

더욱이 쿠바 미사일 위기는 특히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과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남북한 정부는 현재 제대로 된 소통라인이 없으며 상호 극단적인 불신감과 증오심으로 인해 언제라도 일촉즉발 상황에서 통제 불능의 전면전으로 치닫을 수 있습니다. 북한이 국지적인 도발을 반복하는 것에 대해 우리는 보복성 억제전략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정부가 북한에 대해 패배주의적이다"라는 국민적 비판을 피할 수 있을 지는 몰라도 냉철하게 본다면 대단한 위험성을 안고 있습니다.

 

억제전략이란, 상대가 어떤 행동을 했을 때 그에 수반되는 보복적 댓가를 위협하여 상대가 그와 같은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예방하여 전면전을 막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만약 상대가 그 위협을 무시하고 군사력을 사용한다면 억제전략은 무의미하며 만약 서로 더 큰 보복으로 맞선다면 상호 응징과 보복이 반복되어 결국 파멸적인 전면전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억제가 허세에 불과할 뿐 실질적인 행동으로 옮길 가능성이 없다고 상대가 인식한다면 상대는 자신의 행동에 아무런 부담도 느낄 필요가 없기에 그것 역시 전면전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억제 전략의 한계이죠.

 

예를 들어, 제1차 세계대전의 시발이 된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 사건은 사실 프랑스와 독일에게는 아무런 직접적 상관도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서로에 대한 의심과 불신이 결국 2천만명 이상의 사상자를 내는 최악의 전쟁으로 확대되었죠. 이런 일은 언제라도 반복될 수 있으며 바로 우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기에 대해 여지껏 얼마나 진지하게 고민되었던가. 단지 미국에 기대고 북한이 적어도 최악의 선택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의존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북한이 어떤 도발을 했을 때 그 의도가 정확히 무엇인지, 우발적인 것인지 의도적인 것인지, 제한적인 것인지 전면적인 것인지 분명한 판단 기준이나 충분한 브레이크가 없습니다. 만약 자존심을 내세워 무조건 물러 설 수 없다는 식으로 양측 모두 벼랑끝 전술을 고집한다면 사태는 통제 불능에 직면하여 공멸할 가능성까지 있죠. 한번 전쟁이 시작되면 그때는 어느 한쪽이 굴복할 때까지는 멈출 수 없으며 남북한 모두 결과는 생각하지 않고 일단 이기겠다는 일념만으로 자신이 가진 모든 수단을 사용할 것입니다. 남북한이 전면전을 벌인다면 물론 남한이 승리할 것은 틀림없지만 적어도 수백만명 이상의 사상자를 낼 것이며 우리 경제와 인프라는 심각한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군사적으로는 승리한다고 해도 "무의미한" 승리일 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전면전만은 피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북한의 도발에 무조건 굴복해야 하는가. 굴복하기 시작하면 우리가 외치는 보복 억제라는 것은 한낱 공염불에 불과하여 북한의 더 큰 도발을 불러올 것입니다.

 

쿠바 미사일 위기때 케네디와 흐루시초프는 바로 이런 입장에 놓였습니다. 상대의 의중을 파악하기에 충분한 정보도 없고 주변에는 막연한 공포심을 내세워 공격을 해야 한다는 호전적인 군부, 직접 접촉할 수 있는 외교라인도 없는 현실. 물러설 수도, 물러서지 않을 수도 없는 딜레마. 과연 지도자가 이런 선택의 기로에 놓였을 때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쿠바 미사일 위기가 해결될 수 있었던 것은 케네디와 흐루시초프 두 사람 모두 전쟁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 모두 전쟁을 몸소 체험했던 사람들입니다. 만약 구 제국주의 일본의 군부 지도자들이 그러했듯 무책임하게 벼랑끝 전술로만 맞섰다면 핵전쟁은 틀림없이 일어났을 것이며 그 결과는 파멸적이었을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어떤가. 전쟁을 겪었다는 세대는 있지만 그 전쟁이 얼마나 무서운 것이었는지 과연 얼마나 인식하고 있을까요.

 

우리는 대북전략을 놓고 다양한 시나리오를 상정하여 이에 맞춘 대응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단순히 "강력한 응징"과 "선조치 후보고"운운하는 엄포식 전략은 말뿐이고 행동이 뒤따르지 않으면 상대에게 아무런 억제가 되지 못할 것이고 그렇다고 정말 행동으로 옮긴다면 자칫 상황을 뜻밖의 통제 불가능으로 몰고 갈 수도 있습니다. 어느 선까지 강경할 것이며, 어느 선까지 감내할 것인가를 충분히 논의하지 않으면 우리는 여지껏 그래왔듯 북한에게 질질 끌려다니거나 아니면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건 둘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사실 쿠바 미사일 위기에 대해 국내에서는 극소수의 번역서(그것도 미국의 입장에 편중된)가 전부이며 제대로 된 학술 연구나 논문도 없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냉전적인 대치상황인 우리에게 쿠바 미사일 위기는 바로 우리가 처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양국 지도부의 결정과정은 우리에게는 매우 중요한 연구과제라는 사실을 깊이 새겨야 합니다.

 

ps. 한편으로 이 사건을 놓고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그렇다고 해서 케네디를 실제 이상으로 과대평가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쿠바 미사일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했다는 이유로 케네디는 마치 "자유진영의 수호자"처럼 우상화되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에 물러났다며 흐루시초프가 군부의 공격을 받아 결국 실각했듯, 케네디 역시 동맹국들의 신뢰를 잃었습니다. 프랑스는 미국이 자신의 안보를 명목으로 유럽을 위기에 내몰았다며 나토에 탈퇴하고 독자적인 핵무장에 나섰습니다. 유럽 동맹국들은 노골적으로 미국에 대한 불신감을 드러냈습니다. 결국 핵전쟁은 피했지만 미국과 소련 모두 위신은 실추되었습니다. 어느 쪽도 승자는 아니었습니다. 바로 그 점이 이후의 지도자들에 의해 유사한 위기가 반복된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그들은 케네디나 흐루시초프가 현명했다기보다 나약했다고 생각했고 자신들은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또한 쿠바 미사일 위기는 애초에 케네디가 군부와 CIA의 강력한 압력에 못 이겨 "피그스만 침공"을 수락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는 리더쉽을 시험받았을 때 신중하다기 보다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흐루시초프가 미국을 도발하는 도박을 벌인 것 또한 일정부분은 케네디를 얕본 것에 있었습니다. 쿠바 미사일 위기가 해소되는데는 케네디의 노력보다 오히려 흐루시초프의 결단이 컸습니다. 만약 소련이 마지막 순간에 물러서지 않았다면 케네디는 과연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ps2. 이 책을 번역하신 박수민님은 공군예비역소령이자 공군사관학교에서 국제관계학을 전공하셨고 정보파트에 근무하신 이 방면의 통이라 할 수 있는 분입니다. 또한, 가짜전쟁과 냉전시대의 미실행작전 등 다양한 서적을 번역하셨습니다. 시중에 출판되는 전쟁사 번역서들을 보면 단지 영문학을 전공했다는 이유로 가장 기본적인 군사 용어조차 모르고 엉터리로 번역하여 기본적인 감수조차 하지 않고 내놓는 경우가 많은데 진짜 보기 드문 전문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번역가에서 "모던타임스"라는 출판사 사장님이 되신 다음 처음으로 내놓은 책이 바로 "존 F. 케네디"입니다. 쿠바 미사일 사건과 관련해 시리즈로 출간할 계획이라고 하시는데 이번 것이 미국의 시각에 대한 것이라면 다음에는 소련과 쿠바, 그리고 만약 냉전이 진짜 전쟁이 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에 대한 것이라네요. 정말 기대가 큽니다.



a*****1 2014.03.11. 신고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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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F. 케네디의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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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강의를 할 때마다 존 F. 케네디의 제35대 미 대통령 취임 연설, “국민 여러분, 조국이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 묻지 말고, 여러분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세계의 시민 여러분, 미국이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베풀 것인지 묻지 말고, 우리 모두가 손잡고 인간의 자유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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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강의를 할 때마다 존 F. 케네디의 제35대 미 대통령 취임 연설, “국민 여러분, 조국이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 묻지 말고, 여러분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세계의 시민 여러분, 미국이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베풀 것인지 묻지 말고, 우리 모두가 손잡고 인간의 자유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라는 대목을 많이 인용한다.

 

미국의 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가 19631122일 미국 텍사스주에서 카퍼레이드 도중 저격당해 세상을 떠난 지 50년이 지났다.

 

19628월부터 미국에선 소련이 쿠바에 공격용 핵미사일 기지를 짓고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결정적 증거를 찾으려는 각고의 노력 끝에 19621014, 미국 U-2 첩보기가 쿠바에 배치된 소련 탄도미사일을 발견했다. 이틀 뒤, 케네디 대통령은 미국을 직접 겨냥할 핵 공격에 대처하기 위해 비상 대책 기구(엑스콤)를 소집한다. 이후 13일간을 역사는 쿠바 미사일 위기라고 부른다.

 

이 책은 쿠바 미사일 위기가 제 3차 세계대전의 문턱까지 갔었던 결정적인 사건에 대한 13일간 케네디가 엑스콤에서 각료들과 나눈 대화를 녹음한 이른바 케네디 테이프를 기본 자료 삼아 복원한 쿠바 미사일 위기의 생생한 증언이다. 겉으론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단호한 지도자처럼 행동했지만 실제론 파국을 막기 위해 소련과 협상한 케네디의 막후 진면목을 볼 수 있다.

 

미국 역사학자인 저자 셀던 M. 스턴은 이 테이프를 가장 먼저 듣고 분석했으며 테이프 기밀 해제 작업에도 관여했으며, 이를 이야기 형식으로 설명하여 독자들이 대화내용을 가급적 정확하고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책에서는 엑스콤 회의 초반, 쿠바를 직접 공습하는 것이 해상 봉쇄보다 유리하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는 상황에서도 케네디 대통령은 쉽사리 공습 쪽으로 기울지 않았다고 했다. 1019일 커티스 르메이 공군 참모총장이 봉쇄와 정치적인 조치가 오히려 전쟁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당대 겁쟁이에 빗대는 발언을 퍼붓는 순간에도 케네디 대통령은 흔들리지 않았다. 이어 모든 군 사령관과 참석자들이 한 목소리로 쿠바에 대한 강경한 대응을 요구했지만 그는 봉쇄의 이점은 핵전쟁으로 확전되는 상황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1022일 그는 소련의 쿠바 미사일 배치 사실을 공개하고 해상 봉쇄를 천명한다. 또 다시 국제사회 전체가 긴박하게 움직인 닷새가 흐른 뒤 소련의 흐루쇼프 서기장은 유엔의 감시 하에 쿠바 미사일을 철수하겠다는 뜻을 밝힌다. 핵무기가 동반된 제3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수도 있는 최악의 상황에서 인류가 막 벗어나는 순간이다.

 

이 책은 인류 마지막 핵 대결의 가능성이 남아있는 한반도에 사는 우리에게 지도자의 리더십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한다. 연평해전, 천안함 피격 등 남북 간에 군사 충돌이 일어날 때마다 불안 해 하는 국민들을 위해 대통령과 외교, 안보, 국방, 통일 분야 책임자들이 이 책을 읽고 리더십을 발휘해 주길 기대한다.

h*******0 2014.01.13.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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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F케네디의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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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현대사를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은 당시 쿠바 미사일 위기가 이처럼 절체절명의 위기였다는 것을 알지 못할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위기 속에서 지도자의 냉철한 이성적 판단이 역사의 물줄기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내가 알고 있던 케네디는 정치 명문가의 아들로 태어나 최연소 미국 대통령이 되고 마릴린 먼로 등 수 많은 여자들과의 부적절한 관계, 최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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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현대사를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은 당시 쿠바 미사일 위기가 이처럼 절체절명의 위기였다는 것을 알지 못할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위기 속에서 지도자의 냉철한 이성적 판단이 역사의 물줄기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내가 알고 있던 케네디는 정치 명문가의 아들로 태어나 최연소 미국 대통령이 되고 마릴린 먼로 등 수 많은 여자들과의 부적절한 관계, 최초로 베트남 전쟁에 미군 파병, 재임 3년 만에 암살당해 생을 마감하는 등 영화 같은 삶을 살다 간 단편적인 조각 이미지뿐이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서 본 케네디는 본인을 둘러싼 수많은 내부의 적, 즉 공화당 의회지도자, 엑스콤 자문위원 중 강경파들과 외부의 적인 쿠바, 소련 사이에서 중심을 잃지 않고 협상하며 상대를 설득하고 결국은 문제를 해결하는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을 완벽하게 갖춘 모습이었다.

 

2차 대전이 끝나고 미국‧소련 양 강국은 세계의 패권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며 냉전의 극한으로 치닫는다. 1962년 미국은 유럽의 교두보를 지키기 위해 이탈리아, 터키에 주피터 미사일을 배치하면서 소련과 팽팽한 긴장관계가 된다. 이에 위협을 느낀 소련은 미국의 턱 밑인 쿠바에 핵미사일을 배치한다. 1962년10월16일 케네디가 이 사실을 안 날부터 위기가 완전히 해소되기까지 13일 간 미국에서는 국가안전보장회의 집행위원회(엑스콤)가 소집되고 매일 하루에 두 세 차례, 길게는 서너 시간씩 회의가 진행된다.

 

이 책은 13일 간 긴박하게 돌아가던 엑스콤 비밀회의를 녹음한 녹취록 중 주요부분을 발췌 정리한 것이다. 나는 읽으면서 마치 한 편의 연극이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소설이 갖추어야 할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 등 구성요소를 완벽하게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기술 방법도 시나리오처럼 회의 참석자들의 대화 부분과 회의장의 분위기, 참석자들의 표정부터 억양에 따른 감정표현, 태도까지 설명하고 있어서 더욱 생동감 있게 읽을 수 있다.

 

미국과 소련은 2차 대전 때 독일 나치를 상대로 연합해서 싸우던 우방에서 패권을 다투는 경쟁 국가로 이어서 서로의 안보를 위협하는 적국으로 발전한다. 결국 두 나라는 핵전쟁 일보직전까지 갔지만 핵전쟁은 인류의 종말을 부를 수 있다는 인식을 케네디와 후루쇼프가 같이 하면서 극적으로 위기를 해소하게 된다. 여기서 주연은 케네디였다.

엑스콤 비밀회의에서 케네디는 군 통수권자, 대통령이 아닌 회의에 참석해서 의견을 제시하는 한 사람처럼 비춰진다. 많은 사람들에게 공격을 받아도 다 들어주고 다 듣고 상대방을 설득한다. 누구든지 소신껏 발언하고 상대의견을 듣고 반론을 제기하고 납득하는 모습, 우리 정치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모습이었다.

또한 공습을 한다면 일본이 진주만 공격할 때처럼 사전 경고 없이 기습으로 해야 할지 사전 경고한 후 공격해 인명피해를 최소화하고 시설 파괴만 할지를 놓고 격론을 벌이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 도덕적 행위에 대한 갑론을박을 하다니 과연 정치적 선진국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북정상회담 녹취록, 북한 핵실험이나 연평도 포격사건 등이 있을 때마다 대화를 통한 위기 극복이 아니라 정쟁만 일삼는 우리 정치현실과 극명하게 대조되는 것이 뒷맛을 씁쓸하게 만들었다.

 

과연 이 땅에서 민주주의는 영원히 불가능한 것일까?

s*****2 2014.01.12.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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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의 최전선에서 얻은 육성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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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1962년, 미국이 터키에 핵미사일 기지를 건설하자, 소련이 이에 대응하고자 미 본토로부터 불과 145km 거리에 있는 쿠바에 핵미사일 기지를 건설함으로서 이른바 <쿠바 미사일 위기>가 벌어지게 된다.미국은 이러한 소련의 행동에 쿠바 해상봉쇄로 맞서고, 소련은 핵미사일 기지 상공을 정찰하는 미군 정찰기에 대공화기 사격을 가하는 것으로 응수한다. 이에 미국 U-2 정찰기 1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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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1962년, 미국이 터키에 핵미사일 기지를 건설하자, 소련이 이에 대응하고자 미 본토로부터 불과 145km 거리에 있는 쿠바에 핵미사일 기지를 건설함으로서 이른바 <쿠바 미사일 위기>가 벌어지게 된다.
미국은 이러한 소련의 행동에 쿠바 해상봉쇄로 맞서고, 소련은 핵미사일 기지 상공을 정찰하는 미군 정찰기에 대공화기 사격을 가하는 것으로 응수한다. 이에 미국 U-2 정찰기 1대가 소련에 의해 격추당하기까지 한다.
결국 미국과 소련이 자국의 핵미사일 기지를 철수하기로 약속하면서 단 한 명만의 사망자(격추된 U-2 조종사)를 발생시킨 채 <쿠바 미사일 위기>는 13일만에 일단락되지만, 훗날의 사가들은 이를 ‘전 세계가 멸망에 가장 가까이 다가갔던 사건’으로 평가한다.
이 책은 그 사건의 한 복판에 서서, 미국 측의 정책을 결정했던 비상대책기구 엑스콤 회의의 비밀 회의록을 간추린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몇 가지 떠오르는 개념들이 있었다. 첫 번째는 <죄수의 딜레마>이다. 모두가 최선을 다해 경쟁한다면 모두에게 최선인 결과가 도출될 것 같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따라서 경쟁에는 지나친 과열로 인해 판을 깨버리지 않기 위한 양보와 규제가 반드시 필요하다. 당시의 미국과 소련도 마찬가지였다. 생각 같아서는 자국 코앞에 건설되는 적국의 기지를 때려 부숴 버리고 싶지만 그런 짓을 했다가는 전 세계 단위의 ‘원자력 불꽃놀이’를 불러왔을 뿐일 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신통하게도 케네디 대통령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데 비해, 미국 군부를 위시한 강경파들은 몰랐다. 알고는 있었어도 모른 척 했거나. 이러한 견해 차이는 단순히 정치 성향의 차이에서 기인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개인적으로는 그 차이의 원인을,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두 번째 개념인 <입장 차이>에서 찾고 싶다. 미국 군부의 지도자들은 하나같이 추축국 본토에 불벼락을 퍼부어 제2차 세계대전을 미국의 승리로 이끈 고급 장교 출신들이다. 반면 그들을 이끈 케네디 대통령은 그 고급 장교들이 지도에 그려놓은 1km의 땅을 먹기 위해 부하 사병들과 함께 속된말로 ‘피똥을 싸야 했던’ 하급 장교 출신이다. 고급 장교들이 안전한 벙커에서 전쟁을 지휘하는데 비해, 하급 장교들의 생활 여건은 사병들보다 별로 나을 것도 없다. 실제로 케네디 대통령은 타고 있던 어뢰정이 일본 구축함에 의해 격침되면서 목숨을 잃을 뻔하기도 했다. 같은 전쟁을 치르면서도 그들의 처지는 이만큼 차이가 났다. 따라서 이들의 전쟁관 역시 크게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었다. 군부 지도자들은 ‘핵’이라는 새로운 무기로 소련을 쑥대밭을 내 줄 수 있을 거라는 환상을 품고 있었던 데 반해, 사병과 다를 바 없던 전쟁을 치루었던 케네디는 그것이 환상에 불과하다는 점을 알고 있었으며, 또한 젊은 세대로서 핵의 실체에 대해 더욱 현실적인 시각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그 현실적인 시각을 좀더 ‘학삐리’스러운 말로 풀자면, 세 번째 개념인 <안정성-불안정성 패러독스>이다. 설명하자면 핵은 분명 전 인류를 몰살시킬 수 있는 위험한 무기이지만, 핵의 소유자가 그 위험성을 알고 있다면 결코 핵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서 ‘지구의 평화’는 지켜졌다. 아니, 최소한 ‘강대국(핵무장을 하고 있거나 핵무장이 언제라도 가능한 국가) 간의 전쟁’은 종식되었다. 그리고 미국의 시각으로 쓰여진 이 책에서는 자세히 다루어지지 않았지만, 분명 상대편 지도자인 흐루시초프 역시 동일한 시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쿠바 미사일 위기>는 평화적으로 마무리된 것이다. 아직도 냉전 질서가 엄존하고, 가장 높은 군비증강률을 기록하고 있는 동북아 각국의 지도자들 역시 50년 전 케네디와 흐루시초프보다 뛰어난 안목을 갖고 있기를 바랄 뿐이다.
책은 13일간 기록된 엑스콤 회의의 현장의 목소리를 통해 미국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 사태를 원만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는지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쿠바 미사일 위기>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는 ‘초보자’에게 친절한 책은 결코 아니다. 개행도 없이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주인공들의 대화는 한글로 적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석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가독성과 이해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구성을 달리했으면 한다면 과도한 주문일까? 그러나 <쿠바 미사일 위기>에 대해 충분한 사전지식을 갖춘 분에게는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들려 줌으로서, 당시의 상황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어줄 것이다.
이 책을 읽어도 <쿠바 미사일 위기>에 대해 영 감이 잡히지 않는다는 분께는 영화 <디데이13>(로저 도널드슨 감독, 케빈 코스트너 출연)을 보실 것을 권한다.
여담이지만, 인류 멸망의 핵전쟁을 불러올 뻔한 사건은 이것 하나만이 아니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소련 K-19 잠수함 원자로 고장 사건, 소련 K-129 잠수함 침몰 사건 등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건들에 대해서도 다루는 책이 국내에도 출간되기를 바래 본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e****l 2013.12.31.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존F.케네디의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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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딱한 정치소설.자칫하면 손이 영 가지 않는 장르다. 평소에 특히 잘 읽지 않는 분야여서(집에서 애보랴 책보랴...)시간이 좀 걸렸다. 허구의 소설보다 더 재미있고 감동적인 것이 실제로 일어난일, 실화를 보거나 읽었을때 느낄 수 있다. 그리고 평소에 알지 못했던 것을 알게 될때의 그 기쁨은. 말로 다할수 없다.       일단...이책을 읽기위해 네이버 검색의 도움을 받아
"존F.케네디의13일" 내용보기
딱딱한 정치소설.자칫하면 손이 영 가지 않는 장르다.
평소에 특히 잘 읽지 않는 분야여서(집에서 애보랴 책보랴...)시간이 좀 걸렸다.
허구의 소설보다 더 재미있고 감동적인 것이 실제로 일어난일, 실화를 보거나
읽었을때 느낄 수 있다.
그리고 평소에 알지 못했던 것을 알게 될때의 그 기쁨은. 말로 다할수 없다.
 
 
 
일단...이책을 읽기위해 네이버 검색의 도움을 받아 배경지식을 미리 습득했다.
자칫 제 3세계대전이 일어날뻔한 호러보다도 무서운 무시무시한얘기.
정말 간단히 얘기하면
62년도에 구 소련이 미국와 완전 근접한 쿠바에 핵 미사일 기지를 4개나 건설중인 사실을
(나중에 알고보니 9개나 건설중이었다.)알게된후 언제든 서로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일촉즉발의 13일을 이 책에서는 꼭 그 회의에 참석한 일원인양 생생하게 느낄수있다.
말로만 듣던 존 f. 케네디의 카리스마. 리더십.그리고 현명하고 유연한 상황판단,
일국의 대통령의 기지가 아니었음.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런 평화가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13일이 13년 같이 느꼈지는 그날들의 생생한 녹취록들..
우리가 처해있는 남북분단의 현실에 비추어볼때 과연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지
어떤 리더십과 융통성이 필요한지 ...곰곰히 생각해볼 필요가있다.
쿠바 미사일에 관해서.또는 존f.케네디에 관해서 .또는 그의 리더십이 궁금하다면...
이책 추천해드리고싶다. 
 
f*****e 2014.01.12.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현대사,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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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이 서로의 자웅을 겨루던 시절 그동안 잘 알지 못했었던 나라 쿠바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사건이 바로 쿠바 미사일 사건이다. 쿠바에 소련의 미사일을 설치하는 문제로 미국 당시 케네디대통령이 전면에 나서기 시작하여 문제를 해겨해 나가는데, 이 책은 당시 자료녹음자료들을 통하여 당시 쿠바미사일사건을 집중 해석하고 있다. 그동안 알지 못했었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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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이 서로의 자웅을 겨루던 시절 그동안 잘 알지 못했었던 나라 쿠바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사건이 바로 쿠바 미사일 사건이다. 쿠바에 소련의 미사일을 설치하는 문제로 미국 당시 케네디대통령이 전면에 나서기 시작하여 문제를 해겨해 나가는데, 이 책은 당시 자료녹음자료들을 통하여 당시 쿠바미사일사건을 집중 해석하고 있다. 그동안 알지 못했었던 역사 이면의 이야기들을 알 수 있다.

YES마니아 : 골드 c***b 2015.04.3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