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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죽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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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몰타의 매>와 함께 구입한 열린문학의 세계문학 시리즈다. 문동에서 나오고 있는 세계문학 시리즈는 디자인이 세련되어 소장하고 싶은 책이긴 하나.. 좀 엽기적이라고 해야하나.. 운이 없는건지 읽은 책들이 죄다 그로테스크 했었다. 아직 파우스트가 남아있는데... 아쉬움을 뒤로하고 두번째로 도전한 열린문학 세계문학 시리즈!! 가장 끌린것은 저렴한 가격이었다. 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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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몰타의 매>와 함께 구입한 열린문학의 세계문학 시리즈다. 문동에서 나오고 있는 세계문학 시리즈는 디자인이 세련되어 소장하고 싶은 책이긴 하나.. 좀 엽기적이라고 해야하나.. 운이 없는건지 읽은 책들이 죄다 그로테스크 했었다. 아직 파우스트가 남아있는데... 아쉬움을 뒤로하고 두번째로 도전한 열린문학 세계문학 시리즈!! 가장 끌린것은 저렴한 가격이었다. 8천원정도에 한권을 살수있다니!! 게다가 3쇄는 양장본으로 나와줘서 소장가치도 더욱 상승!! 거침없이 구매하기 시작! 가장 얇았던 <그리고 죽음>을 집어들었다.

 

 

책 전체에 만연한 "죽음"

바리톤 만의 해변에 차가운 시신이 되어 누워있는 셀리스와 조지프, 30년전 학창시절 처음만난 해변에서 추억에 잠기기위해 찾은 이곳에서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 시작부터 한 부부의 죽음을 시작으로 그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한 부랑자의 시선과 그들의 시신이 부패하고 썩어가는 모습을 실날하게 묘사하기 시작한다. "게와 쥐들은 어두워지기 전에 다시 일하러 가서 조지프와 셀리스를 무례하게 훑어보고, 그들의 몸 위를 신나게 돌아다니며 수분과 먹이를 찾고, 한바탕 잔치를 벌이기 위해 그들의 동굴과 우묵한 곳으로 파고들었다." -p74 동물학자인 조지프와 셀리스는 "우리가 자신에 대해 어떤 철학적 주장을 하든지 간에 인류는 주변적인 존재에 불과하다. 동물계의 자연 질서에서 우리 인류는 별로 중요한 존재가 아니다"라고 학생들에게 즐겨 말한다. 이 생각을 전제로 작가는 자연력이 최종 결정권을 갖는 6일동안 조지프와 셀리스가 겪는 순수한 생물학적 변화를 묘사한다.

 

 

어쩌면 죽음은 인간의 차원에서 바라볼때 매우 두렵거나 애써 외면하고 싶어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죽음은 그만큼 일상적이며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재수없게 부랑자의 돌에 맞아 죽은 동물학자 부부의 사건 역시, 길가다 사자에게 잡혀죽는 사슴과 별반 다를게 없는것이다. 물론 자연의 시각에서 본다면 말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자연력의 시각에서 죽음을 이야기하고 묘사하지는 않는다. 조지프가 죽음직전 아내의 아내의 다리를 꼭 붙잡은 손을 보자면 자연의 야수적인 장면에서 주어진 축복과도 같은 인간적인 숨결이다. 그리고 또하나 동물학자부부의 딸인 '실비'가 부부의 실종소식을 듣고난 후 느끼게 되는 감정들이다. 평소 곧은 길을 걸은 부부의 말을 무시하고 마약을 하며, 혼자 집을 나가 살고있는데, 전형적인 문제아로 묘사되고 있다. 실종후 부모의 집으로 돌아와 부모를 수소문하는 과정에서 찾아내는 작은 병에는 자신의 젖니들이 들어있다. 아버지가 기념으로 모아둔 작은 병을 들고 오열하는 부분에서 상투적이지만 강한 감정적 울림을 자아냈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 "경찰견들이 인간의 시체 냄새를 맡고, 쓸데없이 참견하기 좋아하는 주인들을 모래 언덕으로 데려간 것은 물론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들은 <제대로 매장하기>위해 시체를 치웠지만, 죽은 이들은 무덤에 묻히면 빛이 바랠 수 있다. 모래 언덕이 스스로 조지프와 셀리스를 처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도움 따위는 필요 없었다. 흙은 노련한 매장 기술을 가지고 있다" -p207 라고 묘사하며 "이미 죽음으로 조각된 풍경 속에서 그들의 시체는 덤으로 덧붙여진 또 하나의 죽음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들은 전혀 특별한 존재가 되지 않을 것이다. 갈매기도 죽는다. 파리도 죽고 게도 죽는다. 바다 표범도 죽는다. 별들조차 분해되고 폭발하여 하늘에 물집을 만든다.모든것이 사라지기 위해서 태어났다. 우주는 죽음에 대처하는 법을 배웠다" -p208로 마무리 된다. 인간 사회에서의 죽음의 시각에서 벗어나 생태계의 시각으로 죽음을 바라본 책, 왠지 작가의 말대로 우리의 죽음은 자연스러운 하나의 사이클이며, 죽음은 곧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렇다고 이 짧은 시간에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이 가벼워 졌다는것은 아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초월하기 위함이 아닌 자연의 일부분으로서의 죽음을 조금이나마 인식하게 됐다는 것 정도라고 할까? 어렵지만 재미있었고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n******s 2010.08.02. 신고 공감 7 댓글 13
리뷰 총점 종이책
죽음, 삶의 종말
"죽음, 삶의 종말" 내용보기
누구나 죽는다. 너무나도 당연해서 삶을 살면서 죽는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을 때가 있다. 그리고 죽음은 아직은 내겐 너무 멀게 만 존재하고 아직은 죽을 때가 아니라는 잠재된 인식 하에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의 부음을 들으면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에 대해 슬퍼하다가도 덜컥 나에게도 언젠가는 죽음이 찾아올 거라는 사실을 그때서야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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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죽는다. 너무나도 당연해서 삶을 살면서 죽는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을 때가 있다. 그리고 죽음은 아직은 내겐 너무 멀게 만 존재하고 아직은 죽을 때가 아니라는 잠재된 인식 하에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의 부음을 들으면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에 대해 슬퍼하다가도 덜컥 나에게도 언젠가는 죽음이 찾아올 거라는 사실을 그때서야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죽음], 짐 크레이스는 뒤늦게 문단에 인정받은 영미 작가로 이 작품으로 많은 주목과 함께 여러 문학상을 받은 작가이다. 그는 작가이기 전 저널리스트로 활동해 온 작가답게 [그리고 죽음] 작품 전반에 펼쳐진 죽음에 대한 묘사는 뛰어나다. 어디에도 죽음에 대한 슬픔을 이입시키거나 독자로 하여금 죽음에 대해 같이 슬퍼해줄 것을 요구하지 않는 거리두기를 철저하게 지킨 작가의 서술방법을 읽을 수 있다.

그래서 작품을 읽는 동안 죽음에 대해 갖게 될 공포나 떨림, 슬픔 보다는 작가의 냉정할 정도의 차분한 묘사에 죽음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을 가져볼 수 있었다.

 

바리톤 만에 동물학자 부부인 셀리스와 조지프가 두개골이 함몰 된 다소 흉측한 모습으로 죽어 있었다.

더구나 남자는 나체고 여자는 아랫도리가 벗겨진 반나신 상태로의 모습이었다. 그들이 사람들에게 발견될 때까지는 사흘 이상의 시간이 지났지만, 작가는 동물학자의 죽음 답게 자연계의 곤충과 동물들이 먼저 그들 부부의 시신을 발견하게 내버려 둔다. 또한 동물들의 협조로 그들 부부의 육체가 썩어 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작가의 냉정함에 읽는 동안 죽음이 가져올 끔찍함 보다는 생태학 서적이나, 곤충학들의 세계와 관련된 서적을 읽는 느낌까지 들었다.

 

30년 간의 결혼 생활을 이어 온 조지프와 셀리스는  그들이 처음 사랑하게 된 바리톤 만을 찾아가 그 사랑을 확인해 보고 싶어 하는 남편, 조지프의 계획에 셀리스는 선뜻 내키진 않지만 동행하게 된다. 그래서 다소 철저하고 건조하기까기 한 그들의 생활에 남편은 하루의 꿀맛 같은 휴가를 내고 바리톤 만으로 향하게 된다. 어디에서도 그들의 죽음을 읽을 수 있는 부분은 없고, 더구나 그들이 죽음을 곧 맞이하게 되리라는 사실조차 감지하지 못한 채 부부는 다시 아련한 性에 대한 설렘과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계획을 실행에 옮기게 된다.

하지만, 죽음이란 때론 예고 된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이 뜻하지 않은 곳에서 뜻하지 않은 시간에 우리들을 향해 오고 있다. 그들 부부도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바리톤 만에서 한 부랑자의 화강암 돌멩이에 두개골이 함몰 될 거라는 사실은 당연히 몰랐을 것이다. 그래서 부부의 죽음으로 시작하는 소설 도입부에 다소 의아해 했었다.

 

바리톤 만은 부부의 사랑이 시작된 곳이기도 하지만, 아픈 과거가 묻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박사과정을 밟아 가던 부부는 또래의 친구들과 지금은 불타 버린 그곳 연수원에 연구원으로 머물게 되었다. 하지만, 조지프와 셀리스가  새로운 사랑을 싹틔우던 그 때, 셀리스의 룸메이트인 페스타가 연수원이 불타는 순간 구조되지 못하고 죽게 된다. 그 후 조지프는 간간이 그 곳을 찾아 오지만 셀리스는 30년 간 그곳을 찾아 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 날 남편 조지프의 계획에 그녀는 이제는 그곳에 가서 페스타의 영혼에 사죄를 하리라 마음 먹고 가게 되지만, 그녀 또한 그곳에서 뜻하지 않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다소 드라마적이지만 시종 일관 철저한 거리두기식 묘사로 그러한 느낌을 벗어버릴 수 있었다. 이또한  작가의 뛰어남일 것이다.

 

또 한가지 이 소설에서 흥미로운 점은 그들의 외동딸, 실비의 등장이다. 그녀는 동물학자인 부모님의 따분하고 건조한 삶에 불만을 품고 집을 떠나 홀로 생활하게 된다. 그녀 부모님의 실종으로 다시 예전에 살던 곳으로 가게 된 그녀는 그곳에서도 부모님들의 무미건조하고 재미없는(실비의 기준) 생활 모습에 또다시 실망을 하게 된다. 하지만 부모의 죽음으로 부모가 살았던 때보다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실비는 부모에 대한 그녀의 사랑이 더 강함을 깨닫게 된다.

작가는 여기서도 실비에게 철저한 거리두기식의 죽음을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죽음]은 나에게 죽음에 대한 또다른 시각과 죽음의 의미를 다시한번 되새길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철저하고 치밀한 죽음에 대한 작가의 시선에 따분함 보다는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에 있어 슬픔 이외에 죽음이 삶에 이어 자연스럽게 다가 올 순서라는 인식을 갖게 만들어 주었다.

 

이 이야기는 조지프와 셀리스의 죽음을 시작으로 이야기의 시간을 역으로 서술하고 있어 색다른 읽기를  경험할 수가 있다. 그리고 뛰어난 번역에 감사드린다.

 

 

m******9 2012.03.15. 신고 공감 4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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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죽음 _ 짐 크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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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이 드문 해변에서 벌거벗은 채로 죽어 누워있는 조지프와 셀리스가 등장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그들의 죽음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갑작스러운 사건이며 살해된 부부 역시 그날이 그들의 마지막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벌거벗은 몸을 가릴 사이도 없이 죽음을 맞이한 부부는 그 자리에 엿새 동안 누워있었다. 작가는 그들의 죽음을 이렇게 설명한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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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이 드문 해변에서 벌거벗은 채로 죽어 누워있는 조지프와 셀리스가 등장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그들의 죽음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갑작스러운 사건이며 살해된 부부 역시 그날이 그들의 마지막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벌거벗은 몸을 가릴 사이도 없이 죽음을 맞이한 부부는 그 자리에 엿새 동안 누워있었다. 작가는 그들의 죽음을 이렇게 설명한다.

 

이것은 추한 광경이었다. 그들은 치욕을 당했다. 품위를 잃었다. 죽음이 너무나 갑작스럽고 천박해서 체면을 구겼다. 그가 어떤 종류의 남자인지, 그녀가 어떤 타입의 여자였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들의 인격은 피처럼 흘러나와 풀밭에 쏟아졌다. 세상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p.19

b******s 2018.02.1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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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삶,『그리고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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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자. 니콜라스 네그로폰테의『디지털이다(Being Digital)』, 영화《존 말코비치 되기(Being John Malkovich)》그리고 짐 크레이스의『그리고 죽음(Being Dead)』. 모두 <being>이 들어있으니 이것은 네그로폰테의 저서처럼 <죽음이다>라고 옮길(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럼 <그리고> 앞에는 뭐가 있을까. (아마도)삶이겠지. 그럼 <그리고 죽음>이 아니라 <죽음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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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자. 니콜라스 네그로폰테의『디지털이다(Being Digital)』, 영화《존 말코비치 되기(Being John Malkovich)》그리고 짐 크레이스의『그리고 죽음(Being Dead)』. 모두 <being>이 들어있으니 이것은 네그로폰테의 저서처럼 <죽음이다>라고 옮길(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럼 <그리고> 앞에는 뭐가 있을까. (아마도)삶이겠지. 그럼 <그리고 죽음>이 아니라 <죽음 그리고>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어차피 죽음 뒤엔 삶이고, 삶 뒤엔 죽음이니까 ㅡ 이런 식으로 하다 보면 <그리고 죽음>은 <죽음이다>, <삶이다>, <그리고 삶> 또는 <그러나 삶>으로 바꿀 수 있다(말장난이 아니다). 드넓은 바다 전체를 소리로 바꾸어 버리는 해저 동굴처럼 노래할 수 있는 남자와, 가는 허리와 완벽한 18세기풍의 등을 소유한 여자, 대담하고 불안정한 딸, 그리고 죽음. 죽음 때문에 그들은 딱정벌레의 햇빛을 망쳤고 게들이 먹을 수 있을 만큼의 신선함을 잃어 버렸다.



불교 신자인 그레이엄 콜먼(Graham Coleman)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우리는 모두 기쁜 마음으로 휴가를 준비하지만, 확실히 다가올 죽음에 대비하고자 하는 사람은 드물다.」그런데 내가 의심하는 것 한 가지, <확실히 다가올 죽음>이란 건 대체 그 정체가 뭔가? 뭐가 확실하다는 거지? 죽음은 근본적으로, 모순 덩어리로 똘똘 뭉쳐 있다. 예컨대 자유와 자기 상실, 욕망과 거부, 실재와 부재 같은 것들로 말이다. 그래서『그리고 죽음』은 하이데거처럼 읽기 어렵다. 그가 말한 <존재의 목동>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버려야 했던가. 하지만 그로 인해 존재와 무(無), 영구적 상태의 불안을 알게 된 점은 기뻐할 일이다. 이것은 <몬다지의 물고기>로 환원되거나 할 수 있으므로. (바슐라르가 말한)<죽은 물>처럼 물은 아름다운 충실한 죽음의 물질, 그래서 물의 거울이 흐려지는 것이고, 추억이 몽롱해지는 그 죽은 물이 된다. 그 물은 조지프와 셀리스를 어루만지는 바리톤 만의 물이며, 그래서 다시 한 번 <그리고 죽음>이다. 셀리스의 발목에 닿아 있는 조지프의 손가락을 보고「우리 아버지의 손을 치우지 마세요.」라고 실비는 말한다. 이것은 <죽음 속에 있는 삶을 데려가지 마세요.>를 의미하며 <삶 속에 있는 죽음을 그저 가만히 놔두세요.>라는 뜻이다. 그래서『그리고 죽음』은 오롯이 이 문장 하나로 축약된다.「우리 아버지의 손을 치우지 마세요.」

u******o 2011.12.1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