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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 15년 차 승무원이다. 좌석 안내, 비상구 설명, 기내식 소개, 여행일정까지. 손님들과 그동안 숱한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대화를 잘 하고 있을까? 손님들은 나와의 대화를 어떻게 기억할까?
이런 저런 대화법 책을 찾던 중, 사랑을 위한 글쓰기 대화법, 사랑을 글쓰기로 배웠어요. 라 는 제목에 묘하게 끌렸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 라는 화두를 던진, 이만교 작가의 신작이기에 더욱 손이 갔다.
시작은 솔직하고 명료했다.
누구나 말을 잘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누구나 말을 잘 못해 속상할 때가 있다. 나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다. p.5 : 정말이지 나 역시 말을 잘 하고 싶었다. 말하던 중 혹은 하자마자 내가 왜 이런 말을 했을까 라고 후회했던 날이 수두룩했으니까. 나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다로 이어지는 작가의 솔직함에 위로를 얻었다.
대화란 둘이 쓰는 글쓰기다. ‘나’가 한 문장을 말하면, ‘너’가 한 문장을 이어가는 공동창작이다. P.15 : 1부 기초 어떻게 대화를 시작할까에 나온 대화에 대한 정의다. 대화를 글쓰기와 연결해 생각한 신선한 발상이다.
대화를 시작하면, 독립적인 개별 자아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너에게 영향 받은 ‘나’이고 ‘너’는 나에게 영향 받은 ‘너’이다.p.17 : 대화를 통해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니. 나와 너로 창발되는 대화, 대화를 잘 하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렸다. 그가 소개 할, 13가지 대화법이 더욱 궁금해졌다.
책은 대화를 위한 방법을 아래와 같이 선명하고 정교한 언어로 알려준다.
1. 적극적 듣기 ‘정확히 듣기란 너의 문장을 토씨 하나 어긋나지 않게 나의 문장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너의 문장을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들을 때, 네가 그 말을 하게끔 만든 너의 마음이 느껴진다. P.22
A 나는 먹어도 돼. B 너만 먹겠다고
A 바람이 불어서 시원하다. B 바람 부니까 기분 좋지
A 내가 깜박이를 넣고 들어가는데… B 그러니까 당신이 내 쪽으로 갑자기 끼어들었잖아. p.19 : 바꿔치지 않고 듣는 방법의 예시다. 이 둘의 대화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대화 중 A가 말한 내용을 B가 바꿔치기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는 얼마나 많은 오청을 하고 살았을까.
문장은 조사 하나, 철자 하나 바꾸어도 다른 의미가 되기 때문에, 들을 땐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 싶을 만큼 말한 그대로 정확히 듣는 게 좋다. P.19 : 독자가 자신의 설명을 바꿔치기 해서 듣지 않도록 작가는 친절히 짚어준다.
대화를 해보면 이렇게 예상과 달리 뜻하지 않은 문장을 상대방이 이을 때가 많다. 이렇게 문맥을 무시하는 생뚱한 대사로 잇는 까닭은, 문맥을 무시하고서라도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다. p.29 : 여자와 남자의 대화가 엇나간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이다. 대화를 끝내고도 아쉬웠던 날의 이유는 멀리 있지 않았다. 이제라도 이유를 알게 되서 천만 다행이다.
: 작가는 친절하다. 매 챕터가 끝나면 일목요연하게 핵심을 짚어준다. 그가 쓴 문장처럼 정리도 깔끔하다. 급할 때 꺼내 보기 좋다.
2. 적극적 말하기 우리는 평소 표현만 정확하게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상대방 해석까지 책임지지 않는다. 하지만 성숙한 사람은, ‘내가 말하려 한 내용만이 아니라 상대가 해석한 내용까지 책임져야 한다. 혹은 책임지려고 노력해야 한다. P. 38 그때그때 생각나는 대로 말하는 게 아니라, 꼭 하면 좋을 말을, 그 말을 하면 일으킬 연상까지 생각하면서,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정확하게 전달하고, 분명하게 확인하는 ‘적극적 말하기’를 해야 한다. 매우 수고로운 일이다. 하지만 아무렇게나 생각나는 대로 말했기에 뒤따를 혼란이나 오해에 비하면 한결 덜 수고스럽다. P.43 : 대화를 통해 마음을 나누고 싶은 것, 맞다. 우리가 원하는 건 공허한 수다가 아니니까. 그런데 이렇게 까지 자기 검열을 해야할까? 할 수 있을까? 잠시 고민되는 차, 작가는 그럴만한 이유를 다음 문장에 선명히 제시했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상대가 무슨 말을 하던, 결국 내가 들은 말은, 내가 해석한 말이다. 언제든 더 깊은 해석이 가능하다. 또한 상대에게 대꾸할 나의 말은, 내가 선택한 말이다. 언제든 더 나은 표현이 가능하다. 말싸움이 나면 “네가 그러니까 내가 이러지!” 라고 네 탓을 하지만, 이 말조차 내가 지어내는 선택이다. 알고 보면 다 창작이다.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P.45 : 이 문장에서 한 동안 멈췄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너를 탓 하고 살았던지. 몇 번이고 되감아 읽으며 지난 나의 대화를 반추했다. 언제나 지금 사용하는 생각문장보다 더 나은 생각문장(내 생각이 담긴 문장)이 존재한다는 작가의 전작이 떠올랐다.
이후 페이지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술술 넘어간다. 여느 대화법 책에서 볼 수 없던 새로운 방법론과 군더더기 없이 서술된 문장에 매료된다.
적잖은 사람들이 남이 쓰는 말을 자신도 그대로 사용한다. 마치 남이 사용한 숟가락을 쓰듯, 이제까지 써오던 말 그대로 다시 사용한다. 하지만 남이 쓰는 생각문장을 그대로 쓰면 남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겠다는 뜻이다. 자신이 써오던 말을 그대로 쓰면 살던 대로 계속 살아가겠다는 뜻이다. p.145 (10. 나의 ‘창작언어’로 말하기)
대화를 엉터리로 해온 까닭에, 그만큼 많은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았지만, 그러나 그 이유로 이렇게 대화에 대해 꼼꼼히 생각해 보고, 그 결과 이렇게 대화법 책을 쓰게 된, 이 우스꽝스러운 운명을 저는 사랑합니다. (중간생략) 만약 당신이 이 책을 다 읽었다면, 이제 당신도 저와 같은 운명에 처한 것입니다. 당신이 대화를 못하면, 대화법 책까지 읽은 인간이 무슨 대화를 이렇게 밖에 못하냐! 하는 비난을 들어야 할 테니까요. 아마 이 비난은 용서를 모를 겁니다. 누군가로부터 듣기 전에 내 안에서 들려올 테니까요. 저도 당신도 저와 함께 이 운명을 사랑하길 바랍니다. p. 220 : 이 책을 읽은 사람과 밤 새 대화하고 싶어진다. 더불어 이 책을 안 읽은 사람에게, 선물하고 싶다.
뛰어난 작가가 되는 첫 번째 걸음은, 타고난 재능이나 기발한 상상력이 아니라, 다만 ‘씨앗도서’ 한 권을 제대로 선정하여 읽는 일이다. 라고 전작, 글씨기 공작소에서 작가는 말했는데 이 책이야 말로 대화에 대한 씨앗도서다.
오늘 밤, 글쓰기로 사랑을 배웠다.
추신 명작에 대한 완벽한 서평은 책을 통째로 필사하는 것이지만 지면상 그럴 수 없어 추리고 추려봤다.
1. 좋은 생각문장이 곳곳에 담겨있다. 알고 보면 첫 번째 생각보다는 두 번째 생각이, 무엇보다 충분하게 생각한 다음의 생각이 진짜 내가 원하는 모습이다. 따라서 침묵하는 시간이야말로 가장 중요하고 창의적인 대화가 만들어지는 시간이다. (중간생략) 알고 보면 침묵하는 자가 대화하는 자다. 침묵하지 않는 자는, 대화하지 않는 자다. P.143
사실 상대방 말에 짜증이 날 때도, 상대방 말 때문에 짜증나는 건 아니다. 상대방 말에 반응할 효과적 방법이 내게서 떠오르지 않았을 때 짜증이 난다. 재치 있게 대꾸할 말이 떠오르면 곧바로 웃으며 대꾸한다. 대화 과정을 가만히 살펴보면, 모든 사람은 너의 언어보다는 나의 언어에 더 민감하다. 나의 언어만 바르거나 위트 있거나 현명하면, 나에게 너를 포용할 힘이 생긴다. 153
타인을 내 마음대로 통제한다고 내 삶이 나아지지 않는다. 자신이 구사할 수 있는 생각문장이 나아져야 한다. 내가 구사한 생각문장에 영향을 받아 나타나는 모습이 타인이기 때문이다. p.147
생각이 깊은 사람에겐, 다른 사람의 생각이란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나와 다른 견해를 보이면, 얼마든지 그렇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자신의 여러 관점 중에 하나로 받아들인다. 다른 사람이 나보다 뛰어난 생각을 선보이면, 더 깊은 생각을 했다면 자신이 가지게 될 미래의 관점으로 반긴다. p.167
사람들은 더 나은 생각문장을 만나면 자발적으로 따른다. 자연스러운 주체와 권력은 더 나은 생각문장을 통해 발생한다. 더 나은 생각문장은 인간 사회의 권력 중에, 우리가 자발적으로 따를 만한 유일하게 가치 있는 권력이다. p.168
2.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선한 시선이 느껴진다. 만약 어떤 사람이 스스로의 문제를 먼저 고치지 못한다면 그것은 바로 자신의 문제가 더 크다는 나름의 솔직한 고백을 하는 것이다. P.101
극단적인 경우는 내가 어떻게 말해도 바뀌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좋다. 설령 상대방이 바뀌지 않아도, ‘나’가 바뀌면 그것만으로도 ‘나’에게 좋은 일이다.p.104
누구의 대화가 더 좋고, 누구의 대화가 더 나쁜가? 이걸 따질 필요는 없다. 인과응보의 관점에서 보면 더 나쁜 사람이 변해야 하지만, 현실에서 언제나 더 착하고 더 열려 있는 사람이 먼저 변한다. 이런 인과응보가 어쩌면 더 좋은 인과응보 아닐까. p.106
3. 속 시원한 문장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대화하기 어려운 사람과는 헤어지면 그만이다. 상종하지 않는 게 최선이다. 세상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내가 좋아하고 내게 도움 주는 사람만 젓가락질 하듯 골라 만나도 평생 다 못 만난다. 나쁜 사람을 만난다는 건, 나쁜 사람을 만나는 피곤만 감수하는 게 아니라, 만나면 좋을 사람을 놓치는 피해까지 자초하는 바보짓이다. p.95
4. 대화문을 소설에서 차용한 점도 인상 깊다. 혼자 읽었더라면 결코 읽어내지 못 할 소설 속 인물들의 균열된 모습들이 나와 있다. (이건 일급 비밀)
5. 사랑이 뭔지 알려준다. “사랑이란 더 이상 하나의 관점이 아닌 둘의 관점에서 형성되는 하나의 삶이다. 더 이상 하나의 관점이 아닌 둘의 관점에서 형성되는 사람의 삶” 이다. 그러니까 대화야말로 사랑이다.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둘이서 뜻하지 않은 더 나은 생각을 만드니까. p.50
이렇게 대화 하는 사람과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 페이지마다 좋은 문장이 넘쳐난다. 접으면서 읽다보니 책이 두 배로 두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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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그 말 때문에... 후회한 적이 있어요. 가까운 사이일수록 대화가 말다툼으로 번지는 경우가 종종 생겨요. 일적인 관계에서는 원만하게 잘 지내면서 왜 유독 친밀한 관계에서 문제가 생기는 걸까요. 진지한 고민 끝에 대화 방식이 원인인 것 같아서 대화법을 배우려고 노력했더랬죠. 근데 꾸준히 연습하지 않으면 말습관을 고치기가 쉽지 않아요. 《사랑을 글쓰기로 배웠어요》는 '사랑을 위한 글쓰기 대화법'을 담은 책이에요. 그동안 대화법에 관한 책을 좀 읽어봤지만 글쓰기와 연결한 내용은 처음인 것 같아요. 저자인 이만교 작가님은 대화를 글쓰기처럼 사유하라고 이야기하네요. "글쓰기란 더 좋은 생각문장을 찾는 것이다. 언제나 지금 사용하는 생각문장보다 더 좋은 생각문장이 존재한다. 작가는 한 문장 한 문장 이어 쓰고 고치고 다시 쓰면서 더 나은 생각문장을 찾는다. 반면에 대화란 둘이 쓰는 글쓰기다. '나'가 한 문장을 말하면, '너'가 한 문장을 만들어가는 공동창작이다." (15p) 음, 곰곰이 생각해보니 다 맞는 얘기예요. 말 한마디도 신중하게 가려서 한다면 말 때문에 싸움이 나거나 기분 나쁠 일이 없을 테니까요. 이 책에서는 구체적인 예시를 통해 어떻게 대화를 시작하고, 어떻게 대화를 바꿔야 하는지, 더 나아가 대화를 즐기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어요. 사랑한다면 꼭 표현해야 한다고, 말이든 행동이든 보여주지 않으면 전달되지 않는다고 했는데 역시 사랑의 대화법이 중요하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되네요. 사랑하는 사람과의 대화라면 더 나은 생각문장을 창작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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