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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씨는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는 전 문화부장관을 역임 했으며 디지로그, 젊음의 탄생, 그리고 최신작 생명은 자본이다에 이르기까지 많은 책을 통해서 독자층을 두텁게 형성하고 계신 분이다. 그런 그가 2010년에 발간한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책을 신판으로 해서 다시 출간하였다.
사실 나는 종교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부모님께서는 불교를 종교로 삼아사 믿음을 이어나가고 계시고 친한 친구들중 몇몇은 기독교, 천주교 등 다양한 종교를 가지고 있다. 이렇듯 세상에는 다양한 종교가 있으며 그것은 바로 하나의 믿음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이어령씨는 책을 통해서 그가 말하는 생애에서 가장 외롭고 힘들었던 일본 교토 생활을 통한 일상과 그속에서 겪었던 그의 세례받은뒤의 전후상황을 한권의 책으로 엮은 것이다.
그의 나이 올해로 81살이다. 정말 대단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그가 말한 세례와 시집을 냈던 것은 새로운 도전일 것이다. 남들은 뭐라할 지 모르겠지만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 하고 싶은 일을 멋지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일이 아닐 수 없다. 교토생활을 통해서 힘든 그 자신의 모습을 일기, 강연, 기사와 편지글을 통해서 지성에서 영성으로 나아가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기독교에 관해서 전혀 무지인 나 이기에 종교적인 측면을 이해하는데는 솔직히 조금 어려운 것 같았다. 하지만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하나라고 생각한다. 바로 믿음 이라는 것이죠 . 믿음은 세상을 하나로 만들 수 있을 만큼 큰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말한 의문은 지성을 낳고 믿음을 영성을 낳는다는 것은 바로 믿음을 통한 하나를 강조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중간중간에 그가 직접 지은 시들이 나오는데 수면제 스무 알 속의 밤이라는 시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황진이의 동짓달 밤과도 같이 긴 하품을 하고 나면 아무 의미도 없는 차가운 눈물이 고인다....그 자신의 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구절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이런 현실은 많은 사람들이 겪게 되는 고뇌, 역경, 고난 들중에 하나라고 본다. 이런 상황을 지혜롭게 대처하고 넘어가는 사람은 결국 한단계 성숙해지기 마련이다. 믿음을 통한 성숙말이다.
혼자라고 느껴질때 이 책을 읽어본다면 믿음은 우리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지치고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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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도 나오는 말처럼, "내가 기독교를 믿는다고 하니까 모두들 '아, 예수쟁이가 되었다며?'하고 반 놀림으로 이야기하였다." 같은 이야기를, 종교 안 갖던 사람이 가지면 한국 어디서나 듣기 딱 좋습니다. 본디 동아시아인들은 샤먼에 친할 뿐이지, 지성과 영성이 공히 강조되는 고등종교를 싫어하고, 이해를 거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샤머니즘을 인문이라고 하던데, 샤먼을 연구하는 작업은 인문학의 좋은 일부가 될 수 있어도, 샤먼을 무지몽매하게 믿는 사람을 두고 인문학 소양을 갖췄다고는 못 하죠(이는 그 대상이 고등종교라고 해도, 그 믿음의 양상이 맹목일 때는 마찬가지입니다. 단, 샤머니즘의 신앙에는 정도와 레벨의 차이가 있을 수 없다는 게 다르죠). 주체와 대상을 혼동하는 무지의 소산이거나, 의도적인 사기술의 발로입니다. 그러니, 안 그러던 사람이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면 그를 보는 시선이 고울 리가 없는 게 보통인데, 설사 그 주체가 이어령 선생 같은 대석학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이어령 선생은 그와 동년배의 석학, 지성인(우리 나라에 과연 그런 존재가 있기나 하다면 말이죠)들과는 뭔가 좀 다른 분위기를 풍기시는 터라, 기독교로의 회심이 별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습니다. 우선 그는 그 또래의 교수, 학자들이 흔히 그러하듯 가식적인 무게를 잡고 상업적 과묵을 과시하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다른 동년배들은 입을 무겁게 떼고 위엄을 내세우는데, 그는 좀 가볍다 싶은 느낌을 줄 만큼 새로운 담론과 주장을 끊임 없이 내놓았습니다. 사실 이건 그 주장의 진위 여부, 가치 평가 문제와 무관하게, 그의 두뇌가 그 고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창조적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무게와 진중함을 지키려고 조용한 게 아니라, 그렇게 하고 싶어도 이미 쇠퇴한 두뇌와 기력이 창조적 생산을 받쳐 주지 못하기 때문에 침묵을 지킬 뿐입니다. 그는 기존의 자기 입장에서 크게 변질을 보이지 않으면서도, 첨단 변화의 트렌드를 놀라운 활력으로 소화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고, 젊은 교수들보다 더 명료한 표현, 더 심오한 통찰로 독자들과의 소통을 지속해 왔습니다. 그가 즐기지 않는 건 가벼운 잡담이나 시시한 농담이 태반인 트위터질뿐이고, 나머지는 젊은 이들을 부끄럽게 할 만큼 지적인 작업들입니다. 그런데, "창조적"이란 말은, "쉬운 변화 가능성"이라는 개념과 어느 정도 통합니다. 때로는 부담스러울 만큼 "창의적"이었던 그가, 어느 날 기독교(불교라고 해도 이상할 건 없습니다)를 느닷 믿게 되었다 해도 별로 어색한 일은 아닙니다. 알고 보면 언제나 변화와 적응에 능한 그였기 때문이죠.
다음으로, 사실 그의 인문적 자취를 보면, 과학이나 철학적 느낌보다는, 어느 정도 종교적 색채가 강했습니다. 이건 제 주관적인 느낌입니다만, 인문학이라고 해도 "하드한" 영역에서는, 의미 부여와 맥락의 연결이 그리 쉬운 작업이 아닙니다. 그런데 선생의 글을 보면, 비록 주제 자체는 하드하더라도, 풀어 나가는 담론은 놀랄 만큼 통합적 의미를 지향합니다(좋게 말해서 그렇다는 거고, 나쁘게 말하면 "참 잘 갖다 붙이십니다." 정도죠). 그런데, 삼라 만상이 그처럼 내면에 단순 명료한 의미를 지니며 더군다나 서로 일맥상통하기까지 한다는 건, 그게 인문적 사고라기보단 종교적 사고입니다. "이 모든 게 다 주님(혹은 부처님, 알라신)의 뜻이로다~~" 비록 종교 이야기를 하고 있진 않아도, 이어령 선생의 글에서처럼, 모든 개념, 인식, 논리가 결국 일통(一統)의 한 길로 치달으면, 벌써 초월적 분위기를 마련하는 중에 반(半) 종교로 향하는 거죠. 종교인들은 그 무리한 비약을 위해 카리스마를 동원하고, 선생은 그 빼어난 글솜씨와 해박한 지식을 동원했다는 게 차이일 뿐입니다. 요컨대, 선생은 이미 회심 이전에도 그 체질이 종교적이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이러고 보니, 한국을 대표하는 지성이라고 할 이 박사님께서, 이제 영성("지성"과는 보통 대조된다는 점에서)의 길로 들어서셨다고 해도 그게 그닥 크게 놀랄 일은 아닙니다. 해서 저는, (얼마전에 <젊음의 탄생> 개정판도 읽었던지라) 이 책에서 과연 박사님께서 어떤 새로운 말을 펼쳐 주실지, 자못 기대가 되었습니다. 기존 저작에서 하지 않던 이야기, 혹은 풀어 놓으신 이야기들이 이 결정적인 전환점을 맞이한 후 어떤 변모를 거치고 미묘하게나마 변경의 의식을 거칠 지가 궁금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타이틀은 비록 저렇게 달아 두셨으나, 그 내용을 보니 사뭇 기대와는 다른 스토리가 펼쳐져 있더군요. 우선 앞선 저작에서는 잘 하지 않으시던, 박사님 개인의 신변 이야기가 많이 나와 있었습니다. 교토에 가서 외롭게 연구 생활을 하신 이야기, 할인 마트에 가서 세일 품목을 챙겨 나오는데 귀갓길에 택시를 이용하면 발품을 판 보람이 없으니 오기로 걸어오셨다는 이야기, 일본 유수의 출판사 H씨를 만나 보니 예전의 그 총기 있는 눈망울이 아니라 백내장에라도 걸렸는지 허연 태가 보이더라는 이야기,.... 아니 박사님도 이런 느낌을 가지고, 또 그걸 숨김 없이 털어놓기도 하시는구나, 이분도 인간이 맞긴 하셨구나, 하는 생각에 참 안도가 되더군요. 물론 이분은 고희를 넘긴 노령이시죠. 젊어서 아무리 초인이었다고 해도, 그 연세라면 결국 또래의 장삼이사로 동화하는 게 자연의 이치이니 별 비겁한 안도(?)를 할 일은 아닙니다만, 여튼 세상에 별 특별한 분은 없구나 하는 점 새삼 느꼈습니다. 사실 돈을 절약하기보다는 그냥 외로워서 들른 장터이겠습니다만, 거리가 멀다 싶으면 그냥 가질 말거나, 오는 길에 고생하기보단 뭐라도 타고 오는 게 상책이죠(전 그래서 행사가 멀다 싶으면 안 갑니다. 시간과 기름값이 더 아깝죠). 또, 다른 사람의 외모나 분위기가 그전과는 달리 뭔가 쇠락했다 싶은 느낌을 굳이 표현하는 건, 자신감의 쇠퇴나 다소의 열등의식을 폭로하는 겁니다. 우리 같은 보통 사람이야 그러려니 하는데, 세상에 부러울 것 없는 박사님 같은 분도 그런 말씀을 하는 게 신기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에서 "영성"에 포인트를 두기보다, 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박사님의 인간적 면모를 새삼 발견한 것에서 독서의 일차 의미를 찾고 싶었습니다. 다음으로, 주관적으로 아무리 그렇다고는 하나 제목에 "영성"이 들어갔는데, 신앙 이야기를 하신 대목을 안 살필 수 없죠. 대단히 송구스러운 이야기지만, 이 신앙에의 길은 결국 따님인 이민아 변호사, 전 검사, 교수님의 참척이, 그 계기를 마련했더군요. 이민아 씨가 개인적인 불행, 불운(이런 것들은 그녀가 엘리트 코스만을 거침 없이 통과한, 세계에서 손 꼽을 재원이었다는 점과 대조하여 더 도드라지는 비극 요소입니다)을 겪던 차에 크리스트 교에 투신하게 되었고, 영리하고 당차며 선한(부친인 자신을 빼어닮은) 딸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일단 귀를 기울이고 보는 자상한 아버지였던 박사님은(사실 이렇게 똑똑하신 분은 자식에게 그리 살갑게 대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이 점에서도 박사님은 예외라고 봐야죠), 어느 새 아무것도 모르는(그 탁월한 지성이 무색하게) 어린아이가 주일학교 나가는 설렘으로, 초보 기독교 원리를 무식한 동네 아줌마처럼 열렬히 수용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 것입니다. 이 책에서, 그의 버전으로 풀어지는 기독교란 사실 특별한 건 없습니다. 동네에서 전도하시는 집사님들도 다 하는 흔한 표현이 주를 이룹니다. 다만 이런 말을 하시는 분이, 반도 오천년 지성사에 가장 빛나는 천재라는 이어령 박사님이라는 점 때문에 더 눈이 갈 뿐이죠. 또 하나 주목할 것은, 그의 시심이 새로운 눈을 뜨고 이 책 곳곳에서 꽃을 피우고 있다는 점입니다. 확실히, 소설까지는 지성이 더 강한 영향을 발휘할지 모르나, 시에 이르면 이성과 기계적 정밀성 외의 통찰이 빛을 발해야 창작이 가능합니다. "영감"의 도움 없이는 성립이 안 되는 게 시의 창작이죠. 그런데 이 영감은, 신앙의 깊은 경지와 또 무관하지 않습니다. 영혼의 희열과 깨달음은, 반드시 종교를 통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종교를 통해서도 분명 가능할 것입니다. 이 박사님이 아무래도 노령이시라 그의 시에서 불꽃 같은 활기가 캐치되지는 않습니다만, 그래도 이 책에 실린(저, 아니 어느 독자라도 처음 보게 되는) 그의 시는 자연스럽고 뭔가 초월적인 분위기를 독자에게 확실히 전달합니다. 그의 영혼은 분명, 정체와 타성을 거부하는 끊임 없는 노마디즘에 가장 강한 개성을 두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는 초보 기독교 신자들이 언제나 하는 말을 이 책에서 하고 있는데요. "가장 낮은 신분으로 태어나 가장 처참하고 모욕적인 방법으로 죽음을 맞이한 이의 가르침이, 어떻게 이천 년이나 지속하여 전세계 곳곳에 흔적을 남기게 되었을까?" 이 오래된 질문에 대해, 그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언제나 긍정주의 일변이었다는 점도 한몫했다."는 과연 그다운 해석 하나를 내어 놓습니다. 낙타와 바늘귀의 비유에서도 굳이 부정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긍정문으로 서술하고 있다는 거죠, 전 처음에 무슨 말인가 해서 성경을 직접 찾아 보았는데, 확실히 이박사침 말씀처럼 그렇게 되어 있더군요. 우리 예상으로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건 낙타가... 보다 어렵다."고 알고 있었는데(보통 그렇게 인용하지 않습니까?) 성경 원문을 보니 이 예상을 깨고,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보다.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게 더 쉽다!"고 되어 있긴 했습니다! 과연 문장 형태로만 보면 긍정문이 맞네요! 아 뭐 결론은, 긍정마인드로 살아서 나쁠 것이야 하나도 없다는 겁니다. 이민아 변호사는 자신의 "아니마"가 고스란히 구현된, 가장 사랑스럽고 귀중한 박사님 자신의 분신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박사님처럼 장점과 미덕이 많은 분도 분명 내심 스스로 마음에 들지 않는 자신의 모습이 있을 터인데, 이 이민아 변호사는 아마 그런 꺼림칙한 면은 모조리 떨구어 내고, 오로지 자신의 좋은 점만 세상에 지니고 나온 귀중한 존재였을 겁니다. 그런 귀한 따님을 먼저 떠나 보냈으니, 그 마음이 어떠하셨겠습니까. 세상에 이런 불의, 부조리가 다시 없는 셈이고, 이 지구에서의 납득할 수 없는 추한 논리에 절망한 나머지, 오로지 사랑만을 내세운 절대자의 품에 귀의하고 싶은 것도 지극히 당연합니다. 우리 인간은 한 줌도 안 되는 뇌의 물컹물컹한 연산 작용으로 우주의 비밀을 다 알고 거대한 세계를 손 안에 넣을 것처럼 허세를 부리지만, 그 실질은 이만큼이나 약한 존재였던 거죠. 다른 데서는 몰라도, 한국과 일본이라면(한국보다 일본에서 더 존경 받는 분이죠) 이분 앞에서, 나 좀 똑똑하다. 나 좀 많이 안다고 위세를 부릴 자가 없을 만한 지성인이신데, 그런 분이 어떻게 보면 180도 다른 전환을 맞이하여 이처럼 겸허한 모습을 드러내셨으니, 독자들도 좀 생각해 볼 일입니다. 결국 지성과 영성은 물과 기름처럼 구분되는 개념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완전하게 만들어주는 요철의 상호보완적 부품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지성은 영성을 만나 온전한 지성이 되는, 그런 관계와 본질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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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에서 영성으로
이책은 한시대를 풍미했던 작가, 교수, 문화부장관을 지낸 이어령교수님의 자기 고백서입니다. 어느 평범한 그리스도를 만나게 된 신앙간증문이라고 할까? 지성으로 종교를 연구하고 성경을 탐구하던 한 지식인이 가슴으로 종교를 이해하고 마음으로 성경을 읽고 영성으로 이해하는 과정을 그린 책이라고 하면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 생각하네요.
이책에서 이어령교수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만나게된 결정적인 계기는 딸의 건강문제 때문입니다. 미국에있던 딸이 갑자기 의사로부터 실명판정을 받고 실명위기에 있을때 마지막으로 한국으로 돌아가서 수술을 해보자고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기도를 하게됩니다. "하나님 민아(딸)가 어제 본것을 내일 볼 수 있고 오늘 본 내얼굴을 내일 또 볼 수만 있게 해주신다면 저의 남은 생을 주님께 바치겠습니다. 제가 가진것이라고는 글을 쓰는 것과 말하는 천한 능력밖에 없사오니 그것이라도 좋으시다면 당신께서 이루고자 하는 일에 쓰일 수 있도록 바치겠나이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와서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결과 미국병원의 오진이 아닐까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눈이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판정이 나온것입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깨닫고 하나님앞에 나아오는 계기가 됩니다.
이책은 4단원으로 크게 나누어져 있습니다. 1부는 교토에서 찾다... 종교도 알고 성경도 알고 있지만 지성적인 판단으로 하나님을 판단하고 연구하던 무신론자 시절의 모습을 담담히 서술해 놓고 있어요. 2부 하와이에서 만나다.. 딸(민아)를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일하심을 알게되고 이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이 이어령교수를 부르기위해 오래동안 기다리심을 알게됩니다. 3부 3부 한국에서 행하다.. 이어령교수가 하나님나라를 선포하고 그임재하심을 영성으로 이해하고 가슴으로 나누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보너스같은 4부 문지방위의 대화.. 여러잡지와 언론에 실린 인터뷰기사들을 정리한 내용들을 모아 놓았네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어령교수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살아오면서 크리스천이 되리라고는 한번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책을 덮으면서 이말이 격하게 동감합니다. 나역시 살아오면서 크리스찬이 될것이라고는 이전에는 한번도 생각한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부정부패를 저지르는것은 목사들이고, 국민을 사랑하지 못하고 서민들을 괴롭혔던 사람들이 장로출신 대통령들인것을 보면서, 하나님이 세상에 없을것이라고 확신했기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나의 작은 시선으로 알지를 못했을뿐, 하나님은 내곁에 항상 계셨다는것을 깨닫는 순간 하나님은 나와함께 계심을 알게되었습니다. 우리가 믿고 보고 해야할것은 인간들인 부패한 목사도, 눈귀막고 있는 장로출신 대통령도 아닌 하나님이라는 사실... 이책 '지성에서 영성으로'는 나의 믿기전 모습과 하나님을 만난후의 나의모습과 또다른 닮은꼴 책이었습니다. 이책을 나에게 보내주어서 나의 인생을 또 돌아보게 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제목: 지성에서 영성으로 저자: 이어령 출판일: 최신개정판 1쇄발행 2013년 11월 20일 출판사: 열림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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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많은 종교가 있다. 천주교, 이슬람교, 원불교, 불교, 라마교, 여러 애니미즘….
그 중에 나는 기독교를 믿고 하나님을 믿는다. 어떤 신자는 믿음이
좋은 사람도 있고, 어떤 신자는 약한 믿을을 가진 사람도 있다. 많은
사람들은 종교를 가지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그 종교의 교리를 따르며 사후의 삶을 믿는다.
하지만 또 많은 사람들은 종교를 갖지 않고 무교로 살아가며, 세상에
신을 부인한다. 내가 겪은 바로는 특히 많은 공부를 한 지식은 층 분들이 특히 더 무교로 살아가는 것
같다. 많이 공부를 하면서 자신을 믿고 자신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자신을 믿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지성에서 영성 으로]라는 책을 쓴 이어령 교수님도 그 중 한 분이었을 것이다.
많은 것을 공부하고 장관까지 지내시다가, 현재는 교수로 살고
있는 삶에서 하나님을 믿지 않고 부인하면서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며 세상을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쓴 것과 같이 결국은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 사람마다 어떤 일을 하게 되는 사건이나 이유가 있듯이,
이어령 교수님도 정말 엘리트로 잘나가던 딸의 질병과 손주의 병으로 인해 자신을 돌아보고 딸의 권유로 그리고 어떠한 끌림에 의해서 결국은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
[지성에서 영성으로] 라는
책을 통해서, 이어령 교수는 일본 교토에서의 생활, 그리고
하와이에서의 딸과의 생활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와서의 생활을 자신의 일기 글 같은 수필형식을 통해 이 책을 만들었고, 독자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는지 기록하고 있다, 또한
성경적인 부분을 지식인답게 문화와 역사, 인문학 등등을 접목시켜서 한번쯤 생각해 볼 수 있는 글들을
써 주셨다.
물론 비기독교신자는 이런류의 도서를 싫어할 지도 모르겠지만, 한번쯤은
이런 책을 통해 사람이 변화되는 것을 느끼고 알아도 좋을 것 같다. 단순히 꿈속에서 신을 만나 종교를
갖게 됬다는 것 보다, 이런 스토리있는 이야기를 통해, 이런
방법으로도 하나님을 믿을 수가 있구나 라는 생각을 갖게 될 수 있을 거 같다.
또한, 기독교신자인 분들은 이 책을 통해서, 한 분의 나와 똑 같은 평범한 분이 하나님을 믿게 되는 과정을 그린 간증이라고 생각하면서 편하게 읽으면, 마음에 평안도 갖게 되고 평온해 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한번 뿐인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나는 항상 고민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중심을 잡고 하나님 말씀을 교리삼아 나의 인생을 사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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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에서 영성으로 (의문은 지성을 낳고 믿음은 영성을 낳는다)
초대문화부장관이자 이화여대 교수로 잘 알려져 있는 이어령교수가 쓴 책. 이 책에서 말하는 지성에서 영성으로의 의미는 저자가 서두에서 쓴 글이 잘 표현하고 있다.
'지성에서 영성으로' 책 제목은 대담하게 붙였지만 나는 아직도 지성과 영성의 문지방 위에 서 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의 도움이 있으면 나는 그 문지방을 넘어 영성의 빛을 향해 더 높은 곳으로 갈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이 글을 아직 주님을 영접하지 못하고 그 문 앞에서 서성거리는 사람들에게 바치고자 합니다.
이 책은 무신론자였던 저자가 하나님을 믿기 까지의 여정을 시간순으로 보여준다. 저자가 기록했던 일기와 기사, 그리고 시등을 통하여 서술하고 있는데,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이 책의 제목처럼 그 과정이 한걸음 한걸음 잘 묘사되어 있다.
이 책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제1부 교토에서 찾다 제2부 하와이에서 만나다 제3부 한국에서 행하다 제4부 문지방 위의 대화
크리스찬이라면, 이 책의 2부에서 많은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자녀의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이어령교수의 고백은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특히 '너는 나의 동행자'라는 이어령교수의 시는 개인적으로 너무 감동적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지성에서 영성으로가 크리스찬들 만을 위한 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논 크리스찬들에겐 1부에서 느끼는 것이 많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어령교수의 교토에서의 사색을 통해 종교와 신에 대한 생각을 한 지성인의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이어령교수의 '지성에서 영성으로'는 전부터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기는 했으나 '축소지향의 일본인'에 대한 개인적인 선입견이 있었기 때문에 이 책을 적극적으로 읽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의문은 지성을 낳고 지성은 영성을 낳는다'는 책 소개의 문구가 너무 인상적이라 이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나는 전 문화부장관이자 당대의 지식인으로 이름이 높은 이어령교수를 잘 모르는 세대를 살았다. 그래서 평범한 한 사람의 에세이를 읽는 기분으로 읽었는데, 오히려 더 공감가는 부분이 많았던 것 같다.
이어령교수는 이 책이 논 크리스천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갈지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이 책을 집필했던 것 같다. 이어령교수가 이 책을 집필할 당시에는 크리스찬으로서의 삶을 시작한지 그리 오래 되지 않았을 때였겠지만, 크리스찬과 논 크리스찬의 시각은 상당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자신의 교토시절을 충분히 사색하며 이 책을 썼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 또한 크리스찬으로서 논 크리스찬들이 어떻게 이 책을 읽을지,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어떤 생각을 할 지 많이 궁금하다.
어찌 되었든 서두에서 밝힌 이어령교수의 헌사처럼, 아직 주님을 영접하지 못하고 그 문 앞에서 서성거리는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하나님을 더 알게되기를 바래본다.
본문의 내용을 일부 인용하면,
방을 가득 채우고서도 나를 구속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으 빛이고 향기이고 바람과 같은 공기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지요. 그래요. 이 방안을 물건이나 내 몸뚱어리로 채울 것이 아니라 빛과 향기와 공기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으로 가득 채울 수 있다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문득 한 번도 펴보지 않았던 성경의 한 구절이 떠올랐지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 11:28)
나는 그때까지 평론, 칼럼, 에세이 같은 산문을 써왔지요. 엄격한 의미로 그것은 창조가 아닙니다. 창조에 대하여 토를 다는 일이지 그글 자체가 창조일 수는 없지요. 그러던 내가 시의 형식을 빌려 기도를 드렸다는 것은 이미 내 마음이 산문에서 시로 옮겨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될 수 있을 겁니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내 교토 일기에는 죽음의 원죄속에서 무언가를 사랑하고 긍정하려고 몸부림친 낭자한 피의 흔적들이 엎질러진 잉크 자국처럼 번져 있습니다. 나에게 하나님은 행복이 아니라 언제나 그렇게 슬픔과 외로움으로 다가오는 존재입니다. 무릅을 깨뜨리거나 코피가 나면 엄마를 부르며 집으로 달려가는 아이처럼 상처를 입어야만 하나님을 부르며 달려가지요.
한옆으로는 사람을 그리워하면서 또 한옆으로는 사람을 만날까 두려워하면서 살아온 한달, 동굴 벽에 가위표로 표시하듯 지나가는 날짜와 시간을 가슴 위에 칼질하며서 살아온 한달. 한국이 너무나도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나날들이었습니다. 이제 지금껏 내가 남긴 것들, 내가 먹다 만 그 음식들을 설거지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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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전 장관은 우리나라의 초대 문화부 장관으로 1967년부터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화여대에서 문리대 교수를 지내는 한 편, 서울신문, 한국일보, 경향신문, 중앙일보 등의 주요 논설위원으로 꾸준히 글을 쓰는 등 활발한 저술활동을 한 타고난 글쟁이입니다. 저는 중앙일보와 경향신문을 10년 넘게 구독하며 그의 글을 자주 접해서 익히 그의 지적 능력과 훌륭한 문장에 감탄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 기억 속에 이 전 장관은, 젊은 시절부터 성경에 비판적 시각을 가져왔던 것 같은데 어느 날 갑자기 180도 변신하여 지성이 아닌 영성에 대한 책을 들고 나타나서 깜짝 놀랐습니다. “오늘부터 저는 신자의 길을 걷습니다. 그동안 많은 직함을 갖고 여기까지 걸어왔습니다. 이제 새로운 길을 떠납니다. 이 길이 외로울 수도 있지만 신자로서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싶습니다.” 70세가 훌쩍 넘어 뒤늦게 세례를 받고 난 뒤에한 그의 이야기(고백)는 참으로 진실 되게 느껴졌습니다. 이외에도 이 전 장광의 지성에서 영성의 길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겪은 내면의 솔직한 이야기들은 저로 하여금 그를 따라 영성의 길로 나아가게끔 하는 큰 동기가 되었습니다. 역시 좋은 글은 독자를 감화시키는 능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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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에...최고위치 정도 되던 인물이.. 영성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되는 계기들... 사건들...이 책에서도 표현이 되어있다. 사람들은 각자의 아픔들...통해서 다양한 경험을 통해 신앙을 가지게 된다. 이분의 가진 장점으로 다른 안믿는 분들에게도 다양한 책들이 나오게 될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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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최고의 지성으로 알려진 이어령 선생의 글이 왜 아름다운지 이제야 알게 된 책입니다. 그의 고백의 마음이 어쩜 그리 잘 다듬어진 단어로 조합이 잘 되었는지... 아름다운 사랑의 글들만을 쓰신분이 아닐진대 단지 몇장을 넘겼을 뿐인데 눈물이 주르르 흘렀습니다. 아..이런게 바로 글의 힘이구나 싶었구요.
어느무신론자의 기도는 하나님을 모르는 자라기 보다는 아직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받고 있다는 걸 인정하지 못하겠는 자의 기도라고 느껴졌지요. 노래 잘하는 사람도 부럽고, 연기 잘하는 사람도 부럽지만.. 지금 이 순간 만큼은 글로 자신의 마음을 잘 표현하는 사람들이 부러울 따름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고, 내가 그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등의 내용은 아니지만 그 모든게 다 느껴지는 건 저만일까요? 하나님을 지성으로 알았던 무신론자의 삶에서 영성으로 알게되어 그 벽을 넘어가고 있는 신자의 고백까지 연결되는 고백의 글들입니다.
새해를 맞이해서 읽은 첫번째 책이기에 그 감동이 더 절절했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믿는 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말이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동감합니다.
사람이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있고. 그 영역에서는 하나님의 기적이나 해결책은 찾아볼 수 없고 그것은 사람들이 알아내야 한다는 것도..정말 최고의 지성이라는 의미의 두 엄지손가락이 저절로 올라갑니다. 정말 그동안 어디에서도 읽어보지 못했던 이성적이면서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존재와 존엄성을 인정하는 그러면서 인간의 한계를 처절하게 깨닫게 해주는 글입니다.
혼자 교토에서 지냈을 때의 그 깊고, 절망적인 고독과 외로움의 제 1장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깊은 고독과 외로움의 초절정이었고..고독이라는 것의 기본도 모르는 나에게 더이상의 공허함은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겠구나 싶을 정도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숨쉴때마다 그 호흡속에 살아계신 그분, 까닭없이 눈물이 흐를때 그곳에 계시는 그분을 이전엔 몰랐다면 이제는 알고 계실거 같습니다.
선생님의 고백이 바로 저의 고백이 되네요..너무나 감사한 책입니다. 2014년 새해의 시작을 정말 탁월한 선택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감사합니다. (1401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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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문화부장관, 문학박사 등등의 타이틀을 차치하고서라도 "이어령"이라는 이름 석자는 가히 대한민국의 지성을 대표할 만하다는데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이야기가 어찌되어가든 나는 이야기의 주된 것보다는 여기저기 얻어 들은 신변잡기 이야기에 더 귀가 쫑긋 세워지는 여인네라... 이어령님의 지성보다는 딸의 삶을 먼저 알았고 그 딸로 인해 신앙의 길로 들어서게 된 과정을 듣고서야 이미 2010년에 초판 발행되고 2013년에 최신개정판으로 출판된 <지성에서 영성으로>를 읽어 보게 되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신앙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스폰지처럼 흡수된 신앙(?)이라 불신자가 논리적으로 설명하라고 하면 늘 얼버무리기 일쑤였다. 나는 믿어지는데 믿어지지 못하는 사람이 이해는 되지만 어떻게 딱부러지게 설명할 방법도 모르겠고... 그래서 대학시절엔 그리스도를 논리적으로,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것에 관한 책들에도 관심이 꽤 많았었지만 책에 있는 지식을 아는 채 하는 것에서는 한계가 느껴졌었다. 저자의 말대로 만두를 맛보려면 만두피와 소를 따로 먹는 것이 아니라 한 입에 콱 물어 씹어 먹어야 맛을 제대로 안다는 표현처럼 겉으로만 바라 보는 사람들에겐 어떤 알아 듣기 쉬운 말로 설명을 해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은 이어령님이 일본에서 혼자 살 때부터 일기, 수필, 시 등의 형식으로 쓴 글들을 모아 놓은 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보이는, 들리는 일이나 상황들에 대한 느낌과 깊이 있는 사색을 발견할 수 있다. 혼자 있어 본 이는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많고 꽤 오랜 기간에 걸쳐 쓴 글들이라 이어령님의 삶을 함께 나누어 산 느낌도 조금 들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지성인임에도 겸손히 자신을 감히 바울과 같은 지성인이라 칭하지 말기를 바라고 내게 일어난 기적이 같은 상황에 있는 다른 이에겐 일어나지 않았으므로 기적이라 떠벌이지 않기를 조심스러워 하였지만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방법에서는 하릴 없이 항복하는 모습에, 저자는 아직도 지성과 영성의 문지방에 서 있다고는 하지만 이 시대에 참 바울의 역할을 잘 감당하실 분이라는 확신도 들었다.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2
당신을 부르기 전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당신을 부르기 전에는 아무 모습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아닙니다. 어렴풋이 보이고 멀리에서 들려옵니다.
어둠의 벼랑 앞에서 내 당신을 부르면 기척도 없이 다가서시며 "네가 거기 있었느냐." "네가 그동안 거기 있었느냐"고 물으시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달빛처럼 내민 당신의 손은 왜 그렇게도 야위셨습니까 못자국의 이름이 아직도 남으셨나이까. 도마에게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나도 그 상처를 조금 만져볼 수 있게 하소서. 그리고 혹시 내 눈물방울이 그 위에 떨어질지라도 용서하소서.
아무 말씀도 하지 마옵소서. 여태까지 무엇을 하다 너 혼자 거기에 있느냐고 더는 걱정하지 마옵소서. 그냥 당신의 야윈 손을 잡고 내 몇 방울의 차가운 눈물을 뿌리게 하소서.
책 속에는 저자가 지은 시들이 몇 편 나오는데 그 중 가장 마음에 와 닿는 시이다. 신앙생활을 한 지 햇수로 몇 십년이 되지만 여전히 "네가 거기 있었느냐"라고 부르시는 주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도 하고 "너 거기서 무엇하고 혼자 있느냐"물으시는 것도 같고...
뒷부분으로 갈수록 지성인으로써 성경을 이해하고 해석해 놓은 부분이 있는데 신앙이 없는 사람뿐 아니라 신앙인들도 한 번씩 읽고 성경의 다시 읽게 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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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에 출간된 후로 숱한 화제를 뿌렸던 이어령 교수의 대표작 중 하나인 <지성에서 영성으로>가 3년만에 최신개정판으로 출간되었다. 글을 가다듬고 보충하여 나왔는데 역시 그 명성답게 무신론자로 살아온 지성인이 하나님을 받아들이기까지 과정을 시간 순서대로 엮어낸 책이다. 요즘 기독교계의 불미스런 일로 인해 심란한 상황이었다. 초기 교회에서 느꼈던 모습들은 온데간데 없고 교회가 부유해져갈수록 세상과 다를 바 없이 되어가고 천민자본주의와 낡은 권위주의로 인해 사람들이 하는 일은 나중에는 다 똑같다는 생각 때문에 몹시 씁쓸했다. 의문은 지성을 낳고 믿음은 영성을 낳는다고 하는데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오래 했어도 의문점은 늘 남아있다. 과연 믿음은 앞뒤 따지지도 않고 모두 덮어버린 채 믿기만 하면 되는 문제인지. 보통 사람도 이렇게 수많은 갈등을 번복하는데 이 시대 최고의 지성인이라고 추앙받는 이어령 교수는 어떻게 그 마음이 변화될 수 있었는지 그것이 제일 궁금한 부분이었다. <디지로그>에서도 그의 해박한 지식과 탁월한 단어선택에 눈이 즐거웠는데 <지성에서 영성으로>는 독백과 같은 시에서 많은 감동을 받았다. 올컬러의 정갈하면서 결코 튀지 않는 일러스트의 조화가 더욱 돋보였다. 교토의 외진 곳에 있는 연구소에서 많은 사색의 과정들이 이 책을 쓰기로 한 계기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사람은 신앙심이라는 것을 태생적으로 갖고 태어나는 것 같다. 무언가에 의지할 사람도 없고 마치 지구에 홀로 떨어진 것처럼 외롭고 고독할 때 붙잡게 되는 건 바로 하나님인지 모른다. 주님을 영접함으로써 마음의 평안을 되찾고 세상에서는 얻을 수 없는 한없는 위로와 사랑이리라. 설령 크리스쳔들을 위한 책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크리스쳔이 아닌 사람이라도 깊은 성찰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하나의 에세이로써도 훌륭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거짓말이 지배하는 이 시대에 원치않는 일로 상처를 받고 믿음이 무너지려고 할 때 되려 처음 교회에 나가 신앙생활을 시작했을 때를 기억하려고 한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 아래에는 서로가 서로를 아끼고 보살펴주고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고 했던 따뜻한 마음과 인간에 대한 애정,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그 공동체라는 테두리 안에서 진정한 믿음이 생겨난 것 같다. 이제는 홀로 깨닫고 하나의 답을 찾기 위한 과정에 있는 지금 이어령 교수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영성의 기운을 얻을 수 있었다. 삶의 시각을 넓혀주었던 책으로 역시 그 명성은 변함없다는 걸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