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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다는 것은 무엇인지로 시작하여 생명체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다시 인간의 살아있음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책마다 커버가 있는데 이 책의 문구는 “지금 나는 삶을 그저 견디고만 있지는 않나?”였다. 정말, 우리는 오늘도 살고 있지만 진정하게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책 안에 있는 문구 중 ‘생명의 특징은 목적을 가지고 있고, 목표를 겨눌 수 있으며, 원하는 것을 알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안다는 것이다.’라는 내용이 있다. 세포, 인간 뿐 아니라 식물이나 곤충에 이르기까지. 과연 나는 목적있는 삶을 살고 있는지 다시 반성해보게 되었다. * 하지만 자기가 살기 위해 다른 생명을 취할 수 있는 권리는 오로지 생존과 성장에 필요한 정도로 제한된다. 사자는 영양을 수천 마리씩 우리에 가두어 키우지도 않고 영양 역시 자신과 같이 풀을 뜯어먹는 곤충을 죽이기 위해 화학약품을 뿌려대지 않는다. * 되는 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옆을 그저 스쳐지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보통 이렇게 사는 것은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는 것이다. 즉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지를 남들이 결정하는 것이다. 자신의 인생에 어떤 목적을 부여할지, 어떤 부분들을 소중히 여겨야 할지 다른 사람이 결정하도록 내버려둔다면 설령 그럴 마음이 없다고 해도 사실 남의 삶을 사는 것이다. * 일상적으로 우리가 해내는 모든 일들이 모여 의미 있는 인생을 이루어 나가며, 의미가 있으면 인생을 허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철학적 용어로 이야기하자면 이런 경우 우리는 인생에 의미 이상의 것, 즉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 한 사람의 삶의 역사. 삶은 시간 안에서 전개된다. 아무리 단순한 형태일지라도, 모든 생명체는 역사를 지니고 있다. 모든 삶은 이런저런 만남과 사건들을 거치면서 성장하고 발전해 나가며, 이 만남과 사건들은 흔적과 추억을 남긴다.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가르침을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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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나는, 오늘도> 시리즈 중 한 권이다. <나는, 오늘도>는 하루에, 나의 행동 딱 하나만, 깊게 생각해보는 취지의 책이다. 이 책을 통해 '버리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한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철학적인 생각을 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는 이유 이외에 단순히 노랑색에 이끌려서이기도 했다. 책이라는 소재가 지속적으로 생각에 잠길 화두를 던져주고, 때로는 강렬한 희열과 함께 깨달음을 얻기 때문에 즐겨 읽게 된다. 책을 선택하는 이유보다 읽고 나서의 기분이 좋을 때에 책을 읽은 보람을 느낀다. 단순한 이유로 읽어본 책인데,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다.
이 책은 생각보다 얇게 구성되어 있다. 작은 시집 정도의 두께다. 책 속에는 그림이 함께 있어서 전체적인 분량을 생각해보면 얼마 되지 않는다. 굳이 분권하지 않고 한 권에 다양한 주제의 내용이 다 담겨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너무 무거워지려나? 내용도 두께도. 어쨌든 오늘은 이 책을 통해 버린다는 것에 대해서만 생각해보기로 한다.
이 책을 읽으며 '뜨끔'한 느낌을 갖게 된다. 오늘도 쓰레기통에는 쓰레기가 쌓여가고 있다. 불과 얼마전에 쓰레기 봉지를 채우고 분리수거까지 하고 나서 시원하고 가뿐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다시 생활 쓰레기는 쌓이고 있다. 사실 이 쓰레기들은 나의 눈에 띄지 않는 것일 뿐, 쓰레기차로 옮겨지고 어디론가 향해 간다. 우리가 내는 공과금이며 세금은 이 모든 것을 잊어버리려고 내는 돈이다. (12쪽) 순환 고리의 관리에서 우리의 책임을 다하는 것은 '지구를 생각해주는' 방법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다. 우리는 쓰레기통의 가짜 마법을 남용하면서 우리의 집 지구를 쓰레기 별로 만들어가는 중이기 때문이다. (29쪽) 살아간다는 것은 이다지도 많은 쓰레기를 배출하는 것이던가. 의미가 있는 것, 별 의미 없는 것. 가질 필요가 없는 것이지만 갖고 있는 것, 그렇게 갖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임에도 저쪽 구석에 존재감 없이 먼지 쌓여 있는 것 등 방안의 물건들이 하나 하나 눈에 들어온다.
이 책에서는 협의의 쓰레기에 관한 생각에서 시작해서, 의미가 담긴 물건, 사람까지, 다양한 부분에서 '버리다'라는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물건만 버리는 것이 아니다. 사랑했던 사람의 사진과 편지도 버리고, 컴퓨터 화면에서도 휴지통에 버리는 파일이 있다. 그 중 무책임한 방식으로 버리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보며 깨닫게 된다.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이 필요한지도 몰라서 일단 아무것이나 손에 넣은 다음, 역시 무책임한 방식으로 버리는 것이다.' (66쪽) 이 부분에 있어서는 좀더 깊이 생각해보고 행동하리라 결심하게 된다.
한 가지 주제로 사색에 잠기는 시간을 갖고 싶을 때, 책의 글자수에 짓눌리는 느낌이 들 때, 읽는다는 것보다는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 싶을 때, 이 책이 도움을 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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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다] [★★☆] [나를 원하다] [2016. 9. 3 완독]
'원하다.'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다.'라는 것을 알고 있다. 혹여 모든 것을 마음 속에 품고 있더라도 모든 것을 품을 수는 없는 법. 그래서 우리는 성장하면서 '선택과 집중'이라는 단어를 수도 없이 들어왔다. 성인이 된 우리가 과거에 했던 선택과 집중이 옳다라고는 쉽사리 얘기하지 못하겠다. 한번뿐인 인생이기에 '만약에'라는 말을 쓸수도 없는 복잡한 개개인의 삶에, '성공'이라는 단어가 각자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오듯 스스로가 '원했던' 일이 어떻다는 것은 본인 스스로 판단할 일이니까 말이다.
<원하다>가 보여주는 초연함, 자유 의지는 살짝 현실과 떨어져 있는 느낌도 든다. 삶의 주인이 되라고? 원하면 이루어 질 것이라고? 그런 말을 믿기에는 너무 현실을 일찍 알았는가. 의지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일도 있으니 말이다. 대신, 나는 이렇게 얘기해주고 싶다. 원하는 것이 생겼을 때 투자해야하는 것, 포기해야 하는 것, 그리고 후회하지 않는 것. 그게 모든 것을 원해도 이룰 수 없는 현실의 최선이라고 본다. 원하는 것에 대해 내가 어떻게 '주체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가. 굳건한 성격과 강철같은 의지를 가지고 앞으로 전진 할 수 있는가. 적당히 하자.
영웅 흉내는 내지 말란다. 재미있다. 커다란 성공 뒤에 뒷받침 되어야 하는 노력과 희생이 중요한 것이 아니란다. 뭔가 원하고 앞으로 나가고자 하는 의지. 즉, 결심이 중요 하다고 한다. 큰 성공도 큰 재물도 중요한 것이 아닌 그저 작은 의지, 작은 결심 '나'가 '나'로 남을 수 있는 최소한의 영역. 결국 우리가 원해야 할 것은 밖이 아닌 안. 자아(自我). 자기 자신으로 살기 위한 수단이 '원하는 것'일뿐 그것이 어떠한 목적이나 목표의 수단이 아님을 얘기하는 어투에서 작가의 자유 의지가 엿보인다. 흥미롭다. 그저 그런 자기 계발서 같은 말투로 시작했다가 '적당히 해~ 대충살어~'라고 말을 걸어오니 친근하다. 나를 구원하는 '원하다'. 그래,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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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는 쓰레기를 버리는 문제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지구라는 우주 비행선의 주된 문제는 우리에게 식량을 공급해줄 식량 칸이 따로 없다는 것이라고. 다만 태양으로부터 에너지를 공급받아야만 필요한 식량을 생산할 수 있으므로 엄청난 양의 재생 가능 에너지인 태양에너지를 더 잘 이용하는 방법을 강구하는 게 시급한 문제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서 태양에너지와 풍력에너지가 주요 에너지 생산원으로 대체되면 가격이 비싸진다며 폭주하는 닝겐들이 있다. 그러면 원전은? 정부에서
지원하기 때문에 그 정도로 가격이 싼 것이다. 그것도 폐기처리할 때의 가격까지 붙여서 제대로 정산하면 상당한 금액이다. 아마도 그 이야기 한
사람은 경주방폐장까지 가보지 않았음에 분명하다. 그래도 난 근처까진 가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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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나라는 진짜 원하는 걸 찾기 이전에 원해야만 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을 찾는 게 먼저라고 본다.
물론, 책을 쓸 거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 안 쓰는 사람들도 많고 심지어 그 와중엔 책도 안 읽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는 옆에서
책을 쓰라고 쓸데없이 강요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던가, 여러 이유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역시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 만일
글을 쓰고 싶다면 당장 책을 잡은 뒤 느낀 점을 글로 옮기기 시작하는 게 제일이다. 너무 부담간다면 일상에서 만난 사람들과 감상부터 조금씩
일기처럼 써 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타인에게 강요받고 있다면, 게다가 그 타인의 사랑에 굶주려 중독된 듯 글을 쓰길 원한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면 정말 최악이다. 아무리 글쓰기가 사람들에게 좋아도 그렇지, 아주 심각한 경우 당장 글쓰기를 그만 두고 정말 자신이 원하는 걸
찾는 게 훨씬 낫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타인에게 무언가를 원하라고 강요하는 건 대부분 이유 쪽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자신이 글을
쓰지 못할 것이며 심한 경우 자신의 인생은 끝났다고 생각하며 자식에게 글을 쓰길 강요하는 부모가 있으리라. 그러나 그것도 꽤 옛날 얘기다.
60대에 헬스장을 다니며 근육을 단련하고 모델로 나가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P. S 만약에 공무원(ex.서울시 공무원)을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발령이 안 나고 한 곳에 오래 살면서 사랑하는 사람(이 만약 있다면)과 아이 낳고 기르는 것이 그 사람 행복의 요체고 직업은 그냥 수단에 불과하다면 어떠한가? 라는 질문이 있었다. 뭐 직업을 돈 때문에 하는 건 그 사람의 자유고 상관없지만 결국 훗날에 박차고 나가는 걸 난 너무 많이 봐서... 그리고 공무원도 열성없음 짤린다(...) 결국 짬밥을 오래 먹는다는 건 어떻게든 직업에 재미를 붙여서 잘 지낸다는 뜻일 수 있다. 즉, '행복해야만 해'라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으면 아무리 철밥통이라도 죽도밥도 안 된다는 것. 내가 훗날 행복을 느낀다면 잘 된 일이지만 잘 안 될 수도 있으니, 굳이 도박을 하기 싫다면 원해야만 하는 일은 피하는 게 상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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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예쁜 노란색의 책:) 사물을 버리는 것에서부터 사람을 버리는 것까지. '버리다'라는 행위에 대해 쓰인 책이다. 우리는 필요없게 된 사물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잊기 마련이다. 그러나 쓰레기통이 비워지며 다른 쓰레기들과 합쳐져 이동하고 이동하고, 끝내 재처리되고 만다. 어떤 것은 재활용될 것이고 어떤 것은 소각시킬 것이며 또 어떤 것은 땅에 묻힐 수도 있다. 추억이 얽혀 버리는 물건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어느 날, 집에 가는 길의 의류수거함 위에 곰인형이 놓여있는 것을 보았다. 무척이나 큰 크기는 아니였지만 수거함의 입에 들어갈 수 없을 만큼의 크기. '아이고, 누가 버렸나보다'하면서 지나갔고, 다음날도 그렇게 생각하면서 지나갔다. 그리고 자꾸 보면서 마음이 쓰였고, 그것을 이기지 못해 며칠 후에는 결국 인형의 손을 붙잡고 집으로 데려왔다. 버려진 물건엔 뭐가 씌어있을 수도 있다고 지인은 짓궃게 말하곤 했지만 그래도 마음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집 근처의 세탁소에서는 인형을 받아주지 않아서 손으로 세탁하고 말리고. 지금은 내 방 한 켠에 고이 자리잡고 있다. 인형을 버린 누군가는 수거함 위에 올려놓고, 돌아서고, 잊었을 것이다. 그 인형의 행방을 궁금해하지 않은 채. 버린다고 사라지는 것은 아니고, 그 사물은 또다시 여정을 시작하는 것이다. * 일단 어떤 관계에서라도 상대에 대해 거리를 두고 멀어지거나 관계를 끊을 권리가 우리에게 있다는 점부터 짚어두자. 버린다는 것은 나로부터 멀리한다는 것이며, 멀리한다는 것, 그러니까 나와 가까운 사람과 먼 사람을 결정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만들어가고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결정하는 수단이 된다. * 어떤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단지 그 관계로 인한 혜택과 즐거움을 누리는 것만이 아니라 그 관계를 돌보며 지속될 수 있게 하고, 관계를 상하게 할 일은 피하며, 필요한 부분은 수리한다는 것이다. 시작되는 첫 순간부터, 그리고 그 후로도 매 순간 관계를 돌보기 위해서는 관계의 어떤 부분도 정말로 버릴 수는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아무런 결과나 흔적도 남기지 않고 무無로 사라질 수 있는 부분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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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것은 단지 무언가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만은 아니다. 책을 읽으면서 근육으로 비유한 것이 특히 인상깊었다. 여러가지 운동으로 균형을 잡으며 근육을 키우고 단련시키는 것처럼 의지도 단련시켜야 한다는 것. 어느 연예인의 몸매처럼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단련시켜야 더욱 크게 빛을 발할 수 있다는 것. 책 속에서 언급한 것처럼 언제 스스로를 지켜야 할 결정적 순간이 올지 모르니까 말이다. * 누구나 선하고 기분 좋고 정상적인 일만을 원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 궁극적으로, 합리적 선택이란 초연함의 자유를 초월하는 것이지 그것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마음만 먹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점을 충분히 잘 알고 있고, 또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아무 일이나 해보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나의 선택은 어느 모로 보든 자유롭고 진실한 것이기 때문이다." * 자신이 원해서 결심한 것을 선택하고 실행하는 것. 특히나 자기 자신과의 힘든 싸움 이후에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음을 느끼는 것은 기분 좋은 만족감을 선사한다. 이런 만족감은 철학자들의 표현대로 '삶의 주인'이 되는 데 중요한 동기를 부여한다. * 의지가 가진 힘은 근육의 힘처럼 구체적인 행동을 통해 드러난다. * 성공 비결은 너무 힘든 목표를 잡지 않으면서 충분한 시간을 들여 조금씩 조금씩 발전해나가는 것이다. 때로는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비록 아주 조금씩이라도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끊임없이 발전해가는 것이다. ~시작은 힘들지만 갈수록 힘든 것은 줄어들고 만족감은 커지는 것이다. 자존감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기분도 좋아지고,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게 정신적, 신체적 준비가 되어 있다는 자신감까지 생긴다. * 무언가를 진정으로 원하는 의지와 막연한 희망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단호함이다. 단호하게 원한다는 것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 의지, 또한 의지를 강하게 만드는 기술, 생각, 능력을 키워가는 일은 결국 원하는 대로 스스로를 빚어가는 능력을 키우는 일이자, 진정한 자신 자신을 세워가는 일이며, 이것만으로도 의지는 부인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 의지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한 수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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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퓌에슈의 짧고 쉬운 글이 판화풍 그림과 쭉 이어진다. 하지만 긴 여운을 남긴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
'살다'라는 삶을 견딘다는 뜻으로 말이다.
삶의 의의를 잃어서는 안 된다. 거대한 권력의 억압을 받을 때처럼 극단적인 경우에는 자신의 삶, 진정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진정으로 살기 위해, 인간의 존엄을 지키면서 살기 위해서는 맞서서 저항해야만 한다.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존엄을 지키기 위해 생물학적 생명을 걸어야 할 때도 있다. 우리가 맞서거나, 반대로 외면한 사건들이 모여서 삶의 역사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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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움직이게 하는 철학책 시리즈' 《나는, 오늘도》는 시집 형태의 작고 얇은 책이다. 책표지도 단색으로 되어 있어서 눈길을 끈다. 책을 펼치면 파리 소르본 대학의 철학 교수인 '미셸 퓌에슈'의 짧은 글들과 함께 '올리비에 발레즈'의 일러스트가 그림 동화책 같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러나 그 내용은 쉬우면서도 마음에 와닿는다. '도대체 살아 있다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해주면서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깨우쳐 준다. ![]() 우선, '나를 움직이게 하는 철학책 시리즈' 《나는, 오늘도》을 살펴보면 '우리가 매일 생각하고, 경험하고, 행동하는 9가지인 '사랑하다. 설명하다, 수치심, 걷다, 먹다, 말하다, 원하다, 버리다, 살다' 를 주제로 9권으로 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에 나는 이 시리즈의 9 번째 권인 <살다>를 읽기로 했다.
저자 소개글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 철학적 개념을 인간의 몸과 마음의 행동과 생각을 통해 풀어 나가는 저자의 집필 방식은 사람들이 실제로 몸과 마음을 움직여 삶을 변화시키는 데까지 나아가게 한다. " (저자 소개 글 중에서) 거창한 이 문장만큼이나, 이 책의 내용은 특이하다. 그것이 바로 저자의 집필방식이다. '살다'를 이야기하기 위해서 철학자는 생명의 역사, 진화론, 생태계, 생명과 생태계의 특징인 구조적 질서, 삶을 사는 방식, 삶의 형태와 결과, 인생의 의미, 가치 등을 순서대로 풀어나간다. 그렇다면 꽤 어려운 철학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질 수 있지만, 그런 내용들을 아주 쉽고 간결한 문장으로 설명해 준다.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일러스트가 이 책을 아주 쉽게 읽을 수 있게 해 준다. ![]() '살다'를 풀기 위해서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생명. 이를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 생명의 특징은 / 목적을 가지고 있고, / 목표를 겨눌 수 있으며,/ 원하는 것을 알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안다는 것이다. " (p.p. 18~20)
모든 생명체 중에 인간은, " 인간은 자신만이 유일하게 가치있는 생명체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시각은 그저 단순한 우월감이나, 다른 생명들의 존엄과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는 맹목일 뿐 아니라 근시안적이며 스스로의 파멸을 초래할 수도 있는 오만의 소산이다. " (p. 64) 그리고 삶에 대하여, 특히 자신의 삶을 다른 사람이 결정하는 것은 불행임을, 그런 삶은 비록 성공을 했다 하더라도 자신의 삶이 아님을 일깨워준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철학자들은 진정으로 인간다운 삶이란 생각하는 삶이라고 말한다. " (p. 78)
<나는, 오늘도 philosopher?> 시리즈는 " 우리가 느끼고, 행동하고, 생각하는 것들을 다시 한 번 천천히 살펴봄으로써, 삶을 각자가 생각하는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 시켜 보자" (책 소개 글 중에서)는데에 그 목적이 있다고 한다. ![]() 독자들에게 철학자가 쓴 책들은 읽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철학이 우리들의 일상 속에 스며들어 우리의 삶을 움직일 수 있게 해 주는 철학자가 쓴 에세이이다. " 하루에, 나의 행동 딱 하나만, 깊게 생각해보기. 그렇게 나 자신이 되기, 매일 매일 조금씩 " (책띠 속의 문장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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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렇게 생각 안 하기가 힘들더라.
나는 오늘도 시리즈의 마지막이다. 약간 데카르트의 사상에 대해서 이야기한 게 아닌가 싶다. 사과나무에게 어느 정도 자율적 의지가 있지
않나 하고 생각하는 나에게 이 책은 단호하게 사과나무가 무언가를 원하거나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나는 오늘도 시리즈의 말하다 편이 떠오른다.
인간은 생각을 하고 말을 하기에 자신의 의지를 전할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동물과 식물은 그렇지 못하다. 또한 생명체가 영혼이나 정신이 깃들어
있지 않더라도 존재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더 나가서 생명체는 구조라고 말한다. 그러나 모든 생명체는 동일한 생명체의 후손이기 때문에
친척관계에 있다는 설명은 불편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인간이 치킨을 먹는 건 자신의 친척을 먹고 있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이제
우리는 다시 나는 오늘도 시리즈 중 하나인 먹다를 떠올려볼 수 있다. 이렇게 살다는 이전의 시리즈들을 회상할 수 있게 만드는 최종편이다.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마음과 자연을 존중해야 한다는 메시지는 나는 오늘도 어느 편에나 빠지지 않고 등장하듯이, 여기서도 나오고 있다. 감정을 통해
세계와의 접촉을 유지할 때, 우리는 비로소 살고 있다는 실감이 든다. 쇼생크 탈출에서 끝끝내 자유를 갈구했던 죄수 주인공처럼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