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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운규 : 한국 영화의 개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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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혹은 근현대사를 배우다보면 문화부분에서 나운규의 이름을 볼 수 있다. 한국 영화의 역사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던게 나운규였고 또한 그의 영화 '아리랑'은 한국 영화의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왜 나운규가 '아리랑'을 만들게 되었으며 '아리랑'에서 어떤 연기를 펼쳤고 또 그 이후엔 어떤 활동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 영화에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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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혹은 근현대사를 배우다보면 문화부분에서 나운규의 이름을 볼 수 있다. 한국 영화의 역사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던게 나운규였고 또한 그의 영화 '아리랑'은 한국 영화의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왜 나운규가 '아리랑'을 만들게 되었으며 '아리랑'에서 어떤 연기를 펼쳤고 또 그 이후엔 어떤 활동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 영화에 관심이 있고 한국영화사를 유심히 살펴본 사람이 아니라면 나운규와 '아리랑'이라는 영화제목 이외에는 알기 어렵다. <살아있는 역사인물>시리즈의 다섯번째인 나운규는 지금 우리가 즐겨보는 한국영화가 있게 만든 중요한 기점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어렵지 않게, 복잡하지 않게 나운규의 삶을 들여다보며 과연 그가 없고, 그의 아리랑이 없었다면 지금의 한국영화가 존재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몇년 전 스크린쿼터 축소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많은 영화인들이 참여했고 외쳤다. 우리나라 영화는 열심히 발전중인데 흔히 말하는 헐리우드의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속속 들어오게되면 발전중인 우리나라 영화가 축소되고 설 자리를 잃게될거란 우려에서였다. 다행히도 지금은 영화관에서 상영중인 상당수의 영화들이 한국영화이다. 작품성을 인정받고 베니스 영화제, 칸 영화제 등에서 영화와 배우들이 상을받는다. 한국 감독들의 헐리우드 진출은 한국영화를 세계에 진출시키기에 적합했다. 이렇게 한국영화를 성장시킨 기반은 바로 한국영화의 전환점을 만든, 그리고 한국영화를 성장할 수 있도록 기초를 쌓은 나운규가 존재했던 당시의 한국영화에 있다. 그만큼 나운규는, 그리고 아리랑은 한국영화에 있어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김기덕의 <피에타>가 베니스 영화제의 황금사자상을 받고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가 해외에서 관심을 받고 박찬욱의 <스토커>가 호평을 받으며 한국영화는 성장하고 세계로 뻗어나간다. 우리는 현재의 부흥한 한국영화만을 보는것이 아니라 지금의 한국영화를 있게한 그 시초를 알아야 한다.



더불어 1960년대에 제작된 김기영감독의 <하녀>를 보길 권한다. 2010년 개봉한 홍상수감독의 <하녀>또한 시대에 맞게 잘 각색되었지만 원작에서 느낄 수 있는 그 충격은 오늘날 한국영화못지않다. 시대적 배경을 너무나도 잘 살렸을 뿐만 아니라 영화속에 심어놓은 장치들을 찾는 재미또한 쏠쏠하다. 시대적 배경을 이해한 뒤 보게되는 김기영의 <하녀>는 흑백영화의 매력에 눈을뜨게한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나운규의 <아리랑>또한 필름이 남아있어 오늘날 다시 복원하여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점이다. 2012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던 조르주 멜리에스의 '달세계여행'은 1920년대에 제작되었던것을 스티븐스필버그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복원하고 그 위에 컬러를 입혀 다시 상영될 수 있었다. 아리랑또한 이렇게 복원되어 지금의 우리앞에 나타났다면 한국영화사에 큰 획을 긋고 지금의 우리에게 큰 감동을 주지 않았을까 한다.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뒤지지 않는 수준의 영화를 만들어내는 수많은 감독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많은 이들이 나운규의 일생을, 나운규의 영화를 더 많이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z********h 2014.01.0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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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의 개척자 나운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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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의 개척자 나운규>는 다섯 수레에서 발간하는 ‘살아있는 역사인물’ 시리즈 다섯 번째 인물위인전이다. 인하대학교 조희문 교수가 쓴 이 책은 나운규의 삶을 구어체로 속도감 있게 서술하였다. 따라서 쉽게 읽히면서도 짧은 시간 나운규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또한 저자의 영화학에 대한 전공지식이 책에 녹아 있어서 영화의 역사에 대해서도 간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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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영화의 개척자 나운규>는 다섯 수레에서 발간하는 ‘살아있는 역사인물’ 시리즈 다섯 번째 인물위인전이다. 인하대학교 조희문 교수가 쓴 이 책은 나운규의 삶을 구어체로 속도감 있게 서술하였다. 따라서 쉽게 읽히면서도 짧은 시간 나운규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또한 저자의 영화학에 대한 전공지식이 책에 녹아 있어서 영화의 역사에 대해서도 간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영화의 발명, 무성영화, 초창기 한국영화계의 모습에 대해 글 곳곳에 소개되어 있다. 또한 글의 일제강점기 시대 부족한 역사적 자료 상황에서도 당시의 각종 신문 기사를 소개하며 글의 객관성을 높이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나운규는 당시 영화계에서 배우, 감독, 연출 모든 분야에서 성공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영화에 관한 삶이 늘 성공 가도만 달리는 것은 아니었다. 한 편의 영화는 배우들의 연기뿐만 아니라 촬영, 편집, 세트, 음악과 같은 요소들이 합쳐져야 하고 이야기를 꾸미는 연출의 효과도 큰 영향을 미친다. 또한 수준을 갖춘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만한 비용도 있어야 한다. 그가 만들어낸 <심청전>에서는 제작비의 부족과 흥행 실패, <장한몽>은 세트장 화재로 주인공으로 2명의 배우가 투입되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의 분야에 대한 열정으로 이 어려움을 극복하였다.

 

  1910~30년대 점점 탄압이 강해지는 일제강점기 하에서 예술과 사회 어느 한쪽도 소홀하지 않는 내용으로 작품성은 물론 한국 땅에서 영화 미지의 예술분야를 개척하여 ‘한국 영화의 개척자’로 남은 나운규. 안타깝게도 그의 최고작 ‘아리랑’은 자료의 소실로 실제 영상을 볼 수 없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YES마니아 : 로얄 a******5 2013.12.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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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의 개척자 나운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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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의 태동기에 영화사에 큰 족적을 남긴 사람이 있다면 바로 나운규일것이다. 초기 영화는 무성영화라고 해서 화면에 배우의 동작만이 있고 변사를 담당하는 사람이 배우의 대사와 영화의 진행을 맡아서 영화가 상영된 적이 있다. 아마 나이가 어린 세대에서는 변사를 잘 모를지도 모른다. 그 변사가 활동하던 무성영화시절 즉 한국영화가 막 시작되고 영화사가 설립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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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의 태동기에 영화사에 큰 족적을 남긴 사람이 있다면 바로 나운규일것이다.

초기 영화는 무성영화라고 해서 화면에 배우의 동작만이 있고 변사를 담당하는 사람이 배우의 대사와 영화의 진행을 맡아서 영화가 상영된 적이 있다. 아마 나이가 어린 세대에서는 변사를 잘 모를지도 모른다.

그 변사가 활동하던 무성영화시절 즉 한국영화가 막 시작되고 영화사가 설립되고 영화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매김 할 시절에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난 나운규라는 감독 겸 배우가 <아리랑>이라는 영화를 들고나와 온 나라를 깜짝 놀라게 한것이다.

 

 

나운규는 배우로 먼저 영화계에 입문하게 된다. 역할이 크지 않은 조연부터 시작해서 몇 편의 영화에 출연을 했지만 영화팬들에게는 크게 알려지지 못하다가 <농중조>라는 영화에 주연배우로 참여하여 흥행에 성공을 거두며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이후 <아리랑>이라는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고 주연배우를 맡게 되었다.
<아리랑>은 크게 호평을 받으며 흥행에도 엄청난 성공을 거두어 한국 영화계에 나운규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이후 발표한 <풍운아>를 연속으로 히트시키며 한국 영화계에 큰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다.
 
두편의 영화를 통해 국민적 배우겸 감독으로 거듭난 나운규는 이후 열정적으로 감독으로 또 주연배우로 활동을 하지만 예전의 <아리랑>만큼의 호평을 받거나 많은 관객을 끌어모으지는 못했다. 또한 그 당시 영화계는 일제 치하의 상황에서 열악한 자본력과 많지 않은 배우들이 활동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옛 명성을 찾기가 더 어려웠을 것이다.계속해서 제작한 영화들은 실패를 거듭했고 초기 그와 함께 했던 동료 배우들도 하나둘씩 떠나 갔지만 영화에 대한 열정은 사그러들지 않았다. 영화에 대한 열정으로 본인의 건강은 뒷편이였기에 결국 서른 여섯이라는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된다.
 
나운규 감독겸 배우는 꽃미남 스타일은 아니였다. 선굵은 인상 외모에 거친 말투였다고 한다. 오히려 그의 그런 부분이 그가 추구했던 영화 세계와 잘 맞아 떨어진것이 아닌가 한다. 변사가 영화를 진행하는 무성 영화의 시대였지만 그가 남긴 영화들은 우리나라 영화산업 초반기의 큰 보물과도 같은 것이다. 하지만 <아리랑>이라는 영화는 필름이 분실되어 더 이상 볼 수 없는 영화가 되었다.
 
영화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 이 책은 통해 우리나라 초창기 영화계의 역사적인 사실들을 알게 되어 반가웠다. 그리고 어떻게 우리나라에 영화가 소개되었으며 어떤 단계를 거쳐 영화산업이 발전해 갔는지를 알수 있는 좋은 참고가 되는 책이다

g*****k 2013.12.2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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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의 개척자, 그의 삶을 돌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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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만 해도 한국 영화를 그닥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개인의 취향이겠지만, 중반부만 접어들면 결과가 뻔히 보이는 전개와 답답하기까지 했던 신파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인데요, 유럽에서 자라서일까 유머 코드도 잘 맞지 않았고 코미디나 연애물은 어린 제가 보기에도 점 유치했기 때문에 딱히 마음을 붙일만한 장르를 찾지도 못했던 것 같습니다. 때문에 한국 영화를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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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만 해도 한국 영화를 그닥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개인의 취향이겠지만, 중반부만 접어들면 결과가 뻔히 보이는 전개와 답답하기까지 했던 신파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인데요, 유럽에서 자라서일까 유머 코드도 잘 맞지 않았고 코미디나 연애물은 어린 제가 보기에도 점 유치했기 때문에 딱히 마음을 붙일만한 장르를 찾지도 못했던 것 같습니다. 때문에 한국 영화를 영화관에서 관람했던 적은 기억하기론 단 한번도 없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오랜 비엔나 생활이 지나니 한국 영화가 달라졌습니다. 가끔 독일 방송에서 한국 영화를 해줄때면 어줍잖은 번역에 괜시리 열을 내곤 했는데 (현지인 친구들이 그로 인해 한국 영화 자체를 가볍거나 실없이 여길까봐였죠) 발전의 발전을 거듭하더니, 어느새 세계 영화 선진국들과 경쟁할만한 실력을 갖추게 된 것입니다. 오스트리아나 독일 영화제에서 한국 영화와 감독들을 언급하며 찬사를 쏟아낼 때면 괜히 제가 상을 받는 것마냥 으쓱했던 기억이 나네요.


정작 한국 사람이면서 한국의 문화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예외는 아닌데요, 관심을 가지고 직접 알아보지 않으면 접하기 힘들 정도로 베일 속에 가려진 부분도 참 많다고 느낍니다. 국악이 그랬고, 한국 영화 역시 마찬가지고요. 지금 우리가 이만큼 발전된 환경에서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일생을 바쳐가며 희생한 많은 분들의 피와 땀의 결실인만큼 우리 문화의 뿌리와 그 발전사에 대해 연구하고 관심을 갖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욱 반가운 책이 한 권 있습니다. 지난 10일 발간된 아주 따끈따끈한 책, <나운규 - 한국 영화의 개척자>를 소개합니다!




한국 영화의 뿌리를 찾아서


영화는 수많은 예술 장르 가운데 아주 특별한 장르입니다. 음악을 비롯해 미술, 무용 등의 다른 예술 분야는 그 기원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영화는 그 시작점이 분명합니다. "움직이는 사진"이 발명되고 영사기가 도입되면서 시작되었기 때문이죠. 즉, 새로운 기술의 발견과 발전은 곧 영화사의 시작과 발전사가 되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영화는 여타 예술 장르보다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그 역사의 한 부분 한 부분이 비교적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보전되어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에서야 우리가 의식하지도 않은 채 영화적 언어들을 이질감 없이 받아들이고 있지만, 오랜 시간 영화인들은 보다 현실적인 촬영과 편집을 위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해야 했습니다. 이것은 비단 한두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영화가 시작된 곳이라면 지나갈 수 밖에 없는 단계였는데,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때는 1920년대. 영화가 자라나기 좋은 환경은 커녕 사회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우리나라는 치명적인 위기에 놓여 있었습니다.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는 것은 물론 조금이라도 비위를 거스르는 행동을 했다가는 옥살이나 심지어 죽음까지 피할 수 없었으니까요. 그런 극한 상황에서 우리나라 영화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합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나운규가 있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는 1937년까지 10여 년 동안 그의 활동이 곧 당시 영화계의 활동이라고 할정도로 나운규는 배우, 감독, 제작자 등 여러 분야에서 의욕적인 활동을 펼쳤습니다. (...) 12년 동안 한 해 평균 두세 편의 영화를 만든 샘인데, 당시 영화계에서 그처럼 많은 영화에서 활동을 한사람은 나운규밖에 없었습니다. (11 페이지)


이 책은 한국 영화의 개척자로 불리우는 나운규의 삶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영화가 발견되고 발전되었는지를 돌아봅니다. 책을 쓰신 조희문 선생님은 현재 인하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로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한국영화학회 회장 등을 지내신 바 있습니다. 

우리에게 생소한 인물인 나운규의 삶을 통해 이 책은 우리나라에 어떻게 영화가 수입되었고 시작되었으며, 누가 어떻게 발전시켰는지에 대해 설명합니다. 책은 연대순으로 되어있지만 몇몇 부분에서 잠시 나운규의 이야기를 멈추고 그 시대의 영화사 전반을 설명해주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한국 영화사의 발자취를 따라가볼 수 있습니다. 때때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에 영화의 기초 이론을 간략하게 설명해놓았으므로 초보자도 무리없이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파란만장한 나운규의 삶과 그의 영화 인생


저도 음악을 하고 있습니다만 사실 유교 사상을 가지고 있던 우리나라에서 배우나 뮤지션은 그닥 존경받는 직업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광대"나 "딴따라"라고 비하하며 천대받곤 했죠.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실용음악을 한다고 하면 어른들이 눈살을 찌뿌리는 것이 당연했고, 행여나 그런 사람들과 어울려 다니거나 배우자감으로 소개하기라도 한다면 잔소리를 면할 수 없었던 것이 현실이었습니다.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서 "도대체 나운규는 보수적이고 폐쇄적이기 그지없던 시대에 태어나 어떻게 배우가 될 꿈을 꾸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지금처럼 이미 성공한 영화배우가 있어 그 발자취를 따를 수 있는 것도 아니라,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며 배워나가야 하는 시점에서 그는 어떻게 자신은 배우가 되어야겠고 영화를 위해 인생을 바쳐야겠다는 결심을 할 수 있었을까 대단하게 느껴지더군요. 


1926년 10월 1일 초연된 영화 '아리랑'을 통해 나운규는 일약 스타가 되었고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영향력 있는 영화인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그의 작품 생활이 순탄한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에피소드가 비교적 잘 알려진 다른 위인전과는 달리 그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생소한 것이었기에 마치 한 편의 소설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것처럼 흥미롭게 그의 삶을 읽어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새옹지마"라는 말이 무색하게 그의 일생은 산 넘어 더 큰 산, 그 산 너머 더욱 더 큰 산이 연속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동안 그 모든 고난들조차도 그의 영화를 향한 의지와 사랑을 꺾을 수 없었다는 것은 놀랍기까지 합니다. 함께 일했던 사람들에게 배척받고, 의도치 않은 정치적 희생양이 되어 비난을 받으면서도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남으며 영화에 모든 것을 쏟아부은 그의 열정은, 그의 육신의 기력이 다하여 죽음에 이르러서야 그 끝을 맞이합니다. 


나운규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몸조차 가누기 어려웠고, 기침을 할 때마다 피를 토하면서도 다음 작품을 준비했습니다. 새롭게 구상한 작품은 <황무지>, 지친 몸을 이끌고 대본을 써 나갔습니다. 큰 눈은 더욱 커졌고, 몸은 가시나무처럼 여위어 갔습니다. 나운규는 마지막 힘을 몰아쉬면서 쓰고 또 썼습니다. 하지만 <황무지>는 영화로 만들어지지 못했습니다. 1937년 여름, 나운규가 쓰러지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1937년 8월 9일 새벽 1시, 나운규는 서른여섯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169 페이지)


길을 알려주는 사람도,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던 그 시절. 영화의 무엇이 나운규를 그토록 움직이고 그 열정에 불을 지폈는지 읽는 내내 궁금했습니다. 선생이나 멘토 없이는 무엇을 시작하기조차 어려워하는 우리들의 모습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입니다. 하지만 일제 치하에서도 굴하지 않고 일본의 기술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기술을 개발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애쓴 나운규 등의 영화인들이 있었기에, 이제는 세계적으로 뻗어나가는 한국 영화가 된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살아있는 역사 인물 나운규 


이 책은 다섯수레 출판사에서 선보이는 "살아있는 역사 인물 시리즈"의 다섯 번째 책입니다. "우리 역사에 큰 획을 그은 다양한 분야의 인물을 통해, 그들이 남긴 의미를 새롭게 조명해 보는 역사 인물 평전"이라는 설명에 걸맞게 한 인물의 업적과 사회적 공헌을 토대로 그의 인생을 적어나가고 있습니다. 특별한 것은 이 시리즈에서 소개된 인물들은 세계역사가 아닌 우리나라 역사의 인물들인데요, 지금까지는 우장춘 박사와 실학자 박지원, 화가 이중섭 그리고 의사 허준의 평전이 발간되었습니다. (출판사에 따르면 앞으로 정약용, 김구, 한용운, 윤이상 등의 평전이 이어질 것이라고 합니다)

워낙 시리즈의 색이 분명하다보니 책을 읽으면서 어른이 아닌 어린이나 청소년을 위한 위인전을 읽는 느낌도 들었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때문에 중간에 잠시 "이 책을 계속 읽어야 하나"라는 생각마저 들었는데요, 뭔가 위인이라고 하면 모든 것을 미화시켜 "그러니까 그는 언제나 훌륭했고, 끝까지 훌륭했으며, 그래서 위인입니다"라는 옛날 위인전 스타일에 심히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 책은 끝까지 큰 거부감 없이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나운규라는 인물을 바탕으로 조금 더 세세한 내용을 다루었으면 하는 점인데, 영화인이나 매니아가 아닌 일반 대중을 타깃으로 한 책이다보니 심화된 내용 자체가 시리즈의 취지에 어긋날 것 같았습니다. 즉, 영화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계시거나 전공하시는 분들께는 조금 "수박 겉핥기" 식으로 끝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기꺼이 추천하고 싶은 것은, 그동안 (적어도 대중적으로는) 베일에 싸여있던 우리나라 영화의 시작을 알려주는 몇 안되는 책이기 때문인데요, 이것을 시작으로 우리나라 영화이론과 분석학 출간 사업에 새로운 불이 지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x***i 2014.01.0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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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의 개척자 나운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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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한국 영화의 개척자 나운규     나는 이야기를 참 좋아한다. 그래서 영화도 참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영화에 관심이 많아지고 한국 영화가 이렇게까지 발전하게 된것에 궁금해졌다. 그 궁금중 나운규라는 거목이 있었다. 우리나라 영화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인물!! 영화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나운규라는 이름을 들어 봤을 것이다. 나도 그렇게 그가 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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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한국 영화의 개척자 나운규  

 

나는 이야기를 참 좋아한다. 그래서 영화도 참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영화에 관심이 많아지고 한국 영화가 이렇게까지 발전하게 된것에 궁금해졌다. 그 궁금중 나운규라는 거목이 있었다. 우리나라 영화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인물!! 영화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나운규라는 이름을 들어 봤을 것이다. 나도 그렇게 그가 궁금해졌다. 대충 알고는 있었지만 한국 영화사에 획을 그은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리고 그가 한국영화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지 말이다.

이 책은  상명대학교 영화과 교수를 지내고 지금은  인하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님이신 조희문 교수님이 쓰신 글로 마치 누가 이야기를 해주는 것 같은 책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참 편안하고 쉽게 읽혀지는 책이었다. 영화에 관심이 많은 아이들도 읽으면 좋을 만큼 그렇게 편안하다.

그의 삶에 대해 읽으면서 사람마다 타고나는  달란트는 어쩔 수 없는 나올 수 밖에 없는 것 같았다.  뭔가를 하고 싶다면 주저없이 시도해 보라고!! 그것이 이뤄질 수 없는 일처럼 보일지라도 말이다

나운규!! 그의 삶이 그랬다. 그가 열정으로 시도 하지 않았다면 한국 영화는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미리 겁을 먹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진짜 자기 삶을 놓치고 있는건 아닐까??

불꽃처럼 모두를 태우고 간 36년의 삶!!

나운규!! 그의 삶은 짧았지만 참 많은 일들을 해 내고 세상을 빛내고 갔다.

 

 
글쓴이 소개
이 책을 쓴 조희문 선생님은 경북 상주에서 태어났고, 어릴 때부터 영화에 관련된 광고, 사진, 책들을 모으며 영화에 흥미를 가져왔습니다.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영화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경인일보사에서 기자로 일하다가 상명대학교 영화과 교수가 되었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한국영화학회 회장 등을 맡기도 했으며, 지금은 인하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로 있습니다.

 

 

k*******7 2013.12.2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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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운규와 한국 영화의 개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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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사영화제도 있고, 역사교과서에서도 배운 인물이라 친숙하지만 막상 나운규 선생님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한국 영화의 개척자이고, "아리랑"에 출연했다는 것 밖에는 몰랐다. 그런데 역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영화학 박사를 받은 조희문 선생님이 짚어주시는 춘사 선생님의 일대기를 읽어보니 이해가 잘 되었다. 이 책의 내용 중 가장 놀라웠던 것은 나운규 선생님이 3.1 독립운
"나운규와 한국 영화의 개척기" 내용보기

춘사영화제도 있고, 역사교과서에서도 배운 인물이라 친숙하지만 막상 나운규 선생님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한국 영화의 개척자이고, "아리랑"에 출연했다는 것 밖에는 몰랐다. 그런데 역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영화학 박사를 받은 조희문 선생님이 짚어주시는 춘사 선생님의 일대기를 읽어보니 이해가 잘 되었다. 이 책의 내용 중 가장 놀라웠던 것은 나운규 선생님이 3.1 독립운동에도 참가하였고 도판부라는 독립군 비밀조직에도 가담해서 감옥에도 몇 년 동안 갇혀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 대전 국립현충원 독립 유공자 묘역에 안치되어 있다고 한다. 일제 시대에 활약하며 결핵으로 인한 병증으로 서른여섯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모두 27편의 영화에 출연하거나 감독을 했다고 하는데, 출세작인 "아리랑" 조차도 현재 필름이 남아 있지 않다고 하니 참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이 책을 통해 1926년에 제작된 "아리랑"의 제작과정과 그 내용도 알 수 있었으며, 예림회에서 시작해 조선키네마주식회사 등을 거쳐 나운규프로덕션을 설립하기까지 발자취를 되돌아보며 영화를 활동사진이라 불렀던 국내 초창기 영화계의 다양한 모습들을 살펴볼 수 있었다. 나운규 선생님이 출연한 영화가 잇달아 성공하자 영화계 내부의 불만도 많았다고 하고, 또한 조선총독부의 감시와 검열도 심해졌다고 한다. 또한 초창기라 그런지 나운규 선생님이 각본, 감독, 배우 등 1인 3역을 소화해내기도 했다고 하는데, 이 책의 중간에는 조희문 선생님이 소개하는 사진과 영화기술의 발전사도 읽어볼 만 했다. 나운규 선생님이 한 10여년만 더 생존해 계셨더라면 해방을 맞이할 수 있었을 거고, 그러면 우리나라 영화의 초창기 발전과 그 뒤를 잇는 중흥의 역사를 새로 만들었을 수도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d****o 2014.01.0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