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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9대 왕 성종의 군주평전이다. 성종은 조선 건국후 100년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왕위에 올라 나라의 기틀을 잡았다. 성종은 1392년 개국 후 태조 이성계가 1398년까지 왕위에 있었고, 이후 정종이 2년 남짓 왕을 하다가 태종 이방원에게 양위한다. 1418년까지 다스린 태종이 다시 아들 세종에게 양위를 하게 된다. 1418~1450년까지 세종의 치세가 시작된다. 세종의 맏아들인 문종은 39살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붕어하면서 아들 단종이 왕위에 올라 그의 숙부인 세조(수양대군)에게 보위를 빼앗기게 된다. 세조는 13년 남짓 왕위에 올라 나라를 다스린다. 그의 맏아들 도원군은 20세에 요절한다. (후에 성종이 즉위하면서 덕종에 추존) 둘째 아들 예종이 즉위하지만 예종은 1년 남짓 왕위에 올라 있다 죽게된다. 세조의 두 아들은 결국 20대 젊은 나이에 모두 죽게 되는 것이다. 도원군에게는 월산대군, 잘산군 이렇게 2명의 아들이 있었고, 예종에게는 제안대군이 있었다. 당시 대왕대비였던 정희왕후 윤씨는 도원군의 차남인 성종을 왕위에 올린다. 성종은 사실 왕위 계승 순위에서 비교적 멀리 있었으나, 억세게 운이 좋게 왕위에 오르게 된다. 흔히 성종을 조선의 태평을 즐긴 왕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는 훈구와 사림의 태동 속에서 그 어떤 왕보다 정치력이 요구되는 왕이었다. 성종은 왕위계승 순위에서 멀리 있어 미쳐 제왕학을 익히지도 못한 채 왕위에 올랐다. 하지만 『경국대전』 반포로 국정 운영의 틀을 제도화하고, 수많은 전적을 간행했으며, ‘효치’와 ‘교화’를 통치 이념으로 조선 전기의 성세를 이룩하는 치적을 쌓았다. 그 바탕은 그 자신의 호학과 왕으로 중요한 언론의 활성화와 활용이었다.
성종은 훈구 세력의 힘으로 왕위에 올랐다. 그의 할머니 정희왕후가 바로 훈구파의 중심이었고, 훈구파의 힘으로 옹립된 성종 역시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런 성종대에 고려말 신진사대부들 중 한 일파인 은거한 사림이 대거 조정으로 진출한다. 김종직 등으로 대표되는 사림파는 조선의 정치 주도권을 놓고 훈구파와 일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런 시기 성종은 그의 탁월한 정치력으로 조선의 평화를 유지한 것이었다.
성종의 구체적 시책도 볼 만하지만 부패한 정치를 개혁하면서도 기득권과 신진세력 간의 사생결단을 피하고 정치적 통합을 유지한 ‘교화의 정치’를 오늘날 본받을만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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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수행평가때문에 급히 구매하여 읽어보라 했건만 너무 어려워했어요. 제목이 멋있어서 이 책으로 정했다는데 내용은 어휘력 딸리는 우리 고등학생이 읽기 어렵네요. 읽다가 계속 이게 무슨 말이냐고 물어보는데 제가 봐도 일반 독자를 위해 풀어쓴 쉬운 책은 절대 아니에요. 전문가들끼리 사용하는 단어들이 그대로 실린 건가 싶었어요. 아들보다야 한자어를 많이 아는 저는 읽어보니 역사도 좋아하고 해서 그럭저럭 읽었고 역사에 관심있는 사람에게는 재밌을 것도 같아요. 배경지식도 좀 있는 사람에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