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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리뷰
【 도덕을 왜 자연에서 찾는가? 】- 사실과 당위에 관한 철학적 인간학 _로레인 대스턴 / 김영사
인간은 ‘자연스럽게’ ‘자연적으로’라는 말을 많이 쓴다. 인간이 자연에게 해 준 것이 무엇이 있다고, 자연을 들먹이는가? 이때 자연은 무슨 의미로 적용이 되는가?
이 책의 지은이 로레인 대스턴은 미국의 과학사학자이다. 토머스 쿤 이후 과학사학계를 이끌어온 대표적인 학자로 소개된다. 어찌 생각하면 이 책은 지은이의 전공과 다소 벗어나는 주제를 논하는 듯하지만, 이 책 외에도 인문학적 성찰이 담긴 책들을 여러 권 출간했다고 한다.
지은이는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글을 연다. “왜 사람들은 수많은 문화와 시대를 막론하고, 널리 그리고 끈질기게 자연을 인간의 행위에 대한 규범의 원천으로 보는가?” 사실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자연적 질서와 도덕적 질서를, 그리고 자연적 무질서와 도덕적 무질서를 연관지어왔다. 따라서 여러 지역의 다양한 전통에서 자연은 선(善), 진리(眞理), 아름다움(美)과 같은 모든 가치의 모범으로서 떠받들어졌다.
지은이는 ‘자연주의적 오류’라는 것을 이야기하며 이렇게 설명한다. 이 오류는 문화적 가치가 자연으로 이전되고, 이 가치를 지지하도록 다시 자연의 권위를 소환하는 일종의 은밀한 밀수(密輸)작전과 같다고 한다. 이런 종류의 가치 밀수는 종종 정치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마치 중세 통치자들이 ‘정치체(政治體)’의 손과 발이 머리와 심장을 충실하게 섬기는 것에 근거해서, 인민 대다수를 귀족과 성직자에 종속시키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옹호한 것을 떠올리게 한다.
서구의 지적 전통 내에서, 학문적 성찰과 대중의 직관에 모두 강력하고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자연’에 관한 세 가지를 주목한다. 이는 특정 자연, 지역적 자연, 보편 자연법칙이다. 특정 자연은 예술이나 교육에 의해 부가된 것에 반하는, 타고나거나 자발적인 특성을 의미한다. 아울러 특정 자연은 사물의 질서를 보장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주가 단지 우연에 의한 산물이라고 주장하는 상대편 철학자들과 싸울 때마다 특정 자연을 무기처럼 휘둘렀다.
지역적 자연은 장소의 힘에 관한 것이다. 지역적 자연은 경관에 특색을 부여하는 동식물, 기후, 지질의 특징적인 조합을 말한다. 사막의 오아시스, 열대 우림, 지중해 연안, 스위스 알프스 등이 그 예다. 보편적 자연법칙은 지역적 자연의 관습과 대조적으로(적어도 인간에 의한)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다. 자연법칙은 엄격한 규칙성을 과시하면서, 어디서나 항상 일정하고 불가침한 질서를 규정한다. 특정 자연의 과학이 분류학이고 지역적 자연의 과학이 생태학이라면, 보편적 자연법칙의 과학은 천체역학이다.
지은이는 이 책을 통해 자연으로부터 도덕이나 법의 기초를 끌어내려던 많은 시도를 비판하고 있다. 특히 고대부터 현대까지 수많은 철학자와 과학자는 여성의 열등성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연을 소환했다는 잘못을 지적한다. 인간에게 주어진 규범은 자연이나 신이 아니라, 인간의 몸에 기반한 이성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글을 마무리한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 받아 작성한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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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보니 오해가 있었다. '도덕을 왜 자연에서 찾는가?'라는 질문은 '왜 자연에서 찾지?'라는 대답을 해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굉장히 복잡하면서도 의외로 명확한 규칙을 보여주는 자연은 우리에겐 무한 신뢰의 대상이며 굳이 증명하지 않아도 지속적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나 또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의 제목은 또 다른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을 책의 말미에 이르러서야 알게 되었다. 인간의 도덕을 왜 자연에서 찾느냐? 왜 자연의 당위성을 인간의 규범에 빗대어 권력을 양산하려 하느냐? 의 질문과 답으로 이어졌다. 자연에 대해 제대로 이해도 하지 못하면서 티클만큼의 사실을 가지고 인간을 족쇄에 옭아매는 규범에 대해 비판하는 이 책은 김영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칸트는 인간의 이성은 인간만의 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말하는 이성은 인간의 특정한 성질의 상징일 뿐 이성적인 존재 그 자체를 대표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어떤 철학자는 소의 이성을 알 수 있다면 그들의 신은 소의 형태를 띠고 있을 거라 했다. 외계 생명체를 모두 인간의 형상으로 상상하는 것 또한 어떻게 보면 인간의 이성에 기반한 것이다. 우주에 '이성'이라는 것은 존재하겠지만 인간으로만 대표될 수는 없다는 게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자연은 무엇인가? 자연은 굉장히 넓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자연은 존재들의 본질 그 자체라고 얘기할 수 있다. 자연이 가져다주는 의미는 시대와 맥락 그리고 위치에 따라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 이렇다는 것은 자연은 그 자체로 무엇으로든지 해석이 가능하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기에 철학자들은 자연에 어떠한 가치도 없다고 주장해왔다. 자연은 단순한 사실인 것이다. 그 '사실'은 '당위'가 필요한 인간 행위의 강요나 투영을 받아들일 뿐이라는 것이다. "개미처럼 일해야지" 더 나아가는 우생학이나 사회진화론에까지 퍼져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생명체는 야생적이며 적응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것은 자연의 사실에 인간의 도덕을 투영한 결과다. 하지만 개미라고 모두 열심히 일하는 것도 아니며 자웅동체나 암컷끼리 교배를 진행하는 도마뱀을 보더라도 우리가 얼마나 좁은 식견으로 '당위'를 만들어내는지 알 수 있다. 자연의 질서에서 특징적인 형태를 정의하고 이를 훼손하는 괴물, 불균형, 비결정주의 정을 배격해 왔다. 자연의 질서에 대한 이런 부자연스러움들은 공포, 두려움, 경이로움과 같은 반응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질서 그 자체도 악몽이 될 수 있지만 과도한 질서조차 무질서 앞에서는 무색하다. 끝없는 내전은 독재보다 더 큰 재앙으로 느끼는 것처럼. 사람이 질서를 원하는 것은 과거를 비추어 미래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인간 사회의 '규범'이며 이것은 공동체를 함축한다. 더 중요하게는 미래로 뻗어나가는 시간적 지평선을 암시하는 것이다. 규범은 내일도 유지될 것이라는 믿음을 보장하기에 충분한 질서가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인간의 질서는 자연의 질서에 호소해야만 하는 것일까? 그것은 인간이 항상 자연을 모방해 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자연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고 이용할 수 있고 그래서 친숙하다. 자연에는 수많은 질서가 존재하기 때문에 인간이 상상하는 질서는 모두 자연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규범은 질서를 요구하고 자연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질서의 예시를 가지고 있다. 반대로 생각하면 서로 상이한 규범이라고 할지라도 자연에는 존재하는 것이다. 하나의 규범이 자연을 인용해 '당위'를 얻어내려고 한다면 그 반대의 규범 또한 자연을 인용해 '당위'를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이 된다. 자연에 빗댄 규범이 사람들을 압도할지 몰라도 자연에 빗대는 순간 그 당위성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일은 인간이 끈질기게 토론하며 만들어 가야 하는 게 아닐까. 자연의 사실로 상대를 압도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가장 좋은 규범을 만들어 내는 것. 다르게 얘기하면 무수히 많은 자연의 질서 중에서 인간에 맞는 질서를 찾아내는 것 그것은 인간의 일이지 자연의 일이 아닌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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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레인 대스턴(지음)/ 김영사(펴냄)
과학사학계의 대표적인 학자 로레인 대스턴. 과학사학이란 무엇을 연구하는 학문인가? 그러고 보면 한국의 과학사도 변화와 쇄신을 반복해 왔다. 그 어느 때보다 역사가 중심이 되었던 시기도 있었고 다시 과학에 힘을 실어준 시기도 있다. 지금이 아닐까? 한국의 과학사학자들이 과학을 주제로 삼는 역사학자로서의 소임을 다 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사람들은 왜 자연의 질서에서 도덕을 찾는 걸까?
책의 저자는 자연을 특정 자연, 지역적 자연, 보편적 자연법칙의 세 가지 준거로 나누고 인간의 질서와 규범성의 인과관계를 찾는다. 고대에서 오늘날까지 자연을 어떤 기준으로 나누고 인식했는지에 대한 서사가 언급된다. 책이 사례를 들어보면 모든 여성은 엄마가 되어 아이를 양육하는 것은 당연하다? 모유 수유를 강요받는것이 당연한가? 동성애는 신의 섭리에 어긋난다. 자연스러운 것은 좋은 것이고 부자연스러운 것은 나쁘다는 인식. 과연 옳을까???
자연주의적 오류!!! 위와 같은 논의들을 우리는 자연적인 오류라고 부를 수 있다. 자연의 이름으로 억압과 폭력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는 작가의 생각이다. 이런 오류들은 어디서 온 걸까? 종교와 문화, 집단 지성?? 저자의 사례를 따라가다 보면 많은 학자들의 문장을 만나게 된다. 정치인이자 자연철학자인 프랜시스 베이컨, 17세기 철학자인 존 로크 외에도 많은 지성들이 인간의 본성과 자연과의 관계에 주목했다.
책을 덮으며 데이비드 흄과 존 스튜어트 밀 그리고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떠올랐다..... 자연은 단순한 사실일 뿐이다. 사실이 '당위'로 변질되는 것은 정치나 전쟁에도 적용해 볼 수 있다. 전체주의, 유대인 말살정책의 집단 이기주의 서사. 책을 통해 특정 집단들의 이념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연 질서를 이용하는 행위에 대한 엄중한 경고를. '현상들을 구하기'라는 마지막 챕터 제목이 깊이 각인된다.... 자연으로부터 질서가 아니라 자연의 '다양성'을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면서.
자연은 자연일 뿐, 자연 그대로가 아름답고... 약간 부자연스럽고 비상식적이지만 그로 인해 스스로 빛나는 그런 괴짜들을 나는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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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러운 것이 옳은 것인가?
책을 읽는 동안 나도 편견에서 깨어나고 새로운 관점을 얻게 되는 기분이었다. 생각해보니 자연은 언제나 ‘생존’ 하나 만으로 움직이는 사회인데, 우리 인간은 모든 것을 자연의 흐름에 맞춰 ‘이게 자연스러운 거야’라는 말로 모든 윤리와 규범에 당위성을 부여하려 했다.
‘여자니까 엄마가 되어야지’와 같은 고리타분한 명제 부터, ‘동성애는 자연의 섭리에 어긋난다’와 같은 오늘날의 논쟁까지.
인간도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1차원적 시각에서 자연의 평형을 깨뜨리는 듯 보이는 행위에 두려움을 느끼기 쉽다. 하지만 우리는 ‘이성’을 가지고 있다.
자연은 범우주적으로 누구나 공통적으로 경험하고 목격할 수 있으니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교훈을 찾아내기 쉽다. 그러기에 자연에서 도덕과 윤리를 찾으려 하는 인간들의 합리성은 인정하되,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자연주의적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하고 끊임없는 비판적 사고를 이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김영사 서포터즈로 활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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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페이지를 조금 넘는 얇은 책이다. 막상 책을 택배로 받고 보니 얇다는게 더 크게 느껴졌다. 다만 이렇게 얇은 책임에도 양장본으로 출간된 것 처럼 그 속의 내용까지 얄팍하진 않다. 책에서는 과거에 인간들이 그랬던, 현재에도 행하고 있는 ‘규범의 당위성을 자연에서 찾는 것’에 대해 비판한다. 조금 더 쉽게 말하면 ‘규칙의 이유를 자연의 모습에서 찾는다’. 우리 주변에서는 이런 모습들을 흔히 찾을 수 있다. 과거에는 자연에서 수컷 동물들이 무리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인간 여성들의 사회 활동을 막았다던가, 짐승들의 태어날 때 부터의 천성을 고치지 못한다는 이유로 인간들을 계급으로 분류해 그 틀에서 벗어나게 하지 못하게 했다. 현대로 오면 동성간의 연애와 결혼을 자연에서 볼 수 없는 모습이라며 비난하고, 법적으로까지 막아버린다. 좀 더 흔한 모습은 자연의 환경에서 다른 무리 구성원들이 하지 않는 행동을 하고, 구성원들이 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 개체는 특히나 포식자의 눈에 띄기 때문에, 인간 사회에서도 다른 ‘일반적인’ 사람들이 하는 일을 그대로 따르고 다른 ‘일반적인’ 사람들이 하지 않는 일은 똑같이 하지 않도록, 해서는 안되는 일로 가르친다. 정작 그 일을 왜 해야 하는지, 왜 해서 안되는지에 대해 묻는다면 대다수의 답변은 ‘남들이 그러니까’로 귀결된다. 책을 읽으며 여태까지 인식하지 못했던 벽을 깨부수는 느낌이 들었다. 주변의 이런 ‘당연함’에 대한 족쇄들은 사실 얼토당토 않는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자연에서 짐승이 땅 위를 발로 걸어다니는 것이 당연하다 한들, 그것은 물속의 생명체들에게는 전혀 당연하지 않은 이야기다. 단지 그곳에는 필요에 의해 물 속 바닥을 걷는 개체도 있고, 물 속을 헤엄치는 개체도 있으며, 물과 육지를 넘나드는 개체도 있을 뿐이다. 굳이 이런 책을 읽지 않더라도 요즘은 이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를 ‘일반화’와 ‘당위성’에 맞서는 흐름이 더욱 눈에 띈다. 사람들은 더이상 ‘평범’을 지향하지 않고, ‘일반적인 사람’에서 벗어나려 노력한다. 자신이 [행인1]이 아닌 [자기 자신]으로 인식되길 원하는 것이다. 이런 사고방식을 녹여낼 수록 더 불안해질 수도 있다. 이제 그 어디서도 ‘이렇게 해야만 한다’라는 것을 찾을 수 없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태 그랬듯, 인간은 방황을 통해서 자신의 답을 찾아낸다. 여태까지 방황을 시스템적으로 막아왔기에 오히려 지금 사회에서 그로 인한 염증들이 터져나오고 있을지도 모른다. 타인의 정답이 꼭 나에게도 정답일 수 없다.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당연한 사실과 효율을 위해 가르치는 시스템은 다른 것이다. 책에서는 이런 중요한 사실들에 대한 구별법들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기에 책을 통해 알아만 둔다면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는데 정말 도움이 될 안목을 가질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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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사람들은 인간의 질서를 정당화하기 위해 끈질기게 자연에 의존하는가?' 한 편의 어려운 논문을 읽는 느낌으로 읽었던 책이다. 길이는 길지 않은데, 내용 자체는 심오하면서도 많이 어려웠는데 한편으로는 당연시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게 해서 아주 신선했다.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야 한다', ' 개미처럼 열심히 살아야한다'와 같이 자연을 빗대는 말을 일상에서 자주 하고 있으며 당연한 자연의 법칙에서 벗어나는 것들은 일탈처럼 치부하는 것들에 대해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오류를 지적했다. ??수천년 동안 자연의 권위는 다양한 명분을 지지하는 데 동원되어왔다. 예를 들어 노예제도를 정당화하거나 비난하기 위해, 모유수유를 찬양하고 자위행위를 비난하기 위해, 아름다움보다 숭고함의 의미를 높이기 위해, 그리고 본능 또는 진화에 호소함으로써 윤리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말이다. 특히 자연의 법칙에 충실한 규범들은 생식을 목표로 하지 않는 동성애를 핍박했고 여자들이 남자보다 뒤떨어진다거나, 사회생활을 할 수 없도록 했다. 심지어 노예제도를 지지하는 명분이 되기도 하였다니 자연의 법칙은 억압과 폭력을 정당화하기도 했다. 이러한 모순된 역사들을 돌아보았을때 자연의 사실로부터 당위를 끌어내리는 것은 오류가 있음을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다. 인간은 동물이고, 자연의 섭리에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너무나 다양한 자연의 법칙들을 다 따르다보면 오히려 모순된 규범들이 나올 수 있다고 하니, 당연시 했던 생각들을 뒤돌아보게 했다. 동성애와 사회적 약자들을 박해하기 위해 가져온 자연의 섭리라면 기꺼이 반대하고 달리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쓴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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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다'는 말은 참 여러 곳에서 쓰인다. 말이나 행동이 어색함 없이 연결될 때도, 무언가 마땅한 것을 일컬을 때에도 자연스럽다는 표현 하나면 다 해결된다. 하지만 때로 자연스럽다는 표현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는 때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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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논문 같았던 책은 읽는 순간에 바로 받아들이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었지만 ‘도덕을 왜 자연에서 찾’느냐는 질문을 꼭 붙들고 한 걸음 한 걸음 걸어보는 일은 해보아야 아는, 해보아야 하는 뿌듯함이었다. ?내가 다루고자 하는 질문은 간단하다. 왜 사람들은 수많은 문화와 시대를 막론하고, 널리 그리고 끈질기게 자연을 인간의 행위에 대한 규범의 원천으로 보는가?? (8, 10) 이 질문을 필두로 과학사학자인 로레인 대스턴의 연구는 진행되는데 그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낯설고도 익숙한 인간의 모습이, 어떤 상황에 처할 때 인간이 으레 선택하게 되는 맥락이 눈에 들어온다.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말도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도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자연에 의미를 부여하는 인간의 충동은 질서에 대한 이중적인 통찰에 뿌리를 둔다. 규범성은 질서를 요구하고, 자연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질서에 대한 예시를 제공한다.? (80) 인간이 자꾸 자연으로부터 도덕을 찾는 것은 규범성과 질서 때문이라는 것이 처음엔 잘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자연이 가지고 있는, 작가가 일러준 자연의 특징들 이를테면 ‘엄격한 법보다는 때때로 예외를 인정하는’ 것,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질서에 대한 예시를 제공한다‘는 것 등을 보면 서서히 감이 잡힌다. 뭔가를 조금 알 것도 같을 때 그것은 탄식으로 이어지는데 그 이유는 인간은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방향으로, 지금과 다르지 않은 과정으로 선택해 나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암울함 속에서도 글에는 맺어져야 하는 결말이 있기에 지금과는 다른 형태의 다음을 바라보게 하는 식으로 글은 끝이 난다. 그 글을 옮긴이가 해석한 부분은 다음과 같다. ?그런데, 질서가 중요하다고 해도, 왜 굳이 자연에 의존해야 하는가? 왜 질서를 사회나 문화에서 찾지 않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마지막 장인 7장에서 나온다. 대스턴은 인간이 만든 어떤 것보다 자연이 다양하기에, 우리가 원하는 종류의 모든 질서를 자연에서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자연은 인간이 만든 인공물이나 문화의 다양성에 비해서 몇십, 아니 몇백 곱절 더 다양하다. 따라서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규범을 지지하는 질서를 자연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자연과 도덕의 본질은 무척 다르지만,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규범을 논할 때 자연에 의지한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사람들은 자연을 찾지만, 또 이런 도덕의 자연화(naturalization)는 강한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그 이유는 자연으로부터 찾은 도덕적 규범과 정반대되는 다른 규범 역시 자연으로부터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스턴은 규범이 자연이나 신이 아니라, 인간의 몸에 기반한 이성에서 출발해야 함을 제안하면서 책의 결론을 맺는다.? (114-115) 이런 장르의 글을 읽을 때면 우리가 갈 길이 멀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먼 길이라고 가지 않을 수는 없다. 가기는 가야 하는데 어떻게 조금이라도 잘 걸어갈 것인가. 그에 대한 답을, 어떤 한 가지의 결론을 로레인 대스턴이라는 과학사학자로부터 얻는다. 그것만으로 충분한 한 걸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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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도덕을 왜 자연에서 찾느냐는 질문을 들으면 아, 그러면 안 되나보다, 생각할 테지만, 사실 저자는 도덕, 혹은 인간의 규범에 대한 기준을 자연에서 찾는 것은 그야말로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하는 듯 하다. 자연은 풍족하게 이용 가능하고, 풍부하게 다양하며, 모든 의미에서 질서정연(80쪽)하기 때문이다. 자연은 상상 가능한 질서의 창고(81쪽)이고, 어느 모로 보나 문화만큼이나 다양성이 풍부(80쪽)하다. 문제는, 자연이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질서를 품고 있기 때문에, 어떤 입장에서도 자연을 끌어와 인간의 규범을 정의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어제 신서유기 재방송을 보며 인상깊게 들은 이야기가 있다. 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의 어느날 태어나 그날 하루를 살고 죽은 하루살이에게 누가 세상은 어떤 곳이더냐 물으면 그 하루살이는 뭐라고 대답할까? 세상은 끝도 없이 하얗고 추운 곳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 대답에 거짓은 없다. 적어도 하루살이 입장에서는 그렇다. 하지만 뜨거운 남태평양 어느 섬에서 죽은 하루살이에게 그 대답은 거짓이다. 이처럼 자연에서 규범을 찾는 행위와 그 주장들은 아마도, 옳다. 하지만 다른 이의 관점에서 볼 때 그 주장은 편협하고 옳지 않다. 그렇기에 내 눈으로 보지 않은 자연, 다른 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까지 두루 살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아마 저자가 한국인이었다면 이 노래를 꽤 좋아했을 거라 확신한다. 장기하와 얼굴들, <그건 내 생각이고> - 나도 좋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