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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TITANE" 에 대한 정보를 처음 접했을 때, 판매 사이트에서는 아무 것도 찾을 수 없었다. 무슨 이런 영화가 다있나... 감독과 주연 배우들의 이름만 표기된 영화는 처음이었고, 별도로 검색 과정을 통해서 2021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라는 사실과 "퀴어, 드라마, 공포, SF, 스릴러, 고어" 라는 장르 구분을 해놓은 이상한(?) 영화였다. 황금종려상을 받았다는 말은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말인데... 장르의 구분이 모호하다. 조금 더 검색을 해보니 난해하다느니... 기괴하다느니.... 잔혹하다 등등... 좋지 않은 표현들이 난무했다. 흠.... 그렇다면 나는 도전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바로 주문~! 영화는 오일이 새고 있는 자동차의 하부 구조를 훑고 지나 자동차의 엔진음을 따라하는 여자 아이와 아버지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아버지는 딸아이의 자동차 흉내가 듣기 싫었는지 음악을 반복해서 키워갔고, 급기야 반항하는 아이와 함께 사고를 낸다. 결국 뇌 수술을 받고 "티타늄"을 머리에 이식한 딸은 퇴원하며 자동차에 키스를 하며 본격적인 내용이 시작된다. 영화를 시작하는 몇 분의 장면을 통해 감독이 이 영화로 말하려는 주제를 이해할 수 있을 듯 했다. 하지만 영화는 급격하게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 성장한 여자는 모터쇼 댄서로 일을 하며 자동차와 한 몸이 되는 듯 싶은 모습을 하고 있다. 주인공의 알렉시아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죽이기 시작하는데, 별 다른 이유가 없다. 자신을 괴롭히는 남자를 죽이는 듯 싶었지만, 애정행각을 나누던 여자도 죽이고, 그녀와 함께 있는 일행도 죽인다. 결국 수배자 목록에 오르고 얼굴이 알려지자 이제 남자 행세를 하기 위해 엽기적인 행각도 버린다. 여기까지만 보면 범죄 스릴러 장르라고 볼 수 있겠다만, 영화 중반에 갑자기 자동차와 정사 장면이 연출된다. 아주 노골적이고 감각적인데... 마치 자동차가 살아있는 생물과 같은 느낌이 든다. 불의 모습을 하고 있는 자동차와 물에 젖은 알렉시아... 불과 물 그리고 물질과 생명, 두 극단의 존재의 결합이다. 이 결합이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이미 영화 초반에 어린 알렉시아의 머리에 티타늄이 삽입되었고, 태어나 사람과의 교감보다 자동차와 교감을 먼저 시작했던 여자 아이는 아버지보다 차를 좋아하는 감정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라 해석된다. 무슨 말도 안되는 전개냐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내가 보는 관점에서는 감독의 은유적 표현이다. 태어나 부모에게 제대로 사랑을 받지 못했던 딸의 성장과정에 정서적 문제가 발생했고, 이런 배경을 초기 몇 분에 완벽하게 표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으로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던 알렉시아에게 다른 인간은 그저 호기심의 대상이었을 뿐... 자신의 호기심 탐구에 방해가 되는 요소는 모두 제거하고 만다. 그러다 새롭게 알게 된 또 다른 남자... 뱅상은 알렉시아를 자신이 잃어버렸던 어린 아들이 돌아온 것이라 믿고 집착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알렉시아는 처음으로 "아버지", 그리고 "사랑"을 알게 된다. 이런 경험은 알렉시아는 물론 뱅상도 바꾸어 놓게 되고, 영화는 크라이막스로 치닿게 된다. 뱅상의 직업은 남성성의 상징인 소방관... 그 사이에 자동차의 아이를 임신한 알렉시아는 남장을 한 여자로 여성성을 숨기고 묘한 모습의 남성을 연기한다. 사람을 살리는 과정에서 또 다른 사랑을 배우고, 자신의 배에서 크고 있는 또 다른 존재에 대한 인식을 시작하며 비로서 초보적 사랑을 이해하게 된다. 영화는 모든 것을 섞어 놓는다. 경계를 무너뜨린다. 남성과 여성의 경계,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 불과 물의 경계, 삶과 죽음의 경계까지... 사랑을 이해하며 미소를 찾고 비로서 생명을 알아가는 모습에서는 눈물겨운 감동이 따라온다. 점점 불러오는 배... 피가 아닌 오일을 방출하는 자궁... 살이 찣어지지만 그 안은 티타늄으로 들어나는 배... 다소 괴기스럽다 느껴질 수 있는 연출이지만, 고통스러울 수 있는 이런 쉽지 않은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의 모습이 경이롭다. 영화의 마지막은 죽음올 통해 생명을 증명하지만, 다시 이어지는 생명 역시 온전한 생명이라 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영화의 흐름상 마지막 장면은 극단적인 연출이 있을 것이라 예상하며 마음을 졸였지만, 오히려 아름다울 수 있는 장면으로 연출되어 다행이기도 했고, 더 많은 생각할 거리를 남겨 주는 결말이라 한동안 영화의 장면들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이 영화의 장르는 멜러물이다. 조금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전위 멜러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랑을 배우지 못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까지 변할 수 있는지 적나라한 표현들이 개인을 넘어 한 나라를 바꿀 수 있으리라는 느낌마저 지울 수 없었다. 영화를 통해 감독은 인간 사회의 과도한 개인주의로 인한 애정관계 부재를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아무리 개인을 존중한다고는 하나 가족이라면 남들과 나누는 애정의 평균 이상은 나눌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현재의 우리나라도 이전과 비교하면 심각한 수준이지만, 개인주의가 더 강한 나라들... 특히 프랑스라면 조금 더 심각한 상황이 아닐까 유추도 된다. 영화를 보고 나면 당황스러워할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조금 더 깊이 생각하고 봐야 할 영화다. 한 마디로 이 영화를 평가하자면... 처절하게 아름다운 영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