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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읽었던 책에 <화첩기행>이 있다. 1권은 1999년에 출간됐는데, 부제가 '남도 산청에 울려 퍼지는 예의 노래'이다.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예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남도의 이곳 저곳을 다니면서 예술작품을 설명해 주는 책이다. 당시만 해도 이런 류의 책이 흔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화첩기행>의 작가 '김병종'이 그림 산문집인 <칠집 김씨 사람을 그리다>를 펴냈다. 김병종은 이제는 손주들의 이야기도 들려 줄 수 있는 지긋한 나이가 됐다. 긴급조치, 최루탄, 언론탄압, 삼청교육대를 아는 세대이다. 그 시대에 서울대 미술대학을 다니고 서울대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자신만의 화풍으로 국내외에서 수차례 전시회를 했다. 그의 작품은 국내외 저명한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림 뿐만 아니라 문학에도 조예가 깊어서 필력도 대단하다.
그래서 김병종의 책은 작가의 그림과 함께 작가의 폭넓은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책제목이 <칠집 김씨 사람을 그리다>인데, '칠집 김씨'에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 신림동에 노동자들이 많이 가는 밥집이 있었다. 밥집에 있는 장부에 '미장 이씨', '목수 오씨' 이런 식으로 기재를 했는데, 그는 화가이니 '칠집 김씨'라고 썼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에서부터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문학과 미술로 지은 집 한 채를 꿈꾸는' (책 속의 표현) 작가는 책 속에 추억 속의 사람 이야기와 최근의 이야기 등을 들려 준다.
어릴 적에 살던 고향 이야기, 그 곳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 학창시절 배꽃이 피는 과수원의 추억과 사람이야기, 남규 삼촌 이야기, 연자 누나 이야기, 인도의 하산, 쿠바의 알도, 네팔의 나트구릉, 히말라야 소년 이야기....
그 중에서 언젠가 프랑스에서 독일로 가는 비행기 옆 좌석에 탄 5살 슈발레 이야기는 가슴이 먹먹해진다. 보호자 없이 독일로 입양을 가는 5살 꼬마, 오래 전의 이야기이니 꼬마도 이제는 어른이 되었을테지만 그의 삶이 어떠했을지 궁금해진다. '김병종'은 어릴적에 <지리부도>를 가지고 다녔는데, 그래서인지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 책 속에는 화가와 작품, 작가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소개된다. C.S루이스,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피카소 등....
그의 그림 연작 시리즈이기도 하고 책제목이기도 한 <바보 예수>가 탄생하게 된 이야기도 들려준다.
페이지와 페이지 사이를 메우는 김병종 화풍의 그림은 이 책을 더 빛나게 해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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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독특하다 못해 의문을 품게 한디. 이 책 "칠집 김씨 사람을 그리다" 신림동 순환도로변에 화실을 정한지 다섯 해가 지난 김병종 작가의 산문집으로 뒷골목 식당에서 그를 지칭하는 '찰집 김씨"라는 지극히 세속적이지만 친근함에 다가갈 수 있는 느낌으로의 매력을 품어내며 그의 미술판에 자리한 자연, 풍경, 물질 등 다른 것들을 뒤로하고 이제 온전히 '사람'에게 한정된, 사람이 주가된 그림을 그리게 된 나름의 이유와 서사를 담아 독자들과 호흡하려 하는 책이다. 산문, 수필, 에세이에 대한 명확한 개념을 짚고 넘어가자. '사랑일까' 를 읽어보면 자신이 그리워 했던 것은 부드러움, 그 대상이라 했다. **네이버 카페 책을좋아하는사람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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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종 저의 『칠집 김씨 사람을 그리다』 를 읽고 미술관에서나 아니면 길거리에서든지 전시되어 있는 그림을 지나치지 않고, 자세하게 가만히 들여다보면 많은 이야기들이 들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럴만한 이유가 분명이 들어있을 것이라고 나름 상상해볼 수 있지만 그저 극히 일부 짧은 단편에 머물다 흘러가버림이 대부분이다. 그렇게 잊혀져 가는 것이다. 그렇고 그런 것이 세월이라지만 아쉬울 때도 많이 있는 법이다. 바로 이러할 때 인상적인 그림에 그 그림에 관련하여 그림 속의 이야기를 그림 그린 화가가 직접 자신의 속내를 기억을 살려내 진솔하게 밝혀 독자들에게 들려준다면 그 그림은 자연스럽게 마음속으로 각인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특히나 그림을 통해 뭔가 근원의 그리움이나 원형의 모습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최고의 멋진 선물이 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예술 특히 그림을 좋아하는 것이다. 나도 한때는 어떤 사물을 있는 그대로를 그리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글씨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원래 배운 느낌과 이미지대로 표현하는 것이 정도로만 알고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최고 모습으로 해야 한다는 습관 비슷한 것 말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게 아니었다. 그림에서도, 글씨에서도 바로 각기 개성 같은 것을 발견하기 시작한 것이다. 박제된 것이 아닌 화가와 작가만의 독특한 개성미가 돋보이는 작품이 더 특별하게 눈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아하! 그래서 더 위대하게 보이고, 특출하게 우러러 받드는 예술가로 각인되기 시작하였다!” 그렇다면 누가 잘 그리고 못 그리고 가 아니라 얼마만큼 개성 있게 자신을 잘 표현하느냐에 현 사회 상황과 자신의 내면의 욕구를 잘 조절하는 선택의 중요성이 대두된다 할 것이다. 자신의 인생에서 아름다운 기억들을 많이 만들어 그것들을 작품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최고 인생의 이정표로 장식할 수 있지 않겠는가? 아름다운 우정, 아름다운 여행, 아름다운 식탁, 아름다운 예술 등등등 얼마든지 우리 생애에 아름다움으로 멋지게 장식할 수가 있다. 그 아름다움의 그늘 아래에서 육신의 잠을 누일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면 최고의 모습이 되리라 확신한다. 바로 칠집 김씨 화가 김병종이 그리는 그림 속에는 그리움이 가득 들어 있고, 그림이 되는 이야기들이 다정하게 전개된다. 화가는 1953년에 전북 남원에서 태어나 서울대 미대와 동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서울, 파리, 시카고, 브뤼셀, 도쿄, 바젤 등지에서 수십 차례 개인전을 가졌으며, 국제 아트페어와 광주 비엔날레, 베이징 비엔날레, 인디아 트리엔날레 등에 참여해왔다.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미술기자상, 선미술상, 대한민국 기독교미술상, 안견미술문화대상 등을 수상했고, 대한민국 문화훈장을 받았다. 대영박물관과 온타리오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등 국내외 저명 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으며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에도 초기작 〈바보 예수〉부터 근작인 〈풍죽〉 〈송화분분〉까지 다수의 작품이 상설 전시되고 있다. 중국 시진핑 주석의 국빈 방문 때는 그의 작품이 증정되기도 했을 정도로 유명 화가다. 글 쓰는 화가 김병종은 대학 시절 동아일보,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함과 동시에 전국대학미전에서도 대통령상을 받는 등 일찍부터 글과 그림의 경계를 허무는 전 방위적 예술가의 행보를 보여 왔다. 동양철학 연구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중국회화연구』를 통해 한국출판문화상을 받기도 했다. 서울대 미대 학장, 서울대 미술관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 가천대 석좌교수로 있다. 대표작 『화첩기행』(전5권) 외에 『바보 예수』 『생명의 노래』 『오늘 밤, 나는 당신 안에 머물다』 『자스민, 어디로 가니?』 『나무 집 예찬』 『감히, 아름다움』(공저) 등을 썼으니, 저자에게 그림은 밥, 글은 반찬으로 이 두 가지가 거의 육화(肉化)되어 이제는 둘이 아니라 하나로 느껴질 정도이다. 일란성쌍생아처럼 그림 그리고 글 쓰는 행위가 제 안에서 하나로 통합되는 것같을 정도로 쉽게 이해되고 익혀진다. 화가의 그림도 게걸스럽지만 글들도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한밤중에 화실로 2천원 자장면 한 그릇을 시켜 배달 온 청년에게 미안해 하니까, 마침 화실 벽에 걸려 있는 “닭 두 마리가 서로 노려보고 있는 먹그림”이 있었다. 어느 박물관에 가있는 연작 중 하나였었는데 그 청년이 영 미안하면 저 그림이나 주세요!”한 것이다. 그렇게 그냥 말로 넘어 갔는데 며칠 후 한 낮에 배달 왔을 때 화가가 후배랑 있었는데 다시 이야기 하는 것이다. 그림 언제 주실 거냐면서 후배가 깜짝 놀라면서 저 그림이 얼마짜리인데 그냥 달라고 하냐니까그? 그냥 준다고 했다면서 막무가내로 배달원이 이야기한다. “뻥 까지 마요. 주기 싫으니까...”, “그런 돈 주고 사는 사람이 있어요?”라고 물었다. “다들 말이예요. 웃기는 짬뽕들이야.” “생각해봐요. 저 시커먼 닭. 저게 진짜 닭이라 해도 몇 푼 가겠어요? 종이에 찍찍 그린 걸 가지고.... 가만 저거 오골계에요?” “관둬요. 주신다고 해도 별로예요. 씨팔. 되게 덥네.” 얼마나 재미있는 표현인가? 막 웃음이 나왔다. 실컷 웃었다. 그린 그림 검은 닭이 큰소리로 웃는 모습이 그렇게 대장부 즉, 자장면 배달부 청년 모습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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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집김씨사람을그리다 #김병종그림산문집 #너와숲 제목의 칠집이라는 단어가 궁금해서 책읽기전에 네이버검색해보고 그랬는대도 짐작이 안갔다. 칠십? 칠하다라는 뜻인가? 혼자만의 온갖추측을 하는 가운데 그림산문집은 어떤 느낌으로 읽혀질까 궁금했다. 작가는 서울대 미대에서 가르쳤고 현재는 서울대 미대 명예교수, 가천대 석좌교수이다. 글과 그림 두영역에서 활발히 활동중에 있으며 국내외에서 삼십여회 개인전을 가졌으며,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에는 그의 사십년 회화작품이 전시되어있다. 목차의 글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시간사이에 사람이 있다, 풍경사이에 사람이 있다, 빛과 어둠사이에 사람이 있다. 이렇게 세챕터로 나뉘어 있다. 칠집김씨라는 닉네임을 얻게된 에피소드에서 그때서야 무릎탁. 평생을 칠하는 자로 살고 싶어하는 작가의 바램이 있는 이름이구나 싶었다. 붓으로 그린 그림 그리움을 마신다는 그림은 몇번 지우고 다시 그린 그림의 느낌보다는 몇번의 붓터치로 휙휙 그리는 것 같으나 사람들의 표정이나 행동들이 생동감이 보이며 마시는 술잔을 든 사람마다의 표정이 어딘가 쓸쓸해보였다. 한 유명한 의사의 인생의 모토. 참 따라하고 싶은 사람이다.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도 조크를 잃지않는 여유 그리고 순발력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않는 여유로움. 나는 얼마나 숨가쁘게 살아가며 감사를 모르고 바쁘다고 힘들다는 탓만 하며 살아가고 있나. 바쁜중에 정말 바쁘더라도 여유를 가지고 살아가야겠다. 그간 가정사에 여러일이 생겨서 온갖짜증과 화가 가득가득이어서 얼마나 마음의 안정과 여유가 필요했는지 모른다. 다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며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꼭 필요하다. 좋은 것은 받아들이고 나쁜것은 취하지 않고 학습하지 말아야겠다는 것이다. 어떤책은 말을 걸어온며 생각을 계속 만들어준다. 삶의 궁금한 부분을 긁어준다. CS루이스의 문장이 작가에게도 의문을 가진 것들을 명료하게 정리해준다. 그치 맞지. 하나님은 생명을 만드실때나 성을 만드실때에도 우리와 상의하지 않고 그분의 뜻대로 창조하셨다. P.317 나같이 어기기 잘하는 인간이 아니라 견고한 믿음의 바탕위에 서서 바라보기에도 눈부신 분을 여럿 봐왔다. 주님과 아주 가까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분들이었다. 그러나 그분들 중에 정말 마음을 나누고 싶은 푸근한 분은 보기 어려웠다. 범접하지 못할 신앙의 권위를 가졌거나, 엄격함으로 무장되어 있기 일쑤이거나, 의외로 쉽게 남의 가슴에 생채기를 내고도 무심하게 지나가버리는 경우까지 있었다. 나의 신앙이 견고하고 단단하다고 남의 신앙을 판단하고 재단하는 경우를 여럿봐왔다. 신앙의 권위. 겸손하지 않고 가르치려드며 훈계를 기본 장착으로 되어있는 옆으로 가기도 싫어지는 본인이 생각하는 신앙대로의 삶이 아니면 남의 신앙을 부정하고 고치려한다. 모든것이 내 뜻대로 되지 않을때에 더욱 손모으며 무릎을 꿇는다. 견고한 믿음의 마음을 주시고 지혜를 달라고 구한다. 나도 상대를 판단하고 재단하는 사람이 되지 않길 바란다. 그림도 글도 너무 좋았고, 같은 기독교인이라 마지막 목차를 읽으며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그림산문집 #신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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쓱쓱 밀어내는 무심한 손가락 심지어 내민 기차표 위로도, 재빠르게 지나가는 부끄러운 흉터 아아, 어디에 있어도 결국엔 갇혀 버리고 만다. 불구의. 그러나 힘센 너의 그 팔뚝 안으로.(-31-)
상학적인 시간의 제각기 다른 모서리를 찾아 돌아서기 시작하는 시간, 문득 수만 개 난타하며, 환청되어 드리는 저녁 종소리.
번쩍 고개를 쳐들었을 때, 아아 누가 걸어두었는가. 저 춥고 시린 허공에 번지는 따스한 불빛 하나, <만도>(-55-)
신림동 순환도로변에 화실을 정한 지 벌써 다섯 해가 되었다. 이 다섯 해 동안 밥을 대어 먹고 있는 뒷골목 식당에서 나는 '칠집 김씨' 로 통한다. 주로 공사판 인부들인데 식사도 푸짐하고 사람들도 재미있어 나는 만족하고 있다. (-56-)
4학년을 마치고 읍으로 전학온 나는 가끔씩 옛 급우들을 만나 선생님의 안부를 무심한 체, 그러나 가슴 졸이며 묻곤 했다. 중학생이 되던 해.나는 선생님과 꺽다리 아저씨가 결혼했다는 소식을 알게 됐다. 그리고 키득거리며 전해주는 옛 악동들의 입을 통해 선생님의 배가 남산만 해져서 계단을 오르는 데도 식식댄다는 처절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의 깊은 배신감과 낙담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80-)
나의 고유한 오리진. 나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키는 중재는 내가 밟고 돌아온 따의 장소성뿐 아니라 ,살랑거리는 수만 개의 댓잎 소리, 시각을 청각화시키도록 포위해 오는 그 댓잎들의 소용돌이며, 아직도 봄이면 분분히 날리는 송홧가루 같은 것들이다.그중에 과거를 현재로 불러내는 연자 누나의 목소리도 있음은 물론이다. (-111-)
어쨌거나 그때 느낀 착잡함이나 당혹감을 나는 메구로의 일본민에관에 갈때마다 똑같이 느끼곤 한다. 조선시대 미술품은 물론 에도 시대 미술품 등과 전시실을 달리하고 있지만, 과연 관람객의 몇 프로가 조선이 오늘날의 코리아라고 인식할 수 있을까 회의하게 된다. 더불어 수많은 한국의 미술학자나 평론가들이 왜 한 번도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는지 아쉽기만 하다. (-198-)
"용기가 없다면 단 한 번의 이착륙도 해낼 수 없다." 생텍쥐페리의 야간비행 서문에 소설가 앙드레지드가 썼다는 문장이다.그런 면에서 생텍쥐페리는 노후한 공군 수송기와 정찰기로 지중해를 왕래한 용기 있는 비행사였던 셈이다. (-210-)
그 김병기 선생님은 이제 106세가 되셨다. 그만큼 사신 분을 만나기고 어려운데 늘 작업을 하고 계신다. 내년에도 개인전이 잡혀 있다고 하셨다. 내가 정말 대단하다고 했더니 "병종 씨도 그럴 거예요. 우린 친한 데다가 이름도 비슷하잖아."하신다. 부디 그 덕담의 말씀이 내게도 이루어지기를. 그리고 그 덕담을 하신 분과 얼마 뒤 선생님의 부음을 듣게 되었다. 아버지가 김 선생님 얘기를 참 많이 하셨어요. 라며. 영정 속 선생님이 자애롭게 미소 짓고 계셨다. (-217-)
그는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 <천지창조>를 프레스코 기법으로 사 년 만에 완성했다. 몸도 불편한 노인이 높은 비계를 오르내리며 얼굴로 뚝뚝 떨어지는 물감과 땀을 견뎌내야 했다. 작품을 완성했을 때, 그의 나이 여든 일곱이었다.마지막으로 비계를 내려오던 날, 그는 '안코라 임파로 Ancora Imparo(나는 아직 배우고 있다)"라고 썼단다. 혹은 그렇게 중얼거렸는지도. (-261-)
그의 책이 지구인들에게 그토록 많이 읽힌다는 것은 한편 슬프고 한편 기쁜 일이다.이 행성에는 아직 허리 휘도록 노동해도 가족끼리의 저녁 한 끼가 자유롭지 못한 삶이 있다는 이야기이며, 대성통곡해도 풀리지 않을 응어리를 가진 삶이 너려 있고,허깨비 같은 죄와 싸우느라 기진맥진한 삶이 있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슬픈 일이다.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땅에 굳건히 두 발을 딛고 서서 눈 들어 하늘을 바라보려 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상처 받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대해, 세상에 대해,죽음에 대해,신에 대해 묻고 싶어 하다는 점에서 희망적이다. 질문하는 것이야말로 인간됨의 특권일 것이기 때문이다. (-288-)
어느덧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 자신의 고향 남원에,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에 있는 <바보,예수>,<푸죽> 등 동양의 미학,조선의 미학을 나름대로 회복하려 했던 김병종 서울대학교 미대 명예교수는 어릴 적 문학소년의 꿈을 키워 나갔다. 위의 삶은 어떻게 바뀔 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지만, 자신의 태어난 그곳에서의 정서와 가치관은 일평생에 걸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풍각쟁이,환쟁이, 칠집 김씨로 불리는 김병종 가천대 석좌교수는 그가 남겨놓은 그림 하나하나에서 엿보듯이 미술적으로 볼 때, 철학적이면서, 소박하다. 우리 삶과 매우 깊이 침전하고 있는 예술적 가치를 다시 수면 위로 끝없이 올림으로서,동양의 미학을 새롭게 정립하고 있으며, 그는 성균관대학교 동양철학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그가 추구하는 미학은 서양의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미켈란젤로가 15세기에 남긴 불후의 명작 천지창조처럼, 자신의 삶의 영속성을 꿈꾸고 있었다. 짧은 인생과 비견하여,예술은 영원하다는 진리는 언제나 유효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고향 남원에 대한 기억들, 언제나 시선은 순백 생명의 색을 재현하려고 노력하였으며, 미술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질감과 색감을 보존하려고 애써왔다. 그의 미학은 문학적 교양에서 시작되었다.C.S 루이스가 남긴 『순전한 기독교 』, 셍텍지페리가 남겨놓은 『어린 왕자』, 『야간 비행 』처럼,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이해하고, 습득할 수 있으며, 함께 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도전과 용기르 미술에 채워나간다. 삶이란 우리 곳곳에 숨어 있으며, 모래위의 천막에서, 예쑬적 영감을 얻어낼 줄 아는 존재여야 했다.그래서, 끊임없이 예술적 영감을 얻기를 원하였고, 평생에 걸쳐서 미적인 감각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생명과 자연에서 얻는 배움에 집착하게 된다. 유년 시절 말집 소녀의 추억을 미적인 향수로 재현할 수 있었고, 평생 바다를 볼 수 없었던 그곳에 바다를 그릴 수 있었다. 자신이있어야 할 곳을 정확히 알고 있었고,그것을 삶의 지향점으로 삼았다. 있는 것 위에 있는 것을 덧칠하지 않았으며,없는 것,무심하기 그지 않는 것에 대한 무형의 가치를 발견하려고 애를 쓰게 된다.바로 그러한 추억들이 모여서 예술적 가치, 미학의 원천이 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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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집 난 처음에 옻칠, 페인트칠의 칠 인줄 알았다. 그림 그리는 화가를 칠집이라고 하는 거였구나. 그 시대에 이렇게 부르며 친근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였구나. 책을 펼치고 읽어가며 깨달았다. 칠집 김씨라는 넉넉하고 웬지 만만한? 이름과 좀 동 떨어지게 작가의 그림은 사실 굉장히 세련되고 현대적이다 싶었다. 페이지 가득 채워진 거친 듯, 대충인 듯한 붓놀림으로 그려낸 그림들을 보고 또 보는 재미가 있다. 물론 그 그림들과는 연결되는 듯 동 떨어진 듯 한 글들도 매력을 더한다. 표지와 책이랑은 완전 따로 노는 듯한 그림과 또 반대로 그들과 너무 잘 어울리는 듯한 글들 반전과 평안?을 함께 주는 매력이 있는 책이다. 내가 절대 느끼지 못할 법한 세계에 사는 작가의 세상을 엿 보는 듯 해서 신기하고 부럽고 약간은 의아하면서도 이렇게 나와 다르게 느끼고 아는 사람도 사람들 속에서 사는 부분은 이렇게 또 비슷 해 지는구나 싶었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모른다는 뻔한 말을 이 책을 보면서 내가 이렇게 처절하게 느낄 줄이야. 내가 말로만 들었던 시대를 살아온 작가와 그 이웃들의 이야기가 따뜻하면서도 세련되게 잘 어우러져 있다. 김병종 작가는 그림으로만 만났었는데 이번에 산문집으로 보니 그의 글도 꽤 매력이 있다. 다른 작품들도 좀 찾아봐야겠다. 이 겨울 페이지 가득찬 그림들과 따뜻한 사람 이야기 그리운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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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human being을 가리켜 왜 인간(人間), 하필 사이 간(間) 자가 들어간 그 명칭을 쓰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분명 이유가 있긴 하겠습니다. 김병종 교수님의 이 그림 산문집도 세 파트로 이뤄졌는데 각각의 이름은 "시간 사이에 사람이 있다", "풍경 사이에 사람이 있다", "빛과 어둠 사이에 사람이 있다"네요. 사람은 확실히, 혼자 서기가 힘들고 무엇 사이에 있어야만 하나 봅니다. 같은 사람 사이이건 어떤 맥락이나 의미 사이이건 간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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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집 김씨 사람을 그리다 김병종 그림 산문집 김병종 (지은이) 너와숲 2022-11-23 80년에 대학을 다니셨다고 나옵니다. 그럼 40년이 더 지났으니 60대이신가 하며 읽는데 너무너무 옛날분입니다. 이미 손주도 있고, 대학시절 안기부, 삼청교육대도 나온다. 또 본문에 15세에 전시회를 하고 50년이 넘었다고 하니 65세입니다. 만주를 휩쓸고 다니는 남규삼춘이 나오는데 그럼 일제시대를 경험한 90대이신가? 그러다가 22년에 55년만에 전화연락이 되었는데 그때 열다섯이라고 하니 70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내용보다 저자의 나이가 궁금해서 계속 연도만 찾아봤습니다. 네이버 인물정보에 태어난 해의 기록이 없어 얼추 짐작한 추정나이입니다. 저자 김병종 선생은 원고를 육필로 쓰시나봅니다. 표지에 친필 원고가 보입니다. 여지껏 30회의 개인전을 가졌고 책도 그만큼 썼다고 합니다. 남원에 시립김병종미술관도 있습니다. 다 이루셨네요. 그림과 글이 같이 있는 가벼운 에세이를 생각했는데 뭔가 치열한 인생의 쓴맛을 느끼게 하는 묵직한 우리옛수필같습니다. 이런 느낌을 어딘선가 경험했는데? 계속 읽어나가다가 생각났습니다. 소설가 최인호 선생의 가족이었습니다. 슬픈 사연도 들어있고, 가난한 시절도 보이고, 안타까운 마음에 아련한 추억도 있는 오만 가지 감정에 펼쳐지다가 한스푼 자기자랑도 곁들어지면서 현실로 돌아와 선명해지는 느낌입니다. 기억 속의 그림이란 대충 이렇다. 고색창연한 역사 마당을 가로지르면 복지다방이 있고, 골목으로 들어가면 거기서부터 일본인 시야 씨의 대저택 석조 담이 시작되는데, 어린 시절 그 집 대문은 경복궁 문만큼이나 크게 느껴졌다. 시야 씨는 일본인이지만 덕망이 높은 지식인이라고 했는데, 특이하게도 해방이 되고서도 한동안 그 집에 머물렀다고 했다. 그만큼 그 집을 아꼈던 것이리라. 아무도 야밤에 그 집에 돌멩이를 던진다거나 하는 일이 없었을 뿐더러, 해방 후에도 한동안 평소처럼 지내다가 동네 사람들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했다. 그 집에 살던 연자 누나네가 떠나고 난 지 얼마 후 시야 고택이 새로 들어선 공수여단의 여단장 숙소가 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102p 역시 화가라서 추억속의 동네로 독자를 이끌고 가는 느낌이 생생하죠? 저역시 이 대목을 읽다가 골목을 돌아서면 (집에서!) 복지다방이 나올 것만 같았습니다. 그림은 우리를 낯설은 세계로 이끌어줘서 좋고 글도 그림처럼 선명하게 보여주어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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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보면서 김병종이란 저자의 이름을 처음 접했습니다. 그런데 아주 유명한 화가시더라구요. 책에도 사진으로 여러작품이 있는데 남원에 가면 시립김병종미술관도 있습니다. 검색해서 찾아보니 남원에 대한 사진도 있고, 북카페도 있다고하니 혹시 근처에 관광하실 분은 가보시면 좋을꺼 같습니다.
어쩌면 한사람에 대한 소개일수도 있고 어쩌면 그 사람에 대한 모든 걸 집약해 놓은 것일수도 있는 그런 책입니다.
칠집 김씨는 김병종 작가님의 별칭이라고 해야하나 시골에 가면 저기는 무슨집이고 저기는 무슨집이고 직업에 따라서 부르는데 저자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이니 칠집 김씨라고 불리는 거죠.
안의 내용들은 뭔가 일기같은 내용으로 오래된 추억을 끄집어 내는 것도 있고 최근의 이야기들을 풀어내는 것도 있습니다.
최근에 읽은 자기계발서 중에 내가 가진 것을 끄집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책이 있었습니다. 평범한 일상에서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 그런 평범함을 끄집어 내는게 중요하다는 거죠.
이 책은 그런 화가로서 할아버지로서 김씨로서의 작가가 자신의 일상에서 끄집어낸 글들과 그리고 그림으로 엮은 책 입니다.
*** 서평이벤트로 받은 책을 읽고 느낌대로 적은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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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도 가물거릴 만큼 어린 시절을 보냈던 마을에 포수 아저씨가 살았습니다.
[칠집 김씨 사람을 그리다]를 읽으며 왠지 그 시절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기실 따지고 보면 '칠집 김씨'야말로 제대로 된 나의 직함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칠집 김씨가 그린 작품은 국내외 저명한 미술관에 소장되기도 하고
또 그림을 그리는 화가라 그런지 풍경이나 사람을 바라보는 눈이 남다르다는 걸 느낍니다.
C. S. 루이스의 문장은 우아하고 웅혼하다. 섬세하고 아름답다.
총 3부로 이뤄진 에세이는 모두 다 사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때 포수 아저씨 있었잖아?" 라니 그걸 어떻게 기억하냐고 어머니가 놀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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