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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다를 닮아서- 조금 일찍 퇴근해 쌀을 씻어 밥을 안쳤다. '쿠쿠가 맛있는 취사를 시작합니다'란 말을 들으며 반수연 작가의 '나는 바다를 닮아서' 산문집을 꺼내 식탁에 올렸다. 어제 낮부터 저녁까지 한번에 읽어버린 책이다. 작가의 이민 생활과 순탄치 않았던 어린 시절 기억을 얘기하고 있다. 책을 읽으며 일상에서 글줄기를 찾아내는 반수연 작가의 탁월한 관찰력에도 감탄했지만 에세이 전체를 받치고 있는 탄탄한 문장의 힘, 필력에도 많이 놀랐다. 먼저 문장이 짧으며 경쾌하고 단단하다. 작가의 탁월한 필력은 사소한 사건에도 독자를 킥킥거리게 만들거나 짠한 감정의 숲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톡톡 튀는 문장이 끌고가는 대로 끌려가다 보면(아니 끌려갈 수밖에 없는) 작가의 생각의 속도에 독자는 함께 공명하게 된다. 공명의 리듬을 타는 순간 웃고, 울고, 감탄하다 진한 아쉬움과 함께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내게 있어 공명의 순간은 불과 몇 페이지 읽지 않아서였다. 캐나다에서 고사리를 채취하는 작가를 따라가다 캐나다 경찰을 경계했고, 에잇! 그깟 벌금 내고 말지 호연지기를 실현했고, 결국엔 일체유심조 '거기 고사리가 있으니 나는 캘 뿐'까지 가게 됐다. 소제목 또한 능청스럽게 '번뇌의 숲'이다. 제목에 기가 눌려 약간 무겁게 접근했던 나의 순진함과 작가의 능청이 만나 그렇게 '나는 바다를 닮아서'와 공명하기 시작했다. 작가는 98년 아이를 데리고 남편과 캐나다로 이민을 간다.어디 이민이 쉬운 결정인가? 낯선 나라에서 한 가정이 뿌리 내린다는 건, 12월 추운 어느 날 장미 삽목을 하고 지켜보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해가 없어도 안 되고, 온도가 떨어져도 안 되고 습도도 맞아야 한다. 말도 통하지 않는데 일은 해야 하고, 돈은 없는데 집은 구해야 하고, 무엇 하나 쉽지 않은 이민 생활을 작가는 담담하게가 아닌 두근거리게 얘기한다. 독자가 꼭 같은 환경을 맞딱뜨린 것처럼. '나는 바다를 닮아서'를 읽으며 자연스럽게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떠올렸다. 박완서 선생님의 글과 반수연 작가의 글이 주는 느낌이 묘하게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년의 기억을 바탕에 둔 전개가 겹쳐서일 수도 있고 독자를 편하게 만드는 문장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문장은 분명 다른 부분이 있었다. 반수연 작가의 문장은 단단하고 경쾌한 느낌이 있다. 왜 문장이 단단하다는 느낌을 받았을까? 단단하다는 것은 뭐고, 단단함이 어디서 왔을까? 궁금해졌다. 잠시 생각하며 글을 읽다 중간중간에 나오는 작가의 성장 과정을 보며 이내 단단함의 근원을 찾을 수 있었다. 시장통에서 가장 만만한 선술집 과부 어머니에게 행패를 부리는 취객을 향해 '고마 캭 죽이삔다'라고 강단있게 소리쳤던 어린 소녀, 언니 대신 전봇대 두꺼비집에 올라가 '얼굴에 말고 후레쉬 똑바로 비치라' 소리치며 퓨즈를 갈아 동네를 밝혔던 어린 작가의 강단이 문장을 단단해 보이게 만들었을 것이다. 어쩌면 작가의 삶도 함께 단단해졌을 것이다. 단단함이 주는 효과는 크다. 슬픔과 고단함조차도 단단한 언어는 경쾌하게 넘어선다.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들지도 않고 이야기의 서사 또한 휘~ 다른 무대로 훌쩍 옮겨버린다. 어머니의 장례에서 큰언니의 기독교식 추모와 작은언니의 불교식 장례가 충돌할 때 '요즘은 하이브리드가 대세인가'란 단 한 문장으로 작가는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이야기 서사 또한 다른 삶을 살아왔을 언니, 오빠의 이별의 방식을 존중하고 더 나가 그들의 삶을 존중하는 흐름으로 이동한다. 아무도 웃지 않았다고 작가는 말했지만 단단한 이 한마디 이후 옮겨간 이야기의 서사는 언니, 오빠 뿐만 아니라 독자까지 따뜻하게 만들었다. 작가가 살아 온 힘이고 버텨 낸 힘이다. 삽목했던 장미가 뿌리를 내리고 몇 해 지나면 꽃을 피운다. 꽃은 해마다 핀다. 지난했던 작가의 가정도 꽃을 피웠다. 꽃은 엄마, 아빠보다 크고 화려해 가끔 낯설기도 하지만 낯선 땅에 뿌리를 깊게 박은 장미를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나는 바다를 닮아서'를 반쯤 읽다가 작가를 검색했고, 2/3 정도 읽었을 때 반수연 작가가 먼저 출간했다는 '통영'을 주문했다. 지금도 반수연 작가의 글과 공명하고 있으니 내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결혼 초기,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지날 때 '조금만 지나면 좋아질 거야, 쫌만 참아 줘'란 말을 아내에게 자주했다. 그럴 때마다 말이란 '더 이상 곪지 말라고 툭 하고 던지는 최초의 항생제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바다를 닮아서' 이야기 속에는 고단하고 힘든 이민 가족의 일상을 곪지 않게 지켜냈던 탄탄한 언어의 항생제가 가득 들어있다. 반수연 작가의 문장을 통해 고단한 일상을 지켰냈던 역설의 위트를 꼭! 경험해 보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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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쓸 때는 인물이라는 가면 뒤에 숨는 것이 쉽지 않았다. 어떤 가면을 쓰든 수시로 가면을 벗고 알몸의 내가 불쑥 드러나 곤혹스러웠다. 가면을 벗어던진 내가 쓰는 결론이란 건 언제나 뻔했다. 살아내는 일은 아프고 세상은 야속하지만 그래도 살 만하다. 개가 사람을 무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이 개를 무는 낯선 이야기를 쓰라는 말도 더러 들었다. 그래도 나는 개가 사람을 무는 이야기밖에 쓸 수 없었다. 유난히 정직해서가 아니라 모르는 이야기를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p.7)
새롭고 특이한 이야기를 읽거나 보는 일에 환장하였던 시절이 있었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어느 지점에선가, 하늘 아래 새로운 이야기는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사람이 개를 무는 일’도 그다지 낯설지 않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낯섦을 향하여 너도나도 짐승같은 이빨을 들이밀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이제 아무도 ‘개가 사람을 무는 이야기’ 따위는 쓰려 하지 않으니, 이 산문집 《나는 바다를 닮아서》을 통해 흔치 않은 경험을 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사는 밴쿠버는 레인쿠버라고 불릴 만큼 가을부터 겨울까지 비가 많이 내린다. 가끔 지루하게 내리는 겨울비를 불평하면 그래서 이곳의 나무가 좋지 않냐고 사람들은 말한다. 이 겨울비가 여름의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줄 것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맞는 말이다. 식물을 키우다보면 그것을 뿌리 내리게 하는 것이 바람이고 자라게 하는 것이 비라는 걸 알게 된다...” (p.15)
흔들리는 나뭇잎과 삼투압에 대해 까페 여름의 형과 대화한 적이 있다. 바람과 비의 이야기를 읽고 그때가 떠올랐다. 산문집을 읽으면서 잊고 지내던 순간들이 여러 토막 떠올랐다. 솟구치는 것이 아니라 수면 위로 빼꼼 눈만 때로는 코까지 그러나 그 실체를 온통 드러낼 생각은 없는 과거의 순간들에 해당하는 장면들이었다. 책을 덮고 나면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것이지만 이게 어딘가, 감지덕지 하였다.
“훌륭하거나 크게 망한 아버지들이 그러하듯, 내 아버지도 통이 큰 양반이셨다. 붕어빵을 팔다 곧 붕어빵 틀을 팔아 졸지에 떼돈을 벌기도 했고, 투전판에서 하룻밤에 집 한 채를 내다버리고 술에 취한 채 집으로 돌아와 잠든 자식을 쓰다듬다가 다음날이면 다시 보따리장사부터 시작하던 종잡을 수 없는 엉터리였다. 그래도 막내딸에 대한 사랑만은 진심이었다. 나는 그것을 알았다. 어렸지만 그런 것은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 사랑을 영원히 잃었다는 것도 알았던 것 같다.” (pp.80~81)
아홉 살에 아버지를 잃은 저자의 아홉 살을 읽으면서, 아홉 살에 아버지를 잃은 나의 아버지를 떠올렸다. 오남매의 막내였던 아버지는 아버지를 잃은 그때 어떠한 감정의 시간을 보냈을까. 이제 정상적인 대화를 나눌 수 없을 만큼 정신이 황폐해진 아버지에게 그때를 물을 수는 없다. 아버지에게 그때를 물을 수 없게 되기 전까지 나는 아버지에게 그때를 물을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나는 이제 영원히 아버지에게 문외한일 것이다.
『“엄마, 나는 내가 뭘 못하는 게 그리 힘들지 않아. 그래서 못해도 재밌어. 그런데 못하는 걸 잘 못 견디는 친구들은 나보다 훨씬 잘해도 시도하고 싶어하지 않더라.”
실토하자면 아직 셀프 주유소에서 주유를 해본 적이 없다. 나는 일종의 셀프 주유 포비아인데 왜 그렇게 된 것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셀프 주유를 하다가 실패하여 일하시는 분을 호출하게 되는 순간을 떠올리면 그렇게 공포스러울 수가 없다. 반면 어제 철인3종 입문반에 등록했다. 즐비한 띠동갑들과 함께 뒤쳐질 게 분명한 세 가지 운동을 할 생각을 하면 잔뜩 긴장이 되는데, 이 긴장감이 즐겁다. 나는 저자가 낳고 키운 아이의 마인드에 가까워지고 싶다.
“수술을 모두 마치고 겨우 부축을 받아 걷게 되었을 때 아이는 퇴원했다. 의사의 마지막 회진을 기다리는 사이, 아이는 병실에 있는 화이트보드에 이렇게 적었다... 산다는 것은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리는 빗속에서도 춤추는 일이다.” (p.117)
산문집에는 저자의 가족 대부분이 등장한다. 저자를 비롯해 저자의 아버지, 엄마, 남편, 딸과 아들이 모두 주인공이다. 특히나 딸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나의 아이가 아닌데도 기특한 마음이 든다. 응원하고 싶다, 가 아니라 응원받고 말았다, 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아버지에 이어 엄마의 허약 시기 또한 시작되어 버린, 두 분의 병구완에 꽤 많은 시간을 투여해야 하는 내게 필요한 말이 위의 발췌문 안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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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삶이 담긴 글을 처음 읽은 것 같다. 해외 어딜 가도 여행자였던 내가 상상해보지 않은 生의 부분. 터전같지 않던 곳을 집으로 삼고, 영원히 고국의 집같은 집이 되지 않는 동네. 그런 삶에서 느끼는 감정과 생각을 부담스럽지 않게 접했다. 내용을 크게 나누자면 세 가지인 것 같다. 이민자로서 밴쿠버와 한국에서 느끼는 것, 유년기에 대해 떠올리는 것, 중년의 부모로서 느끼는 것. 세 가지 모두 작가의 삶이 녹아들어있는데, 나는 닿아있는 것이 없으면서도 책에 있는 내용만큼은 이해한 것처럼 느껴지는 걸 보니 좋은 산문을 읽은 것 같다. 젊은 작가가 많이 나오는 시대인데도 나는 나보다 어른인 작가의 책 읽기를 좋아한다. 나는 충만한 감정에서 내면의 충족이 이루어지질 않고 지식과 교훈을 얻음으로써 채워졌다고 느껴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다 읽고는, 작가와 그의 가족을 따뜻하게 응원하고 싶은 마음에 나도 채워진 기분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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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책 #하리뷰 ![]() ??슬픈 세상에서 아는 이야기를 쓰는 사람 ?? 간절히 닿길 바랐지만 어쩔 수 없이 멀어졌던, 파도처럼 떠밀려 온 시절의 내음 #나는바다를닮아서 #반수연 #고유서가 ![]() 통영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랐고 캐나다 밴쿠버로 이주한 반수연 작가의 산문집이다. 통영에서도 밴쿠버에서도 바다와 함께였던 작가에 나는 바다를 닮아서 라는 제목은 어쩌면 가장 잘 어울리는 제목인지도 모르겠다. 1부는 고향을 떠나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밴쿠버에 정착하는 이야기이다. 2부는 작가의 유년 시절의 이야기이다. 3부는 고향에서도 타국에서도 이방인이었기에 외로웠던 작가의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의 이야기이다. 4부는 끊임없이 파도가 치는 삶 속에서 어디론가 떠나며 새로운 힘을 얻는 이야기이다. 화려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이런 담담하면서 정갈한 문체를 좋아한다. 고요하지만 단단한 마음이 느껴지는 문장들이 좋았다. 인생은 파도처럼 두려움과 걱정, 불안이 밀려오기도 하지만 행복과 기쁨, 희망이 밀려오기도 한다. '산다는 것은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리는 빗속에서도 춤추는 일이다. P. 117' 이라는 작가의 문장이 크케 와닿았다. 나에게만 일어나는 걱정과 불안 속에서 웅크리고 숨기만 했던 나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쓰렸다. 빗속에서 춤을 출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내며 소소하고 다정한 것을 차곡차곡 모아 단단해지고 싶어졌다. 그래서 그렇게도 떠나고 걷고 돌아오는 시간을 보냈나보다. 멀리 떠날 것. 그리고 돌아올 것. 힘껏 돌아올 것. 그것은 오래되고 익숙한 리셋의 방식이었다. P. 163 주저앉아 머물러 있는 시간이 보내고 있더라도 다시 일어나 멀리 떠나자. 그리고 돌아오자. 힘껏 돌아오자. #책속한문장 #밑줄긋기 선의를 선의로 받아들이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쩜 논리가 아니라 용기일지도 몰라. 선의는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서 나오는 것이니 가슴으로 느끼는 게 맞을지도 몰라.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p.31 그 시절 나는, 우리는, 미안하지도 않으면서 너무 자주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게 쉬웠고 간단했으니까. 자존심이나 자존감마저 종종 사치로 여겨졌으니까. p.42 두려움에 짓눌리지 않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내는 것이 인생이라는 걸 아이는 어떻게 알았을까. 소소하고 다정한 것들이 모여 바위를 들 수 있는 힘이 된다는 걸 나는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은데. p.117 믿는다고 다 사랑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랑하면 믿게 되는 건 맞다. 물론 살다보니 발등을 찍는 건 대부분 사랑이기도 하지만. p.181 나는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끝도 없이 상상하며 스스로를 들볶아왔다. 그건 내게 닥친 실제의 일보다 늘 나를 더 힘들게 했다. 그래도 한편 생각한다. 현명하지도 못하고 걱정만 많았던 지난 시절이 부끄럽고 민망하지만, 그런 시간을 지나 지금에 이르지 않았느냐고. 걱정과 두려움이 때론 우리를 보호하고 어두운 골목을 힘껏 뛰게도 했을 거라고. 그러니 그 모든 순간이 다 내겐 때였다고. 나의 작은 마음 시절을 위로해주고 싶은 것이다. p.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