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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한의 설레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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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이 시작되면서 나의 잠 못이루는병이 도지는것 같다. 생각의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생각들.. 회한의 회유를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지. 세상은 끝이 없고 끝이 없으니 시작또한 없는 듯하다.   그 무한한 시작과 끝도 모른채, 세월의 흔적에 자신의 숨결을 기댄다. 말이 없다가도 문득 아련한 생각에 사무치고. 안개같은 너울거림에 나를 더 하여 간다. 무던히도 작은공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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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이 시작되면서

나의 잠 못이루는병이 도지는것 같다.

생각의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생각들..

회한의 회유를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지.

세상은 끝이 없고 끝이 없으니 시작또한 없는 듯하다.

 

그 무한한 시작과 끝도 모른채,

세월의 흔적에 자신의 숨결을 기댄다.

말이 없다가도 문득 아련한 생각에 사무치고.

안개같은 너울거림에 나를 더 하여 간다.

무던히도 작은공간에 몸부림치며 영혼의 소스람에 인내한다.

 

위대하고픈 거고 행복하기를 기다리며.

기약없는 나날을 기다리며 산다.

오직 매듭같은 인생에 힘든 매듭이 풀리우길 바라며,

기다리는 인내를 배운다.

저 산 재 넘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길 바라며,

오늘의 운신을 고달픔에 세상을 보탠다.

 

시작은 모르고 끝을 알아버린 불행한 사람들처럼.

고개떨군 숱한 이들의 뒤안길을 거듭한다.

알고 보면 살아감은 그리 간단치 않은 사실들.

자신을 거둘수 있는 여력마져 힘겨운 운신에 어제밤을 설쳤다.

길고 어두운 밤의 거리는 나를 방황케 하였고.

쉽게 꾸지않은 꿈의 나래엔 혼란을 방황케 한다.

 

혼란한 육신대신 영혼의 희망으로 잠시를 대신하고.

하루 하루을 지탱하여 간다.

참으로 지루한 나날들이다.

정렬되지 않아 흐트러움은 애써 태연한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이 전부는 아닐찌라도

지금의 순간을 지독한 습성의 뇌리로 맛보고 있다.

 

자꾸 잠식해오는 오해와 시련이 나을 덮쳐온다.

본능적으로 나는 직면적인 방어가 있음은

난 다시 되돌아 올수 없는 길을간다.

그만큼, 그렇수 있을 만큼의 반비례는 나의 몫일까?

나의 시련이 멈출때

아이처럼 순수한 새로운 세상을 볼수 있을까?

 

단 하루를 살더라도 아닌세상 말고

진실하고 아름다운 행복속에 묻치고 싶다.

간밤에 잠을설처 피곤하다.

아.... 우연은 피할수 없는 인연을 만든다던데.

인연이 어디론 새로운 씨앗을 뿌려주길 바라기나 하듯.

오늘도 죽여가며 혼신의 허물을 벗고있으니 말이다.

 

h*****k 2015.03.13. 신고 공감 2 댓글 1
리뷰 총점 종이책
유서 같은 글쓰기, 영원한 자살 미수인 문학!을 생각하며..'나는 문학으로 출가했다'
"유서 같은 글쓰기, 영원한 자살 미수인 문학!을 생각하며..'나는 문학으로 출가했다'" 내용보기
출가(出家)라는 단어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것은 비슷하지만 각기 다른 의미도 포함되는 것 같다. 나에게는 ’목련꽃 필 때’라는 시에서 출가를 죽음과 연결 지은 김승희 시인의 경우가 잊혀지지 않는다. “목련꽃 필 때 길 떠나는 사람 많으네,/ 행락 인파 행려 인파 가출 인파에 섞여/ 고요히 출가 입산하는/ 죽은 사람들 위에/ 목련꽃은 순결한 면죄부 같은/ 희고 탐스런 꽃잎 아끼
"유서 같은 글쓰기, 영원한 자살 미수인 문학!을 생각하며..'나는 문학으로 출가했다'" 내용보기

출가(出家)라는 단어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것은 비슷하지만 각기 다른 의미도 포함되는 것 같다. 나에게는 목련꽃 필 때라는 시에서 출가를 죽음과 연결 지은 김승희 시인의 경우가 잊혀지지 않는다. “목련꽃 필 때 길 떠나는 사람 많으네,/ 행락 인파 행려 인파 가출 인파에 섞여/ 고요히 출가 입산하는/ 죽은 사람들 위에/ 목련꽃은 순결한 면죄부 같은/ 희고 탐스런 꽃잎 아끼지 않고/ 너그러이 나누어 주어/ 봄잠을 덮네...”

 

 

김승희 시인의 시는 열반(涅槃), 육신을 버리기 전의 깨달음 즉 유여(有餘) 열반과 목숨이 다하는 것 즉 무여(無餘) 열반으로 나누는 불교의 한 셈법을 생각하게 한다. 반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내 생은 나로 하여금 출가라는 단어로부터 비승비속(非僧非俗)이라는 개념을 먼저 떠올리게 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나는 문학으로 출가했다는 유명 문인들이 각기 불교와 자신들의 문학을 어떤 관계로 바라보는지 알 수 있는 귀한 자료집이다.

 

 

이 책은 한승원, 김연수, 김선우, 도종환, 문태준, 맹난자, 남지심, 천양희, 정찬주, 송수권, 김정빈, 오세영 등 20 명의 문인들이 불교와 맺은 자신들만의 사연을 담은 책이다. 특별히 나는 문학으로 출가했다는 제목은 김선우 시인/ 소설가의 글 제목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책에 담긴 모든 문인이 문학으로 출가한 것은 아님을 알 게 한다. 물론 그들 모두 자신들이 불교와 맺은 아름다운 인연들을 들려주었다는 점에서는 예외가 아니다.

 

 

김연수 작가는 작가의 고독은 스님의 명상과 같다는 의미에서 창작을 위파사나 명상에 비유한다. 시로 등단한 이후 늘 시마(詩魔)에 사로잡혀 있다며 남들에게는 그런 점이 무위도식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공짜로 사는 것은 아니라는 성석제 작가의 말에서는 일일부작(一日不作) 일일불식(一日不食)의 가르침이 연상된다. 자신이 태생적으로 불교에 친연성(親緣性)을 가진 인연으로 태어났다는 것이 말할 수 없이 감사하다는 김선우 작가는 세상의 혁명을 원했으나 혁명은 되지 않고 방만 바꾼 채 절망에 붙들렸었다고 말한다.

 

 

출가를 생각했지만 끝내 출가하지 않은 김선우 작가는 어느 순간 느닷 없이시인으로 살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말한다.(47 페이지) 출가하고 싶었고 동시에 세상에서 더 견디고 싶었다는 김선우 작가의 말은 비승비속의 한 차원인지도 모르겠다. 도종환 시인은 자신의 문학의 밑바닥에는 고오빈다(헤세의 싯다르타의 주인공)와 지산(김성동 작가의 만다라의 주인공)이 갔던 길을 가고자 하는 갈망이 내재해 있다고 말한다. 도종환 시인이 출가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고형렬 시인은 젊은 날 팔만대장경을 껴안은 채 그 속에서 숨도 쉬지 못하고 적멸(寂滅)하겠다는 꿈을 가졌다고 말한다.(74 페이지) 물론 실패했기에 세간에 머물며 시인으로 살고 있는 것이리라. 이문재 시인은 대학 1학년 봄 박상륭 작가의 죽음의 한 연구에 충격을 받고 그 벽을 뛰어넘을 수 없어 소설 쓰기를 접고 시로 선회했다고 말한다.(95 페이지) 낮엔 잡지사 기자로 기사를 쓰고 밤이면 시를 쓰며 유발승(有髮僧)을 자처했다는 이문재 시인의 행보 역시 비승비속의 그것이었다.

 

 

도종환 시인 편에서 그가 출가했다면 어땠을까, 란 말을 했지만 남지심 작가는 불교를 만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란 말을 한다.(114 페이지) 이홍섭 시인은 불교와 시 사이를 오가며 비승비속으로 혹은 건달로 살아가고 있다고 자신을 표현한다. 흥미로운 것은 내가 출세간(出世間)과 세간(世間) 사이에서 어정거린다면 이홍섭 시인은 시와 불교 사이를 오간다는 사실이다.

 

 

천양희 시인은 자신에게 불교는 세상의 방향을 알게 해준 나침반이었고 잘못된 길을 새 길로 만들게 해준 지도였다고 말한다.(131 페이지) 대학 졸업 전해에 한 스님으로부터 출가를 권유받았지만 좋은 소설 한편 쓰는 것이 꿈이었기에 응하지 않았다는 정찬주 작가는 자신만큼 정복(淨福)을 누린 작가도 없을 듯 싶다고 말한다.(143 페이지) 최동호 시인 역시 출가를 꿈꾸었지만 부모에 대한 도리가 아닌 것 같아 대신 문학을 택했다고 한다.(162 페이지)

 

 

소설 ()‘으로 유명한 김정빈 작가는 대승 불교는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고 말하며 초기 불교야말로 우리가 가장먼저 알아야 할 것일 뿐 아니라 마지막까지 배우고 의지해야 한다고 결론짓는다.(177 페이지) 김정빈 작가는 사티(마음 챙김)에 사마타 사티와 위빠사나(김연수 작가는 위파사나라는 말을, 김정빈 작가는 위빠싸나라는 말을 썼다.) 사티가 있는데 이 중 위빠싸나 사티가 중요하며 초기 불교 수행자들이 이 위빠싸나 사티를 통해 깨달음을 성취했다고 말한다.(177 페이지)

 

 

나는 문학으로 출가했다의 문인들 중 다수가 출가 대신 문학을 또는 삶을 택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 사실들을 접하며 나는 롤랑 바르트 생각을 했다. “글쓰는 사람으로서 나는 미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감히 정신나간 상태를 자처할 수도 없다. 나는 그저 신경증이 있을 뿐이라는 말을 한 바르트는 신경증을 불가능한 것에 관한 임시변통물(臨時變通物)로 정의했다. 출가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던 문인들에게 문학은 바르트적 의미의 임시변통물이 아닐지?

 

 

이는 김승희 시인의 사례를 보아도 확인할 수 있는 바이다. ”떠나는 건 쉬워...// 처음엔 왼발을,/ 그 다음엔/ 오른발,/ 그리고 슬쩍 몸을 날리는 거야,/ 애욕처럼 진하게/ 두 눈을 감고...// 그런데/ 아직/ 유서를 못썼어,/ 나의 사인(死因)을 포장해줄/ 극비의/ 설형문자를,// 그때까지는 살려고 해...// 하하.../ 이건 변명이/ 아니라/ 소명이라오!“ 이 시는 그의 왼손을 위한 협주곡’(1983년 출간)에 실린 자살자의 노래라는 시이다. 유서 같은 글쓰기, 영원한 자살 미수인 문학!

 

 

나는 문학으로 출가했다의 필진에 박규리 시인, 김명리 시인, 조용미 시인 등 각기 의미있는 불교 관련 시들을 쓰고 있는 문인들이 포함되었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후속작으로 나는 불교철학으로 출가했다같은 책이 기획된다면 좋겠다

이달의 사락 m******1 2014.07.1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