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역도 많고, 도대체가 문장이 다듬어지지 않았어요. 이쁜 표지에 반해 1권에 이어 구입했건만.. 글구, 한 작가의 단편집을 연속으로 출판하면서 번역가를 다른 분으로 하는 건 좀 이해가 안갑니다. 한 작가의 작품의 연속성이랄까 흐름을 위해서 능력있는 한 분의 번역가가 시간을 두고서라도 작업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아무튼 실. 망. 입. 니. 다. 차라리 오래전에 나온 외야이 후줄근한 집사재의 카버 단편집들이 번역은 훨~씬 좋습니다. 또 한 분이 계속 번역하셨구요.. 문학동네.. 진짜 실. 망. 입. 니. 다. 집사재와 문학동네의 차이점은 집사재는 카버 단편들을 출판사 나름으로 가름하여 3권의 책으로 냈다는 것이고, 문학동네는 카버 단편집 원서 그대로 제목과 목차를 가져왔다는 것이죠. 그래도, 처음 나왔던 '제발 조용히 좀 해 주세요'는 번역도 괜찮았던것 같은데.. 그래서 이번 책도 의심없이 구입했건만, .. 이렇게 실망하고 나니 영 마음이 놓이질 않네요.. 출판사 이름과 책 외양만 예쁜다고 눈멀지 말아야 겠어요!! 원서로 읽기로 결심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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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시작은 달콤합니다. 우리를 설레게 만드는 건 상대를 향한 그리움과 애틋함입니다. 연락이 되지 않는 시간은 견딜 수 없습니다. 손을 잡고 걷는 여름을 지나 손을 잡으면 따뜻한 온기를 느끼는 가을로 건너왔습니다. 겨울을 보내고 다시 봄을 마주한 우리는 묻습니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집사재 판은 무라카미 하루키 해설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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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버드맨' 첫 장면에 나오는 레이먼드 카버의 문구이다. 살아가는 동안 내가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을 느낀다는 것만으로 우리가 이번 생에 원하는 것을 얻었다는 것. 그런 것. 우리가 원했지만 몰랐을 그런 것. '버드맨'의 주인공 리건 톰슨은 1990년대에 버드맨 캐릭터로 큰 인기를 누렸지만, 이제는 한물간 배우이다. 그는 브로드웨이에서 연극으로 재기를 노리고 있다. 레이먼드 카버의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 하는 것'은 리건 톰슨이 부활을 노리는 연극이다. 영화에서는 혼란스런 자아와 불분명한 상황에 맞춰 이야기가 절묘하게 진행된다. 멜과 테리, 나와 로라는 식탁에 앉아 진정한 사랑에 대해 이야기 한다. 이야기 주제는 너무도 사랑해서 그녀를 죽이려고까지 했던 테리의 전남편 에드의 사랑이 과연 진정한 사랑인가에 대해서다. 멜은 당연히 그런 것은 사랑일 수 없다고 하고, 테리는 그건 그만의 방식으로 하는 사랑이라고 했다. 사랑의 표현 방식만으로 우리는 사랑을 이야기 할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는 지독한 고통을 주는 것이 사랑의 표현이고,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쓰다듬고 만져주는 것이 표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랑은 그 대상을 전제해야 하기 때문에 상대가 괴롭다면 사랑이 성립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리는 그의 사랑을 진짜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사랑'을 두 사람이 만들어낸 하나의 감정으로 보자면 비논리적이지만, 혼자서 완결되는 감정의 형태라고 생각한다면 가능하다. '사랑' 자체가 개인에게서 완결되고, 그것이 상대로부터 받아들여지는 지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멜은 거기에 오류가 있음을 지적한다. 그것은 결코 사랑일 수 없으며, 집착이고 광기일 뿐이라고 한다. 사랑을 결국 두 사람이 완결 지어야 할 어떤 것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의 말도 역시 맞다. 하지만 그는 나를 사랑했어요. 멜. 그건 인정해요. 내가 부탁하는 건 그게 다예요. 그는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식으로는 사랑하지 않았어요. 그랬다는 게 아녜요. 하지만 어쨌든 그는 나를 사랑했어요. 그건 인정할 수 있죠. 그렇죠? (p.208) 멜의 이야기는 자신의 지금 부인 테리를 생각하고 하는 이야기라면, 테리의 이야기는 오직 에드 혼자만을 두고 하는 이야기이다. 관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이야기는 또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에드는 쥐약을 먹고 자살 시도를 했다 실패하고, 결국 권총으로 자살한다. 멜은 그 때문에 계속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살았던 사실을 회상하며 그에 대한 반감을 감추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감정이 얼마나 순간적인 것이며 덧없는 것인지에 대해 계속 이야기 한다. 우리는 얼마전까지도 다른 사람과 사랑했으면서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고 있으며, 상대가 사라진다면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사람을 사랑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멜은 어느 노부부의 이야기를 한다. 교통사고로 크게 다쳐서 사경을 헤매던 노부부는 오랜 시간 수술을 거쳐서 살아 남았지만, 온몸에 깁스를 해서 옆에 있는 부인조차 볼 수가 없었다. 노인은 부인을 볼 수 없다는 절망 때문에 죽어가고 있었다. 내 말은, 그 늙은이가 망할놈의 마누라를 볼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죽어가고 있었다는 거야. (p.226) 식탁에 둘러 앉아 있던 나머지 세 사람은 뭔가 따뜻한 감정이 스며드는 것을 느낀다. 그들은 지금 옆에 있는 사람들이 사랑의 완결이 아님을 우리가 사랑을 말하는 것은 얼마나 섣부른 자만이었는지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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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뭐 어쨌다고? 레이먼드카버의 단편소설들을 처음 접했을때 유일하게 들었던 생각이었다. 궁금했다. 왜 이 작가가 단편소설계의 천재로 대우받는지. 그리고 한동안 잊고지냈다. 2014년의 마지막날 문득 이 작가가 생각이 났다. 신촌의 서점에서 <대성당>과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중 후자를 골랐다. 카버의 소설은 기껏해야 한편에 열장 남짓이다. 분량도 짧고 문장도 짧다. 그는 (그녀가 조용히 읊조렸다)라던가 (그녀가 비웃듯이 내뱉었다)라고 쓰지 않는다. 다만 (그녀가 말했다)라고 쓴다. 억지스러운 희망을 내비치거나 옳다 그르다 슬프다 기쁘다 판단하지 않는다. 단지 삶의 단면을 정확하게 보여줄뿐이다. 느끼고 생각하는건 온전히 읽는 나의 몫이다. 카버의 소설들을 다시 읽고 생각했다. 소소한 사건이든 큰 사건이든 일들을 겪은 후의 나는 그 전의 나로 돌아갈수 없다. 크고 작게 하지만 분명히 영향을 미친다. 일분 일초도 쉬지 않고 삶의 웃음과 절망과 희망과 기쁨 혹은 섞여있는 덩어리들 혹은 이름없는 무언가가 나를 통과해가고 있었다. 내가 그걸 느끼든 못느끼든 삶은 계속되고 일상은 바쁘게 돌아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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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하루키가 이야기했다. 자신에게 영향을 준 작가가 몇 명이 있는데 트루먼 카포티, 스콧 피츠제랄드 그리고 레이몬드 카버. 얼마나 영향을 줬는데.. 하면서 검색시작 카포티의 '티파니에서 아침을' 은 절판으로 dvd을 구입하고, '인 콜드 블러드'는 취향이 아니라 포기한다. 스콧 피츠제랄드의 '위대한 게츠비'는 두 번보아도 역시 좋다.
6월달에 갑자기 생각이나 레이몬드 카버의 '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제발 조용히좀 해요' '대성당'을 구입한다
단편이라 짧은 시간, 틈틈히 읽기에는 제격이나, 체홉의 미공개 단편을 볼 때와 같이 어쩐지 허무하다. 아직 멀었다. 내가... 일상의 평범한 한 단면을 레이몬드 카버는 그저 담담하게 이야기 하는 것으로 한 편 한 편 보고 나서 잠시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하루키와 많이 닮았다. |
|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레이먼드 카버 저/정영문 역 문학동네 2005년 내 삶은 명확치 않은편인데, 그래서 나는 명확치 않은 것들에 불만이 많다. 머리가 나쁜건지 이건 이것이고 저것은 저것인데~ 이러이러해서 결국엔 이렇게 되었다더라. 하고 결론이 확실한 것을 좋아한다. 레이먼드 카버의 책은 처음이다(이젠 놀랄 일도 아니다. 처음 읽는 좋은 책들이 어디 한 두 권이라야지 ^^:) 아주 잛은 단편들인데, 너무 많은 것을 내게 요구(?)한다. 이 책은 생각이 많아야 한다. 나 같은 사람은 답답해서 못 읽는다. 그런데 읽었다. 이유는 답답은 하지만 글은 좋았으므로..^^; 레이먼드 카버를 알게 된 것은 '제발 조용히 좀 해요' 때문이다. 워낙 제목에 관심이 많은 나는 범상치 않은 제목으로 인해(단편의 제목들도 다 특이하고 이쁘다^^;) 내 눈길을 끌었는데, 책을 넘겨보니 페이지마다 누군가 글을 가득 적어 놓았다. 동생책이니 당연히 동생이 그런 것이라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동생친구의 책이었다. 그 적어 놓은 글귀가 더 흥미를 끌어 읽어 보려 했으나...그 때 왜 못 읽었을까? 암튼...레이먼드 카버의 책을 머리 맡에 나두고 이제야 읽은 것은(제발 ~이 먼저 읽고 싶었으나 두께의 압박감으로 인해 얇은 책부터 먼저..) 첫 이야기인 '춤 좀 추지 그래?'를 읽은 후였다. 그즈음 나는 프랑스 소설에 빠져 있었고 읽는 프랑스 소설마다 사실 너무나 내 취향에 맞는 것이었다.그래서인지 이 책의 첫 이야기를 읽고 난 후에 난 어찌 할 바를 몰랐다. 읽을 것인가?..말 것인가? 미국소설이 다 이랬던가? 싶기도 하고...... 그 땐 덮어 버리고 말았지만...결국은 읽었다. 아마도 프랑스 소설의 여운도 사라지고, 짧은 단편들이 요즘 내 바쁜(?) 생활에 딱 어울렸기에 때문?...결론은 모든 작품이 아름다웠는데, 몇 작품에서 난 그 아름다움의 깊이를 발견하지 못했다.쉬운 말로 내 머리가 따라가지 못했다는...^^;;; (독서에 문제가 있는 듯...아니면 정말 취향문제) 240페이지 가량의 얇은 책 속에 단편이 열 일곱개나 들어 있다. 얼마나 짧은 이야기들인지 알만할 것이다. 그 짧은 이야기 속에 함축되어 있는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고개가 끄덕거려지는 이야기도 있고 갸우뚱거리는 이야기도 있다. 홍상수의 영화처럼 '그래서 어쨌는데...'라는 말이 나오기도 하고 짧은 에피소드식의 수필처럼 감동적인 이야기도 있다. 더미의 상황(우리 아버지를 죽인 세번째 이유)이 이해되기도 하고, 남자들의 우정이 웃기기도 하고 (여자들에게 우리가 간다고 말해 줘) 클레어의 행동에 나라도 그랬을것이다 공감했으며(너무나 많은 물이 집 가까이에) (그에게 달라붙어 있는 모든 것)을 읽을 때는 장면 하나하나가 내 머리 속에서 그려지고 있었다. 그리고...그리고...(목욕)에서 아들의 사고에 넋이 나간 엄마의 마음은 가슴을 아프게했다. 그렇게 짧은 글에서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담아 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것이다. 나처럼 길게 쓰는 리뷰보다 짧으면서도 함축된 리뷰가 더 잘 읽히고 마음에 와 닿는것처럼 말이지..^^;; 적다보니 너무 사적인 리뷰가 되긴 했으나, 알듯 말듯 약간의 짜증 속에서도 이 책을 놓지 못한 진짜 이유는 무덤덤하게 써 내려 간 레이먼드 카버의 문체때문이다. 이 책의 모든 것을 이해하며 읽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그의 작품에 빠지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제 그를 알게 되었으니...레이먼드 카버의 성격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제발 조용히 좀 해요'가 빨리 읽어보고 싶다.지금은... |
| 레이먼드 카버... 경력이 화려한 작가이기는 하나 나에게는 생소하다. 그래서 이 책도 그의 이름을 보고 고른게 아닌 순전히 예쁜 제목에 이끌려 저절로 손이 가게 되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마치 멜로영화나 연애소설의 제목같은 책이지만 열일곱편의 단편들을 접하면서 매우 놀랐고, 한편으로는 실망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단지 이 책은 겉모습만 예뻤다 뿐이지 안의 내용 그 자체는 한없이 차갑고 냉혹했기 때문에... 처음 몇편을 읽고는 짧지만 쉽지 않은 단편에 기가 질려 책을 덮었다가, 딱히 말로 표현하기 힘든 묘한 매력에 다시 펴서 끝까지 읽게 되었다. (그 묘한 매력은 책을 다 읽고 난 후 더욱 크게 느껴졌다.) 인생을 살다보면 누구나 지우고 싶은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억이라는게 자기가 지운다고 애쓴다고 쉽게 지워지는게 아니지 않는가...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다시는 꺼내기 힘들어질 마음의 창고 속에 쳐박아 둘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창고 속 그것들은 잠시나마 잊은 채, 밝고 건강한 기억만을 꺼내어 회상하며, 그것에 추억이라는 이름까지 붙여둔다. 이 책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에서는 그 창고 속 쳐박아 둔,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을 만치 어둡고 또 무겁고 냉혹한 일상을 마치 인생이라는 영화 속 한 장면으로 캡처해낸 듯, 아무런 꾸밈없이 칼로 도려내어, 단호하게 이야기한다. 그렇다고 빛이 없는 깊은 동굴속의 그 어두움과 막막함만을 보여주기 보다는 우리가 좀 더 넓게 포용하는 자세로 관조적으로 동굴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게끔 해준다. 바로 이 점에서 내가 그의 소설에 큰 매력을 느낀 것 같다. 사실 단편 하나하나를 100%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이야기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색깔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고, 이 느낌만으로도 꽤 만족스러웠다. 간혹 그는 인간의 악한 면을 그 어떤 꾸밈없이 잔인하게 파헤치지만 나는 그 인물들의 이면에 또다른 나약함과 더불어 그에 따른 연민까지 느낄 수 있었다. 산다는게 그렇지 않은가... 좋은 일이 있으면 또 나쁜 일도 있게 마련이고, 살아오면서 그 무엇이든 한번쯤 잘못해보지 않은 이가 있겠는가? 이 책을 읽고난 후, 문득 나도 내 묵혀두었던 창고 속 기억들을 추억이라는 명목으로 마치 수수방관하듯 한번 펜으로 갈겨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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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었다. 유려하고 흔히 말하는 문학적 표현들이 펼치는 이야기에 익숙한 내게 레이먼드 카버의 다소 건조한 문체와 이야기가 낯설었다. 하지만, 지쳐보이는 등장 인물들을 따라가다보면 일상에서 우리가 겪고 있고, 겪었던 소소하지만 삶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한 사건들의 연속임을 감지하게 된다. 그래서 이해가 되고, 건조한 문체에서 레이먼드 카버만의 문학적인 면모가 이러한 것이구나, 라는 생각으로 어느덧 정리가 되어 간다.
책 속에 들어가 있는 이야기는 단편치고도 아주 짧은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단편들에게서 받을 수 있는 짜릿한 결말로 우리를 놀래키기 보다는 처음부터 순서가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고 자각할 수 있을 정도로 이야기의 가닥은 눈에 보인다. 그렇다고 너무 평이하게 전개된다거나 나에게 지루함을 주기보다는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어쩌면 나도 겪고 있고, 괴로울 수 있는 일상의 문제들이 '툭' 하고 튀어 나와 읽기를 멈출 수 없게 만든다.
소설집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에 나오는 인물들은 대부분 우리 주위에서 쉽게 마주하게 되는 이웃들이다. 경제적으로 절박한 사연을 가지고 있을 듯한 인물과 이혼 위기에 처한 인물 그리고 이미 이혼을 한 상태이지만 자신의 어떠한 사연으로 계속되는 만남을 이어가는 인물들, 그리고 나와 너의 이야기가 나온다. 주인공들이 처한 지친 일상들 속에서 레이먼드 카버는 내일의 어떠한 희망을 제시하거나, 좀 더 힘을 내고 삶을 살아야 한다는 어설픈 교훈을 주지 않는다. 그런 점이 맘에 든다. 대신 이야기를 읽다보면 독자들이 저도 모르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일상 속에서 겪게 되고, 받게 되는 충격들에서 어떤 실마리를 잡아가게 만드는 재주를 부리는 듯, 고개가 끄덕여 진다. 충분히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너무나 익숙하거나 잊고 있었던 이야기에서 오는 나름의 확인 사실적인 측면으로 해석해도 될 것 같다.
엉뚱하고 충격적인 결말로 우리를 놀래키는 소설도 있지만, 레이먼드 카버는 시종일관 조용조용 물 흐르는데로 이야기를 끌어가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만의 세상을, 이웃을 혹은 스스로를 바라보는 건조한 시선을 놓지 않게 만든다. 그래서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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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레이먼드 카버/정영문/문학동네 무라카미 하루키의 친구이며 많은 영향을 받은 작가라는 말에 궁금증이 일어 읽었다. 대표적 단편 소설 17편이 수록되어 있었다. 하루키의 소설은, 연인들의 이야기나 가족간의 갈등을 소재로 감성에 호소하는 기존 일본 소설의 문체나 내용과는 전혀 다른 형식을 취하고 있다. 미국 소설에 심취하였고, 오랫동안 외국에서 생활하며 문단과의 교류가 없이 독자적으로 글을 써 왔기 때문에 자연히 그 나라의 문화와 작가들에게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대표적인 작가가 레이먼드 카버이며 그의 영향은 이 책을 통해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었다. 기존 소설에 익숙한 독자들에게는 생경하고 당혹스러운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런 내용을 소설로 써 놓고서 대체 뭘 말하고자 하는 거지? 라는 미묘하면서도 종잡을 수도 없는 느낌은 저자의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애써 찾아봐야 하는 보물찾기와도 같은 것이었다. 하나 같이 힘들고 고통스러운 현실에 대한 이야기들이라 읽고 나면 불편해진다. 그것은 고발도 아니고 단지 현실 그대로를 서술하는데 그치고 있다. 이해시키려고 하지도 않고 거기에 대한 의견이나 형용도 되도록 삼가고 있다. 마치 신문기사를 연상케 하는 필체도 거기에 한몫하였다. 그러한 소설을 읽는 독자는 자꾸만 도망치고 싶은 생각이 든다. 독자 자신의 현실이기도 한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는 그것마저 허용하지 않는다. 애써 외면하려는 독자들을 억지로 끌고 가서 그것을 강제로 바라보게 만든다. 거기에서 어떤 희망도 찾을 수 없는 독자들의 절망은 더 깊어진다. 하지만, 그 현실과 타협하거나 혹은 허우적거리던지 그 모두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 놓았다. 소설 전면을 흐르고 있는 평탄치 못한 가정생활과 취기 가득한 분위기를 당시 미국의 일반적인 사회 분위기로 돌리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았다. 그러한 의문은 저자의 연보를 훑어보면서 이해되었다. 알콜 중독에 빠져 파산에 이르는 경제적 고통과 이혼과 재혼을 반복했던 경험을 근거로 대부분의 소설이 씌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50세라는 젊은 나이에 사랑하는 아내 곁에서 잠을 자던 중에 사망한 것은 굴곡진 그의 일생 중에 가장 극적인 순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역자가 말한,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바로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하고 한참을 앉아 생각하게 만드는 것과 같은 막연한 느낌이 든다는 말은 공감하면서도 그 느낌의 실체를 쉽게 알 수는 없었다. 소설의 형식과 문체에 대한 고정관념을 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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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들이 잔뜩 모여있는 책.- 무라카미 하루키씨가 '달리기를 말할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제목을 여기서 따온 것이라고 하는데- 궁금해져서 읽어봄..~
여러 인물들과 여러 스토리가.. 등장한다. 근데 절반 이상이. 불륜스토리야!! 아버지의 불륜, 소녀과 아저씨의 바람, 아내의 불륜, 그리고 본인의 불륜에 관한 내용까지- 마치 남의 일상생활을 엿보는 기분이 들 정도로 사실감 있게 전개되고, 구체적으로 대화 내용들이 어떤 의미인지는 읽는 사람이 스스로 해석해야 한다. 보통 등장인물들의 심리상태를 친절히 설명해주는 책들과는 사뭇 다르다- 그냥 행위 중심? 어쨌든 나는 마치 남의 생활을 엿보는 기분이 들어서 좋았다는. (원래 남얘기하는 것도 좋아하고,-남얘기보단 내 얘기를 더 좋아하지만.) 지루해지는 사랑, 열정적인 사랑, 폭력적인 사랑, 잔잔한 사랑, 변하는 사랑, 변치않는 사랑,... 그 스토리들 중에.. 노부부가 사고를 당한 뒤 기적적으로 살아났음에도 - 서서히 죽어갔던 이유가-'온몸이 붕대로 감기고 깁스를 하고 있어 '그 망할 마누라의 얼굴'을 고개돌려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그 이야기가 너무 감동적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은 옆에 두고 있어도 늘 그리운 법. 갑자기 '숏컷'을 다시 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