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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카버는 짧은 글 안에 모든 감정을 녹여내는 능력이 참 탁월하다. 전후 상황이 보이지 않아도 모든 상황이 머릿속으로 그려져서 상상하는 재미가 있었다. 또한 모든 인물들이 처한 상황들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재단해 미세한 감정들을 참 잘 표현한다는 생각이 든다. 대성당은 아쉽게도 이미 가지고 있어서 리커버된 작품으로 구매하지 못했지만 표지도 다 예뻐서 너무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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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몬드 카버의 초기 단편집인 <제발 조용히 좀 해요>는 도서관 대출로 읽었던 기억이 난다. 한동안 전자책에도 관심을 쏟느라 직접 여러 권을 epub, PDF 등의 포맷으로 편집해 취미 삼아 만들어보기도 했지만 역시 종이책이 주는 공감각적인 기쁨을 대신하진 못한다는 생각에, 게다가 생각보다 이동이 잦지 않아 모바일 기기의 필요성이 적어진 까닭까지 겹치며 전자책 구입은 그만둔 지 꽤 되었다. 행동 반경 안에 여러 책을 펼쳐 두고 읽고 책갈피도 꽂고 포스트잇과 색지도 붙여가며 출렁이는 독서가 내겐 맞다 싶다. 이 기쁨에 충만하려거든 난 이왕이면 책이 좀 이뻤으면 한다. 레이몬드 카버의 책들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좋았음에도 소장하려는 욕구가 일지 않았던 것은 책의 몰골 때문이었다. 내가 행복을 만끽하며 읽고도 들여놓지 않은 책들이 있다면 열이면 아홉 이런 이유다. 책이 '못생긴' 게 아니고 책을 못 만들어서, 만드는 능력이 떨어져서이다. 만약 작가가 얼마간의 심미안이 있거든 출판사로부터 그런 책을 받아든다면 마음 아플 것 같다. 우린 이런 책의 예를 너무 많이 알고 있다. 그래서도 다들 리커버네 편형 변경이네 해서 내는 책들의 전략에 알면서도 모른 척 당해주는 것이다. 안팎으로 아름다운 책에 독자는 도리가 없다. 더운 날 댕댕이들 입처럼 지갑은 자동으로 열린다. 혀처럼 지폐가 나온다. 수 년 전에 비해 책값이 두 배가 될 지경인 오늘에 누군가의 책을 만든다면 출판사는 자신들의 소임이 활자를 인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을 다시금 되새겨, 작품과 작가의 수준에 걸맞는 근사한 디자인의 책들을 만들어 주었으면 한다. 레이몬드 카버의 <제발 조용히 좀 해요>, <대성당>,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문학동네가 이 세 권의 책을 특별판이라는 이름으로 시장에 내놓았을 때, 이것이 내가 가진 영문 페이버백들처럼 '특별판'이라기보다는 실은 '염가 보급판' 형태란 것을 잘 알면서도, 그래서 30%는 더 저렴해야 마땅할 페이버백을 무려 웬만한 양장본 가격으로 비싸게 판매하고 있음을 뻔히 눈치채고 있음에도, 속는 셈치고 내가 세 권을 몽땅 사주는 이유도 다 '디자인도 분명 책의 한 축'이라는 나의 이런 소신 때문일 것이다. 애초에 좀 더 신경쓰면 될 것을 어리숙하고 어정쩡한 디자인으로 발표한 다음 리커버하고 각종 특별판을 발표하면 독자는 이미 가진 못생긴 책 때문에 번민하기 마련이다. 새로 사 말아.. 그러니 처음부터 제발 잘해주길 바라는 마음인 것이다. 잘 할 수 있는 데 왜 안 했던 걸까? 어디가 문제였던 것인지 지금 그들은 아는지 모르겠다. 미적 감각이 나이를 먹고 시대를 타며 느닷없이 훌쩍 개선된 걸까? |